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15072> 자유 상황극 스레 4 :: 505

이름 없음

2022-12-31 16:48:08 - 2024-09-05 17:41:22

0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6:48:08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40 이름 없음 (LM22OvUY.I)

2023-02-09 (거의 끝나감) 21:13:53

"여기가 정상이구나."

한 발 앞으로 내딛자, 거친 바람이 일거에 잦아들었다. 내내 등반을 방해하던 폭설은 바람이 사라지자 포근한 함박눈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었다. 그 고요한 무풍지대 안으로, 좁지만 평탄한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험준한 등반로를 무색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무수한 등반자들의 시신을 품에 묻은 대륙 최고봉의 정상이 이렇게도 평범하고 안온한 모습이라는 아이러니가 지친 여행자를 조금은 허탈하게 만든 모양이다.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은 그녀는, 그대로 앉아서 거친 산행에 너덜너덜해진 코트를 갈무리하며 조금이나마 숨을 골랐다. 이미 오를 경사도, 겪을 고난도 남지 않았지만, 평지를 느긋하게 걷는 평범한 산책마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여행자는 휴식에 굶주려 있었다.

그대로 앉아 있으려니 당분간은 일어날 생각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등산루트 중이었더라면 그 풀려버리는 긴장이 즉각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스위치로 작용했을 터이지만, 지금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다만 체온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품에서 조금의 건조된 식량을 꺼내어 입에 넣은 채로, 여행자는 보다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고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문득 등에 매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툭 치고서는 중얼거렸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있으면 너를 살릴 수 있어."

마치 누군가에게 대화를 걸듯이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순간 간절함이 비쳤다.

"네가 깨어나면, 해주고픈 이야기가 내게는 잔뜩 있는 걸.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계속 중얼거리던 여행자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던 직전까지에 비하면 기이할 정도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다시 생겨났는지, 여행자는 곧장 상자를 고쳐 매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곧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난 여행자는 힘찬 보폭으로 설경 안으로 발을 들이밀며, 확신을 담아 말했다.

"세계의 정상에 숨은 마법사라면 반드시 널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맥커터만 아니면 어떤 이야기든 좋아

141 이름 없음 (4U9xeElEvw)

2023-02-12 (내일 월요일) 23:40:53

제자야, 정말로 너니? 네가 돌아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단다. (안대로 눈을 가린, 소복 차림의 남성이 반가운 듯이 문지방에 서서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142 이름 없음 (WD41nXytsI)

2023-02-12 (내일 월요일) 23:47:09

>>141
(제자라고 불린 존재는 대문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무어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고르다, 겨우 그리 말했다.) ...예. 스승님. 불초 제자가 돌아왔습니다.

143 이름 없음 (4U9xeElEvw)

2023-02-12 (내일 월요일) 23:52:11

>>142
아니다. 나는 진정 온 마음으로 네가 돌아온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있단다. (시린 겨울숲 바람에 섞여 날아간 옅은 숨 속에는 웃음기와 울음기가 절묘히 섞여있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손을 잡아다오.

144 이름 없음 (QwLUTxLVnk)

2023-02-13 (모두 수고..) 00:20:02

>>143
(스승의 목소리에 담긴 복잡미묘한 울림을 알아들었는지, 그 존재는 한순간 쓰라린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가까이 오라는 스스승의 부름에도 걸음은 선뜻 나서지 못 하고 있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스승님. (그는 한 걸음도 떼지 못 한 채,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말하고 고개만 숙였다.)

145 이름 없음 (0T1TGbBb3Y)

2023-02-13 (모두 수고..) 01:53:09

있잖아, 사실 나는 죽고 싶어.

가녀린 몸이 난간에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무언가라도 움켜잡을 듯 뻗은 팔, 바람에 스치듯 휘날리는 머리칼, 그러나 어느 무엇도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는 얼굴에 흠집내지는 못 하고. 눈동자가 누군가를 향했다. 웃었다. 있잖아, 언젠가 나랑 같이 죽어 줄래.

146 이름 없음 (VT/cgtLUQw)

2023-02-13 (모두 수고..) 10:43:44

>>145

" 또 쓸모없는 얘기를. "

눈쌀을 찌푸린다. 이렇게 같이 있다보면 대뜸 이상한 소리를 하는 녀석에게 나는 오늘도 똑같은 대답을 건네주었다. 뻗은 팔의 손목을 약하게 잡아서 말없이 당겨준다. 가녀린 몸과 같이 손목도 너무나도 가늘다.

" 그렇게 죽고싶으면 나 죽고나서 죽어. "

그때되면 나 말고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허나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은 언제든 떠나갈 수 있을거란 미약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147 이름 없음 (ppUbGyjPj.)

2023-02-13 (모두 수고..) 15:50:38

>>146

의외로 마른 몸은 저항 없이 가볍게 이끌리며 난간에서 멀어지고. 그래, 언제나와 똑같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네가 대답하고, 그러면 난간에서 내려오고.
얼굴을 마주한다. 죽고 싶으면 자신이 죽은 뒤에 죽으라고. 예의 평온한 얼굴로 멀뚱히 무언가 생각하는 듯, 당신을 관찰하는 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럼, 그 때까지 같이 있어주는 거야?"

이번에는 눈을 접어 웃었다. 상냥하구나. 제멋대로인 판단을 들이밀며 장난스럽게.

148 이름 없음 (bkeQ/fk3e6)

2023-02-13 (모두 수고..) 16:07:46

>>147

그 가녀린 몸이 혹여나 난간에서 내려오다 넘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쩜 저런 얼굴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조금은 쌀쌀한 바람에 너의 어깨에 내가 입고있던 외투를 벗어서 걸쳐주며 말한다.

" 어. 대신 너가 질려서 가라고해도 안갈꺼니까 그렇게 알아. "

웃는 모습에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얘기한다. 평온한 표정에서 지어내는 저렇게 무해한 웃음이라니 보는 사람마저 녹아드는듯 하다.

" 그리고 밖에 나올꺼면 따뜻하게 나오라고 했잖아. "

햇빛이 따뜻해보여도 아직 바람은 차다고, 작게 잔소리를 해본다.

149 이름 없음 (ppUbGyjPj.)

2023-02-13 (모두 수고..) 16:26:27

>>148

아하핫! 자그락거리는 햇살같은 웃음소리, 시선을 피하는 당신의 얼굴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는다. 그래, 너에게서 이런 얼굴, 이런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게 좋았다. 짓궂은 마음은 몰래 숨기고.

"햇빛이 이렇게 좋은데도."

퍽 아쉬운 얼굴. 과연, 아직 쌀쌀한 한기가 다 가시지 않은 날들이었다. 초봄.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곧 생명이 약동할.
난 바보라서 감기 잘 안 걸리는데? 설득력 없는 변명 따위를 늘어놓으며, 그러나 어깨에 걸린 당신의 외투는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끄트머리를 그러쥐고.

"소풍 가자."

퍽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꽃팔찌 만들고 싶어.

150 이름 없음 (bkeQ/fk3e6)

2023-02-13 (모두 수고..) 18:35:14

>>149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듯 터져나오는 너의 웃음소리에 나는 결국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일부러 짖궂게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미소가 아름답기에 어쩔 수 없었다.

" 너랑 같이 있는 내가 걸려. "

쌀쌀하다고 해서 외투를 챙겨왔지만 정작 그 외투는 너의 어깨에 걸려있다. 그래도 흘러내리지 않게 꼭 잡고 있는 너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굳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고서, 비어있는 다른 쪽 손을 살며시 잡으려하며 말했다.

" 도시락은 너가 싸주는거야? "

소풍이라, 그런 따뜻한 단어를 써본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어릴적의 소풍이란 듣기만 해도 설레서 전날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너가 소풍이라는 단어를 꺼내니 그때처럼 다시금 설레오는 이 감정은 어릴적의 그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 그래, 가자. "

도시락은 그저 농담일뿐이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151 이름 없음 (lPgyUVrT4g)

2023-02-13 (모두 수고..) 21:21:52

>>140 "잠시 멈춰주시겠습니까. 이 곳은 사유지라서 말입니다."

나지막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기색이 어린 중저음의 목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여행자를 막아서듯 울렸다. 한 남성이 기척도 없이, 가깝지는 않으나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30대 초반 쯤 되어보이는 남성의 체격은 여행자보다는 조금 큰 정도였고,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듯한 회갈색 털옷으로 온 몸을 감싼 데다, 상의에 달린 후드를 꾹 눌러쓰고 있어, 드러난 것은 가무잡잡한 피부와 다부지고 각진 턱선, 길고 번듯한 코, 꾹 다물려 단호한 인상을 주는 입술 정도였다.

"저는 이 산 정상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 곳에는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는지요."

후드 밖으로 드러난 남성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어투에서는 제 주거지를 방문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묻어났으나, 적의는 서려있지 않았다. 남성의 떡 벌어진 어깨 너머 눈 발 사이로, 지붕에 눈이 하얗게 오두막이 한 채 보였다. 그가 사는 집인 모양이었다.

