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갑작스러운 어깨동무로 인해 , 탄야의 상체가 당신이 서있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구부러지고 멀디 먼 곳을 짚어내고 있던 시선이 문득 흔들린다. 아가씨라는 호칭을 반기지 않는 만큼 자신을 격없이 대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나 , 이렇게까지 친밀감있게 대할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판단이 안된다는 점은 그의 시선을 흔들리게 하기 충분했다.
" 돈은 썩을 정도로 남아나니까 얼마든지 뜯어먹도록 해. 나정도 되는 호구를 잡은 걸 자랑스러워해도 되고. 一 이런 행동은 너무 격없다고 생각하지만. "
탄야는 감정 기복이 없는 건조하고 권태로운 억양으로 말을 내뱉으면서 어깨에 둘러진 당신의 팔을 떼어내려 손을 올렸다가 멈췄을 것이다. 지척의 거리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숨에 둥그스름한 그의 귀가 움찔 흔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은청색 시선이 가늘어졌다. 왜 그렇게 붙잡아두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구는걸까. 너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 모르지.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쯤은 주지 않을까. "
당신의 팔을 떼어내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면서 남긴 말이었다. 당신과 그가 들어선 바의 내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훈훈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흑과 백을 자연스럽게 매치하여 모던하고 과하지 않은 엔틱한 장식품들로 포인트를 준 내부는 아포칼립스 사태에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보인다. 바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호랑이 수인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친절하게 미소를 띄며 반겼다.
" 크흐흐, 호구 잡을 생각은 없는데. 괜한 욕심 부리다간 뒤지기 좋다고. 난 그런거 안 해. "
개죽음은 사양이야. 탄야가 어깨에 두른 팔을 내리지 않자 태연하게 어깨동무를 유지한 체 웃어보인다. 탄야를 호구 잡는다니. 그런 짓을 카리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각자에겐 걸맞는 분수라는게 있는 법이었다. 카리나가 생각하기에 탄야와 이러고 있는 것이 분수를 적당히 넘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 그래도 와인은 좀 기대할지도.
" 이럴 땐 적당히 맞장구 치는거야, 깍쟁아. "
팔을 풀고 앞장서서 들어가는 네 뒤를 따라 들어가며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이렇게 다가가도 아예 밀어내지 않는 것도 친밀감이 조금이나마 올랐다는 증거란 생각에 미소가 가실 줄 몰랐다. 고급스런 바 안에 들어서자 마스터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두리번거리며 촌놈처럼 바 안을 구경한다. 호오, 헤에『 』하는 소리가 탄야의 귓가에 머무는 것이 한동안 이어진다.
" 탄야가 마시던거. 저사람은 흥미가 없는데. 네가 마시는 건 궁금하네. "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곤 장난스럽게 잔망스러운 윙크를 해보이며 대꾸한다. 오히려 마스터는 제 할일을 마치고 가주면 하는 눈치인 것이 단 둘이 있는 것이 편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카리나도 탄야와는 다른 의미로 비사교적인 여자였으니까.
"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 기대해도 되는거지? "
헤진 가죽자켓을 벗어 새하얀 탱크톱 차림이 된 카리나는 흉터 투성이 팔을 활짝 피며 기지개를 피곤 부드럽게 물음을 던진다.
매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랑스럽다는 건 부정하고 싶은데. 어딜 봐서? 카리나가 더 사랑스럽지. 카리나는 음...확신이 들면 밀어붙힐 느낌이야. 그래도 한다면 할 수 있단다. 힘내 카리나. 상대가 탄야라는 게 문제인가() 답레는 좀 천천히 쓸게. 이야기거리를 탄야가꺼낼 일이 없으니 아까 나왔던 방문자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고민 중이야.
쓰읍..카리나주의 취향은 대체..? 밀어붙히면서도 머뭇거리는 거 뭐야. 귀여운데. 빨리 보고 싶지만 지금의 데면데면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으니까 참겠어. 너무 관계 변화없이 질질 끌리는 것 같으면 말해줘. 사이가 좁혀질만한 계기를 만들어볼테니까🙏 내일도 평일이니 답레 핑퐁으로 보낼 수는 없고 잡담이나 할까.
