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지구의 것이 아닌 파스텔 톤 빛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드문드문 발판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저 한참 위에 이번 의뢰의 목표가 있을 것이었다.
"체력이 약하다든가 이동기가 없다든가 하면 힘들겠는데? 그렇지만 그건 달리 말해서, 네가 날 불러온 건 꽤 좋은 선택이었다는 거지."
강산은 지한에게 웃어보인다. 일단 강산도 체력 스탯은 두 자리 수를 넘겼고, 이동에 도움이 될 법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반대로 예상치 못한 적이나 장애물에 가로막힌다면 강산보다 전투에 특화된 지한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대략 그런 내용의 작전회의를 마친다면...
"그럼 가 보실까? 달로."
...강산은 앞장서며 지한에게 손짓할 것이다. 같이 첫 번째 발판으로 뛰어오르자고. 이거, 그 녀석이 알면 질투하려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이따금 터지는 환호와 더불어 퍼지는 시끌벅적한 즐거움. 각자의 사정으로 각박한 삶의 현장에서 전투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헌터들이지만 이런 풍경을 보자면 그들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사람이란 것을 실감한다. 회복제를 담은 가방을 들고서 린은 근심없이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다 낯선 이국에 떨어져 그 이질감에 느리게 적응해가는 타지인처럼 좌우로 느리게 둘러보았다.
낯익지만 낯설게 된 풍경속에 낯이 익은 금발의 인영이 보여 평소처럼 군중에 섞여들지 않고 자연스레 반 걸음 떨어져서 지나쳐갈까 하던 것을 멈추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짓궂은 생각이 일었다. 무미건조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눈에 희미한 장난기가 빛났다가 사라졌다.
"동료는 점령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용사님은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걸까나. 일광욕?" "안녕하세요 알렌군. 나에요."
암살자라는 직종에 걸맞게 기척을 죽이고 그림자를 통로삼아 살금살금 다가와 평소처럼 등을 가볍게 툭 친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장난스러움이 베어있었다.
전혀 상처받은 낌새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평온한 얼굴로 상처받았다며 태연한 소리를 내뱉는다. 그동안 '그 일' 가지고 은근히 놀려먹더니만 소소한 반격 한 번에 실의에 빠진건지. 속으로 심술궂게 이죽거리다가 습관으로 굳어진 미미한 미소만 그은 무표정으로 원래 제 자리였던 것처럼 빠르게 벤치에 앉는다.
빈센트는 자신이 적어놓은 온갖 것들을 보며 말한다. 칠판에는 많은 것들이 적혔고, 많은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그 사진들은 빈센트가 모두 잘 아는, 아니면 빈센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물론 그건 특별반 친구들은 아니고... 빈센트가 여태까지 죽인 이들, 엿먹인 이들, 그리고 그들과 친한 이들의 사진이었다.
"...이 녀석은 죽이고, 이 녀석은 몸 절반을 태우는 것으로 충분할 거야."
빈센트는 그런 살벌한 이야기를 하면서 칠판을 정리하고, 정말로 무서운 계획을 한참 동안 짰다.
이 녀석은 보복 가능성이 높으니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죽여야 한다. 이 친구는... 이전처럼 조직원들을 보는 앞에서 전부 죽이는 정도면 충분히 말귀를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베로니카를 동원할 준비도.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죽여야 할 대상은 붉은색으로, 적당히 경고만 할 대상은 노란색으로, 진짜 위험한 대상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손봐줄지에 대한 자세한 계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빈센트는 그냥 무시하려다가, 왠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윤리적으로나 빈센트 개인 신상으로나) 이 들어서 뒤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특별반 출신을 지금 보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인성학 교관보다야... 나았으리라.
들려온 아가씨라는 경칭, 익숙하고도 그립지만 그 위에 쌓인 다른 감정들과 시간에 밀려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멀어진 호칭에 순간 눈살을 찌뿌렸다. 앞에 있는 울보씨는 당연히 전혀 모르고 저를 가볍게 골리기 위해 고른 단어겠지마는 순간 기억속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아 언짢아진 기분을 빠르게 떨쳐내며 입을 삐죽였다.
"그거 참 유감이네요. 슬프게도 저도 축제를 순수하게 즐기려고 참여한 적은 좀 되어서요."
최근에 참여했던 축제에서는 의뢰 때문에 뒷세계의 일에 연루되어 한구레 조직에 잠입해 있어야 했었다. 그때 화풀이 삼아 순찰이라는 핑계로 때려눕힌 껄렁패가 몇이더라. 그렇게 크게 한 바퀴 돌고나서 이자카야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것이 그리도 좋았었다. 마츠시타 린의 축제는 그런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축제와 한 걸음 비껴간 골목에서 흘러갔다.
"상점가도 나쁘지 않네요. 알렌군도 회복제를 살 생각인가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기릴수도 없는 추억은 한 구석에 묻어두어야 했다. 현재에 집중해야 하기에 못 이기겠다는 것처럼 작게 웃으면서 좋은 무기를 보는 것도 재밌겠다며 평범한 제안에 동의한다.
워리어냐 랜스냐.. 를 지한주가 멍청하게 머지. 하다가 정하진 않았지만 지한이는 서포터는 아니고 공격적인 편이니만큼. 전투를 맡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빨리 구성하고 빠르게... 나쁘지 않군요" 발판이 구성되고 빠르게 올라간 뒤에 돼지와 독수리의 키메라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자. 그럼 엄호하겠습니다. 라는 지한은 공간에 구성된 발판을 먼저 밟으려 합니다. 앞에 나서서 가장 가까이 있는 꿀꿀거리는 것의 급소를 꿰뚫으려 합니다. 날아오기 전에 다다음 발판까지 제대로 올라서면 맞서싸우기도 좋을 거란 판단이었겠지요.
"아무래도 날개가 문제일 터이니.." 그렇게 다수라면 날개를 박살내고 떨어뜨리는 식을 하거나. 그럴 생각일까요? 아니면 빠르게 급소만 간결하게 찌르거나요. 일단 하나는 급소를 찔러서 깔끔하게 해치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