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일궈낸건 대부분 누군가에게 빼앗아 일궈내는거니까. 저는 신랄하게 비판은 하더라도, 정당화하고 인정하는게 힘들어요. 그렇게까지 해버리면 제가 저로서 뭔가 부서질거 같으니까."
선대의 반이라도 따라간다는건 그래서 프레데리카에게 있어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길이도 했다. 분명 자신은 이 자리에 서있지만, 이 자리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레일위에 있다. 암흑가에선 제일 이질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녀는 이 일 모두를 해야만 하면서도 싫어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태도가 불손한 것이 그런 혐오에서 온다는 것을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안해요. 보자마자 이건 처리하는게 맞을거같아서. 아 어떻게 생겼는지를 급해서 말을 안했네요. 걸음걸이가 조금 절고 있어요. 문 잠근걸 억지로 피킹했나본데. 키는 사용인 평균보다 작고 용모는 흑발에 땋은머리의 여성 사용인. "
프레데리카의 개인실은 사용인들에게도 따로 요구가 없는 한 출입을 금해놨었기에, 혹시나 허가 없이 침입한다면 그 대비로 걸어놓은 부비트랩도 정상적으로 작동한 듯 했다. 다리에 바늘이 찔렸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문단속을 할 필요가 있냐고 과거에 물어봤다면 프레데리카는 그 역시 아무도 믿지 못하는데 그정도는 당연하지 않냐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호기심에라도 시도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루라는 의미도 담고있었다.
농담하는 분위기는 아니였다. 비꼬는 말마저 지금은 냉정하게 얼어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프레데리카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그건 프레데리카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의 안좋은 점을 증폭한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지금이 프레데리카에게 있어서는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불쾌한 경우라고 누구라도 알법한 상황이었다.
야엘은 프레데리카의 말에 고개를 들면서 숨죽인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프레데리카의 말은 암흑가에 있는 이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다못해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냐는 비난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이상적인 말이지. " 그렇기 때문에 아가씨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있는 거에요. " 대답을 하면서도 야엘의 웃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장대소 하지 않는 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고, 프레데리카의 개인실을 침입했다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 얼마 전에 들어온 사용인인가요? 생김새가 익숙하지 않은데… "
땋은 머리에 흑발. 다리를 절고 있음. 야엘의 말투는 꼭 자신없다는 말투처럼 들렸을 수도 있지만 자신없는 게 아니라 프레데리카의 정보를 기반으로 금방 사라지는 냄새를 추적하기 위한 행동에 기반하여 말수가 적어진 것이다.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은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니 추적이 용이하다. 부상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부상에서 나온 피냄새를 늑대의 예민한 후각이 따라잡지 못할리는 없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빛나는 야엘의 호안석에 가까운 눈동자가 가늘게 떠진 채 슬쩍 프레데리카를 응시했지만 곧 되돌아갔다. 프레데리카의 냉정함은 꼭 선대와 같았다. 아니 몇배는 더 강할지도 모른다. 저런 면을 평소에도 보여준다면 프레데리카의 자리가 위태로울 리도 없을텐데.
" 대답할 수 있을 정도면 되죠? "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야엘은 프레데리카의 옆에서 사라져 있었다. 상처입은 사냥감을 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엘은 현관이 아닌 저택의 외벽을 뛰어올라서 열린 창문으로 소리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고 복도에 착지하자마자 사용인을 쫒았다.
#혹시나 야엘이 사용인과 마주쳤을 때 전투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용인을 끌고 나오는 서술은 생략했어. 프레데리카주가 원하면 야엘이 끌고 나오는 서술까지 써도 ok
"누리기 싫어서 한번 저는 도망쳤었죠. 지금도 못하진 않아요. 안할뿐이지. 아 기분나쁘게는 생각하지마세요. 도망쳤을때도 제 능력으로 돈문제는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니까."
무슨수로 프레데리카가 그때 절연을하고 5년간이나 버틸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야엘에게 막시밀리안은 '알 바 아니다. 내 손을 떠난 것엔 관심을 두지않는다' 라고 했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순전히 본인의 능력으로 살아갔다는 의미리라. 다른 오해를 불러오긴 싫었는지 무엇을 위해 말했는지를 강조한다.
"이제 5개월이었던가. 이름은 제인 도일씨였네요. 생각해보니 신원미상의 여성을 뜻하는 제인 도랑 비슷한가? 서류는 서류로만 봐서. 물론 인적사항에 문제가 있었다면 뽑을 일은 없었겠죠?"
사람의 이름은 둘째치고 외모만 보고 몇 개월째 근무중인지까지 그녀는 일일이 기억했기에, 인적사항을 바로 불어냈다. 그게 침입자를 찾는데 단서로서는 쓸모없는 이야기였기에 곧바로 들어온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네. 쓸데없이 손이나 발을 놀리면 마음대로 하시길."
