"옥상이라. 하지만 잠기지 않았을까. 그냥 학교 뒷 정원에서 보자. 무난하면서도 조용할 것 같으니까."
물론 아예 학생들이 없을 순 없겠지만 애초에 아예 학생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교가 그렇게 엄청 넓은 것은 아니었고 학생 수가 상당히 적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어디에 가더라도 다른 아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그 부분은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상대적으로 편안한 느낌의 정원이 괜찮지 않겠는가. 돗자리를 깔고 먹으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도시락하고 짐 챙기고 거기서 보는 것으로 하자. 그 전에 잠시 학생회 쪽에 보고를 해야하니까 조금 있다가 보자."
일단 지금까지 찍은 사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보고를 해야만 했기에 혜성은 우선 지금은 헤어졌다가 나중에 보자고 이야기를 하며 아람과 헤어진 후, 학생회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당연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챙기고서. 이어 학생회장을 만난 후 혜성은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일부를 보여줬고 차후 어떻게 뭘 더 찍어줬으면 좋겠는지의 오더를 받았다. 사진 관련으로는 크게 말이 없긴 했지만 골인하는 순간이라던가 준비 중인 순간을 좀 더 집중적으로 찍어달라는 오더를 확인하고서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반에 돌아가서 자신의 도시락을 챙긴 혜성은 바로 정원으로 향했다. 학교 운동회라서 도시락을 싸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화려한 것을 싸온 것은 아니었다. 계란말이와 소시지, 그리고 감자조림, 김, 제육볶음, 마지막으로 쌀밥. 정말로 무난한 내용물로 구성된 도시락통을 챙긴 후에 막 정원에 도착한 헤성은 아람을 찾아보기 위해서 두리번거렸다. 시간상 아무래도 아람이 먼저 도착할 수밖에 없을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앗. 깐깐한 혜성이.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범생이 스타일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아람이가 으쓱해하는 모습은 엄청 귀여울 것 같은걸? 뭔가 배시시 웃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난 지금 하루 푹 쉬고 있어! 아람주도 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만약 일하는 중이라면 일 화이팅이야!
혜성과 약속을 잡은 뒤 헤어져 반으로 갔다. 아람이 성적을 잘 낸 덕분에 반 친구들을 만나자 환호와 잘했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물론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한 장난어린 야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나서 나오니 자신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뒷정원에는 몇몇 학생들이 자신처럼 돗자리를 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람도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있고 괜찮은 곳에 돗자리를 폈다.
돗자리를 편 채 앉아있던 중 혜성이 눈에 보이자 아람은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하면서.
/ㅋㅋㅋㅋㅋㅋ 혜성이 땡땡이 안한다고 했을 때 범생이 티 났다구? 뭔가 범생이 하니까 성격반전의 소심한 아람이가 떠올라버렸다....! 오늘 하루 푹 쉬고 있다니 다행이다!나도 쉬는 날인데 이래저래 할일이 많아가지고~
아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혜성은 아람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향한 후에 조심스럽게 도시락통과 마실 물을 돗자리 위에 내려놓았다. 마치 이전에 단풍놀이를 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조심스럽게 돗자리에 앉았다.
"뭔가 단풍놀이 갔을 때 갔네. 그때도 이렇게 돗자리 깔고 먹었잖아."
물론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유사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괜히 그렇게 이야기하며 혜성은 살며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2층 도시락으로 이뤄져있으며 1층에는 반찬, 2층에는 하얀 쌀밥. 그렇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어 물통의 뚜껑을 연 후에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그는 다시 뚜껑을 닫았다.
"애들 괜찮았어? ...그러니까 놀리거나 말이야. 나야 우리 반 애들 안 마주치고 도시락만 챙겨서 오기는 했는데."
이럴 때는 자신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약하게 숨을 내뱉었다. 아마 반 애들과 마주쳤으면 야유에 환호에 온갖 말들이 들려왔을테니까. 물론 혜성의 반 아이들 중 그가 아람과 사귀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되겠냐만 다시 한번 공표하는 것은 그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나도 그거 뽑았으면 아마 너랑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으니까. ...뭔가 너 안 데리고 가면 너야말로 엄청 삐질 것 같기도 하고. ...뭐, 좋아하니까."
