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인간들이 모두 마조히스트라면 부정은 못하겠네요. 내가 마조히스트라는 쪽은 아니야. ... 근데 그런 곳에서는 선대랑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불만은 없지만요. "
숨을 잔뜩 죽여 웃으며 야엘은 궁시렁거렸다. 늑대인간들이 마조히스트라니,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저조해질만큼 끔찍하다. 폭력에 익숙한 마조히스트라, 팔리지도 않을 싸구려 스너프 필름도 아니고. 궁시렁거리던 야엘은 잠깐 백미러를 통해 프레데리카를 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고정한다. 프레데리카의 이런면은 선대, 막시밀리안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이 야엘에게는 아쉽게 다가올 따름이었다. 당연히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이건 본능이라고 생각한 바를 야엘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 내가 궁금해한다고 해도 아가씨는 알려줄 생각이 없잖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야엘의 말은 프레데리카의 혼자 모든 것을 정해두고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 버릇을 지적하는 것이였다. 야엘은 핸들을 쥔 손을 바꾸며 자세를 조금 고쳐앉은 뒤 프레데리카가 하는 말을 듣는다. 중간에 차를 세워야한다는 말 덕분이다. 산림이 끝나고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보고 목적지에서 가깝고 빠져나가기 용의한 도로에 차를 멈췄을 것이다. 익숙하게 주차하고, 뒷좌석까지 다가가서 문을 열어주는 것 또한 극히 자연스러웠다.
"개개인한테 나무방망이 하나를 쥐어줘도 비용이 나가요. 싸움이라는건. 늑대들이 이상한거에요 사실."
자연회복으로 타 종족이었다면 병원비용으로 감당할 부분도 늑대인간들은 커버하고도 남는데다가 몸자체가 무기다. 그걸 늑대인간들은 거침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게 조직이 커진 이유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였다. 반면에 흡혈귀라는 종족은 회복은 될지언정 늑대처럼 몸을 무리해서 싸우다간 몸이 남아 나질않을 뿐더러 체내의 혈액을 소비해 갈증으로 이어진다.
"알려주면 거기서부터 변수가 생기니까요. 뒤늦게 알았을 때 화내는 쪽이 오히려 저한테는 편해요. 지금은 당신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군이라는게 제일 안심이거든요. 하지만 말하는 순간 그것을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 지지기반 자체에 큰 구멍이 생길 뿐더러 그순간에는 물갈이가 되는 대상이 프레데리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알아서 독이될 정보는 굳이 이야기하지않는다. 그게 프레데리카의 자기보신적인 단점이었다.
"고기굽는 냄새가 여전하네요 여긴."
후각과 청각에 민감하다면 당장에 식욕이 당길만큼 아직 가게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그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속,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의 육향이 거리까지 퍼져나왔다. 그 먹음직스러운 향기는 가게를 들어서 바로 보이는 오픈형 주방과 왁자지껄한 시골 술꾼들의 풍경과 어울러져 술역시 끌릴만하게 자극해왔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지 야엘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그냥 어깨를 한번 추켜올렸다가 내리는 것으로 모든 말을 대신하기로 한다. 자신과 같은 늑대인간들의 싸움 방식이 이상하다는 프레데리카의 말에 반박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도 있었지만,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여서 더욱 그랬다.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그러니까 흡혈귀들이 있는 조직에 있는 늑대인간이 그렇지 뭐. 새삼스레 그 차이를 떠올린다. 야엘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 선대께서 남기신 유언이 남아 있는 한, 내가 아가씨를 지지하는 건 변함이 없을거지만 -"
프레데리카의 발언에 야엘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시선을 낮춰서 프레데리카를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변화도 없는 표정이나, 여러 감정이 엉켜있는 야엘의 눈이 프레데리카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동시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 ...됐습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을 삼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버린 뒤, 야엘은 프레데리카와의 거리를 벌렸다. 너무 멀지 않게 - 그러나 너무 가깝지도 않게. 당신의 그런 면은 정말 좋아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리가 없지.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야엘은 턱을 치켜들고 냄새를 음미했다. 침샘을 자극하고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기. 거기다가 떠들썩한 소음들까지.
