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모바일이라서 확인텀이 있기 때문에 앵커는 안달고 레스 확인하는 족족 레스 작성하기 때문에 레스낭비할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할게. 대략적으로 크게 배경과 세계관 짜고 시트 작성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급한 감이 있지만 나머지는 찬찬히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너참치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하다는 점도 크지만.
음. 큰 세계관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너무 크게 잡진 말고 어느정도로만 해서 잘 이끌고 간다 싶으면 넓히고 그런건 어떨까? 20대 안에서 나이차가 있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동갑도 좋을 것 같기도 해. 응, 그렇게 하자. 대강 잡은 다음 시트 짜고 맞춰가기.
같은 생각했네. 좋아 나는 대충 이정도로 해두고 나머지는 너참치 말대로 진행하다가 필요하다싶으면 넓히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배경이 되는 도시에 높은 탑이 중심에 있다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도시 이름도 적당히 정해볼까,이제? 그리고 >>4 에 대략적인 배경 써봤는데 너참치는 어떠니? 괜찮니? 저 배경이면 내캐릭이저 조직화된 가문 중 한 곳 출신이 될 것 같거든.
색조합은 뭐든 좋아하지만 나이에 비해 앳된외형 지나친 단신은 싫어해. 아무리 작더라도 160cm는 넘겼으면 좋겠다. 성격쪽은, 음. 설명하기 힘든데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편을 좋아해. 지나친 의존증이나 너무 상대에게 맞춰주는 성격, 배경이 배경이지만 불행서사가 심한 건 좋아하지 않네. 필요에 의한 서사라면 어쩔 수 없지만.
성격 :: 동배에서 태어난 형제들과 다르게 조용하고 침착하며 무뚝뚝하게 태어났다.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그 위에 권태로운 분위기가 덧씌워진 타입. 게다가 감정기복이 적기까지 하니 총체적 난국이기는 한데 이게 또 대화를 아예 거부하는 건 아니다보니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 힘들다. 입 밖으로 뱉어내는 언어가 다정하지는 않아도 공격적이거나 난폭하지 않았다. 표현하자면 뿌리부터 말라비틀어져 있는 주제에 멀쩡한 척 서있는 나무 같은 성격. 도시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 하다못해 지금 쥐고 있는 부귀영화에도 무관심하다 못해 시니컬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성격은 여전히 난폭하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은 부분만 그대로일 뿐, 그외의 것들은 반대이니 아이러니할 수 밖에. 다정하고 상냥해 보이는 행동을 한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드물게 보이고는 하는데 그런 행등을 해보일 때마다 무기력하게 웃기 일쑤였다. 마치 그런 행동을 하기 위해서 말라비틀어진 모든 감성을 박박 긁어냈다는 것처럼.
외형 :: 새하얀 백색이라고 생각했더니 햇볕이나 인공적인 빛 아래에서 볼때면 은은하게 은색을 띄는 머리카락은 은백색에 가깝다. 그 길이는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게 날개뼈 위치까지 길러있으며 특징이라면 자연스럽게 눈썹을 살짝 덮는 정도로 정리해놓은 앞머리 부분에 검은색이 섞여있는 정도로 그 외에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없는 편. 머리 위 - 적당한 위치에 솟아있는 눈표범 특유의 얼룩무늬가 박힌 둥그스름한 귀가 한쌍, 허리 부근에서 뻗어진 끝이 뭉툭한 꼬리가 눈표범 수인이라는 걸 명확히 알려줬다. 아슬아슬하게 170대 중반에 걸쳐지는 키에 걸맞게 팔다리가 길고 몸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잔근육이 골고루 자리잡아 보기좋게 얇고 가느다란 체형은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상적이지만 형제들은 물론 비슷한 대형 고양잇과 수인들이 볼 때는 열성으로 보이는 정도. 표정변화가 적지만 한번씩 웃을 때는 꼭 무력한 사람처럼 짧게 웃는 꼴이나 대형 고앙잇과가 가지는 가늘고 좁은 동공이 특징적인 은청색 눈동자가 상대를 볼 때면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봤자 성격을 경험하면 그런 분위기는 두번 느끼기 힘들테지만. 생각보다 순해보이는 눈매가 다른 대형 고양잇과 수인들과는 대조적이라 여러모로 독특한 느낌도 주고 있다. 절제나 금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나른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인상에 걸맞게 옷차림도 그런 편. 어깨에 걸친 수트 자켓, 크롭티에 하이웨스트 슬랙스 팬츠나 오프숄더에 숏팬츠, 파카를 걸치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기타 :: ≠ 하멜家 아포칼립스 사태가 터지기 전 , 도시 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명문 집안이었고 아포칼립스 사태가 수습이 됐으나 무정부 상태에 놓인 현재에도 그 명맥을 이어가는 가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중. 무기밀매를 주로 하고 있으며 그 외 도시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가문들과 지금은 철저하게 비즈니스를 통해 사업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포칼립스 사태가 터지고 정부가 무너졌을 때 , 가장 먼저 영역 싸움을 선포했던 가문이며 그 중심에는 열성으로 태어난 탄야 하멜, 그가 있었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의 그를 보면 영 매치가 안될지도 모른다. ≠ 오빠가 하나, 아래로는 연년생 여동생이 있는데 원래는 형제가 더 많았다고 한다. 아포칼립스 사태가 발발하기 전부터 아포칼립스 사태 발발 후 영역 싸움에서 형제들이 사망하고 지금은 셋만 남은 상태. 눈표범 수인이라는 특징이 있다보니 오빠나 여동생 모두 상당한 체격에 근육질. 덕분에 둘 사이에 그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착시가 있다. ≠ 정부가 무너지고 범죄와 폭력이 판치는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금욕적이다. 취미같은 것도 마땅히 없다보니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수준. 그나마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향을 풍기는 담배를 태우고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게 취미라면 취미. ≠ 대체로 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둔다. 이름없는 예술가들의 조잡한 그림, 더러운 뒷골목의 벽에 칠해진 낙서 , 가사 없는 멜로디 등등. 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그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느순간 진흙발로 비집고 들어온 불청객일지도 모른다. ≠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죽기를 바라고 있다. 병적일만큼 삶의 의지가 옅은 상태로 스스로 숨을 놓을 용기는 없으니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 신체적인 특징으로는 캐릭 시점으로 왼쪽 귀가 찢어져 있고 오른쪽 귀에 링 피어싱 두개, 오프숄더를 입을 때 드러나는 어깨와 등을 뒤덮는 문신이 있다.
#대략적인 것들이 잡혀있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빨리 써졌길래 올려놓을게. 픽크루 찾는 건 나중으로 미룰래...
" 내 뜻대로 태어나진 못 했지. 근데, 죽는 건 내 뜻대로 할거야. 살던 죽던 그건 내 선택이야. "
이름 - 카리나 나이 - 25 종족 - 인간
성격 :: 권력도, 돈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밑바닥에서 살아남는 존재들은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제 처지가 비루하더라도 삶을 놓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는 악바리들. 카리나 역시 마찬가지로 악바리 근성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다.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때에도 제 뜻을 굽히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여왔다. 그래서 어지간한 뒷골목의 인간들은 그런 카리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카리나보다 강한 사람도 많지만, 카리나를 건드려봐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으니까. 다만 거친 면모 속에도 정을 한번 주게 되려면 아끼는 따뜻한 면도 가지고 있다. 맘을 잘 주지 않는 것뿐이지, 이따금 자주 보는 동물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을 정도.
외형 :: 잘 꾸며진 것과는 거리가 먼 거친 머릿결의 흑색 장발을 하고 하고 있다. 이따금 거슬릴 때면 제 손으로 아무렇게나 손을 봐서 그런지 머리카락 끝이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오뚝한 콧대와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 루비같이 빛나는 눈동자를 품은 날카로운 눈은 그녀가 꽤나 미인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물론 평상시엔 살짝 찌푸리고 있는 미간과, 오른쪽 눈 아래에 칼에 베여 생긴 흉터 하나가 그녀의 외모를 날카롭게 만들어서 사나운 들개처럼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키는 168cm의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다. 몸은 거친 뒷골목 생활로 다져진 근육들이 나름 보기 좋은 모양으로 박혀있었다. 피부는 약간 구릿빛을 띄고 있지만 타고난 것이 구릿빛인 건 아닌 듯했고 오랜 바깥 생활 탓인 듯했다. 옷은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은 복부까지만 오는 닳은 검은색 가죽 재킷, 그리고 회색빛 탱크톱, 짧은 청팬츠를 입고 다닌다. 입가에는 늘 뒷골목산 담배를 물고 있다.
기타 :: ≠ 뒷골목 아포칼립스가 터지든 말든 뒷골목은 언제나 1분 1초가 생과 사의 갈림길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아포칼립스가 터지자 싸워야 할 대상이 좀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 속에서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물어 뜯으며 살아갔다. 명문 집안들에 의해 어느정도 도시에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지만, 뒷골목은 언제나와 같았다. 그 누구도 이런 시궁창을 건드릴 생각 따윈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런 시궁창에도 인간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 가족 따위는 없었다. 어머니를 봤던 기억이 얼핏 있긴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 역시 시궁창 같은 뒷골목의 규칙 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늘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살아왔다. 어쩌면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정을 바라고 있을지도. ≠ 지독한 골초다. 명문 집안들 같은 곳에서 피는 고급 진 담배가 아닌, 뒷골목에서 조악하게 만들어진 독하디 독한 담배만 피운다. 다만 그와 별개로 술은 상당히 약해서 한번 제대로 취해서 죽을 뻔한 후엔 믿을만한 상대가 아니라면 술은 입에 잘 대지 않는다. ≠ 고민하기보단 움직이는 쪽을 좋아한다. 애초에 자신은 머리가 그리 좋지 않으니 고민할 시간에 움직여서 기회를 만드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 ≠ 그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태어나길 제 뜻대로 태어나질 못 했으니, 자신이 죽고 싶단 마음이 들기 전까진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몸 곳곳엔 지독했던 뒷골목의 삶을 보여주듯 흉터가 가득하다. 그래도 본판이 예쁜 몸이라 그런지 흉터가 그 매력을 감추지는 못한다.
왜 탄야가 간다고 생각하지? 카리나가 오는쪽이 더 어울리잖아. 농담이지만.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탄야네 어서오십쇼() 탄야는 안먹겠지만😒 친해진건지 아닌건지 모르는 애매하고 묘한 관계일테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거라서 오늘 일상 끊어뒀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오늘도 죽지 않았구나. 시야에 들어오는 익숙한 천장.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독한 바닐라 향에 탄야는 탄식한다. 스스로 목을 눌러 숨을 끊어놓을 용기도 없는 주제에 매일 죽기를 바라는 건 어느시점부터 시작됐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죽은 것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을 밟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며 은청색 시선이 먼 어딘가를 짚었다. 그러다가 탄야는 문득 무력한 미소를 희미하게 짓고는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내일은 눈뜨지 않기를 바란다. 단지 그 뿐이다. 무미건조한 방안에 탄야의 탄식과 같은 혼잣말이 흘렀다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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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가 느껴지는 공기 중에 숨을 희미하게 뱉어냈다. 혼란하고 혼탁한, 망자들이 건너는 저승의 강이름이 붙은 도시의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가는 그의 걸음이 익숙했다. 2년쯤 되어가는 시간동안, 아니 그보다 더 전부터 이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익숙한 건 당연하다.탄야는 이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뒷골목을 직접, 그것도 혼자 찾아왔는지 이야기하자면 그는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뒷골목의 벽을 메우고 있는 조잡한 낙서에 관심을 둔 이후로는 제법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편이었다.
기존에 있던 낙서를 덮어버린 새로운 낙서 앞에서 발을 멈추고 탄야는 바닐라 향이 물씬 맡아지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혔다.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이 골목길을 메우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깨에 걸쳐둔 퍽 길이가 긴 자켓 아래에서 일반 수인들보다 털이 빽빽하고 그 길이가 긴 꼬리의 뭉툭한 끄트머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뒷골목도 누군가가 살아가는 곳인 만큼, 상점가랑 비슷한 곳이 존재한다. 물론 그 물건들의 질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카리나는 언제나 이곳에 들리곤 했다. 그건 손에 들려있는 자그마한 종이 갑 때문이었다. 뒷골목 어딘가에서 직접 만드는 독하디 독한 담배. 그녀는 이 독한 담배가 좋았다. 물론 건방지게 요즘 담배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한게 마음이 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종이를 아무렇게나 뜯어 그 안에 든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려던 카리나는 코 끝에 풍겨오는, 뒷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닐라 향에 미간을 찌푸린다. 뒷골목에서 이런 고급스런 담배를 피는 족속은 없었다. 자기가 필 바에야 팔아서 몇끼라도 더 먹고 싶어 하는 편이니까. 그럼 이걸 피고 있을 사람은 한명 뿐이었다.
" 이씨, 연락하고 오랬잖아. "
역시나 담배를 물고 긴 자켓을 걸친 설표 수인이 서있는 것을 발견한 여자는 꺼냈던 담배를 한 손에 쥔 체 성큼성큼, 그렇지만 발소리를 죽여서 다가간다. 그리곤 그대로 잽싸게 네 목 앞쪽에 팔을 가져가 밀어선 벽으로 밀어붙이곤 속삭이듯 말한다. 미간을 찌푸린 체, 서로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고개를 가까이 한 체 말한 카리나는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 어서와. 오늘은 예쁘게 하고 왔다? "
방금 전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여유로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 카리나였다. 자연스레 벽으로 널 밀어붙인 팔은 떼어내지 않았지만.
미동도 없이, 숨소리를 한껏 가라앉힌 채로 벽의 낙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시선이 굴렀다. 종족 - 그러니까 수인이라는 특징이 있기에 그는 귀가 좋았다. 하지만 귀가 좋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건 매사에 무관심하고 스스로에게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성격 때문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뒤에서 접근한 당신이 조잡하고 조약한 낙서가 남아있는 벽으로 떠밀었지만 탄야의 낯에는 반응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 자의식이 지나치네. 볼때마다 생각하지만.. "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에 밀짚을 태우는 매캐할 뿐인 냄새가 섞여든다.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쥐면서 탄야는 지척까지 가까이 다가붙은 당신의 턱 끝에 비어있는 손을 가져다댔다. 엄지와 검지가 턱 끝을 스치면 대형 고양잇과 수인이라는 특성과 달리 낮은 체온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기색이 느껴지는 낯과 다르게 행동거지에 나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가 드러났다. 스치듯 가져다댔던 그 손끝이 당신의 턱을 쥐어 조금 들어올려서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게 하는 것도 잠시 탄야는 당신에게 피워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 좀 떨어져. "
여전히 턱을 쥐고 있는 손으로 그가 당신의 고개를 밀어내서 가깝던 거리를 벌려내고는 뒷골목의 가로등 아래에서 가늘게 은청색 시선을 접으며 탄야는 그렇게 말을 뱉었다.
이 도시에서 탄야를 건드릴 간 큰 인간이 있을까 싶긴 했지만. 세상엔 언제나 상상 밖의 사람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카리나는 우연으로 이어진, 몇 안되는 자신의 지인에게 경고을 던진다. 매번 하는 말이라서, 어차피 안 들을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인사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바닐라향이 남아있는 제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리곤 그녀 여기 담배를 문다.
"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려고 여기까지 왔어? "
오늘 밤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귀한 집 따님의 길잡이라도 되어줄 모양이었다. 카리나를 아는 뒷골목 사람이라면 대부분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느끼겠지만. 물론 요즘은 밤마다 둘이 돌아다니는 것이 어느정도 눈에 띄여서 아는 사람은 아는 모습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간의 카리나를 아는 이라면 이런 친절도 베풀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을만한 말이긴 했다.
" 길잡이 비용은 술 한잔으로 싸게 해줄게. "
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유 없는 친절함이란 경계심마저 생기게 하는 법이었으니. 차라리 이런 모습이.나은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는 은청색 시선에 이채가 감돌았다. 권태롭고 차분해서 변화가 없던 그의 얼굴이 잠시나마 변화가 드러난다. 당신의 입에서 흘러내린 ' 조심하라. '는 경고가 그 변화를 이끌어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一 위험해지는 게 내가 바라는 바야. "
천천히 , 씹어내듯 말을 뱉어내는 탄야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나직한 톤이었다. 망자가 건너는 강의 이름이 붙어있는 혼란한 이 도시에서 자신을 건드리고자 하는 이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누군가가 자신의 숨을 끊어주길 바라는 지독한 열망과 집착은 숨기지 않았다. 그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열망과 집착, 염원같은 감정들이 희미하게 번져있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해졌다.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 향과 함께 멀찍이 어딘가를 응시하던 은청색 시선이 인공적인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빛을 냈다.
" 글쎄. "
당신의 물음에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온기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바스라지는 숨과 바스라지는 연기가 탄야와 당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처럼 퍼져나간다. 술, 술인가. 뒷골목에서 파는 술이 어느 수준인지 탄야가 모를 리 없었다. 도시를 뒤집고 피비린내와 화약 내음이 진동하던 영역 싸움이 있었을 때도 , 패권 다툼이 끝났을 때도 이 뒷골목은 그대로였다. 삶에 대한 집착, 생존에 대한 열망. 서로의 것을 빼앗고 약탈하며 숨을 이어가는 자들이 모인 곳.
" 여기는 사람 냄새가 나서 별로야. "
문득 속이 메슥거렸다. 뒷골목은 삶의 의지가 없는 자신이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었다. 탄야는 바닥에 담배를 떨어트리며 당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중얼였다. 겨울의 차가운 밤바람에 잠시 머리카락과 바닥으로 늘어져 있던 꼬리 끄트머리가 가볍게 튀어오르는 것처럼 좌우로 까딱인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여태까지 변함없는 탄야의 태도에, 카리나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가질 것은 다 가져서 더이상 미련이 없는건가 싶은 그 모습도 이젠 놀랍지 않았다. 설득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긴 했다. 애초에 자신의 말솜씨가 이런 초연한 부잣집 아가씨를 설득할 정도가 아니리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만다. 아니, 오히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죽여달라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니까.
" 진짜 웃긴 아가씨라니까. 그래그래, 갑시다~ "
제발로 걸어와선 별로라고 말하는 탄야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키득거린다. 뭔가 처음 만나고 얼마 안된 때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이 났는데,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냥 우스울 따름이었다. 확실히 뒷골목에선 볼 수 없는 인간이라서 그런건지, 요즘은 좀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이 귀한 아가씨가 뭔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나 따라다니게 된 것이었다.
"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오후 일찍 저 멀리 옆도시에서 사람들이 왔다더라. 너도 알고 있었어? "
세상은 꽤나 척박해진지 오래였다. 그래서 모여 사는 곳 이외의 사람을 보는 일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탄야의 곁에서 에스코트를 하듯 서선, 상체만 네 쪽으로 돌린 체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카리나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경우는 탄야를 만나는 날 정도였다는 걸, 탄야는 알지 모르겠지만.
탄야는 은청색 시선을 느리게 깜빡이면서 당신을 가만히 응시했을 뿐 ,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건지 대답할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둘다인지. 몇분이 지났을까 - 움찔거리지도 않던 그의 입술이 작게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짧은 웃음을 흘려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무력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힘없는 웃음은 짧고 흐렸다. 두번째 담배를 물면서 쉽게 감춰버릴 수 있을 정도로.
" 너 - .. "
웃긴 아가씨라는 말이 들려왔을 때 , 걸음을 옮기며 물어낸 담배에 불을 붙히던 그의 걸음이 문득 멈춘다. 곧이어 당신을 향해 돌아선 그가 거리를 좁혀서 가까이 다가섰다. 분명 ' 아가씨 '라는 호칭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 무시하기 힘든 현실이었으나 탄야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최소한의 살고자하는 의지조차 길바닥에 내던져버렸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그렇기에 탄야는 자신을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거리를 좁히자마자 " 카리나. " , 하며 그는 당신과 만난 이래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 난 아가씨라는 호칭이 싫어. 물론 , 내가 아가씨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불리면 살아야한다고 강요받는 기분이거든. "
궤변이다. 무표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뱉어내는 온기없는 말을 하며 탄야는 다시 무력하게 웃었다. 스스로에게 역겨울 따름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낼 용기도 없는 주제에. 말이 끝나고 탄야가 다시 몸을 돌려서 골목길을 거슬러올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슬럼가와 비슷한 골목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 이야기만 좀 들었어. 내가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형제들이 날 너무 아끼다보니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할것 같아. "
달디단 바닐라향을 짙게 두른 채 탄야는 자조하듯 말을 하고는 재차 걸음을 옮겼다. 아낀다- 라는 단어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신이 그 방문자들과 마주했을 때 발생할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뜻과 같았다.
카리나의 입에선 묘한 기분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평상시에도 늘 초연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 탄야였지만, 이럴 때면 정말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았으니까무어라 말해야할까. 카리나는 혀로 입천장을 두드리며 고민을 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자연스레 너와 어깨동무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 와인좋지. 탄야, 너랑 마시는거 아니면 난 마실 일도 없는 술인데. "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을 돌려준다. 뭐, 특별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테니까.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따윈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그녀석들이 누구던지 카리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탄야에게도 딱히 연관이 없다면 정말로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지금은 아주 조금 더 처진 탄야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 정도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크흐,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랑 재미없는 이야기 할 바에 나랑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그나마 낫지 않나? "
쓸데 없는 자신감까지 부려가며 탄야의 귓가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게 한다. 이 꺼질듯한 촛불 같은 여자를 붙잡아 두려면 그런 방법 밖에 없는 것처럼. 꽤나 카리나 치곤 정성스러운 행동이었다. 그건 두사람이 탄야가 오고자 했던 바 앞에 멈춰서고 나서야 끝났다.
" 자, 얼른 나 데리고 들어가. 나 혼자 들어왔으면 문전박대 당할 것만 같은 곳이네. "
당신의 갑작스러운 어깨동무로 인해 , 탄야의 상체가 당신이 서있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구부러지고 멀디 먼 곳을 짚어내고 있던 시선이 문득 흔들린다. 아가씨라는 호칭을 반기지 않는 만큼 자신을 격없이 대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나 , 이렇게까지 친밀감있게 대할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판단이 안된다는 점은 그의 시선을 흔들리게 하기 충분했다.
" 돈은 썩을 정도로 남아나니까 얼마든지 뜯어먹도록 해. 나정도 되는 호구를 잡은 걸 자랑스러워해도 되고. 一 이런 행동은 너무 격없다고 생각하지만. "
탄야는 감정 기복이 없는 건조하고 권태로운 억양으로 말을 내뱉으면서 어깨에 둘러진 당신의 팔을 떼어내려 손을 올렸다가 멈췄을 것이다. 지척의 거리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숨에 둥그스름한 그의 귀가 움찔 흔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은청색 시선이 가늘어졌다. 왜 그렇게 붙잡아두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구는걸까. 너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 모르지.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쯤은 주지 않을까. "
당신의 팔을 떼어내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면서 남긴 말이었다. 당신과 그가 들어선 바의 내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훈훈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흑과 백을 자연스럽게 매치하여 모던하고 과하지 않은 엔틱한 장식품들로 포인트를 준 내부는 아포칼립스 사태에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보인다. 바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호랑이 수인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친절하게 미소를 띄며 반겼다.
" 크흐흐, 호구 잡을 생각은 없는데. 괜한 욕심 부리다간 뒤지기 좋다고. 난 그런거 안 해. "
개죽음은 사양이야. 탄야가 어깨에 두른 팔을 내리지 않자 태연하게 어깨동무를 유지한 체 웃어보인다. 탄야를 호구 잡는다니. 그런 짓을 카리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각자에겐 걸맞는 분수라는게 있는 법이었다. 카리나가 생각하기에 탄야와 이러고 있는 것이 분수를 적당히 넘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 그래도 와인은 좀 기대할지도.
" 이럴 땐 적당히 맞장구 치는거야, 깍쟁아. "
팔을 풀고 앞장서서 들어가는 네 뒤를 따라 들어가며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이렇게 다가가도 아예 밀어내지 않는 것도 친밀감이 조금이나마 올랐다는 증거란 생각에 미소가 가실 줄 몰랐다. 고급스런 바 안에 들어서자 마스터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두리번거리며 촌놈처럼 바 안을 구경한다. 호오, 헤에『 』하는 소리가 탄야의 귓가에 머무는 것이 한동안 이어진다.
" 탄야가 마시던거. 저사람은 흥미가 없는데. 네가 마시는 건 궁금하네. "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곤 장난스럽게 잔망스러운 윙크를 해보이며 대꾸한다. 오히려 마스터는 제 할일을 마치고 가주면 하는 눈치인 것이 단 둘이 있는 것이 편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카리나도 탄야와는 다른 의미로 비사교적인 여자였으니까.
"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 기대해도 되는거지? "
헤진 가죽자켓을 벗어 새하얀 탱크톱 차림이 된 카리나는 흉터 투성이 팔을 활짝 피며 기지개를 피곤 부드럽게 물음을 던진다.
매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랑스럽다는 건 부정하고 싶은데. 어딜 봐서? 카리나가 더 사랑스럽지. 카리나는 음...확신이 들면 밀어붙힐 느낌이야. 그래도 한다면 할 수 있단다. 힘내 카리나. 상대가 탄야라는 게 문제인가() 답레는 좀 천천히 쓸게. 이야기거리를 탄야가꺼낼 일이 없으니 아까 나왔던 방문자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고민 중이야.
쓰읍..카리나주의 취향은 대체..? 밀어붙히면서도 머뭇거리는 거 뭐야. 귀여운데. 빨리 보고 싶지만 지금의 데면데면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으니까 참겠어. 너무 관계 변화없이 질질 끌리는 것 같으면 말해줘. 사이가 좁혀질만한 계기를 만들어볼테니까🙏 내일도 평일이니 답레 핑퐁으로 보낼 수는 없고 잡담이나 할까.
탄야는 무감하게 중얼였다. 태연하게 웃어보이는 당신과는 반대로 그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음을 굳이 덧붙히지 않겠다.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때문에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이 도시가 이렇게 바뀌기 전부터 탄야는 이 세상이 순수한 호의로만 돌아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호구 잡아서 뜯어먹어도 좋다는 말을 한 것은 그럴싸한 말치레는 아니었지만서도.
" 너랑 비즈니스로 만났다면 모를까. 비즈니스없이 사적으로 만난 이상 그정도는 억울해도 감안해. "
깍쟁이라는 당신의 말에 바닥으로 늘어져있던 탄야의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 끄트머리가 짧게 떠오르며 좌우로 까딱여지고 탄야는 웃음기없는 목소리로 무던하게 당신에게 대꾸했다. 당신이 내부를 두리번거리면서 보이고 있는 반응에도 마스터는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은 상태였다. 탄야와 함께 온 이상 손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겉옷을 벗은 뒤 적당히 갈무리해서 팔에 걸치면서 탄야는 잠시 자신의 은백색 머리카락 중 검은 부분이 있는 앞머리쪽을 헤집듯 헝크러트리며 고민에 잠긴다.
