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탄야의 지적에, 푸흐흐 웃음을 터트린 카리나는 능청스럽게 농담을 이어간다. 뭔가 두사람 사이에서 농담이 오고 가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물론 카리나도 탄야가 그런 감정을 자신에게 품을 것이라곤 딱히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냥 탄야와 이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운 모양새였다.
" 알았어, 다음번 수업때까지 이 책 한권 정도는 읽을 수 있게 해볼게. "
숙제를 받는 아이처럼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카리나였다. 어차피 탄야를 만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딱히 하는 것도 없었으니 담배를 피는 것보단 훨씬 생산성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것이 은근히 즐겁기도 했다. 이런 걸 배움의 즐거움이라 하던가.
" 괜찮아, 괜찮아. 애초에 날 좋게 보는 사람이 있던 적이 극히 적은 인간이니까. 여기 밤길, 미친 놈들 많으니까 데려다줄게. "
자기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탄야 곁에 서는 카리나였다. 어차피 탄야가 돌아간 후에 딱히 할 것도 없었으니 마실 다녀오듯 다녀올 생각이었다.
😶 따라와도 좋다곤 했는데 이걸 진짜 따라올줄은.. 맙소사 중앙의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이 설표 형제들 이름도 안정했는데. 지금이라도 급조로 정해야겠는걸. 모욕은 너무 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닐거야. 성격이 파탄난 수준의 형제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답레는 음..출근길에 줄게.
날씨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확실히 겨울이네. 낮이랑 밤 온도차가 어떤지 모르지만🤔 일요일이야. 푹 쉬면서 충전하길 바래.
실없는 당신의 농담에 탄야는 변함없이 차분한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없는 농담과 영양가 없는 잡담은 자연스러운 흐름임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런 흐름도 당신이나 자신이 서로의 건드리지 말아야하는 부분을 입에 올리면 어그러질 흐름이다. 자신이 열망하는 것과 당신이 생각하는 건 대착점에 놓여있어서 맞물리지 않으니.
대답을 내놓거나 하지 않은 채, 탄야가 이어지는 말에도 고개만 끄덕여보일 뿐이다. 벽에서 몸을 떼어내면서 그 무표정에 얼핏 지긋지긋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형제. 그 지칭그래도 피를 나눈 혈육. 탄야는 잠시 제 형제들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가로젖고는 걸음을 옮겼다. 첫발을 떼며 담배를 꺼내 물던 그가 어깨를 으쓱인다.
" 一 마음대로 해.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 괜찮겠지. "
중앙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종종 당신이 건네는 잡담에 무덤한 어조로 그가 대답하는 잔잔한 대화의 흐름을 벗삼아서 들어선 중앙은 동부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정면으로 시선을 주면 저 멀리 하늘로 길게 뻗은 탑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도 주변을 살펴보면 밤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몸 어딘가에는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며 표정들은 제각각이여도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을 것이다. 당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눈표범 수인과 비슷하게.
" 탄야 ! "
어디선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옆에 있던 그의 무뚝뚝하고 차분하던 얼굴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살짝 찡그려지고 거의 동시에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마냥 주춤 멈춰섰다.
" 마중까지 나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
시선을 떨어트리며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에게 곧장 걸어오는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 미야. " 하고 이름이 불려진 상대는 그와 똑같은 눈표범 수인이었다. 그것도 탄야의 형제라는 걸 알려주듯 몹시 닮아있었고 탄야와 다른 점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은백색 장발과 고양잇과 수인답게 치켜올라간 눈매, 더불어 제법 장신에 드는 탄야보다 반뼘정도는 더 큰 키의 수인은 탄야의 어깨를 감싸듯 팔을 두르고 탄야를 안았고 탄야또한 자연스레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 너구나? " " 一 미야. "
얇고 가느다란 체형인 탄야를 끌어안은 채 놓지 않던 미야라고 불린 눈표범 수인이 당신을 쏘아보듯 똑바로 응시했다.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릴 때 몸에 딱 맞는 옷 위로 보일정도로 잘 발달한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탄야는 그런 형제 一정확히는 여동생의 행동을 저지시키려 감싸고 풀 생각이 없어보이는 팔을 누른다.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는 게 당신이 듣던 목소리와 달랐을텐데, 그 단조로운 목소리에 경고성이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리나는 탄야와의 잡담을 즐기며 느긋하게 밤산책을 하다가 찾아온 불청객의 부름에도 딱히 주눅 드는 기색이 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한다. 그도 그럴 것이ㅡ얼마나 신사적인가. 뒷골목에선 경고는 커녕, 갑자기 뒤통수 맞기가 십상인데 저렇게 대놓고 굴어주는게 오히려 맘이 편했다.
