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카의 그 말은 아까의 깐죽거림도 신경질적인 비꼼도 없이 순수하게 증오가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게 그녀가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기도 했다. 누구도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이 밤에 드리운 어두운 세계에선 괴상한 논리였지만.
"결국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 이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건 알고 있어요. 체념하지 못하는게 이상하다지만 저는 이상한게 맞으니깐요."
야엘의 예상대로 불평은 분명 하고있었다. 지긋지긋한 이야기지만서도, 프레데리카는 자기 주제를 알듯 그렇게 자학하는 불평을 내놓는 것으로 대꾸한다. 성격의 나쁨을 넘어서 흡혈귀로 태어나, 원하지 않는 레일 위를 걸어야한다는 것을 야엘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레일이 싫어서 한 번은 그렇게 떠났다. 결국 레일 위에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때 프레데리카는 다시 한 번 절망을 맞이했음에도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늑대의 신체능력으로는 이겠죠. 죽지는 않지만 죽지않을 만큼 아프고 무방비상태인데, 그 상황에서 당신마저 저를 배신하면 저는 죽어야 하잖아요?"
프레데리카는 그 절망의 레일 위에서는 야엘조차 의지하고는 있어도 언젠가 배신할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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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시간은 흘러 준비를 마친 시점에는 40분을 넘겨있었다.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딱 맞췄다는 수준에 가까울정도로. 전투복이라고 프레데리카는 이야기를 했지만, 평소의 복장이 아가씨에 가까웠다면 현 상태는 10%정도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대부에 가까울까.검은색 엠파이어 드레스와 그위로 걸쳐진 더블 후드 케이프, 손에는 검은 가죽장갑. 기다란 나무케이스는 바이올린이 들어갈법한 형태였다.허니 블론드색 머리는 원래 묶었던 사이드를 풀고 간결하게 정리한 상태다.
" 아가씨가 로젠크로이츠이고,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의 보스라는 자리에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어요. "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굴레도, 그렇게 증오스러워하는 것들 - 선대를 포함해서 - 도 모두 현실임을 들이밀었다. 프레데리카가 지금처럼 괴상한 논리를 펼치거나 자기 학대가 섞인 불평을 할 때면 늘 야엘은 그 앞에 서류뭉텅이를 내미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로젠크로이츠의 이름과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보스라는 자리를 입에 담았다. 자리와 이름에 걸맞는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듯. 이런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엘은 프레데리카를 못미더워했다.
이어지는 프레데리카의 말에 야엘은 코웃음을 칠 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문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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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모습은 노스페라투 파밀리아 보스처럼 보이네요. 그래봤자 아가씨지만. "
40분 정도 되는 시간동안 야엘은 대기해놓은 차량의 사소한 문제점 -브레이크를 고장내는 장난질을 또 사용할 줄은 몰랐다-을 발견했고 차량을 교체해두고 운전석 문을 열어둔 채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한건지, 아니면 일이 전부 끝나고 먹을 피가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라도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프레데리카의 옷차림을 훑어보듯 살피는 불손한 시선을 거두고 문을 열어준 뒤 빙 돌아 운전석에 앉았다.
오히려 아가씨라고 불리는 편이 프레데리카는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보스라는 이름으로 불릴때가 스스로의 선을 넘어버렸다고 생각하니까.이 굴레는 결국 프레데리카 자신이 정해둔 선을 언젠가는 넘을 레일이었다. 그것을 프레데리카는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체념하고있었다. 불평은 하겠지만.
"차량이 바뀐걸 보니, 또 고장인가보네요. 손버릇이 나쁘면 제 명에 못살텐데. 짧고 굵게산다는 마인드는 칭찬해야할까요."
차량에 올라타 시트에 앉고는 그렇게 말했다. 프레데리카는 꽤 이런 부분에서의 관찰력이 좋았다. 같은 기종의 차량이라 한들, 그 두개의 차이를 구분하고는 했다. 좋게 말하면의 이야기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사소한 것 하나조차 꽤 신경질적으로 파악해둔다는 의미기도 했다.
"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손버릇이 나쁜 꼬맹이, 머리라도 쥐어박으면 정신 차릴테니까요. 훈육까지 신경쓰실 필요는 없어요. 아가씨. "
프레데리카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 야엘은 시동을 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며 표정없는 얼굴로 잠시 백미러로 보이는 프레데리카에게 시선을 잠깐 뒀다가 곧 떨어트리며 말했다. 보스라는 지위에 맞게 대우를 해주는만큼 이 관찰력이 좋고 신경질적이고 성격 나쁜 아가씨가 보스처럼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다. 장난질까지 단속하려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걷는 이들의 시간으로 물드는 도시의 불빛이 차량으로 스며들온다. 불야성의 도시를 가로질러 목적지로 차를 몰아가던 야엘은 핸들을 고쳐쥐면서 목에 숨이 걸린 것과 비슷한 웃음을 내고 말았다. 말상대라도 해달라는 부탁때문이었다.