자신이 마시는 거라고 해도 넘기기 쉬운 달달한 화이트 와인계열이었다. 물론 뒷골목에서 팔아대는 술의 종류나 맛이 어떤지 아예 모르는 상태로 자신이 즐기는 와인을 추천해도 좋을지 고민도 들었다. 당신의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윙크를 마주하고 탄야는 비스듬히 고개를 잠깐 틀어내는 정도로 반응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먼저 룸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가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당신에게 손짓해보인다. " 네 입맛을 내가 잘 몰라서.. " 하고 , 그는 말문을 텄다.
" 내 취향의 와인이여도 상관없다는 거지? 마스터. 항상 마시던 걸로. "
그의 말이 끝나자 마스터는 고개를 숙여보인 뒤 자리를 비켰다. 자리잡은 룸은 두사람이 앉기에는 조금 좁고 , 혼자 앉기에는 좁은 느낌의 테이블이 가운데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앉는다면 필연적으로 어깨와 어깨가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재떨이를 당기고 그는 자신의 담배를 눌러끄며 새 담배를 물었고 그와 동시에 나타난 마스터는 와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당신과 탄야의 잔에 와인을 채우고 와인병을 테이블에 둔 뒤 가볍게 곁들일 수 있는 스낵류까지 세팅해준 뒤 "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라는 인사를 끝으로 룸을 나섰을 것이다. 부르지 않는 이상 마스터는 굳이 룸으로 들어오지 않을테니 지금부터는 온전히 당신과 탄야만의 시간이었다. 작게 들리는 무명 작곡가의 선율, 간간히 조용한 목소리로 나누는 손님들의 대화, 말이 많지 않은 마스터까지. 정적인 것들로 가득한 바는 탄야의 취향에 알맞은 곳이기도 했다.
탄야의 무덤덤한 대답에도 그저 재밌다는 듯 거친 웃음소리를 흘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런 반응이 나쁘지 않은 카리나는 이젠 익숙해진 상태였다. 물론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거칠게 반응하기는 했었지만 아무튼 그런거였다. 두리번 두리번 가게 안을 구경하던 카리나는 머리를 헤집듯 헝클어트리곤 고민에 빠진 탄야에게로 시선을 돌려선 느긋하게 구경한다.
" 내가 와인 이름이라도 알 것 같아? 물어봐야 헛수고니까. "
태연ㅣ 내 손짓에 다가와 앉아 자켓을 벗어 드러낸 어깨를 탄야와 맞대곤 느긋한 목소리로 말한다.탄야가 담배를 꺼내는 모습에, 자신도 담배를 꺼낼까 하던 카리나는 가게의 분위기와 탄야가 그 향을 싫어한다는 것을 떠올리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그렇다고 탄야의 것을 빌려서 피는 것은 안 핀 것만 못 할 것 같았으니까. 한번인가 피워본 적 있었는데 간질거리게 만들기만 할 뿐 성에 차지 않았었다.
" 그래, 건배하자, 건배. "
고개를 돌리며 잔을 들어보인 카리나는 탄야와 고개를 마주 하고선 눈웃음을 살살 지어보인다. 거친 성격과는 다르게 썩 아름다운 눈웃음이었다. 뒷골목에서도 카리나의 이름이 꽤나 자주 들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미모였으니까. 뭐, 제정신인 사람은 카리나에게 함부로 말을 걸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놈은 이미 뒷골목에 묻힌지 오래였다.
" 뭐, 그래도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이런 부분은 또 너랑 맞는 모양이야. "
잔을 맞대고 맑은 소리를 낸 카리나는 와인을 한모금 머금곤 뜸을 들이다 삼킨다. 그리곤 옅은 와인향이 풍겨오는 숨을 내뱉으며 턱을 괴고 탄야를 응시한다.
그러게 , 하고 맞장구치려는 말은 삼켰다. 웃기지도 않는 첫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은 질기게도 계속됐다. 누군가 한명이 놓아버리면 끝날 인연이다. 태어난 곳도 , 자란 곳도 정반대인 사이였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그 손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인연인 당신을 탄야는 놓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겠는 마음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그에게 당신의 존재는 불청객임이 분명한데.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당신에게 탄야는 잠시간 시선을 두다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혔다. 말에 대꾸하지 않더라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 친밀하다는 것을 어필하지만 지나친 감정소모는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사교적인 성격만 아니었다면 , 곁에 두기에 나쁘지 않은 타입의 사람이다. 달달한 바닐라향이 후각을 스치고 나서야 탄야도 잔을 들었다. 짙은 담배연기에 은청색 시선이 잠겨든다.
" 마땅히 떠오르는 건배사는 없으니까 생략하지. "
잔과 잔이 부딪히며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인을 한모금 마셔보면 달달한 맛이 강해서 넘기기 쉬울 것이다.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기대어 두고 탄야는 잔에 담긴 와인을 마시고 어깨가 맞닿은 당신을 향해 시선을 준다. 눈웃음을 짓는 모습에도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 조용하고 , 참견이 심하지 않은 마스터가 있는 곳은 이 도시에서 찾기 힘들어졌으니까. 손님들 대부분이 수인이면 서로가 부딪혀봤자 잃을 게 많다는 점도 한몫할지도 모르지. "
바의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당신의 말에 무던하고 무뚝뚝하게 그가 대답했다. 문장의 마지막은 조금 시니컬한 뉘앙스였지만. 천천히 와인이 담긴 잔을 흔들고 있던 탄야는 은청색 눈을 가늘게 접는다.
" 그건 좀 의외인데. 네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 줄 몰랐어. 아니면 一 그건가.. 분위기가 맞는 게 아니라 같이 마시는 사람이 마음에 든다거나. "
애초에 나는 그렇게 고급지게 마시는 사람도 아냐, 카리나는 그렇게 덧붙이며 상관없다는 듯 말한다. 정말로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 그저 잔을 부딪히곤 네 얼굴을 바라보며 입에 와인을 머금을 뿐이었다. 달달한 맛,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맛을 잠시 음미한다. 도수가 좀 더 높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가지만 뒷골목의 그것만큼 독한 것이 이런 곳에 있을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와인을 삼키다 어깨를 맞대고 있던 탄야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것에 맞춰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요사스러운 눈짓이 흘러나온다.
" 하긴 너희들은 부딪치면 여럿 피곤해지니까. 프흐. "
몇번 부딪치던 것을 본 기억과 그 덕에 일거리가 생겨서 맘 편히 날뛰고 며칠을 배부르게 살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탄야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머 키득거린다. 밑바닥 그녀에겐 위쪽의 싸움은 주머니를 불려주는 간편한 일거리나 다름없었다.
" 어, 당연하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너니까 마음에 드는거야. 뒷골목 이상한 녀석들이랑 왔으면 진작 내던지고 나갔지. "
눈을 가늘게 접고선 무심히 던져오는 말에 눈을 깜빡이던 카리나는 새하얀 이가 드러나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리곤 어깨를 맞대고 있던 것을 움직여 장난스럽게 다시 네 어깨 위에 팔을 얹어 감싼다. 탄탄한 카리나의 팔이 탄야의 어깨를 휘감는다.
" 애초에 난 아무하고나 술 안 마시거든. 흔치 않은 일이라니까? "
달콤한 와인향이 깃든 따스한 숨결을 내뱉으며 알코올이 들어가 한결 나른해진 눈웃음을 해보이는 카리나였다. 탄야는 모르겠지만, 알코올에 강한 편은 아니았으니까.
당신의 말에 대한 탄야의 답이었다. 도수는 낮고, 맛은 달지만 단맛에 빠져서 막무가내로 들이키다보면 어느순간 몸은 가누기 힘들정도로 취해버리는 정도의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이유는 별거없었다. 취해서 엉뚱한 짓을 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취하는 걸 좋아하지 않은 것 뿐일지도 모르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해왔다. 잔 안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는 와인에 잠시 내려졌던 시선이 당신과 마주쳤다. 마주치는 시선을 탄야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과 다르게 그의 은청색 시선에는 담담할 뿐이다. 정말로 담담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 ...술버릇이 안좋아서 다른 사람이랑 안마시는 것 같은데. 농담이지? 이제 겨우 한잔밖에 안마셨잖아. "
뒷골목을 벗어날 때와 똑같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카리나의 행동에 탄야는 거부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채 , 끌려갔을 것이다. 행동과 다르게 잔에 남은 와인을 들이키는 탄야의 모습이나 행동은 카리나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듯해보였다. 물론 , 대답을 중얼거리는 목소리또한 무감하고 무뚝뚝하다. 비워낸 잔을 다시 채우기 위해 와인병을 쥐고 잔을 채운 뒤 , 탄야는 담배를 꼬나쥐고 있지만 그나마 자유로운 손을 가까워져 있는 카리나의 얼굴에 뻗는다.
" 너는 술은 그냥 안마시는 게 좋겠어. 주정뱅이가 되네. "
탄야의 내밀었던 손이 다른 곳이 아닌 카리나의 이마를 가볍게 밀어내듯 눌렀다. 이제까지 그 어떤 거부의사를 표출하지 않고 있던 수용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고 무감하고 무뚝뚝하던 표정을 풀고 한숨을 쉬듯 짧은 웃음을 흘려냈다. 눈에 익은 무력한 웃음이다.
곧 죽어도 약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곤 아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왠지 제 입으로 약하다는 말을 꺼내는 건 싫어서 이마을 밀어내듯 누르는.네 손길에 잠시 장난스럽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그렇게 도로 고개를 되돌리던 카리나는 이내 웃고 있는 탄야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반짝인다
" 야아~ 평소에도 나한테 그렇게 좀 웃어봐라아~ "
탄야가 짧은 웃음을 흘리는 것이 마냥 좋았는지,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이 풀어져선 탄야가 잔을 들고 있지 않은 팔을 끌어안으며 활짝 웃어보인다. 눈을 깜빡깜빡, 평상시라면 지을리가 없을 순박하기 그지 없던 표정에서 술기운에 만들어진 홍조가 어우려져 화사함이 쏟아진다. 누구든 본다면 얼굴에 있는 칼자국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가 아니었을까.
" 크흥~ 진짜 오늘 좋은 날인가보다. 좋아조아. 이런 날에 한잔으론 안되겠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귀엽게 좌우로 까닥이며 네 팔을 끌어안고 있다가 한팔을 뻗어선 와인병을 집어들려고 한다. 달달한 와인의 맛이 좀 더 카리나랄 부추기는데 일조했을 것은 분명했다.
당신의 말에 바로 붙는 탄야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무기력하고 무력한 사람마냥 짧게 웃으며 탄야는 당신이 고개를 젖혔다가 되돌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눌러냈던 손가락으로 당신의 이마에 아프지 않은 정도의 딱밤을 놓았을 것이다. 술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낮고 차가운 체온을 느꼈을까. 당신이 자신의 팔을 끌어안았을 때는 탄야의 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거둬낸 상태였지만 소파 위에 가만히 늘어트려져 있는 눈표범 꼬리와 둥그스름한 귀가 대신 반응을 보였다.
당신의 말에 맞춰서 살짝씩 움직이는 귀와 꼬리는 당신의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해하는 느낌이다. 상대가 살갑게 붙어오는 행동을 탄야는 익숙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하다못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부귀영화에 무관심한 이가 타인과의 스킨십 - 그러니까 살갑게 구는 태도에 익숙할리가. 당신의 웃음에 탄야는 잔을 기울이며 가만히 시선을 맞췄다. 하는 짓을 보니 완전히 취했네. 더 취하면 곤란한데. 무심한 표정으로 탄야가 생각에 잠긴다.
" 주정뱅이를 데리고 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애초에 주정뱅이는 출입금지고. "
와인병을 잡으려는 당신의 팔을 그가 붙들었다. 얇고 가느다란 체구와 달리 제법 강했는데 열성이라고 해도 일단은 대형 고양잇과 수인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다른 손으로 와인병을 잡아 그는 자신의 잔을 채운다.
딱밤을 맞고선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와인 덕분에 얼굴이 풀려있어서 그런지 귀엽게만 보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은 평소의 카리나에게선 들을 수 있을리가 없는 말이었으니까 꽤나 낯선 모습이 아니었을까. 미간을 찌푸리던 카리나는 투정을 부리듯 입숳을 삐죽거리다 움직이는 탄야의 꼬리와 귀를 보며 베시시 웃는다.
" 으앗?! 나 두고 갈거야?! 너무하다~ "
술 먹인 건 탄야인데. 카리나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무심한 탄야의 표정도, 말도 마냥 재밌는 모양이었다. 사실 카리나는 지금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는 했다. 와인병을 잡으려는 것도 탄야에게 제지되자 입술을 달싹이다가 폭 머리를 탄야의 어깨에 기댄다.
" 몰라. 탄야가 데려왔으니까 아침까지 같이 있어~ 솔직히 그래야된다~ "
평소의 카리나라면 보일리 없는 무방비한 모습으로 헤실헤실 웃으며 뺨을 네 어깨에 부빈다.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하지만은 않은 그 온도가 딱 마음에 드는 모양새였다. 뺨을 부비던 카리나의 입술 사이에선 듣기 좋은 잔잔한 노래의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기댄 탄야의 팔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살살 건드리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해보면서, 눈을 감고 한참이나 듣기 좋은 이름 모를 노래의 음을 흥얼거린다.
" 매일 같은 나날을 보내는거 지겹지 않아? "
그러다 어느 순간 노래가 끊기고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눈을 는 카리나가 팔을 매만지던 손을 뻗어 탄야의 뺨에 가져가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게 한다. 그리곤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평소에 보이는 모습과는 딴판이지. 풀려있는 얼굴로 웃는 당신의 모양새를 바라보며 탄야가 한 생각이었다. 술이 사람을 얼마나 바뀌게 만드는지에 대한 확실한 예시 아닐까. 기억을 아예 못하는 것보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쪽이 더 민망할텐데.
" 나는 따라오라고 강요한 적 없고 애초에 따라온 건 너잖아. 주정뱅이야. "
웃음소리에 그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무심하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당신의 손에서 와인병을 빼앗는데 성공하자 탄야는 그것을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치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은 뒤 담배를 눌러껐을 것이다. 짙고 달달한 바닐라향이 가득 퍼졌다. 바 특유의 희미한 실내등을 향해 연기를 뱉어내던 그의 행동이 잠시 멈칫한다. 팔짱을 껴오는 것도 모자라 어깨에 기대는 꼴이 당혹스럽다. 이정도까지의 친밀함을 표시하는 존재라고 해봤자 자신의 형제뿐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와인의 맛이 입안에 남아있는 바닐라향과 섞여서 입안이 달면서도 쓴 느낌이다.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지만 , 탄야는 당신의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안주로 나온 스낵류를 뒤적일 뿐 입에 넣지 않고 있던 그가 당신의 말에 미약하게 반응했다. 아니 반응했다기보다 당신에게 뺨이 붙들렸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보인 행동이다. 당신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는 은청색의 시선은 가늘었지만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반사광이 드러나 있었을 것이다. 하 - 하며 , 그는 짧게 웃는다.
" ...그럴까. "
무기력한 웃음. 겨우 들릴 정도로 낮고 작게 당신의 제안에 동의하는 듯한 대답을 속삭이며 그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짧게 두드렸다. 10대 때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라서 , 어이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불어 그런 말을 한 상대가 만난지 몇년밖에 되지 않은 당신이라는 것도. 뺨에 올려진 당신의 체온을 느끼려는 것마냥 탄야는 느리게 눈을 감는다.
" 이 손으로 날 죽여달라고 했던 것도 들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 짓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안그래? , 하며 탄야가 다시 무기력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그 은청색 시선만큼은 날카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웃으며 눈을 빛내는 너의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카리나는 거칠게 와인잔을 들어선 남아있던 와인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곤 헤실헤실 풀려있던 탄야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네 뺨을 다시 움켜쥔다. 그리곤 터져나오는 높은 고음의 목소리. 주변에서 잠시 시선이 쏠린 듯 했지만 그런 것엔 아랑것하지 않고 카리나는 달콤한 와인향을 네게 뱉어내며 말을 이어간다.
" 아무것도 안 하고 내 손에 뒤지는 꼴은 진짜 머저리 같은거고! "
날카로운 카리나의 눈에선 지난날 뒷골목에서 보았던 사나운 늑대처럼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죽여달라고 말하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하기 그지 없는, 배가 부르다 못 해 터져서 꼴사나운 줄도 모르고 죽여달라는 탄야의 그 모습은 밑바닥에서 추하게 기어올라온 카리나에겐 어처구니가 없다 못 해 건방진 말이었으니까.
" 대신에, 어?! 니가 안 해보던 일 하다가 뒤지는건 봐준다니까?! 나도 같이 뒤질지도 모르니까 함께 해주겠다고. 어차피 난 내가 뒤질 일은 내가 정할거니까. "
씩씩대며 거칠게 말을 내뱉은 카리나는 네 옆에 내려놓은 와인병을 집어들곤 다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우곤 거칠게 들이킨다. 붉은 빛의 와인이 카리나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주르륵 흘러내려 새하얀 탱크톱을 적신다. 크흐, 하는 소리를 낸 카리나는 숨을 몰아쉬더니 한층 몽롱해진 눈으로 고혹적으로 웃어보이며 탄야의 입술을 쉿! 하는 제스처를 하듯 꾹 눌러주며 속삭인다.
" 죽여주진 않아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는 건 외롭지 않게 같이 해주겠다고, 멍청아. "
갑작스럽게 커진 목소리에도 시끄러, 라던가 뺨을 다시 움켜쥐는 행동에도 아파, 라던가 하는 말은 탄야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빛이 반사되는 특유의 은청색 시선을 굴려서 주변에서 던져오는 시선을 받아쳤다. 뭐, 어쩌라고. 위협적이지 않은 그의 시선에 집중됐었던 시선들이 흩어졌다. 그의 이름에 붙어있는 '하멜'이라는 성이 가지고 있는 위력의 결과물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탄야는 눈살을 구겨내며 당신을 마주한다.
" 이봐 주정뱅이. "
와인향과 바닐라향이 섞여서 머리가 아팠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당신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머리가 아파왔다. 당신에 대한 평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이닥친 무례한 불청객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게 무의미해진 존재에게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에 겨운 일인지. 뺨에 올려진 당신의 손을 떼어내는 탄야의 행동은 방금 보였던 수용적인 태도와 다르게 냉정하고 내뱉는 말또한 차갑기 그지 없었다.
"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찾을 용기가 있을 것 같아? 재밌네.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이미 죽어버렸을걸. 몇번이나 반복하게 하지마. "
냉정하고 차갑게 얼어붙어있던 목소리는 말을 이어갈수록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에 그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어지고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언뜻 무표정한 얼굴에 탈력감과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탄야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당신을 상대하는 걸 버거워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대화의 흐름을 이런 쪽으로 잡으려하지 않았다.
"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어. 내가 바라는 걸 이뤄주지 않을거라면 내버려두라고. "
무감하지만 날카로운 은청색 시선이 당신에게 내리꽂히고 탄야는 당신의 손을 붙잡아서 떼어냈다.
잡담겸 썰풀거나 남겨둘까. 10대시절이라던가? 아포칼립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일테니까..탄야는 그렇네. 모범생은 아닌데 교칙이 허락되는 선 안쪽에서 할건 다했을 것 같지. 놀랍게도 그 시절에는 지금의 삶의 의지가 1그램도 없는 모습은 안보였을거야. 부티가 안날수는 없었겠지만 같은 대형 맹수과 수인들 사이에서는 은근하게 열성이라는 이유로 따돌림? 괴롭힘? 그런게 있었겠지만 이 설표는 굴하지 않고 신경도 안썼을테지. 지금보다 좀 짧은 머리, 조금 더 작은 체구? 체형? 키는 비슷할 것 같네. 서양에서 자주보이는 유서깊은 명문고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을 것 같은데 명문고도 괜찮겠다.
날카로운 시선과 자신을 떼어내는 네 행동에 콧방귀를 낀 카리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날카로운 눈으로 탄야를 바라본다. 술기운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흔들림이 없는 시선이었다.
" 바보 천치처럼 다 알면서도 맨날 나 찾아오는 건 언젠가 한번은 내 손을 잡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잖아? "
피차 다 알고 있는거 아니냐는 듯한 말투로 피식 웃어보인 카리나는 아무렇게나 거칠게 자켓을 집어들고 일어선다. 비틀거리는 것이 달콤한 와인에 더 잔뜩 취한 모양새였다. 비틀비틀, 일어선 여자는 목이 마른 듯 빈잔을 내려다보다 헛웃음을 지어보이곤 돌아선다. 한걸음 한걸음 휘청거리며 입구로 걸어가던 여자는 덜아선다.
" 또 나한테 찾아올거야 넌. 그리고 또 이렇게 내가 물어봐주길 바라겠지. "
언제까지 그럴지 궁금하다는 듯 비웃듯 말한 여자는 비틀거리며 바를 나선다. 그때 다른 테이블의 수인 하나가 비틀거리며 나가는 카리나의 뒷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일어서는 것이 보였을지도.
아니다, 라고 부정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건 당신의 말이 정답이기 때문일거다. 대착점에 놓여있는 성격만큼이나 대착점에 놓여있는 시선을 마주보다가 탄야는 목안으로 집어삼키는 탄식을 내뱉어냈다. 그의 얼굴에 그늘져서 짙게 머물러있던 피곤하고 지친 안색이 증발했다. 그에게 당신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불청객이라고 생각하는 주제에,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당신이 내미는 손을 잡을 용기도 없다. 차라리 내미는 당신의 손을 잡아서 내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트릴까.
당신의 말과 행동에도 탄야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는 당신의 시선에 비친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나. 바 입구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탄야가 막혔던 숨을 힘겹게 토해냈다. 꾸욱 - 와인잔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 걸 눈치채고 그가 힘을 풀어냈다. 그래, 당신의 말이 맞다. 나는 또 당신을 찾을테지. 언젠가는 당신처럼 나에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희미한 생각을 하면서. 탄야는 무기력하게 웃음을 내뱉다가 뒤를 따라가는 수인의 모습을 보고 잠시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 하멜님. " "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와서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는 마스터의 음색에 탄야가 읊조리듯 힘없이 중얼거린다. 무기력하게 고개를 젖히고 있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겉옷을 어깨에 걸치며 " 내 이름에 달아둬. " ,하는 말을 남기고 바를 나섰다. 당신이 나간 뒤로부터 약 십여분쯤 흘러서 거리에 나온 탄야는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향해 은청색 시선을 움직였다.
>>136 생각해보니 카리나는 뒷골목 출신이었다. 10대때는 아예 접점이 없었겠구나. 지금 만난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다행인 점은 카리나가 지금은 위험하지 않다는 거고 불행인 점은 카리나가 지금보다 조금 더 상냥한 느낌의 탄야를 볼 수 없다는 점이네😶 그래서 카리나...글 읽는 건 괜찮니? 기본 의무교육은 받았다고 해줘...()
탄야가 바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선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골목에는 방금전 휘청거리던 카리나를 눈여겨보던 수인과 카리나가 있었다. 찢어진 탱크톱이 한쪽 어깨에 걸쳐진 체로 늘어져 있었다. 그 안의 흉터들은 어떤 것들로 새겨진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난잡하게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흉터 속에 붉은 상처를 하나 더 새겨넣었다.
" 진짜... 기분 개같아서 얌전히 가려고 했는데... "
찢어진 입술과 부어오른 뺨, 머리채를 잡힌 것인지 이리저리 헝클어진 거친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탱크톱을 천천히 물들이는 붉은 빛의 액체. 하지만 카리나는 그런 건 아랑곳 않고 취기가 가득한 날카로운 눈에 형형한 불꽃을 일렁이게 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른 고급진 옷을 입은 개과 수인의 다리에는 골목길 어디에서나 뒹굴고 있을 녹슨 철사였다. 비명을 지르는 수인을 보면서 카리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핏물 섞인 침을 내뱉는다. 물론 수인이 무어라 하기 전에 철사를 걷어차서 뭣도 못 하게 만들면서.
" 이런 새끼도 살려달라고 비는데 말이야.. 나보다 많이 배웠다는 녀석이.. "
휘청휘청, 취기가 여전한지 비틀거리면서 카리나는 투덜거린다. 흔들리는 가로등 빛에 비춰진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더러운 것이 뒤에서 기습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씩씩대던 카리나는 이내 시선이 느껴지는지 고개를 들고선 주변을 멍하니 두리번거리다 탄야를 발견한다.
" 크흐... 뭐야, 마중 안 나온다며~! "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이려던 카리나는 버둥거리던 수인이 또 비명을 지르려 하자, 얼굴을 걷어차 기절시켜버리곤 히죽 웃으며 탄야에게 말을 던진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던 탄야의 둥그스름한 귀가 움직였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귀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게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던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공기를 가로질렀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디디면서도 그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다. 왜 따라나온건지, 왜 머뭇거리지 않는건지. 의문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그는 골목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이 하는 짓을 탄야는 끼어들지 않은 채 지켜봤다. 골목의 입구에 선 채로 천천히 담배를 태우는 꼴이 무관심해보였다. 은청의 시선이 느릿하게 당신의 엉망이 된 몰골을 훑듯 움직이고 있다가 겨우 취기어린 걸음, 상태를 살폈고 당신의 얼굴로 향한다.
" 마중은 아니고. "
대답을 중얼거리는 그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 끝에서 회색의 재가 바닥으로 떨궈진다. 기절해버린 수인을 향해 잠시 움직이던 시선이 당신에게로 옮겨졌다. 그 짧은 순간에 탄야는 눈살을 찌푸려보였을 것이다. 가로등 불빚을 정면으로 받는 게 아니여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 나랑 관련된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어. 이름의 무게가 꽤 무거워서 말이야. 이미지는 챙겨야하거든. "
저승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지탱하는 명문가 중 하나.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못하면서도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노려지기 쉽다. 당신과 종종 어울리는 그는 그런 존재였다. 당신을 향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오늘의 일이 일어났을테지만.
" 왜? 걱정이라도 해줬으면 했나? "
수인에게 걸어간 탄야가 기절한 그 몸뚱이를 뒤집어서 얼굴을 확인하며 무심하게 물음을 던졌다.
일주일이 흘렀다. 마땅히 연락할 방법을 찾지않은 채 탄야는 일주일을 보냈다. 눈을 뜰 때마다 지긋지긋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탄식하고, 체념하고, 또 다시 열망에 시달렸자가 포기하기에 이르는 의미없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시간이었다. 꼬박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난 날이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걸음을 딛고 있던 그의 걸음이 식당을 지나치다가 멈춰섰을 것이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뭘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연기를 천천히 공기 중으로 흐트러트리듯 뱉어내던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_____________
" 버섯 크림 스프, 브로콜리와 완두콩을 곁들인 티본 스테이크. "
메뉴판 앞에서 안절부절해하는 당신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옅지 않은 바닐라향이 당신을 감싸려는 듯 퍼지고 길고 가느다란 손끝이 메뉴판을 느릿하게 짚으며 훑어내리더니 " 이쪽은 드링크 종류고. ", 하는 담담하고 차분한 억양이 담긴 목소리가 따라온다.
" 더 알고 싶은 건? "
그는 당신과 헤어진 그 일주일동안 뒷골목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을만큼. 당신이 시선을 돌려서 바라보면 탄야는 딱 일주일 전과 똑같은 표정일 것이다.
