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야가 바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선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골목에는 방금전 휘청거리던 카리나를 눈여겨보던 수인과 카리나가 있었다. 찢어진 탱크톱이 한쪽 어깨에 걸쳐진 체로 늘어져 있었다. 그 안의 흉터들은 어떤 것들로 새겨진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난잡하게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흉터 속에 붉은 상처를 하나 더 새겨넣었다.
" 진짜... 기분 개같아서 얌전히 가려고 했는데... "
찢어진 입술과 부어오른 뺨, 머리채를 잡힌 것인지 이리저리 헝클어진 거친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탱크톱을 천천히 물들이는 붉은 빛의 액체. 하지만 카리나는 그런 건 아랑곳 않고 취기가 가득한 날카로운 눈에 형형한 불꽃을 일렁이게 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른 고급진 옷을 입은 개과 수인의 다리에는 골목길 어디에서나 뒹굴고 있을 녹슨 철사였다. 비명을 지르는 수인을 보면서 카리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핏물 섞인 침을 내뱉는다. 물론 수인이 무어라 하기 전에 철사를 걷어차서 뭣도 못 하게 만들면서.
" 이런 새끼도 살려달라고 비는데 말이야.. 나보다 많이 배웠다는 녀석이.. "
휘청휘청, 취기가 여전한지 비틀거리면서 카리나는 투덜거린다. 흔들리는 가로등 빛에 비춰진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더러운 것이 뒤에서 기습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씩씩대던 카리나는 이내 시선이 느껴지는지 고개를 들고선 주변을 멍하니 두리번거리다 탄야를 발견한다.
" 크흐... 뭐야, 마중 안 나온다며~! "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이려던 카리나는 버둥거리던 수인이 또 비명을 지르려 하자, 얼굴을 걷어차 기절시켜버리곤 히죽 웃으며 탄야에게 말을 던진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던 탄야의 둥그스름한 귀가 움직였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귀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게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던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공기를 가로질렀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디디면서도 그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다. 왜 따라나온건지, 왜 머뭇거리지 않는건지. 의문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그는 골목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이 하는 짓을 탄야는 끼어들지 않은 채 지켜봤다. 골목의 입구에 선 채로 천천히 담배를 태우는 꼴이 무관심해보였다. 은청의 시선이 느릿하게 당신의 엉망이 된 몰골을 훑듯 움직이고 있다가 겨우 취기어린 걸음, 상태를 살폈고 당신의 얼굴로 향한다.
" 마중은 아니고. "
대답을 중얼거리는 그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 끝에서 회색의 재가 바닥으로 떨궈진다. 기절해버린 수인을 향해 잠시 움직이던 시선이 당신에게로 옮겨졌다. 그 짧은 순간에 탄야는 눈살을 찌푸려보였을 것이다. 가로등 불빚을 정면으로 받는 게 아니여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 나랑 관련된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어. 이름의 무게가 꽤 무거워서 말이야. 이미지는 챙겨야하거든. "
저승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지탱하는 명문가 중 하나.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못하면서도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노려지기 쉽다. 당신과 종종 어울리는 그는 그런 존재였다. 당신을 향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오늘의 일이 일어났을테지만.
" 왜? 걱정이라도 해줬으면 했나? "
수인에게 걸어간 탄야가 기절한 그 몸뚱이를 뒤집어서 얼굴을 확인하며 무심하게 물음을 던졌다.
일주일이 흘렀다. 마땅히 연락할 방법을 찾지않은 채 탄야는 일주일을 보냈다. 눈을 뜰 때마다 지긋지긋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탄식하고, 체념하고, 또 다시 열망에 시달렸자가 포기하기에 이르는 의미없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시간이었다. 꼬박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난 날이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걸음을 딛고 있던 그의 걸음이 식당을 지나치다가 멈춰섰을 것이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뭘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연기를 천천히 공기 중으로 흐트러트리듯 뱉어내던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_____________
" 버섯 크림 스프, 브로콜리와 완두콩을 곁들인 티본 스테이크. "
메뉴판 앞에서 안절부절해하는 당신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옅지 않은 바닐라향이 당신을 감싸려는 듯 퍼지고 길고 가느다란 손끝이 메뉴판을 느릿하게 짚으며 훑어내리더니 " 이쪽은 드링크 종류고. ", 하는 담담하고 차분한 억양이 담긴 목소리가 따라온다.
