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좋아한다는 말에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잇대에는 뭐든 즐거울 수 있는 때이니까. 쉽게 상처받지만 또 금방 이겨내기도 하고 작은 것에 감동하거나 호기심을 느끼고 금방 웃고 금방 울음을 그친다. 나도 그랬을까 생각하면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아지지만 아이들을 보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으응? 어... 음... 썩는 것도 아닌데 사탕 남으면 천천히 먹으면 되거든...?"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이내 표정을 푼다. 바구니에 든 것들을 계산을 하면서 마리는 카페에 간다는 선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따라갈까 생각했지만, 역시 안전공간 밖에서 무언가를 마시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생각해보면 제가 불편해하는 것들이 참 많다 싶다. 밖에서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것도 불편해, 비세븐스들이 함께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도 불편해. 이렇게 불편하게만 살아서는 좋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것도 필요한 걸까.
"그렇구나. 나는 이거 사고 기지로 돌아가야겠어."
그래도 궁금증은 남은 모양이었다.
"자주 가는 카페 있어?"
이 마을에 있는 지리는 이미 다 꿰고 있지만 카페에 들어간다거나 여러 시설들을 이용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그 안이 어떻고 어떤 곳이 좋고 하는 것은 잘 몰랐다. 일단 들어놓고 나중에 찬찬히 불편함들을 극복해나간다면 가볼 수 있지 않겠는가.
반박 없이 수긍하는 쥬데카의 태도에 레레시아는 또 혀를 차고 라라시아는 쥬데카의 어깨를 토닥인다. 서로 바뀌었지만 미묘하게 이전과 섞인 것 같기도 한 그런 반응들이지 않았을까. 쥬데카의 뒤에서 가볍게 닿는 수준으로 포옹을 한 라라시아가 그럼, 이라며 말했다.
"회복력만 조금 올려줄게에. 다른 사람들 걱정은 말아- 다들 원하는 만큼은 해줬으니까아. 뭐어, 딱 한 명은 해주기 싫었지만."
재잘대는 말 사이로 자매 간의 따끔한 눈빛 교환이 소리 없이 오간다. 그러면서 라라시아는 쥬데카의 몸에 세븐스를 써서 완치는 아니지만 한결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해주었다. 그리고 앞에서 레레시아가 말을 꺼낸다. 레이버를 데려오지 못 한 것에 대해서다.
"너무 자책하지 마. 그 상황에선 누구도 뭘 할 수 없었어. 나도 처우에 대해 묻는게 고작이었고. 솔직히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뭐라고 했던가. 다시 교육시켜서 병력으로 쓴다고 했던가. 자세히 보진 못 했지만 무장이 깨진 후 레이버는 어딘가 해방된 듯 했다. 굳건해 보였으나, 스스로의 신념에 의심이 들어 결국은 그동안 믿었던 것이 깨지고, 눈 돌렸던 것을 마주했을 때의 모습 같았을까. 그런 이가 이전과 같은 신념으로 다시 일어서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가디언즈는 억지력을 써서라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레레시아의 미간이 구겨진다. 침대를 짚은 손이 시트를 서서히 움켜쥐고 그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처음부터, 싸우지 않고 포기시켰더라면..."
처음부터는 무리였어도 적어도 그렇게 쓰러지기 전에 포기를 시켰더라면 결과는 달랐을까.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나친 갈림길은 다시 갈 수 없고, 선택의 대가는 언젠가 치르면 그만이다. 레레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 말했다.
"거기서 더 싸웠다간 나갔던 인원 전부가 위험했을 지도 몰라. 퇴각은 현명한 판단이었어."
복귀하고 보니 특수부대 뿐만 아니라 로벨리아들도 부상이 적지 않았다. 순간이지만 떠오르는 한 사람의 모습에 레레시아는 왼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 때까지 쥬데카의 머리카락을 만진다던가 하며 잠자코 있던 라라시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제법 멀쩡히 복귀해선 서로 쓴 소리나 하고 있네에. 그럴 거면 나가서 기분 전환이나 해-" "넌, 으휴. 분위기 좀 읽어. 눈치가 없냐." "그 분위기 칙칙한게 싫다는데 뭔 상관이야아? 리오도, 안 나가면 계속 이렇게 잡아놓는다?"