152 이름 없음 (QLaLYylaIo)

2023-02-13 (모두 수고..) 22:06:53

>>150

넌 너무 상냥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차가웠던 손 끝이 온기로 물들자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가볍게 잡힌 손을 그러모아 꾹 주먹쥐었다. 새삼 느껴지는 손 크기라던가, 촉감이라던가, 기묘하게 낯선 것. 이상하네.

"자신 있어?"

내 요리 실력 믿어? 작은 키득거림. 원한다면 싸 주지 못 할 것도 없었다. 투박하게 생긴 유부초밥이나 주먹밥 같은 거라도 괜찮다면. 그런데,

"나는 지금, 가고 싶은 거였는데."

어때? 어디로든. 잡혀있던 손을 풀어 너의 손을 마주잡고,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이끌면서.

153 이름 없음 (smpIYXrrBE)

2023-02-13 (모두 수고..) 23:37:50

>>152

잡은 네 손에 작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도 쌀쌀한 날씨를 증명하듯 너의 손도 냉기를 머금어 차갑게 느껴진다. 손가락으로 네 손을 살살 쓸어주고 있을때 자신 있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 못 먹을 수준은 아니잖아? "

거창한걸 원하는 것도 아니고 소풍이란 그저 너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까. 네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주먹밥도 분명히 맛있을테니까. 하지만 이어진 너의 말에 나는 결국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 너가 가고싶은 곳이라면 어디던. "

그렇게 마주잡은 손을 너가 이끌고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스르르 이끌렸다. 그야 너가 어디에 있어도 내가 함께 있을테니까.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 차도 가져왔으니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갈 수 있어. "

언제든 말만 하면 데려다줄 수 있어.

154 이름 없음 (cOQHqwdNb.)

2023-02-14 (FIRE!) 00:15:17

>>153

옅은 미소에 화답하듯 이끄는 발걸음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춤추듯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발소리, 차분한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꽃이나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이왕이면 볕이 잘 드는 곳이 좋을 것 같아. 잘 아는 장소가 있어.

어느새 건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인영, 앞서가는 손길은 익숙하게 어딘가로 당신을 안내하고. 눈을 감아, 내가 다 왔다고 하면 눈을 뜨는 거야. 알겠지. 마법이라도 거는 듯 한 속삭임으로 당신의 눈을 가리고서는.

발바닥에 밟히는 것은 딱딱한 콘크리트에서 어느새 푹신한 무언가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천천히, 천천히,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 도착하면.

"짠, 어서 와."

아무도 없었던 작은 들판,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은은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내 비밀 장소야.

155 이름 없음 (rsqihjlF8.)

2023-02-14 (FIRE!) 09:22:34

>>154

이끌려가면서도, 가벼운듯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혹여 네가 넘어지진 않을까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꾹 잡은채 재잘대는 목소리를 듣는다. 너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계단을 내려가니 건물 밖으로 나온다.

" 눈을 감으라니 ... "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만 너를 만난 이후로 나는 한번도 너를 이겨본적이 없다. 결국 눈을 살며시 감은채 너의 손이 이끄는대로 걸어간다. 단단한 냉기가 조금은 푹신하고 자그마한 온기로 변할때쯤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본다.

" 좋은 곳이네. "

아무도 없어서 방해 받지도 않고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이 과하지 않게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내가 없을땐 이런 곳에 왔구나. 너의 비밀 장소에서 나는 손을 잡은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꽃팔찌를 만들어서 누구를 주려고? "

장난스런 말투로 얘기한다. 굳이 나에게 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너의 행복이 나에겐 제일 중요했으니까.

156 이름 없음 (KeS2ceoY/c)

2023-02-15 (水) 00:01:49

>>155

어때, 제법 근사하지. 같이 온 건 네가 처음이야. 당신의 손을 놓고 들판 한가운데 풀썩 주저앉는다. 근처에 피어 있는 이름모를 들꽃들과 작은 풀 따위들을 쓰다듬듯 어루만지다가, 이윽고 옷자락에 스치던 토끼풀꽃 몇 송이를 꺾어 들었다.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꺾어 든 꽃송이들을 서툰 손놀림으로 차례차례 매듭지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능숙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꽤 멋드러지게 형태가 잡혀 간다. 누구였으면 좋겠는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묻고.

"나랑 영원히 같이 있기로 한 애 있어."

손에 들린 그것은, 어느새 토끼풀 꽃 한아름으로 장식한, 작고 소담한 화관이 되고. 어린아이의 머리에나 딱 맞을 것 같은 그것을 자랑하듯 들고 있다가, 당신의 머리에 씌운다. 사실은 얹는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 이런 거 해 보고 싶었어. 봄 햇살같은 웃음소리.

"귀엽다."

157 이름 없음 (0QWSm/3ZBE)

2023-02-15 (水) 00:13:18

>>156

들판 한가운데에 풀썩 주저앉는 네 모습에 생각난건 돗자리라도 가져올껄 그랬다, 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다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네가 꽃송이를 꺾어서 매듭 짓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이제 앞으로 같이 있기로 했으니 비밀을 공개하기로 한거야? "

네 손에서 토끼풀꽃이 조금씩 이어지고 서툰 손짓에 비해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은 꽤나 유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되묻는 너의 말에 나는 그저 작게 미소 지으면서 토끼풀꽃을 나도 같이 꺾었다. 네가 가져간 양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이 정도로도 내가 원하는 것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너의 손에서 금세 다 만들어진 것은 어느새 내 머리 위에 얹혀져 너의 웃음소리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 잘 어울려? "

거울 앞에서 자세를 취하듯이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장난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무언가를 손에서 엮어낸다. 너보다도 더욱 서툰 손놀림이라 이렇게 큰 화관은 만들지 못하지만 자그마한 것은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었기에 나는 너에게 손을 내어달라고 말하며 만든 것을 보여주었다.

" 꽃반지, 낄래? "

기왕이면 팔찌 사이즈까진 만들고 싶었지만 내 능력으론 역부족이었나보다.

158 이름 없음 (KeS2ceoY/c)

2023-02-15 (水) 00:38:13

>>157

아하하하.

당신의 장난스런 모습을 보며 까르르, 가볍게 박수를 치고. 화관이 작아 조금 우스운 꼴이 될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당신와 이 들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은 진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같이 올 걸 그랬다. 화관도 씌워 주었겠다, 다음은 팔찌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볼까 싶어 들풀을 살피고 있던 그때에.

꽃반지 낄래, 너의 손에서 생각지도 못 했던 것이 등장한다. 무언가 엮는 것 같기도 했으나 화관을 완성하느라 채 신경을 못 썼던 탓이다. 반지를 마주하고,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래. 익숙한 웃음 뒤에 무언가를 숨길 준비를 하기 위해. 침묵은 아주 잠깐이었다. 시선을 들어 당신의 눈을 본다.

"좋아."

어쩌면 목소리가 조금 떨렸나, 눈치 못 채기를 바랄 뿐이다. 얼굴에 띄운 그것은 분명 다를 바 없는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손을 대면 부스러질 듯 기묘한 것이었다.

159 이름 없음 (nDR3VWaI1I)

2023-02-15 (水) 02:49:35

우리 엄마가 해 주셨던 옜날 이야기인데, 달은 태양의 고백을 듣고선 '모르겠다'고 답했다더라.

"네가 좋아."

중력에 휘둘리는 위성 따위보단 네 지적 수준이 더 낫겠지, 적막을 뚫고 찢겨나온 내 한 마디에 무어라 답 해야 할지는 넌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알아야만 한다, 우리를 에워싸 웅성이는 마을 주민들이 있으니까.

채 식지 못해 온기가 감도는 누군가의 몸뚱아리를 안고 주저앉아 있던 너는 상황에 겉도는 내 몰상식한 언행에 뭐라 답을 할까? 네가 도리에 맞는 말을 해 올 것은 알지만 그게 뭘진 모르겠다. 난 무릎을 굽혀 땅에 손을 딛었다. 네가 안고 있던 그것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흙 위에서는 마찬가지로 어둑한 것이 존재감 흐릿했던 것이, 내 손에 묻고 나서야 비로서 존재를 과시한다. 차분했던 나의 행동거지와는 반대로, 내 등에 매여 있던 소총은 내 중심이 낮아지면 느슨해져 그대로 땅으로 떨궈진다. 둔탁한 소음은 축축한 흙에 의해 어느 정도 무의미해졌다.

"13번째 구역 도살장의 장남, '코리엔더'는 널 연모하고 있어."

주변의 웅성임은 더 이상 네가 품고 있는 시체로 향한 것이 아닌, 나에게로 향해있다. 땅에 처박혀 있던 소총을 다시금 집어들어 탄창을 간다. 이질적인 금속의 철컥거림 후에 나는 다시 발음 하나 하나 명확히 뱉기 시작했다.

"답은 지금."