" 내가 낮동안 뭘 할 것 같나요? 하루 12시간 이상 깨어있는 상태로 여러가지를 하는데, 어디부터 이야기할까요- 잔뜩 어질러놓은 장난질을 수습하고, 재미있는 사건이 생기면 조사해서 기록해두고, 숨을 좀 돌릴라치면 다른 곳에서 트러블이 일어나고- 뛰어다니다보면 아가씨가 일어날 시간이 가까워져서 책상 앞에서 미트볼이나 씹으며 보고서를 만드네요. "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의 늑대의 하루가 적나라하게 나열됐다. " 직접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서 작성한 보고서를 말이죠? " 하는 문장으로 마무리 지을 때 야엘은 어금니를 물고 있었다.
"의외로 손버릇 나쁜 우리 친구는 지시받은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스스로의 감정도 없다곤 말못하겠지만."
장난질을 단속하는 그자체에 의미를 두는게 아니라, 프레데리카는 그 배후에 누가 있나를 멀리보고 있었기에 이 일에 있어서도 귀찮게 구는거였다. 솔다토 정도의 조직원이 단독으로 시행하기에는 아버지때라면 승진못하고 찍힐 각오를 하는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사용인들한테 고기나 소스는 돈을 아끼지말라고 전해줄게요."
이 악물고 말하는 야엘의 말에 프레데리카는 그녀 답지않게 기가 확죽은듯 잠시 굳어있다 그렇게 말하고는, 들리듯 안들리듯 '나 못지않게 고생은 다하는 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항상 상황은 딱 견디기 좋은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걸 아버지 뜻이라 한들 본인 자의로 준비를 해둔다는 것은 아무리 프레데리카라도 비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조금 정리되면 옆나라에 산토리니라도 여행갈까요. 휴가로. 이 불야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숨이 턱막히니까요."
형식상 하는 말은 아니였다. 이미 속내론 일그러진 관계였지만, 프레데리카는 그 나름대로 옆에서 보좌하는 야엘에게 보답하지 않을 만큼 매정하지는 않았다.
"푸른 바다랑 새하얀 벽을 보고있으면 속에 먹칠하듯 썩게 만드는 것들도 조금은 날아가지 않을까 싶거든요."
어깨를 으쓱이며 야엘이 내놓은 답이었다.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종용하지 않고, 충고나 조언도 참견이 되지 않는 선에서 멈춘 채로 존중한다. 정말로 존중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야엘또한 차량을 교체하며 장난질을 친 자에 대한 조사를 지시해놨다. 새벽쯤에는 그 결과가 자신에게 도착할거고… 오늘도 잠 다 잤네. 야엘은 한숨을 삼킨다.
백미러에 비친 프레데리카의 모습에 야엘은 재밌다는 양 여전히 어금니를 꽉 문 채로 웃었을 것이다.
" 내가 아가씨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선대께서 남기신 말씀 때문이라는 거 알고 있잖아. 보고서도 그것의 연장선이에요. "
고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선대의 유언은 야엘은 프레데리카를 보좌하는 것을 군말없이 행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이제껏 따르던 이를 향하는 충성이기도 했고 프레데리카를 보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거부의 표현이기도 했다. 휴가를 같이 가자는 말을 들은 야엘의 눈이 백미러를 통해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금방 떨어져나간다.
" 나랑 같이 휴가를 갈 만큼의 사이였는지 몰랐는걸요. "
선대의 유언이라는 명목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일도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을 사이지 않은가. 이유없이 핸들을 고쳐잡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야엘은 의식적으로 손을 푸는데 집중했다. 야엘은 조금 마른 웃음을 터트린다.
"군말없이 따라만주는것 만으로도 감사하고는 있어요. 제가 감사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테지만."
분명 프레데리카도 야엘이 자의적으로 이 일을 하고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조직 이전에 프레데리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경의를 그렇게 표했다.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그런 경의를 말이다.
"그...네. 무섭네요. 아무도 믿지못하니까."
프레데리카는 무언가 말하려다 그 말을 끊어 버리고는 잠시 입을 닫더니 정말 억지로 만든 가식적인 눈웃음을 짓고는 무섭다고 동의했다. 무엇을 말하려다가 말았을까. 그건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상처였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변명도 해명도 할 수 없는 일 이었기에 이해받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예의있게 행동하나, 야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예의와 거리가 멀다못해 한참 떨어진 것들이었다. 보스의 유언과 보스의 오른팔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프레데리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노스페라투 파밀리아의 미래가 어떤 꼴이 날지 야엘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아무도 믿지 못해서 무서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남한테 의지하려는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나도 남이라는 의식이 없는 걸까요? "
생각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의식했다. 여기서 핸들을 고장내버리는 우습지도 않은 상황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다. 무섭다고 동의하기 전 하려던 말을 삼켜버리는 프레데리카를 야엘은 바라보지 않았다. 상처를 낸 가해자가 입을 다물어버렸으니 피해자는 가해자의 외면에 다시 상처를 입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억지로 만든 눈웃음에 속이 뒤틀리지만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던 야엘은 프레데리카의 말에 백미러를 의식하고 혀를 찼다. 핸들을 고장내지 않도록 의식하느냐고 밖의 상황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나름, 늑대인데 말이야-
" 바로 옆에서 총소리를 듣는 건 질색이에요 진짜. "
한숨을 길게 내쉬며, 창문을 끝까지 내린 뒤 야엘은 핸들을 틀어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악셀을 누르고 있던 발에 힘을 주고 곧바로 속도를 올렸다.