놀라는 모습을 가만 비스듬히 응시하던 그의 은회색 시선이 가늘게 좁혀지며 늘어져있는 긴 꼬리 끝이 좌우로 흔들렸다. 오랜만이다, 라는 문장이 나올 정도였나라는 의문은 곧 일주일이면 그럴만하지, 라는 깔끔한 결론으로 이르렀다. 가늘게 좁혀졌던 시선을 옮겨서 그는 메뉴판을 훑어내리던 손을 떼어내고 자신의 턱에 댔다.
" 음식의 종류를 모른다는 말은 아닐거고-.. "
피쉬 앤 칩스, 티본 스테이크, 버섯 크림 스프, 거기에 넣은 재료가 뭔지 짐작도 하기 힘든 스튜등. 몇가지 제법 그럴듯한 음식들로 채워진 메뉴판으로 시선을 둔 채로 탄야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턱에 댔던 손을 내려서 파카 주머니에 넣고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울인다. 긴 꼬리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 너 기본 의무 교육은? "
조금의 의문과 약간의 놀랍다는 빛을 담은 은청색 시선이 당신에게 향한다. 아무리 뒷골목이라는 슬럼가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설마. 아니지. 설마가 진짜인 모양이다. " 지나는 길이었어. ", 무슨 일이냐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탄야의 답변이었다.
놀라움을 담은 탄야의 시선에, 왠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 드는 것이 느껴진다. 왠지 기가 죽는 것 같아서 마음 속에서 발끈하는 감정이 샘솟았지만 부끄러움이.다시 앞서나가 슬그머니 눈을 돌리곤 중얼거린다. 들어본 적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밥 먹을거 구하러 다니느라 그런 건 눈길도 안 줬던 것 같았다. 뭐, 오늘처러 곤란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왔으니까.
" 크흠... 아니, 뭐... 여태 어떻게든 살아오긴 했는데. "
자꾸만 탄야의 눈에서 설마, 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뒷골목엔 글을 못 읽는 자식들이 좀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런 애들이 자신을 보던 시선과는 탄야의 시선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 ... 일단 너도 뭐 안 먹고 왔으면 밥 같이 먹던지. 오늘은 일당이 좀 두둑한데. "
머쓱하니 슬그머니 이야기를 바꾸려한다. 자신이 밑바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탄야가 그런 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밑바닥 그 아래로 빠져드는 것 같았으니까.
"알파벳을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의무 교육에 대해 물어보는 거야? 의무 교육은 쉽게 말하면 기초교육이지. 의식주를 제외하고 사회에서 사용하는 것. "
글을 읽고 쓰는 법이라고 해, 라고 당신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눈길을 돌리는 당신에게 향하는 은청색 시선이 제법 길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라는 점에 놀라워해야할지, 아니면 역시나하는 반응을 보여야할지. 탄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 안배워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너랑 관계된 누군가를 생각하면 배워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
당신의 뒤편에 줄곧 서있던 그의 걸음이 조금 떨어지며 거리를 둔다. 언제나와 같은 적당히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당신의 생각과 별개로 그는 아까 보였던 의문과 놀람을 담았던 시선이 아닌 평소와 같이 무덤한 눈빛이었다. 뒷골목이라는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의무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건 아포칼립스 사태로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 전에도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탄야는 쓴웃음을 집어 삼켰다.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정말로.
" 난 원래 밥을 안먹어. 평소에도 말야. 그러니까..그냥 차한잔이면 될 것 같네. "
탄야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당신을 바라보더니 곧 고갯짓을 해보인다. 그 의미는 안으로 들어가자는 의미였다.
주변에 있는 인물이라고는 살아남은 형제 둘뿐인 탄야 하멜(28세,설표) 아마 자신이 맺는 관계의 의미가 깊다는 건 고교생쯤 눈치챘을 것 같네. 다른 사람들이랑 의미가 다르다는 것도 그때쯤. 연애는 해봤냐한다면...아포칼립스 사태 전에 명문가들이 그렇듯 집안끼리 약속한 정혼자는 있었을 것 같지만 의무적 교류 외에는 만남이 없었을테고... 뭐야 그냥 부잣집 아가씨 그 자체잖아.
좋아해줘서 고마워. 한번쯤 카리나가 탄야의 행동이나 태도에 흔들리는 걸 보고 싶다는 바램이 있어. 첫일상에서 탄야가 흔들리기도 했으니까. 여하튼 내일 보자.
결국은 배운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글 하나 볼 시간에 동냥이라도 다녀야 그날 저녁은 굶지 않고 뭐라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치만 탄야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간단한 것 정도는 배워두는게 좋지 않았나 하는 가벼운 아쉬움이 입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놀림 받아도 할 말이 없단 사실에 갑갑했지만, 탄야가 또 그걸로 놀릴 성격은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 자랑이다. 밥도 안 먹는다는게. 하여튼 글 못 읽나 버젓이 밥이 있는데 안 먹는거나 다를거 없다니까. "
말은 투덜투덜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듯 말하면서도 네 뒤를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깔끔한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웨이터 옷을 입은 여종업원이 걸어와선 시선을 탄야와 카리나에게 번갈아 옮겨 다니다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안쪽으로 안내할게요' , 명랑한 그 말투 너머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온 것을 보곤 둘의 사이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 아무튼 밥은 안 먹는다니까 끌리는 차로 골라. 난 스테이크 먹을거야. "
고기도 흔치 않은 별미였다. 적어도 카리나에겐. 딱히 탄야에게 더이상의 식사 권유를 하지 않는 것은 안 먹을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었지만 역시 메뉴판을 못 읽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슬쩍 탄야에게 메뉴판을 내밀었으니까.
" ... 글 배우는 건 어려우려나? "
그렇게 메뉴판을 내밀곤 얼마나 있었을까, 턱을 괴고 먼곳을 보던 카리나가 슬그머니 속삭이듯 물어온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릴 뿐이었다. 다시 곱씹는 거지만 정말로 당신과 닮은 점이라고는 티끌 하나만치도 없다. 애초에 너무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그의 시선이 깜빡이는 것도 잠시, 곧 가늘게 좁혀졌는데 당신의 말 때문이었다.
" 전혀 다르지. 한끼 정도 거르는 건 건강상 큰 문제가 안되지만 글을 못 읽는다는 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거든. 너는 아니여도 나한테는 그래. 나 어울려 다니는 이상 네 이미지에 나도 적잖이 영향을 받으니까. "
식당 내부로 들어서면서 당신의 말에 답변하는 탄야의 목소리는 어김없었다. 무심하고 차분하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지만 타인이라 부르기에는 또 지나치게 거리가 가깝다. 당신은 탄야를 친구라는 카테고리에 넣을지 모르겠으나 탄야는 아직 당신을 자신의 친구라는 선에 넣지 않고 있었다. 간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죽기를 갈망해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지. 그런 것 치고는 자주 만나서 어울리지만.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자리에 외투를 벗어서 걸어둔 그가 의자에 앉았고 당신이 내미는 메뉴판을 받아든다.
" 난 그냥 커피면 되고. 메뉴판에 오늘의 추천세트라는 게 있는데. 스테이크, 스프, 음료수.. 디저트까지 나와. "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라고 그는 짧게 생각하며 메뉴판에 시선을 둔 채 당신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당신의 자세와 다르게 그가 앉아있는 자세는 반듯하다. 무의미하게 메뉴판을 넘기고 있던 그가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한손 위에 메뉴판을 올려둔, 꼭 책장을 넘기는 자세를 한 채로 그는 시선을 들었다.
" 어느정도의 수준이냐에 따라 다르지. 그림책 정도라면 어렵지는 않아. 내 기준에서는. "
가늘게 은청의 시선을 뜨고 당신에게 대답한 탄야가 한숨을 쉬듯 짧게 무력한 사람처럼 웃어보였을 것이다.
" 이미지.. 하긴 너희들은 그런거 좋아하더라. 양육원 원장이 돈 다 빼돌리는데 기부한다면서 가져다준다던지 하는거 말이야. "
뭐, 그럴 수 있지. 카리나는 자문자답을 하듯 중얼거리곤 어깨를 으쓱인다. 저 윗세계 사람들에겐 자신 같은 밑바닥 인생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탄야도 겉으로 보기엔 도도하기 그지없는 고위층 아가씨였으니까. 입에서 살 의지가 없는 말들이 흘러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아무튼 가까운 듯 하면서 거리를 둔 상태로 안으로 들어선다.
" 커피, 그리고..음.. 오늘의 추천 세트. "
마침 지나가던 종업원에게 손짓을 하곤 탄야가 불러준대로 주문을 한다. 일단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단숨에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사실 탄야가 아니었다면 확인 작업을 거치고 나서야 믿었을텐데. 카리나 역시 알게 모르게 탄야에게 마음이 열리긴 한 것 같았다. 그리곤 자신을 보며 웃어보이는 탄야를 응시하다가 고민을 하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 여유 있으면 좀 알려주든지. 글자. 읽을 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네 이미지 문제도 있고. "
다행히 탄야가 들어오며 던져준 말을 이유삼을 수 있어 안심을 하며 슬그머니 부탁을 한다. 사실 카리나가 글자 같은 것을 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건 탄야가 유일하다는 것도 한 몫을 했지만.
"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렇게 챙겨대면서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썩어문드러지는지는 신경도 안쓰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지? "
예의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내뱉는 말은 무뚝뚝함과 거리가 멀다. 비아냥거리지 않았을 뿐 냉소적인 뉘앙스였다. 게다가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은청의 시선이 경멸과 시니컬한 빛에 잠시 잠겼다. 뒷골목에 기부하는 행위도 결국에는 그네들의 이미지 챙기기 뿐이지. 그 돈이 정말 제대로 사용되는지 관심도 없는 주제에. 탄야는 새어나오는 비웃음을 목구멍 아래로 씹어삼켰다. 결국은 핏줄에서부터 새겨졌다고, 이미지를 생각하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역겹기 그지 없다.
당신이 웨이터를 불러서 주문을 하면, 탄야는 들고 있던 메뉴판을 덮어서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두고 물컵을 집어들어 입에 가져다대며 거리가 언뜻 비쳐보이는 창문에 시선을 뒀다. 은청의 시선이 멀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하다.
" 난 이미지가 박살나도 크게 신경 안쓰는데. 그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사회였다면 모를까. 내 이미지를 위해서 배우려고 하는 거면 관둬. 그런 거 필요없으니까. "
정부가 무너지고 도시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패권 다툼의 불씨를 당긴 게 자신이다. 이제와서 곱게 자란 얌전하고 조용한 부잣집 아가씨의 이미지를 찾기에는 늦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뭔가를 배운다는 건 본인 스스로의 의지가 우선이 되지 않는다면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 나를 이유로 들지말고 네가 정말 배우고 싶은지 생각해봐. ", 라며 탄야는 다시 말문을 열면서 당신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멜가문이 탑이랑 가까운 지역(지도로 따지면 중앙부)을 차지해서 이런저런 이점이라던가 뒷골목 슬럼가에 여러가지 지원을 주다보니 다른 가문 영역보다는 상황이 쪼끔 낫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카리나가 뒷골목 출신이라는 걸 보자마자 전자만 남겨두고 후자는 폐기했네. 물론 먼저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스레 설정상 하멜가가 남은 명문가 중에서는 알짜배기 지역들을 삼키기는 했겠다싶다가 너무 먼치킨이라 때려치우고 중앙만 장악하게 만들었네.
답레는 천천히 줘.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잡담 겸 설정이나 좀 이야기해볼까.. 하멜가문도 가문인데 다른 가문들도 생각해야지... 동부-중앙-서부로 해서 세 가문이 대외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는 대립 하면서 크고작은 조직들이 분산되어 있는 느낌으로 잡고 있어. 물론 더 깊게 들어가면 약간의 수인과 인간의 대립이나 수인우월주의&인간우월주의 사상에 젖은 인물들도 있을거고.
하멜가문은 그냥 탑과 가까운 중앙지역을 차지한 가문에 무기밀매업을 잡고 있어서 이쪽 지역들 수인&인간들은 대체로 몸 지킬 수단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상태. 카리나가 있는 쪽은 중앙에서 좀 떨어졌다고 생각 중인데 동부랑 서부 중에 치안이 나쁜 지역이 어딘지는 카리나주가 정해도 좋아. 그쪽 지역을 장악한 가문도 정해주면 고맙고()
그럼 카리나가 있는 쪽은 동부쪽이라고 해둬야겠다. 이쪽은 그래도 수인우월주의 가문이 자리잡고 있어서 탄야가 돌아다니기에도 괜찮은 곳이라 다니는 걸로 하면 적절하겠다. 물론 그탓에 카리나가 더 거칠게 자란 것도 있겠지만. 이쪽은 마약 같은 더러운 쪽 사업을 하는걸로... 이름은 유다 가문이라고 할까.
그래서 탄야가 저모양이다(?) 그치 좋지, 뭐 과거에는 우성열성 따졌지만 지금은 안그러지만? 이유는.....탄야의 비설이니 진행되다보면 나오겠지. 유통은 각 지역 가문들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서 그다지 메리트가 없을 것 같은데 흠. 생각 조금 해보고 다시 이야기할까, 이야기 주축은 중앙과 동부가 될 것 같으니까. 어때?
음험하게 구는 것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카리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애초에 먼세상 이야기라 와닿지 않는 것이 컸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함께 있는 탄야의 위치도 결국 자신과는 너무나도 멀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무관심한 듯한 말과는 다르게 슬그머니 눈을 굴려 탄야를 살피는 카리나였지만.
" 아니 꼭 네 이미지만은 아니고... 사기 당하고 그러면 열받을 것 같아서. 솔직히 아까 메뉴 알려준 것도 너라서 믿은거지,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바로 믿지는 않았을거야. "
탄야의 말에 미간을 꿈틀거리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사실 글을 못 읽어서 포기했던 것들이 꽤나 많았다는게 느껴졌으니까. 딱히 인식을 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하나 둘 떠올랐다.
" 글만 읽을 줄 알면 할 일도 늘어날테니까 좋은게 좋은거지. "
물건을 빼올 때도 글을 읽어야 할 때가 있었으니까. 카리나는 무조건 배워야 할 것 같다는 듯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웃어보인다.
감정이 드러나는 게 적었던 무뚝뚝하고 차분한 그의 얼굴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경멸과 혐오가 뒤섞인 표정이다. 그런 표정을 지어보여도 당신이 그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신의 대답을 들었으나 맞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느릿하게 눈을 감아서 표정을 갈무리했을 뿐이다.
" 글쎄다. 너한테 사기를 치려는 간 큰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잘못된 거 아니야? "
치안이 안좋기로 악명이 높은 그 '동부'의 뒷골목에서 이제껏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는 사실만 두면 그곳에서 당신의 존재감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데. 감정변화가 적은 얼굴로 여전히 눈은 감은 채로 그는 당신의 말에 대꾸했다가 " 그렇게 말한다면야. " 하고, 문장을 덧붙히면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당신을 본다.
" 전문 용어 같은 걸 배우는 건 시간이 꽤 걸리니까.. 일단 메뉴판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해볼까. 내가 어릴 때 썼던 게 남아 있는지 찾아봐야겠네. "
예의 무력한 사람처럼 웃어보이며 탄야는 웨이터가 오늘의 추천메뉴와 커피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에 잠시 시선을 줬다.
" 어차피 사기를 치는 녀석들은 맞아 죽는게 무서웠으면 시작도 안 하는 녀석들이니까. 그리고 머리가 몇바퀴 돈 놈들은 그런거 신경 안써. "
탄야의 말에 카리나는 피식 웃어보인다. 그 족속들이 맞아죽을까 사기를 안 친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다. 사기를 치고 숨어다녔으면 다녔지. 애초에 지금도 몇명은 눈에 띄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절대로 그럴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더 안 만들려면 지금이라도 탄야에게 배우는게 맞는.걱 같았다.
" 흐흥, 좋아. 그정도라도 대만족이지. 배울 때는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려나? "
카리나는 언제나처럼 힘없이 웃어보이는 탄야를 보며 일부러 좀 더 과장되게 웃으며 말한다. 웨이터가 메뉴를 내려놓는 것을 바라보다가 눈에 장난기가 감돈다. 양손을 슬그머니 거칠고 긴 머리카락으로 가져가더니 요며칠 지나다니다 본 학교를 다니는 여자아이들처럼 양갈래 머리로 만들어 보인다.
" 선생님, 제대로 잘 가르쳐주셔야 해오~ 네? "
예쁜 얼굴에 어울리게 귀엽게 웃어보이며 어린 아이의 말투를 따라해본 카리나는 능청스럽게 그대로 윙크까지 해준다.
이걸 뭐라고 답해야할까. 자신이 있는 '중앙'은 '동부'와 달랐다. 분위기도, 치안도, 사람들 간의 관계성. 그렇게 만드려한 건 아니었지만 하멜 가문이 유지 중인 '중앙'은 그런 분위기와 썩 나쁘지 않은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걸 제쳐두더라도 일단 겪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없다는 것은 당신이 말하는 일이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걸테지.
" ...내 쪽도 한번쯤 살펴보는 게 좋겠네. 일어나고 있지 않을 것 같지만. "
커피에 넣을 수 있도록 같이 제공된 각설탕 하나를 꺼내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커피 안으로 떨어트린 탄야가 티스푼으로 휘저으며 혼잣말처럼 대꾸해보였을 것이다. 그는 딱히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고 할까, 애초에 카페인을 입에 안대는 타입이라고 해야 옳았다. 잠시 그 의미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가 문득 시선에 당신의 모습이 보이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보였다.
" 까부는 학생은 이쪽에서 사양이야. 귀엽기는 하네. "
당신의 윙크에 그는 기어코 시선을 돌렸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당신과 대화를 할 때 이야기 주제를 먼저 꺼내지 않았고 주도적으로 이끌지도 않았다. 당신과 안면을 튼 그날부터 쭉 그래왔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답레가 좀 짧은데 추위에 머리가 얼어붙은 게 분명해...다른 이야기거리가 없다면 적당히 밥먹고 나왔다고 해도 좋아.
다 신경을 쓸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알아보겠다는 탄야의 말에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딱히 달라지지 않을거고, 달라질 것도 없으리라 생각하는 듯 했다. 어디에나 어두운 그늘은 생기는 법이니까. 사정이 그나마 좋은 '중앙'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모든 것은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겠지.
" ...귀, 귀여워? "
양갈래 머리를 하며 머리를 흔들어 보이던 카리나는 나직이 들려오는 탄야의 말에 얼음처럼 굳어선 중얼거린다. 탄야의 입에서 나올 줄 몰랐던 말인지, 아주 조금 분홍빛이 돌기 시작한 귀를 한 체로 '뭐지, 잘못 먹고 온게 있나..' 하는 들릴 듯 말 듯한 말을 중얼거린다. 탄야의 입에서 나온 그 짧은 말이 꽤나 충격인.몽야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든다는 것은 딱히 생각하지 못하고.
" 으으.. 배부르다. 그럼 어디 가서 가르쳐줄래? 가르쳐줄 사람이 정하는게 편할 것 같아서. "
그렇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탄야와 나누며 나온 음식을 깔끔하게 비운 카리나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곤 가볍게 하품을 하며 묻는다. 불량학생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배울 생각은 확실히 있는 모양이었다. 탄야처럼 꼬리가 있었다면 뒤에서 살랑이고 있지 않았을까.
당신의 말에 담겨있는 뉘앙스를 눈치챈 듯 탄야의 목소리는 바뀌었을 것이다. 여전히 차분하고 감정기복이 적었지만 어조에 담는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앞에서는 무력하게 웃거나, 스스로의 숨을 끊을 용기도 없는 주제에 죽음에 집착하고 갈망하고 열망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는, 중앙을 장악한 가문의 중심이며 지금이야 이빨 빠진 맹수처럼 굴고 있지만 망자가 건너는 강 이름이 붙은 도시가 무너졌을 때 패권 전쟁에 제일 먼저 불씨를 당겨낸 존재였다. " 절대로. " 하고, 낮게 단어를 덧붙혔을 때 탄야의 은청색 시선에 포식자와 같은 빛이 짧게 스쳐지나간다.
당신 앞이 아닐 때 그는 늘 그런 눈빛이었다.
" 무슨 반응이야? 못들을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
언제 그런 눈빛을 했냐는 양 그는 담담하게 당신의 반응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려보였다. 그렇게까지 귀엽다고 한 게 충격이었나. 겉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이상할만치 신경쓰였으나 그또한 더 말을 잇지 않고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입을 다물며 시간을 보냈다. 당신이 음식을 전부 비우는 것과 비슷하게 탄야도 컵을 내려놓았는데 컵 안의 내용물이 반도 안비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지금? 상관은 없지만 내 집은 곤란해. 형제들이 언제 올지 모르거든. 어차피 이 근처는 네가 더 잘 알잖아? "
살벌하기 그지 없는 탄야의 태도에, 카리나는 눈을 깜빡이다 하나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웃으며 대꾸한다. 일단은 너도 위쪽의 인물이라는거냐, 하는 눈을 해보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너털웃음에 흘러가듯 사라져갈 뿐이었다. 어찌됐든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탄야는 언제나 그렇듯 죽여달라는 듯한 눈을 한 바보 같은 수인이었으니까. 이러나 저러나 자신의 앞에서는 그러니까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카리나는 탄야를 대할 뿐이었다.
" 아니, 뭐... 음, 그런게 있어. 이따금 놀랄 때가 있는 법이란 생각이 들어서. "
오히려 담담하기 그지 없는 탄야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카리나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어보인다. 뭐, 탄야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아서 오늘처럼 기습적으로 잘 어울리진 않겠지만 이런 모습을 해보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두기는 했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릇을 비운 카리나는 거의 비워지지 않은 탄야의 잔을 응시하다 들려오는 너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듯 말한다.
" 그나마 조용하고, 방해 안 받을 곳은 매번 가던 그림 있는 쪽이 좀 조용하긴 할텐데. 내가 거기 주로 있는 것도 알고, 종종 네가 오는 것도 알아서 그 주변은 요즘 조용하거든. "
카리나는 고민을 하듯 입술을 손가락으로 몇번 두드리다 어떻냐는 듯 물으며 고개를 기울인다. 기울어진 고개를 따라 카리나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평소와 다를바없는 텐션으로 돌아와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지금의 그는 당신의 앞에서만큼은 매사에 무관심하고 죽기를 갈망하는 존재일 뿐이다. 대형 고양잇과 수인 치고는 순하게 생겨먹은 눈매를 깜빡이면서 그가 내뱉은 말은 확신이었다.
" 실례네. 아무리 나라도 그정도의 말은 할 줄 알거든.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잖아. "
문장만 두고 보면 어딘지 투덜거리는 느낌이다. 말하는 사람이 탄야다보니 차분하게 들릴 뿐이다. 당신에게서 반응이 돌아오기까지 생긴 텀에 탄야는 아주 잠깐, 멀고 먼 곳을 응시하듯 밖으로 은청의 시선을 줬다. 뒤에 정해져있는 일정은 기억 속에 없다. 혹시나 기억하지 못한 일정이 튀어나와도 어떻게든 형제가 대리로 참석하고 나중에 일러줄테지.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뜨며 그는 생각을 곱씹었다.
" 매번 한 장소만 가는 나도 잘못이지만 그게 소문으로 퍼졌다는 게 마음에 안드는걸. 마음에 드는 곳이지만... 일단 묻겠는데 글을 알려주려면 종이나 펜이 필요한데 가지고 있어? "
탄야는 미간을 잠깐 찌푸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앞머리를 잠시 헝크러트린다. 매사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이렇다할 취미나 취향도 없다는 뜻이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또한 그랬다. 중얼거리던 그가 자신의 머리에서 떼어낸 손을 당신에게 내밀었을 것이다.
" 없으면 한두시간 뒤에 거기서 보고. 형제들이 도시를 이잡듯 뒤지다가 동부까지 흘러들어오면 곤란하거든. "
손으로 당신의 흘러내린 머리를 간단하게 걷어내줄 뿐, 그 외의 무엇도 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되돌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느리게 흔들리는 꼬리처럼 둥그스름한 귀도 가볍게 움직인다.
아마도 알아차리는 이가 몇 없을 것 같은 단조로운 투덜거림에 카리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아, 오늘도 좋은 걸 봤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괜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카리나의 기억 속에서 꽤나 오랫동안 남을 것 같은 탄야의 그 모습을 웃는 낯을 한 체 담아둔다.
" 애초에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은 곳이라서 눈에 띌 수 밖에 없어. 사는 곳이란게 다 그렇잖아. 애초에 저기 중앙처럼 우르르 다니는 곳도 아닌데. "
그 부분은 어쩔 수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한다. 뭐, 정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떠벌리고 다니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족치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소문을 딱히 카리나가 신경을 쓰지 않는 점과 탄야가 아직은 그걸 바라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실행에 옮기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다 탄야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기 위해 닿았을 때 카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움츠러 들었다.왠지 저릿한 감각이 느껴져서.
" 없지.. 그런게 있을리가.. 그럼 내가 입구에서 두시간 뒤에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같이 만나서 가자. "
저릿한 감각이 익숙치 않아 얼떨떨한 표정을 잠시 짓던 카리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작게 대답한다. 방금 느껴진 감각은 어떤 느낌인걸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은청의 시선이 당신의 대꾸가 이어질 때 당신에게 향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조였어도 형제들을 제외하고 탄야와 가까운 이는 당신이 유일하기에 투덜거림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 내가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는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네. 신경도 안쓰다보니. 그런데 네 앞에 있는 게 중앙에서 온 거라는 걸 알면서 그러는거지? "
웃음기 하나없는 얼굴로 그가 중얼였다.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행동, 그러니까 손에 꼽을 정도로 보여지는 사뭇 상냥하고 다정한 짓거리를 하면서도 그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손에 닿는 타인의 것이 꽤 괜찮은 것 같다. 손을 떼어내기 직전, 그는 당신의 반응을 봤는지 눈을 가늘게 접어뜨며 가만히 응시했는데 방금 전에 보였던 포식자의 눈빛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이 담긴 눈빛이었다. 다만 언제 그랬냐는 양 그는 무력한 사람처럼 짧게 웃으며 " 답지 않게 왜 그래? " 하는 문장을 무심하게 덧붙혔다.
딱히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는지 탄야는 당신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 중앙에서 왔어도 여긴 동쪽이란거지. 그리고 애초에 자다가도 뒤질 수 있는 놈들인데 신경이나 쓰겠어? "
가뜩이나 웃음기 적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말하는 탄야에게 신경쓰지 말라는 듯 태연히 웃으며 말한다. 뒷골목 삶이란 그런거다. 자다가도 같이 지내던 녀석이 갑자기 목을 조르거나 칼로 찌를지도 모르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뒷골목이니까. 탄야가 중앙의 대단하신 분이라도 그게 어때서? 라고 생각하고 마는 곳이다. 아무튼 그런 녀석들을 신경 쓰려는 것은 괜한 낭비라고 말해주다 왠지 모르게 저릿한 느낌을 주는 손길에 잠시 입술을 벌린 체 탄야를 응시란다.