/ㅋㅋㅋㅋㅋㅋ 그걸로 범생이가 되는거야?! 혜성이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안하는건데! 앗. 소심한 아람이라. 하지만 역시 소심한 아람이보다는 지금의 아람이가 난 더 좋아!! 아무튼 쉬는 날인데도 이것저것 하는구나. 정말 고생이 많아. 아람주...화이팅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솔직한 혜성이보다 훨씬 귀엽고 예쁘고 그럴 것 같은데? 그건 그것대로 매력이 있긴 하니까! 음. 나는 내일 좀 시험 칠 것이 있어서 쉬면서도 조금씩은 공부를 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끝내고 완전히 쉬는 중이야. 내일 시험...어떻게든 되겠지 뭐!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온 돗자리와는 다르게 상당히 귀여운 디자인의 돗자리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특히나 노란색 병아리가 쫑쫑쫑 그려진 것이 더욱 더. 아람과 돗자리 바탕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혜성은 괜히 미소를 머금었다. 작게 병아리 소리를 삐약삐약 내볼까도 고민을 했으나 굳이 그렇게 하진 않으며 혜성은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누가 배우 지망생 아니랄까봐. ...그리고 나도 약한 거 아니거든?!"
괜히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혜성은 이어 들려오는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았으면 엄청 삐졌을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이로 인식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혜성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기사 연인 사이엔 다 그렇지 않겠는가. 오래 사귄 것도 아니고 아직 사귄지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였다. 조금 더 달콤하게, 조금 더 서로가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은 것은 피차 마찬가지일테니 혜성은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주최측이 그렇게 해도 내가 동성 친구를 데리고 갔으면 화냈을거면서. ...뭐, 애초에 내가 뽑을 일은 없기도 했지만. 알았어. 내년이나 언젠가 그런 것을 뽑게 되면 널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해볼게. ...뭐, 딱히 다른 이들은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이어 혜성은 자신의 도시락에 있는 계란말이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적절하게 간이 녹아있는 것이 딱 자신의 입맛에 맞아 그는 괜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다른 계란말이를 집어서 아람의 도시락 통 속에 넣어주면서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이건 어머니가 싸준 거야. ...내가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맛은 괜찮을거야. 적어도 내 입에는 딱 맞기도 하고."
괜히 자신이 방금 도시락통에 넣어준 계란말이 쪽을 바라보면서 혜성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 뭔가 문뜩 떠오른 것이 있어 그는 아람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점심시간 끝나고.. 그... 시간 비어있어? ...아. 아니아니. 그것보다는... 같이 뭐하기로 한 이 있어?"
/그리고 시험을 마치고 점심을 좀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 와! 시험 끝났다!! 결과는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성이라면 모를까. 동성이라도? 만약 그렇다면 정말 아람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자신의 애정을 원하고 언제나 자신이 일 번이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어느 쪽이라도 딱히 부담이라고 느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어느정도 정보로서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지. 딱 그 정도로 생각하며 혜성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한편 자신이 얹어준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맛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말에 혜성은 괜히 기분이 좋아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딱히 표정을 감추거나 하지 않았고 잠시 소리없이 웃어보이다가 그는 괜히 소시지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면서 말을 고민했다. 요리 솜씨는 부모님에게서 닮는다. 정말로 그럴진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의 칭찬을 하는 것이 기분이 좋았기에.
"...내, 내 도시락은 관계없잖아. 물론 어느 정도 배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어. 내 요리는. 아직 어머니의 실력에는 한참 뒤쳐지기도 하고... 나름 노력은 해보는데 잘 키워지질 않아. 요리."
괜히 머리를 긁적이면서 혜성은 이번엔 제육볶음을 먹었다. 간이 적절하게 잘 되어있으며 적절한 단맛과 짠맛이 합쳐진 것이 역시 자신의 입맛 그 자체였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 아람이 꼭 그렇게 말을 했다고 어머니에게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잠시 말을 고민했다. 별 일 없다는 그 말을 괜히 곱씹으며 혜성은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점심 끝나고 그.. 2인 1조로 댄스추는 것도 있다는데 나랑 하자. ...지, 질투해버리고 그러면 곤란하니까!"
물론 자신이 추고 싶은 것이지만 괜히 말을 돌리면서 그는 방금 아람이 이야기했던 '질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어쩔 꺼냐는 듯이 빤히 아람을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이미 장애물달리기에서 그렇게 주목을 받아버린 이상 이번에 또 같이 나가면 싫어도 주목을 더욱 받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역시 다른 이랑 추게 하는 것은 싫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야! 그렇게 오래 자지 않았어! 2시간 정도라구! 혹은 1시간 30분? 아무튼 그 정도로는 괜찮아!! 아무튼 오늘 하루 운동한다고 시간 보냈구나! 정말 수고했어!
