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낙원. 살아 숨쉬는 낙원. 꿈만 같아 안온한 낙원...... 하여 아름다운 낙원." "그리 이르더군요. 결계로 둘러싸여 갇혀졌기에 아름다운 낙원이자 이상향이렵니다. 대결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만 하죠. 그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몽접 무당의 숙명." "이변은 환상향을 뒤흔듭니다. 결계를 위협하니 내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죠.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도 만무하니 어떤 면에서 놓고 보아도 무당이 가만히 지켜보길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지." "알아듣고 있습니까?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당신...... 나의 입장은 이해하죠? 아니, 머리채를 놓으라뇨. 혼나는 요괴가 어찌 입 밖으로 불만을 뱉습니까... 그러니까- 아이, 발버둥도. 자아 자, 조용. 쉬이... 옳지... 착하다. 아무래도 지금껏 귓등으로 들어오신 눈치니 친절히 처음부터 다시 말씀을 드려보자면..."
>>949 텐키는 아주 무심코, 손을 움직이고 말았다 느릿하게. 누구든 피할 수 있을만한 속도로 뻗어진 손은 자신을 청이라 소개한 청년의 머리 위로 향했다. 그의 잿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아주 장하다는 듯 쓰다듬기 위하여.
"고마워. 네가 도와준다고 하니 정말로 기뻐."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던가,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텐키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로 그에게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크게 와닿기는 힘들다. 진심을 다한 감사와 기쁨의 표시가 더 효과적이라고, 텐키는 알고 있었다. 그런 태도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었기에.
"청이구나. 눈이랑 참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해. 나는,"
하늘 같은 푸름에, 구름 같은 흰색을 지닌 청년이 부드러운 봄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며 웃었다.
"뭐ㅡ 싫은 것은 싫다고 당당히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필요한 법이죠. 어느 의미로는 소통 자체는 성립한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요. 제가 그토록 싫다면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라기만 하지 않고 이곳을 스스로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것은 내키지 않으신가요?"
아리스가 가칭으로서 부르기를, 불꽃의 혼령. 이 존재는 지금 그녀의 언행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그런 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 진실의 여부는 지금의 아리스로서는 모를 일이지만 그저 모르고 있을 뿐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것은 가까이 있을 지도 모르죠.
"하하, 그리 섬뜩할 정도인가요? 제 어떠한 것이 그리도 싫으신 거려나요"
아리스는 혼령의 말에 불쾌해 하거나 기죽기는 커녕 오히려 작게 한 번 웃고는 그렇게 마치 되묻듯이 말했습니다. 이 혼령에게서 어쩐지 그리 말하기를 뭔가 다르다는 듯이 그 언행이 고르지 못한 것이 엿보이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 것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아니고 정확히 셋을 해아려라, 다섯은 빼버려라. 대부분의 소원은 세 가지를 들어주곤 하죠. 따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아리스는 혼령의 말에 장난스러운 태도로 마치 무언가 의아하여 중얼거리듯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굳이 5가 끼어 들었냐면 그것이 바로 농담이기 때문였습니다. 농담으로서 보일지는 재쳐두고요
"아무럼, 그대의 그 큰 아량에 감사해야겠네요. "
아리스는 그런 혼령의 말에 소리를 내지 않고 가볍게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947 새노라 "지상 최고의 직녀의 손에서 지어지는 옷이니 못해도 당일 볼 수 있을 줄로 생각했더니, 이것은 내 계산 실수였던 모양이네."
뭐, 아무래도 좋아. 여전히 거만하게.. 뭘 바라는 건지 은근히 속 긁는 태도로 혼잣말인 양 읊조린 소녀는 손가락을 휘릭 휘저으며 "완성되거든 이 아이에게 입히면 돼. 저 스스로 모든 것을 진행할 거야." 라며 두둥실,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목각 인형이 뚜벅뚜벅 걸어가 새노라 앞에 섭니다!
"마네킹 삼아도 좋아. 완벽한 그 꼬마의 모조품이니까."
>>951 서준 관찰하듯 소녀가 서준을 빤히 바라봅니다.
"단호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살포시 살포시 춤추는구나. 응응, 단호하기보다 부들부들하네. 단호하기보다....... 어 단호박 먹고 싶다."
