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카가 그렇게 안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2시간.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원로회와 프레데리카만의 비밀조항이된다. 건물을 빠져나온 그녀는 아무래도 지친 모양인지 격식을 차리지 않고 기지개를 쭉폈다. 그래도 표정만큼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그녀는 딱히 자기 감정이 드러내는 표정을 의도하지 않는 한 드러내고 다니니까.
"오늘 원로회를 좀 다시보긴 했어요. 제가 움직이기도 전에 밑준비를 다해놓으셨더라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역시 막시밀리안 대에서도 약은 금기였다는 점일까. 수익성을 때놓고 인간의 혈액을 얻는게 주 목적중 하나인 입장에서 그 혈액을 더럽히는 약에 손댄다는건 리스크가 크다는 걸 나이지긋한 어르신들은 자금 흐름만으로도 의심하고 있어서 예산 조정을 준비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협조 조건은 의외로 삐걱이는 점 없이 원만하게 흘러갔다. 프레데리카라면 이렇게 매끄럽게 흘러가는게 더 무서운데라고 하고싶을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로는 와일드팽은 이제 저희와 관련없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외에도 첩보팀과 연계하여 회사내부의 장부도 조사해본 결과, 프레데리카가 승계하기 이전부터 분식회계의 흔적이 나왔다고 했다. 그렇다는건 막시밀리안의 부고직전에 무언가 있었다는 말일까. 프레데리카는 이번 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원로회가 기대하는 것도 막시밀리안의 부고와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에 대한 과제일 것이다.
"숙제 하나를 끝내니 숙제 하나가. 뭐 이 숙제는 애초부터 아버지가 내놓은 숙제기도 했죠."
죽음에 대한 비밀. 그것에 대해서는 조직의 어디에서도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가 금기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것을 입에 담으려는 자를 침묵시키며.
야엘은 보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프레데리카가 튀어나와서 보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잠깐 제쳐(잊고있는)둔 상태로 하면 >>268의 두번째 맥락에 대해 뒤늦게 알았다고 하고 내부의 적 같은 경우는 아예 몰랐다고 하면 되겠네. 마지막이야 옆에서 서포트하는 중이고(현재진행형) 음 프레데리카주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네
굳게 닫혔던 현관이 열리는 소리에 야엘은 현관을 등지고 본네트에 비스듬히 기댄 불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에 발소리라던가로 미리 알았을테지만 그 비스듬한 자세를 바로 세우고 돌아보는 건 프레데리카가 건물을 빠져나와 기지개를 펴는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 뚝뚝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한시간은 족히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야엘은 프레데리카를 위해 뒷문을 열었다.
" 그래보여도 한때는 법무팀에 있던 분들이니까요. 선대께서 지켜오던 금기를 어겼으니 의심은 충분했다고 보고. 첩보쪽은… 처음 듣네요. "
선대의 유언과 보스 승계에 대한 것들 때문에 신경을 쓰느냐고 아예 감도 못잡고 있었다. 야엘은 그런 것에서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이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내에서는 이레귤러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만다. 섭섭하다던가, 불쾌하던가의 감정은 없었다.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는 것 뿐이다. " 저택으로 돌아갈게요. " 야엘은 별거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프레데리카에게 이야기하고는 운전석에 올라앉는다.
" 아. "
소리가 되지 못한 반응이 야엘에게서 뒤늦게 나왔다. 프레데리카가 말한 숙제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게 웃겼지만 어쨌든 야엘은 핸들을 느슨히 쥔 채 강하지 않게 - 듣는 사람은 머리가 깨진거 아냐? 하는 반응이 나올정도지만 - 이마를 박은 채로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고개를 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며 빨갛게 변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노인네들은 생각보다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늑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몇번이고 말했지만 자기보신이 강하시니까요.그래서 아마 조직내 지위를 불문하고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걸 통제하는 겸 전달하지 않았겠죠. 하나더 말하자면 노인네도 자기 목숨날아가는 건 싫어해요. 정말 조용히 지금 조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프레데리카를 통해 전달될 걸 알겠지만, 첩보내에서는 그렇게 통제를 해버린 모양이다. 자금팀의 개인적인 감정에 더해, 철저하게 조용히 넘어갈 모양이니. 사실 이렇게 프레데리카가 불어버리는 것도 위험한 건 객관적으로 보자면 위험했다. 그만큼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프레데리카가 아무도 믿지않는다지만, 야엘을 신뢰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네요. 그러니까 이건 다른 의미로 제가 당신에게 죽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저를 죽이는 건 허락하지 않았어요."
