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갑작스럽게 가택침입을 한 꼴이 됐다.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집이 눈 앞에 펼쳐졌기에 그는 의아한 듯 살짝 고갤 기울이다가 방 안에 있는 여성과 그녀에게 연결된 모니터, 그리고 천장을 살펴보았다. 천장만 흑백인 모습, 뭐길래 저런 걸까 생각하다가도.
노아가 사람을 건드리자 곧바로 그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흑백은 아니게 되었지만 누군지 알아볼수가 없다. 기묘하다면 기묘한 감각이었지만, 다른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은 노아를 인식하지 못하는듯 했다. 마치 리플레이를 보는 기분. 그 사람은 뭔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곧 누군가가 이 곳으로 들어온다. 오른팔을 잃은걸로 보이는 사람과, 그를 부축해온 사람.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아가 건드렸던 사람은 서둘러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무슨 의료시설 같은거였던걸까? 아무튼 여러 수술 장비들과 기계장치들이 꺼내진다. ... 기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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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메이가 다 큰거니 뭐니 하고있는 시점에서 붉은돌이 빛나기 시작한다. 붉은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라는 문구가 보이는듯 하지만. 당연히 실제로 아무런 메세지 같은것도 없고, 인큐베이터를 선택하자 인큐베이터의 색이 돌아온다. 안에는 평범해 보이는 아이가 들어있을 뿐이고, 인큐베이터에는 호스같은게 연결되어 뭔가를 공급중인듯 보였다.
이반이 모니터로 다가가자 모니터의 색이 돌아온다. 거기에는 여성의 심박수라던가 정신상태등을 체크하고 있는것이 보였다. 여성이 차고있는 팔찌와 연동되어서 현재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스캔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로 여성의 건강이나 그런것보단 심리적 요인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머스티어가 컴퓨터를 건드려보자 컴퓨터의 색이 돌아오며 모니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실험, 정확히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름이 떠오른다, 유토피아 계획? 이라고 써있는 이름만 놓고보면 좋은 계획. 대충 훑어보니 이 계획의 핵심은 이 시험관 안의 아이인 모양으로. 이 아이는 완전히 무에서부터 창조한 인공인간 비슷한 존재인 모양이다. 흔히 말하는 호문클루스 그런거라고 생각해도 좋을듯하다.
색이 돌아온 인큐베이터를 보곤 감흥 없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급받는 것이 액체인지, 기체인지 확인 하려고는 했으나 어차피 그게 뭔지 알든 말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크게 연연하진 않았다.
"넌 뭔가 말해줄것 같진 않네요."
잘 자요, 그리 중얼거리며 인큐베이터를 다시금 덮어 주었다. 인큐베이터와 연결된 장치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와, 그것이 무엇을 공급하는지 확인하려다가 멈춰 섰다. 무시할 뻔했던 본능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붉은 돌을 쓰면 뭔가 일이 생길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는 연구원 쪽으로 걸어서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돌을 꺼내들어 연구원의 얼굴 앞에 휘저었다.
이건, 꿈인가? 꿈이라고는 기억의 단편 아닌 악몽 뿐이었는데 고된 임무 때문인지 별 꿈을 다 꾼다 싶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강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문중 하나를 들어가야 겠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자각몽인지 온 몸의 근육이 움직이는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네개의 문 중 3번째 문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별 허무맹랑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것처럼 헛숨을 내뱉었다. 그게 될 세상이었으면 뒷세계가 한 도시 내에서 떡하니 존재할리가 없을텐데도. 몇번 더 내용을 읽은 뒤 장치에서 물러났다. 자세한 전말을 알고있고, 분명 본인들끼리의 얘기를 하느라 정보를 흘릴 존재들은 여기 많았다.
노아가 기계장치를 건드리자 장치의 색이 돌아온다. 그것은 평범한 장치는 아니었고 여러가지의 의수나, 의족등의 부품을 보관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노아는 직접 이것을 써본적은 없으나, 이 안의 의수들이나 의족들에 관해서는 떠오르는바가 있었다. 이것은 벙커의 동료들이 착용하고 있는 의수나 의족, 즉 '수술'을 받은 흔적들과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수술'을 하는곳일까, 노아는 직접 수술을 받아본적이 없었기에 이 광경 자체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 사이 수술은 벌써 끝난거 같았고, 남자는 새로운 오른팔을 달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ㅡ 실제로 이랬다는건 아닌거 같다, 이 공간의 특성같은 느낌 ㅡ 다시 사람이 멈춘다. - 나인은 세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벙커의 아지트가 보인다. 뜻밖의 익숙한 풍경... 은 아닌것이. 이것은 현재의 풍경보다 조금 더 예전으로 보인다. 나인이 아직 정식으로 입단하기 직전? 혹은 직후? 이 시기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 아지트의 문, 그리고 문 근처의 남성이 흑백처리 되어있다. - 세이메이가 확인했을때, 무언가 기체같은게 적지않게 뿜어져 나오는것이 보였다. 건강에 안 좋아보인다.. 아무튼 연구원 앞에서 세이메이가 돌을 휘젓고 있을때쯤, 뒤에서 누군가 세이메이를 툭툭 치는 느낌이 든다. 뒤를 돌아본다면, 움직이기 시작한 연구원과는 별개로 유토가 세이메이를 당기고 있다. 흑백의 저 유토가 아니다, 다른 유토였다.