진짜 인간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의미로 프레데리카는 이야기했다. 불야성 아래의 수도를 중심으로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곳과는 다른 그런느낌. 다른 종족의 입장으로서의 그 표현은 이상하다 싶긴했지만 프레데리카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까전 차를 타기 전과는 다르게 꽤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점장."
카운터 쪽에 프레데리카가 다가가 슬며시 이야기하자 점장도 오랜만에 본다는 듯 이야기하고 뭘먹을거냐는 본론으로 바로이어졌다.
식욕을 돋구는 냄새와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한껏 부드러워진 프레데리카의 표정이 야엘의 신경을 건드렸다. 대꾸하는 야엘의 목소리는 그 감정을 대변하는 것마냥 친절하지 못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서, 야엘은 버릇처럼 허리에 걸쳐놓은 한손으로 치켜올라간 눈썹을 내리기 위해 문질렀을 것이다. 주변을 살피던 야엘은 눈으로만 프레데리카의 걸음을 뒤쫒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여러 소리들 가운데, 프레데리카와 점장으로 보이는 인물과의 대화를 잡는 건 야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4인분? " , 하고 야엘은 주문을 마친 뒤에 자리에 앉는 프레데리카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서 몸을 주저앉히며 물음을 던진다. 앉은 자세가 썩 좋지 못하다.
" 아가씨가 생각하는 대식가의 기준과는 다를건데, 그렇게 말한다면 사양할 이유는 없죠. 운전을 해야한다는 게 좀 아쉽네. "
그래서 기본 4인분으로 하는겁니다. 라고 프레데리카는 말했다. 말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전채음식으로 시골풍 샐러드라는 뜻의 흐리아티키 살라타의 접시가 한접시 테이블위로 서빙이 되었다. 선명한 붉은 빛의 토마토와 변색없이 깔끔한 녹빛을 띄는 오이와 피망. 그위로 올려진 흰색 고형의 사각형 치즈인 페타 치즈가 올려지고, 지중해식 요리 아니랄까봐 절인 올리브도 군데군데 놓여져있다.
딱봐도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에 페타 치즈 특유의 짭짤함과 절인 올리브의 염분, 고소함이 더해진 맛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야채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전채로 이렇게 식욕을 돋구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채소는 싫어하는 편이었던가요? 놀리는건 아니구."
그녀가 육식을 즐긴다는 사실을 프레데리카는 알고있었기에 반대로 채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꽤 궁금한 사항이었다. 어릴때도 대부분은 육식을 먹는 것을 보았으니까.
"기름진걸 먹기전엔 신선한 채소로 식욕을 돋구는게 저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샐러드를 먹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은 이런 서민들이 즐길거같은 시골풍의 식당과는 다르게 꽤 격식이 있어보였다. 다르게 보자면 장소에 안맞게 깨작깨작 먹는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기본 몸가짐이 귀한집의 자식이라는게 물씬느껴졌다.
흐응-, 하고 야엘은 담백하게 반응했고 대답하기 전에 테이블 위로 서빙된 샐러드를 보자마자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으나 옆으로 앉아있던 자세를 틀어 똑바로 앉기에 이르렀다.
" 아가씨가 그런 것처럼 나도 평범한 식사가 가능해요. 야채가 싫은 건 아닌데, 찾아먹는 쪽은 아니네. 그러니까 진짜로 놀리는거라고 해도 신경 안쓰지만요. "
그 말대로, 야엘은 거리낌없이 샐러드와 위에 올려진 올리브, 페타치즈를 찍어서 입안에 밀어넣었을 것이다. 귀한집 출신이라는 게 드러나는 프레데리카와 다르게 야엘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좋게 말하면 터프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식사자리의 예의범절이 없어보이는 자유분방한 모양새였다. 이렇듯 평범한 식사도 가능한 야엘이 온전히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건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에 들어온 직후- 그러니까 프레데리카에게 거둬진 그날 이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테지만 육식을 즐기게 된 이유는 태생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었다.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을 누르기 위한 목적이라는 뜻이다.
