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은 전부 명중했다. 동료들은 죄다 한 실력 한다 평가했다만, 그럼에도 타격이 없어보이는 걸 보면 인상이 느슨해진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니 긴장감이 더해져야 할 텐데 어째 별로 그런 압박감은 들지 않는다. 무력감을 느끼는 건가? 그건 아니다. 아무런 사고 회로 없이 그저 맞춘 물감 쪽으로 신경을 돌린다. 명중하고 남은 물감의 파편들은 레이버의 관자놀이에 묻어있다. 그 파편들에 힘을 쏟으면 체내로 진입시켜 그녀를 질식시키는게 가능할까?
그녀의 채찍 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공격도 하나 둘 먹혀들어갔다. 그대로 바닥에 때려눕힐 수 있을 거 같았으나, 새롭게 만들어진 물줄기가 레이버를 받폈다. 쳇. 혀를 찬 레레시아는 일단 몸을 움직였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게 정의라- 맞는 말이긴 한데."
레이버가 일으킨 거대한 물살을 피해 내달린 후, 근처 나무를 붙들어 쓸려가지 않게 버티면서 소리친다.
"어이 물고기 씨. 네 말대로 세상이 원하는 건 정의야. 그런데 지금의 정의는 누가 만들었지? 너희의 수장이 멋대로 만든 정의잖아? 비능력자만을 보호하고 세븐스는 무조건 배척하는게 정의라고? 중립을 지키지 못 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냐. 만든 이의 에고이고 이기심일 뿐이라고."
"눈 가리고 외면한 세상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고? 아니. 내가, 이 레지스탕스의 존재가 너희가 그것이 거짓이라는 증거야. 지금 가디언즈가 내세우는 정의야말로 인류의 적이자 절대악이라는 증거라고. 가디언즈야말로! 사라져야 하는 절대악이다! 이 뇌 없는 물고기X아!!!"
레이버의 속을 밑바닥까지 긁어버릴 작정으로 소리를 지르고, 독액을 최대한 생성해내며 다음을 준비한다.
협공은 성공했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크지 않아 보인다. 아직까지도 여유를 잃지 않은 레이버를 보며 작게 혀를 찬다. 하긴, 저 정도나 되니 혼자서 다른 세력들을 쳐부수고 다니는 거겠지. 보검의 힘을 빌려 맨몸으로는 꿰뚫리고도 남을 공격을 맞고도 멀쩡한 자신이 할 생각은 아니지만,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세다.
"*, 안 그래도 *같은데 짜증나게 개소리 하고 앉았어. 그럼 기회라도 공평했어야지. 누구는 개** 태어나자마자 죄 없어도 죽는 판에 세상 존* 정의롭다, 그치? 태어난 게 죄라는 개소리는 안 받는다, 씨**아."
서로 논쟁할 틈은 줘서 다행인가. 적어도 말하는 동안에는 저쪽도 주의력이 흐트러질 테니 말이다. 참다 못해 한 마디 하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몰아치는 공격에 대처한다. 무장의 힘을 빌려 높이 뛰어오른다. 발 밑에 일으킨 폭발을 반발력 삼아 더욱 솟아오르며, 떨어지는 도중 다시 한 번 레이버를 향해 폭발성의 총격을 가한다. 조준은 지느러미 형태의 하반신을 향해 있었다.
들어갔다...! 분명히 타격이 가해졌다는 감각이 톤파를 타고 전해졌다, 앞뒤로 이어지는 동료들의 공격까지 해서 레이버는 추락하고 있었다. 아니,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새롭게 생겨난 물줄기를 타고 떠올랐으니까. 칫, 하고 혀를 가볍게 찬 너는 땅에 손을 짚으며 안정적으로 착지하고는 레이버를 올려다보았다. 정의라- 절대 다수를 위한 정의.
"'절대'라는 건 '다수'에게 붙일 수 없는 말입니다. 레이버."
인류의 적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물줄기 속으로 들어간 레이버, 다음 순간 물줄기로부터 인어가 튀어오르듯 솟구친 그녀는 삼지창을 물줄기 속으로 집어던졌고, 물줄기는 그에 반응하듯 점점 몸집을 불렸다. 이건- 너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삼지창이 물줄기를 반으로 갈랐다. 그것은 마치 해일처럼, 모두 휩쓸어 버릴 작정인 듯 다가온다. 너는 물줄기가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변해 한 사내의 심장을 꿰뚫던 것을 떠올린다. 빗방울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주던 것도. 한 줄기의 물도, 자그마한 물방울마저 그러한데 저 정도 규모의 물에 휩쓸렸다간 뒷일을 가늠할 수가 없다. 이건 피해야 한다.
마침 엔이 나무 위로 움직이는 것을 본 너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굵은 가지를 붙잡았다. 아슬아슬하게 네 발끝을 스쳐 지나가는 물길, 너는 나뭇가지를 붙잡아 올라 두꺼운 나무줄기에 발을 디뎠다.
"이 모든 행동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당신과 같았으니까요."
콰직, 하고 나무줄기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너는 마치 화살처럼 공중에 떠 있는 레이버에게 튀어나갔다. 톤파를 거꾸로 쥐어 타점을 좁힌다. 이대로 한 점을 노리자. 너는 레이버의 몸 정중앙, 명치를 노려 주먹을 내지른다.
평범한 가디언즈라면 죽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고도 남는다. 이스마엘은 처음 죽었던 날을 떠올린다. 척추에 박혔던 파편을 기억한다. 두들겨도 화면이 뜨지 않던 태블릿처럼 이상이 생기던 순간을 떠올렸다. 무기, 노예. 그 삶을 인정하는 사람……. 그러면 세븐스는 누구에 의해 안전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세상이 비능력자 위주로 굴러간다면 가디언즈의 삶도 언젠가 팽 당하는 것이 아닌가? 끔찍하다, 소수를 바라볼 수 없는 세상임은 알지만 아예 인류에서 배제한다는 그 행위가 끔찍했다.
이스마엘은 그 사실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대체 나는 무엇이 끔찍한 것인가. 비능력자를 향해 끔찍하다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이 끔찍한 것인가, 아니면……. 눈이 가늘게 떨리며 물줄기가 자신을 향해 밀려왔을 때, 이스마엘은 등에 매고 있던 야구배트 모양의 보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물줄기를 유연하게 흘려보내려 하며 고개를 다시금 들었다.
"인간입니다. 우리는 인류입니다. 당신은 노예도, 무기도 아닙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그러니 나에게로 오라. 자유를 향해 정처없이 떠도는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