//아무렇게나 이어도 다 좋으니까 편하게 이어줘! 설정도 맘대로 해도 좋다! 헝거게임에서 모티브 얻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어도 괜찮으니 !!찐심!! 편하게 이어주시라~

160 이름 없음 (q5aNKF1BNM)

2023-02-15 (水) 13:25:39

>>159
놓아버릴 뻔한 정신을 붙들고, 가까스로 벌어진 일을 받아들였을 때 들려온 말에, 귀를 의심했다. 느닷 없는 고백. 그리고 대답을 강요하는 말. 순간적으로 살의가 치솟았으나, 이내 사그라들었다. 제 품에서 싸늘히 식은 그와 자신은 연인이었다. 서로 잘 맞기도 했고, 시청자들의 동정이라도 사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판에 속편한 연애질은 무리였어도, 서로 걱정하고 챙기는 마음만은 언젠가부터 진심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기존에 바라던 바를 이루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를 바라는 여론도 우세해지던 참이었으니까. 그래봤자 총 한번 잘못 맞으면 시청자 여론이고 뭐고 다 부질없어지는 건데. 그래도 살고 싶겠지. 이해 못할 심정은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귓가에 탄창을 장전하는 소리가 스친 것 같았지만, 아랑곳 않았다. 이미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인 시신을 더욱 바싹 그러안았다. 그러고서 입을 열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다른 사람 알아봐."

어떤 저의로 말했든 협조해줄 수 없다. 이만하면 맥락상 부자연스럽지도 않고 저 녀석도 대충은 알아먹겠지.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살아서 나가자는 이야기도 나눴었던 게 머릿속을 맴돌았고, 장단을 맞춰주면 생존 가능성이 올라가리란 것 역시도 모르진 않았지만, 온 몸이 무거워서일까,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161 이름 없음 (nDR3VWaI1I)

2023-02-15 (水) 14:58:00

>>160

"끽해야 이 곳에서 만난 인연일 텐데, 그게 목숨보다 소중하다면 별 수 없지."

탄창을 간 소총을 내리숙여 네 머리를 향해 조준한다. 내 사격 실력은 놀랍도록 평범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갓난아이도 개미를 잡을 수 있을 테다. 난 방아쇠에 닿아 있던 검지손가락을 느릿히 휘적였다. 탁, 탁. 철조각에 살덩이가 닿아 내는 규칙적인 사분의 삼박자.

전날 밤, 한참 너희들을 추적하던 도중 실세 그룹에게 물자가 내려왔었다. 그걸 보낸 스폰서의 말을 듣자 하니, 너와 그 남자가 함께 우승하기를 바라는 여론이 우세하던 것 같았다. 핏바람 부는 것과 연애질을 동시에 보고 싶다니, 부잣집 취향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일전의 독극물 묻은 칼에 스쳤던 허릿춤이 아려오는 느낌에 나는 다시금 이성이 차게 식는다. 내게 이 작전을 맡긴 실세 그룹원들의 악독함이 선명하다.

"네 달링의 죽음은 애도하고 있어. 그렇지만 나도 살고 싶어."

미적거리던 손가락은 이내 단단히 방아쇠를 감싸안았다. 내 눈은 늘상 흐리멍텅하여 도축당할 돼지를 닮았다더라,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 눈매에 힘이 들어가며 찌푸려지는 것은 느껴진다.

"너와 그 남자, 우승하길 바란다는 여론이 달궈졌더라. 이걸 들은 1구역 남자애는 너희를 살려 두면 너희 쪽으로만 보급이 갈 거라 생각해, 날 이쪽으로 붙인 거야."

"우리들에게 대중의 화가 돌려지더라도, 적어도 너희들이 우승하지는 않게 두겠다는 거겠지."

들은 바로는 그러했다. 천박한 망나니가 어려운 걸 알아 듣겠냐며 키득이던 누군가가 뇌리에 일렁였다. 나는 목구멍에 응어리진 울분을 억지로 삼킨다.

"내가 그들을 배반하고 우리가 협업한다면, 군중은 우릴 지지할 거야. 가혹한 실연의 아픔을 격은 너와, 더럽고 추악하게도 이기적이여서 태생부터 개망나니인 나. 절망적인 연애는 언제 보든 즐겁다더라."

요컨대 너와 팀을 맺으면 시청자들의 콩고물도 떨어지고 실세 그룹을 꺽을 수도 있을 발판이 마련되니, 나는 좋을 꼴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잔인한 말을 하면서도 말투 하나 변하지 않는다. 내 눈에 너는 고깃덩이를 안고 있는 동물 찌꺼기일 뿐.

"알아들은 거라 생각하고 한 번만 더 말하지."

"좋아해. 널 행복하게 해 줄수 있게 해줘."

162 이름 없음 (phD5qRpDTQ)

2023-02-15 (水) 15:22:27

>>161 어 코리엔더주야 죽은애 성별은 처음에 안 나왔기도 하고 내 캐랑 관계 있는 애니까 내가 정해도 되겠거니 했는데 남자라고 딱 못박히니까 좀 당황스럽다(^-^; 내 캐 성별도 지향도 아직 안 정했는데...

163 이름 없음 (WDgBErfM/Q)

2023-02-15 (水) 19:42:00

>>158

너와 지낸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 잠깐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허나 침묵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익숙한 미소가 네 얼굴에 감돈다. 하지만 너와 지낸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네 목소리가 아주 살짝 떨렸다는 것은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 손 줘봐. "

그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진 알 수가 없고 너의 미소는 어떤 방향으로던 충격을 주면 부스러질 것 같아 나는 아까도 잡고 있던 네 손을 살짝 잡아서 손에 올려두었다. 어느 손가락에 들어가야 크기가 꼭 맞을까, 하고 이리저리 끼워보니 우연찮게도 너의 약지에 크기가 딱 맞더라. 꽃줄기가 약해 혹시나 끊어질까 조심조심 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본다.

" 잘 어울리네. "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선 머리에 얹어두었던 화관을 네 머리에 조심스럽게 올려본다. 나한테는 작았던게 너의 머리에는 더욱 어울리는 것이 마치 이 모든 들판이 너를 위해서 존재하는듯 하다. 그렇게 너의 손엔 반지를, 너의 머리엔 화관을 올려둔채 너의 옆에 앉아서 저 멀리 보이는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 증표야. 아까의 약속에 대한. "

비록 보잘것 없는 들꽃으로 만들어져 금방 시들어버리겠지만, 그 의미만큼은 네가 알아주길 바랬다.

164 이름 없음 (GXm7NXVk/w)

2023-02-15 (水) 23:03:07

>>163

왼손 약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기 위해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딱 들어맞고. 손가락 위에 내려앉은 작은 꽃송이 하나가 어찌 이다지도 사랑스러운가.

"...예쁘다."

당신이 화관을 씌워 줄 때까지,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곧 시들기라도 할 것처럼 꽃송이에 손도 대지 않고서 말 없이 눈에 그것을 담았다. 먼 풍경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을 피해서, 그래, 붉어지는 눈시울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리곤 당신의 어깨를 향해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툭. 이런 얼굴은 보이기 싫으니까.

있잖아, 안아 줄래? 조금 추워서 그래.

조금 잠긴 듯, 아닌 듯, 작은 목소리로 당신에게 나지막히 청했다.

165 이름 없음 (0QWSm/3ZBE)

2023-02-15 (水) 23:30:06

>>164

내가 화관을 머리에 씌워줄때까지도 너의 시선은 곧장 내가 만들어준 반지에 가있었다. 서툰 솜씨로 만든 것치고는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너의 옆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 네가 어깨에 기대는 느낌이 들어 몸을 조금 움직여 좀 더 편한 자세를 할 수 있게 해주려 할 때,

" 그러니까 좀 더 따뜻해지면 나오자고 했잖아. "

이런 순간까지도 이런 말 밖에 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너의 어깨에 손을 둘러서 품으로 끌어안아준다. 네가 얼굴을 보이기 싫어하는 것 같아 가슴팍에 네 얼굴이 묻히도록, 하지만 답답하지 않게. 조금의 바람이라도 너에게 흘러갈까 어깨에 걸쳐있던 외투도 좀 더 단단히 여며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서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 지금은 행복해? "

내 행복은 너의 행복이 기준이니까. 너가 웃고 기뻐하는 것이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그렇기에 너를 만나고서 오늘 처음으로 나는 너에게 행복을 물었다.

166 이름 없음 (GXm7NXVk/w)

2023-02-15 (水) 23:40:42

>>165 참치야! 아마 다음이 내 마지막 레스가 될 것 같아~! 일단은 미리 말해둘게!

167 이름 없음 (iWgDumjYKQ)

2023-02-16 (거의 끝나감) 00:12:37

따스한 품을 통해 당신의 미약한 고동이 전해져 올 때. 나는 기뻐했다. 그러나 후회했다. 너의 상냥함이 좋아. 따뜻한 손이 좋아. 내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좋아. 네가 좋아. 네가 좋아. 그러나 이런 마음을 품기에는 내가 이미.

당신이 나의 행복을 묻는다. 대답 대신 당신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자, 익숙한 체취 사이로 들꽃의 향기가 희미하게 스민다. 오늘은 꼭 말하려고 했는데, 혼자서 정말 많이 연습했는데. 미안, 다음에는 꼭 얘기할테니까. 오늘은 조금만 응석부리게 해 줘. 오늘만, 지금만.

"응."

솨아아. 바람이 들풀을 쓸며 휘몰아쳤다.
민들레 풀씨가 팔랑이며 날고 있었다.

있잖아, 아무래도 너보다 늦게 죽으란 부탁은 못 들어줄 것 같아.




이게 내 막레! 갑작스런 시한부 선언...🫠 띠용했으려나
그래두 어울려줘서 고마워! 정말 즐거웠어~!!

