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했던 음료가 나오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건 즐겁다. 샐비아의 정체를 아는 사럄이 보면 놀랄지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샐비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친절한 사람이면 더더욱. 사람의 호의에 기분 나쁠 사람은 없으니까. 아발란치 내에서는 비교적 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상대가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 않을 때에 한정 된 얘기였다.
"노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샐비아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예의 바른 태도로 소개를 하며 배시시 웃는다.
"노아 씨도 디저트를 꽤 많이 사시던데 선물용이시죠? 저는... 같이 일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려고 샀어요. 다들 좋아해줬으면 좋겠네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기대를 드러내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노아랑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일거다.
벤자민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유토의 말을 못 들은 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내 작고 여린 마음이 상처받을 거라고요? 으아앙”
그냥 천연덕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그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슬프단 것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색하게 우는 소리를 냈다. 높은 확률로 장난일 것이다.
“엄, 신경쓰도록 할게요.”
맥스가 벤자민의 말을 전부 알아듣는다면, 간식이 줄어들 예정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크게 받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아니었다. 왜 그것을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능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ㅡ아니, 꽤 자주ㅡ 그의 의도보다 친절한 모습이란 가면이 빠르게 움직이곤 했다.
“직접적으로 뭐라 하셔도 별 상관 없는데, 지금이라도 화 내실래요?” 당신이 앓는 소리를 내면 그는 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푼다. 한 그릇 퍼올리고도 남은 양을 보면 대략 일인분 정도가 남아있다. One man’s trash is another man’s treasure. 식량을 쓰레기에 비유하자니 취지가 맞진 않는것 같지만, 어찌됬든 남은 건 배고픈 누군가가 먹겠지. 짧은 의식의 흐름은 어찌 보면 안일했다만, 그가 밥솥을 닫는 꼴을 보니 흐름은 거기서 끝인듯 하다.
“일개 조무래기 약점 잡아도 별 쓸모 없으니까, 크게 운운하진 않으려고요. 신상에서 건질 만한 것도 면상 말곤 딱히 없기도 하고.”
심각성 일절 없는 심정이 들려왔다. 그의 신체적 제스쳐를 보아하니, 그의 고개는 당신의 손을 향해 있다. 감춰진 시선은 당신이 능력을 조절하는 그 손가락 끝에 머물고 있다고 짐작이 갈 테다. 그는 오븐의 타이머가 울리면 곧 굽던 연어를 꺼내려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다.
-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뉴스에서도 운석에 관한 이야기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운석이란게 원한다고 떨어트릴 수 있는거던가. 물론 그저 운석이 떨어질거란 정보를 얻은거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은폐하고 있다는것도 가능성은 있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하거나, 지나가고 있을즈음에. 아발란치와 벙커는 거의 동시에 빌딩쪽에 도착하게 됐다. 한편, 빌딩은 대략 6층 높이의, 별 다른 특색없는 빌딩이었고, 주변에도 그냥 음식점이나, 옷 가게가 몇 있을뿐으로. 평범하디 평범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빌딩이랑 뭔가 관계가 있는건 아닌걸까?
그리고 운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언제쯤 떨어지는지 듣지 못했던거 같다.. 하지만 아발란치도 벙커도, 정확히 말하면 운석을 어떻게 하고자 이곳에 모인것은 아니었다. 둘 다, 최종적으로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모였을 뿐이니까.
말하는걸로 들어봐서는, 럴러비아는 이 작전에 대해 잘 아는거 같진 않고. 그냥 유토가 했던 말을 전달하는 중인가보다. 그래도 무전은 연결되어 있고, 궁금한게 있다면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 다만 그런 무전중에서 먼저 뛰쳐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이반이었다. 이반은 그대로 휴스턴에게 철퇴를 휘둘렀고. 명중하지는 않았으나, 애매한 대치상황을 깨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닥이 모두 늪지대로 변한 수수깨끼의 빌딩, 이곳에 운석을 막아낼 열쇠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은 모두 6층이고 힌트를 하나하나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바닥이 늪과 같은 상태여서 제시간에 운석을 막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아발란치 놈들이 빌딩으로 향한다면, 그래서 교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운석을 막아내는 건 사실상 실패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노아는 아말에게 무전을 걸었다.
"아말씨, 빌딩 안에 들어왔는 데, 여기서 뭘 어떡하면 좋죠? 지금 바닥도 늪처럼 찐득거리고 밖에는 아발란치 놈들이 있어서 서둘러야해요"
그는 아말의 답변을 기다리며 일단 빌딩 깊숙히 향했다.
운석을 막아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곳 주민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만다. 그것만은 막아야했다.
아무래도 반응속도는 휴스턴 쪽이 조금 더 빠른 듯싶었다. 철퇴가 휴스턴의 턱을 노리기 전에 하이킥을 얻어맞았다, 갑옷이 두들겨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린다. 아마 거리를 벌리려고 하겠지.
"꽤 잽싸구만, 그런 몸을 하고 말이야."
분명히 물러서리라 판단한 건지, 어떤 공격이 올지도 모르면서 그는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 휴스턴 쪽으로 발을 내딛으며 허리춤에서... 옷차림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소드오프 샷건을 들어올렸다. 제대로 된 조준이랄 게 없이 총구가 대강 휴스턴 쪽으로 향하자마자 바로 두 총구가 불을 뿜었다.
휴스턴은 이반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빈틈에 하이킥을 때려넣었고. 거기에 더불어 패닝까지 꽂아넣었다. 이반은 그것을 그냥 받아내며 소드오프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으나, 거의 감에 의존한 공격이었기 때문일까, 명중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휴스턴이 이반에게 소프트 카운터를 명중시키나, 상황은 2:1. 빈틈을 노리고 머스티어의 공격이 명중한다.
- "휴스턴, 상황이 불리해 보이는데 지원 필요해?"
그리고 그 사이에, 휴스턴에게만 들리게 라프람의 무전이 울린다. - 빌딩으로 돌입한뒤 노아가 무전을 보내자 아말 대신에 라프람에게서 대답이 돌아온다.
- "애초에 운석은 막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그냥 아발란치나 족치락 한거였는데 말이지." - "뭐어.. 일단 운석장치? 로 추정되는건 스캔결과 5층에 있었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겠지. 그 바닥으로선,"
라프람은 운석을 막으려다 죽어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일단은 노아에게 장치의 위치와,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전송했다. 그러나 상황은 역시 쉽게 풀리지 않는다. 깊숙히 향하고 있던 노아의 뒤에서부터 벤자민이 쫓아오고 있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늪의 영향인지, 벤자민은 노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뒤늦게 왔음에도 거리가 크게 벌어져있지 않다.
몸에 바람구멍이 났다, 갑옷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총탄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지만 제대로 조준하지 않으니 샷건의 탄환이 제대로 박힐 리 없는 법. 아무리 조준이 엇나가있다고 해도 산탄이건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샷건을 든 손이 얻어맞자 충격에 총을 놓친다.
"요놈!"
그 대신이랄까 그는 자신의 손을 노린 휴스턴을 덥썩 붙잡으려고 했다. 잡혔다면 여전히 손에 쥔 철퇴가... 기다리고 있다.
라프람의 말은 둘째치고, 2:1이란 상황 자체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휴스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반의 손을 쳐낸뒤에 속사를 갈겼다.
허나 이번에는 이반이 조금 더 빨랐다, 이반이 휴스턴을 붙잡으며 저절로 공격이 빗나가고 말았고. 이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철퇴를 휴스턴을 공격하는데 성공한다. - 노아는 연막탄을 사용해 따돌리려 했으나, 엘리베이터까지 가는길은 복도였기에 루트가 너무 뻔했다. 거기에 벤자민은 연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방향에 불을 질러 노아를 공격하는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연막이 걷히며 불꽃에 의해 둘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기만 했다.
휴스턴은 철퇴에 직격했고, 그대로 날아갔으나, 이반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잡아챘다. 예상과 달리 거리가 벌어지지 않아 휴스턴의 사격은 다시 빗나가버린다, 이 지근거리에서 이렇게 흔들리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그리고 다시 한번, 묵직한 소리와 폭음이 휴스턴을 덮친다.
- "언제부터 그렇게 열혈 캐릭터였어? 너 오늘.. 아니 그냥 좀 이상하다고."
라프람의 무전이 무색하게, 하늘이 어두워진다. 어쩌다 하늘에 시선이 닿았다면 뭔가 거대한것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육안으로 정확한 형태가 보이진 않았지만, 이 일대가 어두워질 정도의 엄청난 규모의 돌덩이인건 알 수 있었다. ... 아니, 애초에 저 정도면 피해의 규모가 장난 아닐 수준일텐데.. - 벤자민은 여전히 노아를 향해 불을 피웠으나, 노아는 늪을 달리면서도 간신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는 엘리베이터가 들어온다. 조금만 뛰면 탈 수 있는 거리.
허나 문제가 있다면 벤자민과 거리가 그렇게 벌어져있지 않다는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탈 수는 있겠지만, 이 거리라면 무조건 따라잡혀서 같이 타게 되거나, 문이 닫히지 않게 붙잡고 있을 수 있다.
머스티어의 공격을 피하며 휴스턴은 무전을 끊었고, 휴스턴은 곧바로 이반에게 슬라이딩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샷건을 주워 휴스턴을 노렸으나, 슬라이딩을 하는 휴스턴을 맞추지는 못했고. 대신 휴스턴의 속사만이 이반에게 명중해 철을 뚫는 소리와 살을 뚫는 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었다. (이반, 머스티어 둘 중 한명에게 카운터 데미지 선택) - 노아의 수류탄이 터지기 직전, 벤자민의 불길에 의해 궤도가 틀렸고 벤자민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행인건 노아가 공격에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는 거지만, 벤자민을 저지하지 못함으로서 거리는 더 좁혀지고 말았다.
공격이 빗나간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휴스턴의 총알이 그대로 이반에게 구멍 하나를 더 크게 만들어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어진 사격은 이반의 움직임에 의해 빗나간듯 보였다, 다행인건 이반의 철퇴도 빗나갔다는것. 더불어 저 사이에서 접근전은 힘들다고 판단한 머스티어가 빈틈을 노리고 휴스턴을 공격했으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빗나가고 말았다.
- "앞으로 20분정도, 남았어요."
머스티어는 하늘을 슬쩍 본 뒤, 무전으로 물었고, 거기에 대한 럴러비아의 답은 이랬다. 정말 앞으로 곧.. 인듯한데. 어느새 하늘은 더 어두워지고, 이제는 육안으로도 뚜렷히 운석이 보이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 저게 떨어지면 피해가 어떨지는 안봐도 뻔하다. 다만, 여기까지 다가와서야 저것이 평범한 운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돌덩이지만, 중간 중간 기계로 된 줄이나, 이상한 장치가 군데군데 박혀있는것이다. 저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 벤자민의 공격이 이번에는 다시 노아에게 명중했다. 불꽃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대로면 엘리베이터가 망가질 가능성도 보인다.
엎친데 덮친격일까, 그렇게 깊지는 않았던 바닥 늪이 요동치고 있다. 건물 안에서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운석이 접근함에 따라 반응하는것마냥 늪은 부글거리기 시작했고. 딱히 뜨겁다거나 한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깊어지고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가라앉아서 못 움직이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계속 전투를 하는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다만 뒤로 물러날 수 있는 벤자민에 비해. 노아는 움직일곳이 엘리베이터 말고는 벤자민을 넘어가야 한다는게 문제였다.
공격이 빗나간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휴스턴의 총알이 그대로 이반에게 구멍 하나를 더 크게 만들어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어진 사격은 이반의 움직임에 의해 빗나간듯 보였다, 다행인건 이반의 철퇴도 빗나갔다는것. 더불어 저 사이에서 접근전은 힘들다고 판단한 머스티어가 빈틈을 노리고 휴스턴을 공격했으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빗나가고 말았다.
