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보다는 음오아예... 시니컬하게 이 설표의 표현을 빌어보면 어여쁘기만한 인형?🤔 머리길면 머리채 잡히기 좋아서 숏컷이었다는게 지나치게 리얼하다. 맞는 말인데.. 그건 안정하고 있던 동부지역이나...소규모 조직 중에 카리나 친부가 있다는 떡밥을 남겨도 좋다는 뜻이렸다?
그는 그 순하게 생겨먹은 눈매를 가늘게 뜨는 것으로 당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이 배웠던 흐름과 똑같이 알려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조금 덜 엄하고 조금 더 무심한 태도기는 했지만. 글씨를 써서 되돌려준 노트에 글씨를 따라 적어내려가는 당신을 바라보며 탄야는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려 끄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값이 꽤 나가보이는 라이터를 손바닥 위에서 굴리고 있다.
" 세살짜리가 쓴 글씨같네. "
당신이 보여주는, 자신의 글씨 아래에 적힌 삐뚤한 당신의 글씨체를 보자마자 탄야는 거의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보였다. 이걸 펜 잡는 법부터 알려줘야하나, 뭐 거기서부터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담배 끝에 불을 붙히고 그는 바닐라향이 감도는 연기를 들숨과 함께 들이마신다.
" 글씨를 예쁘게 쓸 필요는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좋아, 잘했네. 따라쓰면서 읽는 법도 따라해보자. "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탄야의 대답에 멈칫한 카리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심 끝에 양심상 내린 결론이 두살 정도 끌어올리는 정도였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카리나의 양심이 탄야 앞에선 아직 잘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심한 대꾸를 한 카리나는 슬그머니 탄야의 눈치를 살피며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 프으~ 역시 나라니까. 식은 죽 먹기지. "
그래봐야 탄야가 쓴 것을 그림을 그리듯 따라서 쓴 것일뿐, 외우지도 못 했지만 일단 잘했다는 탄야의 칭찬에 입꼬리를 한껏 들어올려 새하얀 이를 드러낸다. 지나가던 7살 짜리 아이도 비웃으며 지나갈 것 같은 상황이었지민, 그래도 당당하기 그지 없는 카리나였다. 일단 한발자국 나아간 것이 큰 거라고 여기기로 합리화를 한 듯 했다.
" 좋아! 어디 그것도 금방... "
카리나는 그 기세를 몰아서 단어 읽는 것을 시작하자는 탄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삼십분 가량이 흐르고 난 후의 카리나는 퀭한 눈을 한 체, 평소에는.피지도 않았을 탄야의 담배를 빌려물곤 탄야의 옆에 쪼그려 앉아, 탄야의 다리에 기대어 있었다.
세살이나, 다섯살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당신의 대답을 듣자마자 탄야가 떠올려낸 생각이었다. 평소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탓에 흥미없어보이는 낯을 해보이는 주제에 당신에게 향하는 것들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관심이 생긴다는 것이 이런걸까.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에 흥미가 가지 않아서 정적인 것들에게 관심을 가졌을텐데. " 세살이든 다섯살이든 내 눈에는 거기서 거기처럼 보여. "하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탄야가 중얼거렸다.
30분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뒷골목 벽에 그려져있는 조잡한 낙서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몇개의 담배를 태워냈다. 벽을 응시하고 있는 그 은청의 시선은 당신을 곧장 응시하며 대답하며 살피던 빛이 사라져서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이 무미건조해져 있었을 것이다. 맞물리지 않는 성격이나 분위기만큼이나 다르던 담배 연기는 이번만큼은 똑같이 달달한 바닐라향을 머금고 있었고 그는 제 다리에 기대서 바닥에 앉아 있는 카리나를 향해 무미건조하던 은청의 시선을 떨어트린다.
" 언어라는 건 주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거니까. 글을 읽고 쓰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한거지. 원래라면 유년기에 익혀야하는 걸 너는 지금 익히는 거야. "
그럴싸한 위로의 말은 아니었다.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그저 현실을 들이대는 문장의 나열들을 입 밖으로 내던 탄야가 여전히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당신의 체온이 닿아오자, 손끝을 살짝 움직여서 당신의 머리카락을 넘겨냈다.
그는 당신의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내렸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어지는 말에 대해서는 생각이라도 하는 양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인다. " 그게 보통이었나. " 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가 중얼거렸다. 보통 다섯살이 되어야 얼추 글을 읽는다는 게 평범한 거면, 하멜의 기준이 되는 수준이 꽤 높았다는 뜻이 되는데 말이지. 제 형제들이 글을 읽고 쓰는 걸 익혔던 게 몇살 때였나一 아니 자신이 글을 익혔던 때가 언제였지? 탄야는 눈을 가늘게 접어뜨며 떠올려보려 했다.
" 중앙과 동부는 서로 사정이 다르잖아? 옷 속에 나이프나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게 당연시되어 있는 주제에 제 자식들에게 글을 일러주는 중앙의 분위기가 이상한거지. "
무정부 시대로 접어든 이상 글이라는 건 의미가 없어졌는데 그네들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양, 혼돈과 혼란이 잦아들자마자 자식들에게 글을 익히게 했고 어느순간부터 그것이 너무 당연시 되어있었다. 덕분에 지역과 지역의 분위기와 격차가 커졌다는 게 그로서는 썩 반갑지 않았다. 먼 곳을 보며 당신의 머리를 넘겨주던 그의 가느다란 손끝이 잠시 멈춘다. 급작스레 닿아오는 분명한 타인의 체온에 물러나듯 손끝을 떼어내고 그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기대있는 당신의 턱 밑에 자신의 손을 대고 끌어올렸을 것이다.
