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 당신의 탁월한 선택이다. 물론 글을 모르는 그녀는 간판에 적힌 그 뜻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쨌든 동류는 이끌린다는 법인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기를 취급하는 집이라는 걸 귀신처럼 알아채고 만다. 오히려 저가 먼저 자리를 물색해 "여기가 비었다." 라며 맞잡은 당신의 손을 이끌고 가려 하고 있었다.
"괜찮다. 멜피가 준 옷이다. 엔은 입는다."
적당한 자리에 앉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새로운 옷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분명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평상복 외에는 어떤 옷을 입더라도 불편했을 것이다. 헌데 그런 그녀가 재차 옷자락을 당기며 콧잔등을 가져갔다.
"하지만 멜피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당신의 냄새...라고 하면,
"풀이 탄 냄새다."
담배 냄새를 말하는 건가. 당신은 거의 항상 입에 물고 있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아까부터 옷자락을 당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답이 정답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계속해서 퍼부어질 것만 같았던 분노를 멈추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분노가 멈추고 널 바라보는 눈에서 끓어오르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그리곤, 이어지는 짧은 네 대답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기분 나빠.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그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널 붙잡고 있던 독액 역시 거둬지고, 네게 내밀어지는 손.
"......"
너는 조금 망설이다가 라라시아가 내민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머리 부딪혔잖아. 그 말을 들으며 몸을 일으킨 순간, 띵하고 어지럼증을 느껴 너는 다른 한 손으로 급하게 땅을 짚었다, 언제 부딪힌 거지. 다행히 돌부리 같은 건 없었지만 바닥에 뒤통수를 부딪힌 건 사실이었다. 너는 살짝 고갤 흔들고 눈을 두어 번 천천히 깜빡인 뒤에야 붙잡고 있던 라라시아의 손을 놓았다.
"...아닙니다."
모르는 일이다. 네가 그 당사자가 아니라고 누가 보증하겠는가. 비록 네가 그녀들을 본 기억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네가 가디언즈에 속해 있었던 것도, 그 곳에서 다른 세븐스들을 제압하는 일을 했던 것도, 심지어는 레지스탕스에 침투해 안에서 무너뜨리는 일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너는 담담하지만, 그 역시 적잖은 분노를 지니고 있을 상대에게 말을 더하기보다는 아꼈다.
"-죄송합니다, 모처럼의 술자리를 망쳤네요."
흔들리던 시야가 안정되고, 너는 난장판이 된 자리를 눈으로 훑으며 그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밝혀질 일, 관계가 깊어져 입을 상처보다, 지금 내쏟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낫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하며 너는 네 뒤쪽, 깨져 버린 술잔을 손수건으로 주워들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가 있어봤자 방해가 될 테니, 미소지은 너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두어 번 털어내곤, 다시 묶어 늘어뜨렸다. 돌아가자. 불청객치고 너무 오래 머무른 댓가라고 생각하는 듯이 너는 네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며 몸을 일으킨다.
라라시아는 쥬데카의 손을 놓기 전에 세븐스를 사용해 그의 혹시 모를 부상이 회복되도록 해주었다. 머리에 대한 부상은 처치가 빠를수록 좋으니까. 그 뿐이었다. 라라시아는 쥬데카의 생각과 달리 분노라곤 눈썹 한 가닥만큼도 없었다. 그저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같은 조직의 대원으로써 치유를 해주고 아니라는 쥬데카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돌아본 자리는 그 잠깐의 여파치곤 꽤나 화려하게 뒤집어져있었다. 일단 내놓았던 음식은 더는 못 먹을 상태가 되었고, 멀찍이 굴러간 빈 병은 반토막 난 것도 있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게 생긴 난장판에 라라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쥬데카를 향해 쓴소리 한 번 하지 않았지만.
"뭘. 욱한 사람이 잘못이지. 미리 못 막은 내 잘못이기도 하고. 리오가 미안할거 없어."
손 다칠텐데 그냥 둬. 깨진 술잔을 치우는 그를 되려 걱정하는 말을 한 라라시아는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 레레시아의 머리카락을 슬쩍 들춰보았다. 고개가 숙여진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무릎이나 근처 머리카락이 검붉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라라시아는 다시 레레시아의 머리카락을 잘 덮어주고 먼저 자리를 뜨려는 쥬데카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 때까지 늘어져 있던 레레시아가 팔을 들어 쥬데카의 바지를 붙들었다. 군데군데 붉은 물이 든 검은 장갑이 바지를 잠시 꾹 쥐며 붙잡는 건가 싶었으나. 곧 힘이 풀리며 조용히 떨어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라라시아가 레레시아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 이래. 그럼 조심히 들어가. 혹시 더 아프면 꼭 의무실 가고."
치유는 됐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녀의, 쌍둥이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달리 할 말이 없다면 그 자리는 그대로 파하게 될 것이다.
라라시아의 세븐스 덕분이었는지, 조금 어지럽던 머리가 금방 맑아졌다. 감사합니다. 하고 작게 덧붙인 뒤 조심스레 손수건에 주워담은 유리잔을 손에 든 채, 욱한 사람, 그리고 막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라라시아의 말을 듣는다. 차라리 둘 다 계속해서 분노를 쏟아내거나, 분노를 곱씹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면 조금은 더 편안했으려나. 비정상적으로 이성적인 라라시아의 말에 너는 말없이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붉은 눈물, 그건 정말 눈물인가? 검붉게 물들어 버린 머리카락과 무릎의 옷자락.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을 볼 수 없는 레레시아를 잠시 내려다보던 너는 몸을 돌려 이 장소를 뜨려고 했다. 적어도 바지를 붙잡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랬으리라.
