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고인 물이나,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나 날 법하지 도시에서는 나서는 안 되는 냄새다. 그 냄새는 점점 강해지니 지독함을 느낀다.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저만 이상함을 느낀 건 아닌 듯 했을까. 바로 근처에 있다는 거구나. 인파들 사이 의심쩍은 인물이 있는지 살펴보던 중, 갑작스레 주먹이 날아든다.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는다. 양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더 얻어맞지 않기 위해 팔을 들어 막으며 뒤로 물러난다. 이어지는 욕설을 듣고선 금방 짜증이 어린다. 그럼에도 부처의 마음으로 참아내며, 날아오는 쓰레기를 쳐낸다. 제 정체도 들켜버리고. 이래선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며 사람들을 피해 물러나다간, 솟아 오르는 식물을 보고선 급히 포탈을 만들어 아직 식물이 솟아나지 않은 곳으로 피하려 했다.
유사시엔 사살도 허가. 즉슨 교전이 벌어질지도 모를 위험인물이란 뜻일까. 애당초 테러 예상 지점이 22군데나 되는데 위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착잡한 심정을 뒤로 이스마엘은 점퍼에 해체 장치를 쑤셔박듯 넣더니 자율주행 차량에 올랐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아스텔의 전언대로 주의를 끌지 않을 방법을 고려했던 것인지 이스마엘은 손목을 더듬어 재머를 껐다.
슬럼이 아닌 마을을 걷는 것은 또 처음이지만 혐오하는 시선은 그대로겠지. 이스마엘은 최대한 인파 속에 섞일 수 있도록 발걸음을 느릿하게 옮겼다. 어깨까지 내려 팔에 대충 걸친 점퍼, 주머니에서 꺼낸 선글라스. 어깨 쭉 펴고 매서운 인상 가리고 걷기로 했다. 주머니에서 꺼낸 다른 것은 담뱃갑이다. 피울 요량 전혀 없으나 혹시 모를 일이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음.
"저, 전 가디언즈입니다. 이 근처에 음파폭탄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비 세븐스에겐 문제가 없지만, 우리같은 세븐스에겐 치명적인 음파가 나와요!"
백발의 남자는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하며 레이먼드를 밖으로 빼내버리거나 레이먼드의 일을 빨리 해치워버리려고 했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의 동공이 떨리며, 무엇인가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생각한 것이 고작 자신이 가디언즈라는 거짓말이니 그의 부족한 창의력과 순발력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도와드린다고요! 어디에요! 위치만 알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요"
그에 반해 레이먼드의 계책은 놀라울 정도로 잘 먹히고 있었다. 남자의 말과 행동은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고 처음의 그 부드럽고 인자했던 어투또한 다급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하게 바뀌었다.
웃는 얼굴로 붕어빵 하나만, 을 시전하니 이 자매는 이상한 부분에서 반문을 해왔다. 장갑 끼고 먹을 거냐니. 거기다 붕어빵도 통째로 주며 얼른 나가라고 충고까지 해준다. 뭐랄까. 그런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곤 믿기지가 않는데. 그녀는 속으로 생각을 굴리며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하나면 되는데. 이야. 역시 예쁜 애들이 마음씨도 좋네."
붕어빵 봉투에서 하나 꺼내 우물우물 하고, 나가라는 건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적인다.
"여기에 뭐 시찰이라도 오나 봐? 그런데 어쩌지. 나 동생이랑 만나기로 해서. 내가 너무 일찍 나와서 30분은 있어야 올 거래."
오늘 아니면 못 보는데 큰일이네- 곤란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자매를 보고 말한다.
