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15072> 자유 상황극 스레 4 :: 505

이름 없음

2022-12-31 16:48:08 - 2024-09-05 17:41:22

0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6:48:08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91 이름 없음 (zTYDvMjbHc)

2023-03-04 (파란날) 01:09:13

>>190 아이고, 오늘도 힘들었다. 검도장 문을 열어젖힌 이진은 얼굴로 곧장 들이닥치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입안으로 하품을 삼켰다. 땀에 젖은 도복을 벗고 개운하게 씻은 뒤 보송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온몸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피로는 여전했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 겨우 식사를 마치고 쓰러져 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애매하게 억울했고, 또 허기졌다. 모처럼이니, 뭐라도 먹고 들어갈까? 먹고 싶은 음식을 헤아려보자니, 달달한 소주 한잔에 기름지고 칼칼한 안주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식욕이 돋았다. 한 주간 열심히 일하고, 군것질도 자제했으니까 오늘은 치팅 좀 해볼까? 대신 내일은 건강하게 먹고. 그렇게 (저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유혹에 넘어간 진의 발길은 직장인 검도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포장마차로 향했다. 손으로 비닐 막을 밀어 열며, 진은 어느새 얼굴을 익힌 주인아저씨에게 붙임성 좋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사범님 오셨네!" 넉살 좋게 인사를 받은 아저씨는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쩌지, 오늘따라 붐비네. 자리가..."

평소라면 다른 손님과의 합석을 제안하던 주인아저씨였지만, 오늘따라 심상찮은 손님들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선뜻 권하지 못하는 것이 흐려진 말끝에서 느껴졌다. 아저씨도 난감하신 것 같고, 다른 가게로 갈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 눈에, 한 사람 정도는 더 앉을 수 있을 만한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한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숙연하긴 했지만, 그중에 단연 고약한 일을 겪은 것이 확실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진은 잠깐의 고민 끝에, 헝클어진 단발에 입가에 립스틱이 번진 여성 손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주변에 다른 포차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지만, 진은 어쩐지 가장 말 붙이기 어려워 보이는 상태의 이 손님이 마음이 쓰였다. 저 정도로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지도 못했을 정도로 멘탈이 나간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기분 좋은 상태에서 술을 마실 때보다 자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제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늦은 시간에 취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도. 결국은 오지랖이지 뭐. 거절하면 더 권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대로 집에 가서 계속 마음 한 켠이 찝찝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192 이름 없음 (NtrfrordbY)

2023-03-04 (파란날) 02:08:27

>>189

"섭섭하군. 영락한 동문은 기억할 가치도 없다 이건가."

상대의 손이 검으로 옮겨가자, 자연스레 사냥꾼도 좀 더 노골적으로 패검 중이던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일견 도발적으로 보이는 그 동작은 한편으로는 극도로 억제되어 있었고 싸움의 의사를 뒤로 미루는 함의이기도 했다. 아예 싸우지 않겠다는 의사는 또 아니어서 문제였지만.

"뭐, 타겟의 얼굴을 보러 왔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구미가 당기는 청부를 받아서 말이지."

사냥꾼은 그렇게 본의를 밝히고서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바로 검을 맞댈 생각도 없었고, 어디까지나 가벼운 마음으로의 방문이었지만, 그런 의사를 납득시키기에는 너무 폭력적인 목적을 가지고 왔음을 스스로도 알았기에, 당장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사실, 사냥하러 왔다고 선포하는 주제에 멋대로 칼을 늦추자고 말하는 것부터가 기만이라면 기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냥꾼은 뻔뻔하게 미소를 지으며, 당신에게 그런 기만적인 권유를 건네는 것이다.

"일단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역시 그쪽에게는 달갑지 않으려나?"

193 이름 없음 (OQycTWYLzg)

2023-03-04 (파란날) 02:43:07

>>191 나 왜 이러고 있지. 한 잔, 두 잔, 세 잔을 목뒤로 벌컥벌컥 넘기다가 든 생각이었다. 세상에 사람은 많고, 연애라는 거에 미친 사람은 더 많아서 그중 아무나 골라잡아 만나면 되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수많은 옛 애인 중 하나일 텐데. 이번에는 꽤 오래 만났었나, 그랬긴 했지. 왜 그랬지? 그야 정신 상태가 말썽이었으니 그깟 놈 붙잡고 있었던 거겠지, 머저리…….

툭, 하고 소주 잔을 든 손등에 이마를 기댔다. 수족냉증으로 인해 생긴 찬 온기가 이마를 넘어 뇌속까지 파고들자 어느정도 정신이 깨는 기분이다. 그리고 얼마 없는 친구가 옛적에 했던 말도 파고들었다. 넌 항상 왜 그런 애들만 만나?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아, 대답은커녕 어물거리다가 답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꼴에 친구라고 제 밑바닥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나 보지. 그런 애들만 만나기는, 내가 그런 애라 그런 새끼들만 만난 거지, 시발……. 깊게 사귀기에는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한 주제에 외로움은 많아선. 탁!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 성혜주는 소주 잔을 조금 거칠게 내려놨다. 안으로 말려 약간의 곱슬기가 있는 단발의 끄트머리가 흔들렸다. 동시에 다가온 인기척을 따라 눈을 굴렸다.

"예에, 뭐……. 그러세요."

감정에 휘말려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으므로, 성혜주는 최대한 말투를 가다듬으며 대꾸했다. 특이한 사람이네, 보통 미친년인 줄 알고 피하던데. 어느새 따른 술잔을 들이키며 평이하게 생각한 성혜주는 허공을 쳐다봤다가 다시금 이진을 향해 시선을 꽂았다. 가로로 시원하게 트인 큰 눈이 나른하게 감겼다가 뜨였다. 성혜주는 외로움 많고 경계심 많으면서 또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막무가내였다.

"합석비는 뭘로 내실래요?"

소주 잔을 느리게 흔들며, 상대를 꼬실 때 으레 그렇듯 입꼬리를 올렸다. 제 버릇 못 고치고 또 시동을 건다.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성혜주에겐 단지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 외로운 밤, 달보다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는 게 좋았다.

194 이름 없음 (zTYDvMjbHc)

2023-03-04 (파란날) 04:02:07

>>193
다시 보니, 여성 손님은 분위기가 숙연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꽐라가 되어있었다. 이건 합석을 청할 게 아니라 경찰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 탁, 하고 거칠게 잔을 내려놓는 손놀림에 조금 놀랐지만, 이내 선선히 승낙하는 대답이 돌아오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뭐, 적당히 요기하면서 살피다가 인사불성인 것 같으면 택시 부르든가 해야지. 진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려는데, 어쩐지 얼굴이 근질근질해서 여성 쪽을 보려니, 어쩐지 무안해질 만큼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뭐 묻었나? 샤워하면서 세수는 제대로 하고 나왔는데.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냐고 물어보려던 그때, 진은 여성의 입에서 나온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귀를 의심해야 했다.

합석비? 내가 잘못 들었나? 합석을 돈 주고 해야 하는 거야? 그것도 가게 주인인 아저씨가 아니라 손님인 저 분한테? 왜? 못 온 사이에 그런 방침이라도 생겼나? 애매하게 찌그러진 얼굴을 다 펴지 못한 채 주인아저씨를 바라보니, 아저씨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생각을 가다듬었다. 애초에 오지랖을 부릴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장사하시는 동안 인사불성으로 취한 여자 손님이 이번이 처음이시겠어. 그냥 다른 가게 가자. 여성에게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데, 여성이 짓고 있는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착잡해졌다. 초면이라도 사람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은 그냥 넘기기도 싫었고, 겸사겸사 주인아저씨 수고도 거들까 싶어서 나섰는데, 합석하려면 돈을 내라는 말에, 추파 같은 시선이 돌아올 줄이야. 그래, 그것도 내 사정이니까. 그것도 술에 취한 사람이 남의 사정까지 헤아려주길 바라는 건 무리한 거니까. 진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대꾸했다.