- "앞으로 20분정도, 남았어요."
머스티어는 하늘을 슬쩍 본 뒤, 무전으로 물었고, 거기에 대한 럴러비아의 답은 이랬다. 정말 앞으로 곧.. 인듯한데. 어느새 하늘은 더 어두워지고, 이제는 육안으로도 뚜렷히 운석이 보이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 저게 떨어지면 피해가 어떨지는 안봐도 뻔하다. 다만, 여기까지 다가와서야 저것이 평범한 운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돌덩이지만, 중간 중간 기계로 된 줄이나, 이상한 장치가 군데군데 박혀있는것이다. 저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 벤자민의 공격이 이번에는 다시 노아에게 명중했다. 불꽃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대로면 엘리베이터가 망가질 가능성도 보인다.
엎친데 덮친격일까, 그렇게 깊지는 않았던 바닥 늪이 요동치고 있다. 건물 안에서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운석이 접근함에 따라 반응하는것마냥 늪은 부글거리기 시작했고. 딱히 뜨겁다거나 한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깊어지고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가라앉아서 못 움직이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계속 전투를 하는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다만 뒤로 물러날 수 있는 벤자민에 비해. 노아는 움직일곳이 엘리베이터 말고는 벤자민을 넘어가야 한다는게 문제였다.
몸에 바람이 통하는 구멍이 또 생겼다. 재빠른 녀석 같으니. 공격을 헛치거나 하게 되면 바로 반격을 당하니 성가시기가 그지 없는 상대, 그러나 머스티어의 협공 때문인지 상황은 그에게 좀 더 유리하게 흐르는 듯 했다. 부상으로 피가 나는 건 그 쪽이긴 했지만. 그는 더 대화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철퇴를 휘둘러 휴스턴을 후려치려고 했다.
둔탁한 무언가가 창문에 휘둘리는 소리, 그 뒤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쪽을 본다면 실신한 듯한 벙커의 이름모를 조직원이 얼굴에 피에 반절 가려져 있다. 이름모를 조직원의 몸뚱이는 깨진 유리조각이 득실했던 그 늪지대 같은 바닥으로 얼굴부터 고꾸라진다. 그 몸뚱이를 늪에 더욱 깊이 처넣는 것은 중력이 아닌 제3자의 무게였다.
"살아는 계시니까, 데리고 나가서 치료를 받는다면 괜찮을걸요?" "숨이 그때까지 붙어있을지는 모르지만요."
조직원의 몸통을 바닥삼아 밟아서는 무복 차림의 남성. 얼굴을 가린 고깔모자의 면 부근은 피가 튀어있다. 마찬가지로 옆구리도 찢어졌는지, 칼로 베인 흔적과 피가 그 부위를 축축히 적셔온다. 그의 몸체가 깨진 창문을 통해 온전히 넘어오면, 바닥의 부글거림으로 인해 약간 휘청이더니, 조직원의 얼굴을 밟아 딛어 노아 쪽으로 달려든다. 때문에 늪에 더욱 깊히 박혀버린 조직원의 얼굴. 그는 뛰어들던 궤도에서 자세를 바꿔, 노아를 걷어차 넘어뜨리려 했다.
"먼저 올라가 주실수 있을까요? 이 쪽은 제가 막아서겠습니다."
공격이 성공했던, 말든. 그는 벤자민에게 그리 물으며 노아의 앞을 막아서려 했을 것이다. 그의 까마귀는 건물의 윗층들을 순찰하려는듯 위로 날아든다.
휴스턴을 공격하려던 이반의 철퇴를 무언가가 막는다. 적의 증원이라던가 그런게 아니었다. 운석에서 기계로 된 코드 같은게 쭉 뻗어온것이다. 허나 그것은 휴스턴이나 이반과 관련된게 아닌. 그저 우연이었을 뿐으로. 코드들이 하나 둘 빠른 속도로 뻗어지며 땅에 박히고 있었다. 빌딩쪽도 예외는 아니었고, 빌딩 곳곳에 코드들이 박히더니. 마치 와이어를 설치한것마냥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하게 운석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외부지역 다이스 전투 종료, 이벤트 상황 돌입) - 노아는 벤자민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일단 타기라도 해야할테니 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깊어진 늪지대 때문에 코앞인데도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사이를 끼어든 세이메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은 피할 수 있었으나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벤자민은 그 틈을 노리고 노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려 했으나, 밖에서 부터 코드 같은것이 들어와 박히느라 순간적으로 앞이 막히고 만다. 물론 피해서 지나갈 수 있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체되어 노아에게 약간의 기회가 돌아왔다. 허나 상대는 둘이고, 공격을 명중시켜야만 계속 제지할 수 있을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입구가 막힌 것을 보아하면, 지나려 하면 시간이 꽤나 걸릴것 같았다. 말과는 달리 그걸 내뱉는 투는 가벼워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운석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으니, 이대로 노아를 저지하기만 한다면 임무는 성공일 것이다. 발차기가 빗나가 늪지대에 박혀있던 다리를 그대로 두고, 그것을 반대로 축 삼아 하반신을 강하게 지탱했다. 현재 바닥에 고꾸라져 쳐박혀 있는 이름모를 벙커의 조직원한테서 뺏었던 총을 소매 안쪽에서 꺼내, 노아의 어께죽지를 겨냥해 쐈다. 이것은 그의 움직임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 그 후에 총구를 머리 쪽으로 조정해,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었다.
그러나, 발포된 것은 단 한발. 불발 이후로도 몇 번의 빈 철컥거림이 들려오더니, 그는 이내 탄창이 빈 총을 대충 떨궈버린다.
철퇴가 부딪혔다. 분명 부딪혔지만 애초에 노린 것과는 다르다. 기계로 구성된 코드 같은 것이 뻗어나와서는 그 궤적에 놓인 철퇴를 튕겨낸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방해? 그러나 고갤 들었을 때 그는 그런 게 아님을 알았다, 저 운석에서부터 뻗어나온 것으로, 어떠한 구분도 없이 이곳저곳 땅에 박혀들고 있었으니, 안 그래도 떨어지는 중인데 땅에 박아넣은 코드로 뭔가 더 하는 게 목적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운석은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었지.
"아무리 그래도 저걸 보고 있자니 어쩔 수가 없구만."
그제야 그는 럴러비아에게 무전을 시도했다.
"아 아가씨, 이거 떨어지는 거 맞는 건가? 그러면 슬슬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먼저 벗어나도 상관은 없다며 말하는 무전소리에는 타닥 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히 섞여오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짧다고 했던가. 철푸덕- 하고 무언가가 뒤에서 떨어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했다면 전신이 새카맣게 되어있는 인간형태의 무언가가 보였을것이다. 처음에는 코난의 범인같은 모양새였으나, 비척 비척. 일어나면서 점점 몸에 붉은 문양이 떠오른다.
첫인상은 뭐랄까, 순수하게 저건 좀 위험하다. 라고 느껴졌다.
- "저건 위허 ㅁ-!!" [우-]
럴러비아의 다급한소리, 그리고짧은 단말마 비스므리한게 들리는가 싶더니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이반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노리고 손을 뻗고 있었다. 어느샌가 코앞이다, 이대로 붙잡힌다면.
확실하게 위험하다는 경고가 몸속에 울려퍼진다. - 노아는 벤자민이 올라가는것만은 막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지에 모든 생각을 집중한 노아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고. 세이메이의 총탄과, 벤자민의 아까와는 다른 화력이 그대로 직격해 순식간에 중상 이상의 데미지를 입고만다. 목숨의 위협이 가까이 다가오자, 몸은 투쟁의식을 불태운다 - 패시브 발동 -
살타는 냄새가 복도 가득 진동한다. 왼 쪽 눈은 멀었는 지, 단순히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건지 뜰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폐와 기도를 태우는 것 같았다. 몸 속 세포 하나하나가 살려달라 비명을 지르다못해 이젠 포기하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전신에 감각이 없다...
"너희들이 이겼다.."
솔직히 인정해야했다.. 이 승부는 이길 수 없다. 능력자 둘을 상대로 고작해야 폭탄 몇개와 총 몇자루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노아가 쓰러진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 그는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지만 눈 앞의 적들은 그저 노는 것처럼 설렁설렁 봐주면서 싸우고 있었다. 웃음이 날정도로 어이없을 정도로 불리한 싸움, 이길리가 만무한 뻔히 보이는 싸움이다.
"생각했냐?"
하지만 싸워야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싸워야만했다. 목숨의 위협이 가까이 다가오자, 노아의 몸이 투쟁의식을 불태웠다.
"나 혼자 죽진 않아. 적어도 벙커 하나의 목숨과 아발란치 둘의 목숨이라면 싸게 먹히는 거겠지?"
빌딩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래는 못버틴다. 저들도 나도.
총알과 폭탄이 다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한자루의 검 뿐이다. 가까이 있는 벤자민의 멱살을 잡고 그의 목을 노리려고 했다. 총을 쏴도, 불꽃을 쏴도 적어도 한놈은 잡는다.
"누가 봐도 우리 쪽이 우세해 보이지 않나요?" "도발도 우위를 잡아놓고 해야 통하는 겁니다, 멍청하긴~"
그리 말을 해오는 어조는 평온하기 그지없어 업신여기는 것으로도 들리겠다. 그는 곧 소매에서 부적을 꺼내 그걸 찢는다. 세찰 '광'이 적힌 노란 종이조각은 흩어져 바닥으로 나부낀다. 그것이 찢긴 직후에 노아의 뒤에서 더운 숨결이 느껴졌겠다. 머리통부터 소황된 도베르만은 노아의 머리를 물어 바닥으로 내리찍으려 했다. 그의 능력은 매게체를 필요로 하진 않으니, 이런 묘기를 보인 것은 일종의 블러핑이겠다.
- "운석은 애초에 떨어트리는게 최종 목표니까, 제어를 할 필요는 없지만.." - "으음- 아무튼 저 녀석한테 잡히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럴러비아는 저것이 무엇인지 아는걸까? 그 사이 검은 무언가는 이반을 잡는것을 실패하며 도리어 철퇴로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거기에 이어 머스티어가 재빨리 접근해서 그것을 베어 넘기자 마치 점토마냥 몸이 푹 파인다. 옆구리는 박살났고, 동체에 손톱의 모양 그대로의 상흔이 남았다. 내구도 자체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감촉이었다.
[우르라라]
허나 순식간이었다. 그것이 입은 피해가 곧바로 흠집 하나없이 회복되면서 다시 달려든것이다. 거기다 순간이지만 움직임을 놓쳤고, 그것은 어느새 머스티어와 이반의 뒤쪽에 있었다. 심지어 양팔이 늘어나며 각각 머스티어와 이반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 노아는 죽을 기세까지 더해서 벤자민을 공격했으나, 그 공격마저도 빗나가고 말았다. 자세가 무너졌을까? 아무튼 공격이 빗나간 틈을 타 세이메이가 소환한 도베르만이 노아를 물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다행이 그 공격도 실패로 돌아갔다.
투둑 툭-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것이.. 어떠한 외부의 충격으로 무너지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치 노후된것마냥 건물이 풍화되며 무너지는 괴이한 현상이 건물안의 사람들에게 보인다.
처음엔 머리를 노렸으니 본능적으로 움직여 피했지만, 저 말을 듣자니 어디를 붙잡혀도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일단 내구도 자체는 형편없는지 우그러지고 푹푹 파이기는 했지만...
"허어."
요상한 소리를 내더니 금방 회복해버리곤 어느새 뒤로 돌아 그뿐만 아니라 머스티어까지 노리고 있었다. 아까도 처음에 달려드는 것 자체에는 반응하기 힘들었던 걸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가속이 엄청나게 재빠른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손을 내뻗고 있는 건 알아챌 수 있었기에, 그는 뒤로 물러서며 손을 노려 있는 힘껏 철퇴를 바닥까지 내리찍으려고 했다.