장난스럽게 돌아온 답이었지만 혜성은 괜히 푹 찔리는지 시선을 회피했다. 괴롭히진 않아도 마음에는 박아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람만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혜성은 마음 속으로 깊게 생각했다. 괜히 시도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만한 일을 만들어서 좋을 것은 없었기에.
한편 요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는지 끄응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피하는 아람의 모습을 혜성은 조용히 바라봤고 이내 피식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제 도시락 통에 있는 제육볶음의 고기 두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아람의 도시락 통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붉은 양념과 달달한 향이 입맛을 돋구게 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이어 혜성은 감자를 젓가락으로 집은 후에 하얀 쌀밥과 함께 입에 쏙 집어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괜히 흘러가듯이 이야기했다.
"...요리는 내가 하면 되잖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정말로 조용히 흘러가듯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도 아마 대답을 해주지 않을 정도로 혜성은 정말로 조용히 흘러가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주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집에 가면 요리를 조금 더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한편 포크댄스를 떠올리면서 자신은 좋다고 하는 아람의 말에 혜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 그래? 그러면 하는거지? 하는거야. 나중에 말 바꾸기 없기야! 사실 일학년 때 배우고 그 이후로 춘 적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방금 전 일도 있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제대로 인식이나 시킬까 싶어서. ...내 여자친구인거."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며 혜성은 괜히 물통 안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올라올 것 같은 열을 식혔다. 그리고 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나. 나중에 오후 시간에 계주 나가야 해. 3번째 주자. ...아마도 너희 반 애와 경쟁하겠지만... 말했다시피 안 봐줄거야. 너네 반이라도."
"딱히 연기로 뭐 한다고 해서 질투할 생각은 없어. ...나 참. 그 정도로 질투할 것 같으면 아예 연애를 시작도 안했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혜성은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물론 아람의 말대로 그걸 걱정할 때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은 해야겠다고 판단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런 것으로 질투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고 싶었기에. 이어 혜성은 다시 밥을 천천히 씹으면서 식사에 잠시 집중했다. 입 속에서 녹아내리는 제 입맛에 딱 맞는 반찬을 느끼며 그는 다시 한 번 제대로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강하게 다짐했다. 하지만 아람의 장난스러운 말에 혜성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람을 바라봤다.
"뭐, 뭐, 뭐래!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앞으로 같이 놀러가거나 할 때 도시락이라던가 그런 거거든?! 처, 청혼은 무슨! 야. 우리 아직 사귀고 1년도 안 지났어! 그런 것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잖아?!"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물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그런 말을 나누는 것은 조금 빠르지 않나 싶어서. 누가 보면 쑥맥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혜성의 얼굴은 정말로 붉게 물든 상태였다. 이내 괜히 물통을 제 뺨에 대면서 그는 볼을 식히려고 했다.
"너무 크게 하진 말고. 괜히 눈총 받는 일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잖아. 네 목소리만 들려도 날 응원하는 소리로 알면 되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은 슬슬 식사를 마무리하려는 듯 마지막으로 밥을 한 숟갈 뜬 후에 입으로 집어넣었다. 어느새 비어있는 도시락 통을 정리하려고 하며 그는 조금 더 편하게 앉으면서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아람을 바라봤다.
"넌 이후에는 뭐 나갈 예정이야? 사진 찍는다고 여기저기 다니긴 해야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구경할게. 경기하는 거."
그런 일로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혜성의 말에 아람은 조금 안도의 마음으로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혜성이 예쁜 여자들을 촬영하면서 같이 일을 한다면 질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대한 질투하지 않게 노력해봐야겠다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줄 혜성은 꿈에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하하. 나도 알아. 농담이었어.”
혜성의 반응에 아람은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한 것이긴 했지만서도. 너무 자신이 짖궂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혜성과 결혼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겠어. 그럴게.”
후후 웃으면서 아람 또한 다 먹은 도시락을 정리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화창해서 기분이 좋았다.
“음, 발야구 결승이랑 단체 줄넘기! 줄다리기 정도만 나가면 될 것 같아.”