"여자분 혼자서 만취하신 채 다니시기엔 밤길이 위험할 것 같아서 제 찝찝함 덜자고 합석 청한 거긴 한데요. 솔직히 비용까지 지불해가면서 오지랖 부리고 싶진 않네요. 다른 가게로 갈게요."
-"그려, 걱정 말어. 여차하면 내가 경찰 부를 테니께. 이담에 오면 서비스 넉넉히 드릴게, 미안하구먼."
"아이고, 아니에요. 그만큼 아저씨네가 핫플이란 거 아니겠어요. 내일 또 올게요!"

아저씨가 미안하실 일이 아닌데, 내가 다 무안해져서 일부러 농담하듯 말하며 두 손을 휘젓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래, 오늘만 날이냐. 내일이 있는데. 착잡한 마음을 애써 덜어내며 터벅터벅 걷는데, 주머니 속에서 짧은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쭉 사귄 애인인 명훈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진아, 퇴근했어? 오늘도 고생 많았어.]
[안 피곤하면 잠깐 통화할래?]

조금 전 느꼈던 끈적한 불쾌감이 씻긴 듯이 사라졌다. 진은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걸 느끼며, 홀린 듯이 키패드를 두드렸다.

[좋아! 마침 엄청 목소리 듣고 싶었어]
[명훈이도 오늘 하루 수고 많았어!]

195 이름 없음 (OQycTWYLzg)

2023-03-04 (파란날) 04:34:39

>>194 야 ㅋㅋ 너 너무 의도 투명한 거 아니냐? 솔직히 주인아저씨로 난입해서 이어줘도 허심탄회 고민상담 느낌 나서 좋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를 연애에 미친 커뮤러라고 생각해서 커플 캐로 산통 깨는 감각으로 우월감 느끼는 거 다 보여. 존나 불쾌하네 얘?

196 이름 없음 (iZ7bjrhZVY)

2023-03-04 (파란날) 10:31:10

>>192

"그런 것은 관계없어. 오히려 지금 이 상황에서 친근한 분위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데. 네 이야기는 여럿 들었으니 말이야."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렴풋이 들은 것은 있었다. 그런 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게 대체 뭐겠는가. 아쉽게도 사내는 순순히 목숨을 내놓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조용히 살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언제든지 죽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런 반발없이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이런 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 그로서는 불쾌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황가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할 생각은 없었으나 적어도 제 목숨 하나는 부지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내 상대의 입에서 청부라는 말이 나오자 사내는 조금 더 거리를 띄웠다. 허나 바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 경계를 아주 조금만 풀며 사내는 상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야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일단 들어보겠어."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를 할 것이 뭐가 있을까. 어떤 제안을 하고 받아들이면 살려주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인다라는 전개? 아니면 도망치라고 이야기하며 풀어주는 전개? 어떤 일이 앞에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으나 태연함을 가장했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말해두지만 그냥 순순히 죽어줘. 라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물론 너도 그런 제안을 할리는 없겠지만."

197 이름 없음 (NtrfrordbY)

2023-03-04 (파란날) 15:15:09

>>196

/저기... 미안한데 여기서 끊을 수 있을까

198 이름 없음 (QyIbEWsp2.)

2023-03-04 (파란날) 15:22:59

>>197 오케이! 알겠어! 짧지만 수고했어!

199 이름 없음 (/YqE4GefhI)

2023-03-06 (모두 수고..) 02:26:22

_너한테 처음 총 쏘는 방법을 배운 그 어리숙하던 이. 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려와서 조준하기가 어렵다고 조잘거리고 툴툴거리던 목소리.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다보니 나아진 실력에, 네게 지나가는 한 마디 칭찬이라도 들으면 말갛게 웃던 눈. 그랬던 사람은 어디 갔냐는 듯이 지금 네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지금 떨리는 손 끝은 미숙함에서 비롯됨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이 들끓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니라고 말해줘요, 선배.”

200 이름 없음 (kaW7xCuxQI)

2023-03-06 (모두 수고..) 02:31:02

>>199 # 잘려서 복붙 됐다 ㅠ 이어줄 참치가 잇다면 이거로 봐줘<!

_너한테 처음 총 쏘는 방법을 배운 그 어리숙하던 이. 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려와서 조준하기가 어렵다고 조잘거리고 툴툴거리던 목소리.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다보니 나아진 실력에, 네게 지나가는 한 마디 칭찬이라도 들으면 말갛게 웃던 눈. 그랬던 사람은 어디 갔냐는 듯이 지금 네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지금 떨리는 손 끝은 미숙함에서 비롯됨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이 들끓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니라고 말해줘요, 선배.”

_떨리다 못해 흐느끼는지라 발음이 뭉개졌으나, 총도 겨누지 못 하는 손이니, 온전히 올곧은 것이 있다면 눈빛이었다. 진실이 겁나더라도 알아야 한다, 눈동자는 너만을 비추었다.

201 이름 없음 (ygIwKj45i6)

2023-03-06 (모두 수고..) 03:00:37

>>200

보자,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이 뭘까. 아니, 계산 된 말을 뱉을 때는 이미 지났나? 그렇대도 어차피 솔직해지는 방법따윈 잊은지 오래였다.
진실이니 거짓이니 하는것따윈 신경쓰지 않게된지 오래되었지만, 눈앞의 후배-라고 할만한 너는 아직 진실이라는게 무엇인지 알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눈동자였다.

"유감이네."

그렇다면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게 예의겠지.
짧막하게 대답한 뒤 나 또한 네게 총구를 겨누었다. 네게 가르친것이 있으니 그것에 걸맞게 행동하기 위해서.

"손이 떨리면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줬었지? 조준이 엉망이면 총을 가진 의미가 없다는건 여러번 말 해줬었지? 봐, 벌써 상대방도 총을 들었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너를 가르치던 그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202 이름 없음 (8JspeMw3nA)

2023-03-06 (모두 수고..) 12:21:54

>>201

_유감이라는 두 글자가 총알 같았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한 한 마디에 무너지는 것이다. 좌절, 분노, 슬픔, 증오, 배신감, 의문, 실망, 모든 것에서 눈과 귀를 막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보겠다 발버둥친 것이 결국은 절망으로 바뀌어 감정이 휘몰아치니 무슨 표정을 지을 수 있는가. 그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말은 잘 만들어진 말이구나 싶다. 너를 비추던 눈동자는 이내 제 손에 쥐어져 떨리는 총 한 자루를 향한다.

“그러게요, 의미가 없네요.”

_당신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선배.

“제가 아직도 당신의 후배인가요?”

_네게서 배웠으니 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평생 너를 잊지 못 할 것이다. 처음 총을 잡았을 때보다도 더욱이 못나게 떨리는 손과 타겟을 바라보지 않는 눈. 그런 머저리같은 상대가 눈 앞에 있다면 누구라도 몸 어딘가에 구멍 하나는 내 줄 수 있을 것이고,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노리기도 쉬우리라. 그런데도 아직 숨을 쉬고 있음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가르침은 누구를 향하는가 묻는다.