" 자주 왔나봐요, 여기. "
그러나 역시라면 역시였다. 야엘은 샐러드를 몇번 집어먹었을 뿐, 금세 손을 떼며 " 친해보이던데. " 하고 점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고기자체를 선호한다는 그건 어쩔수없는 종족적인 본능인가봐요. 마찬가지로 흡혈귀라는 종족에게 있어서 피는 물에 가까운 음료니까요. 일반적인 식사는 똑같이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하죠. 인간기준으로 보자면 필수영양소를 챙기는데 더불어서 피를 더 챙기는 느낌이려나. "
그 피 자체도 맛의 유무가 다르기 때문에 노스페라투 파밀리아는 양질의 피를 위해 설립된 조직이기도 했다. 인간의 피가 가장 목넘김이나 맛 모두 만족하고 그외에는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맛이 없다고 느낀다. 개중에는 아예 마셨다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고.
"무슨 일했는지 모르죠? 밤에는 해수구제를 다니고, 낮에는 사격경기에 나가고는 했어요. 수면시간은 오히려 지금이 더많이 챙기고있네요. 그땐 그 나름대로 지긋지긋한 부분이 있었죠. 아무튼 밤의 일을 끝내고 나면 이런 곳에 자주들렀어요."
둘다 총기를 사용하는 부류의 일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어릴때부터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사격을 배웠고 동시에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을때 자기를 호신하기 위한 용도로서도 사격을 배웠다. 조직에서의 총의 사용은 사람을 해치는 용도에 가까웠지만, 프레데리카는 그 나름대로 총을 해치지않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언제 길게 이야기 할일은 있을거에요. 오늘은 아니고."
곧바로 메인 요리가 나왔다. 그릴에서 올리브유를 발라가며 구운 꼬치구이 돼지고기는 밝은 색상에 한번 맛을 보자면 촉촉한 식감과 함께 육즙이 나오며 식욕을 당기기 위한 애피타이저가 자극한 혀의 미각을 만족시킬 만한 요리였다. 사이드로는 구운 피망이나 양파, 감자튀김. 그리고 요구르트 소스인 자지키 소스는 찍어먹는다면 수블라키 특유의 기름진 맛을 해소할만큼 상큼하고 상쾌한 맛을 자랑했다.
" 종족의 본능이기도 하고, 늑대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누르기 위함도 있죠.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
노스페라투 파밀리아가 인간의 양질의 피를 얻기 위해 설립된 것쯤은 야엘도 알고 있다. 늑대인간이나 흡혈귀나 인간을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늑대인간들에 비하면 흡혈귀, 그러니까 노스페라투 파밀리아는 양반이다. 야엘은 가늘게 눈을 뜨고 프레데리카의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버릇만큼 저렇게 혼자 문득 주제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놓는 버릇은 달라지지도 않지. 야엘은 한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들었다. 프레데리카의 초상 능력에 총의 소지 및 사용방법을 익히는 것은 필수 불가결인 건 알고 있다. 늑대인간인 야엘은 늑대인간이라는 종족적인 특성을 사용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다르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프레데리카의 행동에 야엘은 잠시 말을 잃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 내가 했던 말이 있으니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할텐데 오늘처럼 갑자기 이야기를 끊어버릴 거면 아예 하지 마요. 내가 말 안했던가? 난 아가씨의 그런 점이 진짜 싫어. "
필터링을 걸지 않고 신랄하게 대꾸하고 야엘은 담백하게 입가를 당겨 미소를 지어보인다. 알았죠? 하고 덧붙히는 말에 은근한 짜증이 배어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메인메뉴가 나오자 그 짜증은 금세 사그라들었을테지만. 야엘이 꼬치구이를 집어 입안에 밀어넣는다. 덥석덥석 몇번 씹지도 않고 먹어치우는 걸 보면 어지간히 공복이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싫다고 하는게 낫습니다. 그거. 그래서 안하는겁니다. 한꺼번에 말해봤자 미쳤다는 소리 듣기싫거든요."