" ...아, 아무것도 아냐.. "
무심한 덧붙임에 멍하던 정신을 되돌리곤 고개를 젓는다. 이상한 느낌. 간질거려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에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딱히 싫지는 않은 그 느낌은 묘하게 끌렸다. 좀 더 느껴보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 무슨 느낌이었지. "
탄야와 헤어진지 두시간이 지났을 즈음, 늘 탄야가 들어오던 골목길 입구에서 탄야가 매만져줬던 곳을 제 손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왠지 자기가 이상해진 것 같아서 부르르 떨고 만다. ' 뭐야, 진짜... ' , 나직이 중얼거린 카리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곤 괜스레 거칠게 빨아들였다가 뱉어낸다. 짙은 회색빛 연기, 칼칼한 연기가 주변을 맴돈다.
그거야 그렇지. 탄야는 고개를 끄덕여서 답하기보다 시선을 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긍정의 의미를 보여줬을 것이다. 여기를 장악한 쪽이 누구였더라. 들었음이 분명했으나 그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거야 당연한 노릇이다. 매사에 무관심으로 일축하는 그가 그런 것을 기억할리가 없다. 그가 겨우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수인우월주의에 젖어있는 자라는 점 뿐이다. 차라리 그쪽이 낫다. 탄야는 튀어나올 뻔한 조소를 눌러참았다.
레스토랑을 나서기 전에 보인 당신의 반응과 행동에 그는 그저 무던하게 고개를 기울여보였는데 그 은청의 시선은 아까와 같이 포식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빛이 머물러있었다. 당신이 보기 전에 사라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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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야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했던 시간에서부터 약 10여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시 나오려고 하던 와중 형제들에게 붙들려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고 말았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당신에게 " 일이 좀 있었어. " 라는 말만 했을 것이다. 형제들이 그를 붙잡은 이유는 동부의 움직임이 수상쩍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탄야는 적당히 찾아온 노트와 필기구 몇개, 그리고 조금 오래되어보이는 그림책 몇권을 당신에게 내민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온 탄야를 카리나는 주변에 맴도는 회색빛 연기를 휙휙 저어 날려보내며 반겼다. 조금 늦는 것 정도는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는 모양새였다. 그 시간에 담배 몇개피 더 피는 것 뿐이니 아무래도 좋은 것이 크겠지만, 어느정도는 카리나가 탄야와 만나는 것을 즐기고 있단 증거라고 할 수 있을터였다.
" 어 ! 나 이거 뭔지 알아! "
카리나는 탄야가 무언가를 건내주는 것을 받아들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그림이 표지에 그려진 동화책을 보곤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쳐든다. 반짝이는 눈, 카리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천진한 눈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 그! 그러니까! 동화라는거지? 이거? 히야~ 글을 배우긴 하는 모양이야. 어렸을 때 이게 되게 궁금했었는데~ "
아주아주 이따금, 조금의 여유가 생긴 뒷골목의 아이들의 부모가 사주는 것을 보며 궁금해하고 부러워 했던 어린 시절의 카리나였다. 그래서인지 더 들뜬 걸지도 몰랐다.
그는 새삼 생각했다. 형제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어째서 당신을 만나러 다니는지에 대해서. 언제부터인지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자신이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까지 오래걸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당신의 반응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고 당신의 표정과 시선을 가만히 마주보고 있던 탄야는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바꾸었을 것이다.
" 어릴 때 읽었던 것들은 거의 다 버렸는지 그것만 남아있더라. 어려운 단어나 문장은 거의 없는 걸로 기억해.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
무덤하게 중얼거리는 탄야의 가느다란 손끝이 당신이 들고 있는 그림책 표지를 잠깐 매만지듯 쓸어냈다. 어릴 때, 라는 단어를 말할 때의 그의 표정은 애매했는데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표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테지만서도. 잠시 그렇게 오래된 그림책 표지를 짚어보던 탄야는 그대로 손을 떼어내고 담배를 꺼낸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린시절에 대한 건 그다지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쁘다면 나쁠지도 모르지. 불이 붙은 담배가 타들어가는 끄트머리를 응시하다가 그가 걸음을 옮겨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 ...일단 알파벳부터 해볼까. "
뒷골목 벽은 전날에 봤던 낙서 위에 새로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잠시 보다가 탄야가 담배를 문 채로 당신에게 노트와 펜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어보였다.
탄야가 동화책의 표지를 쓸어내리며 하는 말에, 입술을 살짝 벌리곤 '헤에' 하는 소리를 내던 카리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지금은 잘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분명 눈 앞의 설표도 어렸을 적이 있었을테니까.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좀 더 환하게 웃어보이곤 했을까? 카리나는 잠시 동화책과 탄야를 번갈아보며 상상을 하다가 살짝 고개를 젓고 먼저 앞장 서서 골목으로 향하는 널 뒤따라 걸어간다.
" 알파벳, 좋지좋지. 금방 배워줄게. "
탄야를 뒤따라 걸어와서 그림이 더해진 벽을 살피던 카리나는 손을 내미는 탄야를 보며 기세 좋게 말한다. 그리곤 의외로 찰떡같이 탄야에게 노트와 펜을 쥐어주곤 카리나 치곤 얌전한 자세 - 두손을 뒷짐을 지고서 - 로 흘깃흘깃 탄야가 무얼 할지 살펴보기 시작한다.
" 아니, 근데 답답하다고 가버리면 안된다? "
데려다주는 건 할테니까. 카리나는 괜스레 자신의 머리에 믿음이 없어지는 듯 슬그머니 탄야의 얼굴을 살피며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답답하다며 가버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지만.
" 자, 탄야 선생님. 알파벳부터 잘 알려주세요. "
분위기도 풀겸 식당에서 했던 것처럼 두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감싸쥐어 양갈래 머리를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어보인다.
태어나기를 무뚝뚝하고 차분한 성품이었지만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으니 이렇게 되어버렸던거지. 귀염성에 대해 답한 것은 그의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책 표지를 쓸어내다가 손끝으로 툭 두드리며 뱉어낸 그의 숨에 달달한 바닐라향이 지독하게 섞여있다. 자신이 글을 배웠을 때를 떠올려본다. 알파벳이 하나씩 적혀있던 카드. 어린 손으로 그림책을 잡아들고 조르면 읽어주던 목소리. 어린 짐승에게 사냥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여물지 못한 어린 손으로 덥석덥석 집어대던 물건들의 명칭을 일러주던 목소리까지. 결코 다정하지 않던 그 목소리는 엄하다면 엄하고 어린 짐승이 견뎌내기 힘든 위압을 담고 있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던 그들이었다.
" 글은 반복하는 게 당연하니까. 네 눈에는 내가 그 정도의 답답함을 견뎌내지 못할 걸로 보였다면 유감이야. 이래뵈도 인내심이나 참을성은 형제들 사이는 물론 같은 동종 수인들 사이에서도 내가 으뜸일걸. "
당신에게서 받아든 노트를 펼치면서 탄야는 펜을 쥐었고 곧 펜을 움직여서 노트에 알파벳을 적어내려갔을 것이다. 일정하고 규칙적인 움직임과 종이 위를 스치는 펜촉의 소음이 뒷골목에 울린다. 흩어질 때쯤 다시 뒷골목을 메우는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향까지. 뒷골목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는 펜을 움직이다가 시선을 들었을 것이다.
" 나는 네가 그대로인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해. "
탄야가 다시 내미는 노트와 펜을 받아보면 부드럽고 깔끔한 글씨체로 알파벳이 처음과 끝까지 써있었고 간단한 단어 몇가지와 함께 읽는 방식이 함께 쓰여져 있었는데 그 모든 내용의 끝에는 「탄야 하멜」이라는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을 것이다.
" 아니, 뭐.. 네가 인내가 적다기 보단 내가 엄청 답답하게 할지도 모르니까. 딱히 나 똑똑하지 않아서. "
탄야의 말에 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인다.
" 어...? 어어... 그래ㅡ. "
그대로인 편이 좋다는 탄야의 말에 장난스럽게 양갈래를 해보이던 카리나는 멍하니 멈춰선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탄야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신기한 기분인 듯 했다. 그건 아마도 좋은 쪽으로.
" ... 좋아, 이정도야...! "
카리나는 탄야의 제안에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기세 좋게 검정색 가죽재킷의 소매를 끌어올린 카리나는 펜을 잡고는 집중하듯 눈을 부릅 뜬다. 천천히 종이로 다가가는 펜은 얼마나 집중을 하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삐뚤빼뚤 엉망인 글씨체였다. 하지만 알파벳을 적기 시작한 카리나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 봐, 봤어? 내가 글 썼어! 크흐~ "
어린 아이처럼 삐뚤한 글씨를 써내려간 카리나는 종이를 들어 탄야에게 보여주며 씨익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어보인다.
한숨보다는 음오아예... 시니컬하게 이 설표의 표현을 빌어보면 어여쁘기만한 인형?🤔 머리길면 머리채 잡히기 좋아서 숏컷이었다는게 지나치게 리얼하다. 맞는 말인데.. 그건 안정하고 있던 동부지역이나...소규모 조직 중에 카리나 친부가 있다는 떡밥을 남겨도 좋다는 뜻이렸다?
그는 그 순하게 생겨먹은 눈매를 가늘게 뜨는 것으로 당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이 배웠던 흐름과 똑같이 알려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조금 덜 엄하고 조금 더 무심한 태도기는 했지만. 글씨를 써서 되돌려준 노트에 글씨를 따라 적어내려가는 당신을 바라보며 탄야는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려 끄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값이 꽤 나가보이는 라이터를 손바닥 위에서 굴리고 있다.
" 세살짜리가 쓴 글씨같네. "
당신이 보여주는, 자신의 글씨 아래에 적힌 삐뚤한 당신의 글씨체를 보자마자 탄야는 거의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보였다. 이걸 펜 잡는 법부터 알려줘야하나, 뭐 거기서부터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담배 끝에 불을 붙히고 그는 바닐라향이 감도는 연기를 들숨과 함께 들이마신다.
" 글씨를 예쁘게 쓸 필요는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좋아, 잘했네. 따라쓰면서 읽는 법도 따라해보자. "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탄야의 대답에 멈칫한 카리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심 끝에 양심상 내린 결론이 두살 정도 끌어올리는 정도였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카리나의 양심이 탄야 앞에선 아직 잘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심한 대꾸를 한 카리나는 슬그머니 탄야의 눈치를 살피며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 프으~ 역시 나라니까. 식은 죽 먹기지. "
그래봐야 탄야가 쓴 것을 그림을 그리듯 따라서 쓴 것일뿐, 외우지도 못 했지만 일단 잘했다는 탄야의 칭찬에 입꼬리를 한껏 들어올려 새하얀 이를 드러낸다. 지나가던 7살 짜리 아이도 비웃으며 지나갈 것 같은 상황이었지민, 그래도 당당하기 그지 없는 카리나였다. 일단 한발자국 나아간 것이 큰 거라고 여기기로 합리화를 한 듯 했다.
" 좋아! 어디 그것도 금방... "
카리나는 그 기세를 몰아서 단어 읽는 것을 시작하자는 탄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삼십분 가량이 흐르고 난 후의 카리나는 퀭한 눈을 한 체, 평소에는.피지도 않았을 탄야의 담배를 빌려물곤 탄야의 옆에 쪼그려 앉아, 탄야의 다리에 기대어 있었다.
세살이나, 다섯살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당신의 대답을 듣자마자 탄야가 떠올려낸 생각이었다. 평소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탓에 흥미없어보이는 낯을 해보이는 주제에 당신에게 향하는 것들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관심이 생긴다는 것이 이런걸까.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에 흥미가 가지 않아서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을 가졌을텐데. " 세살이든 다섯살이든 내 눈에는 거기서 거기처럼 보여. "하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탄야가 중얼거렸다.
30분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뒷골목 벽에 그려져있는 조잡한 낙서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몇개의 담배를 태워냈다. 벽을 응시하고 있는 그 은청의 시선은 당신을 곧장 응시하며 대답하며 살피던 빛이 사라져서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이 무미건조해져 있었을 것이다. 맞물리지 않는 성격이나 분위기만큼이나 다르던 담배 연기는 이번만큼은 똑같이 달달한 바닐라향을 머금고 있었고 그는 제 다리에 기대서 바닥에 앉아 있는 카리나를 향해 무미건조하던 은청의 시선을 떨어트린다.
" 언어라는 건 주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거니까. 글을 읽고 쓰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한거지. 원래라면 유년기에 익혀야하는 걸 너는 지금 익히는 거야. "
그럴싸한 위로의 말은 아니었다.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그저 현실을 들이대는 문장의 나열들을 입 밖으로 내던 탄야가 여전히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당신의 체온이 닿아오자, 손끝을 살짝 움직여서 당신의 머리카락을 넘겨냈다.
그는 당신의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내렸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어지는 말에 대해서는 생각이라도 하는 양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인다. " 그게 보통이었나. " 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가 중얼거렸다. 보통 다섯살이 되어야 얼추 글을 읽는다는 게 평범한 거면, 하멜의 기준이 되는 수준이 꽤 높았다는 뜻이 되는데 말이지. 제 형제들이 글을 읽고 쓰는 걸 익혔던 게 몇살 때였나一 아니 자신이 글을 익혔던 때가 언제였지? 탄야는 눈을 가늘게 접어뜨며 떠올려보려 했다.
" 중앙과 동부는 서로 사정이 다르잖아? 옷 속에 나이프나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게 당연시되어 있는 주제에 제 자식들에게 글을 일러주는 중앙의 분위기가 이상한거지. "
무정부 시대로 접어든 이상 글이라는 건 의미가 없어졌는데 그네들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양, 혼돈과 혼란이 잦아들자마자 자식들에게 글을 익히게 했고 어느순간부터 그것이 너무 당연시 되어있었다. 덕분에 지역과 지역의 분위기와 격차가 커졌다는 게 그로서는 썩 반갑지 않았다. 먼 곳을 보며 당신의 머리를 넘겨주던 그의 가느다란 손끝이 잠시 멈춘다. 급작스레 닿아오는 분명한 타인의 체온에 물러나듯 손끝을 떼어내고 그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기대있는 당신의 턱 밑에 자신의 손을 대고 끌어올렸을 것이다.
" 반복하다보면 익힐 수 있어. 이제 시작해놓고 벌써부터 그러면 안되지. 무리라고 생각하면 그만둬. 강요는 안할거야. "
" 근데 알려주는게 맞다곤 생각해. 글을 쓸 줄 아는거랑 모르는 건 꽤나 다르거든. 생각하는 것부터. "
애들까지 나처럼 자랄 필요는 없지. 카리나는 픽 웃으며 말한다. 무엇이 되었든 더 많이 안다는 것은 힘이 된다. 그것이 생존이든, 권력싸움이든, 인간관계에서든 무조건 힘이 된다. 그러니까 배우는 쪽이 맞는거라고 생각하는 카리나였다. 이상한 것은 배우지 못하는 쪽인거니까.
" 아니야, 포기 안 해. 그냥 약한 소리 좀 해본거지. "
순간 턱을 들어올리는 탄야의 손길에 멍하니 올려다보는 카리나였다. 다시 한번 턱 끝에 저릿한 느낌이 스쳐지나간다. 그래서 아주 잠시, 카리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가 돌아오는 것 같았고, 그걸 티내고 싶지 않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애초에 한시간도 안 해놓고 관둘거면 너한테 부탁도 안 했을거야. "
끄응, 하는 소리를 낸 카리나는 탄야의 손을 잡곤 몸을 일으킨다. 서로의 몸에 닿는 것이 왠지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느낌이었지만. 몸을 일으킨 키리나는 기지개를 피곤 다시 탄야의 옆에 붙는다.
천천히 깜빡이던 눈을 가늘게 접어뜨면서 낮게 속삭였다. 이런 시기와 상황에 맞지 않는 교육방법이다. 그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시선 一그러니까 패권싸움에 불씨를 당기고 중앙의 질서를 확립했던 당사자, 권력자의 시선 一으로 보자면 맞는 방식이다. 언제까지 본능에 의거하여 생존을 꾀하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생존권을 지켜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알아야할텐데.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보장된다해도 그걸 사용할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인지.
" 네 끈질긴 점은 꽤 좋아해. "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과 어긋남없이 곧게 마주하던 은청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체온이 낮아 언제나 차가운 손끝으로 당신의 턱을 쓸어내듯 더듬던 그가 한숨과 닮은 짧고 무기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흘러가듯 낮게 속삭인 문장은 그의 진심일까, 아니면 언제나 묻어있는 바닐라향만큼이나 헛된 문장일까. 떨어지는 제 손을 잡는 당신의 행동에 그는 뿌리치거나 주춤거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기력하게 웃어보였던 것과 똑같이 무기력하게 제 손을 내줬을 것이다.
"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읽어줄테니까 따라해봐. "
당신이 몸을 기대오자 탄야는 당신의 손에서 손을 빼내고 노트에 적혀있는 내용을 처음부터 짚었다. 몇번이나 반복했을까, 주변에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산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야. 예전 세상은 그정도는 기본이었다며. 내가 이따구로 볼 것 없이 살아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똑같이 그럴 필요는 없지. "
탄야의 말에, 픽 웃은 카리나는 고개를 살살 저으먀 말한다. 이곳의 아이들이 살아남으려고 애쓰느라 영악하기도 하고, 애들을 살갑게 대할 정도로 유한 성격도 아니라서 애들과는 거리가 먼 카리나였지민 싫어하진 않았다. 카리나 본인이 악착 같이 살아온 것이 억울해서 똑같이 남들도 그렇게 살기.바라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살아온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왔다고 믿으려는 에고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 푸흐, 좋아하는구나? "
제 턱을 쓸어내듯 더듬던 탄야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곤 장난스럽게 단어를 조금 생략해선 되풀이 한다. 탄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은근히 가치가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이 되어서 저도 모르게 카리나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 후우.. 그래도 좀 익히긴 한 것 같아. 많이 남긴 했지만. "
짙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탄야에게 착 달라붙은 체로 공부를 하던 카리나는 기지개를 피며 웃어보인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밝아진 얼굴이었다.
예전세상一 이라는 그 단어가 어째서 이다지도 멀게 느껴지는지. 혼란과 혼돈으로 접어든 세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시대가 되었을 때 죽기를 열망했기 때문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탄야의 시선이 움직이며 먼 곳을 짚었다.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떠올리지 않으려하는 것 뿐이다.
당신의 말에 먼 곳을 짚어내던 은청의 시선이 당신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 그게 널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
의도적으로 단어를 생략하며 장난스레 되풀이하는 당신에게 그의 지적이 단조롭게 던져지며, 무기력한 사람과 같은 웃음을 거뒀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무관심한 이가 살아있는 생명체의 극히 일부분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될지도 모르지만. 주변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당신에게 글을 가르치던 그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다.
" 그림책과 노트는 가져가도록 해. 그림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아. "
데려다줄까, 라는 당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닌 그 전에 당신이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을 하며 탄야가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린다. 당신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행동에도 탄야는 잠시 골목 바닥을 향한 시선을 곧장 들지 않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번씩 그는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무기력한 행동을 보였으니까.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겨우 버티고 서있는 것처럼.
" 사양할게, 네 존재를 형제가 썩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 중앙으로 들어서봤자 좋은 것 없을거야. "
단조로운 탄야의 지적에, 푸흐흐 웃음을 터트린 카리나는 능청스럽게 농담을 이어간다. 뭔가 두사람 사이에서 농담이 오고 가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물론 카리나도 탄야가 그런 감정을 자신에게 품을 것이라곤 딱히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냥 탄야와 이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운 모양새였다.
" 알았어, 다음번 수업때까지 이 책 한권 정도는 읽을 수 있게 해볼게. "
숙제를 받는 아이처럼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카리나였다. 어차피 탄야를 만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딱히 하는 것도 없었으니 담배를 피는 것보단 훨씬 생산성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것이 은근히 즐겁기도 했다. 이런 걸 배움의 즐거움이라 하던가.
" 괜찮아, 괜찮아. 애초에 날 좋게 보는 사람이 있던 적이 극히 적은 인간이니까. 여기 밤길, 미친 놈들 많으니까 데려다줄게. "
자기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탄야 곁에 서는 카리나였다. 어차피 탄야가 돌아간 후에 딱히 할 것도 없었으니 마실 다녀오듯 다녀올 생각이었다.
😶 따라와도 좋다곤 했는데 이걸 진짜 따라올줄은.. 맙소사 중앙의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이 설표 형제들 이름도 안정했는데. 지금이라도 급조로 정해야겠는걸. 모욕은 너무 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닐거야. 성격이 파탄난 수준의 형제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답레는 음..출근길에 줄게.
날씨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확실히 겨울이네. 낮이랑 밤 온도차가 어떤지 모르지만🤔 일요일이야. 푹 쉬면서 충전하길 바래.
실없는 당신의 농담에 탄야는 변함없이 차분한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없는 농담과 영양가 없는 잡담은 자연스러운 흐름임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런 흐름도 당신이나 자신이 서로의 건드리지 말아야하는 부분을 입에 올리면 어그러질 흐름이다. 자신이 열망하는 것과 당신이 생각하는 건 대착점에 놓여있어서 맞물리지 않으니.
대답을 내놓거나 하지 않은 채, 탄야가 이어지는 말에도 고개만 끄덕여보일 뿐이다. 벽에서 몸을 떼어내면서 그 무표정에 얼핏 지긋지긋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형제. 그 지칭그래도 피를 나눈 혈육. 탄야는 잠시 제 형제들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가로젖고는 걸음을 옮겼다. 첫발을 떼며 담배를 꺼내 물던 그가 어깨를 으쓱인다.
" 一 마음대로 해.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 괜찮겠지. "
중앙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종종 당신이 건네는 잡담에 무덤한 어조로 그가 대답하는 잔잔한 대화의 흐름을 벗삼아서 들어선 중앙은 동부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정면으로 시선을 주면 저 멀리 하늘로 길게 뻗은 탑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도 주변을 살펴보면 밤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몸 어딘가에는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며 표정들은 제각각이여도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을 것이다. 당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눈표범 수인과 비슷하게.
" 탄야 ! "
어디선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옆에 있던 그의 무뚝뚝하고 차분하던 얼굴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살짝 찡그려지고 거의 동시에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마냥 주춤 멈춰섰다.
" 마중까지 나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
시선을 떨어트리며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에게 곧장 걸어오는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 미야. " 하고 이름이 불려진 상대는 그와 똑같은 눈표범 수인이었다. 그것도 탄야의 형제라는 걸 알려주듯 몹시 닮아있었고 탄야와 다른 점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은백색 장발과 고양잇과 수인답게 치켜올라간 눈매, 더불어 제법 장신에 드는 탄야보다 반뼘정도는 더 큰 키의 수인은 탄야의 어깨를 감싸듯 팔을 두르고 탄야를 안았고 탄야또한 자연스레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 너구나? " " 一 미야. "
얇고 가느다란 체형인 탄야를 끌어안은 채 놓지 않던 미야라고 불린 눈표범 수인이 당신을 쏘아보듯 똑바로 응시했다.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릴 때 몸에 딱 맞는 옷 위로 보일정도로 잘 발달한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탄야는 그런 형제 一정확히는 여동생의 행동을 저지시키려 감싸고 풀 생각이 없어보이는 팔을 누른다.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는 게 당신이 듣던 목소리와 달랐을텐데, 그 단조로운 목소리에 경고성이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리나는 탄야와의 잡담을 즐기며 느긋하게 밤산책을 하다가 찾아온 불청객의 부름에도 딱히 주눅 드는 기색이 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한다. 그도 그럴 것이ㅡ얼마나 신사적인가. 뒷골목에선 경고는 커녕, 갑자기 뒤통수 맞기가 십상인데 저렇게 대놓고 굴어주는게 오히려 맘이 편했다.
" 그나저나 가족은 가족인가봐. 둘이 닮긴 닮았네. "
으르렁대는 미야라는 이름의 수인을 싱글거리는 눈으로 응시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뭐, 분위기가 사납기는 했지만 지금은 일단 혼자도 아니었고, 탄야의 가족인 만큼 굳이 붙이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말을 듣거나 숙이고 들어가는 그런 것도 아니긴 했지만.
" 그래도 초면부터 그렇게 째려보고 그러지는 마. 중앙에선 몰라도 음, 그 밖에선 위험해. "
미야라고 불려진 눈표범 수인의 양팔에 감싸진 채, 탄야는 시선만 당신에게 시선을 움직인다. 여동생의 성향은 차분하고 무뚝뚝한 그와 정반대였다. 좋게 말하면 호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없었고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다혈질이라는 뜻과 일치한다. 즉 一 자신의 여동생이자, 중앙을 관리하는 하멜 가문의 주축 중 한명인 미야 하멜은 당신의 말에 유연하게 넘어가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과 같다.
" 동부 출신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중앙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신경에 거슬리는데 언니를 봐서 참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저게 진짜! 밖에서는 위험하다고 했어? 너 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어때? 동부출신. "
탄야는 제 형제들의 이런 면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동생인 미야 하멜은 자신이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겼던 그 때 피로 피를 덮어쓰는 싸움에 참가했었기 때문인지 중앙을 장악하고 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대형 고양잇과 수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프라이드여서 이해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당신에게 덤벼들 기세로 으르렁대고 있으나 탄야가 이름을 부르며 팔을 붙잡아서 그런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중이었다.
" 여기까지 마중나올 줄은 몰랐으니 내 불찰이야. 이건 사과할게. " " 사과하긴 뭘 사과해? 요즘 동부 움직임이 ...! "
당신에게 나직하게 대답을 중얼거리던 탄야가 움직인 건 순식간이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탄야 하멜은 매사에 무관심하며 무기력한 태도를 일관하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물론, 그의 소문 一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긴 당사자라는 소문은 당신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 내가 꼭 닥치라고 해야만 닥칠래, 미야 하멜. "
그토록 얇고 가느다란 그의 체형은 여동생과 비교하면 그 특유의 선이 두드러져서 체격 차이가 심하게 나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위기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다,
" 너야말로 나 알아? 중앙출신? 너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면서 주절주절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은데? 누구말마따나 탄야 동생이라고 하니까 참고 있는거야.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엔 가고, 하고 싶은 일은 내 마음대로 해. 중앙출신 따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동부에서도 이래라 저래라 안 하는데 말이야. "
아무래도 탄야의 성격과는 정 반대인 것은 카리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굳이 먼저 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저렇게 대놓고 이를 드러내며 위협을 하면 거친 곳에서 자라난 늑대도 결국 이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야의 말에 피식 웃은 카리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서서히 변해가면서 우습지도 않다는 듯 으르렁댄다. 아마도 탄야에겐 몇번 보인 적 없는 모습이지 않을까.