" 그나저나 가족은 가족인가봐. 둘이 닮긴 닮았네. "
으르렁대는 미야라는 이름의 수인을 싱글거리는 눈으로 응시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뭐, 분위기가 사납기는 했지만 지금은 일단 혼자도 아니었고, 탄야의 가족인 만큼 굳이 붙이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말을 듣거나 숙이고 들어가는 그런 것도 아니긴 했지만.
" 그래도 초면부터 그렇게 째려보고 그러지는 마. 중앙에선 몰라도 음, 그 밖에선 위험해. "
미야라고 불려진 눈표범 수인의 양팔에 감싸진 채, 탄야는 시선만 당신에게 시선을 움직인다. 여동생의 성향은 차분하고 무뚝뚝한 그와 정반대였다. 좋게 말하면 호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없었고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다혈질이라는 뜻과 일치한다. 즉 一 자신의 여동생이자, 중앙을 관리하는 하멜 가문의 주축 중 한명인 미야 하멜은 당신의 말에 유연하게 넘어가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과 같다.
" 동부 출신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중앙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신경에 거슬리는데 언니를 봐서 참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저게 진짜! 밖에서는 위험하다고 했어? 너 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어때? 동부출신. "
탄야는 제 형제들의 이런 면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동생인 미야 하멜은 자신이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겼던 그 때 피로 피를 덮어쓰는 싸움에 참가했었기 때문인지 중앙을 장악하고 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대형 고양잇과 수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프라이드여서 이해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당신에게 덤벼들 기세로 으르렁대고 있으나 탄야가 이름을 부르며 팔을 붙잡아서 그런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중이었다.
" 여기까지 마중나올 줄은 몰랐으니 내 불찰이야. 이건 사과할게. " " 사과하긴 뭘 사과해? 요즘 동부 움직임이 ...! "
당신에게 나직하게 대답을 중얼거리던 탄야가 움직인 건 순식간이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탄야 하멜은 매사에 무관심하며 무기력한 태도를 일관하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물론, 그의 소문 一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긴 당사자라는 소문은 당신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 내가 꼭 닥치라고 해야만 닥칠래, 미야 하멜. "
그토록 얇고 가느다란 그의 체형은 여동생과 비교하면 그 특유의 선이 두드러져서 체격 차이가 심하게 나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위기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다,
" 너야말로 나 알아? 중앙출신? 너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면서 주절주절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은데? 누구말마따나 탄야 동생이라고 하니까 참고 있는거야.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엔 가고, 하고 싶은 일은 내 마음대로 해. 중앙출신 따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동부에서도 이래라 저래라 안 하는데 말이야. "
아무래도 탄야의 성격과는 정 반대인 것은 카리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굳이 먼저 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저렇게 대놓고 이를 드러내며 위협을 하면 거친 곳에서 자라난 늑대도 결국 이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야의 말에 피식 웃은 카리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서서히 변해가면서 우습지도 않다는 듯 으르렁댄다. 아마도 탄야에겐 몇번 보인 적 없는 모습이지 않을까.
