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15072> 자유 상황극 스레 4 :: 505

이름 없음

2022-12-31 16:48:08 - 2024-09-05 17:41:22

0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6:48:08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242 이름 없음 (zoYpzlW6Qg)

2023-03-23 (거의 끝나감) 23:01:27

>>241
(빼앗은 담배까지 손에 두 개비가 쥐어진다. 이걸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 건지, 그래도 돈 주고 산 걸텐데 버려도 되는 건가 싶은 고민이다. 일단은 교복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내가 피려던 거랑 라이터는 코치쌤 걸 쌔벼온건데, 입에 이미 물었으니 버릴 수 밖에 없고…. 코치쌤이야 친한 사이라 별 생각 없다만 반장이랑은 같은 반이란 것 빼고 접점이 없다. 과언이 아니라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이 없었다. 그러던 중 들려오는 단어. 맞담.) 하, 야. 나 담배 안 피거든? 꼬라지 이러면 다 담배필 줄 아는 건 공부 좀 한단 놈도 똑같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들켰으니 담배 핀다고 생각할 것도 같긴 하다. 하지만 억울했다. 불 안 붙였다고! 못 붙였다고! 손가락 아리다고!)
폐 썩어 뒤지는게 장래희망인가…. (혼잣말이라기엔 듣든 말든 상관없단 듯 궁시렁거렸다. 궁시렁거리는 걸 듣고 반장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간, 이 꼬인 상황을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였다. 학생부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이 다 같은 반응일테니까. 자신이 담배를 폈다고 하면 드디어 걸렸냐고 쥐 잡듯 잡을 것이고, 반장도 담배를 핀다고 말해보았자 반장이 담배를 피겠냐고 할게 빤해보였다. 한마디로 나 뭣됐는데?) 닌 뺏어간 거 돌려주는 사람 봤냐?

243 이름 없음 (O7zHvwsDrs)

2023-03-25 (파란날) 10:26:58

>>242
그렇지만 너 담배 피려고 하고 있었잖아? (반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인즉슨 정론이다. 행색이 양아치같건 말건, 오늘 담배 피는 게 처음이건 아니건, 담배를 피려고 시도하던 순간에 반장과 마주쳤다는 것은 사실이니. 그러다 그는 네 손에 들려있는 라이터를 보곤 킥킥 웃었다.) 첫 시도인 건 믿어줄게. (하고 웃던 반장은, 네 투덜거리는 소리에 웃는 소리를 거두고 평소의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걸었다. 결국 겉모습 보고 떠드는 건 너도 피차일반인 것 같으니 말이다. 당연하다. 겉모습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그 사람의 표면이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돌려줄래. 나한텐 그게 타이레놀 같은 거라서.

244 이름 없음 (O/QwQ/0QLA)

2023-03-25 (파란날) 11:52:22

>>243
아, 안 피잖아. 눈 장식이야? (담배를 핀 적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머리를 벅벅 헤집는다. 그러고나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고갯짓으로 탈탈 털어 손으로 빗어봤자 결이 상할 만큼 상한 탈색모이자 염색모는 부스스했다.) 어, 그래. 참 고마워 돌아가시겠다. (이미 뭣된 건 똑같은데 담배 돌려주나 안 돌려주나 똑같지 않나. 돌려주길 바라는 반장을 빤 쳐다보다 샐쭉 웃는다. 교복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 말고도 무언가 들어있었다. 작고 긴 막대 모양의 불량식품. 아ㅍ로!) 야, 자. 내가 특별히 빌려준다. (분홍, 노랑, 연두, 하늘. 색도 참 유치한 불량식품이다. 분홍색을 집어 입에 물고 네게는 노랑색을 건넸다. 이런 거 먹다가 들키면 혼나는 것도, 담배 피다 걸려서 혼나는 것도 매한가지다. 코치쌤 너무 팍팍하다고.) 이것도 맞담이라고 대충 쳐.

245 이름 없음 (5TzwkaEYqs)

2023-03-25 (파란날) 16:45:14

>>244
(사람에게 있어 겉모습은 가장 먼저 마주치는 언덕이다.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일단 언덕을 넘어가봐야 안다. 그러나 일단 조금 올라서 넘어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네가 건네주는 아폴로에서 반장은 생소한 것을 보았는지, 눈을 깜빡인다. 가면같은 미소 너머로, 호기심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응?
(일단 내미는 것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먹어본 적 없는 간식이다- 어떻게 먹는지는 안다. 누군가 먹는 것을 본 적은 있으니까. 다만 이렇게 손에 쥐어보는 게 처음이라. 살아가는 데 있어 쓰잘데기없는 것은 모두 쳐낼 것을 학습강요받은 삶인 탓에, 이런 것을 손에 대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마침내 견디다 못해 그런 쓰잘데기없는 것들에 손을 뻗치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닿은 게 담배였다는 것은 불행한 우연이다-. 반장은 조금 어색한 손짓으로 아ㅍ로를 꼼지락대다 입에 물고 안의 내용물을 깨물어서 이빨로 짜내 본다. 알기 쉬운 포도당 덩어리가 혀끝으로 떨어진다. 니코틴의 각성 효과에야 비할 수 없겠다만, 일단 달짝지근한 게 혀끝에 닿으니 기분은 한결 나아진다.)
응, 괜찮네.
(반장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조금 편안해진다.)

246 이름 없음 (MdNUqgzvVg)

2023-03-25 (파란날) 17:28:45

>>245
(분홍색을 입에 물고 있다가 하늘색도 입에 문다. 물려있는 끝 부분만 이로 짜내 조금 먹었고 안 먹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하면 금방 그 이유가 밝혀진다. 그러니까, 담배는 검지랑 중지로 잡았지? 아ㅍ로 두개를 담배 개비라도 되는 듯 손가락 사이에 끼더니 후- 입바람 소리 낸다. 담배 피는 시늉 하고는 널 바라보며 또 얄궂게 웃는다.) 내가 이겼다? 난 두개, 넌 하나. (담배를 동시에 두 개피 피는 것도, 불량식품을 동시에 두 개 먹는 것도 그다지 이겼다 졌다 따질만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장난치는 기분은 유쾌하다고 웃는 모양이 개구지기도 하고 해맑기도 했다. 장난질이 끝나면 웃음도 금방 끝나고, 손에 들린 아폴로 봉지를 빤 쳐다본다. 걸리면 분명 뒤지게 혼나는데, 쓰읍.) 너 가져라. (네게 내밀고는 잠시 시야를 멀리도 던진다. 짬 처리하는게 아니라는 핑계를 고민 중이었다.) 뇌물. (피지도 않은 담배를 굳이 선생님들한테 이르지 말란 건가보다.)

247 이름 없음 (CPEtzx/f92)

2023-04-07 (불탄다..!) 00:55:21

오늘은 평소보다 유난히 달이 밝은 날이었다.

보라빛 자색 머리카락을 지난 사내는 달을 가득 담고 있는 호수가 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그 호수를 바라봤다. 이토록 아름답고 예쁜 풍경을 과연 이후에도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사내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뭐가 어찌되었건 내일은 결전의 날이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고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마법사 동료의 전송 마법을 이용하여 자신과 동료들은 이 세계에 전쟁의 불씨를 피운 세력들의 본거지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거기서 살아남을지, 죽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마족 등등. 처음에는 으르렁거리기 바빴으나 어느 순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동료가 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 함께 하지 않았는가.

사내는 원래 그저 한 작은 왕국에서 기사로서 일하고 있던 이였다. 허나 그 왕국은 지금 이 지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계를 어두컴컴한 파멸의 어둠 속으로 밀어넣으려고 하는 '그 세력'의 암약으로 많은 이들이 제물이 되어 사라졌으나 사내는 겨우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에 동료. 그리고 더 나아가 왕족들까지. 정말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제물이 되어 소멸했으며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였다. 그 날 이후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그들의 존재를 쫓았다. 그들을 쫓는 것이 자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뭐든지 이용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쫓는 다른 이들과 함께 행동했고 지금 이 순간에 온 것이었다. 다양한 종족이 있었고 그 종족의 차이로 이런저런 트러블이 있었으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지금은 누구보다 믿음직한 이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반드시...'

그들은 강하고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었다. 과연 동료들 중에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마 죽을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한 제 가슴 속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송곳니를 그들의 목덜미에 꽂아넣으리라. 그렇게 사내는 다짐했다.

부스럭. 생각을 다잡으며 호수를 바라보는 와중 풀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 동료? 허나 살기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료인가? 어느 쪽이건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내는 입을 열었다.

"누구야? 이 시간에 잠 안 자고 호수까지 나온 이는? 나처럼 마지막 풍경이 될 수도 있는 이 풍경 보려고 나온 인가?"

괜히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하면서 사내는 뒤를 확인하려고 했다.


#모든 싸움의 결전을 앞둔 밤에 제 삶의 마지막 풍경이 될지도 모르는 호수를 바라보는 와중에 발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는 상황이야!

#그냥 지나가던 길이라는 식으로 말해서 상황이 바로 끝나는 그런 상황만 아니면 좋겠어!

#온 이가 누구라도 상관없어. 동료도 괜찮고 결전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응원이나 말이라도 할까 싶어서 찾아온 이도 괜찮고 하다 못해 이간질이나 타락을 목적으로 온 적이라는 이도 상관없어. 다만 살기가 없다는 상황으로 썼으니 막 살기 풍기면서 죽이려고 왔다..같은 상황만 아니면 좋겠다 정도?

248 이름 없음 (v6hVBasVzo)

2023-04-07 (불탄다..!) 02:45:22

>>247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풀숲을 해치고 나타난 것은, 곰처럼 둥글고 우람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었다. 솥뚜껑처럼 큰 손으로 후드를 벗자, 싹싹한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사람좋은 인상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고, 기감도 좋으셔라. 일부러 살금살금 오고 있었는데 다 눈치채시고. 역시! 용사님이십니다~."

넉살 좋게 웃으며 사내를 추켜세우던 그는, 끙차, 하고 앓는 소리와 함께 매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물건이 한가득 들어있는지, 미어터질 듯 빵빵한 배낭은 내려놓는 소리도 퍽 육중했다. 무거운 가방 탓인지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켠 중년인은 가방을 열고 물건들을 하나 둘 씩 꺼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한두 번 읊어본 게 아닌 듯한 장사멘트가 청산유수처럼 술술 쏟아져나왔다.