168 이름 없음 (rnrtpI..eg)

2023-02-16 (거의 끝나감) 00:18:33

>>167 막레로 받을께!! 조금은 예상했지롱! 나도 즐거웠어~~

169 이름 없음 (X0SU2UOc/2)

2023-02-16 (거의 끝나감) 00:28:36

>>162 ㅋㅋ앗 솨리 나 왜 남자로 읽은거지..??? 스읍 성별 부분은 대충 스루해줘 레스 쓸때 졸렸나바 미안~~

170 이름 없음 (FopGJNk6m.)

2023-02-16 (거의 끝나감) 11:38:30

>>169 피곤했구나! 그랬으면 그럴 수 있지:3 그럼 오늘 중으로 이어둘게 확인해줘서 고마워! ^ω^)

171 이름 없음 (v42Xl4pTVw)

2023-02-16 (거의 끝나감) 23:18:22

>>161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조용한 가운데 쇳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맥락도 없이 시청자들이 좋아할 법한 대사를 내뱉은 남자-이름이 코리엔더였던가. 나 고수 싫어하는데.-의 총구가 나를 향한 것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절망적인 사고만 맴돌던 머릿속에 의문이 비집고 들었다.

코리엔더는 자신을 우리 구역으로 보낸 배후를 배신하고 나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면 자신이 살아날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 이유는 절망적인 연애사는 인기가 있고, 시청자들이 지지하면 생존에 필요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의 머릿속에 있는 러브라인 구도를 시청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정선이라는 건 맥락을 타기 마련인데, 살고 싶다느니, 군중은 우릴 지지할 거라느니, 이런 시청자에게는 불필요한 정보가 공중파를 탄 마당에 어떻게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 코리엔더. 비록 네가 바라는 건 못 들어주겠지만, 그 대신 "사랑" 먼저 해본 경험자로서 조언 하나 해주자면, 나랑 이 친구는 제 4의 벽을 넘는 발언은 공개적으로 안 했어. 지금이랑 비슷한 대화를 안 한건 아닌데 몰래 필담으로 했지. 연인이 되기 전까지는 관계가 돈독해지는 맥락도 많이 고려했었고. 내 생각엔 그래서 시청자들이 몰입해 준 거 같아."

시체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치고는 퍽 평온하게 들리는 투로 말하며, 시체에서 눈을 떼고 코리엔더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마를 똑바로 겨눈 총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래. 뭐 죽을 때까지는 종영이 아니니까 앞으로 만회한다 치자. 그런데 난 네 제안이든 협박이든 받아들이고 기운을 뺄 이유를 못 찾았어. 왜냐면 생존이 지금 나한테 그렇게 큰 메리트가 아니거든. 시도는 좋았는데, 거래 상대가 어떤 상태고 뭘 원하는지도 고려하면 원하는 걸 얻어낼 방법을 찾기가 더 쉬울거야. 그리고 꼭 그 절망적인 로맨스를 하는데 다른 사람으로는 안되고 정 내가 필요하다면..."

방법이 있을까? 살해 협박을 당하고 있음에도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주는 제 꼴이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그 와중에도 단 하나의 대안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방아쇠를 당기고 내 시체랑 하는 걸 추천할게. 살아있는 나보다 더 임팩트가 클거야. "

172 이름 없음 (TUwgrPyPeA)

2023-02-19 (내일 월요일) 14:34:37

세상을 뒤엎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쟁이 있었던 것도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종족간의 갈등과 서로 멸하고 말겠다는 그 살벌한 분위기조차도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뒤에서 서로 종족 사이를 이간질하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 추악하기 짝이 없는 무리가 토벌되었고 모든 오해가 풀려 다시 각 종족들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를 멸하려는 그 현상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모였고 그들은 정말 열심히 싸움을 말리며 때로는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하며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등, 정말로 열심히 활약했고 기어이 평화를 되찾았다.

허나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것을 빌미로 부와 명성을 쌓으려고 하지 않았고 지금의 평화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각 종족을 다스리는 왕이나 일부 귀족들, 그리고 그들과 친하게 지냈던 일부 이들, 그리고 함께 힘을 합쳤던 그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모였던 이들 정도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보단 지금의 이 분위기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던 이들은 자연히 하나둘 자신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흩어졌다. 허나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정말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에 이전과는 다르게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할 수 있었다. 실제로 몇몇은 머지 않아 다시 만나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도 했었고.

인간족인 이 사내 역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 이들 중 하나였다. 용족, 마족, 엘프족, 드워프족 기타 등등. 정말로 많은 동료들과 함께 했던 순간이 아직도 바로 전 날 같았으나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무 많이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황가에서 주겠다고 한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그냥 가볍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어느 정도 받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의 경비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활약상을 알기는 했으나 그의 뜻에 따라 찾아오는 여행객들에게 굳이 소개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조용히 이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응? 날 만나고 싶은 이가 있어?"
"네. 만나보시겠습니까?"
"응. 그러지 뭐. 굳이 만나고 싶다고 하는 이가 있다고 하니까."

어느날처럼 막사에 앉아 경비대 일을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이가 있다는 그 말에 사내는 만나보겠다고 자신의 부하에게 이야기했다.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면회용 방으로 향했다.

"네. 제가 이 마을의 경비대장입니다만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왔는데."

방으로 들어서며 그는 일단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찾아온 이를 확인하려고 했다.

/당신을 찾은 것이 아니다 or 도저히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장벽을 강하게 친다 or 전쟁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고 널 죽일 것이다 라는 느낌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괜찮으니까 자유롭게 이어도 괜찮아.
누가 찾아와도 상관없어! 옛 동료도 좋고 황가에서 또 돈과 명예를 주겠다고 찾아와도 괜찮고 하다 못해 그냥 친구나 아예 모르는 이라도 상관은 없어. 다만 분명하게 사내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아왔다라는 설정만 있으면 될 것 같아.

173 이름 없음 (aL1MfAsx/I)

2023-02-19 (내일 월요일) 16:25:59

>>172 경비대장이 방으로 들어서자, 면회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앉은 키를 감안해도 작고 마른 체구와, 숏컷으로 짧게 잘라낸 부스스한 레몬색 금발과, 단정하지만 서늘한 인상의 이목구비, 날카로운 눈매 안에 자리잡은 옅은 벽안을 가진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는 경비대장의 인사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인 뒤, 입을 열었다.

"바쁘신 중에 실례합니다. 저는 이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 여행자인데, 마을 게시판에서 경비대원 채용 공고를 보고 찾아뵈었습니다. 일자리가 있을까 해서요."

대하기 편하다고 여겨지는 인상은 아니니 말투라도 정중히 해보려고 했는데, 어떨 지 모르겠군. 힘 쓰는 직군 중에서는 이 쪽이 페이가 좋던데. 구직활동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올라오곤 하던 긴장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느껴졌다. 그러나 경험상 긴장하면 안 그래도 차가운 인상이 더욱 쌀쌀해지는 걸 모르지 않았기에, 여성은 애써 미간과 입매에 힘을 풀어보고자 노력하며, 차분히 경비대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취직을 목적으로 찾아온 캐릭터로 생각하다보니 마을 게시판에 채용공고가 붙어있다고 해버렸는데, 괜찮을까?

174 이름 없음 (TUwgrPyPeA)

2023-02-19 (내일 월요일) 17:27:01

>>173

"아. 취업. 그쪽이로군요. 분명히 경비대원 결원이 생겨서 채용 공고를 게시판에 붙이긴 했었는데 그것을 보고 오셨나보죠?"

전쟁이 끝나고 약 일년이 지났으나 그동안 전쟁으로 인해 죽은 각 종족원들의 수가 갑자기 확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즉, 지금은 인원이 부족한 상태였으며 며칠전에 게시판에 채용 공고를 붙인 것을 떠올리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린아이나 노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했으며 최소한의 체력만 있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레몬색 금발 여성은 어떨까. 날카로운 눈매와 벽안이 상당히 인상적인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내는 일단 근처 자리에 앉았다.

"물론 일이야 제공할 수 있긴 하지만 알다시피 마을 경비는 단기적인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쭉 자리를 지켜주면서 일을 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지라. 마을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면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 가능하면 얼마나 이 마을에 있는지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정말로 잠시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계속해서 경비를 서는 이를 구하는만큼 경비대원은 조금 힘들 것 같고 다른 일자리 정도는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상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었으나 적어도 조금 힘들다고 바로 그만둘 인상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경비대원 일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것만 봐도 힘 쓰는 일에 익숙하거나 혹은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문제는 저 여성이 얼마나 이 마을에 있냐라는 것이었다. '잠시'라는 것이 정말로 잠시라고 한다면 경비대 입장에선 뽑아서 얻을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면서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적어도 일 년 정도 이 마을에 있어준다면 간단한 체력 테스트 및 여러 테스트를 하고 조건에 부합하면 뽑을 수 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이 끝나고 다시 마을 이곳저곳을 보수하는 그런 일도 있긴 한데 그 일은 어떨까요? 그 쪽도 사람은 엄청 많이 구하고 있는데."

/물론 괜찮아! 다만 경비대원이니까 아무래도 잠시 머무르고 가는 사람을 뽑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이렇게 물어보는 쪽으로! 얼마든지 편하게 이어도 괜찮아!