탄야는 무감하게 중얼였다. 태연하게 웃어보이는 당신과는 반대로 그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음을 굳이 덧붙히지 않겠다.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때문에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이 도시가 이렇게 바뀌기 전부터 탄야는 이 세상이 순수한 호의로만 돌아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호구 잡아서 뜯어먹어도 좋다는 말을 한 것은 그럴싸한 말치레는 아니었지만서도.
" 너랑 비즈니스로 만났다면 모를까. 비즈니스없이 사적으로 만난 이상 그정도는 억울해도 감안해. "
깍쟁이라는 당신의 말에 바닥으로 늘어져있던 탄야의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 끄트머리가 짧게 떠오르며 좌우로 까딱여지고 탄야는 웃음기없는 목소리로 무던하게 당신에게 대꾸했다. 당신이 내부를 두리번거리면서 보이고 있는 반응에도 마스터는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은 상태였다. 탄야와 함께 온 이상 손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겉옷을 벗은 뒤 적당히 갈무리해서 팔에 걸치면서 탄야는 잠시 자신의 은백색 머리카락 중 검은 부분이 있는 앞머리쪽을 헤집듯 헝크러트리며 고민에 잠긴다.
자신이 마시는 거라고 해도 넘기기 쉬운 달달한 화이트 와인계열이었다. 물론 뒷골목에서 팔아대는 술의 종류나 맛이 어떤지 아예 모르는 상태로 자신이 즐기는 와인을 추천해도 좋을지 고민도 들었다. 당신의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윙크를 마주하고 탄야는 비스듬히 고개를 잠깐 틀어내는 정도로 반응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먼저 룸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가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당신에게 손짓해보인다. " 네 입맛을 내가 잘 몰라서.. " 하고 , 그는 말문을 텄다.
" 내 취향의 와인이여도 상관없다는 거지? 마스터. 항상 마시던 걸로. "
그의 말이 끝나자 마스터는 고개를 숙여보인 뒤 자리를 비켰다. 자리잡은 룸은 두사람이 앉기에는 조금 좁고 , 혼자 앉기에는 좁은 느낌의 테이블이 가운데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앉는다면 필연적으로 어깨와 어깨가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재떨이를 당기고 그는 자신의 담배를 눌러끄며 새 담배를 물었고 그와 동시에 나타난 마스터는 와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당신과 탄야의 잔에 와인을 채우고 와인병을 테이블에 둔 뒤 가볍게 곁들일 수 있는 스낵류까지 세팅해준 뒤 "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라는 인사를 끝으로 룸을 나섰을 것이다. 부르지 않는 이상 마스터는 굳이 룸으로 들어오지 않을테니 지금부터는 온전히 당신과 탄야만의 시간이었다. 작게 들리는 무명 작곡가의 선율, 간간히 조용한 목소리로 나누는 손님들의 대화, 말이 많지 않은 마스터까지. 정적인 것들로 가득한 바는 탄야의 취향에 알맞은 곳이기도 했다.
탄야의 무덤덤한 대답에도 그저 재밌다는 듯 거친 웃음소리를 흘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런 반응이 나쁘지 않은 카리나는 이젠 익숙해진 상태였다. 물론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거칠게 반응하기는 했었지만 아무튼 그런거였다. 두리번 두리번 가게 안을 구경하던 카리나는 머리를 헤집듯 헝클어트리곤 고민에 빠진 탄야에게로 시선을 돌려선 느긋하게 구경한다.
" 내가 와인 이름이라도 알 것 같아? 물어봐야 헛수고니까. "
태연ㅣ 내 손짓에 다가와 앉아 자켓을 벗어 드러낸 어깨를 탄야와 맞대곤 느긋한 목소리로 말한다.탄야가 담배를 꺼내는 모습에, 자신도 담배를 꺼낼까 하던 카리나는 가게의 분위기와 탄야가 그 향을 싫어한다는 것을 떠올리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그렇다고 탄야의 것을 빌려서 피는 것은 안 핀 것만 못 할 것 같았으니까. 한번인가 피워본 적 있었는데 간질거리게 만들기만 할 뿐 성에 차지 않았었다.