"뭔가 반응은... 없군."
이것은 움직이기 시작한 연구원의 목소리, 그는 인큐베이터를 돌면서 뭔가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영 좋은 결과는 아닌듯 하다. - 이반은 모니터를 보다가 이번에는 여성을 건드려봤고, 여성의 색이 돌아온다. 붉은 머리에, 음.. 글쎄. 유토가 크면 이런 느낌이 않을까 싶은 모습이다. 다만 인상은 훨씬 순해서, 꽤나 얌전해 보이는 느낌이었고. 그녀는 이반을 인식하지 못한채 평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별게 없어서, 혼자서 밥을 해먹거나 멍을 때리거나 할 뿐이다. 이 공간에는 TV라던가 책이라던가 그런것도 없어보여서 더 그런듯. 그러나 왜일까, 이반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있는데 무언가.. 시선이 느껴진다. - 머스티어는 연구원들을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정착했군, 클론 같은건 쉬운데 역시 원하는 능력과 스펙같은걸 하나하나 조정해서 처음부터 만들려니 어려웠어." "그래도 이걸로 반은 끝났다고 봐야지. 성장까지는 얼마나 걸릴거 같아?" "대략 1주일이면 될거 같은데?"
아마도 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듯한데, 유토피아랑 이 아이의 존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편 연구원들의 말에 맞춰서 아이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 중간에 흑백이긴하나 머스티어에게도 익숙한 유토의 모습이 지나가기도 했다.
뒤를 툭툭 치는 느낌에 돌아보면, 유토가 또 한명 있었다. 그는 당겨지는 힘에 순순히 끌려가되, 그 방정맞은 입은 멈추질 않는다.
"헉, 상사가 두 명이라니. 이건 악몽이 아닐까요?"
자신을 당겼던 유토에게 능청스레 말을 붙여본다. 아니근데리더제가욕쫌했다고여기까지쫓아온건아니지요?이것은필시무언가의메타포여만합니다현실일리없어! 속사포로 뇌리에 스친 무언가의 항연, 생명의 위협(?)은 곧 수그러들자 그는 다시금 연구원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무슨 반응?"
그리 말을 걸어본다만, 그것이 향하는 게 유토일지, 아니면 그 연구원일지는 그조차도 모를테다. 가방 끈이 짧아도 그 기체는 몸에 이롭진 않은듯 했고, 실험도 나쁘게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의 적응력 실험인가? 일부러 혹독한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켜 더 강인하게 키워낸다거나, 그런 것은 실험을 떠나 양지에도 있는 일 아닌가. 그는 짤막한 추측은 곧 접고 다시금 이 환경에 신경을 돌린다.
멈춘 사람을 다시 건드려본 노아였으나, 초록색 머리가 보이나 싶다가 다시 흑백으로 변해버렸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이블을 건드려봤는데 그러자 테이블의 색이 돌아오면서 무언가 데굴데굴 떨어진다. 테이블에서 떨어진것은 푸른빛을 내는, 무언가의 '핵' 같은것인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노아가 만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상들은 건드려도 실제로 만진다기보단 화면을 터치하는 애매한 감각이었기 때문에 이게 특별한걸지도 모른다. - 나인은 주변을 꽤 살펴보다가 문을 열어봤는데, 그러자마자 문과 함께 바깥의 색이 돌아왔다. 허나 그 광경은 결코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밖에는 적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아지트를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꽤나 순식간이었는데, 벙커와 적들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아마도 기습을 당한것으로 보이는데. 여전히 나인은 인식되지 않고, 개입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벙커에게 꽤나 불리하게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 머스티어가 실험관을 두드리자, 흑백인 상태로 성장하던 아이는 다시 원래의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뒤. 색이 돌아오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까본것처럼 유토와 똑같이 성장한뒤,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유토가 성장하면 이렇게 될거 같다. 싶은 붉은 머리의 여성으로 완전히 성장을 끝냈는데. 그 시점에서 갑자기 흑백처리가 된 연구원이 아닌, 뭔가 돈 많아보이는 인간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는것을 볼 수 있었다. - "뭐 임마."
