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베로니카 씨랑요?" 확실히 그렇다면 시장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그런 곳은 아니지만. 가끔 동물을 판매하거나 생선을 잡는 곳이라면... 음. 피가 아예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생선을 잡는 곳일 때... 의외로 피같아보이는 것이 좀 있다고 생각하네요.
"저는... 이미 사서 구경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간식거리를 살까 했는데 정작 산 것은 머리끈이라니.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돌아다니실 거면. 구경할 만한 걸 알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외국 식품들을 파는 곳도 있고.. 고기나 수산시장도 붙어있으니. 초장집도 좀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제야 직설적으로 억울하다고, 직설적으로 기분 상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참나, 하고 어이 없다는 듯 말한다. 그래도 이런 모습이 아까 그리고 그 전보다 덜 귀찮았다. 신경도 덜 쓰이고 말이다. 화났으면 화났다, 기분 상했으면 상했다 확실하게 표현하는게 좋지 괜히 괜찮다, 아니다 같은 식으로 꿍 쳐놓고 나중에 와서 이랬다저랬다 하면 그게 더 귀찮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니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 좀 배워야긋다.'
토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짧은 대화였지만 온 몸에 진이 다 빠진다. 토고는 터벅터벅 교실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그녀에게 말한다.
"안 오나? 니 묵고 싶은 거 빨랑 정해라. 고거 사주고 내는 내 무을꺼 묵으러 가야긋다."
빈센트의 눈동자가 스윽 옆을 바라본다. 수산물 가게에서 한 손님이 고등어를 주문했고, 사장은 갓 잡아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수조에서 굳어있던 고등어를 꺼냈다. 정신을 차린 고등어는 펄떡펄떡 뛰며 자신을 죽이려는 명백한 운명을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장의 생명윤리는 사장의 생계를, 손님의 허기를 이길 수 없었고...
"네.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쾅! 도마와 칼 사이에 놓인 고등어는 대가리와 꼬리를 잃었다. 남은 것은 흘러나오는 피였다.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개불이 맛있다며 칼로 개불의 끝을 잘라 피와 내장을 발라내고 먹기 좋게 썰었다.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그것을 보았을 때 무슨 끔찍한 일을 할 지 알았고, 그렇기에 고개를 저었다.
"베로니카가 인간 외 동물 피에도 반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쎄요. 굳이 실험할 필요는 못 느끼겠습니다. 다만, 게임이나 노점상은 좀 볼만하겠군요.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5
"천만에 말씀. 나도 얻어먹게 될 건데 의리상 이 정도는 알려줘야지. 매운 걸 못 먹는 건 아니라니 또 다행이군. 덕분에 나도 간만에 돌돔 먹어보네."
알렌의 감사인사에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강산은 식사 준비를 마무리한다. 한국식 맑은탕이 되었으니 역시 밥이랑 먹는 게 어울리려나.
"잘 먹을게."
그러고는 한 술 뜨고서 한다는 말이, "천운의 티끌 맛이로군."이었다. 직접 사먹기에는 값비싼 생선일 터인 돌돔이 알렌의 손에 들어온 것이 오늘 서로의 첫 번째 행운이요, 알렌이 돌돔을 망치기 전에 강산이 온 것이 두 번째요, 마침 이 상황을 수습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식재료가 있었다는 것이 세 번째였으니...
"외곽이면 좋겠군요. 복잡한 중심가는 싫습니다통제 못할 변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고, 너무 피곤해지고, 그건 베로니카도 마찬가지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한을 따라간다. 그래도 한국인이 한국 지리를 아는 걸까? 아니면 빈센트가 이런 인간 활동의 단면에 너무 무관심했던 걸까? 배달과 백화점에만 익숙해졌던 빈센트는, 사진과 그림 속의 인상비평으로 접한 시장이 아닌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꼬치, 로띠, 타코야끼, 아무래도 옛날 대한민국의 전통시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 세계가 그렇듯 모든 것이 섞여들어간 인상이었다.
"장신구들도 있군요. 흠..."
빈센트는 몇 개를 바라보면서 눈을 돌린다. 이건 괜찮을지도, 아니면 안 괜찮을지도.
"확실하 간단하군요."
