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긴 하루가 지난 것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에 달라진게 있냐고 하면 여전히 상황은 거기서 거기일까. 프레데리카의 수완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며칠 사이에 조직의 여론이 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라도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보스의 신분으로도 이렇게 하위조직이나 협력 업체등을 들리고는 했다.
일단은 관계개선이나 고충상담같은 이름으로 방문을 하고있다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너희 허튼짓 하지마라는 무언의 이야기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이득을 줄테니 배신하지말라는 의미였다. 그걸 어지간하면 내색하지 않는건 프레데리카 답지않은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사탕발림이 매력적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걸 도외시 할 수는 없는 부분이니까.
오늘의 경우. 저택과 가까운 공화국의 수도에서도 조금 거리가 있는 변두리 지방의 부둣가 방문. 이동 시간에 더불어 부둣가 창고의 소유주와는 꽤 밀고 당기기가 심했기에 프레데리카는 협상이 끝나자마자 소유주가 안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창고의 벽을 걷어찼다. 역시 나쁜 성격은 눌러놓아도 어디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써 보여주는 프레데리카다.
"알짜배기는 쏙쏙 뽑아먹고 저희제안은 구렁이 담넘어가듯 피하려고 해서 열받네요. 지금 시간이 얼마였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프레데리카는 시간을 확인했다.
"8시 30분. 애매하네요. 돌아가면 조금 시간이 그런데. 근처 마을이 보이면 식사라도 합시다. 먹는건 스트레스 해소에 좋으니까요."
곧바로 프레데리카는 저택의 연락처로 통화를 해 곧 식사준비 시간이니 식사 준비를 취소하는 연락을 마친다. 야엘을 통해서 해도 되는 영역이었지만 이런 자잘한 일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바로 결정내리는 버릇은 이런곳에서도 나온다.
"아마 10분거리에 있는 마을에 수블라키가 맛있는 곳이 한군데 있을거에요. 식비는 제가 내죠."
하루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가 끝나고 며칠 뒤였다.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의 여론을 규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레데리카를 위해 야엘은 오늘도 지긋지긋한 운전대를 잡았다.
오늘의 목적지를 야엘은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부둣가 특유의 비린내가 늑대인간 특유의 예민한 후각을 끝없이 두드리면서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후각이 무뎌지는 감각은 겪을 때마다 불쾌했다. 창고 소유주와의 협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고 벽을 걷어차는 프레데리카의 행동을 지켜보던 야엘은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누른다.
" 그렇게 찬다고 벽이 부서지겠어요? "
프레데리카의 태도를 지적하는 야엘의 어조는 평소와 같았으나 어딘지 맥이 풀려있는 기색이 강했는데, 생각해보면 프레데리카의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을 포함해서 같이 스케줄이 타이트해지다보니 야엘이 피곤해지는것도 당연했다. " 요며칠 운전수가 된 기분이네. 운전만 하니까 몸이 다 뻐근하다구요. ", 라고 프레데리카가 시간을 확인하고 저택에 전화해서 식사준비를 취소하는 연락까지 하고 나서야 야엘은 창고 문을 열자마자 스며드는 빛에 미간을 좁히며 낮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성이 있는 생명체끼리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게 정상아닐까하고 프레데리카는 중얼거렸다. 의견이 동일한 경우보다는 다르기 때문에 조율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제일 중노동이라고 프레데리카는 그렇게 생각하는 부류였으니까. 이윽고 맥빠진 것 같은 야엘을 보더니 프레데리카는 피식 하고 웃고는 말한다.
"힘쓰는 일보다는 낫지 않나요. 아픈건 아픈거잖아요. 저는 평화주의자라 물리적으로 싸우는 건 싫어한다구요?"
그 나쁜 성격으로 생각하자면 명백한 헛소리같이도 들렸지만 그렇게 틀리지도 않은것이 프레데리카는 자기 손을 더럽히거나 혹은 측근이 직접적으로 싸우는 일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은 있었다. 더러운 일은 최소화한다는 생각이 있는걸까. 몇일전의 일도 그렇고 그런 성향이 일의 진행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어올린 손으로 야엘은 제 이마를 푹 덮는 것처럼 감싸고는 입가를 당기며 프레데리카의 말에 대꾸할 뿐, 이어지는 말에 대해서는 딱히 이렇다할 답은 내놓지 않고 그냥 어깨를 무의미하게 으쓱일 따름이었다.