" 하씨, 동부의 움직임이고 자시고 나랑 연관도 없는데 말이야. 애초에 동부의 그 덜 떨어진 자식들은 지들끼리만 뭉치는데 애꿎은 나한테 난리야. "
동부의 패권을 쥔 것이 수인우월주의에 물든 수인들이라는 걸 뻔히 알지 않냐는 듯, 미야에게 보란 듯이 꼬리도 달려있지 않은 엉덩이를 보이곤 흔들어준다. 물론 설명을 해주는 것처럼 놀려먹은 것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탄야가 자신의 동생을 말리고 있었으니 덤벼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 하여튼, 밤산책이 나름대로 즐거웠는데 누가 와서 다 망쳐버렸네. 눈치도 하나도 없어선. "
당신의 이어지는 말은 미야에게 있어서 충분한 자극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고양잇과 수인 특유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야는 당신을 향해 적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런 개 一 " 라고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단어를 내뱉으려던 미야가 제 언니인 탄야의 시선을 눈치채고 입을 다물며 말을 집어삼키는 게 당신에게 보였음이 분명하다.
" 너도 그쯤해둬. "
힘을 준다거나, 압박을 줘서 위협하지도 않았지만 탄야의 나즈막한 속삭임에 미야는 불만스럽게 으르렁 소리를 내고 당신을 흉흉하게 노려보다가 뒤로 물러섰고 당신의 도발아닌 도발에 탄야의 시선이 당신에게 향했다. 늘 무기력하게 그늘져있던 은청의 시선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것을 당신은 봤을까. 못봤더라도 상관없을테지만. 수인 우월주의에 찌들은 동부의 수인들이 동부의 인간이랑 어울린다. 그 사실은 자칫하면 중앙의 一그러니까 하멜의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피를 흘리고 그렇게 희생을 치렀음에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패권다툼의 한복판에 있다. 그 사실이 그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 내 형제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 형제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점 또한 옳은 행동은 아니야. "
차갑고 날카로운, 한때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겼던 이의 시선이 주변에 멈춰서 기웃거리고 있는 이들을 천천히 살피듯 둘러봤고 당신에게 하는 말에는 질책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았다. 질책보다는 건조한 보고와 같은 뉘앙스.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미야가 탄야의 시선에 노출되자 그 큰 덩치에 안어울리게 귀를 납작- 머리 위로 눕히는 것은 당연하다.
추위×야간근무=실신 공식을 아주 철저하게 밟은거라서 괜찮아. 살짝 감기증세가 있는 듯 하지만 일특성상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럭저럭 건강은 괜찮은듯해? 여기서 무리만 안하면야? 그럼 내걸로 막레하자. 저기서 만약 길어졌으면 이번에는 탄야네 오빠가 나왔을지도() 오늘 수고했고 음, 약간 이쯤해서 큰 갈등 같은 걸 넣어서 진전을 줘야하나 아니면 이흐름으로 가야하나하는 고민이 있어.
몸은....뜨끈뜨끈한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물은 음, 음? 나름? 걱정하게 만든 것 같은데 진짜 무리하면 나는 이 스레에 일주일 동안 못올지도ㅋㅋㅋ그러니 괜찮아. 카리나주도 건강 주의하도록 하자. 오...그런가? 탄야가 있으면 되는건가.. 주변환경에 의한 둘의 갈등이 보고 싶은데 이걸 하다가는 저번처럼 탄야가 확 도망가버릴 것 같단 말이지🤔 게다가 주변 환경이라고 해봤자 카리나는 신경 안쓸테고 (이건 탄야가 신경쓰겠지)
그럼 괜찮을거야ㅡ. 이불은 무적이고 신이니까. 아하하, 일주일이나 못 온다니 카리나주는 말라죽을지도. 푸흐, 농담이고 아무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단거야~ 한명은 도망가고 한명은 신경을 쓰지 않는 이 난국을 어찌 하면 잘했단 말이 나오려나. 퇴근하면 머리 좀 더 여유롭게 굴려봐야겠다.
겨울 이불은 갓갓이니까. 최고야 부드럽고 따뜻해. 아프게 되면 미리 말해둬야겠는걸. 이래봤자 내 컨디션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걱정이 계속되면 안되니까 적당히 건강 챙길게.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치려는 탄야와 신경쓰지 않는 카리나...정말 이 둘을 어떻게 해야하나.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네. 퇴근 조심히해.
이럴 것 같더라니. 중앙- 그곳에서도 을씨년스레 치솟아있는 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멜 가문 소유의 건물에 들어서던 탄야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형제의 말에 반문했다. 어깨에서 반쯤 흘러내린 외투에 대고 있는 손을 멈추고 반문하는 그의 목소리는 스산하게 내리깔린다. 그것을 위압감이라면 위압감이라고 할 수 있을 거고, 우연하게 흘러들어간 뒷골목에서 시작된 웃기지도 않는 인연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 그, 아무튼 一 언제까지 친하게 지낼 셈이야? 언니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위험하다는 거 알고 있는거지? 아무리 그, 쪽을 동부에서는 신경안쓴다고 하지만 언니는 예외라고. 아니면 뭐야? 지금도 그때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는거야? " " ... 미야. "
형제의 이름을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머리 위로 납작하게 귀를 접고 불안하게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를 움직이며 말을 멈추지 않는 형제의 말에 그는 눈썹을 슬쩍 찡그리고는 걸쳐져 있던 외투를 마저 벗으며 검은색이 섞인 앞머리 부근을 손끝으로 흐트러트린다.
" 이제 괜찮아져도 되잖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아무도 언니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함부로 할 수 없는데. "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가던 형제와 그의 시선이 문득 허공에서 마주친다. 형제 - 미야는 그와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창백하게 얼굴 색을 바꾸며 경솔하게 지껄여버린 제 입을 다급히 틀어막았다. 미야는 직감했다. 자신이 얼마나 생각없이 말을 쏟아냈는지를. 그 은청의 시선에 깊게 뿌리박혀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미야는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원인은 이제 더이상 없지, 네 말이 맞아. " " 一 언니... " " 그렇지만, 미야. "
탑이 보이는 창문으로 걸어간 그의 은백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웃음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미야에게 닿았기에 납작하게 접혀있던 미야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 너는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잖아. "
그가 웃었다. 한숨을 쉬듯 짧게, 무기력한 사람마냥. 무력한 웃음이다. 언제부터 저렇게 웃었더라. 언제부터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미야는 떠올릴 수 없었다. 제게 있어서 제 언니 탄야 하멜은 무서울만큼 완벽했다. 분명 부모님이 제 언니를 두고 열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었지만 제 시선으로 보는 그는 무섭도록 완벽했는데.
짧고 희미하게, 무력하게 웃어보이던 탄야가 창틀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형제의 말이 맞다. 이제 더이상 자신을 비교할 원인은 없다. 수인우월주의 사상에 젖은 자는 남아있을지언정, 우성과 열성을 따지는 자는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 그, 언니, 나는.. " " 미안하지만 좀 쉬고 싶어. "
미야가 내밀어오는 사과의 제스처를 탄야는 단칼에 거부했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에 기대며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는 느릿하게 미야를 바라보고 있던 은청의 시선을 감았다. 명백하고 확고한 대화의 거부였다. 그 얼굴에 지긋지긋하다는 기색과 지독하게 지쳐버린 무언가가 언뜻 내비쳐졌다. 미야는 차마 말을 더 붙힐 수 없었다. 피를 나눈 혈육조차 이해할 수 없는 뿌리깊게 박힌 것. 겹겹히 쌓여버린 그것은 뭘까. 증오일까, 원망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일까. 미야는 제 언니를 이해하고 싶었으나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아버린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말라비틀어진 채 숨만 쉬고 있는 이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하는지 미야는 몰랐다.
" 그리고 一 "
다음부터는 말에 주의하도록 해. 도망치듯 방문을 열고 나가는 미야의 등 뒤로 단조로운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미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옳았다. 둔탁하게 닫히는 문소리에 그는 문 담배에 불을 붙히고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향을 한껏 들이마시다가 한손으로 제 눈가를 덮어냈다.
퇴근하고 귀가해서 일상주제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해봤어. 바로 전 일상에 탄야가 과보호(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를 받는 것도 카리나가 봤고, 탄야는 그런 형제들의 제지(라고 하고 호소와 비슷한)때문에 약간 중앙에 붙들려버려서 한동안 타의에 의해 못 만나다가 우연이든 카리나가 중앙으로 오든 어떤 연유로 만나는 정도의 일상은 어떨까.
탑과 가까운 위치, 근거리에 온통 새까만 건물이 주변 풍경에 녹아들지 못한 채로 우두커니 존재하고 있었다. 초창기 건물을 지은 인물이 대체 무슨 정신머리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궁금할만큼 검은색으로 덮혀있는 건물은 창문을 통해 새어나오는 불빛이나, 연결되어 있는 어둑한 가로등이 아니라면 그 곳에 존재하는지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지면에 내려앉는 어둠과 어울리는 을씨년한 건물.
그게 웃기게도 망자들이 건너는 강의 이름이 붙은 이 도시에서 유일무이하게 규칙이 존재하고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하멜가문이 기거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건물의 중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그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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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새까만 건물 외관과 다르게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은 하얗기 짝이 없었다. 자칫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새하얀 방. 최소한으로 놓여있는 가구들은 방의 주인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클래식하다면 클래식하고 오래되었다면 지나치게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가구들 가운데 열린 창문을 마주보고 놓인 티테이블과 1인용 소파 두개만이 주변 가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과 스타일인데 아마도 이것만이 방주인의 취향일 것이다.
방주인, 탄야 하멜은 1인용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열어젖혀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은백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타이밍에 맞춰 점박 무늬가 있는 귀와 길고 북슬북슬한 꼬리가 천천히 움직인다. 얼마나 이 소파에 앉아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티테이블에 놓여있는 유리 재떨이에 담겨있는 꽁초의 갯수, 그 아래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와인병의 갯수를 가늠해보면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형제들의 제지 一 아니, 부탁에 의해 최소한의 외출을 제외하면 그는 계속 자신의 방 안에 머물렀다. 과보호를 하고 있단 걸 인지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도 형제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제 스스로 숨을 끊을 자신이 없다는 것만이 형제들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일테지.
쥐고 있는 담배 끝에서 떨어진 재가 바닥을 더럽힌다. 감정이 보이지 않는 은청의 시선이 그것을 짚었다가 무심하게 열린 창문 옆 벽에 걸린 작자미상의 그림으로 향했다.
아침에 올리다고 했던 선레 늦새벽에 올려버리기(?) 답레는 늘 말하듯 천천히 줘. 저런 분위기의 방으로 괜찮나?🤔 암튼 저기에 클래식한 카펫까지 덩그러니 깔려있는데 아마 바닥은 평범한 느낌? 대리석은 아닐텐데. 흠🤔 최소한의 가구라는 건, 침대 옷장 서랍장 같은 풀옵션 오피스텔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정도인데 미국 브이로그에서 볼 수 있는 집 내부라고 설명할게.
카리나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어두운 골목을 나아간다. 평소의 위풍당당한 발걸음과는 다른, 그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어둠과 그림자에 숨어 중앙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은 최소한으로 눈에 띄는게 중요했다. 아예 누군가의 눈에 안 띄는 것이 최고지만, 그것까진 그녀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 어디 보자... 음, 이대로만 가면 되겠네. "
그림자 속에서 낡은 종이 한장을 꺼내 읽은 카리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리곤, 주머니에서 검은 두건을 꺼내 입가를 가린다. 매고 있던 낡은 검은색 가방을 고쳐 맨 카리나는 살금살금 이질감이 강한 중앙의 건물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담벼락 주변을 오가며 순찰을 돌고 있는 수인들을 발견하곤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느낀 카리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5분, 10분,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체 지켜보던 카리나는 교대시간인지 자리가 비워지는 것을 확인하곤 잽싸게 담벼락을 향해 달려간다. 펄쩍 뛰어 매달린 카리나는 한번 힘을 팍 주더니 능숙하게 위로 올라가 반대편으로 몸을 던진다. 정돈된 정원의 풀 위로 몸을 던진 덕분에 그다지 아프지 않게 내려온 카리나는 엎드린 체로 감시의 시선을 피해서 움직인다. 중간에 한번 걸릴 뻔한 것을 빼면 무난하게 목적지 바로 아래에 도착한 여자는 제이루중요한 것을 하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 할 수 있다, 카리나. 뒤져도 내 선택이다. "
자신을 다독이듯 중얼거린 카리나는 홀로 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올려다버곤 벽을 타기 위해 다가선다. 평범한 건물이었다면 밟을 곳이나 잡을 곳이딱히 없어 힘들었겠지만, 이런 곳엔 아이러니하게 그럴만한 곳이 어느정도 있었기에 조금 느리긴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위로 향하기 시작한다.
" 크흐... 힘들어 뒈질 것 같네 "
3분의 2가량 올라왔을 때에, 정갈하게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아주 조금 후회가 몰려오긴 했지만, 카리나는 다시 맘을 다 잡고 목적지의 테라스를 덥썩 잡는다.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테라스 난간을 잡고 올라선 카리나는 테라스 안쪽으로 몸을 던진다.
" 하아..하아... 선생님이 하도 안 와서 찾아왔어.. 흐흐.. "
땀범벅이 된 얼굴로 마침 쇼파에 앉아있던 탄야를 발견한 카리나는 씨익 웃어보이며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건낸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곤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내보인다.
단정하게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것에 무슨 의미가?🤔 답레는 천천히 써줄게. 내가 새벽에 퇴근하고 지갑을 분실하는 바람에 멘탈이 날아가서 잠을 제대로 못잤거든....ㅋㅋㅋ 분실신고는 다했으니까 걱정마() 아무튼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카리나에게서 한국인 오너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이대로 숨쉬는 것을 관두면 열망을 이룰 수 있을까. 열어둔 창문으로 뛰어내린다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고개를 기울여서 테이블 위에 놓은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탄야의 머리카락이 기울인 방향으로 흘러내렸다. 무기력하게 한숨과 닮은, 짧은 웃음을 흘리며 그는 의미없이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문다.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으면 이미 해버렸겠지. 스스로를 신랄하고 냉소적으로 지적한다. 지독하게 단 바닐라향과 와인에 담긴 알콜내음이 방안을 가득 메우다 못해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머리가 아플 만큼 지독했다.
잔에 아주 조금 담겨있는 와인을 삼켜낸 뒤, 그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했다. 자신의 방이었으나 탄야는 즐겨입는 평상복보다 노출이 덜한 실내복 차림이었다. 그래도 그 어깨와 뒷목을 드러내고 있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창문을 이용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는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소파에 푹 파묻었을 것이다. 감정 기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의 모습을 살피다가 곧 가늘게 변한다.
" 너 一 "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듯이 그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그 감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늘게 접으며 뜨고 있던 은청의 시선을 감고 탄야는 잠깐 담배를 쥐고 있는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누구든 말을 잃기 마련이듯 지금의 그도 할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 무모한건지, 바보인건지. " 라는 말을 무감하게 중얼거리며 그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당신에게 접근했다. 지독하게 달디단 바닐라향이 짙었을 것이다.
" 나는 당당하게 찾아오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아니었나봐? "
그림책을 꺼낸 당신의 팔꿈치 근처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기며 담배를 쥐고 있는 다른 손으로는 당신의 뒤로 뻗어 창문을 닫느냐고 당신과 그의 거리는 꽤 가까웠다. 질책도 하지 않고 그저 감정기복이 적은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탄야의 귀가 닫혀있는 방문 쪽을 향해 젖혀졌다가 되돌아온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조용한 은청의 시선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거침없는 성격인 카리나로서는 대놓고 정문으로 방문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이지만 이번에는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것은 오로지 탄야 때문이었다. 지난번 마야와 부딪친 후의 탄야의 기분을 조금은 느꼈던 카리나는 마야와의 접촉은 최소한으로 하려던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을 탄야가 반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단순한 카리나의 생각 속에선 이 방법이 최적의 방법이었기에 이렇게 벽을 타고 올라와 탄야의 방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 당당하게 찾아오면 그, 마..마...아무튼 네 동생이 또 발작할 것 같아서 몰래 왔지. 아마 어지간한 사람들은 못 봤을걸? "
갑갑한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검정색 복면을 풀어 손에 쥔 체,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탄야에게 환하게 웃어보인다. 방주인은 속이 뒤집어지고 어안이 벙벙할텐데, 무엇이 그리 태평한지 카리나의 새하얀 이가 그 자태를 탄야에게 뽐내고 있었다.
" 들어올 떄 표정보니까 많이 무료한 것 같던데, 잘 온 거 같네. 그동안 뭐 하느라 안 왔어? "
카리나는 탄야의 어꺠를 토닥여주며 키득거리곤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탄야의 얼굴을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반가운 모양이었다.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감정이 적어보이는 얼굴이었다. 당신을 지나쳐서 창문을 닫은 후에야 그 무감한 표정을 지은 채로 " 미야. " 하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형제의 이름을 정정해줄 뿐이다.
" 그건 발작이 아니라 걱정이라고 부르는거야. "
일정한 음정과 일정한 톤으로 말을 덧붙혔다. 환한 웃음을 마주하는 사람이라 하기에, 여전히 탄야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닫혀있는 문 밖의 기척을 살피는 듯 그의 한쪽 귀가 다시금 움직였다. 당신의 말을 듣는 그의 감상은 한가지였다. 뻔뻔하지. 그는 당신의 몸에 대고 있던 자신의 손을 흘려내듯 떨어트리며 당신에게서 거리를 두려다가 당신의 행동에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고 바라봤을 것이다.
" 내표정은 항상 그러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고. 一 그러게. "
1인용 소파로 되돌아가는 탄야의 긴 꼬리가 낮은 위치에서 흔들흔들 움직였다. 탄야는 소파에 몸을 가라앉힌 뒤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끄며 비스듬히 턱을 받치고 당신에게 시선을 준다. 당신을 향한 감상에는 변함이 없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불청객이지. 고작 그런 이유로 저 벽을 타고 중앙까지 숨어들다니, 뻔뻔하고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 그러게. " 하고 탄야는 한박자 느릿하게 단어를 뱉어냈다.
" 무모한 짓을 했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언제가 됐던 만났을텐데. "
새 담배를 끄집어낸 손으로 탄야가 당신을 향해 맞은편 소파로 손짓을 해보였다.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태도였지만 여유로운 지배층의 모습이 언뜻 드러났다.
말을 덧붙이는 탄야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쪽까지 데리러 와서 그런거면 모르겠는데, 제 집 앞에서 그런 걸 보니 충분히 발작이 맞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 이유까진 딱히 덧붙이지 않고 새하얀 이를 환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 원래 인생이 다 그런거야. 다 계획처럼 되면 삶이라는게 지겨울거란 말이지. 가끔은 위험한 짓도 해줘야 한다고. 나야 사실 자신 있었으니까 상관없었지만. "
물론 벽을 중간쯤 올랐을 무렵엔, 걸리는게 아닐까, 괜히 이리로 왔나 하는 후회가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카리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야는 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못 봤으니까 자신만 아는 사실로 하기로 했다. 돌아갈 때는 탄야의 도움을 받을까 하는 갈등은 남아있었지만.
" 그리고 최근에는 네가 와줬으니까 이렇게 내가 오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
탄야가 손짓한 쇼파에 털썩 앉은 카리나는 생각 이상으로 폭신한 그 감각에 놀란 듯 눈이 커진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처엄 푹신함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만끽한 카리나는 턱을 괴고 말한다.
" 확실히 이런 곳에 있으니 달라보이네. 신기하긴 하다. 그래서 동생이 못 나오게 한거야? "
당신에게 대꾸하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마치 혈육이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뉘앙스가 미묘하다. 확실히 타인의 눈으로 보면 발작으로 보이나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탄야는 눈을 가늘게 접어 뜨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다.
" 그게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게다가 그 무모한 짓을 하는 너의 자신감에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
요약하자면, 무모한 짓을 한 주제에 뻔뻔하게 구는 거 아니냐고 나무라는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탄야 하멜이다보니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담담하기 짝이 없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다보니 더욱더. 한쪽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가 내리며 그는 담배에 불을 붙히고 연기를 길게 마셨다. 이어지는 당신의 행동과 말에 그가 한숨처럼 짧게 웃는다.
변함없이 무력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는 소파 팔걸이에 담배를 쥔 팔을 늘어트린 채, 은청의 시선을 잠깐 감고 말을 흘렸다.
" 보통 그걸 찾아온다고 하질 않는데. "
무력한 웃음과 몹시 닮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탄야는 감았던 눈을 뜨고서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아마도 와인잔을 하나 더 꺼내오려는 생각인 듯 했다. " 질문의 의미를 잘 모르겠는걸. " 하고, 들릴듯말듯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탄야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은청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는 서너점의 이름없는 화가의 그림에 박혔다가 느릿히 당신에게 향했다.
" 동생이 왜 못나오게 했냐는 질문이야, 아니면 동생이 못나오게 했냐는 확인이야? 一뭐.. 어떤 의도던지, 내 대답은 비슷할테지만. "
" 뭐, 가정사는 어쩔 수 없는거지만.. 갑자기 초면부터 그렇게 막 들이대니까 부담스러웠단 말이야. "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굳이 탄야의 입에서 가정사를 캐묻고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정도로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카리나는 캐묻기 보다는 본인이 직접 말할 마음이 들면 이야기를 듣는 쪽이 더 맞았다. 애초에 저 탄야를 대화로 설득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카리나는 본인의 머리와 말재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안되는 건 안되는거니까.
" 자신감 하나로 먹고 사는데 이정도는 기본이지. "
나무라는 탄야의 말에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아마도 지금 자신을 나무라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당당할리가 ㅇ벗었으니까. 물론 한쪽 눈썹이 치켜올려질 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긴 했지만.
" 뭐어, 뭐어... 어느쪽이 맞냐고 말하자면 둘 다 비슷하긴 한데.. 이렇게 된 김에 다 말해주면 좋겠다. 아, 마실래. 안그래도 벽 타고 오느라 목 말랐어. "
카리나는 늘어지듯 쇼파에 앉아선 한숨 돌리더니 와인잔을 꺼내러 가는 탄야의 말에 웅얼웅얼 대꾸한다. 벽을 타고 올라오는 일과 긴장하고 있던 몸이 슬슬 풀어지는 모양이었다. 묶고 있던 머리도 풀고 싶은 듯 했지만 묶을 때 걸렸던 시간을 생각하니 머리끈으로 향하던 손을 도로 내려선 뺨을 만지작거린다.
" 그래도 이렇게 너 찾아와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치? 이거 완전 고마워 해야돼. "
키득키득, 카리나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개구쟁이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뻔뻔하기 그지 없는 작태였지만, 어찌보면 낯선 탄야의 방에서도 평소와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는 단조로운 뉘앙스로 중얼거려보였다. 그걸 가정사에서 시작됐다고 말해야할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 애의 성격에서 시작됐다고 해야할지 짐작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짐작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살아숨쉬는 모든 것과 쥐고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으니. 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 은청의 시선에는 그 어떤 감흥도 비춰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감흥없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에게 잠시 머무르다가 대답없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와 비슷한 속도로 걸음을 옮긴다. " 둘다...인가. " 하고 탄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투명한 와인잔과 새로운 와인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 하멜 가문의 벽에 타고 오를만한 지지대가 있었나.. 어쨌든, 어느쪽이든 대답은 똑같아. 아마 一 내가 바라는 것 때문이겠지. 아마가 아니라, 분명히 그 이유일테지만. "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생각하는 바램. 다음날에는 눈 뜨지 않는 것. 스스로 숨을 끊어낼 용기는 없는 주제에 열망하고 집요하게 바라고 있는 것. 당신도 알고 있는 그의 소망이 그의 형제로 하여금 그를 과보호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손에 든 새로운 와인잔과 와인을 티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탄야는 당신이 만지작거렸던 머리를 묶은 머리끈에 손가락을 걸었을 것이다.
" 나는 찾아와도 좋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불청객처럼 굴건지. "
당신의 웃음에 무기력한 웃음이 섞였다. 당신이 제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머리끈에 걸고 있는 손을 움직여서 머리끈을 풀어냈을 것이다.
" 꽤 어울리지만, 이쪽이 자연스러워서 더 낫다고 생각해. "
머리끈을 당신의 앞에 놓아둔 뒤 탄야는 도로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로 걸어가서 새로운 와인을 따서 당신과 자신의 와인잔에 따른다.
카리나는 탄야의 말에 키득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한다. 머리끈을 풀어내는 손도 막지 않고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 탄야의 삶 속에서 언제나 불청객이란 의미를 지닌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쁜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탄야의 불청객이란 단어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어보일 뿐이었다. 물론 자기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크흐흐, 나도 푼게 편하긴 한데. 몰래 숨어서 다니려면 묶는게 편하거든. "
이거 풀면 강아지 꼬리 같아서 눈에 잘 띈단 말이야. 카리나는 장난스럽게 풀린 머리를 흔들어서 살랑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보이곤 작게 웃으며 말한다. 아마 밖이었다면 크게 웃었을지도 모르지만, 숨어든 입장이란 건 잘 알고 있는지 소리 죽여 웃는 카리나였다. 그정도 교양은 있는 여자였다. 아무튼 탄야가 놓아주고 간 와인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도수 센 술은 아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 나 안 왔으면 뭐 하려고 했어? 잠자기? "
카리나는 있는 것이 별로 없는 탄야의 방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턱을 괴곤 궁금한 듯 묻는다. 눈 앞의 여자는 자신을 만나지 않을 때, 그러면서도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무엇을 할까. 언제부터인가 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까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탄야에 대해 물을 뿐이었다.
" 불청객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닥치고, 그걸 알고 있는 주제에 태도는 변함이 없어서 더 뻔뻔한 불청객. "
감흥도,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명확한 사실만을 짚어내듯 탄야의 목소리는 담백하기 짝이 없었다. 불청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밀어내거나 거부의 태도를 명확하게 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부하고 밀어내는 행동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 좋은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몇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보면 어느쪽인지 인지하기 힘들다. 탄야또한 그런 타입이었다.
" 여기서 나갈 때는 제대로 문을 통해서 나갈거니까 그냥 그대로 있어. 하멜가문의 벽을 타고 오를 정도로 겁없이 행동해놓고 그런 태도를 하는 건 꽤 웃긴데. "
와인에 곁들일 간단한 스낵류가 없는 건 그저 그의 버릇이다. 애초에 그는 취할 정도로 마시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제 와인잔을 들어 내용물을 비워내고 잔을 채우면서 그는 중얼거리고 다시 와인잔을 입에 가져다대고 당신의 말에 가늘게 은청의 시선을 접어뜨며 가만히 마주 바라봤을 것이다.
" 그림감상? "
티테이블에 와인잔이 부드럽게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짧게 울려퍼지고 당신을 보던 은청의 시선이 멀고 먼 어느곳을 짚어내듯 방향을 바꿔냈다. 당신의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바 없다. 그는 항상 그랬다. 그에게서 당신에 대해 묻는 질문은 열손가락에 꼽는 정도였지만, 당신이 그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거부감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가 대답을 피하는 건 가정사와 스스로가 집착하는 열망에 대한 것 뿐.
"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나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나갈 수 있을만큼 자유로운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
이미 삼한사온으로 천천히 다가와줬다고 우기지 않을까😶 짐작일 뿐이지만 말이지. 이런 날씨에 마스크로 가리지 않는 부분은 칼바람 냉기에 버석해지고. 여름만큼 겨울도 싫어. 작년에 비해 지나치게 대조되는 날씨라 할말을 잃었습니다. 한반도 날씨의 변덕이란. 내일 또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던데😒
탄야의 말에, 그저 재밌다는 듯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에 카리나의 삶에서 초대 받은 적이 몇번이나 있던가. 그녀는 모르겠지만 태어났을 때마저도 초대 받지 못한 손님이나 다름없었는 것을. 그래서인지 불청객 취급에도 카리나의 반응은 그저 탄야의 투덜거림(?)이 즐거운 듯한 모양새였다.
