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메이와 함께 있던 유토를 보자마자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연한거지만 아무래도 진짜 유토가 있을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셋이 하나가 됐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내 머스티어는 놀란 표정을 지웠다. 물론 사람이 합쳐지고 제 보스의 몸이 자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가 알던 유토였다.
"좋다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제가 충성을 바친 대상이 돈과 지위, 명예 같은게 아닌 유토님이라는 것이겠죠."
돈이야 뒷세계에 머무는 그에게 있어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지위나 명예는 무가치했다.
그는 노아의 말에 매우 담백하게 긍정했다. 이 남자가 가짜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고. 이 남자가 아는것이 진짜라는 보장도 당연히 없다. 그렇기에 생각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뭐 어차피 그렇다~ 는 거니까요. 깊게 생각해도 좋고 안해도 좋아요." "그저 의외로, 여러분의 실패가 세계에 꽤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정도만, 기억해두시면 좋구."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식으로 말하는 그의 표정은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웃고 있을것이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거, 궁금한거 있으면 말해드릴까요? 절 믿을 수 있다면.. 말이죠?" - "어머~ 감동이네."
행동거지나 표정은 유토 그자체였으나, 그 대상의 몸이 상당히 커버린터라 묘하게 파괴력이 커졌다. 아무튼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은뒤 잠시 시선을 12개의 화상과, 그 중심에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렸고. 흑백이던 공간에 색이 돌아오며 목소리가 들렸다.
- "그래, 계획대로 너는 생명을 끌어모으는 '코어'가 되는거다 이해하고 있겠지." "네.."
아마도 과거로 추정되는 그 광경에서의 그녀는, 꽤 생기없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생명을 끌어모은다니
- "우리는 그 생명으로 무한을 즐기며 영생하고, 낙원에서 보낼 수 있어." - "물론 너에게도 합당한 위치는 약속하마,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니 말이야." - "생명을 충당하기 위한 클론도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곧이겠군 허허."
화상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흔히들 생각하는 불로불사를 실현시키려는 이들로 보인다.
"대충 정리하자면, 저들은 낙원이라 불리는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영원히 왕으로 군림한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듯해." "불로불사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내 능력만 있다면.. 하지만 문제는 낙원쪽이지." "이 도시를 말하는게 아냐, 저들은 정말 새로운 '세계' 혹은 공간을 창조하려고 하는거니까."
이내 유토가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게 아발란치야. 정확히는 내가 아발란치를 차지하는거부터가 계획의 일부인거지만." "그리고 계획에는 파츠가 있지. 영생의 파츠가 나라면, 너희는 낙원의 파츠." "결과적으로 너희를 파츠로서 '소모'하려는게 1차 계획이야. 여기까지 질문?"
그는 노아에게 그렇게 말하며 가면을 벗었는데, 가면 뒤에는 가면이 있었다. 낄낄거리는 꼴을 보아 가면을 벗어서 맨 얼굴을 보여줄 생각따위는 없는 모양이다.
"목적?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쩌면 그냥 개꿈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생각으로, 노아를 대하고 있었다.
"음, 그러네요. 복수와 세계의 존망.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어느쪽을 고를래요?" - "특정 상황.. 이 맞아, 다만 그 방법은 한가지가 아니라는게 좀 다르지." "가령 저번의 운석에서도, 원래라면 너희중 몇명이 죽었어야 했지만....." "일이 잘 풀렸어, 나는 내 귀여운 애들을 일회용으로 써줄 생각이 없거든."
그녀는 키득거리며 화상들을 가리켰다. 12개.. 아마 저들이 핵심인물일터.
"낙원은 좋아, 하지만 굳이 소모하지 않고도 방법이 다 있거든." "너희는 내가 써줄게, 그 대신 너희를 나한테 바쳐. 아발란치가 아니라 내 소유물이 되는거야."
그녀의 눈이 빛났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날 배신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날 우선시해." "그러면 내가 진정한 낙원을 보여줄게."
이것은 선택지였다. 그녀로서는 몇 없는 죽음을 동반하지 않는 선택지. 그녀의 소속이 될것인지, 그냥 이대로 아발란치로서 만족할것인지. 어느쪽이든 리스크는 존재한다.
그는 둘의 대답을 들으며 이렇게 말했는데, 덧붙여서 더 적을지도 모르고~ 라고 애매하게 답했다.
"이런, 거기까지 도달하다니.."
