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놀림당하는 걸까...? 순간 혼란스러워하다 그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 장난스러운 문구에 스스로 납득하면서(뭘?) 다시 문자를 보낸다. 나열된 목록을 쭉 속으로 읽어보니 도쿄에서의 유흥과 다를 것이 없어보여 전도를 자연스럽게 하기위함이란 핑계로 신 한국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볼겸 한 번 놀러가볼까 쪽으로 마음의 저울을 기울인다.
[소녀가 아직 지리를 잘 모르는지라, 유하양께 안내를 부탁하여도 누가 되지 않을까요?] [저번 의뢰를 함께해주신것에 대해 작은 답례도 할 겸 시내를 둘러보고 싶어요.]
과학의 발전인지 이런 곳에선 거의 대부분의 주문이나 계산, 서빙 등은 기계로 대체하고 기타 다른 일들만 사람의 손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벨을 누르지 않고도 주문이 가능했다. 토고는 자리에 앉아서 벽면에 설치된 패널을 조작해 성인 두 명을 계산함과 동시에 사이드 메뉴인 공깃밥을 2개 주문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비싸지 않냐고 말하는 알렌을 보고는 '임마... 광고 한 번도 안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크크 웃으며 조금 놀려주기로 결심했다.
"여? 비싸제. 방금 결제했는데 얼마 나왔는지 갈켜줄까? 크크... 일단 가볍게 2인분 먹고 더 먹을지 말지 해보자."
솔직히 갈비 2인분을 누구 코에 붙이는가? 거기다 토고는 여러 혜택을 이용해 사실상 돈은 쥐꼬리만도 쓰지 않았다!
"추가 주문하는데 돈 계속 든다. 여 메뉴판 보이나?"
토고는 의도적으로 사이드메뉴 카테고리로 옮겨서 메뉴판을 보여준다. 각종 찌개류와 계란찜은 다른 싼 식당에서 한끼 정도 먹을 수 있는 가격대고, 고깃집에서 빠질 수 없는 냉면같은 종류는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 금액대다. 갈비 외에도 다른 고기나 부위도 주문 가능했는데 거기로 갈수록 숫자가 점점 불어나는 메뉴판.
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보이는 답장을 읽다가 잠깐 희미하게 웃어버리고 만다. 역시 전에 봤던 차분한 모습은 사진의 위협(?)에 의한 일시적인 모습이었나보다.
[어머나,고마워요 유하양] [학교 입구에서 뵈어요~]
문자 너머로 차원을 뚫고 전해지는 활기참에 잠깐 미소짓다가 시내에 나가서 뭘 할지 생각해본다.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놀러간 사람 중 하나가 최선을 다하게 되는 그런 불상사는 한번이면 족하지 않을까? 왠지 이 프로 드래고니안 메이드라면 장난임을 빠르게 알아볼 것 같지만, 린은 웃으면서 고개를 젓다가 문자를 보낸다.
'일케 나오나? 이래가꼬 2인분? 참나.. 헌터나 가디언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아니라가 이따군가?'
토고는 서빙되어 온 고기의 양을 보고.. 조금 놀랬다. 작은 팬에 담긴 두개의 덩어리. 그게 끝이었으니까. 1인분에 한 덩이다.. 이건가? 무한리필집의 특성상 대부분 질 낮은 고기를 쓸텐데 그마저도 허허... 토고는 헬멧 덕분에 똥씹은 표정을 감출수있었다. 하지만... 즐길 건 즐겨야지. 스테이크집은 너무 비싸니까.
토고는 집게를 들고 작은 불판에 고기를 두덩이 올린다.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불판은 이내 지글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기 익는 향을 뿜어댔다. 그리고 연기는 놀랍게도 작동중인지도 모르는 배기구를 통해 천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원자재가 비싸니까 비싼 만큼 벌어야하는 건 당연한기다. 됐다. 어차피 내 사는 기니까 니는 묵고 싶은 만큼 무라." "니는 고기... 제대로 구워본 적 없제? 크크... 갈비니까 잘못하믄 탄다. 요즘은 마 대충 타이밍 봐서 불판이 지 알아가 온도 조절해준다카지마는 뒤집는 건 사람이 해야한다."