203 이름 없음 (ygIwKj45i6)

2023-03-06 (모두 수고..) 13:11:59

>>202

네가 시사하는 의미라는말에 담긴것은 다만 조준하는 방법뿐일까? 네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눈으로 보일듯이 선명했다.
여러번 해 온 일이지만 이렇게나 솔직한 것은 네가 처음이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네 선배일까?"

대신 네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말해봐. 너와는 달리 흔들림 없는 손으로 총을 겨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쏘지 못 하고 있는건 내가 아직 너와의 관계에 미련을 갖고 있어서인가?

204 이름 없음 (1qYJ0MDsw.)

2023-03-06 (모두 수고..) 15:14:51

>>203

_총을 잡고서도 그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체감치를 못해 마냥 순진무구하고 어리석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언젠가 이 일을 계속하다보면 다칠 일도 찾아오고 죽을 일도 찾아올텐데, 네게서 잘 배우고서 선배를 지켜주는 후배가 되어보자 기대하는 생각. 처음으로 생명을 해했을 때는 또 다른 생각도 했다. 제가 죽는다면 아마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은 네 얼굴이겠다고. 그리고 지금은 기술은 늘었고 생명을 해하는 것에는 감각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어리석은 이였기 때문에 총을 쥐고 있는 손을 내렸다.

“네. 아직은요. …아직은, 아직은 선배니까, 부탁 좀 들어줘요.”

_지키고자 했던 이를 한 순간에 해해야만 한다는 진실이 내장을 뒤집고 비틀어 꼬는 듯해 구토감이 솟았다. 토해낸다면 먹은 것이 아니라 울분을 뱉을 것이다. 씹어뱉은 발음이 흐느끼듯 스러진다.

“아주 멀리 떠나서, 경치가 아주 멋진 곳으로 가서요…, 좋아하는 단골 가게도 만들고, 핏비린내 대신 꽃향기나 맡고, 다칠 일이라고는 가끔, 가끔 요리하다 손 베이는게 전부인, 그렇게…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단 듯이, 아주 시시하고 재미없게 살아가줘요…….”

_제가 다시는 당신을 찾을 수 없게요. 만약 우리가 재회할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어느 한 쪽이 죽어야할테니까.

205 이름 없음 (7XLBaLgcLA)

2023-03-06 (모두 수고..) 15:56:16

>>204

결국은 총구를 내리고 울먹이기라도 하는듯한 모양새로 그런 말을 하는 너의 모습을 보니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정말로 배우질 못하는구나."

언젠가 자주 했을터인 말을 흘리고, 총구가 내려진 틈을 타 재빨리 네게 달려들었다. 그러고서 늘 그랬듯 네가 내게 제압당하던, 아니면 의외로 내가 네게 제압당하던 하는말은 같겠지.

"이렇게 되어서도 나를 죽이지 못 하는걸 보면.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가장 가까이서 본게 누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단골가게를 만들고, 꽃향기를 맡고, 요리를 하는건 네가 하는게 어때. 나보다는 네가 더 잘 할거야."

지금이라도 울어버릴듯한 주제에 바보같이 성실한 너야말로 그런것에 더 잘 어울릴터였다.

"날 봐. 나를 봐.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그런일들을 하는게 어울릴거라고 생각해?"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고, 너를 포함한 모두를 배신하고,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주제에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내가.
아니, 표정만은 조금 흐트러졌을지도.
너와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듯 하다.

206 이름 없음 (1qYJ0MDsw.)

2023-03-06 (모두 수고..) 16:46:35

>>205

_제압이란 단어는 이상했다. 무언가 억눌러서 통제할 것이 있어야 제압이라 부를만 할텐데, 아무런 의지가 없는 몸은 허수아비 같았다. 나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라 부러지진 않으니 다행이리라.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는 총을 네게 겨누었을 때부터 이미 목숨을 내다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네가 달려들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총도 곧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낸다. 장난감 플라스틱 총보다도 위협적이지 못 했는데 그마저도 없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뚫린 입으로 무슨 소리라도 내는 것이 최선이다.

“제가 배우질 못한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별로였어요. 그 사람도 지금 절 못 죽이고 있거든요.”

_죽음은 겁나지 않았다. 네가 죽이려고 했다면야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둔한 이는 왜 떨고 있는가. 이제는 몸으로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키고자 했던 자를 죽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는 것을 머리로 깨닫은 게 채 이해되기도 전에, 네가 달려들어 제압이라고도 못할 제압을 함으로써 몸으로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널 해쳐야만 함을 겁내는 것이다. 용기도, 배짱도, 자존심도, 아무것도 없었다.

“……전 책임을 져야해요. 선배가 없어진 빈 자리는 그 후배가 메꾸겠죠.”

_그런 시시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기엔 늦었다. 총을 잡았더라도, 사람을 해했더라도, 적어도 당신처럼 되고 싶단 생각만 안 했더라면 늦지 않았을텐데.

“왜요, 못할 것 같아서 겁나요? 멍청한 후배 가르치는 일보다 쉬울걸요.”

_악에 받친 목소리에 끝까지 힘을 싣지 못할 것만 같아서, 절대로 너를 보지 않았더라. 유감이다. 꺾여버린 고개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눈물이 맺히지 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207 이름 없음 (lFv7VmzfyM)

2023-03-06 (모두 수고..) 18:28:10

>>206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몸. 총까지 놓쳐버린 너를 죽이는건 아주 쉬웠다. 쉬울터였다. 자신을 못 죽이고 있다는 너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너를 찍어 누른 손에서 힘을 풀지 않은채로 생각을 시작했다.

"네가 전의를 잃은게 처음부터 보였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것에 관계없이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라 가르친건 자신이었으니. 전부 거짓말이었지만 너를 가르치는 것 만큼은 진심이었다.

"굳이 전부 책임지려 하는 버릇은 너만 피곤해지니 빨리 고치는게 좋아...라고도 이미, 몇 번이나 말했었지."

그런 네게 진심을 써버렸다. 그런가. 그것부터 문제였던것이다. 그 무엇에도 진심을 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 부터 놓치고 있었으니 지금 널 죽이지 못 하는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너를 죽이지 못 하게 되어버렸다. 네가 말 한대로 평범하게 사는것 따위는, 자신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못 할것 같아서 겁이 나니까. 이런 자신을 닮으려한 너도 마찬가지일까. 그래도 나만큼 늦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기는 한데.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후배가 멍청하다는걸 감안하면서 말 할게. 저쪽에 있는 철문을 열면 비상계단이 나와. 그 계단을 쭉 내려가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어. 내가 사용하려던 루트니까 장담해."

그리고, 네가 이것이 싫다고 하면 남는 상황은 하나뿐이다.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상황. 그런데 나는 이미 진심을 담는 실수도 저질렀고, 그런 주제에 너를 죽이는것도 싫다고 하니 남는건 하나겠지.

"아니면 이번엔... 제대로 조준해 봐. 내가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는거니까."

내 총을 네 손에 쥐어주면서 내 머리로 네 손을 끌었다. 이러면 좀 봐주려나.

208 이름 없음 (mH1NkE0OG6)

2023-03-06 (모두 수고..) 20:50:09

>>207

“거짓말. 비겁해요, 선배는.”

_그래, 지금만 해도 굳이 총성을 내지 않고도 조용히 죽일 수 있다. 반항할 기미는 보이지도 않으니 목이라도 조르면 수분 내에 숨이 넘어갈 것이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 자도 그러했다. 비록 너를 죽일 용기는 없으나 진심을 밝힐 용기는 있었다.

