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낙원. 살아 숨쉬는 낙원. 꿈만 같아 안온한 낙원...... 하여 아름다운 낙원." "그리 이르더군요. 결계로 둘러싸여 갇혀졌기에 아름다운 낙원이자 이상향이렵니다. 대결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만 하죠. 그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몽접 무당의 숙명." "이변은 환상향을 뒤흔듭니다. 결계를 위협하니 내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죠.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도 만무하니 어떤 면에서 놓고 보아도 무당이 가만히 지켜보길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지." "알아듣고 있습니까?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당신...... 나의 입장은 이해하죠? 아니, 머리채를 놓으라뇨. 혼나는 요괴가 어찌 입 밖으로 불만을 뱉습니까... 그러니까- 아이, 발버둥도. 자아 자, 조용. 쉬이... 옳지... 착하다. 아무래도 지금껏 귓등으로 들어오신 눈치니 친절히 처음부터 다시 말씀을 드려보자면..."
텐키는 선선히 대답했다. 옷소매에서 빠져나온 희고 가느다란 손끝이 이상한 요괴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맑은 눈 그 안쪽에는, 이미 식어버린 열기가 흐리게 남아있었다. 그건 땅에 내려온 구름.. 그러니까 안개처럼 아른거려, 아득했다.
"기다리는 게 허락되지 않는 입장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건 무리야."
청아.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날씨을 아는 우산이 말로 뱉지 않은 채 눈빛으로 물었다.
갔나? 진짜 갔나? 새노라는 거북처럼 고개를 길게 빼고 돌아가는 손님을 보았습니다. 손님이 멀리 멀리 떠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되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졍말 뭐 져런 요괴가 다 있사와요?? 졍신이 나가셨사와요?!?!"
감히 이 새노라님의 공방에서! 새노라님께 어찌 이런 무례와 망발을! 기껏 옷을 다 만들어놓고 황토물에 확 담가서 줄까보다! 오디 그릇을 들고 으적으적 씹으며, 연자방아 돌리는 나귀마냥 방 안을 뱅뱅 돌던 새노라는 책상 위의 주문서를 보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습니다. 계약은 계약이고 계약은 성사되었으니 새노라는 옷을 지어야 하는게 계약의 규칙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 이름값에 걸맞는 최고의 옷을!
"그래! 몽접 무당님도 놀라서 넘어갈만한 그런 옷을 말이와요!"
당신 코를 이 목각인형 얼굴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주겠사와요. 새노라는 다짐했습니다. 씩씩거리면서 걸치고 있던 손님맞이용 비싼 옷들을 던지...지는 않고. 걸이에 잘 걸어놓은 후 재료를 가지러 창고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968 '뭔 소리야?'라고 한 것까지는 봤지만~ 원채 이곳에 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때의 나는 '아하, 역시 미친소리로 들리는게 당연하잖냐~ 나 자식.'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제길! 칼도 넣지 않는 걸로 봐서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그보다, 질문이 두개인데요. 동물귀 선생.
"근거지라니. 우리 집인게 당연하잖아? …랄지, 생판 처음보는 남의 주소를 묻다니 대담한 녀석이구나, 너; 💧"
지금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방금 상대의 말은 조금 이상한 것이었다. 근거지를 묻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산]도 아니고, [구역]도 아닌… '공간'이라니. 그러나 그런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나는 순순히 동물귀 검객의 말을 받아주었다.
"뭐, 물음에 답해주자면 완전 No야. 애초에 난 여기가 산 속이라는 것도 네가 말 해주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구."