"그건 조심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충격을 주입한다면 좀 더 '교육적'인 충격을 주도록 하죠. 예를 들어 숲에서 불장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주변을 불로 잔뜩 퍼뜨리고, 마치 불에 타죽을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가 불을 꺼버린다던지요. 제가 어릴 적에 저 스스로에게 썼던 방법입니다. 불장난 때문에 집을 불태우고 저 자신까지 죽을 뻔한 이후로는 불장난은 무조건 '통제'하게 되더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강산의 이야기에 왜 후회했는지 생각해본다. 베로니카 때문에 후회했고, 또... 언제... 후회했더라? 빈센트는 생각해보다가, 어차피 말해도 별 문제 없겠다 싶어 말한다.
"첫째는 베로니카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베로니카와 관계가 괜찮지만, 옛날에는 정말로 베로니카가 제 인생을 끝장내러 온 저승사자로 보일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둘째는...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을 때일까요."
빈센트는 흐릿하게 사실관계만 나열한다. 사실을 나열할 때는. 감정은 배제했지만, 거기에 엮인 이야기들은...
"프라이버그 참사. 미국 프라이버그의 앤드루 존 고등학교에서, 해고에 앙심을 품은 청소부가 마지막 출근날 자동소총을 들고 출근해 난사. 교사를 포함한 17명 사망, 61명 부상. 그때 제가 거기 살았는데... 어차피 구하지 못했을 이들은 딱히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 실수로 죽었던 이들에게는 미안해지더군요."
빈센트는 무표정을 지켰지만, 평소보다 침울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제 행동은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판정되었지만, 인간의 감정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죠. 그 때 한번 헌터를 그만두었습니다." //15
품격있는 옷을 입어본 때가 언제더라. 잠입 의뢰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서 패션의 완성은 '편리함'이었던 세월이 어언 n년째. 오히려 미리내고에 온 이후로 묘한 여유가 생겨서 이것저것 패션을 알아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어요~!. "오늘 예쁘게 입고 오셨네요."
무난하게 평범한 대학생같이 검은 티셔츠에 청자켓, 반바지를 걸치고 린은 손을 살짝 흔들어 반가움을 표현했다. 텐션은 전염되는 것일까 덩달아 기분이 조금 올라간다. 까르르 웃으면서 저번의 메이드복에서 반전을 주겠다는 의도인지 차분하게 입고나온 유하에게 예쁘다 말한다. 점잖다기 보단 생기로 가득찬 대학의 새내기같다는 감상을 저도 그리 나이가 많지 않으면서 하게된다.
토고는 자신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못 믿는다는 눈치인 알렌을 보고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짓는다. 뒤이어 온 서빙에 고기 없이 양념만 잔뜩 있는 팬은 돌려보내고 고기덩이가 잔뜩 올려진 팬을 집아들어 테이블 위에 올린다. 일단 고기는 먹긴 먹어야 하니까 다 익은 갈비는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불판 구석진 자리에 옮기고 "무라" 짧은 한 마디를 남긴다. 밥상머리에서 턱을 괴는 건 좋지 않은 모습이지만, 토고는 턱을 괴고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헬멧의 앞유리를 작게 들어 입을 노출시킨 뒤 입에 넣어 씹는다. 고기를 씹고 삼킨 후 토고는
"이미 와서 취소 몬한다. 거기다 이미 서빙된거 되돌려보내면 우짜피 가게에서 다 폐기한다. 그러면 돈낭비다 돈낭비." "장난 한 번 친거 가지고 그대로 믿어가 니는 사회 경험 좀 해야긋다." "에휴, 이러라고 니 델고 온 거 아니니까 일단 묵으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든지 좀 하자."
그 상황을 말하는 담담한 말투 속에 억눌린 감정을 모를만큼 공감능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그는 그래서 한 번 헌터이기를 그만두었다 하였다.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야 이미 들었으니 알고 있지만...어째서일까. 그만두었다가 돌아온 적이 그 한번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든 적은.
"우리는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군요.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을 방랑했었다는 점이 말이에요."
항상 부족하다. 그 말을 들은 토고는 뭐가 부족한지 궁금해졌다.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가, 아니면 부족한대로 살아가는가 그런 것이 궁금해지기도 했으며, 그가 전자를 택했다면 부족한 것을 어떻게 채우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손도 쉬고 나도 뭔갈 먹어야 하니까..
"부족카다고? 뭐가 부족한디? 옛날보다 나은 삶 아니겠나?"
토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지만, 그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 왜냐면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토고는 어린 시절과 너무나 달라졌으니까. 비슷한 점이 있다면 더 나은 걸 원한다는 것. 토고는 고기를 다시 자르고 자신의 앞접시로 고기를 뭉탱이로 옮기고 궁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