" 그래, 건배하자, 건배. "
고개를 돌리며 잔을 들어보인 카리나는 탄야와 고개를 마주 하고선 눈웃음을 살살 지어보인다. 거친 성격과는 다르게 썩 아름다운 눈웃음이었다. 뒷골목에서도 카리나의 이름이 꽤나 자주 들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미모였으니까. 뭐, 제정신인 사람은 카리나에게 함부로 말을 걸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놈은 이미 뒷골목에 묻힌지 오래였다.
" 뭐, 그래도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이런 부분은 또 너랑 맞는 모양이야. "
잔을 맞대고 맑은 소리를 낸 카리나는 와인을 한모금 머금곤 뜸을 들이다 삼킨다. 그리곤 옅은 와인향이 풍겨오는 숨을 내뱉으며 턱을 괴고 탄야를 응시한다.
그러게 , 하고 맞장구치려는 말은 삼켰다. 웃기지도 않는 첫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은 질기게도 계속됐다. 누군가 한명이 놓아버리면 끝날 인연이다. 태어난 곳도 , 자란 곳도 정반대인 사이였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그 손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인연인 당신을 탄야는 놓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겠는 마음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그에게 당신의 존재는 불청객임이 분명한데.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당신에게 탄야는 잠시간 시선을 두다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혔다. 말에 대꾸하지 않더라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 친밀하다는 것을 어필하지만 지나친 감정소모는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사교적인 성격만 아니었다면 , 곁에 두기에 나쁘지 않은 타입의 사람이다. 달달한 바닐라향이 후각을 스치고 나서야 탄야도 잔을 들었다. 짙은 담배연기에 은청색 시선이 잠겨든다.
" 마땅히 떠오르는 건배사는 없으니까 생략하지. "
잔과 잔이 부딪히며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인을 한모금 마셔보면 달달한 맛이 강해서 넘기기 쉬울 것이다.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기대어 두고 탄야는 잔에 담긴 와인을 마시고 어깨가 맞닿은 당신을 향해 시선을 준다. 눈웃음을 짓는 모습에도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 조용하고 , 참견이 심하지 않은 마스터가 있는 곳은 이 도시에서 찾기 힘들어졌으니까. 손님들 대부분이 수인이면 서로가 부딪혀봤자 잃을 게 많다는 점도 한몫할지도 모르지. "
바의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당신의 말에 무던하고 무뚝뚝하게 그가 대답했다. 문장의 마지막은 조금 시니컬한 뉘앙스였지만. 천천히 와인이 담긴 잔을 흔들고 있던 탄야는 은청색 눈을 가늘게 접는다.
" 그건 좀 의외인데. 네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 줄 몰랐어. 아니면 一 그건가.. 분위기가 맞는 게 아니라 같이 마시는 사람이 마음에 든다거나. "
애초에 나는 그렇게 고급지게 마시는 사람도 아냐, 카리나는 그렇게 덧붙이며 상관없다는 듯 말한다. 정말로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 그저 잔을 부딪히곤 네 얼굴을 바라보며 입에 와인을 머금을 뿐이었다. 달달한 맛,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맛을 잠시 음미한다. 도수가 좀 더 높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가지만 뒷골목의 그것만큼 독한 것이 이런 곳에 있을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와인을 삼키다 어깨를 맞대고 있던 탄야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것에 맞춰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요사스러운 눈짓이 흘러나온다.
" 하긴 너희들은 부딪치면 여럿 피곤해지니까. 프흐. "
몇번 부딪치던 것을 본 기억과 그 덕에 일거리가 생겨서 맘 편히 날뛰고 며칠을 배부르게 살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탄야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머 키득거린다. 밑바닥 그녀에겐 위쪽의 싸움은 주머니를 불려주는 간편한 일거리나 다름없었다.
" 어, 당연하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너니까 마음에 드는거야. 뒷골목 이상한 녀석들이랑 왔으면 진작 내던지고 나갔지. "
눈을 가늘게 접고선 무심히 던져오는 말에 눈을 깜빡이던 카리나는 새하얀 이가 드러나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리곤 어깨를 맞대고 있던 것을 움직여 장난스럽게 다시 네 어깨 위에 팔을 얹어 감싼다. 탄탄한 카리나의 팔이 탄야의 어깨를 휘감는다.