한편 이츠와의 말에 남자는 D백작이 자신인걸 어떻게 알았냐는듯 반응했지만. 당연히도 그게 뭔지 본인도 몰라보인다.
"아직 모른다, 휘둘리는 세상이 싫다라~ 뭐 그렇겠죠."
답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남자는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럴거면 왜 물어본걸까 싶기도 하지만, 이 남자의 생각은 알 방도가 없다.
"자 이제 시간도 끝나가네요. 마지막 서비스라도 드릴까요? 자신이 추구하는 힘이 있다면 말해보세요."
꽤나 추상적인 질문, 그러나 깨져가는 공간속 그 질문은 꽤 깊은 무게감을 자아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말이다.. 아무튼 정말 시간이 없어보인다. 더 할말이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일수도. - 그녀는 대답을 듣고나서는 아주 작게 웃은뒤 부서져가는 공간속에서 눈을 깜박였다. 아무래도 시간 자체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듯한데.
"뭐 이걸 만든놈이 누군지 몰라도, 됐어~ 슬슬 이쪽도 준비했어야하는 타이밍이니까." "일단 지금 당장 뭘 할 필요는 없어. 내 방법은 정확한 시기가 필요하거든."
그 전까지는 그저, 평소 하던대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도록 있으면 그만이라며 그녀는 미소지었다.
"대신 눈을 뜨면, 조금 강해져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손을 뻗어서 각자의 어깨를 툭툭- 쳤는데. 어깨에 뭔가 새겨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직접 봐도 뭐가 남은것은 없고, 아마 이게 '강해진다'의 조건 같은게 아닐까. 공간은 어느새 한계가 보이고 있다. 뭘 더 말할게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일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보성의 세계에서밖에 살수 없다던가, 합일의 세계에서 살려면 인간임을 포기하는게 낫다던가,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그 '상보성'이라는 단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만들어진 세상이든 만들어가는 세상이든, 인간은 혼자서 모든걸 해낼 수 없으니.
"오, 그래도 선물은 주고 가는 거야? 얼굴 하나 안보여주면서도 친절하네~"
하필이면 그 서비스가 자신이 추구하는 힘 같은 것이라니, 적어도 그녀에겐 골치아픈 권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걸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힘은 있으면 좋겠네! 나, 딱히 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대부분 몸으로 해결하걸랑~"
딱히 별도의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라. 때가 되면 말을 전해줄 생각인걸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천천히 수염을 쓸었다. 평소대로라. 그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였다. 유토의 손이 닿은 어깨에 시선을 주던 머스티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공간을 바라봤다.
세이메이가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럴러비아는 쟤 왜 저래? 라는듯이 자로프를 바라봤고. 자로프도 잘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직 잘 몰라서.."
그러던 와중 자로프는 쿠키를 오물거리면서 대답했는데, 아마 뭘 해도 되고, 뭘 하면 안되는지 잘 몰라서 항상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물론 럴러비아가 그런데 눈치가 없다보니 잘 눈치채주지는 못하는듯 하지만..
"빗자루보단 보드처럼 쓰는걸 가정했는데, 빗자루도.. 가능할걸요."
대신 엄청 흔들릴걸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폭발은 하지 않길 기도하면 될거라며 진심인지 모를 소리를 덧붙였다. 그리고는 창을 잡고 슥, 끝부분과 앞부분의 자루를 쥔채로 눌러보는데 압축하듯이 짧아지며 날 부분도 수납된다. 완전히 압축 된 크기는 손바닥 정도의 막대기로 보인다.
"맥스 사료하고 간식, 핫케이크 믹스랑 시리얼, 우유. 기억하고 있어요. 두 분 다 나를 아직 7살로 보신다니까."
교복 차림인 벤자민이 양부모와 통화하며 말했다. 하교하는 김에 심부름을 나온 것이다. 장바구니에 시리얼을 담은 벤자민이 다음 코너로 이동했다. 그의 양부모는 오늘부터 출장을 갈 예정이기에, 집에는 오로지 벤자민과 맥스만 있을 예정이었다.
"... 아, 미안합니다"
우유를 사기 위해, 이동하려던 순간에 발을 헛딛었다. 맞은 편에 있던 사람과 어까를 부딪힌 그가 사과하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창피했던 것이다. 부딪힌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기까지 했다. 그는 황급히 잡힌 팔과 휘청이던 다리에 힘을 줘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했다.
"그리고 고마워요. 순간, 발을 헛딛었거든요."
난처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으며, 물흐르듯 사과한 벤자민이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