175 이름 없음 (aL1MfAsx/I)

2023-02-19 (내일 월요일) 22:51:57

>>174 "네, 그렇습니다. 유사 업무 경험도 있다 보니."

성별 불문, 기재된 나이대에 기초 체력이 된다면 충분하댔던가. 그러고 보니 작년에 전쟁이 끝났다니 한창 어수선할 테고, 그렇다면 고양이 손이라도 아쉽겠지. 경비대장이 근처 자리에 앉자, 여성 또한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이어, 경비대장은 마을에 얼마나 머물지를 물어왔다. 장기적으로 근무할 사람을 채용하고자 하기에 마을에 머무는 것이 아주 잠시라면, 채용하지 않는 대신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1년 이상의 장기적인 근무가 가능할 지는 확답할 수 없었다. 자신은 물론, 동행하고 있는 친구 역시 오랜 방랑에 지쳐가고 있었기에, 마을에 적응할만하다면 집을 사서 눌러앉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도착해서 하루 이틀로는 이 마을에 정착해도 괜찮을지 판단하기 어려웠으니까.
페이가 괜히 좋은 게 아니었나 보군. 어쩔 수 없지. 경비대장님 말마따나 일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무리해서 공갈할 만큼 쪼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을 마칠 즈음 경비대장이 일자리를 하나 제시했다. 마을 보수 공사도 일손이 급한 모양이었다. 그럼, 자리가 없을 걱정은 아마 없겠군.

"어제 막 마을에 도착한 참이다 보니, 1년 이상 체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불확실하군요. 그럼 말씀해주신 일자리를 우선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친절하시네, 전쟁통이고 조건에 맞는 일손도 부족해서 여유 없으실 텐데. 여성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금 지금이 불확실할 뿐이고 나나 친구나 마을 분위기에 잘 적응하면 눌러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중 일은 모르지만 일단 여쭤나 볼까.

"1년 이상 장기체류할 계획이 생기거나 아예 정착하게 된다면, 그때도 구인 중이시라면 다시 찾아뵙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괜찮다니 다행이다! 하긴 전후 복구중이니 오래 일할 사람을 뽑는게 합리적이지:3 즉흥적으로 던진 상황인데 잘 받아줘서 고마워!

176 이름 없음 (TUwgrPyPeA)

2023-02-19 (내일 월요일) 23:03:18

>>175

"알겠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도적이나 불량배들이나 그런 문제는 남아있기 때문에 가급적 오래 일할 이들을 우선하다보니. 아. 괜찮다면 이걸 가져가서 제시해주면 아마 더 이야기가 쉽게 풀릴 거예요. 일자리 찾는거. 나름의 소개장 같은 건데. 필요하다면 가져가주세요."

이어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에 사내는 자신이 입고 있는 경비대 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고 그 지갑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겨있는 명함을 내밀었다. 물론 이 자체가 만능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건 전쟁을 끝낸 이들 중 하나로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있었다. 아무에게나 줄 순 없었으나 그래도 나름 성실해보였기에 그렇게 어떻게 보면 소개장이 될 수도 있는 제 명함을 내민 그 상태에서 만약 받았으면 사내는 순순히 명함을 줬을 것이고 필요없다고 한다면 지갑에 다시 집어넣었을 것이다.

아무튼 여성의 입에서 아예 정착하게 된다면 다시 찾아뵙고 싶다는 말에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안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오히려 함께 하겠다고 한다면 체력이 확실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는 가정하에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지금만 해도 금방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채용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얼마든지요. 아마 그때도 제가 경비대장으로 있을테니 찾아와주세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체력 테스트나 다른 기타 테스트를 대충 넘기거나 하진 않을테니 어느 정도 각오는 해주시고요."

물론 유사업무 경험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는 경력자라고 봐도 될테니 그렇게 어렵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수는 없는만큼 그 부분만큼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외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저나 마을 촌장님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이것저것 알려주거나 도와줄 수 있으니 참고해주시고요. 여행자님이 이 마을 주민이 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 있는 동안 부디 편안한 시간 되셨으면 합니다."

177 이름 없음 (zOehh01GaI)

2023-02-20 (모두 수고..) 00:05:56

>>176
"감사합니다, 소개장까지 주시고. 초면에 신세를 지네요."

마을에서 입지가 크신 분인가보다. 하긴 이런 흉흉한 시기에 경비대장이라면 입지가 좋을 수밖에 없겠네. 나야 나쁠 거 없지. 여성은 명함을 받아 들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친구 녀석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아니다, 그 녀석은 덩치도 좋고 완력도 나보다 나아서 단기 계약도 되고 힘쓰는 직종이라면 문제없겠네. 나는 일단 겉보기에는 비실거려 보이는 핸디캡이 있으니까. 여성의 물음에, 경비대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테스트를 대충 넘기거나 하진 않을 테니 각오는 해달라는 말과 함께.

"예, 그때는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본격적인 직장이었나 본데. 하긴 그럴 수 있지. 종전한 지 1년밖에 안 지났잖아. 마을 분위기가 슬럼가 수준으로 흉흉하지 않다는 건 여기서 그만큼 치안을 확실하게 잡았단 걸 거고. 그러면 채용도 허투루 하지 않을 만하지. 다시 면접을 보러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몸을 좀 만들고 와야겠다. 이어 경비대장의 안내와 환영 인사에, 여성은 한 번 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대답했다.

"갑작스레 찾아뵈었는데도 친절하게 대응해주시고 환대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시간을 뺏는 것도 도리가 아니니 이만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슬슬 마무리려나? 막레로 받아줘도 좋을 것 같아! 수고 많았어;D

178 이름 없음 (3QDgWV2R66)

2023-02-22 (水) 21:06:09

식별 명칭 : 이스라필Israfil
격리 코드 : A1/1G3L
격리 단계 : 파멸급(Catastrophe)
격리 시설 : 파트모스 섬 성당형 격리시설 HA-R1-1-1AG3D01/1

개체 설명 : 키 155cm 추정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금발의 소녀 형상. 백색의 깃털을 가진 황새 형태의 날개가 견갑골 아래쪽으로 부터 돋아나 있으며,
그것은 A1/1G3L의 비행을 돕는 날개와 똑같은 기관으로 추정된다. 기본적으로 A1/1G3L은 인간을 허무 혹은 비관적으로 보는 적대적 자세를 취하기에 격리 절차에 따른 격리가 필요하다.
A1/1G3L은 항상 협회에서 특수 제작한 마스크를 착용중이며, 이를 벗겼을 시에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와는 다른 파장의 생명체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음색으로 인식된다.
이를 장기간 청음시, 황홀경에 이르며 이후 환각 및 환청 증세를 통해 ██을 ██있어, ██으로 향할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에 이른다.
또한 A1/1G3L는 협회 제작해 착용중인 순백색의 특수격리복을 벗으려고 하는데, 이를 제지하지 않을 경우 구속에서 풀려 여섯의 나팔을 창조할 수 있다. 만약 격리복을 벗은 상태에 이른다면 비상사태 Atto를 실시한다.

격리절차 :

A1/1G3L은 파트모스 섬의 ██████성당으로 위장된 격리시설 HA-R1-1-1AG3D01/1의 지하 30m 아래의 3평크기의 방음벽으로 이루어진 격리실에서 나오는 것을 금한다.
만약 격리실에서 나왔다고 함은 비상사태 Atto를 의미함으로, Atto의 소강이후 다시 해당 시설에 격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상사태 Atto를 대비하여 격리실 15m위에는 상시 출동이 가능한 특수부대 출신의 협회요원으로 구성된 C-Team을 주둔시킨다.

-P급 직원 가이드 라인-

1. 비상사태 Atto를 제외한 일반적인 격리 절차에 있어 협회의 P급 직원은 L급 피험체과 동행하여 격리 작업을 실시한다.
2. L급 피험체는 사형수 및 개인회생이 불가능한 채무자,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는 자들을 P급직원 면접하에 채용한다.
기본적으로 면접까지의 과정에서의 채용 정보는 협회의 채용이 아닌, 파트모스 섬의 격리 전염병 환자를 간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장한다.
3. P급 직원은 L급 피험체과 동행하여 A1/1G3L의 기분상태를 확인하고, 최우선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교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스크는 매일 협회의 화물비행기를 통해 오직 한 개만이 제공되며, P급 직원은 이를 분실하거나 손상할 경우 즉시 협회 및 C-Team에게 보고해야만 한다.
4. P급 직원은 L급 피험체에게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손상시키지 않게 지도해야하며, 만약 L급 피험체가 이를 손상시키는 시도를 할 경우 즉결처분을 실시한다.
5. 마스크의 교체작업은 L급 피험체에게 지도한다.
6. 마스크의 교체를 마친 직후 새로 배급받은 것이 아니고, 교체하여 남은 마스크는 즉시 특수용기에 담아 폐기하고, L급 피험체와 P급직원은 소독을 실시한다.
7. A1/1G3L이 마스크의 소재에 대해 질문할 경우 그것에 대해 P급 직원과 L급 피험체는 답변해서는 안된다.
8. 마스크의 교체작업이 끝나면 30분간 L급 피험체는 P급 직원의 감시하에 A1/1G3L와 가벼운 대화를 실시한다.
이 대화 작업은 협회와 A1/1G3L 간의 협의 사항이기에 이를 거부할 경우 협회는 P급 직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9. A1/1G3L이 착용한 협회의 특수격리복을 벗으려는 시도를 할 경우 P급직원은 C-Team에 보고하고, L급 피험체를 이용해 그것을 저지해야한다.
저지 실패시에는 비상사태 Atto를 위해 협회 회선으로 빠른 보고를 요한다.
10. 격리작업에 참여한 모든 인간은 A1/1G3L의 목소리에 노출될 경우 자결용 장비와, 처분용 장비를 사용한다.
11. A1/1G3L이 요구하는 마스크의 제거와 격리복의 탈의에 대해서는 일절 기각한다.
12. 그외의 대부분의 A1/1G3L의 요구에 대해서는 협회에 보고한후 허락하는 것으로 한다.
13. 격리와 관련된 모든 인원은 A1/1G3L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위를 금한다. 특히 종교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동의 및 반대 모두 금한다.