차안에 올라탄 프레데리카는 애써 날카롭게 그지없는 눈동자를 부드럽게 풀려고 했다. 프레데리카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가장 큰 숙제이자 문제였으니까. 표정에서 드러나는게 당연할정도였다.
단 0g도 기쁨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야엘은 입가를 당기며 웃었다. 어디에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중을 거듭해서 조사하는 중이라니 불만은 없다. 그냥 그거지. 새삼스럽게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냥 그런 이야기이다.
야엘의 눈썹이 프레데리카의 말을 듣자마자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튀어오른다. 동시에 야엘은 죽일 수 있었다면 다시 만나던 그날 죽였을 것이다라는 말을 어렵사리 삼켰다.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된 것처럼 감정이 큰 폭으로 흔들리고 만다. 야엘은 스스로가 네거티브한 타입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지만 프레데리카만 관련되면 이렇게 네거티브한 생각만 하게 되는 스스로에게 익숙하지 못했다.
" 그렇게 의심해주니까 되려 안심이 되네요. 아가씨가 나를 신뢰하고 믿고 있다는 말보다 더 믿기 쉬워. "
차라리 이게 낫다고 야엘은 생각한다. 프레데리카의 신뢰하고 믿고 있다는 말보다 이쪽이 몇배는 더 믿음이 간다. 선대의 유언이 있는 이상 야엘은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프레데리카를 해할 수 없다. 선대의 유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프레데리카와 달리 야엘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빨갛게 변한 이마를 몇번 문지른 뒤 백미러를 통해 바라보니 여전히 빨갛기는 하지만 붓거나 하지 않아서 야엘은 앞머리를 대충 손으로 정리한다.
" 그게 다 누구때문인데. 아가씨 때문이잖아요? 내가 아가씨한테 하루 12시간이상을 투자하는데 알고 싶어도 알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아? "
신뢰의 의미조차도, 프레데리카는 역시 표현이 서투르다는 것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의미는 전달되더라도 지금은 삐뚤어진 것들이 진심을 전달하지는 못한다는게 조금의 침묵을 만들었다.
"그정도로 충성해주는건 고맙네요. 그만큼 깨어있는 시간 모두를 직무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으로 충분할까요?"
빨간 이마를 애써가리는 야엘을 보고는 프레데리카는 소악마같은 웃음을 지었다. 나쁜 사람 특유의 웃음이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는 그런 부류의 웃음. 그건 다른 의미로는 막시밀리안이 가진 마성과도 다른 또 하나의 마성이었다. 만일 그녀가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보스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면, 그 미래에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급한 일은 대충 이정도네요. 나머지는 시찰인데. 행동팀이 잔뜩 있는 곳에 가서 있으면 신경을 박박 긁어버릴거 같은데요. 큰일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해야하나."
" 내가 이정도로 충성하는 이유는 선대께서 남기신 말씀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아가씨. 물론, 아가씨가 깨어있는 시간동안 직무에 집중해주는 점은 솔직히 고맙네. "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프레데리카의 소악마같은 웃음에 야엘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면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인성이 나가버린 답변을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안그래도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데 저렇게 웃으면 더 미워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엘은 유치하게 속으로 치사하다고 투덜거릴 수 밖에 없다.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미워할 수 없는 웃음은 분명 큰 장점이 됐을텐데. 야엘은 유일하게 그 점만큼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 굳이 화풀이를 하러 가고 싶어요? 난 말리고 싶은데… "
행동팀에 대해 떠올리는지, 야엘의 시선이 잠깐 창문으로 움직였다가 뒤에 앉은 프레데리카에게 향했다. 말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회유는 하지 않았지만 야엘은 핸들을 몇번 두드려보였다. 입을 다문 채로 침묵하고 있던 야엘의 입이 열린다.
물론 처음듣는다는 말은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였다. 다만 프레데리카는 그렇게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버려놓고 온것을 돌아와 한 만큼 지금은 자는 시간 빼고 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프레데리카는 영화마냥 명령만 내리는 타입의 보스가 더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부류였기에, 스스로가 워커홀릭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화풀이는 제가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할걸요. 그걸 살살 긁어올리는건 꽤 좋아해요."
행동팀은 기본적인 스탠스 자체가 어디서 굴러먹다 갑자기 돌아온 여자가 갑자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견이 강세였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더러운 일을하고 머릿수라는 이유로 박봉인 신세인데, 하루 아침에 통솔하는 사람이 바뀌었다. 누구라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행동팀의 태반은 원래 밑바닥에서 굴러온 녀석들이 태반이라 성질이 더러운 면도 있었다.