아슬 아슬했다, 공격 자체는 보이지만 그 과정을 놓치는만큼 반응이 늦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붙잡힐 타이밍. 그러나 어쨌거나 이반은 공격을 피하며 자신을 노렸던 손을 철퇴로 내려찍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순간. 그것의 손은 찍히면서도 철퇴를 붙잡았고. 푸슥- 하는 소리와 함께 철퇴의 자루 부분이 부숴지고 말았다. 다만 그것은 완력으로 부숴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붙잡힌 부분이 낡아지는, 정확히는 생명을 뺏기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동시에, 머스티어는 공격을 피하며 사격했고 노림수대로 그것의 손을 박살내는데 성공했다. 허나 역시나 재생속도가 장난 아니다. 곧바로 수복되는 손. 또 다시 붙잡으려 하겠거니- 생각이 들 타이밍의 원패턴 공격들.
하지만 이번엔 그 기분나쁜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진다.
소리가 섬광보다 늦었다.
그것의 입에서부터 일직선을 쓸어버린 규모와 위력의 레이저가 둘을 덮친다. - 노아는 다시 한번 벤자민의 목을 노렸으나, 이번에도 공격은 빗나가고 말았다 -패시브 종료- 역시 피를 너무 흘린 탓일까. 이어지는 세이메이의 공격을 피한것까지는 좋았으나, 슬슬 체력의 한계, 그리고 건물도 한계로 보인다.
한편, 세이메이는 출구쪽으로 향하려다가 무너지면서 구멍이 뚫린 2층이 정말 우연히도 눈에 들어온다. 붉은 빛이. 아주 적지만 선명하게 새어나온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파편들이 기묘하게도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마치 이것을 확인하라는듯 유혹하는걸로도 보인다. 허나 건물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짙어지는 연기를 뒤로 하고선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시야에 비춰진 작고, 선명히 눈에 잔상을 남기는 붉은 빛. 출처는 구멍이 뚫린 2층이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앞으로 내딛던 발이 느려졌던 것도 잠시, 다시금 달리는 것을 계속했다. 속력이 늦춰졌을 즈음, 창 밖에서는 날개짓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의 까마귀는 깨어진 창으로 안으로 날아들어와, 2층의 구멍으로 날아들어가려 했다. 그는 이런 위험한 상황을 무릎쓸 정도로 탐구심이 강하진 않지만, 신기한 것을 알아보려 시도하지 않을 정도로 허무주의적이지도 않다.
"진게 분해도, 슬슬 일어나시는게 좋을 거에요?" "압사당하는 것 보다야, 적과 싸우다 죽은 편이 더 그럴듯 하지 않던가요?"
그는 계속 출구를 향해 달리다가 떨어진 건물 파편을 발견해, 그걸 주워들어 몸을 노아 쪽으로 빙 돌려 회전력을 매게체 삼아 벽돌을 노아의 머리를 향해 던져들었다. 던진 힘의 위력에 다시금 몸은 돌아, 출구로 달려나가던 것을 재개한다.
가해지는 힘은 없었기에 견디지 못해 부러진 게 아니다. 이건... 붉은 안광이 그것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그는 떨어져 이제 그냥 쇠막대기가 되어버린 듯한 철퇴를 쥔 채 뒤로 물러섰다. 머스티어의 공격에 박살난 손, 그의 철퇴에 내려찍힌 손이 금방 수복되는 것을 보며 또 붙잡으려고 하겠거니 했으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지는가 싶더니 쏘아진 광선.
"대체 뭐하는 놈이냐 이건...!"
본능에 따라 몸을 비틀어 궤도에 온전히 올라서는 것은 면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전부 피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머스티어 쪽을 보려는 듯 붉은 안광이 움직이는 것도 잠시, 광선으로 인해 옆에 있었을 그의 모습이 어떻게 됐을지는.
역시 안먹히는 건가. 빠르게 판단하며 뒤로 물러선다.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하며 자신을 붙잡으려는 손에 계속해서 사격한다. 이반의 철퇴가 자루만 남긴채 바스라지며 부서지는 걸 그 사이에 본 머스티어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저런 힘을 가진 존재를 본 적 있다면 그건 우연일까?
"피해요!"
검은 것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뒤로 피하던 몸을 옆으로 날렸다. 직격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진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긍정적인 방향일리는 없었으니까.
빛이 몸을 삼킨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대지가 생명을 빼앗긴듯 죽어버렸으며. 이반의 갑옷은 물리력이 아닌. 그저 그러한 결과가 당연하단듯이 닿은 부분부터 저항없이 소멸해 동체의 반 이상이 날아가버렸다. 생명이 사라지는 감각, 단순히 부상의 심각함 뿐 아니라 사라진 부위로부터 생명이 쭉쭉 빨려나가는 감각이 역겹게 올라온다. 어서 회복하지 않으면 전신의 생명이 사라질거 같은 감각이었다.
다행인것은 머스티어는 그나마 손 하나로 넘어갔다는것. 물론 머스티어도 생명의 소실을 사라진 손의 환부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머스티어는 회복 능력도 없기에 이대로면 그저 침범당할 위기다.
다행인건 저 괴물같은 녀석이 레이저를 쏘고 잠시 멈춰있다는걸까. - 노아의 공격도, 벤자민의 불도, 세이메이의 벽돌도, 유의미한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늪은 점점 깊어져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세이메이와 벤자민은 여유롭게 출구쪽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노아는 아직 엘리베이터 앞.
건물은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탈출까지 시간이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대로 탈출한다면 말이다.' 노아의 뒤쪽, 엘리베이터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보이긴한다.
세이메이의 까마귀는 2층으로 들어갔고, 붉은 빛을 따라가자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붉은 돌이 떨어져 있는것이 보였을것이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정체였지만, 반짝 반짝 빛나는것이 이쁘기는 하다.
몸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 어찌어찌 머리는 지켰지만 보통 이렇게 몸 반쪽이 날아가 버리면 즉사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그는 이런 상황에도 숨이 붙어있었다, 공격이 워낙 눈 깜짝할 새에 있었기도 했지만 그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잘한 부상 정도는 조금씩 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소실된 부위로부터 느껴지는 생명이 어디론가 그대로 빨려나가는 듯한 속도를 늦추고 있던 셈이다. 그래도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아악! 제기랄, 비명도 잘 안 나오는구만, 그쪽은 괜찮은가?"
하나만 남은 폐 때문에 바람이 새는 소리긴 했지만 머스티어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던 그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수복하려고 했다. 수복에 성공하고도 여유가 있다면, 무전을 통해 소리쳤을 터다.
"어이, 아가씨! 얼마나 남았나! 여긴 방금 뒈질 뻔했다네!"
그리곤 잠시 멈춰 있는 그것의 머리를 노려 어느새 주워든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겨보려고 했을지도.
반짝 반짝. 까마귀란 족속은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한다던가, 여튼 세이메이의 까마귀는 그랬다. 까마귀는 본능적으로 그 붉은 돌을 집어들었다. 그 꼴을 온전히 관전하던 그는 까마귀가 돌을 삼켜 저장하는 것을 확인하면, 다시금 그의 곁으로 불렀다. 출구가 보이면 곧장 발을 딛어 탈출했다. 다만 눈 앞에 보이던 처참한 광경. 머스티어의 손 한 짝은 온데간데 없었고, 몸통 부근의 반 이상이 날아가버린 갑옷남의 갑옷. 그는 무얼 해야할지 약간 주춤거리더니, 그제서야 뒤를 돌아봐 노아의 이동을 눈치챈다.
"엘리베이터 고장난줄 알았는데 말이죠..." "명령질해서 죄송하지만, 불 질러주실수 있을까요?"
벤자민이 들을진 모르겠다만, 그리 물으면서도 그의 뇌내 상황은 바빴다. 자신에게 돌아왔던 까마귀는 그의 변덕에 곧 궤도를 바꿔, 건물 밖으로 날아갔다. 노아가 향하는 층이 어딘지 확인하려는 양 까마귀의 시선이 바쁘다.
이상한 생명체를 향해 공격을 행하던 휴스턴에게 그런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평소에 들리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들어보는 시스템의 기계음성. 하지만 왜 갑자기?
[∞ System을 확인. 적대 항목으로 등록. 파괴하겠습니까?] [파괴를 위해 Ω System의 전 기능을 개방해야 합니다. 그 후 Ω System은 소멸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어째선지 이해가 된다. 아마도 저 운석을 파괴할 수 있다는 소리일터.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면 자신의 몸도 성치 않을거라는걸 알 수 있었다. 수술 당시에 뭔가 있었던걸까. 뭐, 이제와서 큰 문제는 아닐터지만.
- "휴스턴!! 그거 무시해!"
그러는 와중, 라프람이 강제로 무전을 다시 연결했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밖으로 나온 세이메이는 다시 까마귀를 움직였고, 까마귀는 건물 밖에서부터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추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이반은 회복을 끝낸 후 다시 럴러비아에게 무전을 보냈는데.
- "10분 남았어요, 텔레포트는 지정된 시간 전에는 작동 안해서.. 버텨주셔야 해요."
라는 답이 도착했고, 동시에 당긴 산탄총에도 그것은 머리가 날아갔다가 다시 수복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머스티어는 생명이 빨려나가며 저절로 기력이 쇠하는걸 느낄 수 있다. 어서 자르거나 하지 않으면 위험할듯 한데.. 그러나 뜻밖에도, 붉은 스파크가 잘린 부위쪽에 일어나더니 깔끔하게 침범당하고 있던 부위가 고통없이 잘려나가며 지혈까지 됐다. - 노아는 엘리베이터로 기어가듯 헤엄쳐 올라갔고, 곧 엘리베이터는 6층에 도착했다. 6층에 내리자마자 보이는것은 누가봐도 수상해보이는 장치. 대체 무슨 구조길래 내리자마자 이런게 보이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노아에게 남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기계 장치는 이상한 문자들이 주르륵 나열되며 작동하고 있었다. 정지를 위한 키는 따로 보이진 않는데.. 그냥 부수면 되는걸까?
상관도 아닌데 자신의 말을 들을 필요 없고, 애초에 들을 것이라고 크게 생각은 안 했다. 의외의 행동이였는지 하는 말은 조금 놀란듯 들렸으나, 끝에 갈수록 장난기 어린 목소리다. 어차피 까마귀 하나로 노아를 막을수 있으리라 생각도 안 했던 것인지, 까마귀는 곧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텔레포트 쪽으로 이동해요, 제가 엄호하죠."
그는 머스티어 쪽으로 다가가더니, 머스티어에게 등을 돌려 그 괴상한 검은색 사람?을 주시한다. 방어적인 태세가 돋보이는 자세.
벤자민은 무너져가는 빌딩에 불을 질렀다. 그러면서 본것은, 주변의 땅이나 건물들도 전부 풍화되고 있다는것. 그 원인으로 보이는것은 아마 저 운석에서 나온 코드들일것이다. 마치 주변의 생명을 빼앗는것처럼...
한편 세이메이가 엄호를 하며 움직이려는 찰나, 멈춰있던 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시 팔을 늘려서 세이메이를 붙잡으려 했다. 팔이 늘어나는 속도는 빠르지만 눈으로 놓칠 정도는 아니다.
- "아니 이게, 저건 예상하지 못한거라서요.. 그냥 뛰어서 지역을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로.."
럴러비아는 이반의 생각을 눈치챈듯 웅얼거리며 변명하고 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그대로 휴스턴에게 공격을 가한 이반이었으나. 총알 한두발로는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보였다. 애초에 상태가 이상해보이고 말이다. 그것은 머스티어의 나이프도 마찬가지였고, 어째서인지 그 행동들이 괴물같은것의 심기를 자극했는지 반대편 손을 둘에게 뻗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세이메이에게 한것과 다르게 손바닥에서 검은 송곳 같은게 연달아 발사되어 날아온다, 당연히 맞아서 좋을건 없어보인다. ㅡ - "이미 정상적으로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어, 일단 부수면 적어도 충돌은 막을 수 있을거야."
