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누구를 위한 정의지? 정의는 언제나 상대적이야- 방사능 먹은 물고기야. 절대적인 정의는 없어."
레레시아는 레이버가 쏘아낸 물줄기를 피해냈다. 한 번은 맞을 뻔 했으나 에스티아가 펼쳐준 방어막 덕분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썩어도 물고기라고 독액 그 자체는 듣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돌진시켰던 독액을 거둬 형태를 갖추었다. 물로써 질식시킬 수 없다면 때려잡을 뿐이다.
독액을 긴 채찍으로 만들어내 레이버의 몸통을 노린다. 저 거만한 몸뚱이를 지상으로 먼저 끌어내려주기 위해.
떨어지는 빗방울조차도 위험하다. 마치 바늘처럼 온 몸을 찌르고 꿰뚫을 기세로 떨어지는 빗방울. 다행스럽게도 몇몇 동료들의 세븐스와, 이어진 에스티아의 드론이 펼친 베리어에 더 이상 따끔거리는 빗방울에는 신경을 그렇게까지 쏟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어진 공격들로 물줄기를 벗겨내는 것도, 나름 선방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 문제는 그 다음인데... 레이버는 삼지창을 들어올려 돌리기 시작했고, 당연한 수순인 양 물줄기가 작게 갈라지더니 총탄, 아니 그 이상의 속력으로 발사되고 있었다. 꿰뚫리면 아플 거라는 말에 반응하는 것보다는 지금 눈 앞으로 날아오는 물줄기를 피해야 했다. 몸을 바짝 낮춰 한 번, 코 앞에서 자기장에 부딪혀 분산된 물줄기 하나. 두 번은 막아주지 못하겠지. 너는 바로 몸을 놀려 계속해서 너를 노리는 물줄기를 피해 발을 놀렸다.
"당신이 그 아픔을 압니까? 놀라울 따름이군요."
꿰뚫어 보기만 한 게 아니었나? 대체 누구한테 꿰뚫려 봤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너는 물줄기의 틈을 노려 레이버에게 뛰어들어 몸통을 톤파로 가격하려고 했다.
한 번은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말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스마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최근들어 부쩍 말이 많았던 이스마엘인데, 이번 전투에서는 기이하게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싶어도 이후의 상황이 되레 기를 빨아먹을 것을 안다. 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 아마 저 사람도 가장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사실을 아는데, 아는데…….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정의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라."
같은 인간임에도 격을 나눈 자가 잘못한 것이노라 생각했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대로 공격을 피하려 했다. 비록 공격을 맞을지언정. 그 끝으로는-
아마데우스는 창을 휘둘러서 레이버의 목을 노리려고 했다. 분명히 명중하긴 했고 그에 따른 데미지는 확실하게 들어갔지만 당연히도 레이버의 몸은 장갑으로 덮여있었기에 목을 꿰뚫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제대로 타격은 들어갔는지, 본능적으로 살짝 긴장을 했는지 레이버는 몸을 움찔했다. 그 때문에 다른 이들의 공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유루의 구체가 레이버의 관자놀이에 명중했고 선우의 소총 공격이 레이버의 쇄골 부위에 명중했다. 그러는 와중 레레시아의 채찍이 레이버의 몸통을 내리쳤고 쥬데카의 톤파가 레이버의 몸통을 제대로 가격했다. 어디 그 뿐일까. 엔의 블레이드가 레이버의 몸통을 내리쳤고, 이스마엘의 염력이 레이버의 몸통을 억눌렀고 승우의 총탄이 물줄기에 닿아 폭발했고 그 때문에 레이버가 생성한 물줄기는 산산조각 났고 레이버의 몸 역시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는듯 했다. 허나 이내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들이 다시 뭉쳐 새로운 물줄기를 생성했고 땅에 떨어질듯한 그녀의 몸을 지탱해서 다시 높게 띄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검은 아니라고 해도 보검은 보검이로구나. 이 보검이 없었다면 위험했어. ...평범한 가디언즈 병사라면 죽거나 크게 다쳤을거야. ...인식을 조금 바꿔야겠어. ...아까 그 정도로는 죽지 않겠구나."
적어도 일반적인 적으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이 레이버는 모두를 가만히 바라봤다. 분명히 타격은 들어가긴 했으나 정말로 크게 데미지가 피격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약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의 힘의 차이가 있어서 보검 출력에서 확실하게 막히는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가디언즈에서 정의를 위해서 행동하는 무기. ...노예라고 해도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뭐? ...그게 이 세상을 위해서야. 실제로 비능력자들은 우리가 있기에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어. ...그것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거라면, 그게 곧 정의. 누구를 위한 정의냐고? 이 세상을 위한 정의. ...실제로 세상은 평화롭게 바뀌었어. 절대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평화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정의. ...그것을 부정하는 자는 인류의 적."
"...가디언즈는 인류의 적을 용서하지 않아."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 실렸고 이내 레이버는 물줄기 속으로 들어간 후에 인어가 헤엄을 치듯이 빠르게 위로 솟구쳤고 정말로 높게, 상당히 높게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삼지창을 물줄기 속으로 던졌고 빗방울은 그 물줄기를 향해 계속 모이고 있었고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들어오렴. 물 속으로."
이내 그 삼지창은 물줄기를 반으로 갈랐고, 제 0 특수부대를 향해 해일처럼, 정말로 거대하고 거대한 크기로 밀려왔다. 확실한 것은 저기에 휘말려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메가 웨이브 - 데미지는 없으나 흽쓸리게 될 경우 다음 1턴 동안 물 속에 잠겨 행동(회피+방어+공격) 불가. 이 공격은 방어가 불가하다. 단 회피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날리고 흽쓸리는 것은 가능. 어쨌든 방어는 불가능하고 회피는 가능.
공격은 전부 명중했다. 동료들은 죄다 한 실력 한다 평가했다만, 그럼에도 타격이 없어보이는 걸 보면 인상이 느슨해진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니 긴장감이 더해져야 할 텐데 어째 별로 그런 압박감은 들지 않는다. 무력감을 느끼는 건가? 그건 아니다. 아무런 사고 회로 없이 그저 맞춘 물감 쪽으로 신경을 돌린다. 명중하고 남은 물감의 파편들은 레이버의 관자놀이에 묻어있다. 그 파편들에 힘을 쏟으면 체내로 진입시켜 그녀를 질식시키는게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