"자자, 내일이면 결전이시죠? 마침 여기 기깔나는 포션들이 있는데요, 빨간 포션, 파란 포션만 있는 게 아니라 상태 이상 종류별로 요긴한 포션에, 피가 멎고 마나도 소량 회복해주는 보라색 포션까지! 위험한 전투일수록 보급은 단단히 해두는 게 상책 아니겠습니까. 없으면 챙기고, 있어도 더 쟁여두고! 포션 한 병에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습니다요, 나리~"

과장된 태도로 겁을 주듯 말하다가도 능청맞게 웃어 보인 상인은, 이내 큼직한 양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더욱 사근사근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물론 가격을 들으시면 고민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요. 근데 아시다시피 여까지 오기가 많이 빡세잖습니까. 마물도 심심찮게 나오고 말이지요. 제 목숨값 좀 보탠 가격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사... 응원하는 의미에서 샘플도 넉넉ㅡ히 드리겠습니다요, 헷헷헷."

249 이름 없음 (CPEtzx/f92)

2023-04-07 (불탄다..!) 19:05:49

>>248
사내는 눈앞의 중년인을 바라보며 일단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말 그대로 포션을 팔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일까. 물론 저 설명만 들으면 저 포션들은 확실히 탐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마음대로 돈을 써도 되느냐는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개인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당연히 저 포션들을 구입했겠으나 지금은 개인이 아니라 동료가 있었고 여정을 위한 금액은 공동의 것이었으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개인적으로 쓰기 위한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 말을 들어보면 가격이 꽤 비싼 모양이었으니까.

"장사하신다고 수고가 많으시네요. 여기까지 오신다고 말이에요."

허나 마냥 마음을 놓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방심하면 위험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바로 내일이 모든 것이 끝날지, 혹은 자신이 죽을지 알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그 갈림길에 발을 들이밀지도 못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아는가. 저 상대가 그 작자들에게 매수당한 존재일지. 포션이라고 말을 하나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사람 속마음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보급품은 제가 일방적으로 구입할 순 없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몇 개 정도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에 따르면 가격이 제법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용사는 아니니까 그 호칭은 가급적... 딱히 사명감이나 정의감으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자신에겐 너무나 과분한 호칭이었다. 정의를 위해서, 이 세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때는 동료들까지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던 자신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조금은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런 마음은 일단 지금은 접어두기로 하며 그는 숨을 내뱉으며 저 호수에 떠 있는 달처럼 사르륵 물에 녹이려고 했다. 이어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중년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되죠? 일단 가격을 좀 들어볼게요. 그보다.. 여기까진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도 궁금한데."

250 이름 없음 (jxwRrPHIcQ)

2023-04-08 (파란날) 03:42:58

>>249 "우리 똥강아지들 안 굶길라면 마수밭이고 뭐고 건너야지요. 돈 없는 게 마수보다 무섭습니다요."

상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넉살 좋게 주워섬기면서도, 서글서글한 눈웃음 너머로 용사의 낯빛을 살폈다. 제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는 있지만 어딘지 경계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거 참, 젊은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민간인이라도 죽을 각오 정도는 해야 입에 풀칠할까 말까인데. 뭐, 샘플 한 병 정도는 먹어드려야겠구먼, 에잉. 넉넉하게 챙겨왔기에 망정이지. 그런 궁리를 하는 사이,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보급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몇 병 구매할 의사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어딘가. 서비스 넉넉히 얹어드리고 보급을 관리하는 양반을 소개받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사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용사라는 호칭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그러십니까? 용사님이 싫으시면 뭐 총각이라 불러드릴깝쇼? 아니면 젊은이?"

거 까다로운 양반일세,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서글서글한 영업용 미소를 한가득 지어 보인 채 넉살 좋게 대꾸하던 상인은, 사내가 가격을 묻는가 하더니 이내 의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투로 여기까진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고 묻자 좀은 과장된 투로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이고야, 이 대륙에 여러분들 행선지 모르는 작자 있으면 간첩이우다. 간첩 거 속고만 사셨나. 아유, 됐습니다요. 자, 보십쇼."

먹고살기 힘들구먼, 참말로. 상인은 작은 칼로 제 손을 얕게 그었다. 보란 듯이 펼쳐 보인 솥뚜껑만 한 손에 그인 얕은 상처에서는 금세 피가 배어 나왔다. 안 아픈 것은 아니었는지, 아야야, 하고 엄살만은 아닌 듯한 앓는 소리를 내며 빨간색 포션이 담긴 조그마한 샘플 병을 따고 쭉 들이켜자, 그의 손바닥에 난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갔다. 오만상을 찡그리고, 상인은 다 아문 손으로 입가를 닦아낸 뒤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맛은 없습니다. 약이니까요. 그래도 보시다시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확실합니다요. 이건 샘플이고, 빨간 포션, 파란 포션은 단품으로는 이 정도 양에, 한 병당 3골드에 드리고 있습니다요. 보라색 포션은 5골드, 상태 이상 포션은 4골드." 가방에서 포션 병을 하나씩 꺼내 보이던 상인은, 이내 가방 안에서 큼직한 상자를 꺼냈다. "이게 원래 추천해드리려던 상품인데, 빨간 포션, 파란 포션, 보라 포션 다섯 개씩에, 독, 마비, 동상, 화상, 환각에 뭐, 석화, 수면, 감전... 뭐 그런 각종 상태 이상에 쓰는 포션 세트까지, 다 해서 87골드인데, 오늘만 특별히! 할인해서 80골드에 드리고 있습니다요. 물론 이렇게만 드리는 건 또 섭하니께,"

상인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제 엄지손가락만한 주머니를 상자 위에 얹었다.

"그리고 이게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제품인데, 포션 맛을 못 견디시는 분들을 위해 개발한 환약이외다. 이것도 씹으면 더럽게 쓰우만, 안 씹고 넘겨도 아까 포션 못지않게 효과가 즉각적이지요. 포션 세트 사주시면은 서비스도 서비스지만 건승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큰맘 먹고 빨간 거 세알 챙겨드리리다. 어떠십니까요?"

251 이름 없음 (RBEZ8LDzwE)

2023-04-08 (파란날) 10:52:06

>>250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타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엔 경계를 풀 수 없다는 것은 그의 방침이었다. 어쩌면 한순간에 왕국이 사라져버린, 더 정확히는 친구도, 동료도, 가족도 모두 재물이 되어 사라져버린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내 역시 미소를 유지했다. 아마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진 이런 자세를 아예 없앨 순 없으리라 생각하며 그는 상인의 행동에 집중했다. 제 손에 상처를 내니 붉은색 피가 방울을 맺어 드러났다. 그러다 포션을 먹더니 그 상처가 회복되는 것에 상당히 효능이 좋은 포션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장사 수완이 좋으시네요. 보통 이런 상인은 보기 힘든데."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절대로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하듯 이야기하며 사내는 제 주머니를 생각했다. 80골드라고 한다면 그렇게 나쁜 금액은 아니었다. 저 상인이 먹은 샘플 이외에는 모두 거짓 포션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독이 있다면 제 동료 중 하나가 바로 간파할 것이고 효능이 안 좋은데 효능이 좋다고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조차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돈이야 다시 모으면 되는 일이고 효능이 안 좋은 포션도 쓸모는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선 일단 속는 셈 치고 구입하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렇다면 사도록 하죠. 어차피 내일 있을 싸움에선 많은 격전이 예상되니까 포션은 있어서 나쁠 것이 없으니까요."

80골드. 주머니에서 커다란 10골드를 8개 꺼낸 후에 그는 상인에게 내밀었다.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 많았는데 바로 돌아가진 마시고 근처에 있는 여관이라도 잡아서 쉬세요. 아니. 이미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252 이름 없음 (1XtlC7ruKg)

2023-04-10 (모두 수고..) 02:02:04

>>251 "아유, 아무렴요. 그래도 이제 안전 확인은 되셨지요?"

손바닥은 깨끗이 아물었어도 채 가시지 않은 얼얼한 느낌에 버릇처럼 후후 불 뻔 했으나, 상인은 엄살을 피우는 대신 가볍게 털어내고는 히죽 웃어 보였다. 이내 사내가 의혹을 거두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칭찬을 건네자, 상인은 껄껄 웃으며 가벼운 투로 대답했다.

"우리 강아지들 맥이고 입히려니 이래 됐지요. 아이고, 나쁜놈들 잡아서 가난도 잡히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뭐, 어쩌겠습니까요, 열심히 만들고 파는 수밖에요!"

진담과 너스레를 섞어 주워섬기며 웃으려니, 사내가 구매 의사를 밝히며 10골드짜리 금화 여덟 닢을 꺼내 내밀어왔다. 상인은 지금까지 지어 보인 미소 중에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넙죽 대금을 받아 들고는 주머니에 넣은 뒤, 포션 세트가 든 상자에 환약 주머니를 넣어서는 사내에게 건넸다.

"아이고야, 시원시원하셔라!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재고는 이게 전부라 날이 밝는대로 돌아가봐야 합니다만 끝나실 때쯤 신제품까지 재고 꽉-꽉 채워서 또 오겠습니다. 그 때도 많이 사주십셔! 건승을 빌겠습니다요~"

상인은 금새 홀쭉해진 가방을 한 팔에 대충 매고는 90도로 허리를 숙여보인 뒤, 뒤 돌아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한껏 흥에 겨운 콧노래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지다, 이내 사내의 뒷모습과 함께 멀어져갔다.

253 이름 없음 (Bkv/nE4wfY)

2023-04-22 (파란날) 21:31:24

“우─왓!”

뭍에서 난 것들은 하늘을 향해 위로 자란다. 그렇다고 모두 하늘을 동경하지는 않을텐데 이 아이는 유달리 그것이 심했다. 눈이 부신 푸름을 눈에 담겠다고, 학교에서 도망쳐나왔다. 뜀박질로 모잘라서 자전거를 굴리기 위해 발을 세차게 굴렸다. 평일의 대낮은 의외로 한적하다. 모두가 회사에, 학교에,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속도를 내기 좋았다. 바람도, 여름이 다가온답시고 나날이 물씬 짙어져만 가는 녹음도 달가웠다. 풍경 구경에 혼이 빠져 점점 가까워지는 당신을 보지 못 했는가보다. 아이 판단에 브레이크로는 부족하겠고 방향도 꺾어야겠다 싶었다. 급하게 잡은 브레이크와 갑작스런 방향 꺾기, 큰 소리가 나는 건 응당 당연한 일이었는데 꽤 뒤늦게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 넘어지겠다고 버텨보려한 것인데 자전거거도 아이도 나란히 바닥행이다. 그래도 넘어짐을 미뤄보겠다고 난리친 덕에 다침은 덜 하겠다.

“미안! 해요! 안 다쳤어요?”

바닥에서 일어나기보다 퍼뜩 당신을 바라보며 안부를 묻는 걸 우선했다.

# 맥커터만 아니라면 누구든지 오키~

254 이름 없음 (R8bzdH.m16)

2023-04-25 (FIRE!) 06:34:59

>>253
"흐아악!"