유토는 세이메이를 가볍게 퍽 ㅡ 아프다 ㅡ 치고는 무슨 반응이냐는 누구에게 한건지 알 수 없는 물음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게 그거야, 자로프랑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이 받은 실험. 태아부터 신생아 단계까지 강력한 능력을 위한 약품을 주입하고 있는거지." "뭐 결과는 알다싶이 대실패지만~"
실제로 각성한건 자로프뿐이고, 성공이 한명이라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로프가 정말 실험때문에 능력을 손에 넣은건지조차 불확실한 실정이었다. - 벤자민은 조립중으로 보이는 로봇을 툭하고 건드렸는데, 그러자 로봇이 색을 되찾으며 알아서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메이드 로봇? 으로 보인다. 피부라던가 눈이라던가 한없이 사람에 가까워서 만약 조립되고 있는 이 광경을 본게 아니라면. 이것이 사람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고 완벽했다. 대충봐도 엄청난 기술력이란건 알 수 있어보인다.
어째 반응이 없는 것이, 지금 그가 그녀를 보고 있긴 해도 그녀는 그가 보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언젠가 꿈에 대해 서적을 접했던 기억이 있는데... 까먹었다. 어쨌든 굉장히 단조롭게 지내는 여성의 모습을 보던 그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듯한 시선을 찾아 고갤 돌렸다. 시선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다.
황당함에 말이 나오지않았다. 외형만 빌린 건지, 그렇다면 아발란치의 리더는 이 인조인간과 아까 그 유토 중 누구인지.
"유토... 피아."
계획의 이름도 유토피아였는데, 이게 우연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호스트도 이 계획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운석의 임무도 호스트에게서 유토로 전달된 것이고, 그 생명력을 흡수하는 듯한 공격도 지금 생각하면 리더와 같은 능력이니까.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어째선지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노아가 장치를 줍자 빛이 더 강해졌다.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엇일까 이것은. 그리고 그것을 든 채로 사람에게 접촉해보니 이제서야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익숙하다면 익숙한 얼굴이었다. 라프람, 그녀였다. 이 사람이 수술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있는지 몰라도 이 광경으로 보아 '수술'이 가능한 사람임은 확실하겠지. 그리고 그 순간, 공간 자체가 붕괴되었고 눈을 떴을때는 우주? 와 비슷한 공간에 시계바늘이 떠다니는. 여긴 또 뭔가싶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검은 코트에, 모자, 가면까지 꽁꽁싸매고 있는 사람이 떠다니는게 보였다. - 나인은 이 광경을 보면서, 생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 광경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다는것을. 나인 본인이 이 전투에 참가한것은 아니지만 벙커에게 꽤 오래전에 구해진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떠오르지 않는, 이 기묘한 모순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인은 이것을 알고있다, 이 전투의 결과 벙커가 한번은 해산했고 그 이후가 지금의 벙커의 모습이라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싸운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싸웠었는지, 다른 이들이 전부 어떻게 된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전투라는, 그 날의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싸우고 있는 아말과 크레일등의 모습이 이 꿈속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것도 잠시, 이 꿈은 더 이상 보여줄 수 없다는듯이 나인을 노아가 있는 우주와 같은 공간에 데려다놓고 말았다. 옆의 노아도, 떠다니는 사람도 확인할 수 있다. - 벤자민은 로봇을 건드리다간 이것을 만든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건드려봤는데, 초록색 머리의 여성이 보였다. 누구인지까진 잘 모르겠으나, 그녀는 이 로봇에 꽤나 심혈을 기울인듯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애초에 벤자민을 인식하지 못하는듯 대답을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그녀는 다시 움직였는데, 이내 로봇 메이드를 완성시키고 나서는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다만 조금 특이하게, 메이드는 어딜봐도 사람같이 보였으나 단 한군데,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여성은 이반을 눈치채지 못한듯 움직이다가, 멍때리다가, 를 반복하고 있었으나. 이반이 시선을 눈치챈 그 순간. 이반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때,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친 그런 수준이 아니라. 당신의 코앞까지 어느새 도착해서는 한뼘도 들어가지 않는 거리에서 똑바로, 빤히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그 모습에 공포마저 느껴졌는데, 그것은 분노한 유토를 본듯한 기분이었다. - "나? 나는 그냥 구경했지."
저들이 하는 실험이 실패할건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맞장구쳐줬다며 유토는 깔깔 거렸다. 그러는 사이 흑백의 유토는 사라져버렸지만, 별 문제는 없을것이다.