"흐음,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복장을 봐서는 너, 무술인 같은데. 주변에 무슨 소림사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응, 확실히 요즘 류파는 계보가 끊기기 직전이라 엔터테인먼트로도 자주 노선을 튼다는 모양이고~ ……아니 가만, 그래도 코스프레까지 한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아, 맞아. 이게 아니지! 아하하. 저기, 미안한데 괜찮으면 일단 전화 좀 쓸 수 있을까나~"
하여튼간에 하는 말이나 태도로 보아서 이곳은 사유지같은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같은 외부인이 계속 있어봤자 저쪽에게도 실례일거고, 빨리 나가주는게 좋겠다 싶어서 전화를 빌릴 생각으로 나도 마구 질문 폭격을 해버렸다. 이걸로 쌤쌤이야!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편지를 날려주었는데 말이지. 간격을 생각하면 이 맘때쯤 편지가 날아왔을테다. 허나 최근엔 바쁜 모양인지 소식도 하나 없이 조용하다. 내쪽에서 먼저 알고 싶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육포도 소분이 끝났고, 오늘 하기로 했던 일들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
" 나도 어쩔 수 없나보구만. "
원래는 느긋하게 낮잠이나 자려고 했으나 몸이 근질근질한게 잠이 쉽사리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한동안 나가지 않았던 음림을 나갈때가 되었나, 싶어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선 다시 음림의 출구로 발을 내딛었다. 고민 해봤자 답은 정해져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것 같네요? 보여지는 바와 같이. 다만, 종종 눈만을 믿어서는 오해가 있기도 하니까요"
아리스는 혼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며 짧게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보시다싶이 그 존재는 영(靈)이라고 생각되어 왔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처럼 보이도록 속이는 다른 무언가는 아니라는 뜻 정도는 됩니다. 즉, 퍼즐 조각을 하나 쯤은 얻어낸 셈이죠. 아무튼 이 존재는 이승의 존재가 아니며 본래라면 저승, 명계冥界, 황천黃泉... 등등. 단어야 어떻든 간에 말하자면 '사후 세계'라는 죽은 자 들이 겪게 된다고 하는 저 너머의 다른 계에 속하는 존재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서는 흔히, 이러한 존재들이 이승에 남아있는 것은 무언가의 이유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종종 당사자조차 잊어버린 무언가를 위해서.
"어머나, 그토록 싫어하는 자에게 자신을 비롯하여 이름까지 친히 알려주실 정도이니, 그 자비로움이 실로 깊으시네요"
아리스는 혼령이 스스로의 이름을 말하기를, 최여나. 하여 말해주는 것에 아리스는 한 손을 그녀 스스로의 뺨에 슬그머니 대고는 이어 살며시 눈웃음을 띄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닌 것만 같아도 이렇게 조금씩 퍼즐의 조각이 아리스의 손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언젠가 그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되겠죠. 비록, 그 수단은 지금으로서는 더는 제대로 할 수 없을 지라도
>>972 텐키 "기다리기에 살아가요. 무엇도 기다리지 아니한다 함은.. 가히 덧없으되 허무한 것일 터예요. 또한 오만하기도 하죠. 결국 생명을 지니며 굴레와 순환에 머무르는 이상 '정해진 운명'은 피해가지 못한 채 기다리도록 정해져 있죠. 제아무리 요괴라 할지언정 결국 같아요."
선문답인지요. 거울처럼 그대를 비추는 못 앞에서 참선하도록 합시다. 진리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 청이 텐키의 눈동자 너머를 들여다보는 듯이, 고개를 돌려 마주봅니다.
"전 기다렸고...... 다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머무를 수만은 없죠. 그러니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운무 속에 있어 무엇이라 섣불리 이를 수는 없으나, 틀림없이 연꽃과 석산과도 같이 선명히 피어줄 것이라 믿고 있어요."
>>973 새노라 작업에 착수합니다!
새노라는 피륙을 짜며 옷을 짓는 데 있어 진귀한 실력을 지닌 자입니다! 언제든지 원하는 때 완성할 수 있되 걸리는 시간은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할 경우 소요한 시간 또는 기간을 명시합니다. 도중에 멈춰 다른 자유 행동을 취하는 선택도 가능함을 알립니다.
>>974 시나키 질문 폭격, 아아! 당혹한 듯 잠깐 눈을 연신 깜박인 동물귀 남성은 이윽고 심호흡하며 크게 손사래를 치더랍니다. 조용! 조용!!
"알겠다. 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하나도 모르겠군."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전화라니 도대체 뭐랍니까? 동물귀는 표정을 가다듬더니 엄근진하게 말했습니다.
"내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여겨지니 네놈은 상부로 넘겨야겠다."
앞장서라. 그렇게 말하며 동물귀가 한쪽으로 턱짓했습니다. 이게... 맞아...? 일이 쓸데없이 더 커지는 건 아니겠죠? 설...마...??
>>976 아키히요 일상을 고수할 수도 있었지만, 아키히요는 움직이기로 하였습니다. 움직임으로써 일상을 고수하며 의외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들을 포기하게 되나, 일상뿐에 안주하여서는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는 처지에 놓이기도 할 테지요. 당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수없는 선택을 당신의 가는 길에 밟게 될 것이니까요.
단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자유로움을 명심해주세요.