약간은 맥 빠진 비명소리가 바로 뒤를 이었어. 볼품없는 아저씨는 바로 엉덩방아를 찧었지. 이 아저씨는 말이야, 평범한 회사원이었어. 업무에, 야근에, 사무실에서 나타나는 온갖 인간 군상극에 결국 못 견디고 뛰쳐나와버렸지만 말이야. 나올 때까지는 당당하게 걸어나왔는데, 막상 나오고보니 불안감이 가슴을 지배했지. 어쩌면 그래서일거야- 자꾸 핸드폰을 쳐다보며 이어폰으로 노래를 크게 듣고 주변을 의식하지 못했던 건. 그래서 이쪽도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아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그는 당황한 듯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한번 보았다가(아직 약정이 한참 남았는데! 하지만 다행이 손이 좀 까지긴 해도 핸드폰은 지켜낼 수 있었어.), 바로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갔어. 엉거주춤, 주저앉은 상태에서 허겁지겁 일어나 다가가는 모양새가 아주 좋진 않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마저도 저를 바라보며 묻는 것에 멈칫하고 말았지.

"학생 ㄱ..아니, 나야 괜찮은데-"

다시 다가가며, 아이를 훑어봤어. 아까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던데...자전거를 타면 어디 하나 까지기 쉬운데...하면서 말이야.

"학생은 괜찮아?"

255 이름 없음 (FE.BoLNYV6)

2023-04-25 (FIRE!) 21:47:31

시작이 있으면 끝 또한 있는 법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혼돈을 만드는 신이 나타났고 그 신을 따르는 이들이 나타났다. 세상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모든 것을 지워없애려고 하며 아무런 질서도 없는, 그야말로 약육강식과 다를바 없는 지옥같은 세상을 만들려는 그 움직임에 맞서 신은 이 모든 혼란을 끊어 없앨 수 있는 '용사'를 이 세상에 내려보냈다.

고아 출신으로서 열심히 공부하여 어떻게든 대학에 진학한 사내는 어느날처럼 강의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자취방에 들리기 위해 길을 걷다가 신호를 위반하고 가속하는 차에 치일뻔 했었다.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했으나 차에 부딪치기 직전, 신은 그 사내를 불러들였고 용사로서의 사명을 부여했다. 이어 신은 어느 한 제국에 계시를 내렸고 마법사들은 신의 계시에 따라 사내를 이 땅에 소환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혼란만 느끼던 사내였으나 제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 적응했고 이 세상에 어떤 위험이 닥쳤는지 파악했고 조금 오래 고민을 하던 끝에 이 세상을 위해서 검을 들고 싸우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그 여정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크게 동료들과 싸우는 일도 있었고,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수차례 있었다. 허나 최종적으로 사내는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신을 봉인하는데 성공했고 이 세상에 평화를 가지고 왔다. 물론 그것은 용사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사명을 마치고 사내에게 주어진 것은 두 개의 선택지였다.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갈 것인가. 사내는 자연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에 오고서 삼 년. 동료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허나 그런 자신을 결국 이세계에서 온 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귀족들도 제법 있었다. 견제를 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왜 빨리 돌아가지 않냐고 눈치를 주는 이들도 많았다. 그나마 제국 자체에서 무슨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사내는 나무에 기댄채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있는 달을 조용히 바라봤다. 너무 오래 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슬슬 결단을 내려야 했으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에 대해서 고민에 고민을 하며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한번씩 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는 것이 딱 고민하고 있을때의 버릇 그 자체였다.

조용히 들려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사내는 고개를 내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정말 말 그대로 맥커터짓.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당신에겐 볼일 없어요) 이런 것만 아니면 어떤 상황으로 와도 괜찮아. 굳이 이런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면 사내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는 이였으면 좋겠다 정도? 그래야 서로서로 핑퐁이 가능할 것 같아서! 로맨스건 그냥 동료끼리의 추억 그리기 이야기건 다른 소소한 이야기건 그건 정말로 어느 쪽이라도 괜찮아!

256 이름 없음 (J4s1n9HELo)

2023-04-25 (FIRE!) 23:13:06

식을 마치고 나니 피로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제였던가. 한때는 결혼이 두 사람의 사랑에 의해 맺어진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어떤 결혼은 축하보단 안타까운 시선을 받는다. 제겐 이 결혼이 그랬다.

제국 북부의 겨울은 아주 혹독하고 춥다고 했다. 제가 살던 왕국은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였다. 국토가 작으니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날씨였다. 잎사귀가 둥근 나무, 서늘하지도 따갑지더 않은 햇볕, 바람에 섞여드는 달큰한 꽃향기…. 그런 것들을 사랑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이곳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아, 그보다 앞서 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곳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혼자인 방은 적막하다. 대공비의 방이라고 했다. 방은 따뜻하지만 아늑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따금 나무타는 소리와 바람에 창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데 물 밖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물 속에 있는 사람이고.
살아남으세요. 가능하다면 행복하게 살아요. 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던 절박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덕분에 숨은 붙어있지만 이걸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그래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고해성사 같은 생각은 짧은 노크에 끊어지고, 침묵을 긍정이라 생각한 듯 천천히 문이 열린다. 허공 어드메를 쳐다보던 눈이 느리게 움직였다. 마주치는 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 망국의 공주와 제국의 북부대공이 정략결혼함.. 로판배경 적폐 설정입니다 ^^.. 삶의 의지 다 잃은 공주가 oO(언젠가는 죽인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의지 되찾은 순간

257 이름 없음 (nhsPaHzqZY)

2023-04-25 (FIRE!) 23:16:06

>>255

사내가 바라본 거기에는 언제 부터인가 그곳에 있었던 피와 같이 붉어 강렬하고, 새하얀 눈과 같이 선명한 화려한 형상의 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앳돼 보이는 소녀의 모습을 한 어느 형체가 있었다. 그것은, 소녀는 붉은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송이를 한 손에 쥔 채, 사내와 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이 세계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으며, 당신이 바라고 맞이하고 싶은 결말이란 무엇인가요"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소녀 이였고 사내에게 갑작스레 그렇게 물었다. 소녀는 그 물음 만을 남긴 채, 그저 손에 쥔 꽃과 사내를 바라보면서 마치 멈춰버린 듯이 그대로 있었다

258 이름 없음 (FE.BoLNYV6)

2023-04-25 (FIRE!) 23:32:06

>>257

발소리가 난 곳에 서 있는 소녀가 사내의 눈동자에 비쳤다.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붉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보아 귀족가의 사람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인 것일까. 아니. 어쩌면 전자일 확률이 더 높았다. 저런 드레스를 평범한 사람이 입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 허나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 어느 한 가능성에 몰두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손에 쥐고 있는 아름다운 꽃송이를 눈에 담던 와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이 세계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바라고 맞이하고 싶은 결말은 무엇인가. 무슨 의미인 것일까. 일단 질문을 들었으니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친구와 인연을 얻었고 동시에 이전에 살았던 삶을 잃었고 내가 바라고 있는 결말은 글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데. 불행하려고 살려는 이는 없고, 나 역시도 결국엔 뭐가 되었건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이세계에 와서 친구와 인연을 얻었으니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전에 살던 세계에서 이곳으로 왔으니 이전에 누리던 평범하던 삶을 잃었으니 절로 그렇게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것을 묻는건지 물어도 될까? 그보다 어디의 사람이니? 혹여나 귀족가의 고귀한 혈통이라고 한다면 무례를 용서해주겠어? 아직 내가 귀족 가문이라던가 이런 것에 대해서 조금 무지해서. 외우고 익히려고 노력을 하긴 하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선 면목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허나 어느 정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이 세계'라고 말을 굳이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이세계에서 온 이라는 것을 아는 이 같았으니까.

259 이름 없음 (FE.BoLNYV6)

2023-04-25 (FIRE!) 23:33:25

>>258 #라고 쓰긴 했는데 혹시나 사내와 동료인 누군가였다! 라는 설정으로 쓴 것이라면 얘기해줘! 바로 수정할테니까!
일단 글만 보면 초면의 소녀라는 느낌이 들어서 쓰긴 했거든.

260 이름 없음 (Vc8rLwPjA6)

2023-04-26 (水) 00:16:44

>>258

소녀가 사내의 곁에 그 모습을 나타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건넸던 난해할 법한 질문에도 사내는 기꺼이 답하고자 하여으니 이윽고 사내가 그 대답을 마칠 때까지 소녀는 기다렸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얻은 것이고, 당신이 잃은 것. 그러한, 결말은 많은 사람들이 줄곧 언제나 바라는 것.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하신 경우가 있나요?"

그리고는 소녀는 그대로 사내의 말을 긍정하듯이 하는 태도와 함께 넌지시 다시금 또 다른 질문을 그렇게 건넸다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다름이 없을 것에도 다시 한번 보고, 듣고 싶었어요. 저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또한 속할 수 있으므로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우하는 것이 편하리라 생각한답니다. 당신은, 저를 무엇으로서 두고 싶나요?"

당연하게도 질문은 소녀만의 것이 아니였으므로 이번에는 사내가 질문하였으니 소녀는 그렇게 대답했으나 그 대답이란 것은 대답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일종에 수수께끼에 더 가까운 구성 이였다

261 이름 없음 (NFbDypGkcc)

2023-04-26 (水) 00:45:33

>>260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는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속할 수도 있는 이가 있을 수 있는거야? 결국 어딘가에는 속하는 것이 사람이고, 설사 사람이 아니라도 어딘가에는 속하는 법이잖아?"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사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에게 문제를 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혹은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것인지. 어느 쪽이더라도 질문에 명확한 답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소녀는 자신에게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네가 누구인지 맞춰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로서는 그냥 지나가던 근처 마을 사람으로밖엔 생각할 수밖에 없는걸."

어쩌면 자신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적당히 대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일단 그 정도로 해석을 마치기로 하며 사내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지나가던 마을 사람은 무슨 일로 나에게 이런 것을 묻는지 물어도 괜찮을까?"

이번에는 또 뭐라고 대답할런지. 수수께끼 비슷한 것을 내려고 할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명확한 답이 나올지. 그래도 복잡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에 그는 미소를 머금었다.

262 이름 없음 (jTOGsJ5uoU)

2023-04-26 (水) 01:13:32

>>256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북부와 저 멀리 떨어진 남쪽의 국가를 일방적으로 침략해놓고, 무리한 전쟁으로 일어난 불상사들을 전부 북부의 전쟁 불참으로 돌리다니요. 국왕 본인이 신성자로 나서서 직접 이 정략 결혼을 맺어버린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거절해야만 합니다, 대공. 지금까지 저희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아니면,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계신겁니까?」

자신의 절친한 친우이자 서기관의 목소리는, 덧없는 먼지바람처럼 차갑게 언 얼음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이젠 어찌해도 들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서기관이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은 무슨 표정을 지어보였던가. 차갑게 식어버린 나뭇가지의 살 떨리는 소리가 그보다 더 매서운 바람에 묻혀간다. 이 보여주기 식의 결혼식 내내, 자신은 해야할 일이 많았다. 모든 것을 감안해둔 바, 그저 대공으로써, 북부의 주민들을 위해 최선의 최선만 다하는 것. ……그런데 어째서 집중하지 못했지.