" 하씨, 동부의 움직임이고 자시고 나랑 연관도 없는데 말이야. 애초에 동부의 그 덜 떨어진 자식들은 지들끼리만 뭉치는데 애꿎은 나한테 난리야. "
동부의 패권을 쥔 것이 수인우월주의에 물든 수인들이라는 걸 뻔히 알지 않냐는 듯, 미야에게 보란 듯이 꼬리도 달려있지 않은 엉덩이를 보이곤 흔들어준다. 물론 설명을 해주는 것처럼 놀려먹은 것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탄야가 자신의 동생을 말리고 있었으니 덤벼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 하여튼, 밤산책이 나름대로 즐거웠는데 누가 와서 다 망쳐버렸네. 눈치도 하나도 없어선. "
당신의 이어지는 말은 미야에게 있어서 충분한 자극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고양잇과 수인 특유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야는 당신을 향해 적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런 개 一 " 라고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단어를 내뱉으려던 미야가 제 언니인 탄야의 시선을 눈치채고 입을 다물며 말을 집어삼키는 게 당신에게 보였음이 분명하다.
" 너도 그쯤해둬. "
힘을 준다거나, 압박을 줘서 위협하지도 않았지만 탄야의 나즈막한 속삭임에 미야는 불만스럽게 으르렁 소리를 내고 당신을 흉흉하게 노려보다가 뒤로 물러섰고 당신의 도발아닌 도발에 탄야의 시선이 당신에게 향했다. 늘 무기력하게 그늘져있던 은청의 시선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것을 당신은 봤을까. 못봤더라도 상관없을테지만. 수인 우월주의에 찌들은 동부의 수인들이 동부의 인간이랑 어울린다. 그 사실은 자칫하면 중앙의 一그러니까 하멜의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피를 흘리고 그렇게 희생을 치렀음에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패권다툼의 한복판에 있다. 그 사실이 그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 내 형제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 형제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점 또한 옳은 행동은 아니야. "
차갑고 날카로운, 한때 패권 싸움에 불씨를 당겼던 이의 시선이 주변에 멈춰서 기웃거리고 있는 이들을 천천히 살피듯 둘러봤고 당신에게 하는 말에는 질책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았다. 질책보다는 건조한 보고와 같은 뉘앙스.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미야가 탄야의 시선에 노출되자 그 큰 덩치에 안어울리게 귀를 납작- 머리 위로 눕히는 것은 당연하다.
추위×야간근무=실신 공식을 아주 철저하게 밟은거라서 괜찮아. 살짝 감기증세가 있는 듯 하지만 일특성상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럭저럭 건강은 괜찮은듯해? 여기서 무리만 안하면야? 그럼 내걸로 막레하자. 저기서 만약 길어졌으면 이번에는 탄야네 오빠가 나왔을지도() 오늘 수고했고 음, 약간 이쯤해서 큰 갈등 같은 걸 넣어서 진전을 줘야하나 아니면 이흐름으로 가야하나하는 고민이 있어.
몸은....뜨끈뜨끈한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물은 음, 음? 나름? 걱정하게 만든 것 같은데 진짜 무리하면 나는 이 스레에 일주일 동안 못올지도ㅋㅋㅋ그러니 괜찮아. 카리나주도 건강 주의하도록 하자. 오...그런가? 탄야가 있으면 되는건가.. 주변환경에 의한 둘의 갈등이 보고 싶은데 이걸 하다가는 저번처럼 탄야가 확 도망가버릴 것 같단 말이지🤔 게다가 주변 환경이라고 해봤자 카리나는 신경 안쓸테고 (이건 탄야가 신경쓰겠지)
그럼 괜찮을거야ㅡ. 이불은 무적이고 신이니까. 아하하, 일주일이나 못 온다니 카리나주는 말라죽을지도. 푸흐, 농담이고 아무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단거야~ 한명은 도망가고 한명은 신경을 쓰지 않는 이 난국을 어찌 하면 잘했단 말이 나오려나. 퇴근하면 머리 좀 더 여유롭게 굴려봐야겠다.
겨울 이불은 갓갓이니까. 최고야 부드럽고 따뜻해. 아프게 되면 미리 말해둬야겠는걸. 이래봤자 내 컨디션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걱정이 계속되면 안되니까 적당히 건강 챙길게.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치려는 탄야와 신경쓰지 않는 카리나...정말 이 둘을 어떻게 해야하나.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네. 퇴근 조심히해.