“……저는 말할 수 있어요. 선배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_비록 그 시야는 두 눈을 힘주어 감아 여전히도 너를 비추지는 못 했다. 하나 두 눈을 봐야만 진심이 느껴지기에는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물기가, 떨림이 진했다. 누가 들어도 우는 듯한 목소리임을 본인도 느껴 울음을 참기가 버거웠다. 차라리 총에 맞는 것이 덜 고통스러우리라. 칼에 찔리는 것이 덜 고통스러우리라. 해야하는 일도 하지 못 하고 감정에 휘말려 휩쓸려가고만 있다. 그럼에도 그러해도 좋으니 네가 죽길 바라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에요, 이제는.”

_걱정인지 가르침인지 모르겠으나 어느쪽이어도 괴로운지라 입술을 물었다. 여기서 헤어지게 된다면 너는 더 이상 선배가 아니고, 네 손에 눌린 이도 더 이상 후배일 수 없다. 선배라는 말을 애써 짓이겨진 소리라도 내는 것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는 간절함이었다. 부탁 좀 들어달라며 말했던 요구를, 욕심을 받아달라며. 겁이 나더라도, 어울리지 않더라도, 견뎌낼 수 없더라도 모른체 살아가달라고.

“이게 무슨…!”

_처음이었다. 팔에 힘을 올곧게 싣고 뿌리치려 애썼다. 실수로라도 방아쇠를 당겨버릴까 겁에 질려하는 꼴이 처음 총을 쥐었을 때보다 우스울 지경이었다. 놀라고, 당황하고, 두려워서, 억지로 쌓은 둑이 평화로운 척 잔잔하다 한 번의 파문이 일자 넘쳐 흘러버린다. 기어코 총을 쥐어지게 된 손은, 머리를 겨누게 된 손은 눈에 띄게 떨었다. 네 손에 붙잡혀있더라도 멈추지 못 하는 울림이었다. 이제는 울음 때문인지 겁 때문인지 모를 떨림이다. 이제서야 너를 바라보나 눈물이 시아를 흐려 온전하게 담지는 못한다.

209 이름 없음 (ygIwKj45i6)

2023-03-06 (모두 수고..) 21:27:21

>>208

"맞아. 비겁한 인간이 아니면 이런짓은 안 하겠지."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을 터다. 너와같이 진심을 밝힐 용기가 있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것은 그저 비겁한 거짓말 뿐.

"거짓말을 일삼고, 너까지 통째로 전부 배신한데다, 죽이려고 까지 한 인간을 끌어안고 가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걸 가르쳐주고 있는거야. 명백한 적을 살릴 이유가 어디에 있지?"

감정론을 전부 배제하고 이론만을 들이채운 말이었다. 자기자신의 감정조차 들어가질 못 한, 그런.
그럼에도 그 말을 굳이 육성으로 내뱉고있는것으로 암시하는것이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선배니 후배니 하는것들은 전부, 지금 너를 붙잡고 있는 이 손으로 부숴버렸다고.
그러니까,

"...이제 봐주네. 지금 잘 하고 있으니 그대로 쏴. 그럼 책임지는 행위로도 충분할거야."

네가 살아줘.

210 이름 없음 (Dd7D0byoZM)

2023-03-06 (모두 수고..) 22:49:37

>>209

_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가 그랬듯이 전하고 싶은 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소리내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으니, 입을 계속 다문 채로 대답을 거부할 뿐이다. 눈물을 훔칠 생각도 않고 훔치지도 못 하는 이는 눈물이 차올랐다가 떨어지며 뿌옇다가 선명해지는 시야. 그런 시야로 너를 보고 있었다. 죽이고 싶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버렸기 때문에, 죽이고 싶지 않다는 뜻은 네가 죽겠다 마음 먹었다는 것이다. 알 수 밖에 없었다. 너를 닮고 싶어했던 이도 널 죽이지 못 하고 저는 죽을 각오를 했으니 알 수 밖에 없으리라.

“선배잖아요.”

_닮고 싶었던 사람, 처음으로 지켜보겠다 생각한 사람.

“제가……. 내가 선배를 죽이고 어떻게 살아?”

_싫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싶은 걸 참은 이는 다시 한 번 부탁한다.

“비겁하다면서요. 비겁하게 굴어요. 도망가라고요….”

211 이름 없음 (RCOwfSUQIo)

2023-03-07 (FIRE!) 01:01:02

>>210

"그 선배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있어?"

이름조차도 전부 거짓이었는데. 그런 사람에게 울며 매달리는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걸까. 나 조차도 알지 못하는 나를.
너는 정말로 그런 사람을 닮는것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너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할리 없으니.

"-"

그래서 가만히,네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지금 나를 보내도 네가 바라는대로 되지는 않을거야. 아마 언젠가는 또 이렇게 만나게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를 죽이려면.
흐트러지는 표정을 최대한 붙잡으며 총구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212 이름 없음 (tGGuknS01Q)

2023-03-07 (FIRE!) 02:16:53

>>211

“날 살린 사람이요.”

_이런 일을 함에도 여지껏 살아 숨쉬다 못해 지금까지도 숨을 쉬는 건 네 탓이다. 덕이라고 해야할지 때문이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나 고르지 못 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기에는 타인의 죽음을 쌓아올린 삶이니 얼굴에 철면피를 두르더라도 못할 짓이다. 그런 삶일지라도 계속 숨을 쉰 건 네가 목표가 되어주었고, 스승이 되어주었고, 지금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부를 이름도 없는데 치사하게.”

_이름을 부르니 눈물짓다가도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네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가짜 이름이라도 불러보려다 말았다. 대신 너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아니, 총구에 기대는 네 무게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번 저울질을 해본다. 너를 죽인 저가 살아갈 때와, 저가 죽은 네가 살아갈 때. 아무도 죽지 않기를 원하나, 총구에 기대는 모습을 보니 그게 편한 길이라 고르는 것인가 싶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선배, 한 번만 거짓말하지 않고 말해주세요. …선배는, 정말, 죽고 싶어요?”

_도망치라는게, 죽음으로 도망치라는게 아니었는데 그것이 네 피난처라면 제 마음이 무슨 문제일까. 그저 어디선가 네가 살아있으리라 믿으며 위로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가보다.

213 이름 없음 (9XoMwjHquw)

2023-03-07 (FIRE!) 15:51:30

>>212

그런가. 떠올려보면 너를 살리고, 가르치며, 삶을 준것은 자신이었다. 전부 필요에 의한 행위에 불과한데다 가르친것이라곤 결국 그런것들에 불과하건만 너는 그것 탓에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있다.

"하하."

문득 쓴 웃음이 나와 총구에 기댄 머리를 떨구고 짧게 웃었다. 너는 결국 나를 완전히 흐트러뜨리는데에 성공한것이다.

"내가 죽고싶어하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하더라도 결국은 일을 미루는 행위가 될 뿐이지. 지금 내가 네 말대로 도망치더라도 언젠가는 또 이런 상황에 맞딱트리게 될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네가 나를 죽여주길 바랐는데.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이제 시간이 없어. 정말 마지막이야. 지금 쏘지 않고 떠나보내도 나는 또 너를 죽이러 올거야."

네 선택에 맡기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마지막으로 한 번 정도는 후배를 커버쳐줄 수 있겠지.
그러니까 다시 고개를 들고 너를 보며, 한 번만 거짓말이 아닌 말을 했다.

"내 이름은—

214 이름 없음 (BZaHN9JGms)

2023-03-07 (FIRE!) 18:01:51

>>213

“나는 선배가 중요한데, 그게 중요하지 않은 거면 뭐가 중요한데요?”