" 적당히 아픈 건 나같은 종족한테는 각성제죠. "
야엘은 어금니가 뚜렷하게 보일정도로 웃었다. 야엘의 대답처럼 늑대인간들은 그렇게 싸우는 버릇이 있었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싸움. 물러서는 쪽이 패배한다는 무식한 싸움 방식. 지금이야, 보스- 일단은 -가 측근이 전투를 하는 상황이나 본인의 손을 직접적으로 더럽히는 방식을 피하는 성향이라, 야엘은 잠자코 따르는 것이다. 그런 방식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 운전수보다는 낫다고 봐. " 야엘은 중얼거렸다.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내, 유일한 늑대인간이라는 위치는 차라리 그런 싸움에 어울린다고 야엘은 생각했다.
" 돈이야 썩을 정도로 가지고 계시니 그런 걱정은 안한답니다. 아가씨. "
프레데리키가 차에 오르고 야엘또한 익숙하게 운전석에 올라탔다. 두사람을 태운 차가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이동한다.
"그렇게 말하면 마조히스트같은데요. 제가 아버지말은 인용하는건 별로 안좋아하지만 전면무력만큼 리스크가 큰것도 없다고 말하셨으니까요.그런 부분은 확실히 존경한답니다."
돌려말하자면 프레데리카의 말은 자기 아버지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 않았냐는 반문이기도 했다. 그게더 극단적으로 드러나 자기 손에는 피 안묻히려 한다가 프레데리카의 전략이었지만, 막시밀리안의 시대에서도 폭력과 살상을 직접으로 해야하는 일은 되도록 돌아서 피하는 것을 택하지 않았던가.
"머지않아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지만요. 정신없던 그 날의 일도 아직 전초조차도 못된다고 생각해요."
주적이 누구냐고 말한다면 아직 프레데리카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야엘에게 직접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왜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프레데리카는 입장상의 문제가 있었다. 모든 것이 확립이 되는 때에서야 그것을 말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였다. 낚시로 치지자면 아직 미끼를 물고 입질이 오는 단계조차도 이르지 않았다. 적은 우리라는 바다 아래 심해속에 숨겨져 있으니까.
"곧 마을이네요. 입구에서 직진하면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들어가 안쪽에 있습니다만. 주차는 도로가에 세워야하겠네요. 주차시설이 있는정도로 북적이는 곳은 아니라서."
" 늑대인간들이 모두 마조히스트라면 부정은 못하겠네요. 내가 마조히스트라는 쪽은 아니야. ... 근데 그런 곳에서는 선대랑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불만은 없지만요. "
숨을 잔뜩 죽여 웃으며 야엘은 궁시렁거렸다. 늑대인간들이 마조히스트라니,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저조해질만큼 끔찍하다. 폭력에 익숙한 마조히스트라, 팔리지도 않을 싸구려 스너프 필름도 아니고. 궁시렁거리던 야엘은 잠깐 백미러를 통해 프레데리카를 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고정한다. 프레데리카의 이런면은 선대, 막시밀리안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이 야엘에게는 아쉽게 다가올 따름이었다. 당연히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이건 본능이라고 생각한 바를 야엘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 내가 궁금해한다고 해도 아가씨는 알려줄 생각이 없잖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야엘의 말은 프레데리카의 혼자 모든 것을 정해두고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 버릇을 지적하는 것이였다. 야엘은 핸들을 쥔 손을 바꾸며 자세를 조금 고쳐앉은 뒤 프레데리카가 하는 말을 듣는다. 중간에 차를 세워야한다는 말 덕분이다. 산림이 끝나고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보고 목적지에서 가깝고 빠져나가기 용의한 도로에 차를 멈췄을 것이다. 익숙하게 주차하고, 뒷좌석까지 다가가서 문을 열어주는 것 또한 극히 자연스러웠다.
"개개인한테 나무방망이 하나를 쥐어줘도 비용이 나가요. 싸움이라는건. 늑대들이 이상한거에요 사실."
