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피를 흘리며 레이먼드에게 소리쳤다. 만약 자신의 테러활동으로 무고한 세븐스 희생자가 생긴다면, 자신의 대의는 그저 휴짓조각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분노와 복수를 위한 테러가 다른 희생자에게 닥치게 된다. 그렇게 되버린다면 그는 정말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비세븐스와 다를 바 없어진다.
"끄으윽..."
분하지만 레이먼드의 말이 맞았다. 그가 말하는 정보가 가짜든 진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너의 양심에 묻겠다."
지오반니는 얼굴의 피를 닦으며 레이먼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정말이냐? 정말 다른 세븐스들이 더 있는 것이냐..."
그는 이어폰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지만 다들 각자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이 주위를 샅샅이 뒤져가며 세븐스들을 찾았고 그들을 내쫓았다. 그러나 그는 빛으로 변해 하늘 위에서 사람들을 찾았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곳에 남겨진 세븐스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선택해야했다. 레이먼드와의 전투에서 사실상 패배한 것이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폭탄은..저 건물 옥상 위에 있다."
그는 레이먼드가 전선이 고장난 건물이 있다고 했을 때, 자신이 제일 처음으로 향했던 건물을 가리켰다.
>>574 "그게 거짓말이라면, 넌 네 대의고 뭐고 저버리고 눈 앞의 싸움을 택한거다. 그 점 알아둬."
일단 유일한 정보가 그거라면 믿어주는 수 밖에. 물론 저기다 적 증원을 숨겨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진정 그렇기엔 좀전의 교전에서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아군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는데 안 올 증원이 어딨겠는가. 그리고 함정일 가능성. 물론 있다. 아무것도 없이 뻥일수도 있고.
레이먼드에게 어서 폭탄을 해체하러 가라고 한 지오반니는 자신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세븐스들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프리덤의 오랜 계획 중 일부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거야. 반드시 성공해라"
그 말을 마치고 그는 빛으로 변해 자신의 지역에 있다고 하는 세븐스들을 찾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날뛰었다.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UFO가 도시를 침공한다며 신고를 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시각, 레이먼드는 건물 옥상에 도착했을 것이다. 옥상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지만 가지고 있던 총이나 보검으로 손쉽게 문을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을 부수고 옥상 위에 올라와 도시 경관을 내려다보면 빛으로 변해 반딧불이처럼 날아다니는 지오반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옥상 한 가운데 붉은 빛을 내며 삐삐 거리는 직사각형의 검은 기계장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결국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심호흡이 떨리다 일순 멈춘다. 결국 할 수 있다면 멈춰주지 않겠느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햇기 때문이다. 이상향에 갈 수 없는 자라면, 멈춰달라 간곡히 청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가장 부정하고자 했던 것을 누군가의 부탁으로 망설임 없이 행해야 하는 이 상황 우습다. 결국 나의 가죽을 벗겨 추악한 속내 드러내고자 하는구나.
"이상적인 삶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기엔 너무나도 늦었다. 뒤로 이동하기가 무섭게 이스마엘이 뒤로 돌아 손을 뻗었다. 주변에 얇은 장을 깔아두었기에 기척을 기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염력을 두른, 장갑을 낀 억센 손이 창을 붙잡았고, 이스마엘은 서슬 퍼런 눈으로 잠시 당신을 마주했다. 사슬이 날아와 빈 주먹에 휘감겼다.
"누군가에겐 그 또한 지옥이겠지요. 당신이 없는 것은 어쩌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억울함이니 분노니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시키려 해보아도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계속 도망치라고 했던 이유는 그 죄 없는 세븐스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던가. 제 정체를 앎에도 지켜준다고 말하며 정원을 꾸리는 모습을 어이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이대로 폭탄이 터질 때까지 대화만 하면서 있을 수는 없다.
에일린도 수 많은 전투를 치뤘지만 결국 경험에서 이스마엘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사선을 넘나들며 시종일관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훈련을 하는 0특수부대와는 달리 프리덤은 결국 비세븐스와 가디언즈 일반 대원들을 상대로 싸웠으니까.
