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스코프를 이용해 쥬데카가 한 행동을 관찰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건 남자의 팔을 붙잡아 근육과 근육 사이를 찔러쥐어 떼어놓고 다리를 살짝 들어 허벅지 안쪽을 걷어차 주저앉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그에게서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가디언즈냐?"
그리고 옥상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은 쥬데카라면 그것이 방금 전까지 옥상 위에 있던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남자가 팔을 들어올리더니 윙슈트가 되어 쥬데카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착지 직전에 낙하산이 펴지며 그가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쥬데카는 남자가 낙하산을 타고 다시 주저 앉은 남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난 식물들이 가로등이며, 건물을 감싸며 자라났을까. 포탈을 통해 물러난 곳에서 상황을 살피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잠긴다. 그러다 다가온 소년을 보고선 의아스럽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태의 범인이 바로 눈 앞에 있구나. 거절하기도 전에 식물을 제 상처에 바르자 신디는 무심하게 털어내고선, 더 하지 말라는듯 손을 들어 거부를 표한다.
"됐어요. 그만."
그리고선 이어진 말에 한숨을 내쉰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무력으로 제압 할 수도 없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는 한숨을 내쉰다.
뱉든 말든 익숙한 행태다. 이스마엘은 그나마 슬럼에서 머리를 쳐대던 인사보단 이런 처우가 배로 나았다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칼을 들고 쫓아오거나 총부터 겨누지 않는 걸 보니 도시라는 곳은 제법 괜찮은 곳이구나. 누군가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말을 걸자 이스마엘은 속내를 다스렸다. 나는 지금부터 배우다. 정확히 어떤 역을 맡을지도 생각했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 지극히 오만한……. 그래. 이스마엘은 자신의 역할을 확정하곤 고개를 돌렸다.
"세에상에! 너 지금 나한테 말을 건 거야?? 나한테 제일 처음으로 말 거는 게 여기서 침만 뱉을 줄 아는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좀 다르네.. 너 깡 되게 좋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아량껏 멈춰주는 모습이나, 한쪽 눈썹을 까딱이는 모습이 본인이 세븐스임을 자각하면서도, 지극히 느긋하다. 꼭 귀한집에서 오냐오냐 자란 여식같은 행동 아니던가. 아니면 믿는 배짱이 있든지.
"오빠가 불러서-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인데.. 왜? 내가 굳이 나가야 할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불편해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꼬왔으면 말을 하거나 신고를 했어야지. 아냐?"
밀어내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버티듯 한쪽 발을 앞으로 슬쩍 뻗더니 적반하장으로 묻듯 했다. 천천히 선글라스를 콧잔등 밑으로 내리며 묻는 모습 심기 불편함 여실히 드러난다.
윙슈트를 펼친 채로 낙하하는 남성을 주시하던 너는, 낙하산을 펼치고 착지한 뒤 바로 총을 겨누는 남성을 보자마자, 너는 중년의 남성을 밀쳐 넘어뜨리곤 그 앞에 섰다. 동시에 두 사람을 가리며 펼쳐진 건... 우산? 분명 우산의 모습이었지만 펼쳐지는 소리는 꽤 둔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광택을 내는 그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
"잠행은 포기입니까?"
소란이 벌어지면 가디언즈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이 장소에서 총격전이라도 벌어지면 흩어지는 게 사람들일테니 테러는 실패할 텐데. 반쯤 확신을 가진 너는, 여전히 네 목소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덧붙였다. 동시에 중년의 남성을 한번 흘겨본다.
번뜩이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깨진 유리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중 하나를 즈려밟았다. 상대는 빛, 내지는 그에 준하는 형상으로 변해 고속으로 이동하는 세븐스다. 그러나 자신이 이동하는 궤도 상에 걸리적거리는 물체, 심지어 그것이 빛이 투과하는 물질이더라도 파괴하고 진행해야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뜻밖의 수확이군. 위협적인건 매한가지지만.
"그걸 댁이 어떻게 아는거요? 그리고, 수리 기사를 부른 시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걸 내가 봐야만 하는거라 소용이 없어요."
아마 본인 스스로 돌아보고 왔겠지. 하지만 당연히 고장난 구석이 없을 수 밖에. 원래 그런건 없으니까.
"장난전화라 하더라도 난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어요. 그게 원칙입니다. 안 지키면 직장에서 잘리는, 원칙! 알아들었으면 다시 비키십쇼."
같은 세븐스면서 자매는 이런 행동이 자유롭다는 걸까. 물을 것도 없이 방금의 행동만 보면 알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왜지? 저렇게 당당히 목덜미를 내놓고 있는데. 주변에서 반응이 없는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지만.
"그 30분 걸린다고 연락할 때 이미 출발했대서- 장소를 바꾸는 건 좀 어렵겠어."
대충 그렇게 둘러대는데 뭔가 중요한 말이 나올 뻔 했, 다가 바로 막혔다. 아쉽네. 그녀가 바로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자매는 자신들이 요원이 맞다면서 힘으로라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은 그녀가 있을 곳이 아니라던가 그러길래, 그만 참지 못 하고 킥 웃어버렸다.
"누- 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던가 아니라던가 정했는지 모르겠네. 하물며 너희는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자매가 밀어내는 걸 슬쩍 피해 뒤로 몇걸음 물러서며, 느긋히 붕어빵을 꺼내먹는다.
"너희, 정말로 통제 요원이야? 그럼 신분증 같은 거 있겠네? 보여줄 수 있어?"