"아니.. 이 공간 자체는 꿈이 맞는거 같지만. 나나 다른 애들은 진짜일걸." "정확히는 나는 너 때문에 말려든거지만."
유토는 세이메이가 들고있는 돌을 가리켰고, 그러는 사이 허공에 다른 문이 생겼다. - 시험관 안의 유토로 추정되는 여성은 잠들어 있는듯 했다, 애초에 강제로 성장중이니까 의식이 있을리가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시선이 느껴지고 있다고 생각될즈음, 머스티어의 앞에는 문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는걸까? 하지만 여기서 할건 정말 이걸로 끝인걸까?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과 함께 시험관의 색은 아직 흑백이 되진 않았었다.
문은 나중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의 앞에 생겨나는 문을 외면했다. 실험관에 손을 대고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는 그들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아직 회색으로 변하지 않은 실험관, 움직이는 사람들. 분명 이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는 깨질것 같은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기억하고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에 혼란스러움은 가중되었다. 눈앞에 생생하리만치 익숙한 과거의 편린에 왜 그걸 잊었을까 싶다가도 종국에는 그것이 정말 제 기억이 맞는지 의문을 들게 한다. 그건 누군가 제 머리속을 강제로 헤집은것마냥 더러운 기분이었다. 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한차례 비틀거리던 몸뚱이가 가벼워진건 꿈속에서 끄집어 내듯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로 넘어갔을때였다.
그제야 그는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멍하니 공중에 뜬 의문의 검은 사내를 지그시 응시하는 고동색 눈이 적계심으로 물들여지고 그는 노아의 존재에, 경계심을 풀공 어리둥절할수밖에 없었다.
뭔가 더 떠보려는 듯한 말투. 여전히 가벼운지라 그 나잇다 특유의 '아님말구ㅋ'가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새 사라져버린 흑백의 유토. 그 부재에 그는 잠깐 고개를 그녀가 있던 쪽으로 고정했었다. 다만 그것도 짧은지라, 별다른 의문 없이 다시금 고개는 유토 쪽으로 돌아온다.
"진짜군요? 신기해라, 전에 유토님과 얘기 나눌 때도 이런 몽환적인 기분이였던거 같은데." "혹시 이번 일도 유토님이 집행하신 건가요?"
그보다 이게 현실이라면, 유토는 그가 뒷담 까던걸 어디까지 들었을까, 그는 그 생각에 어째 뒷목이 아려왔다. 이 곳을 나갈때 어께 위에 자신의 머리가 온전하길 짧게 빌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돌에 시선이 간다.
"이거 때문에요? 미안해라. 지금이라도 돌아가셔도 되는데."
그는 돌을 유토 쪽으로 건넨다. 이 돌이 귀환까지 책임져 줄지는 모르겠지만, 보낼 힘이 있으면 역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목숨 아까운줄 모르는 10대는 탐사나 더 해보고 싶은데, 어째 허락 받고 가야 할 것만 같네요."
"계속해도 될까요?" 그가 묻는다. 유토가 허락한다면 그는 곧바로 문으로 걸어가 열려고 할 것이다.
검은 코트의 남자는 노아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낄낄 웃었다. 아마도 이 공간과 관계되어 있는 인물일거 같다.. 라는 막연한 느낌은 들긴 하지만, 아직 확실한건 없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곧 이 곳도 사라질거에요."
남자는 노아와 나인에게 그렇게 말하며 둥둥 당신들을 향해 다가왔다. 딱히 공격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있죠, 여러분. 여러분은 벙커에서 뭘 하고 싶나요?"
남자는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 나인과, 자신을 보고 있는 노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 "..... 당신은, 이반. 이라는 이름인가."
그녀는 이반을 빤히 바라보다가는 말을 걸어준것에는 대답하지 않은채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름은 어디서 알아온건지.. 그러나 적대 의사는 없는듯 이내 평범하게 떨어지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서 개입해온건지 몰라도, 여기도 얼마 못 버틸거 같네.."
그녀의 말대로일까, 미세하게 공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허공에 문이 생겨있었다.
"나한테 볼일이 남아있을까?" - "............"