*A급 직원 이상만 완전히 읽을 수 있는 정보 열람입니다

▣ 파트모스 섬 집단추락 사건
1908년 6월 30일 파트모스 섬 ████ 건물 옥상에서 ██명의 인간이 추락사했다.
추락 이후 숨을 거두기전 피해자 ██의 유언은 마치 ██같은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렸다라는 정보가 있으며,
목격자 ██에 의하면 ██으로 향할 수 있다고 모두가 큰소리를 지르고는 옥상에서 마치 하늘 향하듯 아래로 추락했다고 증언했다.

-사망자 명단-
이하 이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제██차 비상사태 Atto 생존자 음성기록

C-TEAM ██ : 일단 빌어먹을 나팔... ████의 머리가 마치 수박저럼 터져서 분수를 뿜어냈었지.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C-TEAM ██ : 화재를 진압하려고 했더니 물에 불이 붙는 이상한 일을 겪었지.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C-TEAM ██ : ███가 샛별같은 것에 접촉했더니, 온몸이 쑥처럼 생긴 식물로 변해 죽어버렸어, █는 빛을 잃었다며 울부짖다가 자기머리에 총을 겨눴던가.
나도 따라 죽을걸. 그 빌어먹을 천사를 봤다면 천국같은 곳에 가지않고 죽었으면 좋겠어. 아? 사족은 필요없다고? 빌어먹을.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C-TEAM ██ : 온갓 벌레들이 와서 딱 죽지않을 만큼 괴롭히더군. 못견딘 몇명은 그대로 목숨을 끊었다.
여섯번째 나팔을 꺼내기전에 격리에 성공한건 다행이야. 그게 일어났다면 아마 세상은-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A급 요원 ███ : 인터뷰를 마치고 C-TEAM ██에 대한 은퇴 요구를 허가합니다. 협회의 기억말소작업을 실시합니다.

데이터의 열람이 불가합니다.

.......
......
.....

당신은 어쩌다 이 빌어먹을 곳에 들어온 어린양(LambL급피험체)이다.
어쩌면 사형을 면책해주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일지도.
어쩌면 거대한 빚을 떠안고 더 이상 구제방법이 없어 탕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바린 이야기일지도.
혹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정도로 시궁창에 떨어진 이야기일지도.

이것은 천사와 ███번째 어린양의 이야기다.

179 이름 없음 (I3K994iHj.)

2023-02-22 (水) 21:10:16

>>177 이걸 너무 늦게 봤네! 막레로 받을게!! 조금 늦었지만 수고했어!

180 이름 없음 (fX8mNbk5Qk)

2023-02-23 (거의 끝나감) 03:05:12

>>178
꼼짝없이 사형당하는 줄 알았는데 일거릴 주겠단다. 급여도 나오는 모양이었다. 사형수에게 맡기는 업무인 걸 생각하면 위험하거나, 어렵거나, 위생적으로 역겹거나 셋 중 하나겠지만, 나쁠 거 없겠다 싶었다. 사형수 신세도 벗어났는데 굳이 자살을 결심하고 추진할 정도로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보니.

듣자 하니, 내 직장은 이 곳, 파트모스 섬의 격리시설이고,(뭘 격리하지?) 하는 일은 나와 조를 짜게 된 직원의 지시와 지도를 따르는 거란다. 내가 들은 건 그 정도다보니, 얼마나 어떻게 고된 일이길래 형 집행 일주일을 앞두고 써먹기로 결정하나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시작하면 궁금해한 걸 후회하려나? 뭐, 재미 없으면 그만두면 되지. 운 나쁘면 내가 결정하고 말것도 없이 그만둬질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은 숙소에서 일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짐이랄 것도 없어서 짐 정리를 할 필요도 없다보니 지루해서 이런 저런 노래가 섞인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지금 이런 여유는 솔직히 달갑지 않다. 딴 생각 안 나게 정신없이 일하고 싶고, 그런 건 근무 첫날이 최고인데. 아, 빨리 일하고 싶다.

181 이름 없음 (U8SEvIB.kI)

2023-02-23 (거의 끝나감) 09:03:33

>>180

그런 사형수였던 자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정장을 입은 초로한 여성이 몇일째 잠을 안자고 자기 관리조차 안된 상태로 숙소로 찾아왔다. 목에 걸린 직원용 식별카드에는 분명 생기있고 정돈된 모습이었는데, 눈앞의 인물과 과연 같은 인물인지 조차 의구심이 들었다. 손톱은 불안에 물어뜯은 듯 너덜너덜하고 굳은 피도 닦이지 않은 상태였고, 눈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어쩌면 일의 강도는 꼭 사형수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다. 반쯤 풀어해쳐진 머리가 부스스 한 것은 덤이다.

"처음뵙겠습니다. L급 직원으로 선정되신걸 축하드립니다.. 그러니까 성함이.."

P급 직원인 여성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고 상대의 이름을 떠올리려다 이내 기억나지 않는 다는듯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너무많은 이름을 기억해야 해서요. 나나 당신이나 어차피.. 아. 말실수를. 실례했습니다."

어쩌면 이 여자는 원래 입이 방정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마는 것이 미심쩍었다. 말하려다가 만것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체념의 의미가 무척이나 담겨있는 마치 한숨을 말로 표현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사형수였죠?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사형수의 사형을 면제하고 일을 주었다 함은 그만큼 기피되는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를 말이죠. 아마 당신도 그 사실을 잘 알것입니다."

182 이름 없음 (fX8mNbk5Qk)

2023-02-23 (거의 끝나감) 22:53:11

>>181
언제부터, 몇 곡이나 섞였는지 모를 뒤죽박죽 콧노래를 3절째 부를 때쯤, 누군가 숙소에 찾아왔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딱 봐도 어딘가 맛이 간 것처럼 보이는 사오십 대 여자분이었다. 저분이야? 내 직속 상사가? 운이 나쁜걸.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실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다, 편견은 갖지 말자. 일이 고되셔서 저런 모습이지 의외로 똑 부러진 분이실 수도 있잖아. 그러나 애써 편견을 밀어두고 가져본 기대를 배신하듯, 여성의 첫인사는 무척이나 산만했다. 축하 인사를 했다가, 이름을 떠올리려고 했다가, 갑자기 너무 많은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TMI에, 영문 모를 다른 소리와, 말을 하려다 마는 것까지…. 큰일 났다. 알기 쉽게 가르쳐주실 것 같지가 않아. 하지만 곤란할수록 웃는 게 내 버릇 같은 거라 습관처럼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샤니크 호톤. 아샤 아니면 닉이라고 불러주세요. 성씨도 상관없구요. 그러니까... P급 직원 선생님? 저는 뭐라고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이해하지 못한 말들은 한 귀로 흘리기로 했다. 내가 알아들어야 하는 말이면 굳이 말실수라고 하시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이제는 업무 설명을 좀 해주시겠지? 사람 죽인 손이라도 필요할 정도면 무지 급한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알아듣기 어렵지만, 핵심은 간단하고, 또 당연한 말이었다. 너는 이제 겁나 갈릴 것이다. 이것도 업무 설명이라면 설명인가? 아니면... 겁을 주고 싶으신 건가? 겁먹은 척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 입은 멋대로 움직였다.

"네, 그렇죠? 그런 것쯤이야 여기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제받았을 때부터 짐작했는걸요. 더럽거나 어렵거나 위험하거나 셋 중 하나나 둘이거나 셋 다거나 그런 업무일 거라는 거요. 그래서 여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걸 해도 되고, 어떤 걸 하면 안 되고, 그밖에 주의할 점은 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조금 겁먹은 체라도 해드릴걸 그랬나? 아냐, 그거 잘못하면 놀리는 것처럼 될 수도 있는걸.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배울 의욕을 보이는 부하직원인데 겁 좀 안 먹었다고 미워하시겠어.

183 이름 없음 (iIRqA1Oxvw)

2023-02-24 (불탄다..!) 00:42:42

>>182

호톤은 그녀를 사오십대 정도로 보고있었지만, 그것은 혹시라도 알게되었다면 분통을 터뜨릴 이야기였다. 기껏해야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가는것이 그녀였으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급격한 노화가 왔다는 이야기를 단 1년내로 말하는 곳이 이 격리시설이기 때문이다. 아샤니크 호톤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야 그녀는 '아' 하고 기억났다는 듯 손톱을 깨물었다. 역시 스트레스성의 반응이었다.