"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잖아. 그런거지. 푸흐, 숨어든 사람의 위치 정도는 잘 아니까. "
탄야의 가늘어진 눈에 뺨을 긁적이며 쓴 미소를 짓는다. 대담하게 숨어들긴 했지만 딱히 대책이나 생각해둔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대성공해서 탄야의 앞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은 카리나였다. 물론 그 꼴을 보고 있는 탄야는 탐탁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 잠깐잠깐, 애초에 여긴 들어오는 것도 자유로운 곳은 아니잖아. "
카리나는 탄야의 말에 고칠 부분이 있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한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와인잔을 단번에 비우더니 몸을 일으켜선 탄야에게 다가간다.
답을 쓰기 어렵다보다는 이놈의 설표가 카리나에게 관심(이라하고 호감도라고 한다)을 가지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애먹고 있어. 이정도로 호감도가 관심이 안잡히는 애는 처음인듯. 탄야가 좀 템포가 늦되먹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감정기복이 적어서 인지..😶 아무튼 써봐야지... (대략 자아끼리 머리채 붙들고 싸우는 짤)
" 알고 있으면서 계속 그러는 건 악취미라고 생각하지만 네가 그러는 거에 대해 내가 이래라 저래라할 입장은 못되니까 네 편한대로 해. "
저렇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데 왜 저 태도는 변하지 않는지. 잠깐 생각하던 탄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보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꼴 하나 없는데다가 제멋대로 군다고 생각하기 좋은 저 마이페이스적인 면이 자신으로 하여금 당신을 불청객이라고 판단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불이 붙은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그는 여전히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뜨고 있었다. 불청객이라는 평가에 변함은 없는데 자신은 어째서 당신을 내치지 못하고 있을까. 당신의 말에 그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침묵으로 당신의 말에 대한 그정을 표한 걸지도 모른다. 그 속내는 모르지만. " 내 집이야, 여긴. " 하고, 언젠가 당신이 들어봤을지도 모르는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는 대꾸했다.
" 외부인이 들어오는 게 어려울 뿐이지, 내부인에게는 너그러운 편이고. "
이어지는 그의 말은 무감정하리만치 단조로웠다. 발버둥을 치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에 들일 힘마저 모두 소진해버린 이와 비슷한 표정으로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당신을 가만히 응시했을 것이다. 끝까지 책임지라고 강요받는 이름이 없는 이가 할법한 이야기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당신을 바라보던 탄야가 한숨처럼 짧고 무기력하게 웃는다.
" 도와줘? "
네가 나를? 담담하게 단어를 중얼거리며 무기력한 웃음을 짧게 흘려낸 그가 느릿하게 소파에서 자세를 바꿨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은청의 시선이 가늘었다. 그 시선에는 늘 같은 것이 깃들어있었을 것이다. 분명 당신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감정과 그 외의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당신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죽지 못하고 겨우 살아가고 있는 반시체?
" ...참 쉽게도 이야기하는구나. "
그는 다시 무기력한 사람마냥 웃었다. 짧은 웃음이 잦아들 때 담배를 재떨이에 걸쳐두면서 그가 팔을 뻗었고, 피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팔꿈치를 쥐어 앉아있는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의 감흥없이 빛나던 은청의 시선이 일순 사납게 바뀌었다.
" 처음 만났을 때도 말했을텐데. "
탄야는 잠깐 말을 끊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 내가 가장 열망하고 있는 것을 주지 못할거면 내버려두라고. " 하고 그가 끊었던 말을 잇는다. 사납던 시선은 특유의 순한 눈매로 인해 금새 기세가 시들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긋지긋하고 지쳐있는 기색이다.
언제나처럼 이 주제가 나오면 사나워지는 눈 앞의 수인을 보며 태연하게 기죽은 기색 하나도 없이 웃어보인다. 그리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제 손으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 나도 말했었잖아. 직접 죽여주진 않더라도 네가 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은 도와주겠다고. "
많잖아, 네가 안 해본 것들. 카리나는 몇가지를 꼽아보려는 듯 제 손바닥을 응시하다가 이내 생각이 잘 안 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러나 저러나 탄야가 있었던 위치에선 못 해봤을 일들이 저 밖에는 무궁무진할게 분명했다. 적어도 밖엔 카리나도 모르는 일들이 참 많았으니까.
" 그리고 네 말마따나 내가 죽인다고 쳐. 지긋지긋하고 미련 없는 이곳에서 뒤지고 싶어? 그 유령인지 뭔지 믿는 애들은 뒤진 자리에 유령이 남는다던데. 또 여기에 남으면 어쩌려고. "
어우, 그러면 진짜 토나오겠다. 카리나는 장난스레 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해보이더니 이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시선을 창문 밖으로 옮긴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거리를 응시하고, 그 너머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곳을 바라본다.
도와준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그는 전과 달리, 시선을 돌려내지도 않은 채 당신을 향해 고정하고 있었다. 사정이 나아졌다고 한들 아직까지 혼란한 시대다. 정부가 없는 혼란의 시대 위에 몇몇 명문가의 재력과 권력으로 쌓아올려낸 질서와 규칙은 모래성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데, 그런 시대에 타인을 덥석 덥석 믿을 수 없지 않은가. "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면 했겠지. " 하며 사나운 기세를 거두며 탄야는 한숨을 토해내고 중얼거렸다.
" 너는, 스스로 숨을 끊어낼 자신도 없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찾아다닐 의욕이 남아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
방금의 한숨과 사뭇 결이 다른 한숨이 그에게서 새어나왔다. 짧고 단조로운 한숨, 그 뒤를 이어서 예의 그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는 검은색이 섞여있는 앞머리를 헤집듯 쓸어낸 뒤에 당신의 팔꿈치를 붙들고 있던 손이 소파 팔걸이 위로 떨어졌다. 스스로도 자각은 있다. 지금 지껄여대는 말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 정도는. 기대듯, 탄야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희미한 연기가 비쳐보이는 천장을 향해 은청의 시선을 올렸다. 당신은 정말로 불청객이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비집고 들어와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헤집고 들쑤셔대면서 도와주겠다는 말을 뻔뻔하게 한다.
당신의 불청객은 여전히 뻔뻔하기 그지 없는 작태로, 눈 앞에서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분명 잘 꾸민다면, 어딘가의 여종업원들처럼 분을 칠하고 입술을 짙게 물들이면 손님이 꽤나 끊이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미모를 네 앞에서 뻔뻔하게 뽐내면서 다시 말을 돌려준다. 바보 같은 말이었다. 분명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자꾸 말장난을 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말을 도로 던진다.
" 뒤지고 싶다며. 그럼 뭐라도 해봐야지. 눈 앞에서 죽여달라는 걸 매몰차게 거절한 여자가 이렇게 놀리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늘어져 있을거야? "
우습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약간의 비웃음을 띈 눈으로 탄야를 응시하는 카리나의 눈은 날카로웠다. 빈말인가 하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은 카리나가 그렇게 요령 좋은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사실은 뒤지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 좋은 집에서 천년만년 사랑하는 동생 같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거 아냐? "
씨, 동화책이나 읽어달라고 하려고 왔는데. 작게 투덜거리듯 중얼거린 카리나는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가 도로 탄야에게로 되돌린다.
" 밖에 나가서 안 하던 짓 하면 니가 바라던대로 뒤질 수 있는데. 같이 가준다니까? 묫자리까지? "
가감없이 불청객이라고 지칭하는 주제에, 거부감을 표하지 않고 내쫒지도 않는다. 그런 행동을 할 기력도 없다는 양. 탄야 하멜이라는 이름의 수인은 그런 존재였다. 다른 이의 눈에는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갈 당신의 외견에도 그는 언제나 늘 이런 식으로 무기력하며 금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신의 말과 행동에 무력하게 반항도 하지 않고 줄기차게 휘둘리거나 맥없이 끌려다니지는 않으니 우스울따름이다.
" 그래서 가끔 생각하는 게 있어. 차라리 이 손으로 널 죽인다면 어떨까 一 하고. "
한숨과 닮은 무력한 웃음이 짧게 울려퍼진다. 내뱉는 말의 내용은 어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달라질 것이다. " 그렇게 하면 이 의미도 없는 문답도 할 필요없을텐데.. " 하며 탄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과 다르게 그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의외일까. 물론, 당신의 이어지는 말에 그 순해빠진 눈매를 가늘게 접어뜨고 당신을 바라보던 그가 맹수 특유의 예리한 엄니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어버렸을 것이다. 그 반응은 그래, 꽤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은 명백히 '보통 사람' 이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당신에게는 그의 반응이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탄야 하멜이라는 이름의 수인이 보여주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일테니.
아니여도 상관없다.
" 내가 너의 사정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듯이 너또한 나의 사정에 대해 모르는 상태라면 단어를 선택하는데 주의하도록 해. "
이번에도 좀 와...오....이게 죽을 것같다는 건가? 하는 심정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떠올리고 온거라 할말이 없네. 앞으로는 일주일 정도 늦어지겠으면 레스 남기도록 노력해볼게🙏 아, 그리고 1월 1일은 내가 특근이라서 쉬지 못한다는 걸 미리 말할게....() 답레는 편할때 줘. 아마 내일도 오후까지 정신 못차리고 기절해있을거 같으니까😶 한달 근무 스케줄이 미리 나오는 직군은 스케줄의 노예임. 암튼 그럼ㅋㅋ 시간도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인사는 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야.
요새 계속 아슬아슬한 녀석이었지.. 껐다가 키면 화면이 하얗게 된다던가🤔 보내줘야지 하면서 중고폰 한대 마련했는데 녀석이 갈때를 알고 갔어. 덕분에 휴일의 절반을 날리고, 내 수면시간도 같이 날아갔지ㅋㅋ 하..☹️ 이것저것 세팅 다시 하고 그러는 중인데 신분증 아직 안만든것 때문에 은행 어플과 그 외 기타등등은..(말을 아낌)
무력한 웃음과 함께 들려오는 탄야의 말에도,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카리나는 웃어보인다. 정말이지. 그런 말에 겁먹기엔 둘이 봐온 시간이 좀 길었다. 아마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었다면, 정당방위랍시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카리나는 이어서 들려오는 맥 빠진 미소와 말에 한숨을 푹 내쉰다.
" 그럼 그 사정이란 것에 대해서 좀 알자. 그렇게 꽁꽁 숨겨놓고 ' 아, 이녀석.. 내 사정을 알아줬으면.. ' 하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
카리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휙휙 젓고는 설마 하는 눈으로 탄야를 응시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로 답답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거라고 믿고 싶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다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입술을 깨문 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던 카리나는 한숨을 내쉰다.
" 내 사정.. 내 사정은 뭐 없는데. 아버지랍시고 특정지을 사람이 너무 많은 이름 모를 여자의 딸로 태어나서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버려졌고, 저 더러운 뒷골목 바닥에서부터 살아남겠다고 뭔지 모를 것들을 줏어먹으면서 자랐어. "
카리나는 일단 네 말마따나 사정을 모르기에 어떤 말도 못 하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듯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나간다.
" 뒷골목이란게, 애들도 가차없거든. 아니, 그 뒷골목 거렁뱅이들한테는 어린 아이들만한 것도 없지. 그런 곳에서 살아남겠답시고 들개처럼 살았어. 무기가 있으면 뭐가 됐든 휘둘러대고, 무기가 없으면 이빨로 물어뜯고, 할퀴고, 잡아뜯고 별거 다 하면서 살아남았어. 하도 두들겨 맞아서 열병에 시달려서 간신히 살아났을 떄도 있고, 아주 안 좋을 일을 당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벗어난 적도 있고.. 뭐, 그런 식으로 살았어. 그 결과물이 눈 앞의 나야. "
자세히 말하자면 비참하기 그지 없는 일생의 연속이었겠지만, 카리나는 남 이야기를 하듯 덤덤했다. 그저 그랬을 뿐이라는 듯,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차분하기 그지 없는 표정이었다.
" 그래서 넌 말해줄 생각이라도 있어? 내 더럽고 아무것도 아닌 삶에 대해선 다 들었는데. "
헛점이나 파고들어도 다치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건드려보면 의외의 곳에서 두터운 가드를 맞이하는 건 맞잖아. 본격 오너가 분석하기 어려운 캐릭=탄야라는 공식은 정설이야...🙄 탄야랑 그렇게 지내고 싶으면...아마 카리나가 일탈하자던가 하는 말은 한동안 접어두는 게 좋을지도. 지금 탄야는 카리나한테만은 의외로 너그럽고 더 이리저리 휘둘려주고 있는데 이걸 조금 눈치챈 상태로 볼 수 있어.
탄야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지어보이는 그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니 一 그보다 더 그늘진 어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지친듯, 지긋지긋하다는 듯. 당신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매순간 증명받는 느낌이었다. 이런 시대가 되기 전에 강제로 증명당해버렸던 그 순간처럼. 너는.. 아니, 나는 이 숨이 끊기기 전까지 열성이라는 유일무이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하고. 강요받은 이름이 가진 무게와 뇌리에 새겨져서 가끔씩 목을 죄는 콤플렉스에서 오는 진절머리나는 괴리감과 그것에서 오는 모든 것들을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사정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당신의 말에, 그는 쉬이 말을 혀끝에 올리지 못한 채 입을 다물어 침묵을 유지하고 와인잔에 채워진 와인을 비워낸 뒤 상온에 놓아둬서 미지근해진 와인병으로 손을 뻗었다. 타들어가는 담배에 매달려있던 잿뭉치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한점, 지저분한 흔적을 만들었으나 그는 신경쓰지 않고 있다. 뒤이어 당신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탄야 하멜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그것에 개인적인 감상을 얹지 않는 성미였다. 정정한다. 남아있는 감정조차 말라비틀어져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인 탄야가 그것이 가능할리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의 이야기였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프라이빗한 당신의 이제껏 살아온 삶의 일부분을 정면에서 듣고 있는 존재는 그런 수인이었다. 감정이 말라비틀어진 수인은 당신의 이야기를 다소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
" 너랑 나는 닮은 점이 없어. 그럴리가 없다고 대답할테지만, 그런 곳에서 살아온 너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걸. "
태어난 곳도, 자라온 배경도, 지금 있는 위치도 전부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없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당신과 자신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둘 중 누가 죽어버리는 순간까지 없을 것이다.
"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으니 원래 이런 성격이라고 이야기해둘까.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
카리나는 픽 웃으며 닮은 점이 없다는 탄야의 말에 대꾸하며 손가락으로 자신과 탄야를 번갈아 가리켜보이곤 어깨를 으쓱한다. 애초에 닮았다는 감상 같은 건 없었으니까. 아니, 적어도 자신은 저렇게 무미건조한 인간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카리나였으니까. 저 모든 것에 초연한 모습은 절대로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애초에 닮았다는 마음 따위는 가져본 적 없었다. 닮았다는 이야기를 제 입으로 먼저 꺼냈다가 탄야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는 것도 있었지만.
" 콤플렉스.. 음, 어려운 말은 잘 모르는데. 아무튼 네 말에 따르면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거지? 진짜 베베 꼬였네. "
카리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마음을 열어줘야 하는데,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해봐도 벽을 치고 밀어낸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에게 공감해주길 바라는 저 모습은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죽고 싶다면서도 죽는 것 마저도 제 손으로 하는게 아니라 남의 손을 빌리고자 하는 어린 아이. 그 안에 어떤 것이 숨어있기에 저러는 것인지 지금도 카리나는 알 수 없었기에 답답했다.
" 있잖아, 나는 너랑 다르게 멍청해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잘 하지도 못하고? "
카리나는 자신을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탄야에게 다가가 그 다리 위에 올라앉고선 천천히 손을 뻗어 탄야의 머리를 쓸어내려준다.
" 그래서 다시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온 것 같네. 여기, 이 자리에서 죽으면 만족하겠어? "
체감온도가 꽤 차더라. 감기는 필수불가결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답레 서둘러서 안써도 됐는데 고생했어. 대신 내쪽에서 답레가 늦을 것 같다는 점을 알리도록 할게...아마 길면 저번과 같은 기간,짧으면..사나흘정도로🙏 어제 퇴근 후에 잠을 거의 못잔 탓에 오늘 퇴근하고 나면 기절할 것 같거든. 갱신해두고 갈게.
당신의 말이 그의 귀에 와닿았다. 그 말이 맞다. 닮은 구석은 단 하나도 없다. 외형을 포함해, 좀 더 근본적인 것들도 모든 것들이 닮지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이와 어떻게든 살고 싶어하는 이가 닮는 것 자체가 우스울 따름이지만. 탄야는 천천히 담배를 쥔 손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느리게 연기를뱉어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담배 끄트머리에 머물러있는 불꽃이 꼭 제 꼴과 비슷해보이는 건 착각일까.
" ...그렇다고 해두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
재떨이에 처박은 담배가 숨을 다했다. 희뿌연 회색 연기 한줄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다가 사라진다. 그것을 가만히 은청의 시선으로 응시하던 그가 들릴듯 말듯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였다. 당신의 말대로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건가. 그것도 아니면 환경이 이렇게 만들어버린건가. -어느쪽이든 이제는 떠올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해묵은 것이다. 오래도록 머물러있던 재떨이에서 손을 떼어내고 탄야는 와인잔을 쥐려다가 잠시 정지했다.
자신의 다리에 걸터앉는 당신의 행동과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머리에 손을 대는 당신의 모습 때문이다. 감정이 옅은 은청의 시선이 당신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듯 따라서 움직였다가 당신을 향해 머무른다.
" 그렇네. "
짤막히 답을 내고 탄야는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뜬다. 와인잔을 쥐려던 손을 여전히 테이블 위에 내버려둔 상태로 탄야가 당신의 행동에 한숨처럼 짧게, 무력한 웃음을 흘려냈다. 숨을 죄기 직전의 선득한 감각에 등골이 저린다. 지독하게 열망했으나 스스로 끊어낼 용기는 없어서 해내지 못했던 것. 그의 무력하던 웃음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담겼다. 그건 지독하게 열망하고 집착하던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광기와 닮은 무언가였다. 희열과 만족이 뒤섞여있는 그의 광기를 당신은 눈치챌 수 있을까. 눈치 못 챌지도 모른다. 당신과는 관계없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만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이 그의 목을 감쌌을 때 그 은청의 시선을 감아낸 그의 꼴이, 꼭 형집행을 기다리는 죄인과 닮았다는 점이다.
목을 옭죄기 시작한 손에 힘을 주며 카리나는 나직히 말한다. 보면 볼수록, 저 눈동자 안의 환희를 볼수록 카리나의 기분은 나빠져간다. 힘은 점점 더 들어가 미약한 숨만 탄야의 안으로 스며들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목을 조르던 카리나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이 짜증을 풀기 위해 이 목을 그대로 꺾어버리고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갈까? 어차피 이 멍청한 수인들은 자신이 죽였을거라곤 생각도 못 할텐데.
" 개빡치네, 진짜. 지만 좋은 X같은 거래야. 이거. "
으드득, 이를 갈면서 카리나는 점점 몽롱해져가는 탄야의 눈동자를 보며 읊조린다. 아무리 봐도 이건 눈 앞의 탄야만 좋은 거래였다. 빌어먹을, X같네. 카리나는 제 성질대로 손에 온전히 힘을 넣으려다 거칠게 손을 떼어내곤 씩씩대며 탐야를 노려다본다. 입술 사이에선 상스러운 욕설들이 쉴세없이 터져나온다.
" 하마터면 이 불공평한 거래에 응할 뻔 했어. 제길! 네가 뒤지면 내가 뭐가 좋은데?! "
씩씩대며 탄야의 양볼을 움켜쥐곤 거칠게 으르렁댄다. 마치 카리나가 오히려 수인이라도 된 것처럼. 몇번이고 욕설을 내지른 카리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선 거칠게 다른 곳에 있던 의자를 걷어차서 넘어트린다.
" 젠장!!!! "
의자를 걷어차고 와인병을 집어들어 옷이 젖든 말든 거칠게 들이킨다.
" 너, 뒤지고 싶으면 그에 걸맞는 조건을 제시해. 알았어? 난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뭔 일이든 돈 되고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면 닥치는 대로 하는 스케빈저지! "
내쉬는 날숨을 의식적으로 죽이고 있으면 자신의 맥이 뛰는 소리가 귓전을 떠다닌다. 갈망하고 열망하던 순간이다.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맥이 뛰는 소리의 틈새를 비집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탄야는 그저 눈을 감은 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혈육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닿지 않은 자신의 몸一 그러니까 생명과 직결되는 급소를 타인의 손에 쥐어주고 저항 의지를 보이지 않는 꼴이 무력하게 보이겠구나, 하고 탄야는 생각했다.
그 날, 그 곳에서 탄야 하멜은 죽었다. 이 곳에 남아 있는 것은 모든 게 소실되어버린 껍데기일 뿐이다. 당신의 손이 거칠게 떨어졌을 때 그는 지극히 자연스레 막혔던 숨을 마시고 내쉬었을 뿐, 용케 기침을 하지 않았다. 가빠진 숨을 불규칙적으로 반복하던 그가 은청의 시선을 뜬 것은 당신이 얼굴을 쥐었을 때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열망을 이룰 수 있었는데.
" 一 내가 살아있어서 너에게 득될 것은 있고? "
앞으로 한발만 더 내딛었다면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난 뒤라 그런지, 당신의 신경질적인 말에 대꾸하는 그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정도로 잠겨있었다.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목전에서 빼앗겨버렸기에 그 은청의 시선은 생리적인 눈물에 잠겨서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줬으나, 그 목소리만큼은 차고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를 걷어차는 난폭한 당신의 행동에도 그는 늘 그랬듯이 무력한 자세를 취했다.
아니, 평소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 네가 자연히 숨이 다할 때까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 네가 평생 써도 부족하지 않은 돈. 네가 이런 짓을 하더라도 괜찮을 정도의 권력. "
당신의 행패에 탄야는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지적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가 정확했다. 또한 탄야가 말은 걸맞는 조건을 제시하라는 당신의 말에 맞췄다는 점이 강했다.
" 모두 마음에 안든다면, 네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해. 일탈이니 뭐니 그런건 관두고. 비즈니스는 그런거야. "
카리나는 씩씩 거리던 것을 멈추곤 타다 남은 재처럼 말하는 탄야에게 픽 웃으며 말한다. 안전한 장소, 부족하지 않을 돈, 권력 다 좋지만 그게 탄야가 카리나의 손에 사그라진 후에도 유지될거란 보장이 있을까. 특히나 권력이나 돈은 분명 카리나에게 이어진 것을 눈치 챈 승냥이들이 카리나에게 달려들기 딱 좋은 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안전한 장소, 좋다. 하지만 그건 새장안의 새처럼 그 안에서나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아니,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란건 참으로 힘든 일이니 카리나가 탄야를 죽인 것을 복수하겠답시고 찾아올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 ... 생각해볼게. 네가 말하는 비지니스에 어울리는 조건을 말이야. "
씩씩거리던 것은 그만둔 카리나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중얼거린다. 머리 쓰는 건 안 어울리는데. 결국엔 머리를 쓰게 만드는 탄야가 괜히 미워진다. 자꾸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저 아가씨 - 입밖으론 내지 않는 단어지만 -를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카리나는 그렇게 대꾸를 하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 앉아버리곤 한숨을 내쉰다.
" 동화책이나 마저 읽어달라고 하려고 왔던건데 왜 이렇게 된건지 알 수가 없어. "
세상사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지만 참 고달프게 만든다는 듯, 카리나는 탄식을 내뱉는다. 누군가와 관계를 이렇게 이어나가는 것이 처음인데, 그 관계의 끝이 제 손으로 죽이는 것으로 흘러가려고만 한다. 그것이 거친 카리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숨이 조여드는 순간까지 테이블 위를 떠나지 않고 있던 그의 손이 떠난다 싶더니 자신의 목으로 가져간다. 방금까지 당신이, 당신의 손으로 쥐었던 곳을 더듬다가 그는 잠시 손가락을 구부려 감각을 곱씹기라도 하듯 행동했다. 당신의 분노와 행패에도 그는언제나 항상 그랬던 것 마냥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이 조여드는 순간에 도취되었던 것을 더듬고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탄야의 그 시선은 여전히 가늘게 접어뜨고 있었는데 눈을 물들였던 광기는 온데간데 사라져서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 나는 폭력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율하는 방식을 선호하니까. 네가 제안할 것이 터무니없지 않는 이상 나는 거절하지 않아. "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태도로 탄야가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서 자신의 담배를 꺼내 들었다. 심하게 기침을 하거나 하는 건 없었지만 짧은 순간 숨이 조여들었다는 사실은 뇌로 향하는 산소가 부족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탄야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불을 붙히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약간 비틀거릴 뿐 움직임에 문제는 없는지 당신을 향해 곧장 다가섰다.
" 잊어버린 모양인데.. "
앉아 있는 당신의 곁까지 다가온 탄야는 상체를 기울여서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짧고 무기력한 웃음을 지으며 단조롭게 말문을 열었다.
" 날 찾아온 건 네가 먼저였어. "
그의 손이 느릿하게 당신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고 곧, 당신의 턱 아래에 닿았을 때 그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강제성 없이 들어올리려했을 것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너를 직접적으로 찾아간 적은 없다. 단한번도. 네가 있을 법한 곳을 간 적은 있으나 그것은 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취미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떠올렸다. 이 또한 스스로에게 던지는 변명일 뿐인가. 당신의 턱 밑으로 곁들인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에서 당신은 살아있는 생명에게서 느껴질 법한 온기보다, 말라비틀어진 채 겨우 버티고 선 고목나무에서 느껴지는 건조함을 느꼈나.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당신의 앞에 서 있는 눈표범 수인은 말라비틀어진 채 겨우 버티고 서서, 밑바닥을 드러낸 모든 감성과 모든 친절을 박박 긁어내어 당신을 대하고 있으니. 당신의 시선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이 건네줬던 그 동화책을 바라볼 때 그또한 그곳으로 은청의 시선을 옮겼다.
기억 속에 묻어버린,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동화책을 당신에게 건네준 스스로의 의도를 자신은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감정 기복이 적으며 메마른 감성으로 답을 떠올려내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다. 가르쳐준 것 一 이라는 당신의 말을 듣고나서야, 바닥을 구르는 동화책을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모호한 시선을 유지하던 탄야가 당신을 향해 눈길을 주고 " ... 그래. " , 하고 한숨처럼 짧고 무기력한 웃음의 끝에 느릿하게 대답을 속삭이며 당신의 턱 아래에 곁들였던 손을 움직였을 것이다.
" 내키는대로 해. 안된다고 해도 그렇게 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
당신에게서 한차례 멀찌기 떼어진 그의 손이 테이블 위에 있는 라이터로 뻗어졌다가 당신이 팔로 그의 허리를 감쌌을 때와 비슷한 타이밍에 그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 머무른다. 벗어날 수 있음에도 탄야는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늘 그랬듯. 지금도 그는 당신이 하는대로 내버려둔 채 수분을 그렇게 있었다.
