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이 밀려와 머리를 흔들거리면서도 말투에는 흥분감이 역력하게 묻어난다. 한 번 불 붙은 이상 끝을 봐야겠다는 심산인가? 맨 처음 준비운동부터 시작해 천천히 가자고 했던 건, 진심으로 시작했다간 지금처럼 끝까지 가리란 사실을 스스로 알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전처럼 날고 뛰어다니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반응속도도 집중력도, 전반적인 감각이 둔감해진 듯했다. 그는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는 폭발의 끝으로부터 날아오르는 쥬데카를 바라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미**, 임기응변 개쩌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무리 없이 피할 수 있으려나? 쥬데카의 공격은 꽤나 빠르고 매섭다. 둔해진 머리로는 완벽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울 만큼이나. 그러므로 그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좋은 위치를 점하고 쏟아지는 공격은 위력적이지만 허공에서의 기동이 쉽지 않다는 단점 역시 공존한다. 그러니 이 수법을 쓴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그는 전투의 여파로 부서지고 튀어오른 바닥면의 파편을 붙잡아 허공에 던져넣었다. 팔매질로 떠오른 파편이 날아드는 쥬데카와 그 자신의 틈 사이에 위치한 순간 기변이 벌어진다. 돌조각으로부터 어김없이 붉은 빛이 일렁이더니,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낌새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다만 폭발점이 만들어진 지점이 시전자 자신에게도 무척 가까웠다.
그의 무장은 스스로의 약점, 능력의 여파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보완하여 폭발에 대한 내성이 극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버스트와 스페셜스킬의 위력을 경감시키는 것만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근거리에서 접하고도 무사하기는 더더욱. 그 사실을 알고서도 눈앞에서 거하게 터뜨리겠다는 것이다. 이판사판이라는 도박도 실전이 아니니 꺼낼 수 있는 수가 아니겠나. 소기의 목적은 버스트였으니 주객전도는 금물이지. 쥬데카가 버스트로 제대로 막으면 자신이 더 다칠 테니 지는 거고, 못 막는다면 제 무장이 더 잘 버틸 테니 이기는 거다. 속 편한 합리화를 끝으로 눈앞이 붉게 물들며 거센 힘이 터져나온다. 불길이 몸을 집어삼키기 직전, 참을 수 없는 격양에 그는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궁금하지 않느냐는 말에 얼버무려 버린다. 진심이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럼 물어보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어 말을 그만둔다. 그렇다고 침묵해버리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타협을 한 셈이다.
"그런가요?"
분명히 친밀감이 꾸준히 쌓여가는 듯한 말을 듣고 너는 다행이네요. 라면서 웃었다.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리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너는 이야기의 흐름을 되짚으며 고갤 끄덕였다. 아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요... 음, 가끔이지만 대체 뭐 때문에 불길한 느낌이 드는지를 모르니,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불필요한 상상이라는 말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애초에 육감으로 잡아내는 일들은 대부분 불길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좋지 않은 일만 떠오른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에봇의 능력도 그렇지 않나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의 범주가 넓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되묻는다.
"괜찮습니다. 저도 같이 썼고요."
네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오븐으로 향하긴 했지만 개의치 않고서 주방용기를 깨끗이 닦기 위해 문지른다.
"으음, 만족하기 전까지 그건 알 수 없지 않을까요?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만족하겠다, 라고 생각해도 막상 그 때가 오면 어떨지는 모르니까요."
그건 언젠가 맛볼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질문을 빗나간 대답을 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유지한 채로 설거지를 계속한다. 그 와중에 기억이 난다면 바로 달려오겠다는 말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로 고맙다는 듯 미소를 띄울 뿐.
"그랬...었죠, 확실히..."
이상한 부분에서 좋은 운이라. 누군가는 불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상황을 적어도 운이라고 말하는 그에게는 그래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는 술자리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분위기는 괜찮았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앗, 그...많이 틀렸나요?"
전부 뜨인 눈과 함께 덤덤한 목소리로 전하는 말, 너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눈을 제대로 마주치는 것도 잠시 타이머가 울려 몸을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너는 좀 더 아래로 말했어야 했나, 아니면 그렇게 어리게 봤다(=얕보았다)라고 생각한 건가 싶어 거품이 묻은 네 손으로 흔들리던 시선을 고정했다. 어떡한담. 잠시 그의 눈치를 보던 너는 일단 설거지부터 끝내기로 한 듯 서둘러 거품을 닦아낸다. 그 와중에도 두어 번 정도 그의 모습을 살펴보는 게 퍽 처량하다.