음림의 출구로 향하고, 나오자, 비교적 밝은 풍경이 아키히요를 덮쳐옵니다. 음림만이 서쪽의 구역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색색가지 경관이 아침 빛을 받아 환히 보였죠.
어디로든 향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977 서준 향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마을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생략합니까?
>>978 아리스 "마음에 안 들어..."
뭐 이리 불만이 많은 혼령인지. 자비로움이 실로 깊으시네요, 하자 웅얼웅얼 꿍얼거린 여나는 이내 팩 하고 채근했습니다.
"질문 더 안 해? 없으면 당장 가고.."
하지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궁금한 점이 많죠, 걸리는 점도 있고 말이지요. 퍼즐을 맞춰가고 있거늘 중도에 내팽개치는 것도 결코 피차에 대한 예의가 아닌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이 혼령은 무척이나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어뵈고 말이지요. 그러니 그리 말한다고 덜컥 떠나가기는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리스?
>>979 생원 눈앞에 주어진 세계를 이해합시다. 그것이 참된 과학자의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에.
"서 생 자 원 자가 되는지요? 좋은 이름이어요. 소녀의 이름은 샤오유에라 하여요. 현 상황에 대해 물으시자면.. 글쎄요, 당도하신 이곳은 환상향이라는 이름의 낙원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까요?"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의 뒷면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오겠죠.
"잊혀지고 부정된 것은 모조리 거두어 모으는 신기한 땅이랍니다. 소녀 줄곧 여기 있었거늘 어느 순간 나타나시어 무엇도 모른다 하신즉 그대 또한 환상향의 힘에 끌려온 것이 분명하지요."
환상향이라는 땅. 샤오유에가 노래하듯, 어쩐지 즐거운 듯이 설명을 이어갑니다.
"신, 요괴, 요정, 유령... 수없는 환상들.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는 소수의 인간. 자멸하는 바깥 세계로부터 인요가 안전할 수 있도록 격리되어진 낙원이 바로 이곳이요, 평온한 이상향일지니 그대는 마음 놓고 노니시면 될 터입니다. 요괴 쥐이지 않습니까. 설마하건대 지금까지도 인지하지 못하심인지요?"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것이 요괴라는 존재. 정신으로서 유지되거늘 자기 자신을 잊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인간을 향한 공포의 존재라는 정체성을 잊는 요괴는 대부분의 경우 자멸합니다.
넓은 상에 원단이 쏟아진 물처럼 펴집니다. 새노라의 손에는 가위도 자도 없습니다. 어찌 새노라님의 천에 썩둑썩둑 우악스러운 가위를 들이밀고 눈금이 성긴 자를 가져다댄다는 말입니까? 새노라는 눈을 감고 원단 위에 손을 올립니다. 씨실과 날실 사이의 간격은 이미 손에 익은 감각입니다. 새노라가 손가락으로 직선을 그리자 섬유 가닥가닥이 설탕처럼 풀리면서 원단이 갈라집니다. 그 단면은 꼭 찢어진 한지처럼 북슬북슬합니다. 당장은 지저분해보여도 저 면을 통해서 천과 천이 다시 결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노라의 옷에는 바느질 자국이 없습니다. 곧 천의무봉입니다.
태서 성직자복이라지만 곧이곧대로 수단을 지어달라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런 느낌을 원한다는 것이겠죠? 롱코트에 어깨망토 형식이 좋겠습니다. 베레모도 잊으면 안 됩니다. 담백한 느낌을 위해 복잡한 무늬를 배제하고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해야 합니다. 기하학적 추상, 수직과 수평만을 사용하여... 그 이상 더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닌, 뺄 것이 없는 상태로. 최소한으로. 차갑게. 무정하게. 새노라의 손끝에서 백황청의 섬유들이 엄숙하게 드리워집니다.
"완벽하와요!"
작은 농을 여니 안에 갇혀있던 향로 향이 왈칵 쏟아집니다. 옷감 안까지 고루 스몄을테니 은은한 향이 배었겠지요. 이것은 한낱 옷이 아닌 한 폭의 예술품이라고, 새노라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싱글벙글하면서 옷을 칼처럼 개어 자개함에 넣었습니다. 베레모는 특히 곡선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흡혈귀 손님은 목각인형에 옷을 입히랬지만 그대로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가다가 먼지 뒤집어쓸 일이 있나요?
"자! 이제 당신 주인에게 안내하시와요! 뒷말 없게 직접 건네주고 사후쳐리까지 확실히 할 터이니. 아아! 새노라님의 사려깊음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