_네 뒤만 쫓아 자라왔던 이는 여태 그 길이 거짓이라고 해도 다른 길을 찾지 못했나 보다. 아니면 네가 먼저 걸어갔을 지언정 저가 직접 걸었으니 제 길이라고 우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속 가던대로 꿋꿋이 걸어가겠노라,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겠지. 총구와 네 머리가 맞닿지 않자 손목을 꺾어 방향을 틀었다. 허공을 향한 총구는 더 이상 떨리질 않았다. 울음이 멎은 것이 아닌데도 그럼은 역시 모든 떨림은 너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죽이러 와요.”

_그 말이 얼마나 기쁘게 들리는지 당신은 모르겠죠.

“선배가 죽이러 올 때까지 절대 안 죽을테니까, 선배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저 죽이러 오라고요.”

_멍청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다면 잘 웃는다는 말이리라. 네 이름을 듣더니만 여전히 눈물로 촉촉하더니만 말갛게 웃지 않는가. 그러고나서는 허공에 불규칙한 총성을 울린다. 없는 시간을 더 줄여버리려는 의도였다. 이 소리를 듣고 찾아올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네가 떠나길 재촉하기 위해서.

“이름은 다음에 만나면 불러볼래요.”

215 이름 없음 (RCOwfSUQIo)

2023-03-07 (FIRE!) 21:43:31

>>214

"너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는거야."

정말이지 예전부터 배우질 못 하는 후배다. 이렇게 곧 바로 총구를 돌리는걸 보면.
아니, 이제는 떨리지 않는걸 보면 배우고 싶은것만 배우는건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그 점만은 내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실없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정말로 죽일거야."

답지 않은 말을 하고 일어나며 네게 화답이라도 하듯 만들어낸것과 같은 모양새로나마 살풋 미소를 띄웠지만 네가 만드는 총성에 금방 지워졌다.

"무슨...!"

이번에는 네가 아니라 내가 당황했다가, 금방 의도를 이해했다. 이렇게 하면 도망칠 시간도 아슬아슬해지는걸 알면서 한건지 모르면서 한건지. 그래서 당장 발걸음을 옮기며 그 직전에 딱 한 마디를 했다.

"꼭."


#여기서 마무리 하면 되려나? 재미있었어!

216 이름 없음 (12SiQnKHGg)

2023-03-07 (FIRE!) 22:16:59

>>215 # 고생 많앗어~ 요근래 답레가 기다려질만큼 재밋엇다! 이런상황 개재밋겟다; 하고 가볍게 올린거엿는데 이렇게까지 대유잼이 되다니……. 선배님 존함이 궁금하고 이건 아무도 안물어봣지만? 후배는 어느정도 선배 대신 구른 후에(?) 경치 좋은 어딘가로 아주 멀리 무작정 떠나서 거기 있는 꽃집에 무작정 아르바이트로라도 써달라고 할 계획이라더라. 선배가 못찾게.

217 이름 없음 (RCOwfSUQIo)

2023-03-07 (FIRE!) 22:24:28

>>216 #너 참치도 재밌었다니 다행이다! 고생많았어~
선배님 이름... 엄청 특이한거일것 같다. 정작 가명은 진짜 평범한거였겠지만.
후배 구르고ㅠ나서 정작 자신이 평범하게 사는구나... 선배는 후배 말 안 듣고 하던 일 계속 하는데 후배가 엮일만한 일이다 싶은건 다 끼어들어서 괜히 기웃댈듯?

218 이름 없음 (12SiQnKHGg)

2023-03-07 (FIRE!) 22:36:13

>>217 # 재밋없을 수가 잇나요………? 재밋게 이어줘서 고맙다고 108배라도 올려야 쓰겟는데……. 가명조차도 고귀햇을 우리 선배님… 만수무강무병장수하세요 ㅠ 응, 어느 정도 책임 다 진 거 같다 싶으면 이 일에 손을 떼야 선배가 살 거라고 생각햇거든. 다시 만날 때는 누가 죽든 할테니 만날 일 없게 만드려고 그랫대~ 선배님… 그렇게 해서는 우주최강의 선배밖에 되지 못해요……. 그래도 살아쥬셔서 감사합니다 ㅠ

219 이름 없음 (RCOwfSUQIo)

2023-03-07 (FIRE!) 22:50:59

>>218 #으아니 저야말로 감사했습니다 재밌었어!! 후배쟝 선배님에 대해 너무 잘 알잖아....... 우주최강이 되어서도 이상한데서만 괜히 후배 찾는 선배님 떠올라버렸고

220 이름 없음 (12SiQnKHGg)

2023-03-07 (FIRE!) 23:14:06

>>219 # 선배 가르침을 받고 자라서 선배님 관해서는 일취월장 했대~ (??) 선배님 알게 모르게 후배한테 물든거 같아서 둘 관계성 넘 존맛이야 ㅠ 앗 근데 우리 일상도 끝나고 햇으니까 계속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 민폐인가 걱정되갖구 :3 혹시 더 얘기할 거 잇으면 못다말에서 찾아줘~~!

221 이름 없음 (RCOwfSUQIo)

2023-03-07 (FIRE!) 23:23:25

>>220 #앗 그렇네 너 참치도 궁금하거나 말하고 싶은거 있으면 못다말에서 찾아줘!!
재밌었어!!!

222 이름 없음 (nj.VrqiSNE)

2023-03-08 (水) 15:32:16

연구원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맑은 구슬 굴러가듯이 청량하게 울린다. 목소리는 한없이 산뜻한데 보이는 모습은 만신창이다. 유리벽에 찰싹 달라붙어 당신을 바라보는 실험체는 천진난만하게 방글방글 웃는다.) 내가 재밌는 비밀 얘기 해줄게. 나는요, (목소리를 주욱 낮추더니 소곤거린다.) 내 실험이 성공하는 날 죽어버릴 거야. (배싯 웃는 것은 참 아이같았다. 하는 말이 섬뜩하기 그지없었지만.)

223 이름 없음 (vsoPWYhX8E)

2023-03-08 (水) 16:57:01

>>222
마음가짐이 잘못 되었는걸. 물론 네가 죽지 않길 바라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도 있지만, 기왕이면 나 포함 모두를 죽이겠다는 목표를 가지도록 해. (웃는 당신의 미소를 지켜보다가, 묘한 표정으로 유리벽 너머를 바라본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변화를 기록하고, 가끔은 실험체화 회화를 가진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재촉에 한숨을 내쉰다.) 좋아. 그러면 문항이다. 비, 바람, 눈, 번개, 무엇이 좋지?

224 이름 없음 (CLGSLpUhAw)

2023-03-08 (水) 17:23:24

>>223
왜? 너희는 내가 죽어서, 이 짓을 또 할거야. 나랑 비슷한 조건의 실험체를 찾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거라고. (잠깐 골똘하게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히죽거린다. 다시 당신을 바라보았다.) 이왕이면 걔도 실험이 성공하는 날 죽어버리면 좋겠다. 우릴 가둬둔건지 너흴 가둔건지 헷갈릴거야, 그치. (문항이라는 말을 들으니 유리창에 달라붙어있던 몸을 떼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워버린다.) 지겨워, 지겨워. 눈이 좋아, 눈. 하늘에서 내리는 거 말고 네 눈.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낸다.)