엷은 검은색 안경알 뒤로 금빛 눈이 히죽 웃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놀리려는 의도라는 것처럼.
이스마엘 또한 당황한 모습에 내심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어절 수 없지 않은가. 수상한 자가 있다면 의심해야 하는 법. 이스마엘은 속으로 셋을 세는 것과 달리 코웃음을 쳤다. 그렇지, 욕설 속성 강의도 단기간에 마스터하던 실력 아닌가. 싸가지도 결국 단기간에 버릴 수 있는 법이었다.
"어머, 무슨 꼴? 나 갑자기 궁금하려 그래. 혹시 뭐 여기도 갑자기 돌 던지면서 누구 손에 먼저 죽는지 투기도박 그런 거라도 해?"
내보내려 하는 모습을 무시하듯 눈을 굴려본다. 휘감는 느낌이 불안하다. 여성의 세븐스인가? 같은 염동력자? 아니면.. 일단 주변 사람의 반응을 살펴보듯 하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날선 눈매가 이젠 표독한 수준이었다.
"인식이 좋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너도 여기에 있는 건 똑같으면서 그런 말이 통할 것 같고?"
경박하되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 나이가 많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더니 이스마엘은 속으로 연신 사과를 부르짖었다.
"난 또. 시민의 안전 어쩌고 했으면 당장 관등성명 대라고 했을 걸. 어떤 머저리 새끼가 날 못알아보나 싶어서 말이야. 그것보다 세-상에! 완전 머저리들 아냐? 여기 사람들 다 머저리네, 최악, 허접! 세븐스 하나 죽는다고 신경도 안 써? 웃긴다 진짜. 가져가서 팔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죄를 지을 것 같습니다 입으로 죄를 짓되 싸가지로도 죄를 지을 것 같습니다.
"네 말 덕분에 우리 오빠가 이런 등신같은 도시로 불렀는지 알 것 같네. 더 떠나고 싶지 않아지는걸? 고마워라."
서로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지 눈빛교환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라라시아 생각이 난다. 라라도 바라는게 있거나 알아주길 바라면 꼭 저렇게 쳐다보는데. 어떤 의미로는 그녀에게 힘든 상대들이었다. 전투를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말이다.
"저런. 예쁜 아가씨가 그렇게 성내면 못 써- 이쁜 얼굴 구겨지잖아?"
긴 머리를 한 쪽이 짜증을 내길래 그녀는 되려 뻔뻔히 웃으며 받아쳤다. 뒤로 물러서자 재차 다가오는 자매를 보며 또 뒤로 몇걸음 걷는다. 자매는 참 열심히도 그녀를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붕어빵 줬으니까 부탁 한 번만 들어달라는 둥, 안 그러면 대장인지 팀장인지 한테 혼난다는 둥. 말을 들을수록, 대화를 할 수록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든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자매는 당당히 꺼내서 보여주었다. 위조의 흔적 따윈 없는 완벽한 신분증에는 서윤과 하윤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자매의 신분증을 번가아 본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음- 진짜인가보네. 그러면 그건 알아? 조금 있으면 이 근처에서 엄청난 폭탄이 터질 거라던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며 붕어빵을 꺼내먹는다. 어라. 마지막이었네. 기세 좋게 마지막 붕어빵을 먹어치우고 빈 봉투를 구겨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짧은 시간 안에 실마리를 잡으려면 다소의 운과 시간이 따라줘야 하겠지만, 초조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차에서 내린 그의 차림은 평소에 비한다면 개벽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가벼웠다. 정장류의 옷을 벗어던지고 몇 없는 청바지에 가벼운 점퍼 차림,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묶어 목이 드러나는 것을 옷깃으로 가렸다. 정처는 없지만 내린 즉시 목적지가 있기라도 한 양 그는 머뭇거림 없이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시선은 조금쯤 아래쪽을 향한다. 의도적으로 연신 주변을 힐끗거리지만 크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닐 테다. 지금은 꽤 오래라고 해도 좋을 옛적에는 그에게도 이렇게 지냈을 시절이 있었으니까. 세븐스로서 행인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만들지 않도록 사리는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벌써 네 목적이 어느정도인지는 까발려졌겠지. 이미 자신에게 해코지하려고 했던 중년 남성을 네 앞에 선 상대로부터 지키려고 움직였으니까. 아마 그의 목적과는 정 반대되는 행동이었겠지. 그랬기에 다음에 들려온 목소리에는 어느 정도 확신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이게, 당신들이 원하는 자유입니까?"
이번에도 너는 직접적으로 그렇다 아니다, 너는 그러하냐, 아니하냐를 묻는 대신 우회적으로 묻는다. 대답을 듣기 전에 발사된 총탄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곧 닿는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 총탄이 철우산에 닿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우산을 살짝 비틀어 총탄을 튕겨낸 너는 철우산을 쥔 손을 놓음과 동시에 품 속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최대한 빨리, 권총은 속도가 생명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바로 가늠쇠에 상대가 걸리자마자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검지손가락이 움직였다.
레이먼드가 '공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부품들을 결합하고 돌격 소총을 만들어내자 백발의 남자의 표정이 질려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이를 꽉 깨물었다. 어느새 레이먼드는 플레이트 캐리어까지 상의 위에 입고선 남자를 향해 소총을 겨눴다.
"하..하하..너무하네요...난 진심이었는 데..."
백발의 남자는 허탈한듯 자리에 앉아 웃었다. 그리고 레이먼드가 들고 있는 돌격소총의 소염구를 잡고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쏴."
남자는 레이먼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방아쇠를 당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 순간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