...???
"나 단호박 먹여주면 안 돼?"
친구잖아.
라고 주장하지만 물론 친구는 아닙니다.
>>952 텐키 손이 올라갑니다. 결이 그닥 좋은 머리는 아닙니다. 잿빛이라 그런지 그저 보았을 때는 티가 나지 않는데, 직접 만져보면 묘하게 까칠까칠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텐키는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손이 내려갔을 적엔 분위기도 한층 부드럽게 풀린 것 같았습니다. 청이 우물쭈물하며 무심코 텐키의 손이 지나간 흔적에 제 손을 올립니다. 때아닌 봄바람이 산보합니다.
"..네. 그럼.. 텐키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관광객.. 분들에게 소개해줄 만한 완벽한 코스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 좋아하는 곳들은 소개해드릴 수 있어요."
먼저 이쪽.. 하며 청이 안내하듯 먼저 걸음을 뗍니다.
"들르신 적이 이미 있다고 하셨죠? 저희 절은 가을 풍경이 인기가 좋은 곳이지만 겨울도 즐길거리는 많아요. 연못도 얼어붙어 예쁘거든요... 네, 바로 저쪽... 네에, 여기."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연못입니다. 석탑 등으로 단정하게 꾸며졌으며 정자가 근처에 놓였군요. 녹지 않은 눈과 얼어붙은 연밥이 보입니다.
"물론 연꽃이 피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 개인적으로는 기다리는 시간도... 못지 않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온통 흰 것도 예쁘고. 경내 석산도 다른 지역의 사시사철 피어있는 석산에 비해면 기다려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겠나요? 형상만 따지기에는 그러다가 지나치는 이 수많은 것들이 자못 아쉬워요."
이런 조용한 숲에서 이벤트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애초에 오늘 같은 일이 있는게 더 드문 일이기도 하다. 물론 담력시험 장소로 꽤나 소문이 났는지 이따금 저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길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 그게 인간이면 가끔은 식사도 하는 것이고 요괴라면 친절하게도 숲 바깥으로 안내해주는 것이지.
" 그래도 심심하긴 하구만. "
그 날 이후로 누군가를 마주치기 싫어서 음림으로 들어왔고 그런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몸이 좀쑤시는 느낌이다. 애초에 어릴적부터 그렇게나 활동적이었으니 그럴 수 밖엔 없지만. 오히려 지금까지 이렇게 있던게 나이를 먹어서 생긴 참을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별 수 있겠는가. 아까 가져온 육포들을 자루에 넣기 위해서 오두막 뒷편에 있던 자루를 하나 끌고 온다.
>>959 부드럽지 않은, 야생적이 느낌의 거친 머릿결이지만, 그렇기에 텐키는 마음에 들었다. 요즘이라면 모를까, 먼 옛날에는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물론 청의 머릿결은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그리고 텐키 자신은 그런 과거를 잘은 모르지만. "편한대로 하렴." 하고, 호칭과 안내 경로에 대한 대답을 했다. 그는 은근히 능력을 운용하며 나긋한 온기를 품은 봄바람을 몰고는 앞서 걷는 청의 뒤를 따랐다.
아이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 남은 눈과, 얼어붙은 연못이 있었다. 혹여 그 풍광에 방해될까 봄바람을 흩은 그는 느긋하게 고개를 돌리며 석탐과 정자, 봄을 기다리는 연밥을 눈에 담았다. 청이는 어디서 핀트가 잡힌 것인지 갑작스레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그게 괜히 대견하여 텐키는 눈을 곱게 접었다.
'기다림'을 사랑하는 아이로구나. 아마.
"당연하지 않을수록 특별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지?"
모를 일은 아니다. 사람은 흔히 잃고 나서야 아는 것이 있다고 한다. 곁에 있던 사람, 일상과 같은 물건, 평범한 하루의 시간. 늘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대수로운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결실이란 거저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지. 오랜 기다림 끝에 맺은 열매가 더 달콤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을 하며 텐키는.. 뭐라고 할지. 무척 대견하다는 듯한 시선을 청이에게 보내고 있었다.