노아의 무전에 조금은 떨리고있는 목소리의 라프람이 답해온다. 아마도 시간이 충분했다면 원격으로든 뭘 해서든 운석 자체를 없앨수도 있었던거 같다. 그러나 이미 운석은 코앞까지 와버렸다, 그나마 충돌을 막을 수 있다면 인명피해까진 막을 수 있을것이다.
노아는 주변의 철골 같은것을 찾을 수 있었다. 불길이 올라오는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 6층까지는 아니다. ㅡ - "멈춰, 휴스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린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로딩율이 올라가는 시스템의 알람음도 들린다. 휴스턴의 말대로 'Ω System'은 모든 기능을 개방하기 위한 단계에 돌입했다.
- "지금이라면 아직 취소할 수 있어, 그거 쓰면 죽는다고!" - "운석의 충돌이라면 멈출 수 있으니까, 굳이 거기서 죽을 필요따위 없어!!"
개방율이 50%에 도달했다.
- "네 몸도,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 "혼자 끙끙대지 말고, ㅡ 술이라도 사줄테니까 멍청아!" - "멈춰, 제발."
시스템의 개발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로딩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멈추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당신이 정한대로일터다.
"아가씨, 뛰어서 저게 떨어졌을 때 멀쩡한 만한 거리로 도망칠 수 있겠나? 뭐 상관은 없겠지... 10분 뒤에 보세!"
어차피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고, 일단 운석을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니만큼 그걸 방해하려는 휴스턴을 어떻게든 방해해야 했다. 문제라면 산탄총 정도로는 움직임을 막아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또 그걸 자극했는지 공격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악 제기랄! 그만 좀 해라 이놈아!"
검은 송곳 같은 형상의 공격을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맞았을 때 어떤 후폭풍이 올지 정도는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피하기에는 그가 다소 굼뜬 편인 것을. 산탄총을 쥔 팔로 본능적으로 얼굴을 노리는 송곳을 막아내려고 하면서 그는 휴스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들어 그를 후려치려고 했다. 정확히는 베려고 한 거지만.
짧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 분명 눈으로는 좇았으나 몸의 반응은 시야보다 느렸다. 가까스로 자신을 잡으려던 손을 피하면 그는 까마귀의 배에 손을 집어넣는다. 고깃덩어리를 해집는 소리가 나지만 피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 요전에 주웠던 붉은 돌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그 괴물에게 휘둘렀다.
콰직- 불쾌하게 기계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운석의 움직임이 멈춘다. 이미 운석은 건물의 6층을 반쯤 부숴먹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대로 지면과 충돌해 막대한 피해가 나왔겠지....
허나 문제는 이 다음으로, 노아는 여기서 탈출 할 수단이 없었다. 불꽃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불태우고 있었고, 6층을 침범하는것도 곧일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6층, 이 몸으로 떨어져서 살아있을리도 없고.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 . ㅡ - "여러분이라면 가능해요"
찡긋- 하는 소리가 들려온거 같기도 하지만, 뭐 럴러비아의 말은 둘째치고 이반은 송곳에 맞아 어깨가 날아가는것을 또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당연히 회복할 수 있었고, 억지로라도 휴스턴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것은 휴스턴이 허공에 쏜 리볼버가 내뿜는 막대한 풍압에 의해 저절로 튕겨져나가고 말았다. 머스티어의 시도도 마찬가지였고, 송곳이고 뭐고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다가갔다가는 자신이 위험해질 노릇.
세이메이는 공격을 피하며 붉은 돌을 휘둘러 보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랑은 관계없는 물건일걸까? ㅡ 무전이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운석과 눈앞에 아른거리는 푸른 나비가 전부였다. 몸이 버티지 못하는 에너지가 시야마저 빼았는다. 그러나 푸른 나비의 빛만은 어째서인지 사라지지 않았다.
휴스턴이란 캐릭터 입체적이여서 더 좋았어....내캐 아닌지라 데플 보고 감동이였다니 하는거 좀 아닌가 싶긴 한데 개인적으로 너무 잘 짜인 데플 같았어... 개인적인 원한보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희생한 거 너무 멋있었다...휴스턴 전에 독백 보니까 뒷세계 오기 전엔 평탄한 학창시절 보냈던거 같은데 평범했던 사람이 영웅으로서 죽은 것 같아서 너무 감명깊었어 막 하이틴 히어로 영화 본거 같고 막... 휴스턴 본인이 마음 다잡는 묘사 너무 울컥했었다 각오 되어있던 아찌...마지막에 마음 조금 약해졌던 아찌... 평범하게 착한 사람의 비극적 엔딩, 근데 본인 시점에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할거 같아서 맘이 더 아렸어 이제 닥칠게...휴스턴 갓캐였다..
아이는 새빨간 불길 속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반은 금이 간 난간을 잡고는 여상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아, 이건 꿈이구나. 지독한 악몽인 동시에 아이를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기억의 끝자락이기도 했다.
이미 훌쩍 커버려 성인이 다 된 그가 젖은 눈빛을 하며 아이의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기척을 읽은 아이는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속눈썹이 긴 눈이 사르르 접히고 검붉은 입술이 그림같이 반듯한 미소를 그렸다. 사랑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천사 같은 얼굴 위로 광기와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고 두 뺨 위로 머문 홍조가 아이의 기분을 대변했다.
'어서 와.'
소녀와 소년 그 어딘가의 중성적인 아이가 그의 볼게를 잡으려 두 손을 뻗어왔다. 그에, 그는 타 죽더라도 결국 해를 갈구하고 마는 개처럼 뻗어진 체온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저 쓰다 담 받고 싶은 개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목을 길게 빼 아이의 의지대로 그리 무기력하게 뺨을 내줄 뿐이다.
비릿한 피 냄새. 누구의 것일까. 아이의 손길이 닿는 족족 진득한 핏물이 길자국을 내며 면접을 넓혀나간다. 피비린내가 더 강하게 올라왔다. 이내 쿡쿡, 목울대로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그의 머리 위로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잊지 마.'
아이가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때가 되었다는 듯 멀어지는 아이의 손을 그는 말없이 응시했다. 어딘가 여상스러운 아이의 말투는 어르고 달래듯 달콤하기 그지없어서. 끝을 알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지독하리만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지 마. 어느새 어린아이가 된 나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멀어지는 아이를 향해 달음박질친다. 그럼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더욱더 멀어졌다.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공존하고 그럴 리 없다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먼저부터 괴로워 하며 나인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회하며 그렇게 괴로워하렴.'
가증스럽다는 듯 싸늘하게 일갈한 아이가 빨간 화마 속으로 사라진다. 어찌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가냘픈 등을 나인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불같은 화마가 저마저 삼켜버리며 그대로 의식이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싸늘하게 식은 침대 위였다.
. . .
시내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위치.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숲과 조화를 이루며 세워져 있다. 그 뒤편을 잘 살펴보면 작은 정원이 딸린 2층 주택이 보일 것인데 성당의 후원을 받고 있는 보육원으로, 바로 그가 방문하게 될 장소였다.
성당만큼의 임팩트는 없지만 아담하게 지어진 보육 시설은 복지가 꽤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의 출처는 불분명했지만 경험해온 바 어른의 사정이랄 게 없어, 이곳만큼은 신뢰해도 무방하리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원 안쪽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끈 길 줄 몰랐다. 게다가 하나같이 밝은 것이 세상의 불평등이라곤 모를 것 같은 순수함이 넘쳐흘렀다.
그리 꾸밈없는 순간을 그는 사랑했다. 마치 안식처를 찾은듯한 평온함도 느꼈다. 이 세상의 불순물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 걸까. 이따금 가슴 한편에서 씁쓸함이 고개를 치밀다가도 아이 특유의 말랑말랑한 기운이 저조한 기분을 다시 따뜻하게 적셔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주에 한 번은 그곳에 들렸고 적은 금액이긴 하나 익명으로 후원도 했다. 또 시간이 되는 대로 아이들의 돌보미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벙커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작은 선의였다. 가끔씩 의뢰로 못 올 때도 있었으나 의뢰가 없는 때는 꼭 들려 손을 벌리곤 했더랬지.
"기부금은 늘 그랬듯 익명으로 달아둘까요?"
제법 굳은살이 두드러진 손이 그의 손에서 돈 봉투를 가볍게 건네 받는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고용인이 세미 정장 차림새의 그를 살갑게 응대하고 있었다. 창밖을 지그시 응시하던 눈길이 고용인을 향해 돌아가고 고동색 눈동자와 푸른색 눈동자가 잠시 동안 시선을 교환한다. 이내 피식 미소 지은 그의 어깨가 한차례 위로 들렸다 내려앉았다.
"당연한 말씀을." "하하, 이쪽은 절차대로 진행해야 돼서요. 아시죠?"
그 절차가 후원금 관련 절차는 아닌 걸로 아는데. 봉투를 아기 다루듯 안주머니에 고이 품은 고용인이 깍듯하게 뜨거운 커피를 내온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나 볼법한 서글서글한 얼굴을 하며 산뜻한 말투를 흉내 내고는 오시는 길에 차는 막히지 않았냐 따위의 일상적인 대화를 걸어왔다. 그에, 그도 이 소꿉놀이에 동참해 주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명분이 필요한 일이기에 그럴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니 동참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떠들썩했던 그 소문 들었나요?" "아, 대부호만 노린다는 연쇄살인 사건 말입니까." "네네 그거 말이에요. 공격당한 사람들 중에 드디어 살아있는 생존자가 발견됐다고 하던데 알고 계셨나요?"
러셀 하워드. 산듯하기 짝이 없는 금발 벽안의 청년 러셀 하워드(23세)는 이곳 보육원 출신이었지만 워낙 수완이 좋아 이른 나이에 사제가 된 인물이었다. 동시에 보육원의 총 관리자였으며 그와 특별한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말이다.
"몸집이 큰 들짐승의 소행이라는 말이 돌던데 맞습니까?" "와... 형제님, 저보다 더 빠삭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일각에선 그 짐승이 능력자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러셀씨도 같은 의견 입니까?" "글쎄요~? 이다음부터는 금액이 세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질문에 음흉한 웃음기를 띄며 러셀이 작게 속삭였다. 이것이 세간에서 신실한 신자로 알려진 러셀 하워드의 본모습 중 극히 일부분 되시겠다.
사실 돈 밝히는 걸로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러셀은 어찌 된 영문인지 뒤 세계에 대해 빠삭했다. 게다가 러셀 하워드는 자신의 손님이 될 사람을 보는 눈썰미가 매우 탁월했다. 자신의 도움이 간절한 사람들이 대게 입이 무거운 법이라 그쪽으로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손님이 될 이를 선택하는 데 있어 러셀은 늘 신중에 신중을 기여했고 이것이 점차 제 손님을 단박에 알아보는 능력으로 발전한 셈이다. 그리고 나인은 그의 손님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의뢰인 중 하나였다.
청렴결백해야 할 신부인 입장이면서 왜 그리 뒤 세계에 대해 잘 아냐 묻는다면 당연 영업 비밀이라는 진부한 답이 들려오곤 했었지. 자신은 어디까지나 조금 독특한 일반인이라 했던가? 틀린 말도 아니다. 그도 그럴게 러셀 하워드는 그저 주워들은 게 많은 것뿐이지 죄를 저지를 만큼의 악인은 못되었다. 돈을 밝힌다는 게 흠이지만 서류상 신을 믿는 이답게 그쪽도 깨끗했더랬다.
결국은 어른의 사정인 셈이다. 그가 무어라 할 것도 없었다. 아발란체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장사 수완이다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지금은 그걸 알고 싶은게 아니니까요."