에일린이 마치 자신의 등뒤로 올 것을 예측하듯 역으로 자신의 공격을 잡고 반격을 하자 에일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었지만 그녀의 공격이 스치고 말았다. 그녀는 이스마엘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공격을 할 뿐이었다. 이스마엘의 말에 동의를 한다는 자신만의 표현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대로 에델바이스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세상, 이상적인 세상은 그녀와 프리덤 대원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에델바이스가 성공하리라 믿으며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죽을자리를 찾기 위해, 머지 않을 지옥을 피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 대신 평화로운 죽음을 위해 싸웠다.
이스마엘의 공격을 맞은 에일린은 검은 안개로 변해 이스마엘의 머리 위에서 검은 가시를 쏟아내었다.
어차피 이 논의는 평행선이다. 쉽게쉽게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꿀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질 않았겠지. 복수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이가 까득, 하고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종 무던한 듯했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복수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 나도, 당신도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겁니까. 복수 없이 살아가?"
파괴된 기계뱀이 재조립되는 걸 보면서 너는 철우산을 내려놓았다.
"그들에겐 그 삶 자체가 복수인데, 그따위로 이야기해?"
감히. 너는 공중에서 모조 보검을 소환해 쥐었다. 실전성과는 거리가 먼, 이제는 예장용으로밖에 쓰이지 않는 구식의 형태. 끝이 살짝 굽은 그 기병도를 쥐어 세운 너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동물들 중 기계 곰을 향해 기병도를 내찔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끝은 곰의 목 부분, 취약한 결합부를 노리고 있었다.
"역사를 돌아봤다면 알겠지, 복수가 끊기는 일 따위는 없다는 걸."
당신이 그렇게 끔찍하게 소중히 여기는 복수로.
"당신이 이야기한 사람들이!"
눈 먼 복수에 찔려 통곡하는 걸, 가만 둘 것 같아? 목소리는 점차 가라앉아 조금 작아졌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 정도는 한없이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으리라. 곰에게 감행한 공격은 확실히 곰을 끝낼 만했다. 그 감각을 느끼며 검을 뽑아낸 너는 검을 한 번 휘둘러 기계로부터 튄 기름을 털어내고 다시 바로세웠다.
"강함이라고 했었지, 솔직히 말하건데 나보다 나약한 사람은 에델바이스에는 없어."
어디 쓰러트려 봐. 새까만 눈이 검 너머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완전방어 성공! 멧돼지의 공격력(500)보다 높은 방어값(942)으로 피해 없음! 반격 개시! 기계 곰에게 공격(552)!
기계동물들이 단체로 나타나도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기계들처럼 냉정했다. 기계곰 셋이 달려들어도 자세를 유지하지만, 그것들이 허구임을 알자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긴장은 하고 있었기에. 그 와중에 서로 아웅대는 자매의 목소리를 듣고 짧게 웃었다.
"애들은 애들이네- 참 귀엽기도 해라. 눈에 보였으면 그 혀부터 마비시켜 버릴 텐데. 종알종알 시끄럽잖니."
그녀가 가디언즈와 다를게 무어냐는 말에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다 같은 인간이라고. 원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건 인간의 본능이야. 그리고 난 영웅은 아니라서."
영웅이 될 마음도 없고. 중얼거리며 독액을 조종하던 와중, 처음으로 자매의 비명이 들렸다. 오호라. 그 반원이 자매를 지키는 방공호였나. 주변으로 더미가 생겨도 그녀는 아랑곳않고 처음 노렸던 부분만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러다보니 도시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주변엔 쓰러진 사람들 투성이였다.
"이쪽이 더 시끄럽나."
시민들의 아우성에도 그녀는 시끄럽다는 반응으로 일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사람들 중에 자매의 모습을 찾자 기쁜 듯이 싱긋 미소지었다.
"어머.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팔팔하더니. 많이 아픈가보네- 응? 그렇게 아파?"
바닥에서 손을 떼고 일어선 그녀는 고통스러워 하는 자매를 보며 전혀 걱정스럽지 않은 어투로 재잘거렸다. 살려달라며, 폭탄의 위치를 말하겠다는 자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공중으로 독액의 구체를 만들어 띄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일렁거리는 독액 구체를 자매의 위로 밀어보내고, 딱 쏟아지기 좋은 위치에 다다르자 손짓을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