>>956 >>958 아리스 "스스로 벗어나는 건......" 에서 더 말을 할 것 같더니 애매하게 흐리면서 얼버무린 정체불명의- 그래요, 아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꽃의 혼령'은 아리스의 태연자약하며 여유로운 태도에 학을 떼듯이 "진짜 싫어." 하고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하더랍니다.
셋. 더도 덜도 말고 딱 셋. 원숭이 손은 다섯까지 헤아리거늘 하필 셋인 이유가 있을지요.
"그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자, 첫 번째 질문은 끝났어. 네게 남은 권리는 이제 두 개뿐이야........"
아니 이 혼령이?
>>957 생원 "글쎄요, 저의 정체. 그대가 느끼기에는 어떠하죠? 저는 무엇으로 보일까요? 만일 반대로 여쭈신다면, 당신은 제 눈에 순수하기 그지없는 순백의 요괴 쥐처럼 보입지요..."
아리스는 그녀의 질문에 굳이 혼령이 은근히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듯한 행동에 슬그머니 웃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존재는 아리스의 존재가 언급과는 달리 아주 싫은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아니면 단순히 무언가 행하고 싶은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가요, 단순 명쾌한 답이로군요. 결국, 들어주겠다는 것은 당신의 제의 이였으니까요"
아리스는 혼령의 대답에 긍정하듯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본인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니 딱히 무어라 지적할 필요성은 크게 없어 보입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들어주겠다는 혼령 측에서 먼저 제안한 사항이므로 그 제안 사항도 마음대로 정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그럼, 고전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을 법한 방식으로 가보죠. 당신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이름이나 정체성, 그리고 특징. 아무래도 좋죠?"
아리스는 혼령이 말한 그 남은 '두 가지 사항'에 그리 큰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방 금전의 태도에서 엿보이기를 이 혼령은 웬만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왠지 들기에 안다면 호기심을 충족하니 괜찮고, 이대로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한 방식으로 질문을 건넸던 것입니다. 환상향에서는 온갖 것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올바르게' 안다는 것이 더 드물 겁니다. 지금의 아리스에게는 말이죠. 그리고 가끔씩은 모르는 것이 더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960 시나키 트럭? 뭔 소리야? 입안으로 낮게 중얼거린 것 같은데 이게 맞을까요. 시나키가 제대로 본 것이 맞을까요......?! 동물귀는 시나키의 말을 듣고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듯보였습니다만, 오랜 고민이 되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목에서 검을 거뒀더랍니다. 허튼 짓하면 즉시 목을 베겠다는 눈치로 노려봤지만요!
"한 가지 묻지."
웃음기 없습니다... 검이 없어도 삭막합니다... 아니 검이 없다고 해도 저 검 납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네 근거지는 어디냐? 이곳이 어떤 이름을 가진 공간인지는 아나?"
아니 선생님 한 가지라면서요!
>>962 서준 "웅?"
턱을 괸 채로 소녀가 천진한 양 되묻습니다.
"난 단호박이 먹고 싶은데?"
사주기 싫어? 뭐 싫음 말아~ 하며 빙긋이 웃는데, 여전히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아니면 아예 대단한 목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높은 확률로 요괴 같으니 이 소녀를 요괴로 추정해보자는 겁니다.
놀랄 것도 없죠.
요괴란 통상 이런 족속입니다.
>>963 아키히요 환상향이라고 해도 일상은 존재하는 법입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낙원이니 뭐 더 말해봐야 제 입만 아프겠죠. 육포를 소분합니다.
... ...
과연 사람 찾아오지 않는 음침한 곳이라서 누군가 틈날 때마다 대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든 만남은 거의 우연으로 이루어졌죠. 이따금 감시인지 무엇인지, 대놓고 찾아온 일부 텐구나 '잊을 것 같으면 새가 쥐어 가져다주는 당신도 잘 아는 편지'를 제하면 말이지요.
아키히요는 무엇을 바랍니까? 이렇듯 잔잔하며 고요한 일상의 연속을 그저 유지하면 족한가요, 아니면 무언가 변화를 희망합니까?
>>964 텐키 "앗...."