결혼식 내내, 자신을 올려다보던 눈빛을 떠올린다. 공허해보이던 표정이 퍽이나 망국의 공주다웠더랬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행복을 빌어주며 축복의 언사를 날리던 주민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로 저에게 무언가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무어라 했었지. 입모양을 떠올리던 와중, 한밤중의 산책이 갑작스레 끝이 났다. 이전까진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었던, 대공비의 방. 그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작나무 타는 소리에, 무심코 그 문을 열고 말았다.

어둑한 시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허무의 장막을 한꺼풀 벗어낸 것 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닮아보여서.

“그대. 방은 춥지 않은가.”

실없는 소리를 흘려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 지 훤히 보여, 괜히 난로 옆에 쌓여있는 장작을 집어들어, 검붉게 부서져내린 재 사이에 던져 또다시 불길을 새로 쌓는다.


/ 로판이랑 북부대공을 잘 접해본 적이 없지만 소재가 흥미로워보여서 열심히 이어봤어 o>-<! 고치고 싶은 부분 있음 이야기해줘~~!

263 이름 없음 (Z1IaKBr3dk)

2023-04-26 (水) 17:24:45

“와악, 죄송해요─진짜로!”

안 부딪히겠다고, 안 넘어지겠다고 그리 안간힘이었건만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괜찮다고 답하는 당신의 말에도 죄송하다고 한 번 더 사과한 이유였고, 눈썹이 추욱 처진 모양새가 꾸밈없는 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두서없이 미안하다고 말해버린 것도 지금 되짚어보자니, 한참 어른에게 애매하게 반말과 존댓말 그 어중한간 사이를 줄 탄 것만 같아 양심이 쿡 찔린 아이였다. 허겁지겁 일어난 당신 못지 않게 부산스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아이는 행동을 서둘렀다. 일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한 번 폴짝 제자리에서 뛰어보인다.

“완전 괜찮아요, 저.”

고 사이 방글방글 웃는 낯에 기운찬 행동하며 괜찮아보이기는 했다. 다만 아이가 아무리 활기차더래도 철인은 아니니 생채기는 나있었다. 한쪽 무릎이 까져있었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이 아이 이미 무릎에 드레싱 밴드라던지 반창고가 두어개 붙어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제 상처를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고, 무릎 살펴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당신의 손만 아주 유심히,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빤히 살펴보았다. 주저앉아 있었으니 상처가 났다면 손바닥에 났을 거라는 아이의 추론은 들어맞았다.

“아저씨 손! 손 까졌는데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대, 손 까먹어놓고서─핀잔을 하지는 않았는데 왠지 핀잔 소리가 들리는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264 이름 없음 (JHd4Whw05c)

2023-04-26 (水) 19:00:33

>>263
정말 괜찮은데. 이 닳고 닳은 어른은 생각했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툭툭 치이면서도, 폭언과 정치가 난무하는 회사에서도, 이렇게 미안한 사과는 없었는데 말이야-어쩐지 곤두서지도 않은 신경이 바로 누그러드는 기분이었어.

"하하,"

아저씨는 기운찬 아이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웃음지었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무릎에 난 상처를 발견하지 못 한 건 아니야.바로 뭐라고 하려다가, 제 손을 부담스레 바라보는 아이의 강렬한 시선에 주춤했을 뿐이지.

"으,응? 아니, 이건-"

그제야 제 손을 함께 내려다 보곤-어쩐지 손바닥이 조금 화끈거리는 것 같더니-핀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눈빛에 뭔가 변명같은 것을 내밀려다가 금세 전략을 바꿨어. 바로 똑같이 핀잔 소리가 낭낭한 눈빛을 보내는 거지!

"그러는 학생이야말로 무릎이 엉망인데! 전혀 안 괜찮아보이잖아!"

그리고 약간의 정적이 흐르자- 조금 어색하게, 조심스레 덧붙였어.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약국에 가야 할 거 같지?"

265 이름 없음 (5d/RkTsZs.)

2023-04-26 (水) 22:07:58

>>262
대답이 어렵지 않은 질문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내놓은 애매한 답.

“…덕분에요.”

이 결혼이 내키지 않았던 건 꼭 저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타인을 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테니 제 얼굴을 보는 게 불편하겠지. …제 눈 앞의 사내가 사람이라면. 찬찬히 얼굴을 살핀다.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얼굴. 그에겐 제가 예측한 불편함이나 부채감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문득 생각한다. 사는 동안 지옥에 있는 건 나뿐이겠구나. 죽이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도 죄인이 된다면 아마 죽어서도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당신도 피곤할 텐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요.“

아까보다 환해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도 없는 말. 눈을 바라보고 할 자신은 없었다.

“…원하지 않았던 결혼인 건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나까지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시야에 문득 약지에 낀 반지가 걸린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반지라고 했던가. 이것까지 내어준 건 나름의 죄책감 때문인가.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것 없지만.

“괜한 의무감 같은 것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쪽으로든.”

어떤 것이든 모른 척 눈 감아주겠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당신이 이미 연인이 있는 사람이든, 도무지 제게 정을 붙일 수 없어 다른 이를 만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깨닫지 못했지만,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최대한 타인처럼 지내야 당신을 죽이려는 이 마음이 저를 갉아먹지 않을 테니.

/ 안녕, 찔러줘서 고마워~ 이쪽은 대공이 전쟁에 나갔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괜찮을까? 혹시 잇기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말해줘 ^ㅁ^

266 이름 없음 (byox9FWaLA)

2023-04-26 (水) 23:37:00

>>261

"알 수 없다면,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었어요. 그래서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랍니다. 왜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과적으로 그렇다면 곧, 모든 이가 이미 세계에 속해 있으므로 무언가에 더는 매여 있지 않아도 제 뜻을 이루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에요"

사내의 그러한 말들에, 소녀는 살짝 옆으로 고개를 갸웃하듯 시늉을 하고는 사내의 발언에 그렇게 덧붙이듯 말했다

"네, 그렇게 해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편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의 가벼운 인연으로, 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서 하는 편이 괜찮나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소녀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많고, 적고 다른 이들에게 있어 위대한 과업을 이루어낸 끝에 영웅이라 불리며 구전될 어느 한 사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답니다. 역사로서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을 차이를 보게 될 것이 흥미로울 테니까요"

사내의 물음에 소녀는 담담한 태도로, 여전히 들고 있던 붉은 꽃송이의 줄기와 꽃잎을 위 아래로 어루만지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267 이름 없음 (NFbDypGkcc)

2023-04-26 (水) 23:51:12

>>266

결과적으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사내는 이 철학과도 같은 심오한 말에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대체 이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뭔가 자신에 대해서 굳이 언급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꼭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았기에 영 석연찮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뭔가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런 것이 경계심을 사게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할 나름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단... 초면이기도 하고 난 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리고 너는 알려주지 않잖아? 그렇다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을까? 편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잖아."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면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그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여러번 도리도리 내젓는 것이 이런 타입은 영 익숙치 않은 타입이었다. 다른 가치를 부여하려고 해도 그냥 지금 시점에선 지나가던 마을 소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고 자신은 대답을 한다. 그 이상의 가치가 나올 순 없었다. 적어도 사내는 그러했다.

"뭔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역사를 기록하는 이 같네. 아니면... 긴 세월동안 인간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신..같은 존재려나?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확실히 궁금하긴 하네. 나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이 될지 말이야."

자신이 만약 떠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 사실은 영원히 알 수 없을테지. 물론 여기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일 또한 없겠지. 결국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자신이 알 길은 없다는 결론에 도다르며 그는 조금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궁금한건데... 그 붉은 꽃송이는 무슨 꽃이야?"

268 이름 없음 (L3AbAnnpzA)

2023-04-27 (거의 끝나감) 00:38:28

>>267

"그렇네요. 어떠한 것에 대한 앎이 없다면 그것을 보고, 듣고, 만지며 다루는 것에도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이제는 너는 무엇이냐. 라고 묻지 않으셨나요? 단어는 다르지만 그렇게 하셨지요. 여럿 되고, 세월에서 땅과 바다의 이들이 저를 두고 가로되, '붉은 뱀' 또는 '신이 품은 독'이라고 칭하고는 했답니다. '결말을 품는 것'이라고도 이어지네요 무엇이라 칭하여져 였더라도 저, 그 이름 사마엘은 줄곧 같았답니다"

사내의 그러한 말에 소녀는 한 손을 들어서는 그 손을 스스로의 입가에 가져다 대어서는 가리어보이며 사내를 바라보는 그 두 눈을 가늘게 뜨도록 하며 그렇게 말했다

"역사란 세상의 기억, 그렇기에 기록하는 이는 제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독자일 뿐이랍니다. 또는 그 속의 배역이거나. 비슷하다고 한다면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역시 생각하기에 다르지요. 저희가 이렇듯 독자이자 배역이라면 그 호기심이, 열망이 되어 그 이야기가 한층 더 와닿겠지요"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소녀는 입가를 살짝 가리던 손을 내려서는 원래의 자세와 함께 눈을 또렷하게 떠 사내와 주변을 흘기어 바라보더니 거기에 첨언하듯이 하는 태도로서 그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드릴게요, 그러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에요. 피는 활력을 뜻하니 생육을 모아 피우는 것이니, 이를 간직할 수 있어요. 당신이라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에요. 설령, 그것이 단지 그 눈에 미를 느끼는 것 뿐이 전부라고 할 지라도"

그리고 사내의 물음에 소녀는 그때 돌연 사내를 향하여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지금까지 줄곧 손에 쥐고 있던 그 붉은 꽃을 사내를 향하여 건네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269 이름 없음 (pJazEY.I2w)

2023-04-27 (거의 끝나감) 00:56:55

>>268

붉은 뱀, 신이 품은 독. 결말을 품은 것, 그리고 사마엘. 처음엔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더 엄청난 이라는 것을 짐작하며 사내는 침을 삼켰다. 허나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신과도 싸워서 봉인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사내는 떨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약간의 경계심은 품었으나 그것도 잠시. 상대가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한, 자신 역시 무작정 적대하거나 위협할 생각은 없었다. 설사 저 사마엘이라는 이름이 자신이 아는 사마엘이라는 존재와 같은 이라고 할지라도.

"확실히 그 말대로네. 그래. 독자일 뿐이겠네. 혹은 배역이거나."

그렇다면 저 소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그저 관망하고 싶다는 것일까.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그런 추측을 세우나 굳이 더 특별한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자신에게 주겠다는 그 붉은 꽃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사내는 그것을 조심히 잡았다.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인다라는 말에 그 아름답고 붉은 꽃을 사내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제와서 어디에 유용하게 쓰일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왕 줬으니까 죽지 않도록 화분에 잘 넣어둬야겠는걸. 관리도 하고. 아무튼 고마워."