" 더 알고 싶은 건? "
그는 당신과 헤어진 그 일주일동안 뒷골목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을만큼. 당신이 시선을 돌려서 바라보면 탄야는 딱 일주일 전과 똑같은 표정일 것이다.
놀라는 모습을 가만 비스듬히 응시하던 그의 은회색 시선이 가늘게 좁혀지며 늘어져있는 긴 꼬리 끝이 좌우로 흔들렸다. 오랜만이다, 라는 문장이 나올 정도였나라는 의문은 곧 일주일이면 그럴만하지, 라는 깔끔한 결론으로 이르렀다. 가늘게 좁혀졌던 시선을 옮겨서 그는 메뉴판을 훑어내리던 손을 떼어내고 자신의 턱에 댔다.
" 음식의 종류를 모른다는 말은 아닐거고-.. "
피쉬 앤 칩스, 티본 스테이크, 버섯 크림 스프, 거기에 넣은 재료가 뭔지 짐작도 하기 힘든 스튜등. 몇가지 제법 그럴듯한 음식들로 채워진 메뉴판으로 시선을 둔 채로 탄야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턱에 댔던 손을 내려서 파카 주머니에 넣고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울인다. 긴 꼬리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 너 기본 의무 교육은? "
조금의 의문과 약간의 놀랍다는 빛을 담은 은청색 시선이 당신에게 향한다. 아무리 뒷골목이라는 슬럼가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설마. 아니지. 설마가 진짜인 모양이다. " 지나는 길이었어. ", 무슨 일이냐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탄야의 답변이었다.
놀라움을 담은 탄야의 시선에, 왠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 드는 것이 느껴진다. 왠지 기가 죽는 것 같아서 마음 속에서 발끈하는 감정이 샘솟았지만 부끄러움이.다시 앞서나가 슬그머니 눈을 돌리곤 중얼거린다. 들어본 적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밥 먹을거 구하러 다니느라 그런 건 눈길도 안 줬던 것 같았다. 뭐, 오늘처러 곤란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왔으니까.
" 크흠... 아니, 뭐... 여태 어떻게든 살아오긴 했는데. "
자꾸만 탄야의 눈에서 설마, 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뒷골목엔 글을 못 읽는 자식들이 좀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런 애들이 자신을 보던 시선과는 탄야의 시선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 ... 일단 너도 뭐 안 먹고 왔으면 밥 같이 먹던지. 오늘은 일당이 좀 두둑한데. "
머쓱하니 슬그머니 이야기를 바꾸려한다. 자신이 밑바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탄야가 그런 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밑바닥 그 아래로 빠져드는 것 같았으니까.
"알파벳을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의무 교육에 대해 물어보는 거야? 의무 교육은 쉽게 말하면 기초교육이지. 의식주를 제외하고 사회에서 사용하는 것. "
글을 읽고 쓰는 법이라고 해, 라고 당신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눈길을 돌리는 당신에게 향하는 은청색 시선이 제법 길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라는 점에 놀라워해야할지, 아니면 역시나하는 반응을 보여야할지. 탄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 안배워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너랑 관계된 누군가를 생각하면 배워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
당신의 뒤편에 줄곧 서있던 그의 걸음이 조금 떨어지며 거리를 둔다. 언제나와 같은 적당히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당신의 생각과 별개로 그는 아까 보였던 의문과 놀람을 담았던 시선이 아닌 평소와 같이 무덤한 눈빛이었다. 뒷골목이라는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의무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건 아포칼립스 사태로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 전에도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탄야는 쓴웃음을 집어 삼켰다.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정말로.