정중하게 사과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부터 확인했다. 열린 창문 밖과 문밖에서 사람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러셀 하워드가 주변에 사람을 무른듯했다. 이럴 때 보면 일 처리가 참 확실한 사람이다. 여하간 중요한 대목은 지금부터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그 주제를 말로 꺼내는 건 언제나 고역인지라 갈증이 이는 목구멍이 까슬거렸다.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그것보다... 예의 그 건의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어... 음. 안타깝게도 영 진전이 없네요." "그렇,습니까?"
하긴 벌써 몇 해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나? 오늘 아침 꾸었던 꿈 때문에 자꾸만 나쁜쪽으로 생각이 고여버린다. 좋지 않은 징후인데... . 그는 설풋 인상을 찡그리고는 꽉 조여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반대로 러셀은 제가 송구스럽습니다는듯 저자세로 나왔다.
"정보가 적은 게 원인이라고 해야 할지... 하하하... 그래도 비슷한 사람은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차라리 죽었다 생각하고 살면 좋으련만 모진 미련이 자꾸만 고약한 희망을 품어서, 결국은 제 발목을 잡는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했지. 그 하나에 몇 년을 거기에 매달렸다. 그러니 이건 저주 같은 거다. 과거에 못 박힌 듯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런 서글픈 저주.
속은 꺼멓게 타들어가는데 겉가죽만큼은 평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가족을 잊고 정상인처럼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형제님. 제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머리카락 한올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음... ."
러셀이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르르르 굴리며 위로 아닌 제안을 해보지만 그는 들어줄 생각이 없는듯하다. 그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다시 침묵했다. 저 사람도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러셀은 눈치만 살피며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뭐가 어쨌든 그가 무엇을 결정하든 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가. 그럼에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정이 들어서일까? 눈앞의 그가 기약 없는 기다림 앞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지켜본 본인은 잘 알기에 러셀은 그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걱정 차 말해주는 거 압니다. 다만... 제가 아직까지는 그 걸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미련이 남나 봅니다. 적어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예정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긴 고요 후 미련이 담뿍 베어든 저음이 말문을 텄다. 체념을 입에 담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해, 내쉬는 짧은 한숨에 많은 감정이 서려있었다. 그래서 러셀은 저가 더 미안한 듯 자신의 볼게를 긁적이며 하하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끝내도 본인이 끝내는 게 맞는데 그걸 옆에서 두드려 팬 저의 행동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런 것을 구태여 내버려 둘 위인은 못됐다. 이내 그저 너털 미소 지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러셀과 나인 사이에서 감돌던 무거운 분위기가 단번에 전환된 건 그를 발견한 아이들 무리가 열린 창문을 막 넘나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형아!"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아이가 그의 코앞까지 오도 도도 다가오더니 이내 두 팔을 벌려 앉아있던 그의 허리께를 와락 안았었다. 분 냄새가 빠지지 않은 아이의 말캉한 볼 위에 붉은 홍조가 만연했다.
그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릴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는 가볍게 아이를 안아들자 화사하게도 웃어준다. 꺄르르 웃는 소리마저 어쩜 이리 사랑스러울까. 그는 아이들의 등장에 조금 울적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무척이나 따뜻해서 어떠한 감정이라 딱 잘라 정의할수 없었다.
다만 러셀 하워드는 다른 의미로 어버버 했다. 순식간에 창백한 낯짝을하곤 창문을 넘나들고 있는 주요 인물 세명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아델, 린다, 유리! 맙소사 지금 이층 창문으로 들어온 거 맞죠?" "협! 신부님이랑 같이 있던 거예요?" "헐, ×됐다." "세상에! 유리!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수가 있어요?"
망연자실한 표정이 세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다. 아마 이후부터는 긴 설교 시간이 될 터였다.
아발란치의 빌딩 어딘가에 있는 방. 머스티어는 혼자서 이곳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들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에, 연구실에 가기에도, 리더를 보기에도 그닥 중요한 용건이 없었으므로 혼자 밖이 잘 보이는 곳에서 창밖 구경이나 하던 그였다.
"음."
지난번 이상한 검은 존재의 공격에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던 -물론 지금은 재생된- 손을 몇번 쥐었다 피기도 하고 능력을 발동해 보기도 하던 머스티어는 다시금 뒷짐을 지고 서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가끔 뒤돌아 볼 때 통유리벽 너머로 마주치던 조직원들이 인사를 건내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다가도 이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벽 너머로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췌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늘 무표정하고, 말도 잘 안하니 아무래도 그렇게 느낄 법 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곳에서 굳이 관계를 만들어 어울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머스티어에겐 오히려 어떻게든 제게 말 붙여보려는 이들이 이상하게 느껴질테지만.
그는 집으로 슬슬 돌아갈 준비 중이었다. 그의 양부모가 오늘 만찬을 준비하겠다 했거든. 벤자민은 능숙하게 자신의 교복 매무새를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갈 땐 꼭 교복 차림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친구네 집에서 저녁 때까지 공부하고 오겠다' 는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문득, 밖으로 나오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친근한 미소를 띄며, 그 방향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자고로 친절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법이더라고.
"밖에 뭐 보여요?"
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신기했던 듯 벤자민 역시 그 방향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에겐 감흥이 없는 풍경이었지만, 글쎄. 그래도 흥미있어하는 표정은 짓고 있었다.
"잠깐~ 럴러비아 씨? 농담인거 아시면서 짓궂게 왜 그래요?" "호의로 듣고 한번만 넘어가 줘요, 누님. 예?"
헤실거리는 어조였다만, 그 끝에는 긴장감도 섞여 있었을 테다. 말을 다 하고 나면 이제 자신의 안위는 걱정 밖이라는 듯, 다시금 여유로운 듯 럴러비아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쪽 이름은 뭘까나~ 요즘 기분은 어때요? 일은 힘들진 않았고?"
출동했던가, 현장에서 보질 못한듯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는 쪼그려 앉아 자로프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그리 물어온다. 여유야 있다는 럴러비아의 말에 답하는 것은 때문에 조금 늦어졌었다.
"요즘들어 직접적인 전투가 늘어서 말이죠, 칼 보다는 거리를 조금 더 벌릴수 있는 무기가 필요해요." "총을 쏘자니 탄창 값이 무섭고, 하던 대로 하자니 제가 육탄전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저번 전투 때를 회상해 본다면, 분명 때리려 든 것은 한 대도 못 맞췄었다. 그 금발머리 여성(살로메)과 싸웠을 때엔 분명 압살할 정도였는데, 다부진 체격의 성인 남성 (노아)과 비해본다면 자신의 실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타쿠미츠가 총알받이 역을 맡아 공격을 죄 회피했기에 그가 살아돌아온 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표정은 목소리로 유추하건데, 별로 진중한 것은 아닐 테다.
걱정이라. 이곳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 아니던가?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머스티어는 걱정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성의에 감탄했다. 감성이란게 풍부했다면 분명 벤자민의 표정과 말에 감동 받았겠지만 글쎄. 그는 분명 그런 쪽과 거리가 멀었다.
"분명 바뀐 세상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거에요. 참, 커피 좋아하나요?"
태연하게 대답한 그는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고 보니 교복을 입고 있는데 커피를 권해도 괜찮은걸까? 아무래도 그의 가게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시원한 커피나 에이드를 많이 마셨던지라 꽤 고민됐다.
"운석보단 거기서 나왔던 게 더 생각나죠."
굳이 따지자면 그 기묘한 생명체도 운석에서 나온거지만 아무튼. 손이 사라지고, 그 부위서부터 자신의 생명력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불쾌감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죽여도 죽지않던 그것은 분명 그 깡통이 아니었다면 자신들로만은 막을 수 없었을 터였다.
잠깐의 침묵 후,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잘 포장된 유명 체인점의 슈가쿠키를 꺼낸다. 하트모양 쿠키에 분홍 초콜릿이 덮여있는걸 보아, 육안으로도 달달한게 느껴질 테다. 그는 럴러비아가 일부러 자로프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어 굳이 정정하진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면 필히 나서면 귀찮은 일일 것이라 여겨서이다.
"채찍은 뭔가 가면을 써야 될것 같은 이미지라서, 창 쪽이 더 나을것 같네요. 날붙이는 써 본 경험도 있고 하니."
이미 얼굴 가린 사람이 해 봤자 의미 없는 논리려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쿠키를 자로프에게 건낸다. 쿠키를 잡던 손에 힘이 짧게 들어갔었다는 것은 그를 유심히 관찰해야만 알수 있었을 테다.
쿠키를 꺼내는 세이메이의 모습에 자로프는 눈을 반짝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는 어린애인듯 시선이 떠나가질 않는다. 그리고는 이내 럴러비아에게 소곤소곤 뭐라고 말하는데, 럴러비아는 그걸 듣고는 놀라서 '그런것까지 허락받을 필요 없는데요?!' 하고 놀라는게 다 들려왔다. 유토가 그녀에게 자로프를 맡긴걸지, 비교적 아지트 내에서 따로노는 둘끼리 뭉친건진 잘 모르겠지만.. 저 모습으로 보아 서로 대화가 잘 통하는건 아닌 모양이다.
"창이라면 몇개 있는데~"
한편, 자로프가 세이메이에게서 쿠키를 받는 사이, 그녀는 여러가지 창을 꺼내서 들고왔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대장장이가 아닌만큼, 무기들도 전부 평범한 창이 아니라 뭔가 장치가 달려있는게 보였다.
"그럼 이런 느낌으로~ 일까요?"
그녀는 세이메이의 주문에 따라 자루쪽에도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달린 창을 보였다. 뭔가 부스터 같은게 달려있고, 샘플이라 그런지 내부가 훤히 드러나있는 형태이다.
노아는 주먹을 쥐었다가 피며 이곳이 꿈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 특유의 어색한 느낌이 없었다. 왜 자신은 이것이 꿈인지 알고있는 건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심지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마치 그들이 진짜 동료인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같은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꿈이 이어질 리는 없다. 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착각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4개의 문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마치 들어오라는 듯 유혹하며 둥둥 떠다니는 문, 들어가지 않으면 실례일 것이라 생각하며 가운데의 문을 열었다.
요즘 좀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이 시간에 자면서 이런 이상한 꿈을 꿀리가 없으니까. 어찌됐든 4개의 문들은 대놓고 들어오라는 의사를 표하고 있었다. 이 문들을 열었을 때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찌됐든 꿈 속이니까 내 맘대로 해야지. 머스티어는 첫번째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노아가 두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구소? 진료소? 뭔가 애매하게 섞인 공간이 나타났다. 여러가지 기계 부품들이 있고, 치료용 약물 같은것도 있고. 뭐하는 곳인지.... 그리고 뭔가 흑백처리가 된 상태로 멈춰져있는 사람이 하나 보이고, 테이블이 보이고, 특이하게 생긴 장치가 보인다. 본능적으로 뭔가, 이것들은 게임마냥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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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티어는 첫번째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시험관이 눈에 띄는 지하실 같은 분위기의 방이 펼쳐져 있었다. 시험관 안에 있는 아이, 주변의 연구원들, 그리고 컴퓨터로 추정되는 장치. 이렇게 3가지 부분이 흑백처리 되어있다.
벤자민은 두번째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무슨 공장과 같은것이 보이는데 그렇게나 대규모의 모습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무언가 완성중인 로봇형태의 물건, 그것을 조작하고 있는 사람이 흑백처리 되어있다.
세이메이는 세번째 문을 열었고, 그곳은 인큐베이터 같은게 잔뜩 늘어져있는 실험장이었다. 인큐베이터와 연결된 장치,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연구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그리고 그 옆의 유토. 가 흑백처리 되어있다.
이반이 네번째 문을 열자, 평범하디 평범해보이는 가정집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여성, 여성과 연결되어 있는 모니터, 그리고 금이간 천장이 흑백처리 되어있다.
"뭘까요 이건? 유토님의 음울한 과거?" "그런거 없이 태생적으로 순수 악인 쪽이 더 재밌을것 같지만요."