가지고 노는 겁니까? 그건 그거대로 악취미라고 말하다가, 옷자락을 찢은 총탄에 반응한 건지 중년의 남성이 어깨를 붙잡았다. 갑작스레 멱살까지 잡힌 상황에서 여전히 옥상 쪽을 주시하던 너는 남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새카만 눈으로 잠시 남성을 쳐다보던 너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곤 남성의 팔을 붙잡아 근육과 근육 사이를 찔러쥐어 떼어놓으려고 했다. 다리를 살짝 들어 허벅지 안쪽을 걷어차려고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네가 그와 저 옥상 위의 남자 사이를 가로막아도 소용이 없었으니 주저앉게 만들 심산이었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그리곤 마치 실수였다는 듯, 혹은 만용 따위는 접어두라는 듯 남성을 까만 눈으로 응시했다. 이걸 알아챌 만큼의 눈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가디언즈를 부를 것이지, 수틀리면 먼저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는 건 자신이라는 것도 모르다니.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스코프를 이용해 쥬데카가 한 행동을 관찰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건 남자의 팔을 붙잡아 근육과 근육 사이를 찔러쥐어 떼어놓고 다리를 살짝 들어 허벅지 안쪽을 걷어차 주저앉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그에게서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가디언즈냐?"
그리고 옥상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은 쥬데카라면 그것이 방금 전까지 옥상 위에 있던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남자가 팔을 들어올리더니 윙슈트가 되어 쥬데카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착지 직전에 낙하산이 펴지며 그가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쥬데카는 남자가 낙하산을 타고 다시 주저 앉은 남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난 식물들이 가로등이며, 건물을 감싸며 자라났을까. 포탈을 통해 물러난 곳에서 상황을 살피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잠긴다. 그러다 다가온 소년을 보고선 의아스럽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태의 범인이 바로 눈 앞에 있구나. 거절하기도 전에 식물을 제 상처에 바르자 신디는 무심하게 털어내고선, 더 하지 말라는듯 손을 들어 거부를 표한다.
"됐어요. 그만."
그리고선 이어진 말에 한숨을 내쉰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무력으로 제압 할 수도 없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는 한숨을 내쉰다.
뱉든 말든 익숙한 행태다. 이스마엘은 그나마 슬럼에서 머리를 쳐대던 인사보단 이런 처우가 배로 나았다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칼을 들고 쫓아오거나 총부터 겨누지 않는 걸 보니 도시라는 곳은 제법 괜찮은 곳이구나. 누군가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말을 걸자 이스마엘은 속내를 다스렸다. 나는 지금부터 배우다. 정확히 어떤 역을 맡을지도 생각했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 지극히 오만한……. 그래. 이스마엘은 자신의 역할을 확정하곤 고개를 돌렸다.
"세에상에! 너 지금 나한테 말을 건 거야?? 나한테 제일 처음으로 말 거는 게 여기서 침만 뱉을 줄 아는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좀 다르네.. 너 깡 되게 좋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아량껏 멈춰주는 모습이나, 한쪽 눈썹을 까딱이는 모습이 본인이 세븐스임을 자각하면서도, 지극히 느긋하다. 꼭 귀한집에서 오냐오냐 자란 여식같은 행동 아니던가. 아니면 믿는 배짱이 있든지.
"오빠가 불러서-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인데.. 왜? 내가 굳이 나가야 할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불편해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꼬왔으면 말을 하거나 신고를 했어야지. 아냐?"
밀어내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버티듯 한쪽 발을 앞으로 슬쩍 뻗더니 적반하장으로 묻듯 했다. 천천히 선글라스를 콧잔등 밑으로 내리며 묻는 모습 심기 불편함 여실히 드러난다.
윙슈트를 펼친 채로 낙하하는 남성을 주시하던 너는, 낙하산을 펼치고 착지한 뒤 바로 총을 겨누는 남성을 보자마자, 너는 중년의 남성을 밀쳐 넘어뜨리곤 그 앞에 섰다. 동시에 두 사람을 가리며 펼쳐진 건... 우산? 분명 우산의 모습이었지만 펼쳐지는 소리는 꽤 둔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광택을 내는 그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
"잠행은 포기입니까?"
소란이 벌어지면 가디언즈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이 장소에서 총격전이라도 벌어지면 흩어지는 게 사람들일테니 테러는 실패할 텐데. 반쯤 확신을 가진 너는, 여전히 네 목소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덧붙였다. 동시에 중년의 남성을 한번 흘겨본다.