" 난 원래 밥을 안먹어. 평소에도 말야. 그러니까..그냥 차한잔이면 될 것 같네. "
탄야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당신을 바라보더니 곧 고갯짓을 해보인다. 그 의미는 안으로 들어가자는 의미였다.
주변에 있는 인물이라고는 살아남은 형제 둘뿐인 탄야 하멜(28세,설표) 아마 자신이 맺는 관계의 의미가 깊다는 건 고교생쯤 눈치챘을 것 같네. 다른 사람들이랑 의미가 다르다는 것도 그때쯤. 연애는 해봤냐한다면...아포칼립스 사태 전에 명문가들이 그렇듯 집안끼리 약속한 정혼자는 있었을 것 같지만 의무적 교류 외에는 만남이 없었을테고... 뭐야 그냥 부잣집 아가씨 그 자체잖아.
좋아해줘서 고마워. 한번쯤 카리나가 탄야의 행동이나 태도에 흔들리는 걸 보고 싶다는 바램이 있어. 첫일상에서 탄야가 흔들리기도 했으니까. 여하튼 내일 보자.
결국은 배운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글 하나 볼 시간에 동냥이라도 다녀야 그날 저녁은 굶지 않고 뭐라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치만 탄야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간단한 것 정도는 배워두는게 좋지 않았나 하는 가벼운 아쉬움이 입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놀림 받아도 할 말이 없단 사실에 갑갑했지만, 탄야가 또 그걸로 놀릴 성격은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 자랑이다. 밥도 안 먹는다는게. 하여튼 글 못 읽나 버젓이 밥이 있는데 안 먹는거나 다를거 없다니까. "
말은 투덜투덜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듯 말하면서도 네 뒤를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깔끔한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웨이터 옷을 입은 여종업원이 걸어와선 시선을 탄야와 카리나에게 번갈아 옮겨 다니다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안쪽으로 안내할게요' , 명랑한 그 말투 너머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온 것을 보곤 둘의 사이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 아무튼 밥은 안 먹는다니까 끌리는 차로 골라. 난 스테이크 먹을거야. "
고기도 흔치 않은 별미였다. 적어도 카리나에겐. 딱히 탄야에게 더이상의 식사 권유를 하지 않는 것은 안 먹을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었지만 역시 메뉴판을 못 읽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슬쩍 탄야에게 메뉴판을 내밀었으니까.
" ... 글 배우는 건 어려우려나? "
그렇게 메뉴판을 내밀곤 얼마나 있었을까, 턱을 괴고 먼곳을 보던 카리나가 슬그머니 속삭이듯 물어온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릴 뿐이었다. 다시 곱씹는 거지만 정말로 당신과 닮은 점이라고는 티끌 하나만치도 없다. 애초에 너무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그의 시선이 깜빡이는 것도 잠시, 곧 가늘게 좁혀졌는데 당신의 말 때문이었다.
" 전혀 다르지. 한끼 정도 거르는 건 건강상 큰 문제가 안되지만 글을 못 읽는다는 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거든. 너는 아니여도 나한테는 그래. 나 어울려 다니는 이상 네 이미지에 나도 적잖이 영향을 받으니까. "
식당 내부로 들어서면서 당신의 말에 답변하는 탄야의 목소리는 어김없었다. 무심하고 차분하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지만 타인이라 부르기에는 또 지나치게 거리가 가깝다. 당신은 탄야를 친구라는 카테고리에 넣을지 모르겠으나 탄야는 아직 당신을 자신의 친구라는 선에 넣지 않고 있었다. 간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죽기를 갈망해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지. 그런 것 치고는 자주 만나서 어울리지만.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자리에 외투를 벗어서 걸어둔 그가 의자에 앉았고 당신이 내미는 메뉴판을 받아든다.