이럴 것 같더라니. 중앙- 그곳에서도 을씨년스레 치솟아있는 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멜 가문 소유의 건물에 들어서던 탄야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형제의 말에 반문했다. 어깨에서 반쯤 흘러내린 외투에 대고 있는 손을 멈추고 반문하는 그의 목소리는 스산하게 내리깔린다. 그것을 위압감이라면 위압감이라고 할 수 있을 거고, 우연하게 흘러들어간 뒷골목에서 시작된 웃기지도 않는 인연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 그, 아무튼 一 언제까지 친하게 지낼 셈이야? 언니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위험하다는 거 알고 있는거지? 아무리 그, 쪽을 동부에서는 신경안쓴다고 하지만 언니는 예외라고. 아니면 뭐야? 지금도 그때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는거야? " " ... 미야. "
형제의 이름을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머리 위로 납작하게 귀를 접고 불안하게 길고 북슬거리는 꼬리를 움직이며 말을 멈추지 않는 형제의 말에 그는 눈썹을 슬쩍 찡그리고는 걸쳐져 있던 외투를 마저 벗으며 검은색이 섞인 앞머리 부근을 손끝으로 흐트러트린다.
" 이제 괜찮아져도 되잖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아무도 언니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함부로 할 수 없는데. "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가던 형제와 그의 시선이 문득 허공에서 마주친다. 형제 - 미야는 그와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창백하게 얼굴 색을 바꾸며 경솔하게 지껄여버린 제 입을 다급히 틀어막았다. 미야는 직감했다. 자신이 얼마나 생각없이 말을 쏟아냈는지를. 그 은청의 시선에 깊게 뿌리박혀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미야는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원인은 이제 더이상 없지, 네 말이 맞아. " " 一 언니... " " 그렇지만, 미야. "
탑이 보이는 창문으로 걸어간 그의 은백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웃음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미야에게 닿았기에 납작하게 접혀있던 미야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 너는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잖아. "
그가 웃었다. 한숨을 쉬듯 짧게, 무기력한 사람마냥. 무력한 웃음이다. 언제부터 저렇게 웃었더라. 언제부터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미야는 떠올릴 수 없었다. 제게 있어서 제 언니 탄야 하멜은 무서울만큼 완벽했다. 분명 부모님이 제 언니를 두고 열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었지만 제 시선으로 보는 그는 무섭도록 완벽했는데.
짧고 희미하게, 무력하게 웃어보이던 탄야가 창틀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형제의 말이 맞다. 이제 더이상 자신을 비교할 원인은 없다. 수인우월주의 사상에 젖은 자는 남아있을지언정, 우성과 열성을 따지는 자는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 그, 언니, 나는.. " " 미안하지만 좀 쉬고 싶어. "
미야가 내밀어오는 사과의 제스처를 탄야는 단칼에 거부했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에 기대며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는 느릿하게 미야를 바라보고 있던 은청의 시선을 감았다. 명백하고 확고한 대화의 거부였다. 그 얼굴에 지긋지긋하다는 기색과 지독하게 지쳐버린 무언가가 언뜻 내비쳐졌다. 미야는 차마 말을 더 붙힐 수 없었다. 피를 나눈 혈육조차 이해할 수 없는 뿌리깊게 박힌 것. 겹겹히 쌓여버린 그것은 뭘까. 증오일까, 원망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일까. 미야는 제 언니를 이해하고 싶었으나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아버린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말라비틀어진 채 숨만 쉬고 있는 이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하는지 미야는 몰랐다.
" 그리고 一 "
다음부터는 말에 주의하도록 해. 도망치듯 방문을 열고 나가는 미야의 등 뒤로 단조로운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미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옳았다. 둔탁하게 닫히는 문소리에 그는 문 담배에 불을 붙히고 지독하게 달달한 바닐라향을 한껏 들이마시다가 한손으로 제 눈가를 덮어냈다.
퇴근하고 귀가해서 일상주제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해봤어. 바로 전 일상에 탄야가 과보호(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를 받는 것도 카리나가 봤고, 탄야는 그런 형제들의 제지(라고 하고 호소와 비슷한)때문에 약간 중앙에 붙들려버려서 한동안 타의에 의해 못 만나다가 우연이든 카리나가 중앙으로 오든 어떤 연유로 만나는 정도의 일상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