"...설마 무전 들리지는 않겠죠..? 이게 꿈이 아니면 저 *된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한다. 말 사이에 침묵 한 점 없는 꼴을 보아하니 답변은 일말의 기대조차 안 한다는 듯. 유토와 연구원 쪽으로 걸어나가더니, 직접적인 터치 없이 유토의 머리통 위로 손을 휘저었다, 키를 가늠하려는 양.
"리더, 그게 다 큰 거구나..."
말투에서 연민 묻어나는 걸 듣자하니 좀 짜증날수도 있겠다. 그 행동을 끝으로 다시 인큐베이터 쪽으로 움직이더니 , 그 안에 실험체가 뭔지 열어 확인하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갑작스럽게 가택침입을 한 꼴이 됐다.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집이 눈 앞에 펼쳐졌기에 그는 의아한 듯 살짝 고갤 기울이다가 방 안에 있는 여성과 그녀에게 연결된 모니터, 그리고 천장을 살펴보았다. 천장만 흑백인 모습, 뭐길래 저런 걸까 생각하다가도.
노아가 사람을 건드리자 곧바로 그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흑백은 아니게 되었지만 누군지 알아볼수가 없다. 기묘하다면 기묘한 감각이었지만, 다른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은 노아를 인식하지 못하는듯 했다. 마치 리플레이를 보는 기분. 그 사람은 뭔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곧 누군가가 이 곳으로 들어온다. 오른팔을 잃은걸로 보이는 사람과, 그를 부축해온 사람.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아가 건드렸던 사람은 서둘러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무슨 의료시설 같은거였던걸까? 아무튼 여러 수술 장비들과 기계장치들이 꺼내진다. ... 기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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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메이가 다 큰거니 뭐니 하고있는 시점에서 붉은돌이 빛나기 시작한다. 붉은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라는 문구가 보이는듯 하지만. 당연히 실제로 아무런 메세지 같은것도 없고, 인큐베이터를 선택하자 인큐베이터의 색이 돌아온다. 안에는 평범해 보이는 아이가 들어있을 뿐이고, 인큐베이터에는 호스같은게 연결되어 뭔가를 공급중인듯 보였다.
이반이 모니터로 다가가자 모니터의 색이 돌아온다. 거기에는 여성의 심박수라던가 정신상태등을 체크하고 있는것이 보였다. 여성이 차고있는 팔찌와 연동되어서 현재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스캔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로 여성의 건강이나 그런것보단 심리적 요인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머스티어가 컴퓨터를 건드려보자 컴퓨터의 색이 돌아오며 모니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실험, 정확히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름이 떠오른다, 유토피아 계획? 이라고 써있는 이름만 놓고보면 좋은 계획. 대충 훑어보니 이 계획의 핵심은 이 시험관 안의 아이인 모양으로. 이 아이는 완전히 무에서부터 창조한 인공인간 비슷한 존재인 모양이다. 흔히 말하는 호문클루스 그런거라고 생각해도 좋을듯하다.
색이 돌아온 인큐베이터를 보곤 감흥 없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급받는 것이 액체인지, 기체인지 확인 하려고는 했으나 어차피 그게 뭔지 알든 말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크게 연연하진 않았다.
"넌 뭔가 말해줄것 같진 않네요."
잘 자요, 그리 중얼거리며 인큐베이터를 다시금 덮어 주었다. 인큐베이터와 연결된 장치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와, 그것이 무엇을 공급하는지 확인하려다가 멈춰 섰다. 무시할 뻔했던 본능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붉은 돌을 쓰면 뭔가 일이 생길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는 연구원 쪽으로 걸어서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돌을 꺼내들어 연구원의 얼굴 앞에 휘저었다.
이건, 꿈인가? 꿈이라고는 기억의 단편 아닌 악몽 뿐이었는데 고된 임무 때문인지 별 꿈을 다 꾼다 싶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강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문중 하나를 들어가야 겠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자각몽인지 온 몸의 근육이 움직이는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네개의 문 중 3번째 문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별 허무맹랑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것처럼 헛숨을 내뱉었다. 그게 될 세상이었으면 뒷세계가 한 도시 내에서 떡하니 존재할리가 없을텐데도. 몇번 더 내용을 읽은 뒤 장치에서 물러났다. 자세한 전말을 알고있고, 분명 본인들끼리의 얘기를 하느라 정보를 흘릴 존재들은 여기 많았다.
노아가 기계장치를 건드리자 장치의 색이 돌아온다. 그것은 평범한 장치는 아니었고 여러가지의 의수나, 의족등의 부품을 보관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노아는 직접 이것을 써본적은 없으나, 이 안의 의수들이나 의족들에 관해서는 떠오르는바가 있었다. 이것은 벙커의 동료들이 착용하고 있는 의수나 의족, 즉 '수술'을 받은 흔적들과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수술'을 하는곳일까, 노아는 직접 수술을 받아본적이 없었기에 이 광경 자체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 사이 수술은 벌써 끝난거 같았고, 남자는 새로운 오른팔을 달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ㅡ 실제로 이랬다는건 아닌거 같다, 이 공간의 특성같은 느낌 ㅡ 다시 사람이 멈춘다. - 나인은 세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벙커의 아지트가 보인다. 뜻밖의 익숙한 풍경... 은 아닌것이. 이것은 현재의 풍경보다 조금 더 예전으로 보인다. 나인이 아직 정식으로 입단하기 직전? 혹은 직후? 이 시기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 아지트의 문, 그리고 문 근처의 남성이 흑백처리 되어있다. - 세이메이가 확인했을때, 무언가 기체같은게 적지않게 뿜어져 나오는것이 보였다. 건강에 안 좋아보인다.. 아무튼 연구원 앞에서 세이메이가 돌을 휘젓고 있을때쯤, 뒤에서 누군가 세이메이를 툭툭 치는 느낌이 든다. 뒤를 돌아본다면, 움직이기 시작한 연구원과는 별개로 유토가 세이메이를 당기고 있다. 흑백의 저 유토가 아니다, 다른 유토였다.
"뭔가 반응은... 없군."
이것은 움직이기 시작한 연구원의 목소리, 그는 인큐베이터를 돌면서 뭔가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영 좋은 결과는 아닌듯 하다. - 이반은 모니터를 보다가 이번에는 여성을 건드려봤고, 여성의 색이 돌아온다. 붉은 머리에, 음.. 글쎄. 유토가 크면 이런 느낌이 않을까 싶은 모습이다. 다만 인상은 훨씬 순해서, 꽤나 얌전해 보이는 느낌이었고. 그녀는 이반을 인식하지 못한채 평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별게 없어서, 혼자서 밥을 해먹거나 멍을 때리거나 할 뿐이다. 이 공간에는 TV라던가 책이라던가 그런것도 없어보여서 더 그런듯. 그러나 왜일까, 이반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있는데 무언가.. 시선이 느껴진다. - 머스티어는 연구원들을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정착했군, 클론 같은건 쉬운데 역시 원하는 능력과 스펙같은걸 하나하나 조정해서 처음부터 만들려니 어려웠어." "그래도 이걸로 반은 끝났다고 봐야지. 성장까지는 얼마나 걸릴거 같아?" "대략 1주일이면 될거 같은데?"
아마도 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듯한데, 유토피아랑 이 아이의 존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편 연구원들의 말에 맞춰서 아이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 중간에 흑백이긴하나 머스티어에게도 익숙한 유토의 모습이 지나가기도 했다.
뒤를 툭툭 치는 느낌에 돌아보면, 유토가 또 한명 있었다. 그는 당겨지는 힘에 순순히 끌려가되, 그 방정맞은 입은 멈추질 않는다.
"헉, 상사가 두 명이라니. 이건 악몽이 아닐까요?"
자신을 당겼던 유토에게 능청스레 말을 붙여본다. 아니근데리더제가욕쫌했다고여기까지쫓아온건아니지요?이것은필시무언가의메타포여만합니다현실일리없어! 속사포로 뇌리에 스친 무언가의 항연, 생명의 위협(?)은 곧 수그러들자 그는 다시금 연구원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무슨 반응?"
그리 말을 걸어본다만, 그것이 향하는 게 유토일지, 아니면 그 연구원일지는 그조차도 모를테다. 가방 끈이 짧아도 그 기체는 몸에 이롭진 않은듯 했고, 실험도 나쁘게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의 적응력 실험인가? 일부러 혹독한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켜 더 강인하게 키워낸다거나, 그런 것은 실험을 떠나 양지에도 있는 일 아닌가. 그는 짤막한 추측은 곧 접고 다시금 이 환경에 신경을 돌린다.
멈춘 사람을 다시 건드려본 노아였으나, 초록색 머리가 보이나 싶다가 다시 흑백으로 변해버렸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이블을 건드려봤는데 그러자 테이블의 색이 돌아오면서 무언가 데굴데굴 떨어진다. 테이블에서 떨어진것은 푸른빛을 내는, 무언가의 '핵' 같은것인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노아가 만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상들은 건드려도 실제로 만진다기보단 화면을 터치하는 애매한 감각이었기 때문에 이게 특별한걸지도 모른다. - 나인은 주변을 꽤 살펴보다가 문을 열어봤는데, 그러자마자 문과 함께 바깥의 색이 돌아왔다. 허나 그 광경은 결코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밖에는 적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아지트를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꽤나 순식간이었는데, 벙커와 적들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아마도 기습을 당한것으로 보이는데. 여전히 나인은 인식되지 않고, 개입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벙커에게 꽤나 불리하게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 머스티어가 실험관을 두드리자, 흑백인 상태로 성장하던 아이는 다시 원래의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뒤. 색이 돌아오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까본것처럼 유토와 똑같이 성장한뒤,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유토가 성장하면 이렇게 될거 같다. 싶은 붉은 머리의 여성으로 완전히 성장을 끝냈는데. 그 시점에서 갑자기 흑백처리가 된 연구원이 아닌, 뭔가 돈 많아보이는 인간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는것을 볼 수 있었다. - "뭐 임마."
유토는 세이메이를 가볍게 퍽 ㅡ 아프다 ㅡ 치고는 무슨 반응이냐는 누구에게 한건지 알 수 없는 물음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게 그거야, 자로프랑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이 받은 실험. 태아부터 신생아 단계까지 강력한 능력을 위한 약품을 주입하고 있는거지." "뭐 결과는 알다싶이 대실패지만~"
실제로 각성한건 자로프뿐이고, 성공이 한명이라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로프가 정말 실험때문에 능력을 손에 넣은건지조차 불확실한 실정이었다. - 벤자민은 조립중으로 보이는 로봇을 툭하고 건드렸는데, 그러자 로봇이 색을 되찾으며 알아서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메이드 로봇? 으로 보인다. 피부라던가 눈이라던가 한없이 사람에 가까워서 만약 조립되고 있는 이 광경을 본게 아니라면. 이것이 사람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고 완벽했다. 대충봐도 엄청난 기술력이란건 알 수 있어보인다.
어째 반응이 없는 것이, 지금 그가 그녀를 보고 있긴 해도 그녀는 그가 보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언젠가 꿈에 대해 서적을 접했던 기억이 있는데... 까먹었다. 어쨌든 굉장히 단조롭게 지내는 여성의 모습을 보던 그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듯한 시선을 찾아 고갤 돌렸다. 시선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다.
황당함에 말이 나오지않았다. 외형만 빌린 건지, 그렇다면 아발란치의 리더는 이 인조인간과 아까 그 유토 중 누구인지.
"유토... 피아."
