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떠 있습니다. 유독 붉은 구름입니다. 그 붉은 구름들이 길고, 또 멀리 퍼져있습니다. 그 풍경이 썩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담기에 어색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다만 지독히 이질적인 풍경이라는 것을 말해야만 하겠군요.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붉은 구름을 보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은 붉은 구름을 본다면 그 날의 시간을 해가 지는 즈음의, 느즈막한 시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간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이었으니까요. 이제 막 해가 떠올라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에 왜 구름은 저리도 붉은지. 그리고 그 풍경은 왜 그렇게도 아름다운지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운 사실을 하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나는 내 얼굴을 매만져봅니다. 손에 붉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굴을 쓸어보았더니 이제는 손에 피가 흥건하기만 합니다. 눈을 깜빡여봅니다. 이제야 알 것도 같습니다. 이 풍경이라는 것이 해가 지려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미친 것도 아니고 내가 죽어가는 풍경이었던 겁니다! 우습지요.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이 아름답다 말하는 모습이 썩 우습지 않습니까. 정작 죽어가면서도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습니다. 이런 풍경을 알 수 있었다면 그림이라도 배워둘 것을. 내가 본 것을 사람들과 나누어보는 것은 어떠하였을지 그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무서움이 훌쩍 다가왔습니다. 내가 본 것을 누구도 알 수 없게 된다니. 또한, 내가 알았던 것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된다니. 이 얼마나 슬픈 생각이겠습니까!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함께, 내가 보고 알았던 것도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었습니까. 시기와 질투, 사랑과 배신, 정욕과 순수, 갈망과 만족. 그 여러가지 것들이 뒤섞여 혼란스런 세상에서 이물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설득해봅니다. 죽는 것도 별로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럴줄 알았다면 물레방앗간의 그 아가씨와 함께 시끄러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동안, 어지러운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볼 것을 그랬습니다. 아직 후덥지근한 때에 조금 더 후덥지근한 이야길 하고, 나에게 친절한 척을 하며 뒤에서 날 험담하던 그 덩치의 콧대에 주먹이라도 휘두를걸 그랬습니다. 분명 아프기야 하겠지만은 죽는 지금보단 나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지난 후회들과 함께 나는 죽어갑니다. 붉은 하늘에는 내 증오도, 미련도, 원망도 담겨있겠죠. 말이 느려집니다. 눈이 희뿌옇게 변하고 있습니다. 내 눈은 이제 노인의 그것처럼 침침하기만 합니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꽤 앙칼진 목소리입니다. 그 인영들 중 하나가 나를 가르킵니다.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드디어 나를 발견한 것일까요? 다가오는 모습이 썩 익숙합니다. 살짝 살집이 있어보이는 몸에, 그와는 반대로 살짝 도톰한 볼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나를 두드립니다. 어떻게든 삶을 이어달라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하늘을 보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은 말들을 모아 당신에게 전해봅니다. 적어도 내 눈에 담은 마지막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고, 거기에 더해 당신을 보아 더더욱 아름다웠다고요. 붉은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빛을 가진 당신께서 제 눈을 감겨주셨습니다.
죽음이란 잊혀질 수 있는 흐름입니다. 누구에게나 그 흐름이 밀려오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으로 우리는 천천히 깎여나가며 또한 마모되어갑니다. 그렇게 완전히 부숴지고 나면 누구도 우리를 기억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묘비로써, 또한 글자로써 기억될 것입니다. 나 역시도, 나의 마지막이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으로, 그 다음에는 비석으로, 그 다음에는 글자로, 먼 미래에는 깎여 사라질 것이라고.
기사단. 보통의 창작물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실제 기사단의 역할이란 깡패들을 모아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말을 탈 수 있고, 사람을 간단히 죽일 수 있고, 또한 적당한 대가가 있다면 사람을 따르는 것이 기사의 본질이다. 그런 기사들을 적당히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상적인 모습을 요구한 것이 바로 '기사도'라는 모습이었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창작물에서 기사란 불의에 저항하고, 신념을 지켜나가며, 영웅이 되어나갔다. 그 모습에 희망을 가지고 기사가 된 자들도 많았을 정도이니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문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이런 기사의 모습으로 일어난 각성자들이 있었다. 아주 먼 시대처럼 내가 기사다! 하고 자신을 칭한 이들이 일어났고 헛소리를 하듯 영웅의 신화를 써내려간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것이 의념시대 이후 피어난, 후기 기사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의념시대 이후의 기사도는 흔히 '보호, 수호, 명예, 맹약' 네 개의 키워드를 주로 삼는다. 물론 이따금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게이트를 토벌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또한, 이런 이들이 모여들어 단체가 되었으니 이를 기사단이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기사도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기사의 길에 오른다. 그 시작이 늦든, 빠르든. 또한 얼마나 크고 작은 신념이 있든 간에. 이들이 정의라는 목적으로 모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게이트가 열린 후, 최고의 기사였던 안테우로슨의 죽음과 함께. 이들은 아직도 그 이명을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누가 과연 최고의 기사인가! 그 목적을 위해, 기사들은 오늘도 수많은 명성을 위해 몸을 내던지고 있다. 신념과, 목표,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영광스러울지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