옆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유토피아의 완성에 대해 축하 비슷한 말들을 나누고 있었고. 자신들'만'의 낙원이 곧일거라면 기뻐하는,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시험관 속에 있던 그녀는 갑자기 머스티어의 말에 반응한듯 눈을 뜨고 손을 뻗어왔는데. 동시에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뭘까, 저 문으로 데려다 달라는걸까? - 벤자민은 불을 피어올린뒤 그대로 로봇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불꽃은 로봇을 불태우지는 못했고. 오히려 불과 로봇의 손에 나오는 빛이 반응하더니 벤자민은 몸속으로 무언가 흘러들어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에너지가 흘러 들어오는 느낌. 빛이 몸속으로, 혈관을 타고 들어오며 고양감마저 느껴져오고 있었다. 능력은 평소의 2배는 강력해져 있는듯했고 ㅡ 이 공간에 영향을 주진 못하지만 ㅡ 이것이 한계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언가 고동치는 소리가 들린것도 같았다. 그러는 사이 뒤에는 문이 열려 있었고 말이다. - "어차피 곧 돌아가게 될거 같은데."
그녀는 이 공간 자체가 곧 붕괴될거 같다고 말하며 세이메이의 말에 적당히 말대꾸 해주다가는 문을 슥 바라봤다. 그리고는 언제부터 그런걸 일일히 허락받았냐며 피식 웃으며 같이 전진했는데..
문이 열리자 보인것은 12개의 홀로그램 화상과, 그 중심에 서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있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어찌나 어두운지 여성과 12개의 화상 외에는 보이지 않으며, 화상도 사람의 얼굴이 아닌 실루엣으로만 보여 누군지는 알 수 없어보인다.
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는데! 그는 충격받은 듯(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움직이더니 그녀가 적대적이지 않은 듯 뒤로 물러서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주시했다. 갑자기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을까. 물론 그 뒤에 들려온 말에 공간에 생기는 균열을 확인한 그는 문 역시 확인하고 다시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야, 이름도 듣고 싶고, 여기서 같이 나가는 건 어떤가 제안도 해보고 싶구만."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 이 장소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는 그리 말했다.
"능력자들을~? 결국 복수를 하겠다는거네요." "그럼 당신의 그 운명이 아주 잘 짜여진 각본대로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각본가를 죽일건가요?"
"각본가를 죽이고나면, 각본대로 움직인 이들도 죽이고, 연관된 이들도 죽이고?"
남성은 노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걸까? 거기에 이어 나인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둥둥 뜬채로 턱을 괴기 시작했다
"추상적이네요- 하지만 벙커는 그런 조직이 아니잖아요? 아발란치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조직일터.."
뭐 됐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아십니까? 이 도시는 생각보다 가짜가 많다는거." "예를 들면, 여러분의 동료라거나, 혹은 가족도. 진짜가 아닐수도 있어요." - "음~ 기억이 났다? 아니, 기억이 날 예정이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이반을 바라봤으나, 이름을 묻는 이반의 물음에 가볍게 답했다.
"유토피아, 당신에게는 유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그리고는 이반의 제안에 응한듯, 문을 열고 당신을 데리고 나갔는데. 그러자 세이메이가 있는 12개의 화상이 있는 장소로 도착할 수 있었다. - 머스티어는 실험관을 쉽게 깨트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다른 이들이 반응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실험관 안에 있던 유토 ㅡ로 추정되는 ㅡ 만은 그대로 나올 수 있었고. 동시에 문이 열리며 자동적으로 둘은 이동하게 되었다. 그곳은 세이메이와 작은 유토가 있는 그 방이었다.
. .
머스티어와 이반이 도착하자, 둘이 각각 데려온 붉은 머리의 여성과, 세이메이가 데리고 있던 유토가 반응하더니. 셋은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은 평소의 자그마한 유토가 아닌 붉은 머리의 여성의 모습이었으나. 머스티어와 이반이 보던 그 얌전한 인상이 아닌, 평소의 유토와 같은 위압감과 잔혹성이 엿보이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이 모습은 오랜만이네, 정말 그리운게 잔뜩이야. 이 방도 그렇구~?"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는 모인 이들을 한번 슥-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있지, 얘들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지위, 돈. 그런거랑, 나랑. 어느쪽이 더 좋아?"
이름 참. 뒤이어 유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라는 말에 '멋지구만!' 이라며 덧붙이는 그였다. 어쨌건 문을 빠져나가니 머스티어도 비슷한 모습의 여성을 데려온 모양인데, 이미 도착해 있던 유토와 합체(?)를 해버렸다. 그리고 셋이 하나가 된 뒤의 모습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었지만 표정 자체는 지금까지 보던 유토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흠, 둘 중에 하나란 말이지?"
평생 먹을 수 있는 지위와 돈. 아니면 유토.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둘 중에 뭐가 더 좋냐고 하기에 알맞은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두 선택지가 서로 비교할 만한 대상인지 말이다. 그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네 쪽이다만."
물론 잠시 붉은 안광이 점멸하는 걸로 보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눈을 깜빡였을 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