그것보다 이거. 자신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한다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고개를 갸웃했으나 역시 지금으로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세계에 왔을 때 알몸으로 온 것은 아니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나 자신과 접촉한 것 정도라면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받아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 꽃에 대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거나 그런 것이 있을까? 어쨌건 식물이니까 관리에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잖아? 기껏 받았는데 며칠도 안되서 말라 죽이거나 하면 곤란하기도 하고."

270 이름 없음 (kslhdXRBL.)

2023-04-27 (거의 끝나감) 01:33:06

>>269

"이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쓰여져 나갈 그 이야기들이 저희와 함께함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도 자아낼 것들을 기대가 된답니다. 이미 보았던 것과 다름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내가 긍정하여 그리 말하자 더불어서는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시작이 끝으로서 존재한다면 끝 또한 시작이 될지어니 본래 의도에 맞게 당신에게 쓰여도 좋고, 다른 누군가에게 쓰여져도 좋은 것이 되겠지요 또한 이대로 다른 누구도 아닌 이 꽃만의 결말을 보고자 곁에 두는 것도 괜찮겠지요. 생각하기에 따라선 쓰이지 않는 것이 말로 비로소 가장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현상과 결정에 도달하기에 까지 기다림 뿐."

이어서 사내가 소녀가 건네주는 그 꽃을 받아들이며 그리 말하자 그에 맞추는 것처럼 소녀는 마치 설명하듯이 덧붙이도록 말했다

"다른 생장하고 번성하는 것과 같이 대우하여 주세요. 줄곧 곁에 두고서 다른 것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겠지만 그리 하여 준다면 기뻐할 것이에요. 활력을 조금씩 부어 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그리고 사내가 소녀에게 꽃에 대해 묻자 그렇게 대답했다

271 이름 없음 (eCigxXbHsk)

2023-04-27 (거의 끝나감) 11:01:12

>>265
한참동안이나 답이 돌아오지 않아, 불꽃에 눈길을 빼앗긴 사람 마냥 난로를 내려다보다 들려온 대답에 천천히 그 얼굴을 돌아본다. 자신과 가장 먼 곳에 있던 당신에 대한 소문은 자그맣게나마 들려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하고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음은, 지금 이 모든 상황들이 만들어냈음이리라. ─그러나 최악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의 어미처럼 울고, 소리지르고, 자신의 몸을 찢진 않았으니. 하지만 그런만큼, 당신은 마치 모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끌고 간 지원 병력이 막 당신의 영지에 도착했을 때,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피가 얼굴에 묻은 지도 모르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당신의 얼굴을 기억한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좀 더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말, 혹은 사려깊은 위로의 말을 내뱉을 순 없는걸까. 여태껏 그래왔기에 단 한번도 자신의 방식에 의심을 품은 적은 없었지만, 날카롭게 다려놓은 듯한 송곳 같은 말들에 당신이 자신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이 북부에서 원활히 살아남기는 힘들기에. 당신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대로 자신에게서 신경을 꺼달라는 강력한 의사로 전달되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야만 했다.

“오래 붙잡아두진 않아. 그대도 피곤할 테니.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을 가장 먼저 전해야할까. 자신과 국왕의 정치 싸움에 억울하게 휘말려버린, 한 나라의 공주였던 이에게. 다양한 생각들로 인해 피곤한 기색을 띈 얼굴을 손으로 반쯤 쓸어내리고는, 끝내 최악의 방향으로 일을 연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당분간은. 눈에 띄는 행동도, 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도. 부탁할 것이 있다면 다른 하인들이 아닌, 서기관이나 그의 조수를 부르고. 식사는 내가 직접 초대한 것 외에는 금하도록. 서신 전달 역시 내가 직접 하겠다. 그리고 최소 한달 안에 국왕의 부름이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그대가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해줄 것이다. …이건 의무감 같은게 아닌, 북부를 위해서이니.”

여태껏 수많은 전쟁을 벌여오며, 그와 동시에 상대 적장과의 수싸움을 벌여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이는, 다름아닌 국왕이었으니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 맞겠다 판단한 것이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제 할말을 전부 전해둔다. 다만 마지막 말 만큼은 조금의 망설임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의무감, 혹은 그와 비슷한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었기에.

“그리고, …….”

여태껏 사람과 이야기하며 시선을 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어쩐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당신의 표정을 보고있는 것만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잠시 머릿속으로 할 말을 다듬고, 입을 연다.

“그 반지는 빼지 말아주었으면 해. 부정한 것을 걷어내는 신력이 담겨있으니까.”

─당신이 살아주었으면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것 뿐이었다.


/응응! 생각해보니까 전쟁 가장 끝자락에 와서 도착한 모습을 보여졌다~ 설명이 빠져있었네! 이번에 추가해서 넣었어!

272 이름 없음 (ar4DYNkbc.)

2023-04-27 (거의 끝나감) 14:42:06

>>264

무릎을 지적당한 아이는 그제서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살짝 발을 뻗어서 무릎을 보니 새로운 상처가 나 있긴 한데 심한 것도 아니고, 자전거에서 넘어졌는데 이 정도 다쳤다면 아주 튼튼하지 않은가. 여기저기 다치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니라서 별 대수롭지 않단 반응이다. 하지만 핀잔어린 눈길과 함께 안 괜찮아보인다고 하니, 어떤 말을 해야하나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번뜩 스치는게 있었다.

“전 어려서 괜찮은데.”

히죽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로 만들어진 미소가 방금 지은 웃음과는 사뭇 달랐다. 방글방글 웃으며 괜찮다 할 때는 해맑기만 했는데, 이번 지은 웃음은 보고 있자면 얄밉지 않을까. 아이는 약국 이야기에 눈을 깜빡이더니 넘어진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앞바구니에 걸친 채 바닥에 누워있는 가방도. 두뇌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실수를 한 건 자신, 저 때문에 다친 것은 이 아저씨. 약국까지 자전거를 끌고가는 것보다야 뛰어갔다 오면 훨씬 빠르고, 상처가 작단들 어쨌든간에 제 부주의로 다친 사람이고─아저씨한테 맡겨놓고 혼자 다녀와야겠다─결론이 나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저 가방 안에 밴드는 있어요! 여기 얌전히 있으시면 제가 후다닥 다녀올게요. 그리고─”

읏차─기합이라기엔 한 번 시늉이라고 하려고 내본 소리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자전거를 덜커덩 일으켜세웠다. 가방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얘네가 담보! 안 도망가요.”

273 이름 없음 (pJazEY.I2w)

2023-04-27 (거의 끝나감) 20:20:35

>>270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꽃을 키우고 기르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거겠지?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어쨌건 받은건데 방치하기는 좀 그렇잖아. 활력을 어떻게 부어줘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약간 마법적 힘이 담긴 무언가인지. 아니면 은유적 표현인 것인지. 아무튼 일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을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꽃을 바라봤다. 방금 들은 말 덕분인지 조금은 묘하게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괜히 더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괜히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한 번 고마워. 당분간은 이 꽃을 기르고 관리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네. 머리를 식히기도 좋을 것 같으니까."

시간을 너무 끌 순 없겠지만 그래도 며칠은 이 꽃에만 집중하자. 그러다보면 앞으로 자신이 어째야할지에 대해서도 자연히 답이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을 내리며 그는 꽃을 괜히 조심스럽게 잡았다.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많이 신경써볼게. 이 선물."

274 이름 없음 (IAdkxKKJ1w)

2023-04-27 (거의 끝나감) 23:36:03

>>271
어떤 분노는 끓어오르기보단 차갑게 식는 쪽에 가까웠다. 길게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 얼굴을 찌푸리거나 악을 쓰는 대신 짧게 웃음을 뱉었다.

“나를 놀리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저 사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심지어 아는 사람조차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 아니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질 나쁜 농담을 던지는 악취미가 있는 건가. 처음 저를 내려다보던 눈은 어떠했던가.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기억은 흐리다. 실은 그날의 기억 자체가 그렇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 말고 달리 없지 않은가요.“

이미 필요한 조치는 다 취해졌을 테지.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없었다. 미리 말해준 것에 대해 감사히 여겨야 해야 하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의 자유를 약속해준 것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까. 눈가가 조금 일그러졌다.

“…얼마나 자유롭게요? 날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기라도 해요? 아니라면 그런 약속은 말아요. 적선하듯 던져주는 희망이 더 비참하니까.“

이를 꽉 물고 다시 피어오르는 불길에 시선을 던졌다. 울컥 치미는 감정들을 억누른다. 오늘은 좋은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버릴 목숨이라면 당신에게 흠집이라도 내고 싶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을 노려 아프게 하고 싶었다. 정말로 운이 좋다면 죽을지도 모르지. 제 목숨은 그날 끊어졌다고 생각했으니 그 뒤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검이 가장 좋겠지. 제게는 단도가 더 나을까? 디저트 나이프나 포크 같은 게 숨기기엔 더 쉬울지도 몰라.

“……내일 식사는 방에서 하게 해줘요.“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말했다. 사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 그만뭐라해요..ㅠ
이어가기 애매하면 며칠 뒤로 넘겨도 됩니당

275 이름 없음 (IoMqpoR87.)

2023-04-28 (불탄다..!) 07:22:29

>>272
어어, 이것봐라? 젊어서 회복력도 빠르다고 아주 기고만장한 얼굴이네.
아이의 미묘하게 얄미운 그 얼굴에 아저씨는 속으로 혀를 찼지. 너도 눈 깜빡해봐라, 아저씨 나이 되기 쉽상이다-라던가,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나중에 그렇게 몸 험하게 쓰다간 뼈 나가는 건 순식간이다-같은 가슴 깊은 곳에 수그려 있던 꼰대력이 고개를 드는 기분이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지. 행동력 빠른 아이가 자신이 뛰어오겠다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으니까 말이야.
엉겁결에 자전거를 받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서야 멀어지는 아이의 뒤를 설렁설렁 쫓아갔지.
어차피 목적지는 알고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담보는 무슨- 그냥 같이 가면 되지...."

다리를 다친 건 그쪽이면서.
약간은 찜찜하지만 아이의 활기를 이겨낼 수 없는 어른이라, 아저씨는 그저 느릿하게 따라갈 뿐이야. 가끔씩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덜컹거리는 자전거를 잘 잡고, 가방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276 이름 없음 (BOPtSvdfxY)

2023-04-28 (불탄다..!) 22:17:25

>>273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이 꽃을 위한 훌륭한 양식이 되어 줄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 아름다운 붉음을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게 하는 것에는 당신이, 또는 다른 이의 붉음을 더하는 거에요. 흘리듯 지나간 제 말을 아직 기억하시나요?"