열심히 말을 쏟아내던 청은 텐키의 반응을 보며 뒤늦어 살짝 수줍어합니다. 손끝을 톡 마주대며 우물우물 무언가 말할 듯 말 듯 하였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응. 이조차 아집일 수 있지만... 몹시나- 괄시해서는 안 되는- 중한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치 않아서... 물론 기다림뿐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 그러니까.. 중한 것 중에 하나가 기다림. 이렇게 되지 않을지요."
텐키는 선선히 대답했다. 옷소매에서 빠져나온 희고 가느다란 손끝이 이상한 요괴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맑은 눈 그 안쪽에는, 이미 식어버린 열기가 흐리게 남아있었다. 그건 땅에 내려온 구름.. 그러니까 안개처럼 아른거려, 아득했다.
"기다리는 게 허락되지 않는 입장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건 무리야."
청아.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날씨을 아는 우산이 말로 뱉지 않은 채 눈빛으로 물었다.
갔나? 진짜 갔나? 새노라는 거북처럼 고개를 길게 빼고 돌아가는 손님을 보았습니다. 손님이 멀리 멀리 떠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되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졍말 뭐 져런 요괴가 다 있사와요?? 졍신이 나가셨사와요?!?!"
감히 이 새노라님의 공방에서! 새노라님께 어찌 이런 무례와 망발을! 기껏 옷을 다 만들어놓고 황토물에 확 담가서 줄까보다! 오디 그릇을 들고 으적으적 씹으며, 연자방아 돌리는 나귀마냥 방 안을 뱅뱅 돌던 새노라는 책상 위의 주문서를 보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습니다. 계약은 계약이고 계약은 성사되었으니 새노라는 옷을 지어야 하는게 계약의 규칙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 이름값에 걸맞는 최고의 옷을!
"그래! 몽접 무당님도 놀라서 넘어갈만한 그런 옷을 말이와요!"
당신 코를 이 목각인형 얼굴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주겠사와요. 새노라는 다짐했습니다. 씩씩거리면서 걸치고 있던 손님맞이용 비싼 옷들을 던지...지는 않고. 걸이에 잘 걸어놓은 후 재료를 가지러 창고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968 '뭔 소리야?'라고 한 것까지는 봤지만~ 원채 이곳에 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때의 나는 '아하, 역시 미친소리로 들리는게 당연하잖냐~ 나 자식.'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제길! 칼도 넣지 않는 걸로 봐서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그보다, 질문이 두개인데요. 동물귀 선생.
"근거지라니. 우리 집인게 당연하잖아? …랄지, 생판 처음보는 남의 주소를 묻다니 대담한 녀석이구나, 너; 💧"
지금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방금 상대의 말은 조금 이상한 것이었다. 근거지를 묻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산]도 아니고, [구역]도 아닌… '공간'이라니. 그러나 그런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나는 순순히 동물귀 검객의 말을 받아주었다.
"뭐, 물음에 답해주자면 완전 No야. 애초에 난 여기가 산 속이라는 것도 네가 말 해주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구."
"흐음,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복장을 봐서는 너, 무술인 같은데. 주변에 무슨 소림사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응, 확실히 요즘 류파는 계보가 끊기기 직전이라 엔터테인먼트로도 자주 노선을 튼다는 모양이고~ ……아니 가만, 그래도 코스프레까지 한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아, 맞아. 이게 아니지! 아하하. 저기, 미안한데 괜찮으면 일단 전화 좀 쓸 수 있을까나~"
하여튼간에 하는 말이나 태도로 보아서 이곳은 사유지같은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같은 외부인이 계속 있어봤자 저쪽에게도 실례일거고, 빨리 나가주는게 좋겠다 싶어서 전화를 빌릴 생각으로 나도 마구 질문 폭격을 해버렸다. 이걸로 쌤쌤이야!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편지를 날려주었는데 말이지. 간격을 생각하면 이 맘때쯤 편지가 날아왔을테다. 허나 최근엔 바쁜 모양인지 소식도 하나 없이 조용하다. 내쪽에서 먼저 알고 싶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육포도 소분이 끝났고, 오늘 하기로 했던 일들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
" 나도 어쩔 수 없나보구만. "
원래는 느긋하게 낮잠이나 자려고 했으나 몸이 근질근질한게 잠이 쉽사리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한동안 나가지 않았던 음림을 나갈때가 되었나, 싶어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선 다시 음림의 출구로 발을 내딛었다. 고민 해봤자 답은 정해져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것 같네요? 보여지는 바와 같이. 다만, 종종 눈만을 믿어서는 오해가 있기도 하니까요"
아리스는 혼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며 짧게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보시다싶이 그 존재는 영(靈)이라고 생각되어 왔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처럼 보이도록 속이는 다른 무언가는 아니라는 뜻 정도는 됩니다. 즉, 퍼즐 조각을 하나 쯤은 얻어낸 셈이죠. 아무튼 이 존재는 이승의 존재가 아니며 본래라면 저승, 명계冥界, 황천黃泉... 등등. 단어야 어떻든 간에 말하자면 '사후 세계'라는 죽은 자 들이 겪게 된다고 하는 저 너머의 다른 계에 속하는 존재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서는 흔히, 이러한 존재들이 이승에 남아있는 것은 무언가의 이유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종종 당사자조차 잊어버린 무언가를 위해서.