"왜 동행하지 않을 것 처럼 이야기하세요? 거기 혼자갔다간 저도 총들고 가야하는데요?"
말하나 꼬투리 잡아서 총이던 칼이던 꺼내려는 혈기왕성하고 무모한 녀석은 그쪽에 흔하니까. 호위는 필요했다. 굳이 말안해도 동행하리라고 생각했던 프레데리카는 의아해 했다.
"헤에. 혹시 물어보면 기뻐하기라도 할줄 아셨나? 아핫."
차량은 어느새 저택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정신이 힘든일을 처리했기에 곧바로 식사정도는 하고 시찰을 나갈 계획이었다.
야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선대와 나란히 놓아둔 채 저울질하자면 끝없이 저울질할 수도 있으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듯 비교를 하더라도 칭찬할 건 칭찬하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아니, 그냥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핸들을 일정하게 두드리던 야엘의 손이 멈췄고 기어를 바꿔넣은 뒤에야 야엘에게서 대답이 돌아갔다.
" 아가씨, 그게 화풀이에요. 혈기왕성한 녀석들의 성질을 하나하나 긁어올리는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
행동팀의 태도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안그래도 일의 강도에 비해 들어오는 돈이 짜서 불만이 있는데 하루 아침에 우두머리가 바뀌기까지 했으니까 당연한 태도라고 야엘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 녀석들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음에도 굳이 살살 긁어올리는 걸 좋아하는 프레데리카의 태도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은 프레데리카의 말에 깨끗하게 야엘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당연하게 동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뒤에 이어지는 말에 야엘은 어이없는 기분이었다.
"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넘겨짚지 마세요. 아가씨. "
저택 입구를 지나쳐서 차를 주차하고, 프레데리카가 앉아있는 뒷문을 열어주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야엘은 뒷문을 열고 나서야, 상냥한 웃음을 꾸며내서 프레데리카를 바라봤다가 곧 단호하게 부정의 말을 내뱉으며 언제 그런 웃음을 지었냐는 태도를 취했다.
그 긁어올림의 태반은 행동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후벼파는 거라 프레데리카 입장에선 그걸 충고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건 프레데리카도 알고 있었다. 그만큼 행동팀이 자기말에 귀기울여 주지않았기에 그렇게라도 귓가에 꽂아넣으려는 심성나쁜 충고였으니까.
"너무 딱딱해서 농담했는데. 실망이네요."
아까까지는 그런대로 보스의 품격이 있었다면, 지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완전히 프레데리카는 드레스 아래로 꼬리랑 박쥐날개도 달린듯 소악마같은 느낌이었다. 그 나름대로 그냥 지금의 분위기가 따분해서 아무말이나 해보고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소악마 스러움은 저택안을 들어와 차량이 멈춘 동시에, 먼곳을 바라보며 갑자기 사라졌다. 프레데리카가 먼곳을 보았다는건 천리안으로 무언가 보았다는 뜻이었다. 순간적으로 프레데리카의 미간이 좁혀졌다.
"사용인 한명을 해고합니다. 죄송하지만 제 개인실에 허가없이 들어온 사용인을 붙잡아주세요."
장난이라기에는 프레데리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해고를 의미하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야엘은 행동팀의 편을 들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노스페라투 파밀리아라는 이유로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프레데리카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진짜 저 나쁜 성격과 입버릇만 고치면 선대의 반이라도 따라가지 않을까. 야엘은 가늘게 눈을 뜨고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양손을 허리에 걸쳐놓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고 대답을 했다. 아니 하려고 했으나 프레데리카의 모습에 야엘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프레데리카의 눈이 먼곳을 향하는 것. 야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청각과 후각이 좋다고 해도 야엘의 시야는 프레데리카의 천리안만큼 먼 거리를 살피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저 반응을 보아 천리안으로 뭔가 봤다는 예상을 할 수 있었고 이어지는 말에 그 예상은 사실로 판명난다.
"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찾으라는 건 좀 너무하잖아. 데려오겠지만요. "
짜증을 내는 것처럼 야엘은 투덜댔다. 줄곧 인성 나간 언행을 일삼거나 프레데리카와 언쟁을 하던 일에 찌들어있던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돌변한다. 공기 중, 희미한 냄새를 따라 가면 늦는다고 본능이 속삭인다. 고개를 좌우로 까딱여서 차분함을 가장한, 다급한 걸음걸이를 저택 내에 있는 사용인들의 발소리와 비교하여 소거법으로 추적하는 게 효과적. 야엘- 늑대가 사냥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