"기억났습니다. 호톤씨였군요. 저는 제인 도. 제인이라고 부르시길."

물론 그건 누가들어도 가명이었다. 제인 도라는 말은 보통 익명의 여성을 지칭한다. 이 여자는 애초에 협회의 보안상의 이유로 L급 피험체에게 본명을 노출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시설내에서 달리 대화하는 것은 그 격리개체를 제외하고는 본인뿐이었다. 가명을 들먹거려도 겹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습니다. 먼저 확인차 묻는 질문입니다만. 종교는 없으신게 확실하겠죠?"

제인은 사실 호톤이 겁을 먹건, 먹지않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입장이었다. 왜 그들을 L급 피험체라고 부르겠는가. 격리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인간이기에 그들을 Lamb라는 의미에서 L급 피험체라고 협회에는 지칭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의 호톤이라는 자는 비협조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게 오직 제인에게 있어서 편한 부분이었다.

"무슨일을 하는가는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해도되는 부분은 하면 안되는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입니다.
그럼 하면 안되는 것을 먼저 말하는게 좋겠죠. 당신의 입장상 이 시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저희 회사의 허가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섬을 산책하는 일은 있을수도 있겠네요. 다만 그 경우에도 제 감시하에 일어날 일입니다. 만약 탈출시도를 할 경우에는,"

제인은 정장안에 감쳐둔 처분용 권총을 슬며시 보였다.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이 가능합니다.하면 안되는 것을 했을시에는 즉결처분이 가능합니다. 가장 중요한게 탈출시도고, 그외에는 허가외에 업무의 객체와 만나려고 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일에서 하면 안되는 부분입니다.
당신이 해야할 일은 당신 숙소아래에 위치한 격리실의 격리 객체와 관련된 작업입니다. 객체가 무슨이유로 격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지않습니다. 뭐 이부분은 객체와 대화 작업에서 금방알게될 부분이지만 제 입으로 말할 권한이 없습니다. 객체와는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마십시오. 매일 이곳으로 공수되는 마스크를 교체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합니다만, 마스크를 교체하는 작업에 있어서 마스크를 행여나 오염시키거나,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교체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신속하고, 지연없는 처리가 필요합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적으로 10초이내. 객체가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은 대화의 노출은 30초이내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객체의 요구는 저에게 보고하고 스스로 요구를 들어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새 마스크와 교체한 마스크는 폐기합니다."

기계적으로 제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약 30분간 객체와 당신은 대화해야합니다. 객체와 협의된 사항이기에 객체의 요구를 들어줘야하는 입장입니다.
무슨 소재던 관계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종교를 제외하고. 마스크의 소재에 대해 질문은 대답할수없습니다. 객체에게 만약 그 질문을 듣더라도 모른다라고 답하십시오. 만약 객체가 착용하고있는 격리복을 벗으려한다면 그것을 제지해야합니다.
이상이 이 시설에서 당신이 알아야할 사항입니다."


184 이름 없음 (hpJLzcXOqE)

2023-02-26 (내일 월요일) 02:25:23

>>183 "제인 씨군요, 알겠어요."

와,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이름이네. 역시 가명인가? 나도 가명을 댈 걸 그랬나? 죄수 번호 같은 거. 근데 뭐 말씀하시는 거 봐서는 내 이름 원래 알고 계시는 모양이었으니까. 게다가 가명 대서 뭐할 거야. 이어 제인은 확인하듯 종교는 없는 게 확신하냐고 물어왔다.

"네, 없어요. 무신론보단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쪽?"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없다고 확신하는 무신론이나 모르겠다는 불가지론처럼 딱 들어맞는 점잖은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도 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마지막으로 업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듣자 하니, 허락 없이 시설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단다. 탈출하면 죽인대고. 대신 제인의 감시하에 산책은 해도 된다는 모양이다. 기꺼웠다. 콧바람 좀 쐬려면 직장 상사와 데이트해야 한다는 거 빼고는.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차라리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며 딴 생각이 안 나게 지내고 싶었으니까.

다행히도 업무에 대한 설명은 금방 들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내 일은 내 숙소 아래에 사는 객체라는 존재를 관리하고 상대하는 모양이었다. 대충 간수인데 감정노동 하는 간수 같은 거네. 신속하게 마스크를 갈아 끼워 주고, 금지 화제 피해서 말 상대 해주고, 허튼짓하려고 하면 막고. 객체라는 것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라곤 했지만, 그건 금지 화제를 피한 노가리까지고, 그 이상의 요구는 제인 씨를 거쳐야 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이상이 내게 허가된 정보라는 모양이지만, 객체에 대한 것이 아닌 질문도 하지 말란 소리는 없지 않았는가? 그래서 난 궁금한 건 참지 않기로 했다.

"이해했어요. 월급은 얼만지, 승진할 수도 있는지 궁금한데 그건 여쭤봐도 돼요?"

내가 사형수 출신이라곤 하지만 저쪽도 직원이라고 칭했지 않은가. 죄수나 노예가 아니라. 물론 사형당하지 않는 대신 하는 노역이라고 쳐도 모범수 조건 같은 건 있지 않을까? 없으면 뭐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185 이름 없음 (k93BwuGIQg)

2023-02-27 (모두 수고..) 11:46:19

>>184

"...그쪽이라면 문제없군요. 앞으로 봐야할 것은 독실한 신자일수록 시련으로 다가올테니."

무언가 체념한듯한 그리고 넌지시 업무에 대해서 불가사의한 느낌이 드는 제인의 말이었다. 오히려 사정이 낫다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호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의문이 될 것이다. 독실한 신자에게 있어서는 시련이 된다는 것, 종교는 가지고 있는가라는 맨 처음의 질문. 여기서 머리가 돌아간다면 대충 단순한 더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음모론같은 것을 본적이 있다면 더더욱이.

"그것은 이쪽에 계약서를 봐주십시오."

반쯤은 계약서라기보단 입으로 이미 들었던 주의사항을 어겼을 경우에 대한 책임은 지지않는다는 내용이 가득한 어떻게 본다면 사형수의 신분이 아니라면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종이쪼가리였다. 하지만 위험에 대한 리스크를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범죄자가 쥘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은 아닌 수당이, 월급제 형식도 아니고 하루 업무 일당으로 쥐어지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활용할 방법이 있냐고 한다면, 당장에 L급 신분으로서는 없었다만, 마치 희망고문을 한다는 듯 1년내 생존시라는 조건으로 L급에서의 신분에서 승급도 적혀있었다. 오히려 그 부분이 1년내에도 생존할 수 없다는 걸까?

"아, 네. 수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였을까 지직하고 무전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의 근원을 찾자, 제인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제인은 그것에 대답했다. 수령하도록 하겠다는 말이 얼마지나지않아 소형 드론같은 것이, 모터소리를 내며 곧바로 밀폐된 상자 하나를 이 자리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곧 업무 시작입니다. 이 상자는 절대로 큰 충격을 줘서는 안됩니다"

//ㅈㅅ.. 너무 늦게봤다

186 이름 없음 (o7E2kA/Zus)

2023-03-01 (水) 00:32:05

지옥 깊숙한 곳, 주술 담긴 광풍이 불었다. 강보다 넓고 산보다 높은 저택 구석구석을 휩쓸고 나자 새파란 불길이 곳곳에서 치솟았다. 삼백 년 간 잠들어있던 저택과 함께 깨어난 염화의 악마는 불길처럼 일렁이는 남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침실을 벗어났다. 까만 흰자위를 접어 웃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새파란 불길이 일었다. 회색 피부 거죽을 뒤집어쓴 기다란 손이 한차례 휘적이자 발밑에 오각형의 문양이 떠올랐고, 일순 거센 화염이 입을 벌리며 악마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파란 불길은 지구의 작은 단칸방 안에서 다시 한번 일었다.
와장창, 쨍그랑-! 지옥에서 분 것보다 약한 바람이 집 창문이며 식기며 온갖 가구들을 깨부쉈으나 바깥은 이상하리만치 항의 하나 없이 조용했다. 수라장 속 화염의 악마는 태연하게 내부를 둘러보다가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날 부른 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환에 성공한 건 삼백 년 만인데……. 네가 날 불렀다고? 흐음. 생각보다 별거 없는 인간이라 놀랐네."

그는 한번 손을 휘적이더니 집안에서 나뒹굴던 의자를 어떠한 접촉도 없이 순식간에 제 뒤로 이동시키더니 익숙하고도 거만하게 착석했다.

// 조절은 하겠지만 웬만해서 이렇게 툭툭 내뱉는 게 취향이라 괜찮은 참치가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외계인 존재 발견되지 않은 평범한 지구의 지구인인 것만 지켜주면 지구 속 판타지 여부, 시대, 인종 모두 상관 없을 거 같아. 종족은... 마녀, 마법사, 인간 정도면 좋겠어 XD !!