225 이름 없음 (vsoPWYhX8E)

2023-03-08 (水) 17:45:26

>>224
그건 우리로써 꽤 괴롭겠는걸. 너같은 적합자를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록 말소를 위한 전초 작업, 은폐, 인력들을 생각하면. (마주보는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면서 볼펜으로 차트를 툭툭 건드린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천천히, 가혹하게, 해내겠지. 우리가 전원 죽지 않는 이상. (한숨을 지으며 대자를 뻗어버린 당신을 내려다본다.) 우린 이미 갇힌 신세야. 협조를 안해준다면, 해줄 때까지 무언갈 하는 수 밖에 없고. ……내 눈이면 충분하겠어? 네게 한 짓이 있는데. (차트에 했던 것처럼, 볼펜으로 제 눈가를 툭툭 두드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내 눈 만큼이나 예쁠걸. 눈에 체크할게. 자, 다음. 모험할 친구는 누가 좋아? 나비, 고양이, 개, 그리고 나.

226 이름 없음 (YjJUwm5abE)

2023-03-08 (水) 18:25:03

>>225
협조는 이미 충분하잖아. 마지막의 마지막에 딱 한 번 반항하는거야. (내려다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볼멘소리.) 난 너희가 고통받는게 보고 싶은데, 정말, 난 이미 죽어버렸을테니까 직접 못 보는게 아쉽다. 나중에 죽어서 만나게 되면 이야기 들려줘? 내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부터가 시작이야. (대자로 뻗어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세워 앉았다. 기대감이 부풀어올라 설렌다는 듯이 눈을 빛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기억 안 나는데, 네 눈은 기억나거든. (내가 보는게 그런 거 말고 뭐가 있겠어? 비아냥대더니 친구라는 말을 듣자마자 헛구역질 시늉을 한다.) 우웩, 그런 낭만적인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너나 나나.

227 이름 없음 (vsoPWYhX8E)

2023-03-08 (水) 22:11:15

>>226
곧 죽을 사람처럼 구는데, 몸의 60프로가 없어도 살려낼 수 있는 게 여기 의료진들이야. 그러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내 권한으로 가능한 거라면 뭐든 가져다줄테니. 옆방은 초콜릿 상자를 달라고 했어. (당신의 설렌다는 눈빛을 질린다는 표정으로 받아낸다.) 보고싶으면 말해. 눈높이는 언제든지 맞춰줄테니. 대신 주지는 못하니까 양해해줘. (당신의 헛구역질하는 시늉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럼. 현실에서 하기 힘든 것, 이루기 힘든 것이니까 낭만인 거 아니겠어. 자, 친구가 된 기념으로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겠어? 대답 안하면 정말 나라고 적어버릴테니까.

228 이름 없음 (Np2PEJ.oxw)

2023-03-08 (水) 22:31:07

>>227
내가 언제 죽을진 너희 손에 달렸지. 실험이 성공하는 날 죽을 거라니까. (몸의 60%가 없어도 살려낸다는 말에는 눈을 찌풀거렸다. 죽음조차 내 것이 아닌 처지가 영 고깝다.) 초콜릿? (초콜릿 상자. 제 귀가 먹었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이고, 동그랗게 뜬 눈을 얄밉게 깜빡거린다. 그러다 히죽 웃으며 야살스레 눈꼬리를 접는다.) 걔 귀엽다, 그럼 나 옆방 애 만나게 해줘요. 잘생겼어? 예뻐? 나보다 나이는 어리면 좋겠는데. 너희들은 새빠져라 공부에 연구만 하니까 다 늙어빠진 상이라고. (키득거리며 다시 대자로 누워버린다.) 됐거든, 안 봐. 내 눈도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래도 분명 네 눈보단 예쁠 걸. (친구다 된 기념이라니, 뭐라니. 귀 후비적거린다.) 그러든가. 연구원님, 나랑 친구하고 싶었어요?

229 이름 없음 (XmKNrjbyQM)

2023-03-09 (거의 끝나감) 21:46:54

- 에구, 또 그 1인실 애기에요?
- 네…. 하지 말래도 계속 그래요.
- 거기 누가 있다고 그러는지 몰라, 정말.

"이상해. 왜 선생님들은 안 보이지이."

당신을 바라보면서 가물거리는 눈이 동그랗다. 아이 환자복은 옷이 조그말텐데도 그것도 크답시고 둥둥 걷어올린 소맷단들이 벙벙하고, 달려있는 주머니도 조그맣다. 아이는 조그만 주머니에서 이런저런 군것질 거리를 손바닥 위에 꺼내놓는다. 그것들을 볕드는 창문가에 조르륵 줄지어 세워놓고, 비어있는 병실 침대 위로 올라와 앉고 하자니 짧은 다리가 바쁘다. 종종종 걸어와서 폴짝 뛰어 올라 앉으면 아주 작게 풀썩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 거짓말쟁이 아닌데…."

시들시들, 금새 기운없어 하며 고개를 숙인다.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이 동동 떠있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 상대방은 비일상적인 존재라고만 생각했어요 :) 어떤 존재여도 괜찮으니 편히 이어주세요.

230 이름 없음 (uVXF83C7GA)

2023-03-09 (거의 끝나감) 23:44:12

”일단 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안 믿어요.“

손을 꼭 잡은 채로 하는 말치곤 온도가 낮았다. 냉담한 표정이 아니라 더 냉정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신은 지금 내가 주는 안정감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라구요. 당신이 유별난 건 아니고, 원래 센티넬들이 자주 그래요.“

늘 두통에 이명에, 여기저기 아프다가 운 나쁘면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 사람들 앞에 부작용 없는 치료제가 나타난 셈이니 얼마나 좋을까. 그냥 제가 알약이 아니라 사람이라 사랑으로 착각한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많았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니까 사과는 됐어요. 당신이랑 나는 상성도 꽤 좋다던데 착각할 만도 하죠, 뭐.“


/ 센티넬버스! 텀 좀 길 거야.. ㅠ

231 이름 없음 (rTRAwloXmo)

2023-03-10 (불탄다..!) 01:20:20

>>229

{그들은 높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너의 눈은 띄이고 빛이 비추고 있어}

찬란한 황금빛으로 강렬하게 반짝이는 따스하고 온갖 것에 겹쳐 보이는, 그럼에서도 마치 옛 된 창백한 흰 색의 여인과도 같은 단편으로 흐릿하게 엿보이는 무언가가 부드럽게 그 풍경, 그 장소에서 말했다. 아니, 그것은 소리도 무엇도 아니 였으나 아이에게는 그렇게 인지되는 것이라. 그것은 이것은 정말로 빛인가? 그렇게나 강렬한데 눈부시지도 않다. 이렇게나 따스한데 공기와 사물은 그 온기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 것은 아이에게는 어떠한 의미인가. 그와 상관없이 이 존재는 명백했다.

{너의 진실은 그들에게 진실이 아니야. 빛을 알지 못하기에 진실은 자체로 덧 없으로다}

그것은 아이의 중얼거림에 다시금 그렇게 '말했다' 지금 것 그래 왔듯이 다른 누구에게도, 울림조차 없는 들릴 수 없는 기이한 것이나 아이에게는 익숙할 터인 방식으로...

232 이름 없음 (ApJhicz68Q)

2023-03-10 (불탄다..!) 12:00:15

"망설일 필요도 없다. 검을 들어라. 나의 애제자여."

비틀어진 천좌(天座)의 치세도 오늘로서 막을 내렸다. 나, 개천교(開天敎)의 교주인 홍련마제(紅蓮魔帝) 채유라(蔡流羅)의 일생 최후 업적이었다. 무림의 끝없는 혈육도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고, 암흑과도 같던 지난 날들을 뒤로 보내고 개천교의 이름처럼 하늘을 다시 열어 새롭게 시작하리라.