입에 문 담배 끝에 불을 붙히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허리에 감싸져있는 당신의 팔 위에 손을 올리고 꾹 눌러서 미약하게 거부 의사를 표명했을 뿐이다.
카리나는 눈 앞의 수인이 오늘따라 더 밉상으로 보였다. 정말이지, 누가 봐도 변명을 둘러대는 것 같은데 태연하게 어쩌다보니 우연찮게 만나는 것 뿐이라는 저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미련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알랑한 자존심 때문일까. 카리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맘에 들지 않았다는게 중요했다.
카리나의 뒷꿈치가 살짝 들리고 카리나의 얼굴이 탄야와 가까워진다. 그리곤 서로의 입술에 낯선 감촉을 남기곤 떨어진다.
"맞아. 나는 내키는대로 하는 년이니까. 잘 아네. "
이것도 제멋대로 구는 것이라는 듯, 당당하게 설표의 눈을 마주 보고 서는 카리나였다. 눈 앞의 수인은 자신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노? 탄식? 뭐라도 보여주길 바라면서 카리나는 대담한 눈을 한 체 탄야의 눈을 마주한다. 마음 한켠에선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뛰고 있었지만.
"그래서 입술은 내가 처음이었나? "
슬그머니 도벌 섞인 말도 던져보면서. 사실 카리나 본인도 처음이었으면서 애써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턱도 살짝 들어선 자신은 당당하다는 듯한 자세를 뽐낸다. 뭐, 처음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그것대로 카리나가 놀라겠지만.
정부가 무너진 뒤,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피를 나눈 혈육들과 마주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라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유였다. 이름없는 예술가의 그림, 뒷골목 벽에 그려진 조잡한 낙서 같은 것들에게 관심을 가졌더니 이번에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허락한 적도 없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비집고 들어온 당신은 불청객이었다.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을 두니 당신이라는 불청객은 당연하다는 듯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와서는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당신은 양해를 구하지 않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으니 거슬렸다. 다만 불쾌하지 않았을 뿐. 이 모든 게 변명일지도 모른다. 거슬렸다면 이미 일찌감치 당신을 거부하고 밀어냈을테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왜 당신이라는 불청객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밀어내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도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이어서 당신이 저지른 짓은 탄야 하멜이 생각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一 내키는대로 하라는 게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
닿았다가 떨어지는 찰나에 탄야의 목소리가 흘렀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런 목소리다. 그것과 다르게 미약한 거부 의사를 보이던 그의 손이 이번에는 분명하게 자신에게 닿아있는 당신의 손을 떼어내려했을 것이다.
" 미래의 정혼자 정도는 있었으니, 처음은 아닐지도 모르지? "
탄야의 찢어진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귀가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당신의 손을 떼어내는데 성공했다면 그는 담배 연기를 잠깐 들이마셨다가 당신에게 닿지 않을 정도로 뱉어냈을 것이다.
"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라면 유감이지만, 내가 이런 거에 동요하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거 아냐? "
가늘게 눈을 접어 뜨며 그는 담배를 도로 끼워 물고는 느슨하게 미소를 짓는다. 평소의 무기력한 웃음과 정반대의 느낌이다.
덤덤하기 짝이 없는 탄야의 반응에, 카리나는 한순간 멍해진 표정으로 바라본다. 마음 한켠에 이럴거라는 생각도 하긴 했었지만, 막상 눈 앞에서 보게 되니 꽤나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탄야는 몰라도, 카리나에겐 처음이었으니까. 오히려 덤덤하기 그지 없는 그 반응을 보면서 카리나의 눈이 조금씩 빨개져간다.
" 아니, 그게... "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져가고, 새하얀 볼이 조금씩 분홍빛을 머금으며 물들어 간다. 앞에서 미소를 띈 체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탄야를 보면서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 하고, 입술을 달싹이는 카리나는 같은 말만 몇번이고 되뇌이다 입술을 살며시 깨물곤 머리를 쓸어넘긴다.
" 이.. 이런 건 생각을 못 했는데.. 아니, 왜 난 네가 처음이 아닐거라 생각을... "
당황함과 수치심, 부끄러움 같은 여러가지 감정이 합쳐진 눈으로 바닥과 탄야의 눈동자를 번갈아보며 중얼거리던 카리나의 입술 사이에선 윽 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갑자기 발끈한 바람에 자신감이 넘쳐버렸던 자신이 너무나도 후회되기 시작한 카리나였다. 탄야에게선 너무나도 반응이 없었으니 더욱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 ..... 가야겠어... "
몇번 더 입술을 달싹이던 카리나는 탄야에게서 당장은 멀어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떨어지려 했다.
늘 그 얼굴에 희미하게 자리잡은 무력한 웃음과 느낌이 다른, 바닥을 드러낸 감정들을 박박 긁어낸 것과 흡사한 미소를 짓고 탄야는 당신에게 짤막한 물음을 던졌다. 무척이나 선명하기 짝이 없는 그 미소는 그가 외부에 보여주는 의무적인 웃음이다. 멍하게 자신을 보다가 당황해하는 당신의 모습을 가만히 정면에서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던 탄야가 " 처음이 아니여서 실망했어? " 하고 덧붙히곤 의무적인 웃음을 곧 언제나 지어보이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미소로 바꿔냈다.
지질러버린 건 당신이면서 왜 상처받은 것처럼 구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말은 그렇게 했었어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그 때의 약혼자와 이런 걸 했을리 만무하다.
" 그런 표정은 네가 아니라, 내가 지어야하는 거 아닌가. "
당한 건 난데, 하며 탄야는 느긋하게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을 것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어조는 꼭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을까.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뜨며 당신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당신의 행동을 알아챘다.
자신이 이런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꼭 자신에게 실망해버렸다는 듯이 구는 게 달갑지 못하다.
" 네가 먼저 해놓고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네. 불청객처럼 내 집에 들어올 때는 언제고, 이제는 가겠다? "
피하지 않는다면 떨어지려는 당신의 팔꿈치에 손을 댄 그가 크게 힘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당겼을 것이다. 무력한 미소조차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탄야의 표정은 건조한 무표정이었다.
이럴때만 멍청해지기라도 하는걸까.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걸까. 자꾸만 달아오르는 뺨을 식히는 것만 해도 어려운데 팔까지 붙잡고선 물어오는 탄야의 말에 카리나는 빨개진 얼굴로 다급하게 입을 연다. 아니, 진짜 이런 것까지 말을 해야하는걸까. 아니, 이게 맞긴 한가. 애초에 입을 맞춘 것부터 잘못된 부분이긴 하지만.
" 부...부끄러워서 그래...! 나, 나.. 이런거 처음이라고! 아으씨...! "
탄야에게 당겨져 조명의 빛을 제대로 받게 된 카리나의 얼굴은 복숭아처럼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카리나의 시선은 한곳에 자리잡지 못한 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고, 네게 잡힌 팔은 파르르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카리나 본인도 자신이 이런 모습을 할 수 있을지 몰랐을 그런 모습으로 다급하게 입술을 열어 말을 이어간다.
" 네가..네가..처음이 아니라서 실망한게 아니라..홧김에, 해버렸는데... 반응이 없으니까 뭘 해버린건가 싶고.. 나 처음이니까 부끄럽고 아으...씨.. 그런거니까 그냥 ....! "
눈물까지 많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고인 눈으로 어쩔 줄 몰라하며 탄야를 바라본다. 평소 같았으면 몸을 거칠게 움직여서 탄야에게서 벗어났겠지만, 지금은 힘도 쓰지 못하고 두서없이 변명을 내뱉기 바빴다.
동류의, 아니 동배에서 태어난 형제들과 비교하자면 탄야 하멜이라는 수인은 열성임이 분명했지만 당신의 팔을 붙잡아 당겨오는 힘은 탄야의 얼굴에 머물러있는 무기력한 미소와 다르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뒤로 물러나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탄야의 손에 평소와 달리 힘이 실려있었으나 여지를 주려는 듯 완전히 강압적이지는 않았다. 피하거나 하지도 못한 상태로 끌어당겨져서 조명 아래에 고스란히 얼굴빛을 드러내버린 당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 그래? "
은청의 시선이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 채, 당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꽤 담백하고 무덤한 어조로 짤막하게 대답한다.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가고, 꼭 수줍음 많은 요조숙녀처럼 반응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해서 탄야는 당신을 붙잡은 손에 힘을 빼지도 않은 채로 당신이 말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 표정이나 반응을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 ...누가 보면 내가 널 울린 걸로 오해하겠다. "
횡설수설한 당신의 말을 잠자코 들으며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탄야가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자연히 솟구친 당신의 눈물에 동요라도 했는지 손에 힘을 풀며 한숨처럼 짧게 무기력한 웃음을 흘린다. 힘을 푼 손이 떨리고 있는 당신의 팔을 느릿하게 손끝으로 한차례 쓸어내다가 떨어지고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꼴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경위를 되짚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이게 웃기는 꼴이 아니면 뭔가. 먼저 저질러버린 쪽이 꼭 당한 것처럼 행동하는 게 웃긴 거지. 물론 당한 쪽도 대체로 보일 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웃기지만. 박박 긁어내야만 겨우 그럴듯하게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는 탄야로서 당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건 당연했지만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은 다른 방향이다.
" 그래서 一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해주길 바래? 해줬으면 하는 말이 있으면 해줄 수 있고. "
탄야는 쥔 담배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트리고는 몸을 약간 수그리며 당신과 시선을 맞췄다.
아니 그건 다르지. 그건. 이 두통은 이미 내가 손쓰지 못하는 곳까지 가버렸으며 지금도 지끈지끈 쑤셔오는데..웃으니까 더 아프다 곤란해 이거ㅋㅋㅋ 이것만 쓰고....몇시간이라도 눈 좀 붙혀야지😶
마사지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뭐 약이 낫다면야. 마음을 종잡지 못하는 건 이쪽의 설표가 할 말인데요. 마음이 뭐야 감정도 짐작 못하는 중인데ㅋㅋ 고개를 끄덕이면 진짜로 해주고 됐어? 라는 표정이나 짓겠지. 이 설표는. 아무튼 나는 진짜 몇시간이라도 자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던 카리나는 으윽, 하는 소리를 낸다. 분명 자신이 허를 찌르려던 것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탓할 이가 없어 잔뜩 후회를 하던 카리나는 들려오는 말에 눈을 크게 뜬다.
" ... 해봐, 그럼. "
어쩌면 카리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탄야의 모습이 허세이길 바랬을지도 몰랐다. 사실 무덤덤한게 허세여서 자신이 했던 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덮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까. 카리나는 몸을 수그리며 자신과 눈을 맞춰오는 네 팔을 천천히 붙잡곤 고개를 좀 더 가까이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 건 탄야가 자신이 여기서 받아들이지 않을거라 생각했을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 똑같이, 아니 그렇게 자연스러운거면 더 잘 할 수 있겠지. "
허세부리지 말고 포기해, 그렇게 말하는 듯 눈을 마주한 체 말을 덧붙인 카리나는 괜히 불현듯 드는 불안감에 천천히 숨을 몰아쉬머 탄야의 다음 반응을 기다린다. 불안감과 자신이 머리로 탄야의 허를 찔렀다는 흡족함을 느끼며 카리나는 침을 꿀걱 삼킨다.
탄야의 은청의 시선이 당신을 들여다보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옮겨진 이유는 자신의 팔을 붙잡는 당신의 행동 때문일 것이다. 타인과의 신체적인 접촉을 꺼려하는 편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명백한 도발과 함께 이어지는 신체적인 접촉은 썩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이 수치심에 어쩔 줄 모르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당신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몸을 수그려서 가까이 다가간 만큼 다가오는 모습에 팔을 붙잡은 당신의 손을 보던 눈을 가늘게 접어뜨며 이번에는 당신의 시선을 다시금 들여다보듯 가만히 응시할 뿐 어떤 말도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당신과 맞추고 있는 은청의 시선은 역시나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는데, 무표정한 얼굴까지 합쳐지니 예쁘장하기만한 인형같은 모양새다. 그 사실이 당신에게는 얄밉게 느껴질까. 몇초一, 아니 몇분일까? 당신을 바라보고만 있던 탄야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수그리고 있는 몸과 당신에게 붙잡힌 팔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빈 손을 당신의 턱 아래를 받치듯 가져다댄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과 다르게 이어진 그의 행동은 당신에게 종종 보여주고는 하는 것과 똑같다.
" 一 이런 건 그냥 단순한 스킨십인데. "
못하겠으면 그만 두라는, 당신의 도발 섞인 말에 대한 탄야의 대답이다. 당신이 자신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탄야는 당신이 했던 것과 비슷하게 촉감만 겨우 느껴질 정도로 가볍게 입술을 눌러냈을 것이다. 눈을 감는다거나, 닿을만큼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 떨림도 없이 지그시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눌러내는 꼴이 그의 말대로였다.
덤덤해보이는 이 설표.....어찌하면 좋을까(포기) 그래도 오너는 언젠가 이 녀석이 카리나에게는 너그럽게 구는 이유가 제대로 신경쓰이기 시작하면 바뀌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물론 카리나는 속이 타겠지만🙄 카리나주도 그렇고. 진도가 늦되거나 답답하면 말해주고. 보통 친구사이에 마우스 투 마우스는 하지 않지만 계기라면 계기가 될거고 아니라면 아닐테지.
음, 안 그래도 생각 좀 해보고 있긴 해.. 어떻게 탄야의 삶에 대한 욕구를 깨우칠 수 있는 길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스토리를 짜보면 두사람이 가까워지고 서로를 자각할까 하고.. 근데 확실하게 떠오른게 없어서 바로 말은 안 꺼냈던거라서. 좀 더 생각해볼게. 공동의 적이라도 만들어 봐야하나 싶기도 하고... 탄야주도 일단 두통이 있으니 무리해서 당장 생각하려곤 하지 말구 느긋하게 생각해보자. 진행 중인 일상이 있기도 하고.
탄야의 삶은 뭐뭐뭐....이대로라면 뭐..됐나 느낌이라. 꼭 스토리를 안짜도 되지 않나 싶다가도 이대로 가다가는 질질 끄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으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해. 현생이 그걸 가로 막을 뿐(현생:히히 못가) 정 안되면 공동의 적도 괜찮지. 카리나가 있는 구역의 지배층이 카리나랑 탄야를 주시하고 있다는 떡밥도 슬쩍 흘려뒀으니 그걸로 엮어서 공동의 적을 만들어봐도 되고?
탄야가 위험해지는 것보다 어느쪽이든 카리나가 먼저 위험해질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해도 가출(?)할 생각이 만만인데. 발상이 불순하구려. 파트너. 이번주까지 생각하기에는 내가 지금 뇌정지 수준이다보니 답레 쓰는 정도가 최선인듯 하오. 뻘소리기는 한데 이런 세계관에 수인이라면 평범한 사람보다 신체적으로 월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당연히 카리나는 평범한 사람 기준으로는 신체적으로 월등한 편 아닐까.
뭐어! 그건 카리나가 고생할테니까! (?( 😝 가출 ㅋㅋㅋㅋㅋㅋㅋ 가출 조치... 음음, 괜찮으니 차분하게 생각합시다, 파트너. 오래오래 볼 사이 아니겠소. ( 아니라면! 내가 잘하겠소! 🤣 ) 뭐어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신체적으론 월등하지 않을까. 기술적인 부분은 별개로 치고.. 사실 지금 일상에서도 힘을 줘서 탄야가 붙잡으면 카라나가 순수 힘만으론 어떻게 못할지도...??
🤔 그런 상황이 되면 관계진전이야 되겠지만서도 음 어렵네. 가출쪽은 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생각할 시간이 될까....적당한 때에 사건을 내놓으면 흐름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적당해져버림) 우성보다는 떨어지는 열성 수인이지만 평범한 사람보다는 뛰어난 어중간한 설표 수인=탄야 하멜.
무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움찔, 그러고선 마주 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느리게 느껴진다. 못 하겠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던 때에 탄야의 고개가 가까워지며 들려오는 말에 눈이 커진다. 그리곤 커진 눈은 입술이 닿았을 때 아직 더 커질 수 있다는 듯 동그랗게 변한다. 입술에 제대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코 끝을 타고 들어오는 탄야의 은은한 체향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다.
"... 그, 그렇지.. 단순한 스킨십...이지.. "
입술을 떼어내고 물어오는 탄야에게 카리나는 저도 모르게 삐그덕 거리듯 고개를 끄덕이며 웅얼거린다. 자기도 모르는 수인들의 문화인걸까. 수인들은 이정도 입맞춤은 아무에게나 늘상 주고 받는건가. 카리나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있던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입술의 감촉에 손을 들어올려 매만진다.
" 단순한 스킨십이면.ㅡ 뭐! 만날 때 한번씩은 하던가.. 인사처럼. "
한결 얌전해진 목소리로 스르륵 탄야 앞에서 빠져나온 카리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듯 웅얼거리며 나뒹구는 동화책을 주으러 간다. 아니, 사실 지금 주울 필요는 없었지만 탄야의 앞에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주워든 동화책을 품에 안아든 카리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 거랴는 흐지부지 된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조건은 생각해볼테니까.. "
귀가 빨개진 체 시선을 돌리며 주제를 바꿔보려 한다. 안절부절, 동화책을 쥔 손가락이 보였지만.
답레는 확인했는데 뇌세포가 폐업을 했는지 답레를 쓰다가 몇번 막히는 걸 경험했는데...쓰읍🤔 그런고로 답레는 좀 늦을 것 같은데 진짜 안될 것 같으면 카리나주 답레를 막레로 쳐야할 것 같아. 지금은 카리나주 답레를 막레로 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기울기는 하는데 곤란하네. 아무튼 머리가 좀 돌기 시작하면 답레 써보도록 노력할게. 횡설수설 하는 것 같다면 정답. 뇌세포가 폐업한 부작용인지 서순이 맞지 않는 레스를 쓰는 중이거든ㅋㅋㅋ쉬는날에 뇌를 너무 많이 썼어...
탄야 하멜은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인과의 접촉에 목을 매는 타입은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피를 나눈 형제들과도 친밀한 스킨십을 마지막으로 했던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 못하는 편이라는 게 문제지만. 이런 시대를 어찌저찌 살아가고 있으면서 금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그의 꼴이 웃기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가져야하는 최소치의 도덕성조차 없는 이들 중 그런걸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지그시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댔다가 떼어낸다. 그 순간에도 그는 당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정변화는 커녕,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저 내리뜨고 있던 은청의 시선을 똑바로 들어올려서 당신을 바라봤을 뿐이다.
" 단순한 스킨십에 그런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야. "
턱을 받치듯 닿았던 손을 아래로 늘어트리고 탄야는 자신의 앞에서 빠져나가는 당신을 붙잡을 생각이 없다는 양 붙잡고 있던 손에도 힘을 풀어서 순순히 놓아주며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그 행동거지는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무심한 얼굴에 희미하게 머무르는 무력한 웃음과 같다. 한숨처럼 짧게 무력히 웃음을 흘려내고 그는 당신의 행동에서 시선을 거두고 테이블로 되돌아갔다.
"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
그는 짤막한 대답을 내놓았다. 담배를 집으려는 듯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던 그의 시선이 피곤한 기색을 띄었지만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채 와 체의 쓰임새는 늘 헷갈린단 말이지. k국민이지만 k국어가 제일 어려워🤔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자니 내가 좀 서순을 꼬거나 대명사나 그런걸 뭉뜽그려서 표현하다보니 검사는 무서운데 어쩔 수 없나. 아무튼 어찌 답레는 써왔고 저걸 막레로 해도 좋고 이어줘도 좋으니까 카리나주가 편한대로 해줘.
탄야: 어렵지도 않은 이름을 까먹는건 무슨 심보야?😑 반쯤 졸면서 호두과자를 밥으로 대신하겠다... 다니는 병원 가서 두통에 대해 의논했더니 혈압약을 처방해주셔서 오..😶 하는 기분이 됐어. 여담이지만 뒷골이 땡기며 머리가 아픈건 혈압이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처음 알았네.
음...카리나가 먼저 그쪽을 장악하고 있는 가문의 일원과 부딪히는 걸 우연히 비즈니스 때문에 그쪽을 장악하고 있는 가문과 비즈니스적인 만남을 위해 방문했던 탄야가 발견한다? 아니면 이미 카리나가 부딪힌 이후에 탄야가 방문해서 사정을 알게 됐다던가? 전자든 후자든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는 해도 고립이라던가 도망치는 시나리오는 안떠오르는데(절대 탄야가 고립이나 도망치게 두지 않을 과보호 형제들)
무튼, 내가 출근하기 전에 미리 말하고 싶은 건(출근까지 약 한시간 남음)혹시나 선레 고민하고 있다면 부득이하게 카리나주가 써주길 부탁하고 싶어. 대충 잡아놓은 가닥이 카리나주가 선레 써주는 게 맞기도 하고. 너무 급발진하는 내용만 아니면 되니까 느긋하게 시간될 때 써줘.
어차피 내 답레는 쉬는날이 되어야 올라갈테니까 부담없이 쓰고싶을 때 써줘. 써주기 힘들면 푹 쉬었다가 문득 생각날 때 써도 되고🤔 편한대로 해주길 바래.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카리나주가 내킬 때 쓰는 게 제일 좋으니까. 남은 시간동안 집안일 조금 해둬야지...아이고 귀찮은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골목길을 카리나가 달려나간다. 등에는 무언가 들어있는 듯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맨 체, 복면을 쓴 카리나는 요리조리 잘도 사람들을 피해 지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우락부락한 수인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쫒아간다. 카리나는 눈만 드러낸 체로 미간을 찌푸린 체 몇번이고 욕설을 되뇌이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이 원하던 상황은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 개같이...! 단가가 높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
우당탕, 거리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넘어트리며 미끄러져 나뒹군 카리나는 바닥을 거세게 내려치곤 도로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숨은 진작 턱 끝까지 차올라서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등 뒤에서, 잠시 골목길에 가려진 사내들의 거친 욕설이 들려왔으니까. 이번에 카리나가 받은 일은 어떤 낡은 집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뒷골목에선 흔히 있는 일거리 중 하나였다.
" 그게, 이쪽 나리님들 비밀창고인 줄 몰랐지! "
의뢰인을 떠올리며 이를 갈던 카리나는 몸을 숨길만한 좁은 골목으로 몸을 던지곤 숨 죽이며 사내들이 달려가는 걸 지켜본다. 다행히 몸을 던지는 것을 못 봤는지 그냥 지나가는 사내들을 보던 카리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살금살금 반대로 빠져나가려 한다. 중앙 쪽으로 가는 방향이긴 했미만 당장 여기서 벗어나는게 중요하긴 했으니까. 그렇게 살금살금 빠져나가던 카리나는 한순간 자기 앞에 멈춰선 사내 하나를 보곤 자기도 모르게 발로 걷어차버린다.
" 여기있다! 도둑고양이!! " " 에이씨, 진짜!! "
카리나의 발차기에 걷어차안 사내가 다급하게 외치고, 카리나는 한대 더 걷어차주곤 후다닥 대로로 달리기 시작한다. 대로의 인파에 숨어들 모양인 듯 했다. 그게 그녀의 뜻대로 될련지는 모르지만. 카리나는 잽싸게 인파속으로 뛰어가선 몸을 낮추곤 복면을 벗고 도로 다른 골목으로 빠지려 했다.
일도 일이지만 컨디션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이런 타이밍에 스케줄 자체가 무리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거든. 이 상태에서 신경 안쓰고 넘어가면 갑자기 상태가 작살나버린다는 걸 알아서🙏 답레에 참고하기 위해 몇가지만 물어볼게. 카리나가 물건을 가지고 나온 집 주인은 카리나가 있는 서부의 지배층과 관계되어 있어서 측근(?)들과 마주친건지? 아니면 단순 말단인지. 서부(맞나?)(아니라면 내가 스레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볼게) 아무튼 그쪽 지역의 수인들의 종은? 육식? 초식? 아니면 잡식? 서부 수인들은 중앙의 하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주인쪽은 하멜과 카리나에게 관심있으니까 패스할게)
아이고야 몸을 챙기는 걸 우선적으로 하도록 해. 그게 제일 중요해. 집주인은 서부 지배층이고, 그들의 비밀주택 같은거였어! 겁없는 의뢰자 - 아니 이미 카리나에게 시켜먹은 것부터 겁쟁이인가 -는 다 알고 시킨거구. 이쪽은 대체로 육식이라고 생각해. 하이에나, 자칼 같은 이런 녀석들?? 서부쪽 친구들은 중앙에 대해 샌님들??이란 생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제는 생존보고 정도만 남기고 가버려서 미안. 설날인데 어때? 잘 보내고 있어? 새해 복 많이 받고 이번년도도 잘 부탁할게. 새벽 내에 주겠다던 답레는 내가 5일을 풀로 출근하고 중간에는 사적인 일이 생겨서 밤샘 출근을 하는 바람에 써야지 해놓고 뻗었음을 알리세요...어제는 진짜 휴무임에도 깨어있는 시간이 3시간도 안됐고..ㅋ..ㅋ...오늘부터는 풀로 설 특근포함 6일 출근이야. 이렇게 보니까 변명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나.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답레 써보도록 할게. 카리나주는 좋은 연휴 보내길 바래.
홀로 어슬렁거리며 가도 좋을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피를 나눈 혈육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종의 특징 때문이다. " 중앙의 하멜이 평소 혼자 움직인다는 소문이 도는 것만으로도충분하다. "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신과 꼭 같은 은청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걱정어린 진중함에 탄야는 반박할 수 있는 문장들을 모조리 씹어삼켜버렸다. 세월이 아무리 지났다고 한들, 숨김없이 보여지는 혈육들의 명확한 명분을 들이대며 보여주는 것은 분명 지나친 걱정이 불러 일으킨 보호일테니.
혈육의 선택을 납득하나, 그 행위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탄야는 결국 호위 한명과 함께 약속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마저도 하나 이상은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선으로 용납된 인원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홀로 다니는 것에 익숙한 탄야 하멜은 자신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호위가 신경쓰이는 걸 넘어서 몹시 귀찮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눈표범 수인 특유의 둥그스름한 귀가 어떤 소리라도 들었는지 가볍게 움직였고 앞서서 걷고 있던 그의 걸음이 거리 한복판에 문멈추자, 뒤를 따르던 호위가 걱정스레 그에게 다가왔다.
" 왜 그러십니까? "
호위의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한손을 들어올렸다가 천천히 자신의 입가로 검지를 가져다댔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였다. 멈춰선 위치까지 다가오는 발소리가 일단 하나. 멀고 먼 곳 위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그는 은청의 시선을 느릿하게 깜빡여지고 곧 가느다랗게 접어뜨며 몸을 움직인다. " 뒤로. " 하고, 그가 호위의 어깨를 잡아 당겨냈고 호위는 그의 손짓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뒤로 두어발 물러났을 것이다.