오전에도 이래저래 불려다녔으면서 오후에도 꽤나 일정이 타이트한 모양이다. 아람은 그런 말을 하면서 돗자리에 편히 누웠다. 옷차림도 편한 차림이었으니. 조용하고 화창한 날씨에 오전에도 이리 뛰고 저리 뛰었기 때문인지 조금 나른할지도 모르겠다. 졸린지 눈을 깜빡깜빡 했을지도
농담이라고 말하면서 웃어버리는 아람의 모습을 혜성은 정말로 살짝 흘겨봤다. 묘하게 약이 오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람이 조금 짓궂어진 느낌이 있지 않나 싶어 이내 혜성의 시선은 오로지 아람의 눈과 입술로 향했다. 하지만 딱히 증거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짓궂어져도 딱히 크게 문제는 없었기에 그는 넘기기로 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귀엽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며.
아무튼 발야구 결승과 단체 줄넘기와 줄다리기.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세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줄다리기는 아마 자신도 참가를 해야 할테니까 보기 힘들더라도 다른 두 경기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보러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머릿속으로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편 아람이 돗자리 위에 편하게 눕자 그는 아람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그리고 제 무릎을 손으로 툭툭쳤다.
"졸리면 조금 자. 깨어나야 할 때 되면 깨워줄테니까. ...농땡이 피울 순 없잖아? 너나 나나."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아람은 뛰어야 할 경기가 있는데 농땡이를 피울 수는 없을 터. 그러기에 자신이 깨워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은 미소를 작게 머금었다.
"...대신에 나도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칠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그러니까... 복수라는 느낌으로 말이야. 그래도 상관없다면 베던지."
/충분히 혜성이를 잘 다루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뭔가 아람이의 이런 짓궂은 느낌이 나올 때마다 엄청 귀여워! 물론 혜성이도 그렇게 생각할테고!!
싫냐는 물음에 혜성은 괜히 시선을 회피하며 괜히 그렇게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했다. 어떻게 싫다고 할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기에 그는 괜히 답을 조금 회피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만 대답했다. 이렇게 묻는 것도 역시 조금은 짓궂다고 생각하나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으며 그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티가 나지 않도록. 너무 풀린 표정을 보이지 않도록. 역시 그런 표정을 보이는 것은 아직은 조금 부끄러웠다.
아무튼 제 다리를 베고 눕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은 나른한 목소리로 제 말에 대답하는 아람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물어도 안 가르쳐줄 거 알잖아. 짓궂은 장난은 안 가르쳐주기에 짓궂은거야. 네가 한번씩 그러는 것처럼."
이어 혜성은 손을 내려서 그녀의 눈가를 살며시 손으로 쓸었다. 아람이 눈을 감고 있는만큼 정말로 부드럽게 눈가를 편하게 쓸어주던 그는 그대로 손을 아래로 내린 후 약간의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잠들 때 공주님을 깨우는 왕자님처럼 행동할지도 모르지. 아마도. ...어디까지나 아마도. 다시 말하지만 아마도."
아마도라는 부분을 일부러 강조하면서 혜성은 반대편 손을 살며시 등 뒤로 내려서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내려 아람의 눈 감은 모습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은 조금 늦었다! 으아앙!! 8ㅁ8 조금 개인적인 일이 있었어! 답레와 함께 갱신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아람이 짓궂어. 그렇게 아람이가 행동하면 혜성이는 살짝 당황하면서 머리를 빨리 굴릴 것 같아. 그러다가 괜히 뺨 어루만져주다가 살며시 얼굴을 치울 것 같아. 그러다가 괜히 찔려서 뭐. 뭐. 뽀뽀하려고 한 거 아니었거든?! 이렇게 괜히 툴툴거리지 않을까 싶네.
물론 말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로 그럴지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아람이 짓궂게 행동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자신의 모습만이 그려졌기 때문에. 설사 마음을 강하게 먹고 안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아람이 조금만 애교를 부리거나 울먹거리는 시늉만 해도 백기를 드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괜히 시선을 회피하면서 괜히 중얼거리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눈가를 또 다시 사르륵. 사르륵. 부드럽게 쓸어내려주면서 아람의 목소리가 살짝 느긋해지는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혜성은 살며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자신은 좋다는 그 말에 괜히 혜성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정말 어떻게 말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신만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 혜성은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괜히 선전포고하듯이 이야기했다.
"...진짜로 확 해버릴까보다. 왕자님 모드."
괜히 툴툴거리면서 혜성은 다시 한 번 아람의 눈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이어 혜성은 잠시 입을 다물다가 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중얼거리듯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너는 아람 공주님 할 거야?"
/ㅋㅋㅋㅋㅋ 좀 아침에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있다보니. 지금도 볼일을 보고 나왔고.. 아무튼 다녀오면서 갱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