그와 동시에 야엘이 사라지자마자 프레데리카는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내 손을 더럽혀서라도 살려서는 못보내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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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엘이 외벽을 타고 올라가 창문으로 나온 복도에는 충분히 그 후각으로 파악할만한 혈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따라가본다면, 복도어딘가에는 곧바로 닦지못한 핏방울 몇개가 대리석 바닥에 시각으로 찾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뒤처리가 깔끔하지는 못하지만 몇몇군데는 손을 쓰기라도 한듯 진로가 지워져서 그 부분은 역시 후각으로 이어서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후각을 찾아 도달하는 곳이 있다면, 복도끝의 코너를 도는 지점일것이다. 그 코너에서 얼핏 보이기 시작한 사람의 실루엣, 프레데리카가 말한대로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수상한 걸음걸이. 명백한 단서가 하나가 더있다면 사용인의 발 주위로 흥건하게 젖어있는 붉은색의 스타킹이 이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있겠나 싶을 정도였다.
"..."
곧바로 사용인 제인 도일은 야엘의 인기척을 눈치챘다. 일반적인 감각은 아니였다. 어딘가 훈련을 받았기에 반사적으로 돌아본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치고는 일처리가 서툴렀다. 프레데리카를 단순히 조직을 넘겨받은 바지사장이라 폄하하고 있었던걸까. 아니면 예의주시는 해도 방안을 그정도까지 외부인을 경계한다는 것을 모르고 방심했던 것일까.
"무슨 볼일이십니까? 야엘님."
사용인은 도망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발목에서 나는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견디며 평소와 같이 야엘을 응대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걸 지도 모르겠다.
프레데리카의 말에 야엘은 뭐라 대답했을까. 돈문제가 없었다면 다른 문제는 있었냐고 물어왔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나처럼 신랄하게 인성 나간 어조로 말꼬리를 잡았을까. 어느쪽이든 지금은 야엘에게서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날에 들었던 선대의 말이 떠올랐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절연하고 나가버린 자식에게 부모가 선택할 말을 아니었으나 그 말을 들은 당사자가 야엘이었기에 의문도 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야엘은 자신의 질문에 돌아오는 프레데리카의 대답을 줍고, 정보를 완성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속기간과 이름을 들으니 그제서야 정보와 이미지가 매치됐고 " 아- 그사람인가. " 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프레데리카에게서 긍정의 답이 나오자마자. 야엘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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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진입하자마자 진하게 느껴지는 혈향에 야엘은 뺨을 실룩거렸는데 그 행동이 꼭 기다란 주둥이를 허공으로 치켜들고 냄새를 맡는 짐승과 흡사하다. 혈향이 남아 있는 방향으로 야엘은 걸음을 옮겼고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손끝으로 훔쳤다. 점성을 띄고 있는 혈액을 몇번 문지르다가 벽에 길게 자국을 남겨가며 야엘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여러마리가 둘러싸는 훈련된 사냥개와 다르게 그 걸음은 분명, 사냥감의 퇴로를 차단하여 구석으로 몰아가는 맹수였다. 여기를 돌면-, 복도의 끄트머리 지점에 다다른 야엘의 동공이 좁혀졌다.
" 아가씨가 부르시는데. "
사용인, 제인 도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가 피에 젖어 있는 스타킹을 향해 곧바로 떨어진다. 야엘의 목소리는 비즈니스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느낌을 줬을지도 모른다.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에 소속되어 있는 사용인 제인 도일이였다면 썩 상냥한 태도를 보였겠지만 야엘의 머리는 이미 제인 도일을 관계자에서 배제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돌아보는 사용인에게 말하자마자 야엘의 손아귀가 뻗어졌다.
"그렇습니까. 화원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예초기가 고장이나서 부품이 날아가는 바람에 찔렸습니다. 응급처치를 위해 저택내부로 잠시 들렀습니다."
제인은 상대가 스타킹, 특히 혈액이 고여 젖은 부분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는, 애둘러 그런식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이 사용인은 정원일을 하는 것은 맞았다. 이 상황에서 있어서는 위화감은 적은 말을 골라한 느낌이었다. 그게 상대가 이미 의심을 하고 온 시점에서는 의미없다는 것을 본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시간 벌기에 가까운 말이었다.
"...라고 변명하기엔 다 알고오셨습니까."
야엘의 손아귀가 일반적인 눈으로는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로 제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제인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아래로 내려 그 손아귀를 피했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힘은 역시 늑대인간의 힘일까 찰나의 스침만으로 얼굴에 찰과상이 일어나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부르신다면 가겠습니다. 그런데 곱게는 안데려다 주실거 같습니다만."