" 난 그냥 커피면 되고. 메뉴판에 오늘의 추천세트라는 게 있는데. 스테이크, 스프, 음료수.. 디저트까지 나와. "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라고 그는 짧게 생각하며 메뉴판에 시선을 둔 채 당신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당신의 자세와 다르게 그가 앉아있는 자세는 반듯하다. 무의미하게 메뉴판을 넘기고 있던 그가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한손 위에 메뉴판을 올려둔, 꼭 책장을 넘기는 자세를 한 채로 그는 시선을 들었다.
" 어느정도의 수준이냐에 따라 다르지. 그림책 정도라면 어렵지는 않아. 내 기준에서는. "
가늘게 은청의 시선을 뜨고 당신에게 대답한 탄야가 한숨을 쉬듯 짧게 무력한 사람처럼 웃어보였을 것이다.
" 이미지.. 하긴 너희들은 그런거 좋아하더라. 양육원 원장이 돈 다 빼돌리는데 기부한다면서 가져다준다던지 하는거 말이야. "
뭐, 그럴 수 있지. 카리나는 자문자답을 하듯 중얼거리곤 어깨를 으쓱인다. 저 윗세계 사람들에겐 자신 같은 밑바닥 인생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탄야도 겉으로 보기엔 도도하기 그지없는 고위층 아가씨였으니까. 입에서 살 의지가 없는 말들이 흘러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아무튼 가까운 듯 하면서 거리를 둔 상태로 안으로 들어선다.
" 커피, 그리고..음.. 오늘의 추천 세트. "
마침 지나가던 종업원에게 손짓을 하곤 탄야가 불러준대로 주문을 한다. 일단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단숨에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사실 탄야가 아니었다면 확인 작업을 거치고 나서야 믿었을텐데. 카리나 역시 알게 모르게 탄야에게 마음이 열리긴 한 것 같았다. 그리곤 자신을 보며 웃어보이는 탄야를 응시하다가 고민을 하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 여유 있으면 좀 알려주든지. 글자. 읽을 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네 이미지 문제도 있고. "
다행히 탄야가 들어오며 던져준 말을 이유삼을 수 있어 안심을 하며 슬그머니 부탁을 한다. 사실 카리나가 글자 같은 것을 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건 탄야가 유일하다는 것도 한 몫을 했지만.
"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렇게 챙겨대면서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썩어문드러지는지는 신경도 안쓰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지? "
예의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내뱉는 말은 무뚝뚝함과 거리가 멀다. 비아냥거리지 않았을 뿐 냉소적인 뉘앙스였다. 게다가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은청의 시선이 경멸과 시니컬한 빛에 잠시 잠겼다. 뒷골목에 기부하는 행위도 결국에는 그네들의 이미지 챙기기 뿐이지. 그 돈이 정말 제대로 사용되는지 관심도 없는 주제에. 탄야는 새어나오는 비웃음을 목구멍 아래로 씹어삼켰다. 결국은 핏줄에서부터 새겨졌다고, 이미지를 생각하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역겹기 그지 없다.
당신이 웨이터를 불러서 주문을 하면, 탄야는 들고 있던 메뉴판을 덮어서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두고 물컵을 집어들어 입에 가져다대며 거리가 언뜻 비쳐보이는 창문에 시선을 뒀다. 은청의 시선이 멀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하다.
" 난 이미지가 박살나도 크게 신경 안쓰는데. 그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사회였다면 모를까. 내 이미지를 위해서 배우려고 하는 거면 관둬. 그런 거 필요없으니까. "
정부가 무너지고 도시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패권 다툼의 불씨를 당긴 게 자신이다. 이제와서 곱게 자란 얌전하고 조용한 부잣집 아가씨의 이미지를 찾기에는 늦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뭔가를 배운다는 건 본인 스스로의 의지가 우선이 되지 않는다면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 나를 이유로 들지말고 네가 정말 배우고 싶은지 생각해봐. ", 라며 탄야는 다시 말문을 열면서 당신을 가만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