계획의 이름도 유토피아였는데, 이게 우연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호스트도 이 계획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운석의 임무도 호스트에게서 유토로 전달된 것이고, 그 생명력을 흡수하는 듯한 공격도 지금 생각하면 리더와 같은 능력이니까.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어째선지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노아가 장치를 줍자 빛이 더 강해졌다.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엇일까 이것은. 그리고 그것을 든 채로 사람에게 접촉해보니 이제서야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익숙하다면 익숙한 얼굴이었다. 라프람, 그녀였다. 이 사람이 수술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있는지 몰라도 이 광경으로 보아 '수술'이 가능한 사람임은 확실하겠지. 그리고 그 순간, 공간 자체가 붕괴되었고 눈을 떴을때는 우주? 와 비슷한 공간에 시계바늘이 떠다니는. 여긴 또 뭔가싶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검은 코트에, 모자, 가면까지 꽁꽁싸매고 있는 사람이 떠다니는게 보였다. - 나인은 이 광경을 보면서, 생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 광경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다는것을. 나인 본인이 이 전투에 참가한것은 아니지만 벙커에게 꽤 오래전에 구해진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떠오르지 않는, 이 기묘한 모순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인은 이것을 알고있다, 이 전투의 결과 벙커가 한번은 해산했고 그 이후가 지금의 벙커의 모습이라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싸운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싸웠었는지, 다른 이들이 전부 어떻게 된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전투라는, 그 날의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싸우고 있는 아말과 크레일등의 모습이 이 꿈속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것도 잠시, 이 꿈은 더 이상 보여줄 수 없다는듯이 나인을 노아가 있는 우주와 같은 공간에 데려다놓고 말았다. 옆의 노아도, 떠다니는 사람도 확인할 수 있다. - 벤자민은 로봇을 건드리다간 이것을 만든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건드려봤는데, 초록색 머리의 여성이 보였다. 누구인지까진 잘 모르겠으나, 그녀는 이 로봇에 꽤나 심혈을 기울인듯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애초에 벤자민을 인식하지 못하는듯 대답을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그녀는 다시 움직였는데, 이내 로봇 메이드를 완성시키고 나서는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다만 조금 특이하게, 메이드는 어딜봐도 사람같이 보였으나 단 한군데,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여성은 이반을 눈치채지 못한듯 움직이다가, 멍때리다가, 를 반복하고 있었으나. 이반이 시선을 눈치챈 그 순간. 이반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때,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친 그런 수준이 아니라. 당신의 코앞까지 어느새 도착해서는 한뼘도 들어가지 않는 거리에서 똑바로, 빤히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그 모습에 공포마저 느껴졌는데, 그것은 분노한 유토를 본듯한 기분이었다. - "나? 나는 그냥 구경했지."
저들이 하는 실험이 실패할건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맞장구쳐줬다며 유토는 깔깔 거렸다. 그러는 사이 흑백의 유토는 사라져버렸지만, 별 문제는 없을것이다.
"아니.. 이 공간 자체는 꿈이 맞는거 같지만. 나나 다른 애들은 진짜일걸." "정확히는 나는 너 때문에 말려든거지만."
유토는 세이메이가 들고있는 돌을 가리켰고, 그러는 사이 허공에 다른 문이 생겼다. - 시험관 안의 유토로 추정되는 여성은 잠들어 있는듯 했다, 애초에 강제로 성장중이니까 의식이 있을리가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시선이 느껴지고 있다고 생각될즈음, 머스티어의 앞에는 문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는걸까? 하지만 여기서 할건 정말 이걸로 끝인걸까?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과 함께 시험관의 색은 아직 흑백이 되진 않았었다.
문은 나중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의 앞에 생겨나는 문을 외면했다. 실험관에 손을 대고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는 그들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아직 회색으로 변하지 않은 실험관, 움직이는 사람들. 분명 이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는 깨질것 같은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기억하고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에 혼란스러움은 가중되었다. 눈앞에 생생하리만치 익숙한 과거의 편린에 왜 그걸 잊었을까 싶다가도 종국에는 그것이 정말 제 기억이 맞는지 의문을 들게 한다. 그건 누군가 제 머리속을 강제로 헤집은것마냥 더러운 기분이었다. 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한차례 비틀거리던 몸뚱이가 가벼워진건 꿈속에서 끄집어 내듯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로 넘어갔을때였다.
그제야 그는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멍하니 공중에 뜬 의문의 검은 사내를 지그시 응시하는 고동색 눈이 적계심으로 물들여지고 그는 노아의 존재에, 경계심을 풀공 어리둥절할수밖에 없었다.
뭔가 더 떠보려는 듯한 말투. 여전히 가벼운지라 그 나잇다 특유의 '아님말구ㅋ'가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새 사라져버린 흑백의 유토. 그 부재에 그는 잠깐 고개를 그녀가 있던 쪽으로 고정했었다. 다만 그것도 짧은지라, 별다른 의문 없이 다시금 고개는 유토 쪽으로 돌아온다.
"진짜군요? 신기해라, 전에 유토님과 얘기 나눌 때도 이런 몽환적인 기분이였던거 같은데." "혹시 이번 일도 유토님이 집행하신 건가요?"
그보다 이게 현실이라면, 유토는 그가 뒷담 까던걸 어디까지 들었을까, 그는 그 생각에 어째 뒷목이 아려왔다. 이 곳을 나갈때 어께 위에 자신의 머리가 온전하길 짧게 빌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돌에 시선이 간다.
"이거 때문에요? 미안해라. 지금이라도 돌아가셔도 되는데."
그는 돌을 유토 쪽으로 건넨다. 이 돌이 귀환까지 책임져 줄지는 모르겠지만, 보낼 힘이 있으면 역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목숨 아까운줄 모르는 10대는 탐사나 더 해보고 싶은데, 어째 허락 받고 가야 할 것만 같네요."
"계속해도 될까요?" 그가 묻는다. 유토가 허락한다면 그는 곧바로 문으로 걸어가 열려고 할 것이다.
검은 코트의 남자는 노아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낄낄 웃었다. 아마도 이 공간과 관계되어 있는 인물일거 같다.. 라는 막연한 느낌은 들긴 하지만, 아직 확실한건 없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곧 이 곳도 사라질거에요."
남자는 노아와 나인에게 그렇게 말하며 둥둥 당신들을 향해 다가왔다. 딱히 공격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있죠, 여러분. 여러분은 벙커에서 뭘 하고 싶나요?"
남자는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 나인과, 자신을 보고 있는 노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 "..... 당신은, 이반. 이라는 이름인가."
그녀는 이반을 빤히 바라보다가는 말을 걸어준것에는 대답하지 않은채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름은 어디서 알아온건지.. 그러나 적대 의사는 없는듯 이내 평범하게 떨어지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서 개입해온건지 몰라도, 여기도 얼마 못 버틸거 같네.."
그녀의 말대로일까, 미세하게 공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허공에 문이 생겨있었다.
"나한테 볼일이 남아있을까?" - "............"
옆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유토피아의 완성에 대해 축하 비슷한 말들을 나누고 있었고. 자신들'만'의 낙원이 곧일거라면 기뻐하는,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시험관 속에 있던 그녀는 갑자기 머스티어의 말에 반응한듯 눈을 뜨고 손을 뻗어왔는데. 동시에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뭘까, 저 문으로 데려다 달라는걸까? - 벤자민은 불을 피어올린뒤 그대로 로봇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불꽃은 로봇을 불태우지는 못했고. 오히려 불과 로봇의 손에 나오는 빛이 반응하더니 벤자민은 몸속으로 무언가 흘러들어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에너지가 흘러 들어오는 느낌. 빛이 몸속으로, 혈관을 타고 들어오며 고양감마저 느껴져오고 있었다. 능력은 평소의 2배는 강력해져 있는듯했고 ㅡ 이 공간에 영향을 주진 못하지만 ㅡ 이것이 한계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언가 고동치는 소리가 들린것도 같았다. 그러는 사이 뒤에는 문이 열려 있었고 말이다. - "어차피 곧 돌아가게 될거 같은데."
그녀는 이 공간 자체가 곧 붕괴될거 같다고 말하며 세이메이의 말에 적당히 말대꾸 해주다가는 문을 슥 바라봤다. 그리고는 언제부터 그런걸 일일히 허락받았냐며 피식 웃으며 같이 전진했는데..
문이 열리자 보인것은 12개의 홀로그램 화상과, 그 중심에 서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있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어찌나 어두운지 여성과 12개의 화상 외에는 보이지 않으며, 화상도 사람의 얼굴이 아닌 실루엣으로만 보여 누군지는 알 수 없어보인다.
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는데! 그는 충격받은 듯(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움직이더니 그녀가 적대적이지 않은 듯 뒤로 물러서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주시했다. 갑자기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을까. 물론 그 뒤에 들려온 말에 공간에 생기는 균열을 확인한 그는 문 역시 확인하고 다시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야, 이름도 듣고 싶고, 여기서 같이 나가는 건 어떤가 제안도 해보고 싶구만."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 이 장소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는 그리 말했다.
"능력자들을~? 결국 복수를 하겠다는거네요." "그럼 당신의 그 운명이 아주 잘 짜여진 각본대로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각본가를 죽일건가요?"
"각본가를 죽이고나면, 각본대로 움직인 이들도 죽이고, 연관된 이들도 죽이고?"
남성은 노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걸까? 거기에 이어 나인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둥둥 뜬채로 턱을 괴기 시작했다
"추상적이네요- 하지만 벙커는 그런 조직이 아니잖아요? 아발란치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조직일터.."
뭐 됐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아십니까? 이 도시는 생각보다 가짜가 많다는거." "예를 들면, 여러분의 동료라거나, 혹은 가족도. 진짜가 아닐수도 있어요." - "음~ 기억이 났다? 아니, 기억이 날 예정이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이반을 바라봤으나, 이름을 묻는 이반의 물음에 가볍게 답했다.
"유토피아, 당신에게는 유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그리고는 이반의 제안에 응한듯, 문을 열고 당신을 데리고 나갔는데. 그러자 세이메이가 있는 12개의 화상이 있는 장소로 도착할 수 있었다. - 머스티어는 실험관을 쉽게 깨트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다른 이들이 반응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실험관 안에 있던 유토 ㅡ로 추정되는 ㅡ 만은 그대로 나올 수 있었고. 동시에 문이 열리며 자동적으로 둘은 이동하게 되었다. 그곳은 세이메이와 작은 유토가 있는 그 방이었다.
. .
머스티어와 이반이 도착하자, 둘이 각각 데려온 붉은 머리의 여성과, 세이메이가 데리고 있던 유토가 반응하더니. 셋은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은 평소의 자그마한 유토가 아닌 붉은 머리의 여성의 모습이었으나. 머스티어와 이반이 보던 그 얌전한 인상이 아닌, 평소의 유토와 같은 위압감과 잔혹성이 엿보이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이 모습은 오랜만이네, 정말 그리운게 잔뜩이야. 이 방도 그렇구~?"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는 모인 이들을 한번 슥-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있지, 얘들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지위, 돈. 그런거랑, 나랑. 어느쪽이 더 좋아?"
이름 참. 뒤이어 유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라는 말에 '멋지구만!' 이라며 덧붙이는 그였다. 어쨌건 문을 빠져나가니 머스티어도 비슷한 모습의 여성을 데려온 모양인데, 이미 도착해 있던 유토와 합체(?)를 해버렸다. 그리고 셋이 하나가 된 뒤의 모습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었지만 표정 자체는 지금까지 보던 유토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흠, 둘 중에 하나란 말이지?"
평생 먹을 수 있는 지위와 돈. 아니면 유토.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둘 중에 뭐가 더 좋냐고 하기에 알맞은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두 선택지가 서로 비교할 만한 대상인지 말이다. 그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네 쪽이다만."
물론 잠시 붉은 안광이 점멸하는 걸로 보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눈을 깜빡였을 뿐일지도.
세이메이와 함께 있던 유토를 보자마자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연한거지만 아무래도 진짜 유토가 있을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셋이 하나가 됐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내 머스티어는 놀란 표정을 지웠다. 물론 사람이 합쳐지고 제 보스의 몸이 자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가 알던 유토였다.
"좋다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제가 충성을 바친 대상이 돈과 지위, 명예 같은게 아닌 유토님이라는 것이겠죠."