자연회복으로 타 종족이었다면 병원비용으로 감당할 부분도 늑대인간들은 커버하고도 남는데다가 몸자체가 무기다. 그걸 늑대인간들은 거침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게 조직이 커진 이유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였다. 반면에 흡혈귀라는 종족은 회복은 될지언정 늑대처럼 몸을 무리해서 싸우다간 몸이 남아 나질않을 뿐더러 체내의 혈액을 소비해 갈증으로 이어진다.
"알려주면 거기서부터 변수가 생기니까요. 뒤늦게 알았을 때 화내는 쪽이 오히려 저한테는 편해요. 지금은 당신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군이라는게 제일 안심이거든요. 하지만 말하는 순간 그것을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 지지기반 자체에 큰 구멍이 생길 뿐더러 그순간에는 물갈이가 되는 대상이 프레데리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알아서 독이될 정보는 굳이 이야기하지않는다. 그게 프레데리카의 자기보신적인 단점이었다.
"고기굽는 냄새가 여전하네요 여긴."
후각과 청각에 민감하다면 당장에 식욕이 당길만큼 아직 가게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그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속,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의 육향이 거리까지 퍼져나왔다. 그 먹음직스러운 향기는 가게를 들어서 바로 보이는 오픈형 주방과 왁자지껄한 시골 술꾼들의 풍경과 어울러져 술역시 끌릴만하게 자극해왔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지 야엘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그냥 어깨를 한번 추켜올렸다가 내리는 것으로 모든 말을 대신하기로 한다. 자신과 같은 늑대인간들의 싸움 방식이 이상하다는 프레데리카의 말에 반박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도 있었지만,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여서 더욱 그랬다.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그러니까 흡혈귀들이 있는 조직에 있는 늑대인간이 그렇지 뭐. 새삼스레 그 차이를 떠올린다. 야엘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 선대께서 남기신 유언이 남아 있는 한, 내가 아가씨를 지지하는 건 변함이 없을거지만 -"
프레데리카의 발언에 야엘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시선을 낮춰서 프레데리카를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변화도 없는 표정이나, 여러 감정이 엉켜있는 야엘의 눈이 프레데리카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동시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 ...됐습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을 삼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버린 뒤, 야엘은 프레데리카와의 거리를 벌렸다. 너무 멀지 않게 - 그러나 너무 가깝지도 않게. 당신의 그런 면은 정말 좋아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리가 없지.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야엘은 턱을 치켜들고 냄새를 음미했다. 침샘을 자극하고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기. 거기다가 떠들썩한 소음들까지.
진짜 인간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의미로 프레데리카는 이야기했다. 불야성 아래의 수도를 중심으로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곳과는 다른 그런느낌. 다른 종족의 입장으로서의 그 표현은 이상하다 싶긴했지만 프레데리카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까전 차를 타기 전과는 다르게 꽤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점장."
카운터 쪽에 프레데리카가 다가가 슬며시 이야기하자 점장도 오랜만에 본다는 듯 이야기하고 뭘먹을거냐는 본론으로 바로이어졌다.
식욕을 돋구는 냄새와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한껏 부드러워진 프레데리카의 표정이 야엘의 신경을 건드렸다. 대꾸하는 야엘의 목소리는 그 감정을 대변하는 것마냥 친절하지 못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서, 야엘은 버릇처럼 허리에 걸쳐놓은 한손으로 치켜올라간 눈썹을 내리기 위해 문질렀을 것이다. 주변을 살피던 야엘은 눈으로만 프레데리카의 걸음을 뒤쫒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여러 소리들 가운데, 프레데리카와 점장으로 보이는 인물과의 대화를 잡는 건 야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4인분? " , 하고 야엘은 주문을 마친 뒤에 자리에 앉는 프레데리카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서 몸을 주저앉히며 물음을 던진다. 앉은 자세가 썩 좋지 못하다.
" 아가씨가 생각하는 대식가의 기준과는 다를건데, 그렇게 말한다면 사양할 이유는 없죠. 운전을 해야한다는 게 좀 아쉽네. "
그래서 기본 4인분으로 하는겁니다. 라고 프레데리카는 말했다. 말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전채음식으로 시골풍 샐러드라는 뜻의 흐리아티키 살라타의 접시가 한접시 테이블위로 서빙이 되었다. 선명한 붉은 빛의 토마토와 변색없이 깔끔한 녹빛을 띄는 오이와 피망. 그위로 올려진 흰색 고형의 사각형 치즈인 페타 치즈가 올려지고, 지중해식 요리 아니랄까봐 절인 올리브도 군데군데 놓여져있다.
