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무서울 정도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고, 과거의 일이 얼마나 슬프건 간에 지금의 빈센트가 신경쓸 것은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보다, 지금 당장 내 손톱에 가시가 박힌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듯, 빈센트는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일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바쁜 일들이 더 중요했다.
"제가 천자전에 대해 생각해본 게 있습니다. 아직 다른 분들에게는 이야기를 못했지만..."
빈센트는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서, 아까 전까지만 해도 놀이마도가 구성되어있던 곳으로 날린다. 분명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저 이동하는 '힘'에 불과했건만, 수증기가 그 속도에 압축되어 흰 막을 만들어 뿜어졌다.
"이런 걸 써볼 생각입니다. 아무리 천자의 부하들이라도 이런 걸 제대로 맞으면 최소한 넘어질 겁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늦는 것보다는 너무 이른 게 낫고,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너무 늦은 게 낫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줄줄이 나열한다. 빈센트가 옛날에 교양서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주었을 논문들을 읽으며 지적 허영을 채우는 것을 즐길 때의 편린이었다. 빈센트의 입에서는 온갖 전투학과 군사학 연구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기고했던 곳의 이름이 나왔다. 빈센트는 그들을 이야기한다.
"클라이트만의 연구에 따르면, 어떠한 정보도 파악되지 않은 적을 대상으로 싸우는 대조군과 비교하여, 10% 수준의 매우 제한적인 정보라도 습득한 실험군의 전투 효율은 3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제한적인 정보만 습득한 이들도 그리 잘 싸우지는 못했지만, 이건 아예 모르는 이들은 정말로 끔찍한 결과를 보여줬다는 것이죠. 또한 같은 수준의 각성자라도, 어떠한 전투 상황에 대해 기초적인 훈련, 하다못해 팜플렛이라도 본 이들의 전투 효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70%나 높았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권유한다.
"그러니 같이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적어도 해보고 져야지, 해보지도 않고 지면 그 다음에는 뭔 불이익이 우리에게 돌아올 지 모릅니다." //5
사실 빈센트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시작만 해도 진척도가 50%는 채워진다기보다는, 일의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시작을 어떻게 했느냐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소 50%는 된다는 뜻이고, 그렇기에 시작을 잘 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고, 그걸 일일이 지적할 시간에 훈련을 한번 더 하는게 낫다 싶었다. 오현의 말대로, '늦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빈센트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한다. 아까 전에 연습하던 바람 마도를 조금 위력을 약하게 만들어서, 머리카락만 좀 요란하게 흔들릴 정도로 조정한다. 사실 의념 각성자니까 이 정도지 여기에 일반인이 있었다면 날아가는 건 과장이어도, 바람을 등지면 넘어지고, 바람에 맞서서 나아가면 최대한 기어야 할 정도였을 테다.
"제가 빠른 바람을 만들어내면, 오현 씨는 그걸 등지고 적에게 최대한 빨리 돌격하는 겁니다." //7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이런 발상을 한 이유를 말한다. 몇개는 오현의 말에 대한 반박도 있었고, 몇개는 오현의 말에 동의하되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부분도 있었다. 먼저 빠르게 적에게 돌입해야 하는 이유. 이건 간단했다.
"대부분의 경우, 빠른 돌입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느리게 돌입한다면 적에게 수를 다 읽고 대응책을 세워 파훼할 충분한 시간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시간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빠른 속도가 필요합니다. 만약 상대가 창을 앞으로 세워서 오현 씨를 꼬치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고, 오현 씨가 자신의 속도를 주체 못해서 거기에 꿰이는 상태가 벌어진다면 그건 큰일이겠지만, 그 정도로 허술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다음으로, 강력한 돌진기술이나 근접에서 강력한 기술. 글쎄. 빈센트는 생각해보았다. 여러번 싸우면서 진오현의 스타일을 보았을 때, '강력한 한 방' 또는 '막을 수 없는 돌격'과는 좀 거리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센트가 생각한 것이 무효화되지는 않았다. 폭풍검은 기교와 연계가 대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폭풍검의 위력이 객관적으로 약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오현은 어찌 됐든 적과 싸우려면 붙어야 하는 검사였다.
"제가 폭풍검 같은 기술을 이용해 싸운느 것을 본 결과, 오현 씨의 기술은 아무리 깎아내리려 해도 약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교와 연계, 물 흐르듯 이어지고 바람이 불듯 자연스럽게 변하는 부분이 대단하다고, 위력이 약하다는 말은 아니니까요. 설령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오현 씨는 여전히 검사입니다. 적어도 적에게 빨리 붙으려면 속도가 빠른 게 좋겠죠."
빈센트는 손을 휘저어, 자신이 만들어낸 바람의 일부분을 보였다. 두 사람의 몸이 약간 밀려날 정도의 바람. 빈센트는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순위야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더라도, 일단 모두가 적에게 근접한 다음에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상황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궁수와 마도사, 총사로 이루어진 팀이라면, 아무리 검사들기리 우선순위를 잡아봐야 가까이 붙어서 검으로 내리칠 거리까지 가지 못하면 무의미한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그저 몸에 예쁜 바람구멍이 나고, 고슴도치를 따라하는 형국이 될 뿐이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이동기술이 없다는 말에 손가락을 튕긴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걸 먼저 말할 걸 그랬다. 다른 이들은 굳이 빈센트의 도움이 없어도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오현은 그렇지 않다. 신속 스탯이 높지만, 그 신속 스탯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이동기술 유무의 격차가 있었으니, 빈센트는 제안했다.
"한번 달려보시겠습니까? 제가 뒤에서 바람을 날려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바람이 최적인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실전에 가서 바람을 날렸더니 넘어지거나, 아니면 너무 미약해서 등에 땀 말려주는 수준이면 슬프지 않겠습니까?" //11 //11
힘찬 구호령에 맞추어 도심을 걷는다. 길쭉한 건물들과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구경의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언어가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자면 전에 있던 곳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풍경. 건너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새 향수에 젖어든다. 곧바로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시킨다.
"이런 식당이 있는줄은 알지 못하였는데, 유하양은 이 곳을 잘 아시는 것 같사와요. 소녀가 낯을 가리는 편이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끝을 살짝 흐리다가 조금 수줍어하는 얼굴로 물어본다.
"곧 큰 행사가 있어 소녀가 들을 바에 의하면 학교대항으로 대회를 해야 한다 하여요. 그 전에 다른 분들과 안면을 트고 싶사온데 마땅한 방도를 찾지 못하여서 고민이 있사와요."
지금까지는 저만의 신이었지만 이제는 건너와서 포석도 깔았겠다. 이제 그녀는 피해왔던 근본적인 고민거리에 마주했다. 전도 어떻게 하지. 틈새에 녹아들어 먼저 친해져 보겠다는 생각도 일반반의 강경한 태도에 가로막혔고 양교의 학생들은 낯설고 무엇보다 황서비고는 재수가(이하생략)
70kg, 몸의 대부분은 근육, 그리고 의념 각성자, 달리는 자세. 빈센트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오현이 받아낼 수 있는 풍속을 계산했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들은 넘어지다 못해 하늘로 날아가고 자동차조차도 가벼운 것은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오현은 일반인도, 그냥 자동차도 아니었으니까. 빈센트는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비하십시오. 꽤나 셀 겁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람을 쏘아낸다.
.dice 1 10. = 10
dice=1 너무 미약한 바람. 유의미한 속도 증가 없음 dice=2~9 적절한 바람. 체감될 정도의 놀라운 속도 증가 dice=10. 너무 나간 바람. 오현이 날아가거나 엎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