사내의 의문이 섞인 그러한 말에 소녀는 마치 거기에 대답하듯이 양 손을 스스로의 뺨에 각각 가져다 대어 가리듯이 하는 행동을 하고는 미묘하게 장난끼와 유혹하듯 하는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기뻐하여 주는 것이야 제가 합당한 보상이랍니다. 받는 이가 기뻐하고, 동기에 부여되는 선물이란 그런 법이죠"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소녀 또한 다시 한번, 이번에는 싱그러운 느낌을 담도록 하듯이 웃어 보이고는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그렇게 행하게 되는 것에 따라서는 이것은 더욱이 값진 선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당신이 본래 있어야 했던 그곳에 너머에서는... 진정으로 특별함을 가질 수 있을 거에요. 이것이 비록 덧없을 제 바램 뿐일 것이 되는 것이라도"

사내의 말에 소녀는 이번에는 다소곳하게 자세를, 양 팔을 앞으로 모으며 가다듬고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한동안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277 이름 없음 (6HCZRyapck)

2023-04-28 (불탄다..!) 22:33:18

>>276

"내가 예상하는 그 내용이라면 그 부분은 조금 고민해봐야겠는데."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사내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피는 활력을 뜻한다고 했던가. 그 부분을 괜히 곱씹으나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면서 그는 눈을 조용히 몇 번 깜빡였다. 일단 천천히 생각해봐도 되고 그냥 둬도 상관없으며 생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으니 더더욱. 어느 순간 이 붉은빛이 갑자기 훅 사라지진 않겠지. 그렇게 속으로 바라며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본래 있어야 했던 그곳의 너머라."

아마도 자신이 원래 있었던 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언젠가 선택을 하고 돌아갈지도 모르는 원래의 그곳. 그 풍경을 잠시 눈에 감으면서 그는 생각을 하다 꽃을 들어올려 그 향기를 맡아보려는 듯 코로 가져갔다. 아무런 말 없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그 향을 즐겨보던 그는 살며시 팔을 아래로 내렸다.

"생각보다 엄청난 뜻이 담겨있는 선물을 받아버린 모양이네. 이쯤되니 이런 것을 이제 정말로 받아도 될지 의문이 절로 들 정도야. 그렇기에 덧없지 않을거야."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이상 더더욱. 그렇게 말을 하며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달을 바라봤다. 자신이 살았던 세상과 비슷하다면서도 다른 그 곳. 바로 그 장소를 눈에 조용히 담으면서 그는 이야기했다.

"이 꽃의 이름을 들어봐도 괜찮을까?"

278 이름 없음 (PtA8Yh5d7o)

2023-04-28 (불탄다..!) 23:27:20

>>277

"당신이라면 분명 그 의미를 잘 생각할 수 있을 거에요. 지금까지 그래왔을 것처럼."

사내의 말에 소녀는 마치 당연하다 듯하게 말했다

"그렇지요? 이 세계는 당신이 본래대로 그곳에 있어, 다른 이와 갖게 하여 저물어 끝을 고하게 될 그 생을 색다르게 쓰이도록 해버렸어요. 비록 원했던 것도 알았던 것도 아니 였을 테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든 간에 곧 당신의 의지와 구분이 점차 서서히 사라지게 되어 이러한 순간에 이르게 하였죠"

사내의 그 되새기는 듯한 한마디. 소녀에게는 그러한 표현으로서 인가 소녀는 마치 어떠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평하여 전하듯 그리 말했다

"당신에게 전해 줄 것 이였으니 그러한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에요. 오히려 이곳 에서의 당신의 일대기에 비하면 소소한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당신의 그 대답이 저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것이죠"

그리고는 이어지는 사내의 그 말에 소녀는 흥겨운 듯한 분위기와 억양을 담아서는 그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이 꽃을 '사크리피키움 비탈레' 이라고 줄곧 부르곤 했었지요. 활력을 먹고, 줄곧 머금어 지는 것으로 비로서 다른 것에 넘치도록 하는 꽃이라고 전하였지요"

사내의 질문에 소녀는 양팔을 스스로의 등 뒤로 넘겨 향하여 뒷짐을 지는 듯한 시늉을 한 번 해 보이고는 설명하듯 대답했다

279 이름 없음 (6HCZRyapck)

2023-04-28 (불탄다..!) 23:40:51

>>278

"확실히 알았던 것도 아니고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와서 후회하거나 하진 않아. 여기에 온 것은 여기에 온 것 자체로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체험을 하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사내는 웃음을 약하게 터트렸다. 정말 그땐 다 믿을 수 없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을 받아들였으나 자신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얼마나 심적으로 긴장하고 고민을 했었는지. 그 이후로도 몇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그와 동시에 괜히 돌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의 답이 살며시 기우는 듯 하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제 마음 속 천칭에게 한탄했다.

"사크리피키움 비탈레라. 기억해둘게. 그 이름."

사크리피키움. 그리고 비탈레. 그 이름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그는 그 꽃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평범한 꽃은 아니로구나. 아니면 이 세계에선 평범한 꽃인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나중에 동료들에게 물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꽃을 잡은 손에 괜히 힘을 약하게 주었다.

"슬슬 들어가봐야겠어. 이 꽃을 넣을 꽃병도 마련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야기 상대가 되어줘서 고마워. 또 보는 날이 있을까?"

아니면 이걸로 이 소녀를 보는 것은 마지막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소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280 이름 없음 (jdet/tuZhQ)

2023-04-29 (파란날) 00:29:01

>>279

"당신의 그러한 의지와 자세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낸 것. 당신 줄곧 잃지 않고 가진 것, 그 반짝임. 아름답네요."

소녀가 했었던 말들에 사내 역시 그렇게 말하면 소녀는 포근한 분위기와 함께 기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다면 그 이름은, 당신의 이야기 속에 하나가 되어 남겨질 수 있겠죠, 같으면서도 다른 새로운 설화로서"

사내의 그러한 말에 소녀는 덩달아서는 덧붙히듯이 말했다

"이 이야기에서 저 또한 그렇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즐거웠어요. 이러한 저를, 당신도 제가 마음에 든 것 같으니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한, 그럴 때가 된다면 언제든 될 것이에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그리고는 사내의 그 말과 물음에 소녀는 웃음과 함께 그리 말했다. 이윽고 소녀는 그 붉은 눈동자를, 그 시선을 사내와도 같이 사내의 그 눈에 맞추어서는 가만히 응시하였다

281 이름 없음 (ROWwl5ATmI)

2023-04-29 (파란날) 00:45:38

>>280

말의 시작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이 소녀는 자신을 계속 관찰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칭한 이름을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이라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눈앞의 소녀의 정체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모를 수가 없겠지. 이것은 축복일지, 아니면 저주일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오늘 이 순간의 작은 에피소드일지.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는 알 수 없겠으나 차차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그는 소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또 만날 날을 기약해야겠어.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이 될지, 아니면 내세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없고 이번이 마지막일지. 이 붉은 눈동자를 가진 붉은 소녀의 인상은 그만큼 강렬했고 지금 이 순간도 꽤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으니 자연히 참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이리라. 그렇게 사내는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점차적으로 하나하나 잊혀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바이바이. 또 어딘가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 이를테면... 내가 이 세계에 계속 남는다고 한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을 남기며 사내는 뒤로 돌아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손에 쥔 붉은 꽃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소녀를 뒤로 하며.

/이 이야기의 막레를 이렇게 올릴게! 상당히 흥미로운 소녀 캐릭터였고 이으면서 재밌었어! 수고했어!

282 이름 없음 (HEFXZlDhPM)

2023-04-29 (파란날) 01:00:02

>>281 # 저도 재미있었어요, 모험을 끝맺은 용사에 대한 새로운 것이였고 수고하셨어요!

283 이름 없음 (GSB5HHYZt6)

2023-04-29 (파란날) 10:58:27

>>275

“뭐야, 왜 쫓아와요! 얌전히 있으랬는데!”

약국까지 달려보려고 했는데, 어라─붉은 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가 길을 막았다. 신호를 기다리느라 멈춰있자니 아이의 귀에 자전거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싶어서 휙 돌아다보면 그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오고 있었다. 열심히 뛰어왔던 방향을 거슬러 도도도 발을 옮긴다. 뛰는 건 아닌데, 걷는 것도 아닌 겅중겅중한 걸음이 금세 당신의 옆에 도착한다.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다시 발을 옮기자니 자전거를 맡긴 이유가 없어졌다. 아이는 그래서 자전거를 꼭 쥐었다. 내가 잡으면 이 아저씨가 놓겠지─고집이 있었다. 그러고서 몇 걸음 떼보자니, 이 아저씨는 왜 이리 느긋한가 의문이 들었고 그것은 곧 물음이 되었다.

“아저씨 안 바빠요? 회사라던가 직장이라던가.”

바쁜 사람 다치게 해서 발목 잡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아이는 냉큼 덧붙였다. 교실에서 바라보면 하늘만 느리게 흘러가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바쁘기만 하다. 개 중에는 자고 있기도 하고, 딴짓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 아이는 녹아들기가 싫어서 뛰쳐나와버렸으니 바쁘지 않았다.

“전 쨌어요.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잔소리 금지.”

284 이름 없음 (1tKQr.y3i2)

2023-05-06 (파란날) 01:07:42

"다른 드래곤들이 어디서 뭘 하면서 어떻게 사는지는 나도 대충 알고는 있는데 모든 드래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적어도 난 그냥 여기서 유유자적하게 내 개인 연구를 하거나 그냥 가끔 근처 날아다니거나 근처 짐승들 사냥해서 먹고 사는 것이 고작이야."

키가 얼미잡아 약 3~4m 정도 되며 온 몸이 찬란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실버 드래곤은 한탄하는 목소리를 내며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아니. 둥지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제단 앞이었다. 근처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바치겠다며 음식이나 재물을 놓고 가는 것까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은 딱히 해를 끼친 일도 없고 그냥 가끔 바람 쐴겸 근처를 비행하거나 혹은 둥지 근처에 살고 있는 커다란 들짐승을 사냥해서 잡아먹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런 행동조차도 인간들에게는 무섭게 비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음식은 자신이 가져가서 창고에 두고 저장해서 두고두고 먹었으나 재물은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시 돌려주곤 했었다. 그러다가 한 번 정말로 크게 화가 나서 이런 거 필요없으니까 제발 두고 가지 마라고 마을 입구에 나타나 크게 외친 후에 돌아간 적이 있었다. 아. 그게 문제였구나. 실버 드래곤은 한탄하며 고개를 더욱 아래로 내려 그 제단 위에 서 있는 인간을 바라봤다.

"혹시 제물로 바쳐진거면 난 인간 안 잡아먹으니까 돌아가라. 제발. 그리고 혹시 날 죽이러 온 거면 딱히 내가 뭘 잘못한 것은 없고 굳이 여기서 날뛰고 싶지 않으니까 못 본 척 하고 돌아가줘라."