" 애초에 난 아무하고나 술 안 마시거든. 흔치 않은 일이라니까? "
달콤한 와인향이 깃든 따스한 숨결을 내뱉으며 알코올이 들어가 한결 나른해진 눈웃음을 해보이는 카리나였다. 탄야는 모르겠지만, 알코올에 강한 편은 아니았으니까.
당신의 말에 대한 탄야의 답이었다. 도수는 낮고, 맛은 달지만 단맛에 빠져서 막무가내로 들이키다보면 어느순간 몸은 가누기 힘들정도로 취해버리는 정도의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이유는 별거없었다. 취해서 엉뚱한 짓을 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취하는 걸 좋아하지 않은 것 뿐일지도 모르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해왔다. 잔 안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는 와인에 잠시 내려졌던 시선이 당신과 마주쳤다. 마주치는 시선을 탄야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과 다르게 그의 은청색 시선에는 담담할 뿐이다. 정말로 담담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 ...술버릇이 안좋아서 다른 사람이랑 안마시는 것 같은데. 농담이지? 이제 겨우 한잔밖에 안마셨잖아. "
뒷골목을 벗어날 때와 똑같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카리나의 행동에 탄야는 거부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채 , 끌려갔을 것이다. 행동과 다르게 잔에 남은 와인을 들이키는 탄야의 모습이나 행동은 카리나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듯해보였다. 물론 , 대답을 중얼거리는 목소리또한 무감하고 무뚝뚝하다. 비워낸 잔을 다시 채우기 위해 와인병을 쥐고 잔을 채운 뒤 , 탄야는 담배를 꼬나쥐고 있지만 그나마 자유로운 손을 가까워져 있는 카리나의 얼굴에 뻗는다.
" 너는 술은 그냥 안마시는 게 좋겠어. 주정뱅이가 되네. "
탄야의 내밀었던 손이 다른 곳이 아닌 카리나의 이마를 가볍게 밀어내듯 눌렀다. 이제까지 그 어떤 거부의사를 표출하지 않고 있던 수용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고 무감하고 무뚝뚝하던 표정을 풀고 한숨을 쉬듯 짧은 웃음을 흘려냈다. 눈에 익은 무력한 웃음이다.
곧 죽어도 약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곤 아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왠지 제 입으로 약하다는 말을 꺼내는 건 싫어서 이마을 밀어내듯 누르는.네 손길에 잠시 장난스럽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그렇게 도로 고개를 되돌리던 카리나는 이내 웃고 있는 탄야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반짝인다
" 야아~ 평소에도 나한테 그렇게 좀 웃어봐라아~ "
탄야가 짧은 웃음을 흘리는 것이 마냥 좋았는지,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이 풀어져선 탄야가 잔을 들고 있지 않은 팔을 끌어안으며 활짝 웃어보인다. 눈을 깜빡깜빡, 평상시라면 지을리가 없을 순박하기 그지 없던 표정에서 술기운에 만들어진 홍조가 어우려져 화사함이 쏟아진다. 누구든 본다면 얼굴에 있는 칼자국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가 아니었을까.
" 크흥~ 진짜 오늘 좋은 날인가보다. 좋아조아. 이런 날에 한잔으론 안되겠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귀엽게 좌우로 까닥이며 네 팔을 끌어안고 있다가 한팔을 뻗어선 와인병을 집어들려고 한다. 달달한 와인의 맛이 좀 더 카리나랄 부추기는데 일조했을 것은 분명했다.
당신의 말에 바로 붙는 탄야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무기력하고 무력한 사람마냥 짧게 웃으며 탄야는 당신이 고개를 젖혔다가 되돌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눌러냈던 손가락으로 당신의 이마에 아프지 않은 정도의 딱밤을 놓았을 것이다. 술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낮고 차가운 체온을 느꼈을까. 당신이 자신의 팔을 끌어안았을 때는 탄야의 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거둬낸 상태였지만 소파 위에 가만히 늘어트려져 있는 눈표범 꼬리와 둥그스름한 귀가 대신 반응을 보였다.