"어머나, 그토록 싫어하는 자에게 자신을 비롯하여 이름까지 친히 알려주실 정도이니, 그 자비로움이 실로 깊으시네요"
아리스는 혼령이 스스로의 이름을 말하기를, 최여나. 하여 말해주는 것에 아리스는 한 손을 그녀 스스로의 뺨에 슬그머니 대고는 이어 살며시 눈웃음을 띄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닌 것만 같아도 이렇게 조금씩 퍼즐의 조각이 아리스의 손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언젠가 그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되겠죠. 비록, 그 수단은 지금으로서는 더는 제대로 할 수 없을 지라도
>>972 텐키 "기다리기에 살아가요. 무엇도 기다리지 아니한다 함은.. 가히 덧없으되 허무한 것일 터예요. 또한 오만하기도 하죠. 결국 생명을 지니며 굴레와 순환에 머무르는 이상 '정해진 운명'은 피해가지 못한 채 기다리도록 정해져 있죠. 제아무리 요괴라 할지언정 결국 같아요."
선문답인지요. 거울처럼 그대를 비추는 못 앞에서 참선하도록 합시다. 진리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 청이 텐키의 눈동자 너머를 들여다보는 듯이, 고개를 돌려 마주봅니다.
"전 기다렸고...... 다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머무를 수만은 없죠. 그러니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운무 속에 있어 무엇이라 섣불리 이를 수는 없으나, 틀림없이 연꽃과 석산과도 같이 선명히 피어줄 것이라 믿고 있어요."
>>973 새노라 작업에 착수합니다!
새노라는 피륙을 짜며 옷을 짓는 데 있어 진귀한 실력을 지닌 자입니다! 언제든지 원하는 때 완성할 수 있되 걸리는 시간은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할 경우 소요한 시간 또는 기간을 명시합니다. 도중에 멈춰 다른 자유 행동을 취하는 선택도 가능함을 알립니다.
>>974 시나키 질문 폭격, 아아! 당혹한 듯 잠깐 눈을 연신 깜박인 동물귀 남성은 이윽고 심호흡하며 크게 손사래를 치더랍니다. 조용! 조용!!
"알겠다. 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하나도 모르겠군."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전화라니 도대체 뭐랍니까? 동물귀는 표정을 가다듬더니 엄근진하게 말했습니다.
"내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여겨지니 네놈은 상부로 넘겨야겠다."
앞장서라. 그렇게 말하며 동물귀가 한쪽으로 턱짓했습니다. 이게... 맞아...? 일이 쓸데없이 더 커지는 건 아니겠죠? 설...마...??
>>976 아키히요 일상을 고수할 수도 있었지만, 아키히요는 움직이기로 하였습니다. 움직임으로써 일상을 고수하며 의외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들을 포기하게 되나, 일상뿐에 안주하여서는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는 처지에 놓이기도 할 테지요. 당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수없는 선택을 당신의 가는 길에 밟게 될 것이니까요.
단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자유로움을 명심해주세요.
음림의 출구로 향하고, 나오자, 비교적 밝은 풍경이 아키히요를 덮쳐옵니다. 음림만이 서쪽의 구역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색색가지 경관이 아침 빛을 받아 환히 보였죠.
어디로든 향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977 서준 향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마을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생략합니까?
>>978 아리스 "마음에 안 들어..."
