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탄야가 간다고 생각하지? 카리나가 오는쪽이 더 어울리잖아. 농담이지만.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탄야네 어서오십쇼() 탄야는 안먹겠지만😒 친해진건지 아닌건지 모르는 애매하고 묘한 관계일테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거라서 오늘 일상 끊어뒀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오늘도 죽지 않았구나. 시야에 들어오는 익숙한 천장.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독한 바닐라 향에 탄야는 탄식한다. 스스로 목을 눌러 숨을 끊어놓을 용기도 없는 주제에 매일 죽기를 바라는 건 어느시점부터 시작됐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죽은 것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을 밟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며 은청색 시선이 먼 어딘가를 짚었다. 그러다가 탄야는 문득 무력한 미소를 희미하게 짓고는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내일은 눈뜨지 않기를 바란다. 단지 그 뿐이다. 무미건조한 방안에 탄야의 탄식과 같은 혼잣말이 흘렀다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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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가 느껴지는 공기 중에 숨을 희미하게 뱉어냈다. 혼란하고 혼탁한, 망자들이 건너는 저승의 강이름이 붙은 도시의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가는 그의 걸음이 익숙했다. 2년쯤 되어가는 시간동안, 아니 그보다 더 전부터 이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익숙한 건 당연하다.탄야는 이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뒷골목을 직접, 그것도 혼자 찾아왔는지 이야기하자면 그는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뒷골목의 벽을 메우고 있는 조잡한 낙서에 관심을 둔 이후로는 제법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편이었다.
기존에 있던 낙서를 덮어버린 새로운 낙서 앞에서 발을 멈추고 탄야는 바닐라 향이 물씬 맡아지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혔다.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이 골목길을 메우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깨에 걸쳐둔 퍽 길이가 긴 자켓 아래에서 일반 수인들보다 털이 빽빽하고 그 길이가 긴 꼬리의 뭉툭한 끄트머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뒷골목도 누군가가 살아가는 곳인 만큼, 상점가랑 비슷한 곳이 존재한다. 물론 그 물건들의 질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카리나는 언제나 이곳에 들리곤 했다. 그건 손에 들려있는 자그마한 종이 갑 때문이었다. 뒷골목 어딘가에서 직접 만드는 독하디 독한 담배. 그녀는 이 독한 담배가 좋았다. 물론 건방지게 요즘 담배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한게 마음이 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종이를 아무렇게나 뜯어 그 안에 든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려던 카리나는 코 끝에 풍겨오는, 뒷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닐라 향에 미간을 찌푸린다. 뒷골목에서 이런 고급스런 담배를 피는 족속은 없었다. 자기가 필 바에야 팔아서 몇끼라도 더 먹고 싶어 하는 편이니까. 그럼 이걸 피고 있을 사람은 한명 뿐이었다.
" 이씨, 연락하고 오랬잖아. "
역시나 담배를 물고 긴 자켓을 걸친 설표 수인이 서있는 것을 발견한 여자는 꺼냈던 담배를 한 손에 쥔 체 성큼성큼, 그렇지만 발소리를 죽여서 다가간다. 그리곤 그대로 잽싸게 네 목 앞쪽에 팔을 가져가 밀어선 벽으로 밀어붙이곤 속삭이듯 말한다. 미간을 찌푸린 체, 서로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고개를 가까이 한 체 말한 카리나는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 어서와. 오늘은 예쁘게 하고 왔다? "
방금 전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여유로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 카리나였다. 자연스레 벽으로 널 밀어붙인 팔은 떼어내지 않았지만.
