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그 목소리로 로맨틱하게 속삭여주면 더 좋을지도~ 그녀는 장난스레 말하며 발을 움직였습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노래는 뭐 본인도 잘 모르니까 넘어가더라도 목소리는 상당히 감미로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 사실 웬만한건 그냥 내 맘대로 하잖아?"
당신이 뭔가 생각나는게 있냐고 묻자 그녀는 태연하게도 말했습니다. 앵간한 스킨십이라면 그녀는 지금도 당신에게 마음대로 하고 있었고, 만약 이 이상을 한다고 하면 그건 소원으로 커버칠 수준이 아니니까요. 그냥 나중에 적당히 쓰지 않을까~? 하며 그녀는 미소짓고 인형 뽑기 기계를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상관없는데? 아무거나 좋아."
그렇게 말하곤 당신이 봉제인형을 뽑는동안 그녀도 뭔가를 뽑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도 뽑아주려는 모양이네요.
0~10 실패 11~29 캐릭터 손목쿠션 30~59 키링 인형 60~64 '개 못생긴' 인형... 65~84 캐릭터 봉제인형 85~100 대형 인형
무장을 가르며 튀어나온 독액이 그녀의 전신을 감싼다. 눈 한쪽을 감으며 당신을 추격하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저 멀리 거리를 벌린 이후였다. 고기에 독이 스며듬에 몸이 서서히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모른다."
그리고 당신에게 돌아오는 건 그런 대답이다.
"엔이 그걸 원하는지는 엔도 모르고 있다."
모든 걸 삼키겠다- 라고 한 것치고는 어중간한 말이었다.
이유 없는 식욕. 그것은 잦아들 일 없고 부풀어만 간다. 무한의 탐식자. '먹어라.' '삼켜라.' '일부로 만들어라.' 그녀의 안에서, '너와 우리를 위하여.' '---을 삼켜라.' 의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다.
'그것이 네가 태어난 이유다.' "하지만 엔에겐 이것이 전부다."
그녀의 세븐스는 당신과는 상성이 좋지 않다. 고기의 칼날로 날아드는 사슬들을 몇 개인가 솜씨 좋게 쳐내지만, 이내 얼마 안 가 몸이 갈고리에 꿰뚫리고 만다. 독의 영향인 탓이다. 그녀는 전해지는 충격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한 쪽 무릎을 꿇는다. 그러면서도 표정없는 얼굴로 "엔." 하고 운을 튼다.
"일어나라."
고개를 숙이고 칼날 끝으로 바닥을 짓누르자, 지면이 울부짖더니 당신을 감싼 사방에서 고기 촉수들이 솟아오른다. 그 끄트머리에는 방금 그녀의 것과 같은 칼날이 달려있다. 그것은 저마다 제각기 춤추며 당신을 난도질 하기 위해 휘적인다.
그는 멜피의 칭찬에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그가 본디부터 자아도취에 빠져 대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워낙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 씨* 그러게. 그럼 뭐, 너무 이상한 거 부탁하지만 마라."
그렇게 말하는 본인 역시 아직까지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기도 했다. 이러다 나중에는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소원권 때문에 불 붙어서 열중한 것에 비하면 시큰둥한 태도다. 처음부터 대가 그 자체보다는, 대가를 걸고 노는 승부에 재미를 느낀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뭐가 됐든 재밌었으면 됐지. 그는 제 두 손을 마주잡고 위로 쭉 당겨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뽑기를 위한 몸풀기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인형이 떨어져내렸다. 쿠션 정도의 크기에 썩 귀여운 모양을 한 인형이다. 와 씨, 잘못했으면 진짜로 못생긴 거 뽑을 뻔했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장난을 칠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속으로 안도하며 멜피와 인형을 주고받았다. 자신이 받은 쿠션을 몇 번 주물거리던 그가 감촉이 꽤 괜찮은지 씩 웃고 만다.