인간을 제물로 받을 생각도 없고 싸우는 것도 싫다는 듯 드래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이 이내 드래곤은 자신의 머리를 아래로 낮춰서 눈을 마주치려고 하며 한탄이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그런데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은 아니잖냐. 자꾸 뭘 바치지 말라고 다시 돌려줘도 계속 그렇게 갖다주고 그래서 한번 근처 마을에서 크게 화 한 번 낸 것이 다인데, 그나마 부순 것도 없고 바로 돌아왔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인간들도 화내고 그러잖아. 드래곤도 화낼줄 알아. 그러니까 제물로 바쳐진 인간은 받을 생각 없고 날 죽이러 온 거라면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세 번만 더 생각해줘라. 응?"

오른쪽 앞발로 자신의 이마를 잡고 한숨을 내쉬던 드래곤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제단 위에 서 있는 인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두 개가 아니라 나에게 뭔가 부탁하고 싶거나 이야기하러 온 인간이라면 일단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긴 한데. 어느 쪽이냐. 인간."

/상황설명을 하자면 드래곤이 자신의 둥지 앞에 만들어진 제단 위에 인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한탄하는 그런 내용이야. 맥커터로 해서 그냥 흐름 자체가 푹 끊어지는 게 아니면 어떤 상황으로 이어도 괜찮다!
평범한 마을 사람일 수도 있고, 드래곤과 싸우러 온 이일수도 있고, 정말로 제물일 수도 있고, 혹은 왕가나 이런 곳에서 뭐 요청하려고 찾아온 것일수도 있겠고 그 부분은 '인간'이기만 하면 자유롭게 해줘도 좋을 것 같아! 굳이 요청사항을 말하자면... 대화적 핑퐁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야.

285 이름 없음 (1bYcOlEo06)

2023-05-06 (파란날) 22:19:07

>>284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제단에 걸터앉은 벚꽃색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순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 히아신투스는 난감한 웃음을 띠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하도 쌓인 게 많았는지 넋두리를 늘어놓는 눈부신 은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있었다. 난 그냥 약초 따다 지친 김에 동굴 앞에 돌침대가 있길래 한숨 자려고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거대한 은색 드래곤이 나타나서 꼼짝없이 잡아먹히나 했더니 신세 한탄 들어드리는 처지가 됐네. 그나저나, 이거 돌침대가 아니라 의식용 제단이었구나? 인신 공양에도 쓰였어? 그런 것치곤 퍽 안락하던데. 역시 아무 데나 누우면 안 되겠구나. 저 드래곤이 식인을 안 해서 망정이지, 사람도 먹는 드래곤이나 산짐승이 왔으면 세상모르고 자다가 뱃속에 입주했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자다 깨서 넋두리 들어드리게 된 거 정도로 끝난 게 감사한 일이긴 하다. 드래곤이 기나긴 넋두리 끝에 용무를 묻자, 히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굴렸다. 이런 건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 히아는 앉아있던 제단에서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드래곤님의 둥지인 줄 모르고 하산하는 길에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무단으로 영역을 침입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가 상체를 일으키려니, 의아해졌다. 요새도 이 근방에 인신 공양 풍습이 있나? 마녀사냥 등 사람을 해치는 민간신앙은 왕국에서 단속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니다, 또 모르지. 다른 마을 상황은 모르고 암암리에 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드래곤 슬레이어보다는 특히 인신 공양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으시는 모양인데,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무단 주거 침입한 거 죄송하기도 하고. 히아는 잠시 궁리한 끝에 입을 열었다.

"다른 마을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제가 머무는 마을에서는 인신 공양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 약 50년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인간 마을에 경고하신 뒤에도 인간 제물을 꾸준히 받고 계시는지요? 그 문제가 여전히 골칫거리시라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은 오래 사는 종족이니 한 10년 20년 전의 일을 최근으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러니 마지막 인신 공양이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오래전의 일이라면 용에게 경고받은 마을에 찾아가 다시는 인신 공양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와 전할 수도 있을 거다. 인신 공양이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라면 드래곤이 인신 공양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전하고, 그런데도 마을 입장에서 인신 공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 그 이유를 알아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서 인신 공양을 할 이유가 없게 만들 수 있을 거다. 말이 안 통하면 왕국 군에 찌르면 되고. 모쪼록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좋겠군. 무단침입이 송구하니 최대한 도울 생각이긴 하지만 나도 생업이 있단 말이야. 아니다, 지금 드래곤님의 태도가 무척 관대하다곤 해도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하면 죽다 살아난 참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다 보니 잠시 가셨던 긴장이 올라왔다. 긴장하지 말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말이 통하는 드래곤님 앞이면 더 나을 거다. 히아는 제 표정이 치료소에 찾아온 환자를 대할 때와 비슷하길 바라며, 드래곤의 대답을 기다렸다.

/평범한 마을 사람...이지만 주거침입을 한 대신 용의 귀찮은 일 중 하나를 해결해 주려는 약사 겸 치료사 인남캐로 이어봤어! 잇기 힘들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줘( ^ω^ )

286 이름 없음 (1tKQr.y3i2)

2023-05-06 (파란날) 22:32:26

>>285

"인간 제물은 받은 적이 없지만 근처의 인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기에 음식이나 돈이나 귀한 것들을 두고 가는 편이야. 그런데 오늘은 여기에 인간인 네가 있으니까 말이지. 그나마 다행이군. 인간을 받아버리면 대체 이 인간은 어디로 보내야할지 고민중이었는데. 제물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허나 온전히 말을 믿진 못하며 실버 드래곤은 의심이 가득 섞인 눈빛으로 제 눈앞의 인간을 바라봤다. 이어 실버 드래곤은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자연히 쿵, 쿵, 쿵. 하는 발소리가 크게 울렸고 실버 드래곤은 몸을 낮춘 후에 자신의 배를 바닥에 깔며 눈앞의 인간과 시선을 마주하려고 했다. 제물이 아니라는 것을 들어서일까. 조금은 기분이 풀린 것인지 표정 또한 풀린 상태였다. 물론 그 변화를 상대가 알아차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풍습은 잘 모르겠어. 인간 세계에 내려가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거든. 괜히 내려갔다가 찍혀서 사냥하러 온다던가 혹은 내 둥지 안의 보물을 뺏어가겠다거나 그런 이들이 몰려오면 곤란하니까. 아무튼 도움이라. 그렇다면 근처 마을에 전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정말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으니까 제발 그 제단 위에 뭘 두고 가지 마라고. 도데체가 몇 번이나 올려진 물건들을 잡아다가 돌려줘도 더 큰 것을 주고, 더 화려한 것을 주니 이제는 돌려주는 것도 힘들어."

전에는 커다란 보따리 안에 금괴를 몇 개나 올려뒀던지. 마을 광장에 집어던지려고 하다가 참고 마을 입구에 내려놓고 왔다고 이야기를 하며 실버 드래곤은 으으. 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았다. 뒤이어 한숨을 내쉬면서 실버 드래곤은 왼쪽 앞발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참고로 내 영역은 내 둥지 정도니까 그 안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별 상관없어. 요즘에는 마법 연구에 푹 빠져있어서 가능하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아무것도 두지 말고 이 안에만 인간들이 들어오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어?"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내나 그래도 답은 궁금했는지 드래곤은 살며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역시 공짜로 일을 시키기에는 미안했는지 그는 보상을 하나 제공했다.

"만약 성공적으로 해준다면 그래. 인간들은 금을 좋아하지? 금괴 3개를 줄 수 있는데. 어떻나?"

/문제 없어!! 드래곤을 죽이려고 오는 인간캐를 대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 정도면 무난하지!

287 이름 없음 (BoVAD24YX2)

2023-05-08 (모두 수고..) 04:21:53

>>286
인간 제물은 받은 적 없다는 말에, 히아는 눈을 끔벅였다. 하도 제물에 학을 떼길래 진짜 끔찍한 형태의 인간 제물이라도 받은 줄 알았네! 그래도 다행이다. 물론 받는 이가 기뻐하지 않는 제물을 준비하느라 들어갔을 수고를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상념을 뒤로 하고, 그는 드래곤이 의심을 거두지 않자 천연덕스레 대꾸했다.

"인간 제물을 받으신 적은 없군요, 그건 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 차 말씀드리자면 지나가던 길에 쉬고 있었을 뿐 인간 제물이 아닙니다. 제가 제물이라면 인간 마을에 가서 드래곤님의 입장을 전해드리겠다 제안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다 저를 죽이려 할텐데요."

그렇게 대답하고서 한껏 쳐들어 뻐근해진 목을 움직여 풀려니, 드래곤이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세 발짝 쯤 물러나서는 몸을 낮췄다. 히아는 잠시 움찔했지만, 겁을 먹은 티를 내지 않고자 싱긋 웃어 보였다. 어우, 목이 안 아픈 건 좋은데 드래곤님 머리가 가까이에 있는 건 좀 쫄리네. 그래도 자세를 낮춘다는 건 우호적인 사인인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아버지랑 누나들도 걱정할 거고, 이제야 마을 주민들이랑 좀 친해졌는데 여기서 갑자기 개죽음당하면 서럽단 말이야. 이어 하는 말을 듣자니, 그가 앞서 했던 말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죽이러 온 거면 잘못한 게 없다느니 그러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모습을 드러내면 드래곤 슬레이어의 표적이 되나 보구나. 하긴, 인간도 자기보다 작은 생물이 원치 않게 달려들면 귀찮고 피곤하고 때로는 무서운 것처럼 저 드래곤님도 그럴 수 있겠다. 피곤하시겠네. 제물로 바쳐지는 것도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품목인 것 같으니 난처하실 만하고. 그런데 바쳐진 물건들을 몇 번이고 돌려주고 크게 화까지 내셨으면 자원을 낭비하고 드래곤님의 화를 돋우기만 하니 그만둘 만도 한데, 왜 그러는 걸까? 한층 기분이 나아진 듯한 드래곤의 말을 경청하던 히아는 곧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거부 의사를 표하셨음에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니 무척 골치 아프셨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물을 돌려주러 가셨을 때나, 경고하러 가셨을 때 인간들이 왜 계속해서 제물을 바치는지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보통 인간이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는 동기란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고, 여차하면 마을에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드래곤이 알고 있는 동기가 있다면 좀 더 협상하기가 쉬울 것 같은데. 아니다, 크게 화를 냈다고 하니 물어봤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이 있었다면 그게 기적이겠다. 그런데 용 님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길래 왜 제물의 규모가 커진 거지? 이건 그 마을에 가서 물어봐야겠네. 그 전에, 드래곤님이 바라는 걸 다시 확인하자.