미동도 없이, 숨소리를 한껏 가라앉힌 채로 벽의 낙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시선이 굴렀다. 종족 - 그러니까 수인이라는 특징이 있기에 그는 귀가 좋았다. 하지만 귀가 좋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건 매사에 무관심하고 스스로에게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성격 때문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뒤에서 접근한 당신이 조잡하고 조약한 낙서가 남아있는 벽으로 떠밀었지만 탄야의 낯에는 반응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 자의식이 지나치네. 볼때마다 생각하지만.. "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에 밀짚을 태우는 매캐할 뿐인 냄새가 섞여든다.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쥐면서 탄야는 지척까지 가까이 다가붙은 당신의 턱 끝에 비어있는 손을 가져다댔다. 엄지와 검지가 턱 끝을 스치면 대형 고양잇과 수인이라는 특성과 달리 낮은 체온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기색이 느껴지는 낯과 다르게 행동거지에 나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가 드러났다. 스치듯 가져다댔던 그 손끝이 당신의 턱을 쥐어 조금 들어올려서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게 하는 것도 잠시 탄야는 당신에게 피워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 좀 떨어져. "
여전히 턱을 쥐고 있는 손으로 그가 당신의 고개를 밀어내서 가깝던 거리를 벌려내고는 뒷골목의 가로등 아래에서 가늘게 은청색 시선을 접으며 탄야는 그렇게 말을 뱉었다.
이 도시에서 탄야를 건드릴 간 큰 인간이 있을까 싶긴 했지만. 세상엔 언제나 상상 밖의 사람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카리나는 우연으로 이어진, 몇 안되는 자신의 지인에게 경고을 던진다. 매번 하는 말이라서, 어차피 안 들을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인사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바닐라향이 남아있는 제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리곤 그녀 여기 담배를 문다.
"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려고 여기까지 왔어? "
오늘 밤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귀한 집 따님의 길잡이라도 되어줄 모양이었다. 카리나를 아는 뒷골목 사람이라면 대부분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느끼겠지만. 물론 요즘은 밤마다 둘이 돌아다니는 것이 어느정도 눈에 띄여서 아는 사람은 아는 모습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간의 카리나를 아는 이라면 이런 친절도 베풀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을만한 말이긴 했다.
" 길잡이 비용은 술 한잔으로 싸게 해줄게. "
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유 없는 친절함이란 경계심마저 생기게 하는 법이었으니. 차라리 이런 모습이.나은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는 은청색 시선에 이채가 감돌았다. 권태롭고 차분해서 변화가 없던 그의 얼굴이 잠시나마 변화가 드러난다. 당신의 입에서 흘러내린 ' 조심하라. '는 경고가 그 변화를 이끌어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一 위험해지는 게 내가 바라는 바야. "
천천히 , 씹어내듯 말을 뱉어내는 탄야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나직한 톤이었다. 망자가 건너는 강의 이름이 붙어있는 혼란한 이 도시에서 자신을 건드리고자 하는 이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누군가가 자신의 숨을 끊어주길 바라는 지독한 열망과 집착은 숨기지 않았다. 그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열망과 집착, 염원같은 감정들이 희미하게 번져있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해졌다.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과 함께 멀찍이 어딘가를 응시하던 은청색 시선이 인공적인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빛을 냈다.
" 글쎄. "
당신의 물음에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온기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바스라지는 숨과 바스라지는 연기가 탄야와 당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처럼 퍼져나간다. 술, 술인가. 뒷골목에서 파는 술이 어느 수준인지 탄야가 모를 리 없었다. 도시를 뒤집고 피비린내와 화약 내음이 진동하던 영역 싸움이 있었을 때도 , 패권 다툼이 끝났을 때도 이 뒷골목은 그대로였다. 삶에 대한 집착, 생존에 대한 열망. 서로의 것을 빼앗고 약탈하며 숨을 이어가는 자들이 모인 곳.
" 여기는 사람 냄새가 나서 별로야. "
문득 속이 메슥거렸다. 뒷골목은 삶의 의지가 없는 자신이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었다. 탄야는 바닥에 담배를 떨어트리며 당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중얼였다. 겨울의 차가운 밤바람에 잠시 머리카락과 바닥으로 늘어져 있던 꼬리 끄트머리가 가볍게 튀어오르는 것처럼 좌우로 까딱인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여태까지 변함없는 탄야의 태도에, 카리나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가질 것은 다 가져서 더이상 미련이 없는건가 싶은 그 모습도 이젠 놀랍지 않았다. 설득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긴 했다. 애초에 자신의 말솜씨가 이런 초연한 부잣집 아가씨를 설득할 정도가 아니리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만다. 아니, 오히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죽여달라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니까.