당신의 말에 맞춰서 살짝씩 움직이는 귀와 꼬리는 당신의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해하는 느낌이다. 상대가 살갑게 붙어오는 행동을 탄야는 익숙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하다못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부귀영화에 무관심한 이가 타인과의 스킨십 - 그러니까 살갑게 구는 태도에 익숙할리가. 당신의 웃음에 탄야는 잔을 기울이며 가만히 시선을 맞췄다. 하는 짓을 보니 완전히 취했네. 더 취하면 곤란한데. 무심한 표정으로 탄야가 생각에 잠긴다.
" 주정뱅이를 데리고 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애초에 주정뱅이는 출입금지고. "
와인병을 잡으려는 당신의 팔을 그가 붙들었다. 얇고 가느다란 체구와 달리 제법 강했는데 열성이라고 해도 일단은 대형 고양잇과 수인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다른 손으로 와인병을 잡아 그는 자신의 잔을 채운다.
딱밤을 맞고선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와인 덕분에 얼굴이 풀려있어서 그런지 귀엽게만 보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은 평소의 카리나에게선 들을 수 있을리가 없는 말이었으니까 꽤나 낯선 모습이 아니었을까. 미간을 찌푸리던 카리나는 투정을 부리듯 입숳을 삐죽거리다 움직이는 탄야의 꼬리와 귀를 보며 베시시 웃는다.
" 으앗?! 나 두고 갈거야?! 너무하다~ "
술 먹인 건 탄야인데. 카리나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무심한 탄야의 표정도, 말도 마냥 재밌는 모양이었다. 사실 카리나는 지금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는 했다. 와인병을 잡으려는 것도 탄야에게 제지되자 입술을 달싹이다가 폭 머리를 탄야의 어깨에 기댄다.
" 몰라. 탄야가 데려왔으니까 아침까지 같이 있어~ 솔직히 그래야된다~ "
평소의 카리나라면 보일리 없는 무방비한 모습으로 헤실헤실 웃으며 뺨을 네 어깨에 부빈다.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하지만은 않은 그 온도가 딱 마음에 드는 모양새였다. 뺨을 부비던 카리나의 입술 사이에선 듣기 좋은 잔잔한 노래의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기댄 탄야의 팔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살살 건드리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해보면서, 눈을 감고 한참이나 듣기 좋은 이름 모를 노래의 음을 흥얼거린다.
" 매일 같은 나날을 보내는거 지겹지 않아? "
그러다 어느 순간 노래가 끊기고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눈을 는 카리나가 팔을 매만지던 손을 뻗어 탄야의 뺨에 가져가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게 한다. 그리곤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평소에 보이는 모습과는 딴판이지. 풀려있는 얼굴로 웃는 당신의 모양새를 바라보며 탄야가 한 생각이었다. 술이 사람을 얼마나 바뀌게 만드는지에 대한 확실한 예시 아닐까. 기억을 아예 못하는 것보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쪽이 더 민망할텐데.
" 나는 따라오라고 강요한 적 없고 애초에 따라온 건 너잖아. 주정뱅이야. "
웃음소리에 그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무심하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당신의 손에서 와인병을 빼앗는데 성공하자 탄야는 그것을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치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은 뒤 담배를 눌러껐을 것이다. 짙고 달달한 바닐라향이 가득 퍼졌다. 바 특유의 희미한 실내등을 향해 연기를 뱉어내던 그의 행동이 잠시 멈칫한다. 팔짱을 껴오는 것도 모자라 어깨에 기대는 꼴이 당혹스럽다. 이정도까지의 친밀함을 표시하는 존재라고 해봤자 자신의 형제뿐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와인의 맛이 입안에 남아있는 바닐라향과 섞여서 입안이 달면서도 쓴 느낌이다.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지만 , 탄야는 당신의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안주로 나온 스낵류를 뒤적일 뿐 입에 넣지 않고 있던 그가 당신의 말에 미약하게 반응했다. 아니 반응했다기보다 당신에게 뺨이 붙들렸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보인 행동이다. 당신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는 은청색의 시선은 가늘었지만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반사광이 드러나 있었을 것이다. 하 - 하며 , 그는 짧게 웃는다.