번뜩이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깨진 유리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중 하나를 즈려밟았다. 상대는 빛, 내지는 그에 준하는 형상으로 변해 고속으로 이동하는 세븐스다. 그러나 자신이 이동하는 궤도 상에 걸리적거리는 물체, 심지어 그것이 빛이 투과하는 물질이더라도 파괴하고 진행해야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뜻밖의 수확이군. 위협적인건 매한가지지만.
"그걸 댁이 어떻게 아는거요? 그리고, 수리 기사를 부른 시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걸 내가 봐야만 하는거라 소용이 없어요."
아마 본인 스스로 돌아보고 왔겠지. 하지만 당연히 고장난 구석이 없을 수 밖에. 원래 그런건 없으니까.
"장난전화라 하더라도 난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어요. 그게 원칙입니다. 안 지키면 직장에서 잘리는, 원칙! 알아들었으면 다시 비키십쇼."
같은 세븐스면서 자매는 이런 행동이 자유롭다는 걸까. 물을 것도 없이 방금의 행동만 보면 알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왜지? 저렇게 당당히 목덜미를 내놓고 있는데. 주변에서 반응이 없는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지만.
"그 30분 걸린다고 연락할 때 이미 출발했대서- 장소를 바꾸는 건 좀 어렵겠어."
대충 그렇게 둘러대는데 뭔가 중요한 말이 나올 뻔 했, 다가 바로 막혔다. 아쉽네. 그녀가 바로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자매는 자신들이 요원이 맞다면서 힘으로라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은 그녀가 있을 곳이 아니라던가 그러길래, 그만 참지 못 하고 킥 웃어버렸다.
"누- 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던가 아니라던가 정했는지 모르겠네. 하물며 너희는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자매가 밀어내는 걸 슬쩍 피해 뒤로 몇걸음 물러서며, 느긋히 붕어빵을 꺼내먹는다.
"너희, 정말로 통제 요원이야? 그럼 신분증 같은 거 있겠네? 보여줄 수 있어?"
엷은 검은색 안경알 뒤로 금빛 눈이 히죽 웃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놀리려는 의도라는 것처럼.
이스마엘 또한 당황한 모습에 내심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어절 수 없지 않은가. 수상한 자가 있다면 의심해야 하는 법. 이스마엘은 속으로 셋을 세는 것과 달리 코웃음을 쳤다. 그렇지, 욕설 속성 강의도 단기간에 마스터하던 실력 아닌가. 싸가지도 결국 단기간에 버릴 수 있는 법이었다.
"어머, 무슨 꼴? 나 갑자기 궁금하려 그래. 혹시 뭐 여기도 갑자기 돌 던지면서 누구 손에 먼저 죽는지 투기도박 그런 거라도 해?"
내보내려 하는 모습을 무시하듯 눈을 굴려본다. 휘감는 느낌이 불안하다. 여성의 세븐스인가? 같은 염동력자? 아니면.. 일단 주변 사람의 반응을 살펴보듯 하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날선 눈매가 이젠 표독한 수준이었다.
"인식이 좋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너도 여기에 있는 건 똑같으면서 그런 말이 통할 것 같고?"
경박하되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 나이가 많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더니 이스마엘은 속으로 연신 사과를 부르짖었다.
"난 또. 시민의 안전 어쩌고 했으면 당장 관등성명 대라고 했을 걸. 어떤 머저리 새끼가 날 못알아보나 싶어서 말이야. 그것보다 세-상에! 완전 머저리들 아냐? 여기 사람들 다 머저리네, 최악, 허접! 세븐스 하나 죽는다고 신경도 안 써? 웃긴다 진짜. 가져가서 팔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죄를 지을 것 같습니다 입으로 죄를 짓되 싸가지로도 죄를 지을 것 같습니다.
"네 말 덕분에 우리 오빠가 이런 등신같은 도시로 불렀는지 알 것 같네. 더 떠나고 싶지 않아지는걸? 고마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