딱봐도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에 페타 치즈 특유의 짭짤함과 절인 올리브의 염분, 고소함이 더해진 맛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야채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전채로 이렇게 식욕을 돋구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채소는 싫어하는 편이었던가요? 놀리는건 아니구."
그녀가 육식을 즐긴다는 사실을 프레데리카는 알고있었기에 반대로 채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꽤 궁금한 사항이었다. 어릴때도 대부분은 육식을 먹는 것을 보았으니까.
"기름진걸 먹기전엔 신선한 채소로 식욕을 돋구는게 저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샐러드를 먹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은 이런 서민들이 즐길거같은 시골풍의 식당과는 다르게 꽤 격식이 있어보였다. 다르게 보자면 장소에 안맞게 깨작깨작 먹는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기본 몸가짐이 귀한집의 자식이라는게 물씬느껴졌다.
흐응-, 하고 야엘은 담백하게 반응했고 대답하기 전에 테이블 위로 서빙된 샐러드를 보자마자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으나 옆으로 앉아있던 자세를 틀어 똑바로 앉기에 이르렀다.
" 아가씨가 그런 것처럼 나도 평범한 식사가 가능해요. 야채가 싫은 건 아닌데, 찾아먹는 쪽은 아니네. 그러니까 진짜로 놀리는거라고 해도 신경 안쓰지만요. "
그 말대로, 야엘은 거리낌없이 샐러드와 위에 올려진 올리브, 페타치즈를 찍어서 입안에 밀어넣었을 것이다. 귀한집 출신이라는 게 드러나는 프레데리카와 다르게 야엘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좋게 말하면 터프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식사자리의 예의범절이 없어보이는 자유분방한 모양새였다. 이렇듯 평범한 식사도 가능한 야엘이 온전히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건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에 들어온 직후- 그러니까 프레데리카에게 거둬진 그날 이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테지만 육식을 즐기게 된 이유는 태생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었다.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을 누르기 위한 목적이라는 뜻이다.
" 자주 왔나봐요, 여기. "
그러나 역시라면 역시였다. 야엘은 샐러드를 몇번 집어먹었을 뿐, 금세 손을 떼며 " 친해보이던데. " 하고 점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고기자체를 선호한다는 그건 어쩔수없는 종족적인 본능인가봐요. 마찬가지로 흡혈귀라는 종족에게 있어서 피는 물에 가까운 음료니까요. 일반적인 식사는 똑같이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하죠. 인간기준으로 보자면 필수영양소를 챙기는데 더불어서 피를 더 챙기는 느낌이려나. "
그 피 자체도 맛의 유무가 다르기 때문에 노스페라투 파밀리아는 양질의 피를 위해 설립된 조직이기도 했다. 인간의 피가 가장 목넘김이나 맛 모두 만족하고 그외에는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맛이 없다고 느낀다. 개중에는 아예 마셨다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고.
"무슨 일했는지 모르죠? 밤에는 해수구제를 다니고, 낮에는 사격경기에 나가고는 했어요. 수면시간은 오히려 지금이 더많이 챙기고있네요. 그땐 그 나름대로 지긋지긋한 부분이 있었죠. 아무튼 밤의 일을 끝내고 나면 이런 곳에 자주들렀어요."
둘다 총기를 사용하는 부류의 일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어릴때부터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사격을 배웠고 동시에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을때 자기를 호신하기 위한 용도로서도 사격을 배웠다. 조직에서의 총의 사용은 사람을 해치는 용도에 가까웠지만, 프레데리카는 그 나름대로 총을 해치지않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언제 길게 이야기 할일은 있을거에요. 오늘은 아니고."
곧바로 메인 요리가 나왔다. 그릴에서 올리브유를 발라가며 구운 꼬치구이 돼지고기는 밝은 색상에 한번 맛을 보자면 촉촉한 식감과 함께 육즙이 나오며 식욕을 당기기 위한 애피타이저가 자극한 혀의 미각을 만족시킬 만한 요리였다. 사이드로는 구운 피망이나 양파, 감자튀김. 그리고 요구르트 소스인 자지키 소스는 찍어먹는다면 수블라키 특유의 기름진 맛을 해소할만큼 상큼하고 상쾌한 맛을 자랑했다.