그렇지만, 새롭게 열린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나는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업(業)이었다. 그 업은 내가 대업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필요했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치욕이자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을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이었다.

나는 눈 앞의 당신 인생을 비틀어놓은 장본인이었다. 정도(政道)로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기에 사도(邪道)로서 본보기가 될 정도를 부숴야만 했다. 미래가 유망하던 한 유파를 내가 세울 마교(魔敎)의 명성을 위해서 파멸시켰으니까. 생존자인 너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복수를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나를 의지해왔다. 내가 그 복수의 대상임을 너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너를 속였으니까. 모든 것은 정도의 잘못이라고. 잘못되어 비틀어진 천좌와 천좌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정도를
꺾어 버리기 위해서 나는 그것을 정도의 짓이라 너를 속였다.

어쩌면 그 때부터 나는 나의 최후를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후에 내 업적을 마무리했을때 무대에서 퇴장할 때는 네가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알고있지 않았느냐. 네 칼끝이 향해야 할 곳은 저곳이 아니라.."

나는 수많은 피가 묻어 지워지지도 않는 내 오른손의 검을 무너진 옥좌로 향했다가 왼손으로는,

"이곳이 아니더냐."

나를 가리킨다.

"수년간 내가 염원하는 일을 위해 도구로서 일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이제 그 검으로.."

나는 오른손의 검을 바로 쥐고 싸울 의지로 살기를 내뿜어냈다.

"나를 꿰뚫어 보아라. 나는 쉽게 죽지않을테니."

233 이름 없음 (yta2P3XQIk)

2023-03-11 (파란날) 13:28:41

ㄱㅅ

234 이름 없음 (5yqwjP3Psk)

2023-03-13 (모두 수고..) 22:08:02

피가 튀는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이들을 뒤로 하며 병사들은 앞으로 질주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 일대를 다스리는 영주를 치는 것이었다. 반란이라면 반란이었으나 명분은 그들에게 있었다.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는 영주는 그야말로 영지민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사는 악독한 이였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수탈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끌고 가서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 노예처럼 부렸으며 더 나아가 자신에게 거슬린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영주에게 시달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모두 횃불을 들고, 칼을 들고, 창을 들고 공격했다. 영주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기사나 병사들 중에서도 마음을 돌려 반란군들에게 합세했다. 반란군들은 거침없이 영지를 점령했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영주가 있는 성 뿐이었다.

은색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성문앞에 서 있는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원래 감옥에 있던 이였다. 집안 대대로 영주를 지키면서 살아왔으며 자신 역시 영주를 보필할 생각이었다. 허나 이번 대의 영주의 폭정을 막아보고자 몇 번이나 간청했고 영지민들에게 도움을 몰래 주는 등 나름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보려고 노력한 이였다. 허나 그것이 너무나 거슬린 탓이었을까. 결국 사내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렇게 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영주는 결국 이 사태를 막아보고자 사내를 다시 풀어줬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막아보라고 요청하며 막기만 하면 너의 죄를 다 씻어주겠다는 말을 한 것을 떠올리며 사내는 쓴 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 그 분에게 희망은 없어. 아마도 잡혀서 죽게 되겠지. 아마 여기서 막아선다면 나 역시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되겠지. 허나 집안 대대로 그 일가를 모시고 산 나에게 있어서 다른 길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며 사내는 쓴 웃음소리를 냈다. 이 또한 운명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일가가 대대로 수행한 그 임무를 마지막까지 하리라 다짐하며 사내는 반란군들을 맞이했다.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반란군이여. 허나 이 앞은 지나갈 수 없습니다. 굳이 지나가겠다고 한다면 저는 죽이고 지나가십시오. 가능한한 서로 피를 흘리지 않는 쪽이 좋겠지만... 당신들은 돌아가지 않을테니 저는 제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자. 오십시오."

이어 사내는 두 손에 검을 쥐었다. 마법도 일부 사용할 수 있으며 검술 실력도 제법 좋은 이였기에 어설프게 공격을 하면 오히려 죽을지도 모르는만큼 반란군들은 잠시 멈칫했다. 허나 그 중에서도 용기가 있거나 사내에게 맞설 이는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내는 그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을 것이다. 일단 덤비진 않으며,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상황은 폭정을 일삼은 영주를 몰아내고 죽이기 위해서 반란군이 일어난 상태이고 충언을 했다가 감옥에 갇혔던 사내가 풀려나서 그다지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문이 대대로 영주 이가를 지켜왔으니 자신도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일단은) 마지막 관문을 막고 있는 그런 상황이야. 일단은 판타지도 가능하다는 느낌으로 마법도 사용 가능하다는 설정이야!
이 모든 것이 꿈이라던가, 영화 촬영 끝! 처럼 갑자기 뜬금없이 상황을 종결시켜버리는 것만 아니면 어떻게 이어도 괜찮아! 사내를 아는 이도 괜찮고 모르는 이도 괜찮아. 설득을 해도 괜찮고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괜찮아.
사실 파엠 풍화설월 브금 듣다가 갑자기 떠오른 상황이라서 정말로 적대하고 죽이려고 해도 오케이야! 물론 설득하거나 대화를 시도해도 오케이야!

235 이름 없음 (WbQUZfw0zA)

2023-03-18 (파란날) 18:34:42

ㄱㅅ

236 이름 없음 (sE99pItsUI)

2023-03-18 (파란날) 20:45:40

>>234
파죽지세. 반란군은 우뚝 섰다. 나아가자니 태산같은 굳건함이 가로막고 있고, 돌아가자니 국민들의 피에 물든 땅을 밟을 염치가 없다. 고작 20대 초중반의 어린 사내인데, 그 위압감에 병사들은 방어적인 태세를 취해 머무는 것이 고작이였다.

"이게 얼마만인가? 오랜만이오, 내 벗이여."

어느샌가 최전선 앞에 기척을 나타낸 남성이 답을 해 오며 사내 쪽으로 살며시 거리를 좁힌다. 온통 검은색으로 싸맨 것이 그가 암살자임을 과시하는 듯 했다. 얼굴을 가리던 천을 조금 내려 얼굴을 온전히 내비치면 보이는 것은 텅 빈 두 눈이였다. 이 자리에 선 이상 결의가 비쳐질 법 한데, 그 푸른 눈에 비치는 것은 빛조차 반사되지 않은 암울함이였다. 그에 상반되게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훤히 웃으며, 단검을 도로 허리춤에 차더니 사내 쪽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한다. 그걸 보는 반란군은 더욱 경직되었으나, 듣자 하면 돌발행동을 하는 남성의 욕이 섞여있었다.

"동무께서도 알다시피, 난 살인을 즐기오. 다만 지금 그대는 미련하기 짝이 없어 살해가 꺼려지네-"
"자고로 살인은,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꺽는 묘미로 행하는 것이지. 가축마냥 죽음을 받아드리는 중생은 찢어도 아무런 낙이 없더외다."

그는 사내와 같은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남자였다. 사내가 그와 정녕 친했든, 남보다 못한 사이였든,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 그는 제 아비와 윗혈육을 죄 극악무도하게 살해했으면서도, 투옥 생활 내내 내비친 모습은 평범하고 순박하기 짝이 없는 어린 청년의 모습이였던, 그런 위선적인 인물이라고.

"오랜만에 본 친우에게 이런 부탁으로 눈을 띄우는 것도 참 염치 없다만, 옛 정을 봐서라도 들어 주면 안 되나?"