"제단 위에 뭔가를 두고 가지 말 것, 이 동굴에 접근하지 말 것을 전해달라는 말씀이지요? 물론 가능합니다. 경과는 전서구를 통해 전해드려도 될는지요? 무단으로 드래곤님의 영역에 침입한 것을 만회하고자 드린 제안이나,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거기에, 괜찮으시다면 드래곤님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왔다는 증표를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신체에서 떨어지신 비늘이나... 아니면 인간 손으로 한 줌 정도의 갈기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다 일어나려니, 좋은 생각이 떠올라 히아는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제단을 철거하시고 이 동굴 주위에 환각 마법을 걸어 동굴은 온데간데없고 아무것도 없는 공터나 바위 언덕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러면 드래곤님께서 여기에 계신 것조차 아무도 모르게 될 것 같습니다만."

/주말에 좀 바빠서 이제야 이었네;w; 그나저나 세상에 그랬구나! 상상도 못했어0o0 드래곤을 죽이려는 인간이 왔으면 어떤 전개가 됐을까? 역시 전투?

288 이름 없음 (iOSGm9XLUs)

2023-05-08 (모두 수고..) 09:59:05

>>287

"물어본 적이 있냐고? 다들 도망치기 바쁜데 뭘 어떻게 물어보겠어? 오히려 이렇게 당당하게 질문하면서 말을 나누는 네가 신기할 지경인데."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드래곤이었고 어지간한 인간들에게 있어선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도망치기 바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바빴다. 이렇게 태연하고 평범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당돌한 인간은 자신이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꽤 귀엽다고 생각하며 실버 드래곤은 씨익 웃었다. 자연히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지만 딱히 잡아먹을 생각은 없다는 듯, 드러난 이빨을 다시 입꼬리를 정리하며 감추며 실버 드래곤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서구라. 괜찮네. 확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는 아직 내 영역이 아니니까 침범한 것은 아니니 신경쓰지 말고.. 증표? 하하하. 이 드래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참으로 당돌한데? 허나 아무런 증표도 없으면 확실히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좋아. 비늘을 주지."

이어 드래곤은 오른쪽 앞발을 들어올린 후에 자신의 몸을 살며시 긁적였다. 이내 뭔가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은색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비늘이었다. 물론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콩알보다 아주 약간 더 큰 정도일까. 그것을 가져가라는 듯, 손으로 집고서 상대에게 내민 드래곤은 이어지는 제안을 듣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무안하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다가 슬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머뭇머뭇거리지만 바로 이야기를 하지 않던 실버 드래곤은 이내 한탄하며 이야기했다.

"그게... 그럴까도 싶었지만 내가 환각 마법은 잘 부리질 못해서. 드, 드래곤이라도 못하는 것은 있어! 인간도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잖아! 비행은 자신 있고 불꽃을 쏘는 것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것도 자신 있지만 환각은 잘 못 해!"

괜히 푹 찔리는지 드래곤은 으으.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강하게 도리도리 저었다. 어찌나 세게 저었는지 작은 바람이 근처에 울렁일 정도였다.

"그리고 제단은 아무리 부숴도 결국 또 세워버리니 포기했어. 정말로 불안하고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뭔가를 바치지 못해서 미칠 것 같으면 그냥 간단한 음식이나 올려두라고 전해주고 그냥 가능하면 나는 마을에 내려가서 불바다를 만들거나 공격할 생각은 없으니 아무 것도 올리지 말라고 전해줘."

그것으로 충분해. 그렇게 말을 마치며 실버 드래곤은 입을 꾹 다물고 빤히 상대를 바라봤다. 할 수 있겠냐는 듯이.

/위에서도 썼지만 정말로 다양한 인간이 오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거든. 왕족이 와서 자신네 왕국을 지켜달라고 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드래곤을 죽여서 내 명성을 떨치겠다! 하는 사냥꾼까지 말이야. 죽이려는 인간이 왔으면 어쩔 수 없이 드래곤도 싸우려고 하겠지. 역시. 그 부분은 흐름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289 이름 없음 (MulEYldo5E)

2023-05-11 (거의 끝나감) 07:53:44

>>288
역시나 대화다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구나. 드래곤의 반문에, 히아는 난감한 마음에 머쓱하게 웃었다. 원치 않는 제물을 계속해서 받으니 짜증이 난 상태에서 인간의 사정같은 건 알 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편지라도 남겨주셨더라면 마을주민들이 돌아와서 읽었을텐데. 어쩔 수 없지. 일이 그렇게 해결되지 않았으니, 왜 제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건지는 내가 알아볼 수 밖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자니, 별안간 드래곤이 이를 드러냈다. 히아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 표정이 순간 으르렁거리느라 이를 드러낸 짐승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뭐 잘못했나? 튀어야 하나? 무심코 뒤를 힐끔거리며 퇴로를 확인하려니 드래곤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와있었다. ...아까 그거, 나름대로 웃음같은 거였나? 아이고, 놀래라. 하긴 도마뱀같은 두상으로 사람 웃음같은 거 흉내내시기 어려우실 수 있지, 그렇지. 근데 드래곤님들끼리도 사람처럼 웃으시기도 하고 그러려나? 잠시 실없는 생각에 빠지려는데, 드래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영역을 침범한 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역시 화나서 으르렁거리신 게 아니라는 거네.

"그래도 다른 개체가 영역 바로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하실 만도 했는데, 너그럽게 넘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히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나 좋자고 비늘을 달라고 했나? 난 그거 필요없어! 약에도 못 써!! 드래곤 님의 전언인 게 증명이 되어야 마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려를 할 테니까 부탁드린건데!! 왜 말씀을 들으면 내가 아쉬워서 달라고 한 것처럼 들리지? 당혹스럽네... 아이고, 됐다. 이종족 환자라고 생각하자. 환자가 하는 말에 일일이 신경 쓰면 이 일 못하잖아. 게다가 못 준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흘려넘기며, 히아는 드래곤이 내민 비늘을 받아들었다. 드래곤의 비늘이 아니라 조금 큰 잉어 비늘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의 크기였다. 곤란하네, 이렇게나 작으면 사람들이 드래곤님의 전언이라는 걸 알고 진지하게 듣긴 커녕 사기꾼이라고 욕할 것 같은데. 그렇게 비늘을 손에 들고 고민하고 있으려니, 드래곤은 무안하다는 듯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침묵하더니 푸념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듣자니, 비행과 화염마법, 빙결마법에는 능하지만 환각마법은 다루지 못한다는 모양이었다. 드래곤이라고 모든 마법에 능한 건 아니구나. ...그런데 비행이 특기라? 날지 못하는 드래곤도 있나? 날개달린 드래곤에게 비행은 성인이 걸어다니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나? ...아, 설마. 이 드래곤, 해츨링인가? 전설과는 달리 모든 마법에 능통하지 못한 것도, 비행을 특기라 하는 것도 해츨링이라면 설명이 된다. 얼마전 감기 걸려서 왔던 아기용 의자를 짚고 서더니 의기양양한 듯이 포효인지 옹알이인지 모를 귀여운 소리를 내지르고 제 아버지와 나를 쳐다봤었다. 그래도 해츨링이라도 몇백살은 먹었을 테니 어린애 취급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면 마치 인간이 열살 먹은 야옹이한테 애기취급받는 거랑 비슷한 기분일 테니까.
/미안 또 늦었네, 가정의달이라 정신이 없었어ㅜㅜ
오호 정말 다양하게 고려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쓰다보니 궁금해진 건데, 이 실버드래곤은 애기야 으른이야?😯

290 이름 없음 (MulEYldo5E)

2023-05-11 (거의 끝나감) 08:04:18

>>289 + "그러셨군요. 그러면 드래곤님의 거처를 불이나 얼음 장벽으로 감싸고, 그 앞에 표지판을 놔두는 건 어떨까요? 이를테면, "제물 사절! 출입금지! 어길 시 저주 내림!"같은 식으로요."

그렇게 제안을 건넨 뒤, 히아는 조심스러운 투로 이어 말했다.

"그리고... 저, 죄송하지만 이 정도 크기로는 제가 드래곤님의 전언을 받고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커녕 다른 동물의 비늘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거짓말쟁이로 몰릴 것 같습니다. 좀 더 큰 건 어려우실지요? 이보다 더 큰 비늘을 떼어내실 때 아프시다면 조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갈기를 조금 잘라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올리다가 마지막 대사가 빠졌네! xox

291 이름 없음 (8ZHKF4LYeM)

2023-05-11 (거의 끝나감) 18:58:40

>>289

이어지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실버 드래곤은 아무런 말 없이 빤히 그 상대를 바라봤다. 거처를 불이나 얼음 장벽으로 감싸거나 표지판을 놔둬라라.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불과 얼음으로 감싸면 자신이 다니기에 너무 불편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근처 짐승들이 다 달아나서 뭘 사냥해서 먹기도 힘들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드래곤은 눈을 감고 자신의 오른쪽 앞발의 발톱으로 땅을 콕콕 찔렀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은 해보겠는데 나는 굳이 말하자면 출입을 금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에 이상한 거 올리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 정도라서. 네가 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사단이 난다면 그런 것도 생각을 해봐야겠어. 그리고 이거보다 더 큰 거? 아. 이거. 벗기기 은근히 어려운데. 아프다기보다는 크면 클수록 이게 잘 안 떨어져서."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표정을 조금 찡그리던 실버 드래곤은 이내 잠시만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꼬리를 살며시 곡선 형태로 접으며 자신의 팔이 있는 곳까지 이동시켰다. 뒤이어 꼬리를 몇 번 흔들더니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비늘을 제 앞발로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적어도 아까전에 줬던 것보다는 3배 정도는 큰 것이었고 드래곤은 그것을 상대에게 받으라는 듯이 아주 가볍게 던졌다.

"아니. 그보다 방금 전의 것이 너무 작은 거야? 그 정도 크기여도 드래곤에게서 얻어냈다는 것은 어지간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인간들 중에서는 그거 못 가져서 안달인 녀석들도 어느 정도 있다고 배우기도 했고. 아무튼 갈기는 안돼. 내가 이걸 어떻게 길렀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조금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실버 드래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으며 실버 드래곤은 빤히 상대를 바라봤다. 물론 갈기는 안된다는 듯이 실버 드래곤은 두 앞발로 자신의 갈기를 보호하려고 했다.

/말하는 것에 위엄도 없고 서술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상당히 젊고 어린 그런 드래곤이야. 성별은 드래곤이니까 정하지는 않았다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약간 철이 없는 면도 있고 얘는 뭐지? 하는 그런 느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만 비행이 특기라는 것은 그만큼 다른 드래곤보다 좀 더 빠르다..라는 느낌이야! 달리기가 빠르면 달리기가 특기다..라고도 하잖아?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292 이름 없음 (zRDTtEslvc)

2023-05-11 (거의 끝나감) 22:14:24

>>291 아 그렇구나... 저기 미안한데, 여기서 끝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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