시간은 점점 늦어가고, 계획에 없던 놀음은 이제 끝이다. 슬슬 배도 고프니 식사 후에는 이 즉흥적인 만남도 파해야 할 테다. "아, 잠 깨고 좋네." 피곤하지만 기분만은 꽤 괜찮았다. 게임장 밖을 향해 걷다, 그는 불쑥 생각난 듯 멜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말끝을 길고 길고 길게~ 늘리며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아마도 나중에 별것도 아닌거에 소원권을 쓰지 않을까 싶네요. 한밤중에 불러서 불좀 꺼도. 하고 말이죠? 그녀도 소원권 그 자체가 고팠던것도 아니거니와, 당신이이랑 재밌게 놀았으니 어찌되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채 당신을 보고 있었죠.
어차피 인형은 자신의 능력이 알아서 뽑아줄것이고, 당신이 사뭇 진지하게 인형을 뽑아주자 좋아하면서 자신이 뽑은 쿠션을 건넸습니다.
"고마워~"
뭐가 되어도 상관없었지만 또 귀여운애가 뽑혀서 기분이 좋아진듯 합니다. 그녀는 인형을 주머니에 쏙하고 넣고서는 당신과 함께 오락실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얼마정도 걷다가, 당신이 물어보는 질문에 살짝 놀란듯하다 미소지었습니다.
"신경써준거야? 우리 자기밖에 없네~"
그녀는 작게 웃으며 이제 괜찮다고 손사레쳤죠. 그리곤 밤공기가 차다는 핑계로 팔짱을 끼려했던가요. 그래서 어디.. 뭘 먹으러 갈지는 정했나요?
/ 적당히 먹고 헤어졌다~ 식으로 끝내도 좋구. 더 해도 좋지만 제가 승우주를 너무 붙잡고 있는거 같아서.. (땀땀. 흑흑 승우가 너무 커여운게 문제야! 승우주 추석 스케쥴도 잘 모르겠으니 편한대로 해주세요!
엔에 대해 파악한 것 중에 살짝 미스가 생긴 것 같다. 적어도 스스로의 욕망 정도는 확실하지 않을까 했는데. 목표만을 어중간하게 잡았을 뿐 그 외는 이것도 저것도 어중간하다. 이런 이런. 아무래도 레레시아의 역량으론 어줍잖은 짓거리만 하다 끝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엔에게 그게 전부라면- 뻔하잖아? 그 전부가 원하는 것이 곧 네가 원하는 거야- 그게 네가 하고 싶은 거라고-"
어렵게 생각할거 없이 그 전부라는 것이 원하는게 곧 엔이 원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말해주며 사슬을 휘두른다. 엔의 칼날이 튕겨낸 사슬은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몇 개는 엔의 몸에 갈고리를 박았다. 갈고리를 타고 주입되는 독은 어서 떼어내지 않으면 점점 몸을 찌릿하고 둔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우핫. 학습능력 하나는 어마어마한데-?"
재차 사슬을 휘두르려던 그녀는 칼날 달린 고기 촉수가 뻗어오는 걸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맞아줄 생각은 없었으니. 엔이 튕겨낸 사슬들을 바닥으로 늘어뜨리자 바닥에 퍼진 독액으로 녹아들어간다. 그리고 사방에서, 대련 중에 뿌렸던 모든 독액으로부터 제각기 사슬이 솟구치며 엔의 고기 촉수를 저지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래도 슬슬- 마무리를 지어볼까!"
사슬이 저지하는 고기 촉수 사이로 냅다 달려나온다. 피하지 못 한 고기 촉수의 칼날에 몸 곳곳이 베이지만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엔을 향해 똑바로 달려든다. 한 손은 바닥에 연결시켰으나 다른 손은 여력이 남았으니 그걸로 공격할 것 같았지만, 레레시아는 어느 간격 안에서 몸을 낮추며 동시에 엔을 향해 발길질을 시도한다. 긴 다리 역시 두터운 독액의 무장을 둘러서 타격 시의 무게감과 독으로 인한 추가타까지 완벽하게 방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