"......"
너를 붙잡은 손의 주인은 레레시아였다. 여전히 고갤 숙인 채 붙잡았던 손은 금새 힘이 풀려 떨어진다. 그리고 들려오는 라라시아의 목소리 미안, 이라.
"...감사합니다."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너는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자 했다, 너와의 관계가 끊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라고. 그렇기 때문에 너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중에 또 다시 이야기하자. 라는 의미로.
멜피가 조금이나마 웃자 그도 픽 웃을 기분이 되었다. 농담하듯 말하지만 빈말은 아니다. 당연함은 무엇인가? 보편이란 무엇이고? 그 기준이 되는 상식을 정립하기에는 그가 아는 세상의 한도가 너무도 좁다. 이건 아니라 못 할 사실이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튕겨내기에도 좋은 구실이 된다. 자신이 호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당당하게 자기가 바보라는 걸 공언하고 싶어서는 아니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 보이는 멜피 때문이었다. 그 후로 잠시간 말이 없던 그는 멜피가 내민 차를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가 뒤늦게 이걸 언제 준비한 것인지 의문을 떠올린다. 컵 안의 온기는 따스하다. 그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넌 안 마시냐?" 그리고는 곧 멜피를 따라 자리에 앉는다.
상 위에 잔을 올려두고, 두 손으로 감싸쥔 채 경청했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간결하게 결론만 말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멜피의 입이 다물리고 가장 먼저 든 감상은 이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 그거 골때리네. ……힘들겠다는 뜻으로."
멜피의 고백은 그에게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대척이었다. 무지하기에 끝끝내 순진할 수 있었던 그와, 사실은 늘 누구도 믿지 못했다는 멜피. 생각은 불현듯 이곳에 닿는다. 그렇다면 멜피는 여승우란 인간 역시 믿지 못하나? ……그는 그렇더라도 상관없겠다 생각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해준 데 감사한다. 적어도 모르는 사이 외떨어져 초라한 기분만큼은 들지 않으니까. 그는 손 안의 컵을 내려다보았다. 차의 온기는 여전하다. 믿지 못한다 해서 멜피가 매순간 베풀었던 친절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설사 너 역시 믿지 못한다는 고백마저 자신을 경계해 내뱉은 거짓말이었다면, 그렇더라도 상관없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혹여라도 들키지 않도록 영원히 숨겨주었으면 한다. 그는 믿기로 했다. 믿기로 했다. 진실을 고했으리라 믿기로 했으니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좋아했던 사람으로부터 영영 거부 당하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난 씨* 너를 잘 모르지만," 잠시 목다심을 하고는 운을 떼었다.
"네 의심, 그게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 그리고 만들어지고- *, 유지해 온 시간이 얼마나 되냐? 잘 몰라도 3년보단 길겠지. 인생 전체에서 논하면 3년은 존*게 짧은 시간이야. 여기서 좀 잘 지냈다고 그게 네 삶 전체를 개** 확, 뒤집기는 힘들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과 그만큼의 진리. 경험이 부족한 그로서는 올바른 통찰을 이끌어내 설명할 재주가 없지만, 자신이 아는 진리─ 제 삶의 한도 내에서는 말할 거리가 있었다. 사람은 살아온대로 살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그렇게 모양 잡힌 것이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도 그렇다. 기억하는 한도 내의 평생을 양순한 집짐승으로 살아왔고, 그렇기에 그때 자리잡은 미숙을 못 내던져 아직껏 이 꼴이다. 그는 그런 자신에게 큰 유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멜피는 과연 그런가? 들었던 찻잔을 탁 내려두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골몰하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는 이내 멜피를 마주보며 무덤덤히 말했다.
"난 씨* 호구 새*라서 딴 마음 먹는 거 잘 못한다. ……그러니까 안심하라고는 못 하겠지만, *. 아무튼 난 네 편 할 거라고."네가 먼저 날 버리지만 않으면.
그녀는 자신도 먹을게 있다는듯 옆에서 또 차를 꺼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녀의 능력은 이럴때는 편리했죠. 물론 자동으로 움직이는게 아닌만큼 그녀 자신의 머리를 병렬로 돌려야할 필요성은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익숙한 일. 아무튼 그녀는 차를 한모금 마시고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못하지만. 그것이 동료들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렇기에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결코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거란것도 알고 있었고
"............"
그랬기에 힘들겠다고 말하는 당신의 말에 그녀의 표정은 아주 약간이지만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타인을 믿지 못하고, 동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을 해버리며 항상 살얼음판에 서있는듯 느끼고 있는 그녀였지만. 결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배신을 당하는것은 무섭지만. 당신들을 믿지 못하는 자신은 혐오스러웠으니까. 차라리 그저 형식상의 관계였으면 좋았을텐데. 친하게 지냈던 당신이기에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이런 말을 해도 받아줄 당신이었기에 고통스러웠다.
"왜, 이해하는거야.. 이 호구야!!"
"진짜 호구야, 너 그러다 분명 나중에 나쁜여자한테 당한다고.."
당신의 말은 그녀에게 있어서 와닿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에게 상처를 준거 같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까 부정해놓고 호구라고 ㅡ 당신은 인정했습니다만 ㅡ 말하며 당신을 쏘아.. 붙이진 못했습니다.
아아- 진짜.
골몰하게 생각해주는 모습이, 그러면서 무덤덤하게 말해주는 말이. 내 편이라고 해주는 당신이. - 참을 수 없게 보여 손을 뻗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배신 안 할거야? 안 찔러?"
지금 당장, 너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을거야.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계기가 너였으면 하는 자각은 있어.
고맙다고 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너의 모습에. 나는 안아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너의 품에 다가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