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G 건물의 지하 3층. 기절한 레이버는 바로 그곳에 있는 단상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 다른 보검 사용 세븐스. 즉 가디언즈의 간부 세븐스들이 서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엘리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생기가 없는 눈빛으로 레이버를 바라봤다. 허나 특별한 일을 하진 않고 바로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있던 카시노프는 켈켈 웃는 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설마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늘리다니. 골치 좀 아프겠는데? 안 그래? 켈켈켈."
"딱히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닙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U.P.G의 앞마당에 덫을 친 보람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만."
카시노프를 바라보고 있던 붉은 머리의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이내 카시노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린 후 살며시 흔들었다. 전혀 당황스러워하는 기색도, 곤란해하는 기색도 없는 그 표정을 얄밉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지? 이미 데이터는 대충 다 뽑았을 거야. 그리고 아주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녀석들의 보검에 있는 존재. 글라키에스의 보고와 일치하는 것 같더군."
"내가 거짓말을 했을리가 없잖아! 난 승리자야! 승리자! 거짓말은 패배자들이나 하는 거야."
카시노프의 발언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는지 글라키에스는 바로 옆에서 그를 노려보면서 따지는 어투를 냈다. 허나 카시노프는 딱히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어 붉은 머리의 사내 등 뒤에 있었던 은색 머리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면서 이야기했다.
"성전을 치루고 성지를 지켜낸 직후인 지금. 유익한 이야기가 없다면 더럽혀진 이 몸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기적의 과실로 만든 음료를 먹은 후 명상을 길게 하고 싶다만."
"...아. 그러니까 피곤하니까 빨리 샤워하고 바나나 우유 마시고 자고 싶다 이 이야기지? 지금? 그거 나도 공감하는데? 이렇게까지 다 모은 이유가 뭐야? 레이버 기절한 모습 보여주겠다 뭐 이런거야?"
그리고 그 말에 동의하는지 갈색 머리 사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모든 말을 들으면서 붉은 머리 사내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뒤돌아서 모두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길진 않을 겁니다. 일단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가 레이버를 쓰러뜨린 지금, 레이버는 차후 교육을 통해 다시 전선에 복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보검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리니 그때까지는 우리들만으로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테러리스트가 레이버를 무찌른 것이 중계가 된 이상, 공포에 떠는 이도 있겠으나, 테러리스트들 중에선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격을 할 수도 있겠죠."
"훗. 한 번의 빛을 보고 눈이 멀어버린 들개들이 달려든다고 한들, 이 성지를 짓밟을 순 없다. 나와 계약한 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행사할 뿐."
"일반적인 테러리스트라면 상관없습니다만,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라면 조금 골치가 아파지지요. 그래서 아버님이 특별히 허락했습니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와 교전하게 될 시, 상황에 따라서는..."
"설마 축복의 가희의 가호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인가?"
"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용하게 되는 즉시, 머지 않아 오버히트에 걸리게 될테니까요. 강한 힘에는 강한 댓가가 따르는 법이지요. 그 점을 부디 기억해주시기를."
붉은 머리 사내는 그렇게 모두에게 사실을 공지했다. 이어 그는 레이버를 잠시 바라보았고 엘리나를 바라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30분 정도 후에 레이버를 지하 4층의 그 방으로 데려가십시오. 그럼 남은 것은 알아서 '그녀'가 해줄 것입니다."
"...네."
"절대로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를 흔한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교전하게 될 시, 반드시 누구라도 한 명은 죽이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십시오. 이것이 아버님의 명입니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그곳에 모여있는 이들은 고개를 일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뒤이어 그들은 한명씩, 한명씩 천천히 해산했다. 레이버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나를 제외하고서.
레이버와의 치열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접전을 끝마치고 며칠간 이스마엘을 찾을 수 없었다. 방에 있지 않겠느냐 해도 개인실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의무실에 있느냐면 의무실엔 가지도 않았다지 무언가. 며칠간 묘연한 종적을 뒤로 이스마엘은 카페의 차임벨 소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커피를 향한 집념을 뒤로, 문을 여는 손에는 핸드폰도 없고, 노래를 듣는 기색도 없어보인다.
설마 커피만 마시고 돌아가는 부류인가? 그렇다. 정답이다! 카페의 사이코패스는 당신만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스마엘은 커피를 시켜놓고 사람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커피에 집중하는 중증인 것이다……. 지금도 그러했다. 카페 안을 둘러보지도 않고, 메뉴판도 보지도 않고 바로 계산대로 걸어가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하나, 탄산수. 결제를 하는 와중에도 미리 에스프레소의 맛을 바꿔줄 슈가 스틱 하나를 계산대 옆에서 꺼낼 정도의 사이코…… 키네시스를 가진 세븐스..
"응?"
아메리카노와 더불어 알바생이 환호하는 음료인 에스프레소가 조그마한 트레이에 담겨 나오자 적당히 앉을 자리를 물색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을 무렵이다. 너 *발 잘 만났다. 불현듯 들리는 목소리에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그리운 울림은 어디에서 들린 거지? 슬럼에서나 듣던 것인데 이곳에서도 들을 줄이야! 감회가 새롭다. 이스마엘은 바로 웃는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당신에게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본디 슬럼에서는 이리 좀 와보라 하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치며 여기가 어딘줄 알고 핏덩이가 오느냐 물었고, 그럴 때마다 이스마엘은 웃어 넘겼다. 그리고 치료비를 명목으로 대화를 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스마엘의 오른손 이름은 대화였으니. 음, 좋은 추억이다. 다만 대화는 오늘 휴업이다. 여기는 에델바이스니까. "혹시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트레이를 든 모습으로 이스마엘이 살갑게 물었다. 다가올 거대한 교육의 현장은 꿈에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