" 종족의 본능이기도 하고, 늑대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누르기 위함도 있죠.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
노스페라투 파밀리아가 인간의 양질의 피를 얻기 위해 설립된 것쯤은 야엘도 알고 있다. 늑대인간이나 흡혈귀나 인간을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늑대인간들에 비하면 흡혈귀, 그러니까 노스페라투 파밀리아는 양반이다. 야엘은 가늘게 눈을 뜨고 프레데리카의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버릇만큼 저렇게 혼자 문득 주제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놓는 버릇은 달라지지도 않지. 야엘은 한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들었다. 프레데리카의 초상 능력에 총의 소지 및 사용방법을 익히는 것은 필수 불가결인 건 알고 있다. 늑대인간인 야엘은 늑대인간이라는 종족적인 특성을 사용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다르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프레데리카의 행동에 야엘은 잠시 말을 잃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 내가 했던 말이 있으니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할텐데 오늘처럼 갑자기 이야기를 끊어버릴 거면 아예 하지 마요. 내가 말 안했던가? 난 아가씨의 그런 점이 진짜 싫어. "
필터링을 걸지 않고 신랄하게 대꾸하고 야엘은 담백하게 입가를 당겨 미소를 지어보인다. 알았죠? 하고 덧붙히는 말에 은근한 짜증이 배어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메인메뉴가 나오자 그 짜증은 금세 사그라들었을테지만. 야엘이 꼬치구이를 집어 입안에 밀어넣는다. 덥석덥석 몇번 씹지도 않고 먹어치우는 걸 보면 어지간히 공복이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싫다고 하는게 낫습니다. 그거. 그래서 안하는겁니다. 한꺼번에 말해봤자 미쳤다는 소리 듣기싫거든요."
얼마전 저택 사용인 소동이 있었던 날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면 프레데리카 입장에서 한꺼번에 이야기 할 이유가 전혀없었다. 비인간의 영역에서는 불쾌하고 미친 소리일 뿐이었으니까. 그만큼 그런 이야기들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에 털어놔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뿐더러, 동시에 개미눈물만한 신뢰조차 잃어버릴꺼라고 프레데리카는 생각했다.
"하루 이틀인가요. 잘못먹은게 아니라 이게 정상인겁니다. 프레데리카 로젠크로이츠라는 여자는 말이죠."
그녀답지 않게 꼬챙이에 꽂힌 고기하 나를 소스에 푹찍더니 사냥감을 물어뜯는거 마냥 베어물어 맛을 음미했다. 나름대로 고충을 거치고 말하고싶은게 있었던 모양이다. 격식을 잊어먹은 것을 본다면.
"제가 그리 다른 선택지는 없냐고 물었지만, 당신이 아버지를 따라간 이유는 꼭 알고싶거든요."
입가에 묻은 소스를 물수건으로 닦은 프레데리카는 캐캐묵었던 이야기의 매듭을 하나 풀어보고싶은 모양이다.
" 난 한꺼번에 말한 뒤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말할 때마다 미쳤다고 해야하는 나를 배려해줘. 아가씨. "
물론, 저택에서 있었던 아주 사소한- 지극히 야엘의 입장으로 - 문제점을 떠올려보면 프레데리카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였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상황이 다르지 않나. 야엘은 프레데리카가 털어놓을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던 과거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꼬챙이 하나를 집어들어서 소스도 없이 덥석 밀어넣고 씹어삼키던 야엘의 눈이 가늘어진다.
" 내 눈에는 매번 색다르거든요. ", 라고 대답하며 야엘은 비어있는 제 입에 고기 하나를 더 밀어넣고 씹었다. 덥석덥석 집어먹는 모양새는 먹이를 물어뜯는 짐승이다. 입안에 있는 고기를 씹어삼키고 말을 잇댔다.
" 프레데리카 로젠크로이츠라는 흡혈귀가 말이죠. "
예민한 후각을 충족시키는 냄새와 미각을 충족시키는 맛, 공복을 채우는 음식이 충족되자 야엘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흡족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프레데리카에게서, 들려온 말만 아니면 그 기분은 식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을 터였다. 눈동자를 번뜩이며 야엘은 깨끗해진 꼬치를 테이블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려다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