뭐 이리 불만이 많은 혼령인지. 자비로움이 실로 깊으시네요, 하자 웅얼웅얼 꿍얼거린 여나는 이내 팩 하고 채근했습니다.
"질문 더 안 해? 없으면 당장 가고.."
하지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궁금한 점이 많죠, 걸리는 점도 있고 말이지요. 퍼즐을 맞춰가고 있거늘 중도에 내팽개치는 것도 결코 피차에 대한 예의가 아닌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이 혼령은 무척이나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어뵈고 말이지요. 그러니 그리 말한다고 덜컥 떠나가기는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리스?
>>979 생원 눈앞에 주어진 세계를 이해합시다. 그것이 참된 과학자의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에.
"서 생 자 원 자가 되는지요? 좋은 이름이어요. 소녀의 이름은 샤오유에라 하여요. 현 상황에 대해 물으시자면.. 글쎄요, 당도하신 이곳은 환상향이라는 이름의 낙원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까요?"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의 뒷면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오겠죠.
"잊혀지고 부정된 것은 모조리 거두어 모으는 신기한 땅이랍니다. 소녀 줄곧 여기 있었거늘 어느 순간 나타나시어 무엇도 모른다 하신즉 그대 또한 환상향의 힘에 끌려온 것이 분명하지요."
환상향이라는 땅. 샤오유에가 노래하듯, 어쩐지 즐거운 듯이 설명을 이어갑니다.
"신, 요괴, 요정, 유령... 수없는 환상들.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는 소수의 인간. 자멸하는 바깥 세계로부터 인요가 안전할 수 있도록 격리되어진 낙원이 바로 이곳이요, 평온한 이상향일지니 그대는 마음 놓고 노니시면 될 터입니다. 요괴 쥐이지 않습니까. 설마하건대 지금까지도 인지하지 못하심인지요?"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것이 요괴라는 존재. 정신으로서 유지되거늘 자기 자신을 잊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인간을 향한 공포의 존재라는 정체성을 잊는 요괴는 대부분의 경우 자멸합니다.
넓은 상에 원단이 쏟아진 물처럼 펴집니다. 새노라의 손에는 가위도 자도 없습니다. 어찌 새노라님의 천에 썩둑썩둑 우악스러운 가위를 들이밀고 눈금이 성긴 자를 가져다댄다는 말입니까? 새노라는 눈을 감고 원단 위에 손을 올립니다. 씨실과 날실 사이의 간격은 이미 손에 익은 감각입니다. 새노라가 손가락으로 직선을 그리자 섬유 가닥가닥이 설탕처럼 풀리면서 원단이 갈라집니다. 그 단면은 꼭 찢어진 한지처럼 북슬북슬합니다. 당장은 지저분해보여도 저 면을 통해서 천과 천이 다시 결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노라의 옷에는 바느질 자국이 없습니다. 곧 천의무봉입니다.
태서 성직자복이라지만 곧이곧대로 수단을 지어달라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런 느낌을 원한다는 것이겠죠? 롱코트에 어깨망토 형식이 좋겠습니다. 베레모도 잊으면 안 됩니다. 담백한 느낌을 위해 복잡한 무늬를 배제하고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해야 합니다. 기하학적 추상, 수직과 수평만을 사용하여... 그 이상 더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닌, 뺄 것이 없는 상태로. 최소한으로. 차갑게. 무정하게. 새노라의 손끝에서 백황청의 섬유들이 엄숙하게 드리워집니다.
"완벽하와요!"
작은 농을 여니 안에 갇혀있던 향로 향이 왈칵 쏟아집니다. 옷감 안까지 고루 스몄을테니 은은한 향이 배었겠지요. 이것은 한낱 옷이 아닌 한 폭의 예술품이라고, 새노라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싱글벙글하면서 옷을 칼처럼 개어 자개함에 넣었습니다. 베레모는 특히 곡선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흡혈귀 손님은 목각인형에 옷을 입히랬지만 그대로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가다가 먼지 뒤집어쓸 일이 있나요?
"자! 이제 당신 주인에게 안내하시와요! 뒷말 없게 직접 건네주고 사후쳐리까지 확실히 할 터이니. 아아! 새노라님의 사려깊음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