어쩐지 쌍둥이 사이의 인질 비슷한게 되어버린 것 같다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으이그. 어쩌겠냐는 듯이 툭 내뱉은 레레시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서 쥬데카를 보며 물었다.
"계속 시달리다간 없던 병도 나겠다. 나가서 커피나 마실까 하는데. 갈거냐?"
싫음 말고. 그렇게 덧붙였으니 사양해도 괜찮을 듯 하다. 그러면 계속 라라시아에게 시달릴 지도 모르지만.
한 명...?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구체적인 것까지는 알지 못한 채로 라라시아의 세븐스를 통해 어깨가 좀 더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자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죠, 적으로 또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 어떻게든 다시 마주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게 중얼거리는 레레시아의 말에는 이번엔 네가 위로하듯 말을 꺼냈다.
"그래도 레시 덕분에 큰 피해는 면했잖습니까, 싸움 자체를 회피할 방법은 아마 없었다고 생각해요."
싸움 없이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퇴각이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말하는 레레시아에게 맞습니다. 라고 웃음지었다. 지난번 임무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됐다. 전면전이 아니라 가디언즈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것이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팔찌를 만지작거리는 레레시아의 행동을 눈여겨보던 너는, 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라라시아와 레레시아가 주고받는 말을 듣곤 라라시아가 자신을 붙잡고 있던 팔을 풀 만한 시간을 충분히 주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ㅇㄴ...멀티 정도는 돌릴수 있을것 같아서 잡았는데 혐생 일언다구? 선우주 마리주 미안 답레는 좀 늦을것 같다... 따지고 보면 혐생 탓이 아니라 내가 부주의해서 바빠진 거지만 그래도 남탓 하면 맘이 편해져 제발 내 탓 아니라고 해조 (짤짤)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카페에서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노트북도 없이 조용히 커피만 마시며 수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그는 훌륭한 사이코패스의 자질을 선보이고 있었다. 창가도 아니라 구경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리에서, 테이블만 쳐다보며 혼자서 가만히 시간만 죽이고 있는 일이란 중독적인 삶을 사는 여느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일 테다.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을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임무 하나를 무사히 마치고 왔으니 오늘은 휴식이다. 하지만 휴식이라 해도 마땅히 갈 만한 곳도 없고, 쉬면서 할 일거리도 찾을 수 없어서 그는 하루 내내 별 볼 일 없이 방황만 했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파질 무렵 카페를 발견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할일이 없어도 웅성거리는 소리 들으며 시간 보내려니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를 이대로만 보내게 된다면 무언가 참 아쉬울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시간 낭비라는 느낌이라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우연히 눈에 띈 아는 얼굴─얼굴…이라 하기엔 묘한 모습이지만 아무튼 그렇다─을 보고 유독 반가운 기분이 든 까닭은 그래서일 거다. 의자에 늘어져 대충 앉아 있던 그가 한쪽 손을 들고 휙휙 좌우로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마리를 보고 자기가 무슨 말 실수를 한건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0특수부대 말고도 에델바이스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고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심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마리도 그 중 하나일 텐데 자신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말이 그녀에게는 무엇인가를 건드리지 않았을 까 생각한다.
가장 짜증났던 당혹스러웠던 케이스가 민초와 하와이안 피자 권했다가 버럭 화를 낸 학생이었지...맛알못자식..
"하긴, 냉장고에 넣으면 녹지도 않고 오래가니까."
나눠주다가 남은 것은 자신이 모조리 먹을 것이라 말하는 마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리미리 사두면 나중에 귀찮게 나갈일이 없으니까 좋을 것이다.
"그래? 아쉽네."
우연히 만난 동료와 헤어진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한다. 자주 가는 카페가 어디냐는 질문에 이전에 동료와 함께 갔었던 카페를 말해준다.
"이 근처에 있어. 저 쪽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나와. 예전에 괴물이랑 한바탕 싸우고 전신을 붕대로 감았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아니 여성 분이랑 같이 갔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