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자는 그런 건 아랑곳않고, 서슴없이 옆자리의 이리나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거리를 굳이 해쳐오게 만든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걸까 하기사 코우야 그럴 것이다 그런 것들은 전부 칼로 베어넘기며 왔을테니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저번의 말끔한 모습과는 다르게 여자의 뺨이나 손등, 또는 팔에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래. 귀엽다는 게 어디야. 징그럽다, 끔찍하다, 역겹다. 그런 말을 듣는 것보다야 낫겠지. 적어도 마음이 돌변하면 이리나를 바로 이/리/나로 3등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어보이다가, 3일 동안 누워있었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3일...이요?"
이리나는 세 가지 의미로 놀랐다. 사람이 3일동안 누워있으면 회복되는 정도의 부상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이리나가 살던 동네에서, 1일 이상의 휴식을 요하는 부상 같은 건 없었다. 왜냐? 그러면 죽거나 장애인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3일 동안 누워있어야 할 부상을 입었는데도 어딘가로 후송되었다는 게 놀랐고, 3일 동안 피를 흘리고 고름을 쏟아내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을 중환자를 받아주었을 곳이 있었다고? 이리나는 벙쪄 있다가, 도와줄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아쉽네요."
뭐, 그렇다치자. 여기는 도움'만' 받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니까. 해봤자 50골드만 가지고 있는 이리나가 유의미한 도움을 찾을 수 있을 리도 없다."
좋은 소식이군요... 영 미덥잖은 느낌이던 이리나의 말투.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코우라면, 적어도 술집에서 백주대낮에 끌려가서 팔려갈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 좋은 소식이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리나는 자신을 보고 있는 코우가 해주는 말을 듣고 표정을 바꿨다. 정말로 좋은 소식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리나는 뭘로 마실까 고민했다. 한동안 술을 못 마셨으니, 일단 독한 걸 원하는데... 담배도 가능할까?
여자가 바텐더를 흉내내듯 화답하면서 바 테이블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럼주라면 스탠더드한 주문이다 술집이라면 대륙의 어디가서든 볼 수 있는 술 (심지어는 잡화점에서도 판다!) 사실 여자는 잘 안다고 한 것 치고는 이 주점이 어떤 걸 다루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야 몇 번 들른게 전부고, 술은 하나도 사 마시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라도 찬장에서 어렵지 않게 럼이 든 병을 찾을 수 있었다 대충 고약한 게 럼이겠지, 그런 안이한 생각에서다
"음. 모르겠어. 에리는 피던데."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잔 안에다가 술을 콸콸 부으면서 코우는 첫 만남 때에, 요스러운 붉은 입술 사이로 연기를 흘리던 주인장의 모습을 곰곰히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건 파이프지 궐련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러나 시간을 들여 뒤적거린 결과, 결국은 찾아 낸 모양이라 트레이에 담아들고 온다 트레이에는 거의 넘칠 듯이 럼이 출렁이는 잔과 궐련형 담배 몇 개비가 라이터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으응차, 소리내며 자리에 앉아 손에 쥔 잔을 기세좋게 치켜든다 여자는 맞은 편에 버젓이 의자가 있는데도 구태여 이리나의 바로 옆자리에 꼭 붙어 앉는다
"에헤헤. 건배. 건배하자, 우리."
벌써 취한 것처럼 말하는 여자의 잔에 담긴 것은 럼처럼 고약스런 냄새도 나지 않고 아주 잔잔하게 녹갈색을 띄는 건강한 물이었다
반면 여자는 옆자리의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는 채로 마냥 들뜬 기색이었다 자칭, 말짱하다고 말하는 그 여자는 취한 듯, 혹은 그렇지 않은 듯 우롱을 마신다 이 세상엔 수많은 미지가 숨겨져 있다고 하지만 그런 술도 아닌 것을 마시고 취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는 없을...것이다
"네에. 뭔가요 학생?"
그러다 돌연 이리나가 외치자 코우는 되묻는다 그런 말투는 어디서 배워왔는지, 이번엔 학당의 교사라도 된 듯한 시선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불온의 전조라 여겨지는 붉은 색의 눈동자는 교사의 그것과는 느낌부터가 아주 다른 것이었다
손이 포개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한 바탕 늘어놓아지는 주접에 일순 여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항상 눈 앞의 사람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보고 있던, 갈피없는 시선의 멍한 눈을 한 그녀였으나 방금만큼은 촛점이 돌아와 제대로 이리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이었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당황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으로
"우헤헤~ 그래써?"
...라면서 전의 골목에서처럼 헤벌쭉 웃으며 끌어안고는 매끄럽게 흘러 내려오는 머리칼과 함께 소녀의 등을 마구 쓰다듬어주려 하는 것이다 고운 결의 백은발이 여자 자신이 하고 있는 산발과 같이 헝클어 질 정도로 쓰다듬는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기세가 격하니 한동안 놓아 줄 것 같지가 않다 잠시간 이리나의 쇄골 웃단에 얼굴을 묻고서 사심만을 잔뜩 채운다 단지 그럴뿐인 코우는 그 끝에 가서
"응. 나도 리나 좋아해."
하고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더 줄까?"
벌써 잔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코우는 어깨를 붙잡고 눈을 깜박이며 묻는다 여자는 럼을 실수에 가깝도록 거의 넘칠뻔하게 담아 가져왔지만 이리나가 술을 들이키는 기세를 보면 과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코우가 이리나를 껴안자, 이리나도 좋다고 코우를 껴안았다. 이 악령이 출몰하는 피비린내 가득한 세상에서, 술은 좋다. 코우 씨도 좋다. 술은 이리나에게 어두운 시대의 기억을 잊게 해주었고, 코우 씨는... 이리나가 이 험한 세상에서 술독에 빠져 잠들어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술을 마구 마셨다.
"오..."
그리고 이번에는, 실수에 가까울 정도로 넘칠뻔하게 담았다.
두려운가?
천만에.
히히, 이리나는 씩 웃더니 술을 마신다. 그리고... 너무 독한 술을 마신 탓인지 머리를 테이블에 쾅 박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