얼마전 저택 사용인 소동이 있었던 날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면 프레데리카 입장에서 한꺼번에 이야기 할 이유가 전혀없었다. 비인간의 영역에서는 불쾌하고 미친 소리일 뿐이었으니까. 그만큼 그런 이야기들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에 털어놔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뿐더러, 동시에 개미눈물만한 신뢰조차 잃어버릴꺼라고 프레데리카는 생각했다.
"하루 이틀인가요. 잘못먹은게 아니라 이게 정상인겁니다. 프레데리카 로젠크로이츠라는 여자는 말이죠."
그녀답지 않게 꼬챙이에 꽂힌 고기하 나를 소스에 푹찍더니 사냥감을 물어뜯는거 마냥 베어물어 맛을 음미했다. 나름대로 고충을 거치고 말하고싶은게 있었던 모양이다. 격식을 잊어먹은 것을 본다면.
"제가 그리 다른 선택지는 없냐고 물었지만, 당신이 아버지를 따라간 이유는 꼭 알고싶거든요."
입가에 묻은 소스를 물수건으로 닦은 프레데리카는 캐캐묵었던 이야기의 매듭을 하나 풀어보고싶은 모양이다.
" 난 한꺼번에 말한 뒤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말할 때마다 미쳤다고 해야하는 나를 배려해줘. 아가씨. "
물론, 저택에서 있었던 아주 사소한- 지극히 야엘의 입장으로 - 문제점을 떠올려보면 프레데리카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였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상황이 다르지 않나. 야엘은 프레데리카가 털어놓을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던 과거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꼬챙이 하나를 집어들어서 소스도 없이 덥석 밀어넣고 씹어삼키던 야엘의 눈이 가늘어진다.
" 내 눈에는 매번 색다르거든요. ", 라고 대답하며 야엘은 비어있는 제 입에 고기 하나를 더 밀어넣고 씹었다. 덥석덥석 집어먹는 모양새는 먹이를 물어뜯는 짐승이다. 입안에 있는 고기를 씹어삼키고 말을 잇댔다.
" 프레데리카 로젠크로이츠라는 흡혈귀가 말이죠. "
예민한 후각을 충족시키는 냄새와 미각을 충족시키는 맛, 공복을 채우는 음식이 충족되자 야엘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흡족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프레데리카에게서, 들려온 말만 아니면 그 기분은 식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을 터였다. 눈동자를 번뜩이며 야엘은 깨끗해진 꼬치를 테이블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려다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야엘이 프레데리카의 말을 듣고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끼는 서술이 나올 것 같은데 괜찮은가? 그리고 막시밀리안을 따른 이유가 야엘의 집단 본능을 충족시켜주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줬기 때문이라는 이유여도 괜찮은가? 마지막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랬다는 말에 특징을 숨기지 못하는 늑대인간이 뭘할 수 있겠냐는 식의 반박 혹은 체념같은 뉘앙스의 답변도 괜찮은가?
이렇게 세가지만 확인부탁해 답레스 달아주면 수정할 건 수정해서 답레 올리도록 할게! 비가 너무 와서 빗소리에 잠이 깬김에 쓴거라 이른 오전에 올린 거 걱정하지 말구.
" 지나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안들어먹을테니까 관두죠. 그 지나친 조심성 덕분에 내가 침입자를 쫒아가기 손쉬웠으니까. "
야엘은 자신을 설득할 방법이 있다는 프레데리카의 말에 잠시 할말을 고르는 것처럼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것이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캐묻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야엘은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으나 결국 그대로 다물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캐물어본다고 해서, 프레데리카가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거짓말? "
나이프가 위협적으로 꽂히는 모습, 그리고 프레데리카의 말에 야엘은 내리고 있던 눈을 들어서 프레데리카를 응시했다. 서운한 기색이 담긴 차가운 목소리에, 야엘은 헛웃음을 삼키며 그 말을 따라 내뱉었다. " 이제와서? ", 짓씹듯이 따라서 쏟아낸 한마디에 으르렁거림이 덧씌워진다. 그것은 명백한 위협이자 불만의 표시였다. 5년, 5년이었다. 이제와서 주인이라 하는 것을 야엘이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존대가 사라진 프레데리카의 어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프레데리카의 이어진 말은 야엘이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 나는-.. "
불쑥 반사적으로 반박하려던 말문이 틀어막혔다. 당신이 돌아왔을 때, 잊고 있던 상처를 깨달았고 그 어떤 변명도 사과도 없는 당신의 모습에 곪아버린 상처가 아렸다. 메울 수 없는 갈등의 늪은 당신이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시작되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과거를 짚어보면 잊고 있었던 말이 떠올라서 프레데리카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야엘의 시선이 갈곳을 잃어버린다. 왜 그 한마디를 잊어버리고 있었던걸까? 말문이 막히면서 동시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일단 야엘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것이다.
