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병 째로 마시던 제이슨은, 이제는 데킬라를 퍼마시며 라임을 생으로 씹어먹고 있었다. 뭐어 취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조금 심해 보이는 모습...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다 취해 있었고, 제이슨의 몸 상태에 대해서도 아는 인원들이었기에 뭐라고 딱히 말하진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슨의 팔에 누군가가 매달렸다. 멜피, 많이 보고는 지냈지만 사실 잘 아는것은 아닌 상대. 그걸 보고 제이슨은 흐음- 하며, 데킬라 병을 내려놓고. 양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었다. 그리고...
그녀와 당신은 막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만. 애초에 그녀는 동료라면 누구한테나 들러붙기에 특이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당신에 대해서, 알고 지낸 시간은 길기에 대충은 알고 있었고. 그녀도 당신에 대해서 안타깝다고 생각은 하고있었죠.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의 감상이겠지만. "와아, 난다~"
모드 스카이 멜피(?) 그녀는 그림자 날개를 펼치며 제이슨에게 들린채로 밖에서 파닥 거렸습니다. 네 실제로 날개가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애초에 자기 혼자서도 날 수 있으면서 썩 재밌게 즐기던 그녀는.
네 손에 동그랗게 몸을 만 채 누운 마리를 살짝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앞으로 움직인다. 마리의 방을 직접 찾아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 헤맸지만, 그럴 때마다 작게 울음소리를 내 네 주의를 끌고는 손바닥에 호실 번호를 적어주는 마리 덕에, 어쨌든 무사히 방 앞까지 갈 수 있으리라.
"어디 보자... 여기구나."
네 발걸음이 이윽고 멈추고, 네 눈 앞에는 마리의 방 문이 닫힌 채 있을 터다.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마리를 내려놓으면 될까, 아니면 방 안까지 데려다줘야 할까, 너는 네 손바닥 위에 누워있는 마리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마리, 방 안까지 데려다 줄까요?"
아니면 여기서 헤어질까요, 라고 덧붙이면서 반응을 살핀다. 별 반응이 없거나, 거부하지 않는다면 문을 열 생각이었다. 어쨌든 데려다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무래도 회식이라는 자리가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잔에 따라져 있는 것을 잘못 마신 것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긴 했지만 일단은 왕게임도 열심히 참여했고, 괜한 말에 신경쓰여서 술을 잔뜩 마시기도 했고, 그래서 에스티아에게 술주정을 하다가 울기도 하고, 속을 게워내고는 승우와 바람을 쐬러 갔다가 괴롭힘—아니다—도 당했지 않았던가.
어쨌든 술에 취한 마리는 마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쉽게 잠이 들듯이 일정한 걸음으로 움직이는 쥬데카의 손 위에서 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쥬데카의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었다. 마리라는 이름이 들리자 머리 위에 장식처럼 솟아있는 귀가 반응하듯이 두어번 팔랑팔랑 흔들릴 뿐이었다.
깨우지 않고 문을 연다면 방 내부의 모습은 다른 방들과 비슷한 모양새일 것이었다. 원래 기숙사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던가. 이곳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짐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리 자체가 짐을 많이 두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휑한 느낌이 드는 공간에는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침대와 책상이 있을 것이었다. 그 외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테이블 위에는 츄이가 만들어준 떡으로 된 쿠션도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마리를 침대 위에 올려두면 될 듯 하다.
벽에 박힌 제이슨 윙!!! 을 들고, 등 쪽으로 다시 가져가 복원한다. 어렵진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몸을 조각조각 떼고 붙여대는게 참 기분이 묘하긴 했다. 뭐어 익숙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윽고 자신에게 올라오는 그녀를 보며, 제이슨은 다시 그 허리를 잡고 번쩍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무등을 태워 주고, 바깥을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얘기해보는건 또 처음이구만.]
바깥의 바람은 차가웠고, 네온 사인들은 알록달록 빛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를 개조인간과 그림자 소녀가 무등을 탄 채 지나간다, 솔직히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지만 진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르는 소리에 답하듯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당신이란, 그녀에게 있어서는 에델바이스 안에서도 나름대로 반가운 얼굴인지. 깜빡거리는 눈으로 당신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는 조금 뛰는듯한 총총대는 걸음으로 당신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다. 엔은 치우러 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또르륵 굴러간다. 회식자리에 늘어진 남은 음식에 한 번, 그리고 당신에게 한 번씩 눈길을 주더니 엄지가 아래로 향하도록 손바닥을 거꾸로 들어 입가를 가린다. 순간 손바닥 한 가운데에 날카로운 이를 가진 또 다른 입이 돋아났다가 사라졌다. "먹어치우러 왔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음식이 남는 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회식 후엔 엔에게 치우도록 하고 있다."
과연. 그래서 그녀는 회식자리가 어느정도 끝나고 난 뒤에 온 것일까. 일부러? 그런 그녀가 술을 마시는 당신을 바라본다. 검붉고 동그란 눈이 술을 기울이는 당신의 손을 쫓았다.
네 말에 눈에 띄는 반응은 없다. 귀가 움직이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건, 응, 깨어났을 땐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거겠지. 그럼 어쩐다. 너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휑한 듯, 침대와 책상같이 필수적인 가구 외에는 뭔가 따로 들여놓은 건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고 했던가. 아직 들여올만한 짐이 없다고 봐도 되겠지...
"아차, 내가 뭘 하는 거람."
지금 남의 방을 관찰할 때가 아니다. 너는 마리를 어디에 두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역시 침대에 올려놓는 게 가장 낫겠지 생각하며 마리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꽤 푹신한 매트리스와 담요 위니까, 잘 잘 수 있겠지. 문득 시선에 들어온 떡 쿠션을 보고는, 참 신기한 것도 있다. 라는 감상을 머릿속으로 남기며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을 마리를 쪼그려 앉아서 잠시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작은데(물리적으로 작긴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너는 그래도 꿋꿋하게 지내고 있었구나. 너는 다람쥐로 변한 마리를 살짝,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잘 자, 마리."
귀여운 나의 옛 친구. 이젠 돌아서 나갈 시간이다. 지금 떠나버려도 괜찮아. 내일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두 번 다시 늦을 일은 없을 테니까. 발걸음을 돌려 딛는 소리는 아주 자그마했다. 친구가 자고 있으니까.
먹었다...? ...아마 조금조금 먹던 라임이나, 봉지 째로 먹던 과자나, 장난인지 와앙 하고 깨물던 동료들 말하는걸까. 스담스담해주는 멜피를 딱히 신경쓰지 않고 거리를 뚜벅뚜벅 걷는다. 그는 기계 몸으로 지낸지 상당히 된 상태였고,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인간답다"는 이유로 놔두고 있었다. 이 행동도 그냥 쓰담 받는게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탈 안 나는거 너도 알거 아니냐. 애초에 잠도 안 자는데.]
투덜투덜대듯 제이슨이 내뱉었다.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참이었지만 역시 편하지 않았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제이슨이 위의 멜피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