" ...그럴까. "
무기력한 웃음. 겨우 들릴 정도로 낮고 작게 당신의 제안에 동의하는 듯한 대답을 속삭이며 그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짧게 두드렸다. 10대 때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라서 , 어이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불어 그런 말을 한 상대가 만난지 몇년밖에 되지 않은 당신이라는 것도. 뺨에 올려진 당신의 체온을 느끼려는 것마냥 탄야는 느리게 눈을 감는다.
" 이 손으로 날 죽여달라고 했던 것도 들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 짓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안그래? , 하며 탄야가 다시 무기력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그 은청색 시선만큼은 날카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웃으며 눈을 빛내는 너의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카리나는 거칠게 와인잔을 들어선 남아있던 와인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곤 헤실헤실 풀려있던 탄야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네 뺨을 다시 움켜쥔다. 그리곤 터져나오는 높은 고음의 목소리. 주변에서 잠시 시선이 쏠린 듯 했지만 그런 것엔 아랑것하지 않고 카리나는 달콤한 와인향을 네게 뱉어내며 말을 이어간다.
" 아무것도 안 하고 내 손에 뒤지는 꼴은 진짜 머저리 같은거고! "
날카로운 카리나의 눈에선 지난날 뒷골목에서 보았던 사나운 늑대처럼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죽여달라고 말하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하기 그지 없는, 배가 부르다 못 해 터져서 꼴사나운 줄도 모르고 죽여달라는 탄야의 그 모습은 밑바닥에서 추하게 기어올라온 카리나에겐 어처구니가 없다 못 해 건방진 말이었으니까.
" 대신에, 어?! 니가 안 해보던 일 하다가 뒤지는건 봐준다니까?! 나도 같이 뒤질지도 모르니까 함께 해주겠다고. 어차피 난 내가 뒤질 일은 내가 정할거니까. "
씩씩대며 거칠게 말을 내뱉은 카리나는 네 옆에 내려놓은 와인병을 집어들곤 다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우곤 거칠게 들이킨다. 붉은 빛의 와인이 카리나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주르륵 흘러내려 새하얀 탱크톱을 적신다. 크흐, 하는 소리를 낸 카리나는 숨을 몰아쉬더니 한층 몽롱해진 눈으로 고혹적으로 웃어보이며 탄야의 입술을 쉿! 하는 제스처를 하듯 꾹 눌러주며 속삭인다.
" 죽여주진 않아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는 건 외롭지 않게 같이 해주겠다고, 멍청아. "
갑작스럽게 커진 목소리에도 시끄러, 라던가 뺨을 다시 움켜쥐는 행동에도 아파, 라던가 하는 말은 탄야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빛이 반사되는 특유의 은청색 시선을 굴려서 주변에서 던져오는 시선을 받아쳤다. 뭐, 어쩌라고. 위협적이지 않은 그의 시선에 집중됐었던 시선들이 흩어졌다. 그의 이름에 붙어있는 '하멜'이라는 성이 가지고 있는 위력의 결과물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탄야는 눈살을 구겨내며 당신을 마주한다.
" 이봐 주정뱅이. "
와인향과 바닐라향이 섞여서 머리가 아팠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당신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머리가 아파왔다. 당신에 대한 평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이닥친 무례한 불청객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게 무의미해진 존재에게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에 겨운 일인지. 뺨에 올려진 당신의 손을 떼어내는 탄야의 행동은 방금 보였던 수용적인 태도와 다르게 냉정하고 내뱉는 말또한 차갑기 그지 없었다.
"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찾을 용기가 있을 것 같아? 재밌네.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이미 죽어버렸을걸. 몇번이나 반복하게 하지마. "
냉정하고 차갑게 얼어붙어있던 목소리는 말을 이어갈수록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에 그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어지고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언뜻 무표정한 얼굴에 탈력감과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탄야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당신을 상대하는 걸 버거워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대화의 흐름을 이런 쪽으로 잡으려하지 않았다.
