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걸은 후에 도착한 장소에는 호수가 있었다. 고요한 정경을 흘끗 살피려니 곧이어 인기척이 느껴졌다. 상대를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빠르게 꽂힌 말에 그는 미미하게 낯짝이 불손해졌다. 갑자기 내놓는 첫마디부터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대화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 그는 남자에게 대답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곧바로 통신을 통해 에스티아를 불렀다.
"사실이야? 저 새… 아니, 쟤가 한 말 둘 다."
로벨리아에게 통신이 들어왔다는 것과 뜬금없이 아스텔을 처단했냐고 묻는 말, 사실상 진위 확인 겸 뒷부분에 대한 설명 요구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특별히 주변을 살피진 않았다. 긴장을 푼 건 아니었지만. 과도하게 긴장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경계와 긴장을 유지하면 숲을 좀 건너자 호수와 텐트 하나가 나왔다. 그녀와 팀원들이 도착하자마자 텐트로부터 에델바이스의 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튀어나왔는데 그가 한다는 소리가-
"흠-?"
아스텔은 처단 했냐고? 암구호인가? 싶었지만 오기 전이나 이전에 들은 적이 없다. 무슨 신호지? 레레시아는 텐트에서 나온 그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튀어나오는 인영, 그리고 거의 동시에 물감은 흐르듯 손에 휘감겨 단검의 형태로 굳혀진다. 붉은 에델바이스 표식을 보면 곧바로 검의 날은 녹듯 흐물텅해져선 위협성을 잃지만.
"처단."
그가 하려던 건 물음이였다만, 내리앉은 톤 때문에 질문보다는 되뇌이는 것에 가까운 뉘앙스가 되어버렸다. 구호라기엔 들은게 없고, 방금 그가 한 말 뿐으로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쉬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뭘까."
조곤히 뱉는 답. 듣는 자에 따라선 이미 처단은 끝났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는 직설적으로 처단했다 말하고 떠볼까, 잠시 고려했었다가도 이성은 그걸 멈춘다. 그러다가 일이 잘못 풀려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 외로울것 아닌가? 그도 사회적 동물인지라 그런 것은 싫었다. 지금 답도 딱히 이상적인 것은 아니겠다만, 그는 그의 행동에 쓴소리 먹을 각오 정도는 언제나 하고 있다. 모순적인가? 모순적이다.
"그는 왜?"
짧은 물음. 쥐고 있던 물감의 형태는 일렁거리는 액체로 온전히 상태가 변해있다. 느슨해진 행동거지는 사내의 긴장을 풀기 위한 수단일 뿐. 수상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대원들이 공격 해 주겠지. 그런 얄랑한 마음가짐이다.
누군가 노려보는 듯한, 그러나 정확히 어느 방향일지는 알 수 없는... 마치 온 몸을 찌르는 듯한 감각에 너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천천히 숲 속을 나아갔다. 그런 감각과는 별개로 접선하기로 한 장소까지는 무난하게 도달할 수 있었다만... 어째 계속해서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는 감각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미 노출된 건가?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호수 근처의 텐트에서 빠져나오는 에델바이스의 제복을 입은 사내, 아마 이 사내가 가디언즈의 배반자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려나. 그 직후 들려온 질문. 너는 상대방의 모습을 한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는 에델바이스 내의 다른 인원의 처분에 대한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받은 적이 없습니다. 굳이 저희들에게 묻는 이유는 뭡니까? 그리고... 이 장소, 안전한 게 맞습니까?"
완곡하게, 최소한 아스텔을 처분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최대 처단되지 않았다. 로 해석될 만한 답을 내놓으며 너는 빠르게 주변을 살피듯 눈을 굴렸다. 그 와중에 다른 동료들이 언제든 공격을 개시하려는 듯한 태세(심지어는 상대의 목에 무기를 겨누기까지)를 취하자 이걸 어쩌나, 하고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아는 것이라곤 은밀부대에 속한 이가 이 장소에 있다는 것 뿐, 너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레시와, 웬 뱀 한 마리가 텐트 쪽으로 향하는 걸 보다가 조금 초조해진 듯 입을 열었다.
"여긴 너무 탁 트여있습니다, 호수 옆이라니... 주둔지로는 쓸만할 지 모르지만 은신처로는 너무 안 좋아요, 혼자십니까? 병사는, 지금 필요한 건 짧고 확실한 정보 전달입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보시다시피... 다들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제지하기에는, 네가 조금 소극적이었다. 그럴 만한 권한도 없고. 그저 상대가 얼른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해주길 기다릴 뿐. 너는 진심을 담듯 눈으로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우와 승우의 통신에 로벨리아가 이내 대답했다. 즉. 저 사내는 은밀부대원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였다. 한편 레레시아와 마리는 텐트 안을 확인했으나 특별한 것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텐트는 작전에 사용하는 것아라기보다는 그야말로 휴식을 위한 텐트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작전에 사용되는 텐트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기서 통신이 잡혔다면 필시 위치는 여기지 않겠는가. 허나 적어도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개중에는 위협을 가하기도 하고 애매모하게 대답하기도 하며, 하다 못해 자신의 목에 낫까지 겨누고 있는 모습에 사내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두 손을 높게 들었다.
"그런가. 당신들인가. 온다는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접견하려는 이는 아니야. 그 자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 숲 안으로 들어갔어. 가디언즈가 있다면 자신이 일단 시간을 끌어보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받아서. 일단 누군가가 접견을 오면 그렇게 말을 하면 될 거라고 하더군. 만약 당신들이 가디언즈 병사라고 한다면... 나는 나대로 여기서 도망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접견해서 다행이야. 자. 이걸 받아둬! 당신들의 대장이건 뭐건 상관없어! 난 이걸 확인하고 더 이상 가디언즈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당신들도 보고 잘 이용해둬."
이어 사내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USB를 꺼낸 후에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어 에스티아가 조종하는 드론이 그것을 스캔하듯 가볍게 빔으로 투여했다. 이내 드론 내에서 뭔가 분석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곧 에스티아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어왔다.
-바이러스나 위치 추적기, 악성코드 파일은 없어. 정말로 순수하게 문서파일이 하나 들어있어. 다만 암호화가 되어있어서 여기서 푸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회수해. 남은 것은 내가 확인할테니까.
"...아무튼 나는 이걸 넘기고 바로 도망칠게. 미안하지만... 여기는 솔직히 엄청 위험하거든."
어서 USB를 가져가라는 듯, 사내는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일단 말을 정리해보자면 은밀 부대원은 확실하게 이 USB를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을 끌기 위해 단신으로 가디언즈가 있는 방향으로 향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