곧바로 자세를 원래대로 돌린 제인은 펌프식 샷건을 사용인의 복장인 메이드복의 스커트 아래서 꺼내 바로 야엘을 향해 격발했다. 산탄특유의 탄환이 이리저리 산개하며 야엘을 향해 날아갔다.
자세를 내려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제인 도일의 행동에 야엘은 휘둘렀던 손을 바로 끌어당기며 방향을 바꾼다. 상체가 상대의 왼편으로 파고들어갔고 당겨낸 손이 제인 도일의 부상입은 다리로 똑바로 떨어졌다. 우드득! 속도를 늦추지도 않은 상태로 끌어당겼기 때문에 어깨뼈가 틀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으나 야엘은 늑대인간이었다. 뼈가 틀어지는 소리와 그에 비례하는 통증을 느껴도 움츠러든다던가, 멈칫하는 기색은 보여지지 않았다.
" 냄새가 그쪽에서 이어지지 않았거든. 이걸 내가 굳이 설명해줄 필요없지만. "
뒤늦게 야엘은 대답했고 그와 동시에 격발된 펌프 샷건의 산탄이 야엘의 정면을 덮쳤을 것이다. 다리를 노려 공격을 시도한 탓에 상체가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간 야엘은 막을 새도 없이 정면에서 쏘아지는 산탄을 고스란히 뒤짚어쓴다. 격발시 나는 소음과 화약 냄새가 천천히 피냄새를 덮어서 지워지게 만드는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 제인 도일이 들고 있을 펌프식 샷건의 총구를 낚아채듯 비틀어쥐는 손이 순식간에 나타난다. 총구가 붙잡히면 펌프식 샷건 총구가 녹아버린 쇠붙이마냥 산산히 부서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걱정마. 팔다리가 떨어져도 숨은 쉬어. "
먼저 드러난 낮밤을 가리지 않고 번뜩이는 그 호안석과 비슷한 눈이 가늘었다.그 뒤를 이어, 야엘의 목소리가 소리를 긁어끌어올리는 소리에 섞인다. 늑대인간의 회복력은 야엘의 상처입은 몸뚱이를 순식간에 회복시켰고 그와 동시에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도는 속도를 증가시킨다. 은탄이 아닌 상처는 늑대인간이 사냥하고자 하는 본능을 늦추지 못하기 때문에 늑대인간의 싸움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칠고 난폭한 방식이었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어금니를 평소보다 더 억세게 드러내고 야엘은 제인의 머리 옆쪽을 주먹을 쥐지도 않고 그대로 후려치듯 팔을 휘둘렀을 것이다.
한번으로 끝나지않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한번더 야엘이 왼쪽으로 파고들자 튀어오르듯 뒷걸음질을 박차 멀리떨어짐으로서 제인은 움켜쥐는 것 자체는 회피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애써 막아놓은 출혈이 더 심해졌다. 이쪽도 몸을 신경쓰지 않고 뒤로 무리한 기동을 시동했기 때문이다.
"진즉에 회유를 하던가. 혹은 죽였거나. 아 죽이는 건 무리였을지도.."
산탄 자체는 완전히 야엘을 명중했지만, 은탄이 아닌 것은 그녀 말대로 죽이는게 무리였다고 하는게 맞았다. 은탄이 있었더라도 회유를 하는쪽이 가능했다면 더 편했겠지. 야엘의 위치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 적으로 두기에는 위험한 존재. 제인은 야엘과 프레데리카의 사이가 좋지않다는 정보까지 알고있었기에, 그 선택을 하지 않은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무기가 사로잡혀 박살나는 꼴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의 은혜를 무시한 밤의 이단이란.."
얼굴 바로 옆으로 내질러지는 일격. 그것은 늑대가 사로잡은 사냥감의 멱을 따는 마무리와도 같이 바로 직격했다면 그대로 얼굴이 반쯤 으스러지듯 사라지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제인은 그 반사신경으로 머리에 치명상이 되는 상황을 피하려 어깨를 내주고 내려치는 일격에 튕겨져 복도의 벽에 꽂혀 파편에 묻혔다. 어깨는 으스러지듯 너덜너덜해지고, 충격이 아래 장기에도 영향을 줬는지 피를 토해냈지만, 제인은 고통의 단말마조차 내뱉지 않았다. 고통을 견디는 것조차 훈련된 듯이. 그저 그대로 내상을 견디며 기절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대로 죽을 정도인건 분명했으나, 프레데리카가 원하는 상태에는 걸맞는 결과는 만들어두었다. 남은 것은 프레데리카에게 옮겨가 처분을 맡기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