" 一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
호위의 어깨를 붙잡아 당겼던 손을 떼어내며 탄야는 뛰어서 지척까지 다가온 당신에게 느릿한 물음을 던졌다. 호위가 자신들이 있는 위치로 뛰어나온 당신을 발견한 건 그 뒤였을 것이고.
연휴기도 하니 좀 더 즐기는 게 좋지. 답레는 그 뒤 생각날 때 써도 좋고. 뭐..편할 때 써주도록 해. 위로 거슬러서 보니까 카리나가 동부가 아니라 서부였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카리나를 쫒는 상대의 정보를 아예 모르다보니 이야기 진행은 키리나주쪽에서 해줘야하기도 하고 🤔 힘..내야지. 통장에 꽂히는 돈이 다르다....하하. 물론 다음 연휴 시즌에는 절대 이런식의 특근은 안잡을테다.
어쩌다보니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탄야를 마주 치게 된 카리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다.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이쯤 되면 따돌렸을테니 아는 척을 해도 될까, 아니면 혹시 모르니까 모르는 척을 해야할까. 탄야의 곁에 처음 보는 수인이 서있다는 것이 괜스레 신경이 쓰여서 카리나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탄야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들은 체도 안 하고 지나갔을텐데 카리나는 멈춰선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저기 있다..! 저기! " " 한 패거리인가! 붙잡아! "
아쉽게도 카리나의 머뭇거림은, 그녀를 쫒는 이들에게 빌미를 주고 말았다. 마주 보고 서있던 탄야가 말을 거는 것을 보기라도 했는지, 이미 한패로 단정을 짓곤 두사람을 향해 멀리서 달려오는 수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리나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다급하게 탄야의 손을 움켜쥐려고 했다.
" 무슨 일인지는 일단 저것들부터 떼어내고 나서 알려주테니까, 일단 달려! "
카리나는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에선 거친 말투로 다른 말을 내뱉는 자신을 속으로 욕할 수 밖에 없었다. 급한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답답하긴 한 모양이었다.
" 거기 누군지는 몰라도, 따라와! 괜히 재들이랑 엮이면 골치 아파져! "
탄야의 곁에 있던 수인에게도 다급하게 말한 카리나는 옆골목을 가리키며 달리자는 듯 말했다.
그의 은청의 시선이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당신의 반응과 다르게 그의 반응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무심하고 덤덤했다. 당신이 그의 손을 움켜쥐려고 하는 행동과 동시에 "대응할까요?" 하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낸 호위가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말을 걸어왔다.
가늘게 눈을 접어뜨고 당신을 쫒는 것이 분명한 자들이 뛰어서 다가오는 걸 응시한 채 서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몇 분, 혹은 몇 초의 시간동안 그렇게 서있던 탄야 하멜은 가늘게 접어뜬 눈을 느릿하게 감으며 들릴 듯 말듯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당신에게 잡혀 있는 손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을 것이다. 탄야님一 하는 호위의 목소리에 탄야의 둥그스름한 귀가 그 방향으로 짧게 움직였다.
" 지금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지. 대응은 최소한으로. "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태도와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어느새 다시 뜬 은청의 시선은 무감할 뿐이다. " 너는 一.." 하며 그의 시선이 다시 당신을 향한다.
카리나는 무심한 듯 자신을 보며 말하는 탄야에게 망설이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뒤에서 쫒아오고 있는 녀석들이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탄야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도망친다 한들 이미 저들의 눈에 들어버렸으니까. 물론 당장은 큰일이 생기지 않겠지만, 나중에 큰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 저녀석들 동부쪽 녀석들이야. 그러니까 지금 니가 저녀석들이랑 얽히면 괜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
괜한 일이 생긴다면 탄야에게만 일이 생기는게 아니라 꽤나 많은 인원이 엮일테니까. 그냥 도둑질 한번 하고 발을 빼려던 카리나로선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그냥 조용히 며칠 숨어지내서 잠잠해지면 슬쩍 다시 나와서 활동하는게 최고의 시나리오였으니까.
" 여기서 재들이랑 부딪치지 말고 일단 나랑 빠지자. 나 믿어줘. 정말이야. "
혹시나 탄야가 자신을 믿지 않을까 싶었는지 말을 덧붙이며, 점점 다가오는 덩치들과 탄야를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하겠냐는 듯 묻는다.
" 귀찮은 일은...아니, 이미 나랑 엮였으니까 귀찮은 일이지만 더 커지는건 너도 싫잖아. 그치? "
탄야 카멜은 당신이 아닌, 정면에서 다가오고 있는 이들의 정체를 살피기 위함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당신을 외면하고 싶은 건지 어느쪽인지 알기 힘든 시선을 하고 있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심한 것이 그 은청의 시선에 머물렀다.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에게 무관심한 은청의 시선은 당신의 입에서 '동부'라는, 단어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차분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 네가 싫어할 게 분명한 말을 해볼까. "
괜한 일이 생긴다니.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인데. 무감하기 짝이 없는 은청의 시선에 이채가 돌았다. 건조하게 감정이 메마른 그의 얼굴에 희미한 희열과 기쁨이 공존하는 미소가 번져나갔다. 당신이 그와 마주할 때마다 한번씩 一 아니, 매번 보아왔던 그 눈빛이다. 그리고 그는 불과 얼마전 당신의 손으로 목이 죄여졌던 날에 보였던 표정을 지금 드러내고 있었다. " 아니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어? " 하고 도리어 그는 당신에게 질문을 되돌리며 가늘게 눈을 접어뜨고는 당신의 손을 쥐고 있던 자신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당신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숙여냈다.
탄야 하멜은 당신을 향해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광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바라고 원하던 것이 손 안에 들어오는 순간인데, 이것을 피할 이유는 없다. 되려 반가울 따름이다. 겨우 숨만 붙어서 살고 있는 이 시체같은 삶을 멈출 수 있는 또다른 기회였다. 놓칠 수 없다. 아니 一 놓칠 수 있을 리가.
" 대응하지. "
당신에게 시선이 머무른 상태로 탄야가 읊조리듯 나직하게 속삭인 말은 그와 동행한 호위에게 닿았는지 호위는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불청객에게 공격을 내질렀다.
카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욕설에도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진짜로, 진짜로 귀찮게 됐다는 게 직감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벌써 머리 속에선 거칠게 뒤엉키는 동부와 중앙의 수인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싸움은 마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 지들은 자기들 나와바리로 가면 된다 이거야?! 난 여기 산다고! "
아우씨, 카리나는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뱉어내며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분명 여기에 더 엮기게 되면 한동안 숨어사느라 피곤라기 짝이 없는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 뻔했다. 도망칠까. 저대로 내버려두고 도망치면 모든 관심을 저 무모한 수인 아가씨한테 쏠릴테니 자신은 느긋하게 살 수 있겠지만. 카리나는 머뭇거리다 결국 같이 싸우려는 듯 뒤이어 도착한 수인들에게 발을 날린다.
" 진짜! 돌겠다,돌겠어! 하긴 너도 정상은 아니었지...!! "
당황한 수인을 짓밟아 넘어트리곤 턱을 차버리며 이를 가는 카리나는 잽싸게 추격자의 수를 살피기 시작한다. 싸우는 것도 싸우는 것이지만, 도망칠 각도 봐두려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쪽수로 둘러싸여 죽긴 싫었으니까.
정부가 무너진 이후로는 규율과 질서는 피와 폭력으로 얼룩져서 변질되어버렸다. 피와 폭력, 수많은 죽음들로 쌓아올려진 도시에서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은 저 높디 높은 탑이 위치하고 있는 중앙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중앙을 틀어쥐고 있는 하멜 가문이 무기들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먼저, 동부의 수인들과 부딪힌 호위는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디메리트에도 한발도 물러섬 없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동부의 수인들을 막아냈다. 다만 수인들끼리 뒤엉켜서 싸우는 것치고는 점잖고 젠틀한 반응이었는데, 하멜 가문에서 받은 ' 탄야 하멜의 비즈니스에 동행하여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습격에 대비, 보호하는 걸 우선으로 할 것. ' 라는 명령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당신이 발길질을 날려서 싸움에 섞여들었을 때 호위는 동부 수인 중 한명을 들어올려 바닥으로 내리꽂아 제압하는 순간이었고 당신이 불평을 늘어놓는 순간에도 동떨어진 것 마냥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탄야 하멜은 담배를 꺼내 물어서 불을 붙혔다.
특유의 바닐라향이 섞인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방금의 그 웃음과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흥미가 사라져버린 무심하기 짝이 없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과 호위를 제치고 접근해 온 동부의 수인을 응시하는 것도 잠깐一 ,
" 난 분명, 말했어. "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은 무감한 목소리다. 당신의 불평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르고, 그저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그는 말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한 동부 수인의 무릎을 걷어찬 그가 무기력하게 바닥을 향해 늘어트리고 있던 손을 들어서 주저앉으려는 수인의 턱을 후려쳤다.
" 도망가도 된다고 말이야. "
달디단 바닐라향을 두른 눈표범 수인은 무감한 목소리로 중얼이던 말을 끝맺으며 억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수인을 다리로 짓밟는다. 무력하게 당신이 휘두르는대로 거부감 없이 휘둘렸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수인을 짓밟으며 태연히 답하는 탄야를 보며 카리나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중얼거리다, 문득 떠올랐는지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중얼거린다. 사실 어쩌면 지금 탄야가 바라는대로 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더 기분이 나빴다. 이건 그러니까, 어, 괜히 일을 키우는 탄야 떄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곤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 한녀석은 소식을 전하러 가고 있을거란 생각이었다.
" 오케이 ,찾았다. "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아니 지금 당장은 덜 커지도록 하기 위해서 카리나는 눈을 굴리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쥐 수인으로 보이는 짧은 수인이 뒤를 돌아보며 달려가는 것을 발견한 카리나는 일단 이쪽은 위험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 뒤를 쫒아 달리기 시작한다. 카리나는 살다살다 자기가 일이 덜 커지게 만드려고 달린다는 생각을 하며 인파 속을 요리조리 피해 달리는 쥐 수인을 따라잡았다.
" 야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 " 이.. 빌어먹을 인간계집이..! "
잽싸게 따라잡은 카리나를 보며 당황한 쥐 수인이 내뱉는 말에, 카리나는 그런 말 정도는 하도 들어서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옷을 잡아챌 뿐이었다. 그리곤 옷을 잡아챈 손의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잡고는 몸을 휙 돌려선 쥐 수인을 바닥에 내리꽂아버린다. 수인의 신음소리에도 아랑곳않고 넘어트린 여자는 그대로 머리를 걷어차서 기절시킨다.
" 하아.. 그래도 한녀석 밖에 없나보네. "
번거로움이 개미만큼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며 카리나는 혀를 차곤 쥐 수인을 끌고 도로 탄야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별일 없겠지 하는 이유 모를 안심을 품은 체로.
어디까지나 수인의 범위 내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지만 탄야 하멜은 그 범위에서는 결코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열성 인자다보니 동부의 수인들의 눈에는 '보호' 와 '제압' 에 중점을 두고 자신들을 휘젖고 다니는 호위보다야 상대하기 쉬울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노리고 있는 그를 노리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열성 눈표범 수인이 하멜 가문의 탄야라는 것을 알더라도 열성 一 그러니까 약자를 노리는 건 수인들 핏줄에 흐르는 본능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 수인들의 본능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바였다.
스스로 숨을 끊어낼 용기도 없는 주제에, 죽기를 바란다. 사실은 그날 , 자신은 그 장소에서 죽었어야 했던 것이다. 욕설과 고함의 소음 속에서도 당신의 타박에 가까운 하소연 一불평一을 캐치해낸 건지, 탄야 하멜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무심한 얼굴을 부드럽게 풀어내며 한숨을 쉬듯 짧은 웃음을 흘렸다. 갈망하고 열망하던 것이 기꺼이 다가왔는데 피해야할 이유는 없다. 오늘이야말로 이 숨만 쉬며 살아가는 시체와 같은 몸뚱이를 뉘일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당신이 쥐수인의 뒤를 쫒아 달려나갈 때 그를 돌아봤다면 은청의 시선이 아주 잠깐 당신을 바라봤다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은청의 시선에 드러났다가 잠겨버린 것은 무엇일까.
탄야 하멜은 당신에게 잠시 한눈을 팔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남아있는 또다른 수인의 접근을 쉽게 허용했다. 드디어 끝인가, 싶었던 건조하고 담백한 감상은 자신과 동행했던 호위가 옆구리를 감싸쥐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 사라졌다.
一 자신은, 역시 오늘도 죽지 못하겠구나 하는 문장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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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쥐수인을 끌고 돌아온 장소는 방금 전까지의 소음이 거짓말인 것 마냥 , 차디찬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최소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수인들에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라도 들려야 옳을텐데 이상할 정도의 침묵이다.
불빛인가, 그도 아니면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희미한 달빚인가. 어느쪽이든 차디찬 침묵에서 드러난 것은 정체모를 무언가가 잔뜩 껴있는 은청의 시선이이었다. 평소 보이던 무심하게 빛나던 것과 사뭇 다른 一 명백히 먹이를 목전에 둔 짐승의 시선이 발소리에 반응한 건지 똑바로 당신과 당신이 끌고 온 쥐수인을 향해 움직인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몇발짝 접근한다면 당신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쇠비린내를 맡을 수 있을 것이고 , 그 냄새를 이겨내고 조금 더 접근하면 눈표범 수인의 발치에 널부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과 발 밑에 고여있는 것의 감각 , 더 나아가 당신이 아는 ' 탄야 하멜 ' 이 당신이 끌고 온 쥐수인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붉게 젖은 손으로 쥐수인의 어깨를 움켜쥐려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카리나는 자신이 하는대로 거부없이 받아주고 휘둘리던 눈표범의 이면에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내일 준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천천히 줘도 좋으니까 편하게 주도록 해. 참고로 쥐수인 어깨를 그냥 손힘으로 움켜쥐는 게 아니라, 여타 수인들이 등장하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손톱을 세워 움켜쥐는 거라고 생각해줘. 일부러 돌려서 표현한거긴 한데🤔
쥐 수인을 움켜쥐려는 탄야를 내버려둔 체 바라보며 피식 웃은 카리나가 말한다. 웃긴 상황은 아닌데, 주변을 보아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 멀리까지 열심히 뛰어가서 낚아채온 수고가 물거품이 되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머릿속에 있던 말과는 잘 매치가 안됐으니까.
" 탄야, 죽고 싶단 말이랑 다르게 열심히도 해줬네? "
쥐수인이 기절한 와중에도 내는 신음소리 따위는 무시한 체, 비린내 가득한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쉰다. 다들 도망가기 바쁜 거리 한가운데에서 거친 눈을 한 체로 자신을 응시하는 탄야에에 카리나는 물었다.
" 이게 어딜 봐서 뒤지고 싶다는 사람이 벌일 일이야. 그치? "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저은 카리나는 쥐수인을 움켜쥔 네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리곤 자기에게로 널 끌어당기며 네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절대로 지금의 탄야를 피하지 않겠다는 듯, 망설임 따윈 없는 눈으로 힘을 주어 널 당긴다.
" 일단 피를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다른데로 가자. 더 몰려올거야. 둘로는 힘들어. "
손톱을 세워 쥐수인의 어깨를 움켜쥐고 짓누르듯 잡고 있던 손바닥 아래로 근육과 혈관이 찢어지는 감각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던 그가 날카롭게 존재감을 드러낸 엄니를 드러내며 위협하듯 으르렁대며 , 당신의 말끝을 붙잡아 반복한다. 쥐수인에게로 고정되어 있던 먹이를 목전에 둔 짐승처럼 번들거리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에게로 고정됐고 " 내가 너한테 그런식의 칭찬을 들을 이유는 없는데. " 하며, 낮고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이며 다시 은청의 시선이 쥐수인에게로 향한다.
당신에게 건조하고 단조롭게 대꾸하는 목소리와 번들거리는 은청의 시선이 대조적이다. 얇고 가느다란 체형에서 나오기 힘든 그의 힘에 기절한 상태인 쥐수인은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릴 뿐, 발버둥도 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당신의 말은 옳은 지적이었다. 죽고자 하는 주제에, 쉬이 그 목숨을 내어주지 않는 그의 모순점을 당신은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 해도 좋았다. 허나, 당신의 그런 말에 차분히 반응해줄 평소의 탄야 하멜은 지금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죽는 것은 자신만이면 족하다. 자신으로 인해 제 3자가 목숨을 위협받을 이유는 없는데, 이름의 무게라는 건 종종 눈치채기도 전에 자신을 붙잡아 당겨내기 일쑤였다.
마치 그래 一. 그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이상 네 의지는 없다는 듯.
탄야 하멜은 자신의 손을 떼어내는 당신의 손에 어깨를 들썩이며 반응했다. 미약하고 잔잔한 반응이었지만, 당신이 그 은청의 시선을 돌리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서로 의견을 집어넣은 적이라곤 단 한번도 없는데. 카리나는 어꺠를 들썩이는 탄야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탄야의 은청색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피할 이유따위 없다는 듯. 어차피 무엇을 하든 이렇게 됐을거라고 말하려는 듯, 망설이지 않고 그 시선을 맞이한다.
" 마음 같아선 지금 그 자존심을 온몸으로 꺾어주고 싶은데... 일단 저거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어? 너나 나나 괜찮지만, 잰 안 괜찮아보이는데? "
한켠에 나뒹구는 체로 힘겨운 숨을 내뱉고 있는 탄야의 보디가드를 하던 수인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쉰다. 이러나 저러나 인파들이 도망간 지금, 탁 트인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한가하게 둘이서 여기서 투닥질을 하기엔 금방 다른 수인들이 몰려올테니까. 그래서 카리나는 쥐수인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보디가드의 팔을 어깨에 둘러 일으켜세운다.
" 일단 내가 아는 곳으로 튀자고. 거기서 이것부터 어떻게 치료라도 하고 나서 그 다음일은 생각하자.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
카리나는 그정도는 따라줄 수 있지 않냐는 듯 은청의 시선을 올곧게 마주하며 태연히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 중앙의 지배자 나으리가 그정도도 생각을 못 해주진 않겠지. 밑바닥의 사냥개도 이런 건 생각할 줄 아는데. "
당신의 정면에 서있는 이 새하얀 눈표범 수인은 은청의 시선을 한번도 깜빡인다던가, 피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당신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아니 끝난 뒤에도 무관심하며 무기력한 태도와는 영 매치가 되지 않는 은청의 시선이 그저 새파랗게 번들거리듯 빛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분노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것이 탄야 하멜의 은청의 시선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탄야 하멜은 제 몸에 갓 묻은 비릿한 혈향을 고스란히 맡았다. 마르지 않은 피비린내는 머리 한구석이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다.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쥐수인의 어깨를 뜯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쥐어낸 손끝을 타고 송글거리며 새어나오는 피가 제 몸에 흥건할 것이다. 당신이 쥐수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칠 때, 그는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더니 그대로 쥐수인의 목으로 옮겨 그대로 틀어쥔다. 그 태도는 당신의 말은 단 한음절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 내버려둬. "
수행원의, 맹수 특유의 눈동자와 그의 은청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으나 수행원이 고개를 떨궈내는 것으로 그 얽혔던 시선은 떨어진다. 낮게, 수행원은 고통스러워했지만 온기 한점 없이 냉정하게 떨어지는 그의 한마디를 들었음에도 수행원은 어떠한 반박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당신의 시선에는 탄야 하멜이라는 이름의 눈표범 수인도, 그의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에 반박 하나 하지 않는 수행원의 태도가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다가갔을까. " ... 저것 또한 예상했던 것일테니. " 하고, 그가 담담하게 읊조리며 붙들고 있던 쥐수인의 몸뚱이를 바닥에 내버리듯 놓아버리고 자신의 앞머리를 가벼이 흐트러트리듯 쓸어올린 뒤 잠시 은청의 시선을 질끈 감는다.
" 비아냥거리는 건 관두지. "
당신에게 부축되어 있던 수행원의 팔을 붙잡아 끌어서 어깨에 걸치는 그의 은청의 시선은 불과 몇분 전에 보였던 번들거림은 사라진지 오래였으나 그 무감하고 무뚝뚝하게 표정이 적은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짙은 무기력함이다. 그가 자세를 고치자, 당신에게 부축되어 있던 수행원의 단단하고 다부진 몸뚱이가 그에게로 이끌렸다.
비아냥거리는 건 관두지, 탄야의 말투를 따라하듯 중얼거린 카리나가 한숨을 푹 내쉰다. 정말이지, 이래서 수인들과 어울리는 건 피곤하다니까. 카리나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말이었다. '평범한' 수인이었다면 그냥 이젠 니 알아서 하라고 던져두고 제 몸을 내뺐을텐데. 눈 앞의 새하얀 눈표범 수인은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다면서 그냥 죽지도 못하는 아슬아슬한 저 수인을 두고가는게 힘들었다.
" 저걸 그걸 짊어지고 뚫고 어떻게든 가보겠다고? "
다부진 수행원을 끌어당기는 카리나에게 뒤를 힐끗 본 카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마도, 금방 소식이 퍼져나간 것인지. 쥐수인을 잡아온 것이 무색하게 꽤나 많은 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듣고 수를 늘려 세사람을 잡으러 오는 듯 했다.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당신을 바라보는 그는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뜨며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 시선에는 어떠한 불만도, 불평도 떠오르지 않은 채로 그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무던히 빛나고 있었다. 얼결에 그에게 부축된 수행원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세를 고치다가 낮게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에 그는 당신을 응시하던 은청의 시선을 돌려냈다.
" 一두고 가시죠. 이 상태로는 짐만 될 뿐입니다. " " 네 시체라도 끌고가야만 납득할 상대니까 , 불평은 접어두도록 해. "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아니었더라면 , 아마 그는 수행원의 의견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처럼 부상을 당한 수행원을 끌고 본래 볼일이 있던 장소까지 갈거라는 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수행원에게 붙박혔던 은청의 시선이 다시금 가늘어지고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로 인원수를 가늠이라도 하는 것마냥 , 그의 둥그스름한 눈표범 특유의 귀와 끝이 뭉툭하고 긴 꼬리가 까딱이며 움직였다. 나 하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받는 건 싫어하는 주제에 이렇게턱없이 불리해진 상황을 피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내가 지독히도 모순적이라서 냉소조차 지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건지. 탄야 하멜은 무뚝뚝하고 무감한 얼굴을 한 상태로 한쪽 눈썹을 느릿하게 찡그려보였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 스스로 숨을 끊어낼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가 이 숨을 끊어주길 바라면서도 우습게도 쉬이 숨통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수행원은 자신을 붙들어 부축하고 있던 그의 손과 팔에서 힘이 풀어지는 걸 느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자세를 바로 잡아 그의 앞을 보호하듯 막아선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수행원의 모습에 탄야 하멜은 찡그리고 있던 눈썹을 펴며 메마른 한숨을 길게 내쉬고 몸을 돌렸다.
죽지말라는 한문장을 죽고 싶어하는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 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그 한마디를 물어 삼켜죽였다.
일단 세사람이 나아가야할 길은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적어도 카리나가 알고 있는 뒷골목의 길을, 추격자들이 카리나보다잘 알 일은 없었으니까 그부분은 확실했다. 뒷골목이 속해있는 지역의 지배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밑바닥의 세세한 부분까진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먼저 달려나가던 카리나는 이내 뒤쫒아올지도 모르는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춰선다.
" 푸흐, 뭐야. 결국 오.... "
익숙한 형체가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던 카리나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그리곤 눈을 굴리더니 싱글거리던 미소를 지우곤 성큼성큼 다가가 탄야의 어깨를 강하게 치려고 했다.
" 야! 니 수행원은 어디갔는데?! 니가 챙기려고 나한테서 떼어놓은거 아냐?! "
씩씩, 카리나도 자신이 고작해야 수행원, 그것도 자신의 수행원이 아닌 탄야의 수행원 때문에 한순간 화가 치솟을 줄 몰랐다. 뭐가 화나는 걸까. 수행원을 버렸다는거? 아니면 그래도 자신이 아는 지배자랑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탄야에 대한 생각이 깨져버린 것? 카리나도 한순간 솟아오른 감정에 종잡을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을 뒤따라온 탄야를 옆의 낡고 더러운 벽에 탄야를 밀치려고 할 뿐이었다.
" 그냥 버리고 올거면 나한테 맡기기라도 하지! 살릴 수 있는데! 저기 두고 오면 진짜 뒤진다고! "
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는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둥그런 귀는 뒤편에서 들리는 소음을 잡아낼 만큼 뛰어났다. 반은 짐승이라고, 평소 무기력하게 굴고 있다고 한들 뒤엉키는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수행원의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다는 뜻과 같다. 몇분, 혹은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포악하게 굴던 이 눈표범 수인은 당신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하는 행동을 내버려둘 뿐이었다.
늘 그랬듯, 어떤 대꾸도 말도 없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은청의 시선에도 어떠한 반응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딩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받아들인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또한 당신이 알고 있는 지배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까.
" 살려? 누구를? 나와 함께 왔던 그를? "
뒷골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더러운 벽에 몸이 부딪혔음에도 탄야 하멜의 무감하고 조용한 무표정은 변치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물었다. 아니다. 질문이 아니라, 그의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평소와 다르게 검붉게 변색된 피가 말라붙은 손을 그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당신의 손 위에 올리고 떼어내려했다.
" 그의 임무는 ' 내가 약속 장소까지 가는 동안 신변을 지키는 것' 이었어. 하지만 너와 이곳에서 마주친 이상 그가 맡은 임무는 이미 틀어져버렸지. 그렇다면 一 "
내게 있어서 너는 불청객이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내 영역에 침범하여 뻔뻔하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불청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너를 내치지 못하는지. 탄야는 떼어낸 당신의 손을 놓지 않고 도리어 당신을 향해 고개를 기울여서 눈을 맞추기 이르렀다. 그 거리감은, 그가 무감한 낯으로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댔을 때와 같다.
" 그가 맡은 임무를 망치지 않으려면 그는 어떻게 해야했을까? "
가늘게 접어뜨고 있는 은청의 시선은 여전히 형형하게 빛났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높낮이가 일정했다.
가까이로 다가와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가 된 카리나는 한순간 마음 한켠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다. 피가 흩뿌리는 비릿한 향 너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탄야의 향기에 이상하리만큼 낯선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지금 당장 가까워진 탄야와 입을 맞추고 싶단 생각이 드는것은. 하지만 카리나는 애써 그 생각을 뒤로 하고 비아냥거리듯 탄야애게 말한다.
" 뭐, 이제 와서 네탓내탓 할 시간은 아니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고. "
가까워진 탄야의 뺨을 두드려주며 픽 웃어보인 카리나는 천천히 물러난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시간을 끌어주는 것도 그리 오래 못 갈 것은 분명했으니 뒷골목 깊숙이 파고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추격자들도 꺼리는 뒷골목 그 안으로 깊숙하게.
" 지금부턴 발소리 죽이고 잘 따라와. 우리 아가씨도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일 줄 알잖아. ".
잘 하자는 듯 탄야의 어깨를 두드린 카리나는 돌아선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마음을 자꾸만 외면하면서 발소리를 죽여 점점 어두워지는 뒷골목의 고약한 길을 앞장서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도 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