" 진짜 웃긴 아가씨라니까. 그래그래, 갑시다~ "
제발로 걸어와선 별로라고 말하는 탄야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키득거린다. 뭔가 처음 만나고 얼마 안된 때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이 났는데,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냥 우스울 따름이었다. 확실히 뒷골목에선 볼 수 없는 인간이라서 그런건지, 요즘은 좀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이 귀한 아가씨가 뭔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나 따라다니게 된 것이었다.
"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오후 일찍 저 멀리 옆도시에서 사람들이 왔다더라. 너도 알고 있었어? "
세상은 꽤나 척박해진지 오래였다. 그래서 모여 사는 곳 이외의 사람을 보는 일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탄야의 곁에서 에스코트를 하듯 서선, 상체만 네 쪽으로 돌린 체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카리나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경우는 탄야를 만나는 날 정도였다는 걸, 탄야는 알지 모르겠지만.
탄야는 은청색 시선을 느리게 깜빡이면서 당신을 가만히 응시했을 뿐 ,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건지 대답할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둘다인지. 몇분이 지났을까 - 움찔거리지도 않던 그의 입술이 작게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짧은 웃음을 흘려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무력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힘없는 웃음은 짧고 흐렸다. 두번째 담배를 물면서 쉽게 감춰버릴 수 있을 정도로.
" 너 - .. "
웃긴 아가씨라는 말이 들려왔을 때 , 걸음을 옮기며 물어낸 담배에 불을 붙히던 그의 걸음이 문득 멈춘다. 곧이어 당신을 향해 돌아선 그가 거리를 좁혀서 가까이 다가섰다. 분명 ' 아가씨 '라는 호칭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 무시하기 힘든 현실이었으나 탄야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최소한의 살고자하는 의지조차 길바닥에 내던져버렸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그렇기에 탄야는 자신을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거리를 좁히자마자 " 카리나. " , 하며 그는 당신과 만난 이래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 난 아가씨라는 호칭이 싫어. 물론 , 내가 아가씨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불리면 살아야한다고 강요받는 기분이거든. "
궤변이다. 무표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뱉어내는 온기없는 말을 하며 탄야는 다시 무력하게 웃었다. 스스로에게 역겨울 따름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낼 용기도 없는 주제에. 말이 끝나고 탄야가 다시 몸을 돌려서 골목길을 거슬러올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슬럼가와 비슷한 골목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 이야기만 좀 들었어. 내가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형제들이 날 너무 아끼다보니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할것 같아. "
달디단 바닐라향을 짙게 두른 채 탄야는 자조하듯 말을 하고는 재차 걸음을 옮겼다. 아낀다- 라는 단어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신이 그 방문자들과 마주했을 때 발생할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뜻과 같았다.
카리나의 입에선 묘한 기분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평상시에도 늘 초연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 탄야였지만, 이럴 때면 정말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았으니까무어라 말해야할까. 카리나는 혀로 입천장을 두드리며 고민을 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자연스레 너와 어깨동무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 와인좋지. 탄야, 너랑 마시는거 아니면 난 마실 일도 없는 술인데. "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을 돌려준다. 뭐, 특별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테니까.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따윈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그녀석들이 누구던지 카리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탄야에게도 딱히 연관이 없다면 정말로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지금은 아주 조금 더 처진 탄야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 정도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크흐,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랑 재미없는 이야기 할 바에 나랑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그나마 낫지 않나? "
쓸데 없는 자신감까지 부려가며 탄야의 귓가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게 한다. 이 꺼질듯한 촛불 같은 여자를 붙잡아 두려면 그런 방법 밖에 없는 것처럼. 꽤나 카리나 치곤 정성스러운 행동이었다. 그건 두사람이 탄야가 오고자 했던 바 앞에 멈춰서고 나서야 끝났다.
" 자, 얼른 나 데리고 들어가. 나 혼자 들어왔으면 문전박대 당할 것만 같은 곳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