" 반복하다보면 익힐 수 있어. 이제 시작해놓고 벌써부터 그러면 안되지. 무리라고 생각하면 그만둬. 강요는 안할거야. "
" 근데 알려주는게 맞다곤 생각해. 글을 쓸 줄 아는거랑 모르는 건 꽤나 다르거든. 생각하는 것부터. "
애들까지 나처럼 자랄 필요는 없지. 카리나는 픽 웃으며 말한다. 무엇이 되었든 더 많이 안다는 것은 힘이 된다. 그것이 생존이든, 권력싸움이든, 인간관계에서든 무조건 힘이 된다. 그러니까 배우는 쪽이 맞는거라고 생각하는 카리나였다. 이상한 것은 배우지 못하는 쪽인거니까.
" 아니야, 포기 안 해. 그냥 약한 소리 좀 해본거지. "
순간 턱을 들어올리는 탄야의 손길에 멍하니 올려다보는 카리나였다. 다시 한번 턱 끝에 저릿한 느낌이 스쳐지나간다. 그래서 아주 잠시, 카리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가 돌아오는 것 같았고, 그걸 티내고 싶지 않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애초에 한시간도 안 해놓고 관둘거면 너한테 부탁도 안 했을거야. "
끄응, 하는 소리를 낸 카리나는 탄야의 손을 잡곤 몸을 일으킨다. 서로의 몸에 닿는 것이 왠지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느낌이었지만. 몸을 일으킨 키리나는 기지개를 피곤 다시 탄야의 옆에 붙는다.
천천히 깜빡이던 눈을 가늘게 접어뜨면서 낮게 속삭였다. 이런 시기와 상황에 맞지 않는 교육방법이다. 그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시선 一그러니까 패권싸움에 불씨를 당기고 중앙의 질서를 확립했던 당사자, 권력자의 시선 一으로 보자면 맞는 방식이다. 언제까지 본능에 의거하여 생존을 꾀하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생존권을 지켜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알아야할텐데.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보장된다해도 그걸 사용할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인지.
" 네 끈질긴 점은 꽤 좋아해. "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과 어긋남없이 곧게 마주하던 은청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체온이 낮아 언제나 차가운 손끝으로 당신의 턱을 쓸어내듯 더듬던 그가 한숨과 닮은 짧고 무기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흘러가듯 낮게 속삭인 문장은 그의 진심일까, 아니면 언제나 묻어있는 바닐라향만큼이나 헛된 문장일까. 떨어지는 제 손을 잡는 당신의 행동에 그는 뿌리치거나 주춤거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기력하게 웃어보였던 것과 똑같이 무기력하게 제 손을 내줬을 것이다.
"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읽어줄테니까 따라해봐. "
당신이 몸을 기대오자 탄야는 당신의 손에서 손을 빼내고 노트에 적혀있는 내용을 처음부터 짚었다. 몇번이나 반복했을까, 주변에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산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야. 예전 세상은 그정도는 기본이었다며. 내가 이따구로 볼 것 없이 살아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똑같이 그럴 필요는 없지. "
탄야의 말에, 픽 웃은 카리나는 고개를 살살 저으먀 말한다. 이곳의 아이들이 살아남으려고 애쓰느라 영악하기도 하고, 애들을 살갑게 대할 정도로 유한 성격도 아니라서 애들과는 거리가 먼 카리나였지민 싫어하진 않았다. 카리나 본인이 악착 같이 살아온 것이 억울해서 똑같이 남들도 그렇게 살기.바라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살아온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왔다고 믿으려는 에고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 푸흐, 좋아하는구나? "
제 턱을 쓸어내듯 더듬던 탄야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곤 장난스럽게 단어를 조금 생략해선 되풀이 한다. 탄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은근히 가치가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이 되어서 저도 모르게 카리나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 후우.. 그래도 좀 익히긴 한 것 같아. 많이 남긴 했지만. "
짙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탄야에게 착 달라붙은 체로 공부를 하던 카리나는 기지개를 피며 웃어보인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밝아진 얼굴이었다.
예전세상一 이라는 그 단어가 어째서 이다지도 멀게 느껴지는지. 혼란과 혼돈으로 접어든 세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시대가 되었을 때 죽기를 열망했기 때문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탄야의 시선이 움직이며 먼 곳을 짚었다.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떠올리지 않으려하는 것 뿐이다.
당신의 말에 먼 곳을 짚어내던 은청의 시선이 당신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 그게 널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
의도적으로 단어를 생략하며 장난스레 되풀이하는 당신에게 그의 지적이 단조롭게 던져지며, 무기력한 사람과 같은 웃음을 거뒀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무관심한 이가 살아있는 생명체의 극히 일부분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될지도 모르지만. 주변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당신에게 글을 가르치던 그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다.
" 그림책과 노트는 가져가도록 해. 그림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아. "
데려다줄까, 라는 당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닌 그 전에 당신이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을 하며 탄야가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린다. 당신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행동에도 탄야는 잠시 골목 바닥을 향한 시선을 곧장 들지 않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번씩 그는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무기력한 행동을 보였으니까.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겨우 버티고 서있는 것처럼.
" 사양할게, 네 존재를 형제가 썩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 중앙으로 들어서봤자 좋은 것 없을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