사내가 별 제지를 하지 않는다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피를 뒤집어쓴 그대의 주군에게 내 여동생의 혈흔까지 스며들었다네. 오라비로서 도리는 다할수 있게, 비켜주면 안 될까."

237 이름 없음 (8iiycgGb1Q)

2023-03-20 (모두 수고..) 20:34:56

(대광장의 높디 높은 단상 위, 환호와 꽃다발의 세례를 발밑으로 두고 양팔을 펼치며 연설하는 한 장군, 그러나, 광장 구석에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의 입구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모습이다.)
저기, 보여? 너는 나보다 키가 크잖아.(당신 바로 옆에서 벽에 기댄 채, 처량한 목소리로 묻는다.) 보일 리가 없으려나. 너무 멀어서...... 멀어서 차라리 다행일지도.
다들 시끄럽네. 엄청 기뻐하고들 있어. 바보들, 저 사람이 사실은 어떤 작자인지도 모르면서. (신경질적으로 깨진 바닥재를 차면서)저 광장 안쪽에 있을수록 돈 많은 중심가 사람들이지? 우리같은 부랑아들은 관심도 없는 사람들.
(무기력하게 골목 안으로 고개를 돌리고)그래. 이게 현실이겠지. 그날 정말로 우리를 구해줬던,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옥에서 썩고 있는지도, 아무도 모르게 암살당했는지도 몰라. (무미건조하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며)그리고 저 가증스러운 돼지는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개선하고 있잖아? 우리에게는......(감정이 북받쳤는지, 말이 끊어진다.)
원수나 다름없는 저런 쓰레기가.

238 이름 없음 (v9eAlBd3OE)

2023-03-23 (거의 끝나감) 17:53:48

(드라마에서 보면 다들 이렇게 피던데. 입에 물고 있던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이려는 모습이 어설프다. 얼마나 어설픈지, 라이터로 불을 제대로 켜지도 못 하고 틱틱거리기만 한다. 이내 엄지 끝이 아린지 손을 탈탈 털기까지. 담뱃불조차 제대로 못 붙히는 걸 봐서야 아무래도 담배를 피워봤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고보면 옷차림새가 교복이었다. 가지런하고 깔끔히 다림질 돼 있다. 단추 하나 푸르고, 타이와 조끼는 온데간데 없고, 셔츠 소매를 둥둥 걷어올린 폼도 어딘가 어색하다. 답답한 듯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에 꼽는데,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이더니 일순간 흔들렸다.)

/ 동급생 선배 후배 지나가던모르는사람 선생님 부모님 형제자매 기타등등 누구든 다 ㅇㅋ, 맥커터만 쓰루할게~ :3c

239 이름 없음 (Rz4Op/BVkU)

2023-03-23 (거의 끝나감) 19:01:46

>>238
(그것도 하필이면 그 순간 눈을 마주친 인물이, 반듯한 생활과 모난 데 없는 온화한 성격, 완벽한 성적으로 마치 이것이 학생의 가장 바람직한 표본이라는 듯 선생님들의 총애와 학생들의 호감을 함께 사고 있는 범생이 반장이었으니. 그런데, 진짜로 학생의 바람직한 표본이라 할 만한 모범생이라면 결코 발을 들이지 않을 이 으슥한 기계실 뒤편에 마주친 이 반장의 입에는 모범생의 입에 물려있으면 안 될 것이- 네가 물고 있는 것과 색깔 조금 다를 뿐 내용물은 매한가지일 가느다랗고 길다란 막대기가 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반장도 너와 이렇게 눈을 마주칠 것을 예기치 못했는지 눈을 깜빡이다가, 곧 평소와 다름없는 그 모범생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한 번 건네고는 네게서 시선을 뗀다. 그리곤 주머니를 뒤적거려 뭔가를 꺼내려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있어야 할 게 없는 모양인지 그는 주머니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다가, 다시 네게로 시선을 돌려오더니 그 반듯하고 온화한 모범생 미소로, 그 미소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네게 건네어온다.)
너. 괜찮으면 불 좀 빌려줄래.

240 이름 없음 (pniTffXbx.)

2023-03-23 (거의 끝나감) 20:09:02

>>239
(머리라도 한 대 맞고 세상이 빙글뱅글 도는게 아니라면야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입에 물고 있던 건 엄지와 검지로 잡아 빼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거랑 반장 입에 있는 거랑 똑같이 생겼는데? 흔들렸던 눈동자는 이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왜 담배를 피려고 했더라, 쌩양아치 꼴통새끼라는 소리가 지겨워서였다. 담배같은 거 피워본 적도 없고, 술도 마신 적 없다. 교복은 수선한게 더 나아보이고, 검은 머리카락은 지겹고, 피어싱은 반짝거리고, 공부를 드럽게 못하고, 입 좀 험할 뿐인데. 운동 좀 한다고 너무한 거 아냐? 다 대가리 총, 아니 활 맞아봐야 해. 듣는 소리들이 지겨워서 욱해버린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반장을 보면 아무래도 경험이 있어 보였다. 정보의 과부하.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의 연속으로 눈인사짓에도, 불 빌려달라는 말에도 잠시 대꾸 하나 없었다.)
…너 담배 피냐? 개어이없네. (불이라면 분명 라이터. 손바닥 위에 올려진 라이터와 담배 한 개피를 바라보다 손을 꾹 쥐었다. 욱하기야 했지만 찬물 샤워라도 한 듯한 일에 번쩍 정신 차리고보니 역시 이건 아무래도 아닌 짓 같았다.) 니 빌려줄 불 없어. (머리카락 헤집듯 굴더니 네게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비장하기도 하지.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피할지 막을지는 모르지만 그럴 깜냥으로 다가가 손을 뻗는다.)

241 이름 없음 (rN7RMb9oBo)

2023-03-23 (거의 끝나감) 21:15:22

>>240
응, 피지?
(대답이 태연하다. 태연해도 너무 태연하다. 너 스프라○트 마시냐? 하는 말에 응, 마시지? 하고 대답하는 수준으로 태연하다. 마치 자신이 흡연하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태도다. 네가 굳은 표정으로 저벅저벅 다가올 때도 반장은 한결같이 태연했고, 네 서슬에 반장은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쉽사리 담뱃개비를 빼앗겨주었다. 그제서야 눈이 조금 커진다. 이 상황이 신기한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퍽 신기한 상황이긴 했다. 모범생의 흡연을 저지하는 양아치라니. 매정하게 톡 쏴붙이는 말에, 반장을 눈을 깜빡이더니 또 연하게 웃는다.)
범생이랑은 맞담하기 싫은가 봐?
(정확히는, 모범생의 흡연을 양아치가 저지하는 이 상황 자체가 신기한 게 아니라- 저번에 담배 피는 모습을 학생부장님께 걸렸을 때, 불호령은커녕 너 뭐 고민 있냐? 하고 어른스러운 걱정 가득 담긴 어조로 자신을 배려해준 학생부장님의 모습이 기억나서였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에 대한 자상하기 그지없는 배려일까, 아니면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현대의 권문세가라 할 수 있는 집안의 도련님께 제공하는 관대한 특혜일까- 어느 쪽이든, 학교 풍기의 최일선에 선 책임자조차 자신에게 그렇게 너그러운데, 자신을 턱 막아세우는 동급생의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방금 똑같은 짓을 하려던 처지인데도 말이다.)
뭐 상관없어... 그러면 그거 돌려줄래? 다른 데서 피던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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