"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어. 내가 바라는 걸 이뤄주지 않을거라면 내버려두라고. "
무감하지만 날카로운 은청색 시선이 당신에게 내리꽂히고 탄야는 당신의 손을 붙잡아서 떼어냈다.
잡담겸 썰풀거나 남겨둘까. 10대시절이라던가? 아포칼립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일테니까..탄야는 그렇네. 모범생은 아닌데 교칙이 허락되는 선 안쪽에서 할건 다했을 것 같지. 놀랍게도 그 시절에는 지금의 삶의 의지가 1그램도 없는 모습은 안보였을거야. 부티가 안날수는 없었겠지만 같은 대형 맹수과 수인들 사이에서는 은근하게 열성이라는 이유로 따돌림? 괴롭힘? 그런게 있었겠지만 이 설표는 굴하지 않고 신경도 안썼을테지. 지금보다 좀 짧은 머리, 조금 더 작은 체구? 체형? 키는 비슷할 것 같네. 서양에서 자주보이는 유서깊은 명문고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을 것 같은데 명문고도 괜찮겠다.
날카로운 시선과 자신을 떼어내는 네 행동에 콧방귀를 낀 카리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날카로운 눈으로 탄야를 바라본다. 술기운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흔들림이 없는 시선이었다.
" 바보 천치처럼 다 알면서도 맨날 나 찾아오는 건 언젠가 한번은 내 손을 잡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잖아? "
피차 다 알고 있는거 아니냐는 듯한 말투로 피식 웃어보인 카리나는 아무렇게나 거칠게 자켓을 집어들고 일어선다. 비틀거리는 것이 달콤한 와인에 더 잔뜩 취한 모양새였다. 비틀비틀, 일어선 여자는 목이 마른 듯 빈잔을 내려다보다 헛웃음을 지어보이곤 돌아선다. 한걸음 한걸음 휘청거리며 입구로 걸어가던 여자는 덜아선다.
" 또 나한테 찾아올거야 넌. 그리고 또 이렇게 내가 물어봐주길 바라겠지. "
언제까지 그럴지 궁금하다는 듯 비웃듯 말한 여자는 비틀거리며 바를 나선다. 그때 다른 테이블의 수인 하나가 비틀거리며 나가는 카리나의 뒷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일어서는 것이 보였을지도.
아니다, 라고 부정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건 당신의 말이 정답이기 때문일거다. 대착점에 놓여있는 성격만큼이나 대착점에 놓여있는 시선을 마주보다가 탄야는 목안으로 집어삼키는 탄식을 내뱉어냈다. 그의 얼굴에 그늘져서 짙게 머물러있던 피곤하고 지친 안색이 증발했다. 그에게 당신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불청객이라고 생각하는 주제에,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당신이 내미는 손을 잡을 용기도 없다. 차라리 내미는 당신의 손을 잡아서 내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트릴까.
당신의 말과 행동에도 탄야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는 당신의 시선에 비친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나. 바 입구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탄야가 막혔던 숨을 힘겹게 토해냈다. 꾸욱 - 와인잔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 걸 눈치채고 그가 힘을 풀어냈다. 그래, 당신의 말이 맞다. 나는 또 당신을 찾을테지. 언젠가는 당신처럼 나에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희미한 생각을 하면서. 탄야는 무기력하게 웃음을 내뱉다가 뒤를 따라가는 수인의 모습을 보고 잠시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 하멜님. " "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와서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는 마스터의 음색에 탄야가 읊조리듯 힘없이 중얼거린다. 무기력하게 고개를 젖히고 있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겉옷을 어깨에 걸치며 " 내 이름에 달아둬. " ,하는 말을 남기고 바를 나섰다. 당신이 나간 뒤로부터 약 십여분쯤 흘러서 거리에 나온 탄야는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향해 은청색 시선을 움직였다.
>>136 생각해보니 카리나는 뒷골목 출신이었다. 10대때는 아예 접점이 없었겠구나. 지금 만난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다행인 점은 카리나가 지금은 위험하지 않다는 거고 불행인 점은 카리나가 지금보다 조금 더 상냥한 느낌의 탄야를 볼 수 없다는 점이네😶 그래서 카리나...글 읽는 건 괜찮니? 기본 의무교육은 받았다고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