187 이름 없음 (C.U310CzwQ)

2023-03-02 (거의 끝나감) 21:03:40

황실에서 쫓겨나고 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래 사내는 황자 중 하나를 지키는 실력이 있는 근위기사였다. 열여덟에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스무살이 된 해에 황자의 눈에 들어 황자의 청으로 황자를 지키는 기사가 되어 측근의 자리에 올랐다. 허나 그 자리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사내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황자를 호위했으나 황자의 주변의 있는 이들의 모함에 황자의 귀가 솔깃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언젠가 황자를 배신할지도 모르는 이. 근본도 없는 고아 출신. 저 강한 무력으로 반드시 이 황실을 어지럽힐 이. 황자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혹시나 저 사내가 더욱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될까 두려워 계속해서 모함했고 황자는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사내를 내쳤다. 황자를 지키는 근위기사라는 자리에서 쫓겨나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금까지의 공을 인정해서 목숨만은 겨우 살려주겠다라는 그 말귀가 사내의 머릿속에 서늘하게 남아있었다.

올해로 스물 넷이 된 사내는 조용한 마을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소일거리 ㅡ이를테면 들짐승 퇴치, 도적 퇴치 등ㅡ 를 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길드 같은 곳에 들어가서 좀 더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는 굳이 눈에 띄지 않는 길을 택했다. 괜히 이름을 뽐냈다가 그땐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혼자서 열을 상대할 순 없었고 그 이상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목숨을 유지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길을 택한 사내는 방금 사냥한 곰을 들쳐매고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을 위협하는 흉악한 곰을 퇴치했으니 보상금은 꽤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내가 마을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아. 저기 오네요. 저기. 바로 저 자입니다. 저 자."
"근데 저 사람에겐 무슨 일로?"

뭔가 마을 입구 부분에서 말들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마을 사람 중 두 명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온 모양인데. 의뢰를 부탁하러 온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는 일단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허나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았다. 아직 누가 자신을 찾는진 모르겠으나 최악의 경우 자신을 죽이러 온 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실에서 쫓아냈다고는 하나 혹시나 복수할까 두려워 자신의 목숨을 뺏으려는 이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경계심을 드러내며 가만히 자신을 찾아온 이가 있을 위치를 바라봤다. 누구일까. 어떤 목적으로 대체?

/상대가 누구인지는 자유! 정말로 죽이러 온 이도 괜찮고 다른 목적으로 찾아온 이도 괜찮아! 다만 아. 저 사람 아닌데요. 라던가 이어지지도 않을 철벽을 친다던가, 영화 컷!! 이런 식으로 갑자기 흐름을 완전히 깨버리고 모든 것을 망상으로 바꿔버리는 전개라던가. 그런 것은 힘들 것 같아!

188 이름 없음 (xlh8dvyMbg)

2023-03-03 (불탄다..!) 13:13:54

>>187

'이번에는 자네도 마음에 들어 할 만한 타겟이야. 싸워서 꺾고, 깨부숴서, 쓰러뜨릴 가치가 있는 상대지.'

'페이가 꽤 붙어 있군.'

'어때, 하겠나?'

'......제적당했던 내가 조기졸업생이랑 투닥거리게 생겼군.'

짧은 회상 속에서 다시금 스스로에게 목표를 주지시킨 뒤, 사냥꾼은 눈을 떴다.

청부업계, 혹은 특정인을 목표로 하는 다소 폭력적이고 지엽적인 일에 특화된 용병 업계에 몸을 담은지도 어언 6년, 나이로는 아직 스물다섯이지만 경력으로는 진작에 이골이 난 몸이었다. 업계에서도 기벽으로 여겨지는 특유의 사냥 방식 탓에 특정 조직에 몸을 담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만 제한다면 이미 손에 꼽히는 명성, 내지는 악명을 사냥꾼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기벽, 그 어떤 수단으로 시작하던 마지막에는 타겟과 싸움으로 끝을 봐야 한다는 무의미한 고집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치기 어린 행동이다, 아마추어리즘이다 따위의 비판은 항상 사냥꾼을 따라다녔다. 어차피 암살자인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는 항변으로 일관해왔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청부업자의 행태와 어울리는 것도 분명 아니었기에 언제부터인가 사냥꾼이라는 별명은 자연스레 그 자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사냥꾼 본인은, 별다른 반응도 없이 그 별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도 경력이 빛 바랠 만큼 오래된 일부 청부업자들은, 차라리 기사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농담삼아 말하고는 했다. 한때 기사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다가 불미스러운 제적처분 뒤로 청부업에 뛰어들었고, 보다 직접적인 수단에 연연하는 기벽도 당시에 맺힌 분한 마음 때문이라는 사냥꾼의 과거사는 그런 베테랑들에게만 드문 드문 알려진 이야기였다.

바로 그 제적처리자가, 자신이 떠난 해에 아카데미를 조기졸업했던 예전의 동문을 마주보고 있었다.

"여, 오랜만이지?"

양옆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이야기하던 마을사람들을 쓱 밀어내며 당신 앞으로 나서는 사냥꾼은,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그다지 숨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다가오는 사냥꾼의 태도는 싸움을 준비하는 태세도 아니었고 살기 또한 없었다. 오히려 옛 친구를 맞는 친근한 태도로 사냥꾼은 천천히 당신 앞에 섰다.

"왜 왔는지 알겠나?"

189 이름 없음 (ZWHf7QaQts)

2023-03-03 (불탄다..!) 20:55:50

>>188
사람들을 밀어내며 등장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사내는 처음엔 누구인가 싶어서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허나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와 그 말의 내용을 들으며 사내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좋은 이유로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계심을 더욱 키우며 사내는 빤히 상대를 바라봤다. 싸움을 준비하는 태세도 아니고 살기 또한 없었으나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으며 사내는 경계심을 가지며 일단 거리를 띄위려는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들쳐매고 있는 곰을 내려놓고.

"적어도 좋은 이유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져서 친근하게 얘기를 하긴 힘들겠는데."

갓 얼어붙은 얼음마냥 사내의 목소리가 상당히 차가웠다. 허나 자신 역시 딱히 검을 꺼내거나 하진 않으며 사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허나 그럼에도 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으로 향했고 여차하면 바로 뽑을 수 있도록 준비 자체를 갖췄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사내는 입을 열어 차가운 목소리를 다시 내뱉었다.

"그래도 이유는 들어야겠지. 무슨 이유로 온 거지?"

만약 자신이 바로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이유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안타깝게도 자신도 쉽사리 죽을 생각은 없었다. 저 친근한 태도가 연기인지, 아니면 갑자기 돌변해서 공격해올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며 사내는 침을 삼켰다. 그 자세에는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쫓겨나긴 했지만 어쨌건 황자를 지키는 근위기사까지 올랐던 이인만큼.

190 이름 없음 (pbsNYRdleM)

2023-03-03 (불탄다..!) 22:57:50

아, 나오려 하네. 성마른 입술 사이로 한숨처럼 흘러나온 음절은 차디찼다. 그게 욕이든 다른 것이든 어쨌든 긍정적인 게 아닐 것은 확실했다. 성혜주는 대뜸 시니컬한 웃음을 터트렸다가 곧장 정색을 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새카만 하늘이 보였다. 더럽게도 맑다. 제 마음에는 이리도 먹구름이 꼈는데 말이다. 아니, 밤이 온 건 같나.

앞길을 막고 선 자는 옛 연인으로 오 분 전까지는 연인이었던 놈이다. 여자 밝히는 놈이란 건 옛적에 알고 있었는데, 자신과 사귀는 동안에도 몰래 바람을 피우고 유흥업소까지 드나들었단다. 헤어질 이유로는 뻔하고 흔한 이야기지. 그런 새끼가 앞에서는 눈썹을 팔자로 내리고 질질 짜면서 빌고 있으니 이거 원……. 속이 안 좋단 말이지. 침이라도 뱉어줄까 싶다가 그것마저 아까워 걸음을 옮겼다. 왠지 속이 쓰려 담배 한 개비를 무는 사이 뒤에서 혜주야, 혜주야 하고 애원하듯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저놈하고 연애란 걸 하면서 얻은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찌질하고 음침한 놈은 만나지 말 것.

약간 멍한 정신으로 걷다 보니 어느덧 자취방에 가까워졌다. 이런 기분으로는 들어갈 마음이 영 들지 않는다. 솔로가 됐는데 물리적으로도 혼자가 되면 진짜 좆같을 거 같았다. 성혜주는 구두 밑창으로 담뱃불을 끄고는 앞에 늘어진 포장마차 중 하나로 불쑥 들어가 앉았다. 클럽이라도 갔다 왔다기에는 제법 얌전한 차림새인데, 그렇다고 정숙하다기엔 헝클어진 단발머리와 번진 립스틱이 요란한 여자가 들어오니 잠시 힐끔거리는 시선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소주랑 막창, 부탁해요."

입 험하고 정신머리도 험한데 주인아저씨에게 팔자에도 없는 예의를 차리려니 절로 말이 끊겼다. 잠시 더듬거린 성혜주는 금세 아무렇지 않은 낯을 하고 턱을 괴었다. 포장마차치고는 꽤 조용했다. 시간이 늦어서인가? 홀로 청승 떨러 온 사람이 많은 것은 만족스러웠다. 저 혼자 난리였으면 꽤 서러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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