" 아가씨, 나는.. "
숨이 막힌 탓인지 목소리가 쉬었다. 당신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당신을 버렸다. 반박하기 힘든 진실이다.
" 맞아요. 내게 있어야할 곳을 줬어요. 집단에 소속되고, 그 집단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줬지. "
맥이 풀린 목소리로 늑대가 흡혈귀의 말에 긍정의 말을 내놓는다. 낮밤 가리지 않고 언제나 빛을 반사하던 그 호박석과 닮은 눈동자는 이번만큼은 탁하게 초점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프레데리카를 바라보고 있는 야엘의 표정은 형용하기 힘든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금니도 숨기지 못하는 늑대가 여기를 떠난다고?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아가씨. "
언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나. 으르렁거림을 숨기기 위해 야엘은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대고 그대로 짓눌렀다.
말문이 잠시막혔던 야엘에게 프레데리카는 의미심장한 말을 이야기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장에 치사한 방법으로는 프레데리카는 하지않는다고 했지만, 촉박한 것을 참고 있었다는 듯 이번 자리를 만든 걸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도 철저하게 계획된 것일까. 혹은 필요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결정짓고 말하는 것일까.
"집단?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웃기지마. 누가 강요했어? 당신은 당신이 손에 피를 묻히고 늑대처럼 살아가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겨."
프레데리카는 쯧하고 혀를 차고는 파도가 몰아치듯 야엘을 몰아세웠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항상 성격나쁘게 너스레를 떨고는 했지만, 불만이 있어도 그걸 꾹누르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앙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끝을 이번에는 맺고자 한다.
"그럼 나는 낮의 저주에 타들어가며, 더럽게도 맛없는 짐승의 피를 먹으며 왜 살았던 건데. 그정도도 극복못하고 늑대라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내가 버리고 간것만 얽메여 있지. 누가 시켰어? 늑대는 그래야한다고. 몸에 맞지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못살아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확실하게 이야기 해줄까?"
비는 이윽고 폭우가 된다. 그리고 그 폭우의 소리 속에서 후벼파듯 프레데리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막시밀리안에게 길들여진 주제에 늑대를 자처할 자격조차 없어. 당신은 그걸 선택한거야. 흡혈귀에게 길들여지는 사냥개로 말이지. 난 당신이 원하는 선택지가 그거라고 생각했다면 말릴 이유도 없지. 다시 말하지만 선택은 당신이 한거야. 그리고 내 제안은 가차없이 버렸지."
만약 제가 이곳을 떠난다면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어요? 그 질문의 대답은 방금전 야엘의 대답과도 같았다. 어금니도 숨기지 못하는 늑대가 여기를 떠날수는 없다.
"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종족이든 환경이든 관념에 얽메여서 선택하지 못하는거야? 실패할 수도 있는데 도전하지 않는거야 말로 제일 멍청한 짓이라고. 체념하면 누가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줄꺼같아?"
나흘만에 왔네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할게. 미안해. 나흘간 답레가 써지지 않아서 초조했고 어떻게든 써보려고 해봤는데 전혀 써지지 않더라. 아무래도 글에 대한 슬럼프가 심하게 온 것 같아. 게다가 현생까지 심하게 힘들어지는 바람에 여기까지만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할게. 그동안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