들리지 않을듯 속삭이는 목소리. 야엘의 반응에 쌓아놓은걸 역시 털어놓는건 무섭다고 프레데리카는 생각했다. 몇번이고 자신이 쌓아올린 죄를 고백하는 것을 생각했지만자신의 예상속에서 야엘은 언제나 자신의 고백에 매정하게 증오하지 않을까 그런 결론으로 물들어갔다. 그래서 야엘이 자신에게 지금 내뱉은 독소어린 애증조차 받아들일 뿐이다.
"의지하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저를 죽일 자격이 있다면 당신이라는 남이라고 생각해요."
거둬들인 책임. 그리고 버린 책임. 두 가지에 원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럴 자격이 있다 말하듯. 프레데리카는 열린 자동차의 천장으로 퍼져서 나는 바람소리에 파묻히듯 그런 말을 꺼내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가 장착된다 한들 가까이에서 들으면 소음인건 매 한가지였다. 더군다나 소리에 민감한 늑대인간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질색이라는 말이 나올법 했다.
"정신 사납게 해서 미안하네요. 주인보다 늦게 알아차리게 한건 주인의 실책이에요."
한발. 두발. 세발. 단 세발. 그 총성이 그걸로 쫒아오던 차량을 마치 도미노 넘어트리듯 타이어를 쏘아 하나는 인근 건물에 들이박게, 하나는 전복. 하나는 애써 중심이 흐트러진 차량을 곡예하듯 운전하며 견디려 했지만, 전복된 차량과 충돌한다.
"2발로도 충분했을거같은데. 확실한게 좋으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다시 시트에 앉고는 프레데리카는 총을 바로 분리해 도로 집어넣었다. 그쯤에는 손에 내었던 상처도 이미 아문지 오래에 차에 튄 혈흔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흡혈귀의 피는 그런 성질이었다.
>>173 글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를 하더라도 바로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었겠네 괜찮아~ 하는 말은 못하지 않을까? 공백도 있고 그 기간동안 야엘은 프레데리카가 아니라 막시밀리안한테 길들여졌다는 점을 보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에 더 화낼거라는 생각이 들어. 좀 어렵네 👀
이럴 때마다 자신이 청각이 예민한 늑대인간이라는 점이 싫어진다. 아무것도 듣지 못해서 뭐라고 했냐고 되묻지도 못하니까. 냉정해지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프레데리카의 말을 듣자마자 어금니를 물어내며 삼켰던 말들을 쏟아냈음이 분명했기에 야엘은 마른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당신을 향한 감정이 원망인지 증오인지 서운함인지 모르겠다. 모든 감정들이 엉켜있어서 경계조차 희미했다. 미운데, 온전히 미워할 수 없고 그걸 대놓고 털어놓기에는 당신이 없던 기간은 길어서.
" 주인이라는 자각이 있기는 한가봅니다. 아가씨? "
소음기를 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소음을 받아들이는 게 늑대인간인 야엘이다보니 첫 총성이 울려퍼지는 순간 야엘은 핸들을 붙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목소리를 높혀서 프레데리카의 말에 대꾸했다. 두번째를 지나 세번째의 총성이 들리자 야엘의 표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정도로 찌푸려져 있을 것이다. 지근거리에서 들린 총성에 고막이 다 먹먹했기 때문이다. 덧붙혀서 세발의 탄환으로 차량들이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전복되고 부딪히는 소리까지 파고들었기 때문도 있었다. 골이 다 흔들리는 감각이 불쾌해서 야엘은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며 악셀에 올린 발을 옮겨서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하게 밟은 탓에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거칠게 긁으면서 차가 크게 흔들렸다.
" 알고 있었잖아요? 그건 상관이 없는데- 미리 말을 해요. 좀. 혼자서 생각하고 결론 내린 뒤에 행동하지 말고. "
차가 멈추자마자 오늘 처음으로 쏘아붙히는 목소리로 말하며 야엘은 상체를 돌려서 프레데리카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 노려봤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일단 야엘은 공백 기간동안 수십번이상 프레데리카를 죽이는 상상을 했을 것 같거든 그러다가 자기한테 환멸하고또 반복하고 무뎌지고 있을 때쯤 프레데리카가 돌아오고 상처는 터졌지, 상처를 낸 프레데리카는 아무것도 말을 안하는 상태에서 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저 상황에서 저런 반응을 보인거야
설명 안하고 넘어가서 다음 답레에 쓰려고 했는데 👀
>>200 앗 if의 프레데리카가 좋지만 지금의 프레데리카가 더 좋다 인간성은 중요하지 흡혈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