용이 자신의 앞 발로 꼬치를 받아 쥐고는 몸을 웅크려 먹는다. 입술을 오므리는 것을 보아 그의 입맛에는 짤 것이라 추측했다. 역시 사람 입맛에 맞춰 만들어 진 요리라 동물 입맛에는 짠 모양이었다. 칼을 꺼내 고기 한덩이의 겉면을 조금씩 긁어내어 이미 뿌렸던 향신료와 소금을 조금 걷어내었다. 물론 다른 고기에는 자신의 입맛에 맞춰 자극적으로 조리하겠지만.
"훈련장? 그것도 좋지. 하지만 훈련이 끝나고 나면 고기를 못 구워먹잖아? 그러니 그냥 여기서 훈련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는 거지."
이전에 꼬맹이에게 들켜 큰 곤욕을 치른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또 한번 그랬다가 들킨다면 더 이상 입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고기가 천천히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가 숲 가득 퍼졌다. 이내 적당히 익은 한 덩이를 잘라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육즙과 자극적인 시즈닝이 잘 어우러졌다.
"용의 모습으로 먹기엔 너무 작지 않아? 옷 어디 놔뒀어? 가져다줄게. 인간 폼으로 돌아오지 그래?"
멈출 리 없었다. 지금의 너 역시 마찬가지다. 공중에서 위치를 잡고 돌진하는 건 별다른 수단이 없는 한 방향을 틀 수 없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상대가 피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시도해야만 했으며 지금은 그러니까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일단은 말이지. 문제는 네가 그렇게 도저히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는 것과, 네가 공중에서 방향을 틀 방법이 전무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제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지금 방향을 틀려면 다른 쪽으로 말뚝을 박아 잡아당겨야 한다, 사슬이 다른 곳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 동안 너는 계속해서 궤도를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상 이 공격으로 마무리,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으므로 너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
아마 너와 그의 사이에 튀어오른 파편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을 터다. 정확히는 파편이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네 머리는 수십 가지 이상의 생각을 순식간에 거친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애초부터 반격을 피할 생각으로 달려든 게 아니잖는가. 더군다나 지금 저 앞의 파편은 지금까지 폭발했던 것들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전신의 피부가 일어나는 듯한 오싹한 감각. 너는 이를 악물었다. 치잇,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너는 체인을 놓고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그러자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막아냈을 때와 비슷한, 우산 형태로 무장이 금속성의 마찰음을 내며 펼쳐졌다. 다른 점이라면 네 눈 앞에 발생할 폭발이 강한 만큼, 보통의 방어보다는 훨씬 더 단단했을 거라는 점일까. 문제는 속도였다. 우산처럼 펼쳐지는 방패가 완벽하게 펼쳐지기 전에 강렬한 섬광과 폭음, 그리고 엄청난 고열이 터져나온다.
"......"
아마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너는 지금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잠깐 끊겼던 정신이 돌아오자 너는 몸의 전면부가 화끈한 것을 느끼며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원하게 뱉을 수 없었던 것이, 폭연을 삼켰는지 목이 칼칼한 것을 넘어 타는 듯했기에 너는 켁켁 거리며 숨을 두어 번 뱉어낸다. 아직도 연기는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너는 그 연기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온통 그을음으로 가득한 무장을 내려다보며 땅을 짚고 일어서려던 너는 불현듯 흔들리는 시야에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마구 흔들리고 그제서야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는 걸 깨닫는다.
"아윽..."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몇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뒤를 돌아보면 벽에 강하게 부딪힌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헬멧이 없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깨졌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버스트가 아니었다면 막은 팔이 통째로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끝날 피해를 지금 깨어날 수 있는 수준으로 경감시킬 수 있었던 건... 너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붙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벽을 짚었다. 손은 물론이거니와 몸의 전면부에 입었을 화상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으므로 너는 계속해서 움찔댄다.
//그럼 이쪽도 버스트로 막아보기 >.< 방어무시를 무시하고 1배로만 맞는거... 밸런스 너무 잘 잡혀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