돈이야 뒷세계에 머무는 그에게 있어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지위나 명예는 무가치했다.
그는 노아의 말에 매우 담백하게 긍정했다. 이 남자가 가짜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고. 이 남자가 아는것이 진짜라는 보장도 당연히 없다. 그렇기에 생각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뭐 어차피 그렇다~ 는 거니까요. 깊게 생각해도 좋고 안해도 좋아요." "그저 의외로, 여러분의 실패가 세계에 꽤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정도만, 기억해두시면 좋구."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식으로 말하는 그의 표정은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웃고 있을것이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거, 궁금한거 있으면 말해드릴까요? 절 믿을 수 있다면.. 말이죠?" - "어머~ 감동이네."
행동거지나 표정은 유토 그자체였으나, 그 대상의 몸이 상당히 커버린터라 묘하게 파괴력이 커졌다. 아무튼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은뒤 잠시 시선을 12개의 화상과, 그 중심에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렸고. 흑백이던 공간에 색이 돌아오며 목소리가 들렸다.
- "그래, 계획대로 너는 생명을 끌어모으는 '코어'가 되는거다 이해하고 있겠지." "네.."
아마도 과거로 추정되는 그 광경에서의 그녀는, 꽤 생기없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생명을 끌어모은다니
- "우리는 그 생명으로 무한을 즐기며 영생하고, 낙원에서 보낼 수 있어." - "물론 너에게도 합당한 위치는 약속하마,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니 말이야." - "생명을 충당하기 위한 클론도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곧이겠군 허허."
화상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흔히들 생각하는 불로불사를 실현시키려는 이들로 보인다.
"대충 정리하자면, 저들은 낙원이라 불리는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영원히 왕으로 군림한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듯해." "불로불사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내 능력만 있다면.. 하지만 문제는 낙원쪽이지." "이 도시를 말하는게 아냐, 저들은 정말 새로운 '세계' 혹은 공간을 창조하려고 하는거니까."
이내 유토가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게 아발란치야. 정확히는 내가 아발란치를 차지하는거부터가 계획의 일부인거지만." "그리고 계획에는 파츠가 있지. 영생의 파츠가 나라면, 너희는 낙원의 파츠." "결과적으로 너희를 파츠로서 '소모'하려는게 1차 계획이야. 여기까지 질문?"
그는 노아에게 그렇게 말하며 가면을 벗었는데, 가면 뒤에는 가면이 있었다. 낄낄거리는 꼴을 보아 가면을 벗어서 맨 얼굴을 보여줄 생각따위는 없는 모양이다.
"목적?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쩌면 그냥 개꿈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생각으로, 노아를 대하고 있었다.
"음, 그러네요. 복수와 세계의 존망.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어느쪽을 고를래요?" - "특정 상황.. 이 맞아, 다만 그 방법은 한가지가 아니라는게 좀 다르지." "가령 저번의 운석에서도, 원래라면 너희중 몇명이 죽었어야 했지만....." "일이 잘 풀렸어, 나는 내 귀여운 애들을 일회용으로 써줄 생각이 없거든."
그녀는 키득거리며 화상들을 가리켰다. 12개.. 아마 저들이 핵심인물일터.
"낙원은 좋아, 하지만 굳이 소모하지 않고도 방법이 다 있거든." "너희는 내가 써줄게, 그 대신 너희를 나한테 바쳐. 아발란치가 아니라 내 소유물이 되는거야."
그녀의 눈이 빛났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날 배신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날 우선시해." "그러면 내가 진정한 낙원을 보여줄게."
이것은 선택지였다. 그녀로서는 몇 없는 죽음을 동반하지 않는 선택지. 그녀의 소속이 될것인지, 그냥 이대로 아발란치로서 만족할것인지. 어느쪽이든 리스크는 존재한다.
그는 둘의 대답을 들으며 이렇게 말했는데, 덧붙여서 더 적을지도 모르고~ 라고 애매하게 답했다.
"이런, 거기까지 도달하다니.."
한편 이츠와의 말에 남자는 D백작이 자신인걸 어떻게 알았냐는듯 반응했지만. 당연히도 그게 뭔지 본인도 몰라보인다.
"아직 모른다, 휘둘리는 세상이 싫다라~ 뭐 그렇겠죠."
답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남자는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럴거면 왜 물어본걸까 싶기도 하지만, 이 남자의 생각은 알 방도가 없다.
"자 이제 시간도 끝나가네요. 마지막 서비스라도 드릴까요? 자신이 추구하는 힘이 있다면 말해보세요."
꽤나 추상적인 질문, 그러나 깨져가는 공간속 그 질문은 꽤 깊은 무게감을 자아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말이다.. 아무튼 정말 시간이 없어보인다. 더 할말이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일수도. - 그녀는 대답을 듣고나서는 아주 작게 웃은뒤 부서져가는 공간속에서 눈을 깜박였다. 아무래도 시간 자체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듯한데.
"뭐 이걸 만든놈이 누군지 몰라도, 됐어~ 슬슬 이쪽도 준비했어야하는 타이밍이니까." "일단 지금 당장 뭘 할 필요는 없어. 내 방법은 정확한 시기가 필요하거든."
그 전까지는 그저, 평소 하던대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도록 있으면 그만이라며 그녀는 미소지었다.
"대신 눈을 뜨면, 조금 강해져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손을 뻗어서 각자의 어깨를 툭툭- 쳤는데. 어깨에 뭔가 새겨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직접 봐도 뭐가 남은것은 없고, 아마 이게 '강해진다'의 조건 같은게 아닐까. 공간은 어느새 한계가 보이고 있다. 뭘 더 말할게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일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보성의 세계에서밖에 살수 없다던가, 합일의 세계에서 살려면 인간임을 포기하는게 낫다던가,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그 '상보성'이라는 단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만들어진 세상이든 만들어가는 세상이든, 인간은 혼자서 모든걸 해낼 수 없으니.
"오, 그래도 선물은 주고 가는 거야? 얼굴 하나 안보여주면서도 친절하네~"
하필이면 그 서비스가 자신이 추구하는 힘 같은 것이라니, 적어도 그녀에겐 골치아픈 권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걸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힘은 있으면 좋겠네! 나, 딱히 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대부분 몸으로 해결하걸랑~"
딱히 별도의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라. 때가 되면 말을 전해줄 생각인걸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천천히 수염을 쓸었다. 평소대로라. 그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였다. 유토의 손이 닿은 어깨에 시선을 주던 머스티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공간을 바라봤다.
세이메이가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럴러비아는 쟤 왜 저래? 라는듯이 자로프를 바라봤고. 자로프도 잘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직 잘 몰라서.."
그러던 와중 자로프는 쿠키를 오물거리면서 대답했는데, 아마 뭘 해도 되고, 뭘 하면 안되는지 잘 몰라서 항상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물론 럴러비아가 그런데 눈치가 없다보니 잘 눈치채주지는 못하는듯 하지만..
"빗자루보단 보드처럼 쓰는걸 가정했는데, 빗자루도.. 가능할걸요."
대신 엄청 흔들릴걸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폭발은 하지 않길 기도하면 될거라며 진심인지 모를 소리를 덧붙였다. 그리고는 창을 잡고 슥, 끝부분과 앞부분의 자루를 쥔채로 눌러보는데 압축하듯이 짧아지며 날 부분도 수납된다. 완전히 압축 된 크기는 손바닥 정도의 막대기로 보인다.
"맥스 사료하고 간식, 핫케이크 믹스랑 시리얼, 우유. 기억하고 있어요. 두 분 다 나를 아직 7살로 보신다니까."
교복 차림인 벤자민이 양부모와 통화하며 말했다. 하교하는 김에 심부름을 나온 것이다. 장바구니에 시리얼을 담은 벤자민이 다음 코너로 이동했다. 그의 양부모는 오늘부터 출장을 갈 예정이기에, 집에는 오로지 벤자민과 맥스만 있을 예정이었다.
"... 아, 미안합니다"
우유를 사기 위해, 이동하려던 순간에 발을 헛딛었다. 맞은 편에 있던 사람과 어까를 부딪힌 그가 사과하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창피했던 것이다. 부딪힌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기까지 했다. 그는 황급히 잡힌 팔과 휘청이던 다리에 힘을 줘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했다.
"그리고 고마워요. 순간, 발을 헛딛었거든요."
난처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으며, 물흐르듯 사과한 벤자민이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머스티어는 리더의 기분이 좋아보일 때 가는게 좋을거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눈치가 있는 아발란치의 멤버라면 당연히 알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앞에서 알짱대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경험을 한 사람이 의외로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말이 담백하게도 뱉어지는게, 머스티어의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었던 것 같다.
"..."
그는 소중한게 있냐는 질문에 침묵했다. 카페? 그저 취미라 목숨을 걸만큼 소중하다 물으면 아마 아니라 대답할 것이다. 하긴 그런게 있었다면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굴러먹지 않았겠지.
“...... 그래야겠어요. 리더 그대는....... 정말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가 선선이 대답했다. 그리고 목숨이 소중하다는 머스티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입에 물린 종이컵을 지긋하게 깨물었다. 목숨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벤자민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왜?’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 역시 ‘모르겠다’ 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두 분이 걱정하시겠네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커피 고마웠어요.” 걱정해도신경쓰지않을것이다 그는 성격 좋은 표정을 지으며 빙긋 미소 지었다. 능숙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사고라는 건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으로부터 온다. 미리 알아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러니까 일어난 사건들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란 것이고. 그 이유는 다양했으나 지금 이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란.
"네가 Ice-cream man인가?" "그런데, 뭐 하는 놈이냐?"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다니던 남성의 머리를 철퇴로 으깨는 그였을 것이다. 아니, 정정하겠다. 주변에 서 있던 남성들의 총알 세례에 금속의 파열음과 피가 튀기고, 그 와중에 계속 움직이며 한명 한명 붙잡아 뭉개는 걸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구나 싶다. 이건 예상하고 대비하여 피할 수 있는 사고 같은 게 아니다. 일종의 재해, 그러니까 지극히 보통의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혹시 오늘도 사람이 모이지 않을까 미리 말해두지는 않았던 사항인데, 일단 최소인원이 모였으니 지금 말해두겠습니다. 이벤트를 하기 전에, 뭐~ 대충 보이다싶이 지금 있는 인원이 아발란치가 대부분입니다. 후에 벙커가 와도 노아주 한명, 정도가 끝이라고 봐야하니까요..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음~ 사실상 대립이라는 이 스레의 주제에 관해서는 더 끌어가기 힘들거 같아서요. 오늘 이대로 진행한다면 그냥 아발란치 스토리 진행. 정도가 될거 같네요. 그러니까 끔, 그래도 괜찮은지 미리 물어봐두고 시작을 하던 할게요.
음...가능하다면 인원수를 늘려서 원래 의도했던 대로 진행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접는 게 아니라 준비된 내용을 보여주시겠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거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서. 벙커 쪽 인원을 최근에는 어...정말...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제루샤는 서브캐릭터고, 포함한다고 해도 사실상 혼자니. 음... 아쉽긴 하지만 최선이 그렇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 바빠서 요즘 눈팅만 하던 세이메이주야, 캡 답레는 시간 날 때 올리려고 했는데 말이지... 스레가 어찌 되든 캡이 편한 대로 했으면 좋겠어, 솔직히 캡 말대로 신규 인원은 더 안 올거 같고, 아발란치 인원이 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많은 인원도 아니고... 난 그냥 참가자라 속 편히 놀다 가지만 캡은 이게 고생이 참 많았겠구나 고생했어..:(
운석은 유토피아 프로젝트중 하나에요. 원래의 스토리대로라면 여러분은 5개의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만나게 됐을건데요.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구조물 그 자체가 생명을 빨아들이는 장치로서. 주변의 모든 생명을 흡수하기 위한 용도에요. 운석은 기껏해야 한 지역 정도였지만, 후에 나올 5번째의 규모는 지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