그리고 게임도 몇 번 즐겼다. 금붕어 건지기는 두 번 실패했지만, 그 원리를 안 이후에는 5번 넘게 성공했다. 다트 역시, 마도를 구현하는 빈센트에게 바람도 없는 환경에서 날개가 달린 소형 발사체를 명중시키는 건 너무나도 연산이 간단해서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포커판은...
"저는 돈 걸어서 잘 된 적은 없더군요. 그리고 그건 연산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변수는 통제가 힘드니까요." 줄일 수 있으면 좋을 때가 있고. 풀어둘 때 좋은 게 있는데. 지금은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지한입니다.
"전통적인 시장은... 좀 중심가에 있지 않을까요? 죽이나 전 종류를 파는 곳도 있고..전통 과자를 파는 곳도 있긴 할 겁니다." 외곽이기 때문에 새로이 지어질 때 다른 문물들도 자연스레 섞일 수 있던 걸까?
"저는... 글쎄요." 일단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잘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포커페이스-라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고. 간단한 속임수 정도는 알 수 있어도 작정하고 심리전이나 다 짜고 치는 거라면... 안 속는 게 힘들지 않을까요?
막... 타고난 감각으로 이새끼들? 이라던가. 천운으로 분명 속였는데 왜 이겨? 나 카산드라로 음 이러이러하군! 같은 게 아니라면...
"옛날에 포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의념 각성자는 안 받는다길래 이유가 뭔가 물었더니, 의념 각성자들은 사기를 쳐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의념 각성자인지는 묻지 않기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빈센트는 자신의 손목을 다른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때는 빈센트가 본격적으로 막나가기 시작한 시점이라, 적당히를 모르고 너무 저질러버린 탓에 모두가 불행해졌지.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의념 각성자를 못 믿겠다던 친구가 사기를 치더군요. 일반인 선에서는 정말로 놀라운 수준의 손논ㄹ림이었습니다. 제가 의념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성공했겠지만, 저는 그 친구가 그러는 것을 보자마자 그 친구 손을 잡았고..."
빈센트가 손을 꺾는 시늉을 한다. 손목이 뒤로 접힐 정도로.
"너무 빨리 잡느라고 힘조절을 못해서 손목이 뒤로 접혔고, 그 친구는 겁에 질려서 모든 것을 인정하더군요. 뭐, 그 다음은 경찰을 부를 것도 없이 그 포커판에 끼었던 이들이 모두 했습니다. 그 때 얻은 교훈이라면... 세상에 정정당당한 승부는 없고, 포커는 더욱 그러하다는 거였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금붕어 떠내기는 베로니카도 좋아할 거고, 다트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군요. 좀 더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 앞에 음... 재밌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빈센트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옛날에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냥 이형을 하나 사면 될 것을, 남자가 괜히 오기가 생겨서 뽑아보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짜증을 내며 인형뽑기 기계를 걷어찼고, 그런 폭력적이고 과격한 면모에 실망한 여자가 결국 이별을 통보했다는 내용. 빈센트가 옛날에 직장에 다닐 때 들었던 '눈물'(웃음의 의미로) 없이 들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니 빈센트는 잘 할 수 있을까?
"저것도 괜찮겠군요.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 선을 잡을 수만 있다면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나갔다. 중간에 보이는 도박 윷놀이판은 중간에 빽도 규칙을 어떻게 하느냐로 칼부림이 일어났고, 야바위판은 야바위판답게 누가 맞네 틀렸네, 누가 나쁘네로 미친 듯이 싸워대는 것을 보고는 기분이 나빠서 빠졌다. 고스톱판은 의념 각성자들이 서로 '손기술'을 대놓고 자랑하고, 서로 감탄하기 바쁜 윤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냥 마술쇼가 되어버렸기에 피했다. 그렇게 피하고 피하니 남은 것이... 놀랍도록 깨끗하고 가치중립적인 장신구 만들기 체험이었다.
"...이거 괜찮겠군요."
빈센트는 수첩을 꺼내 이곳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적는다.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군요. 파괴보다는 창조가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으니까요." //11
시윤이 모자라는 백돌들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산도 그렇게 말하고는 강산도 자신의 시력을 강화해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둑돌들을 발견한 곳 주위를 마도로 파내 보기도 하고, 조금 먼 곳을 마도로 살피기도 한다. 그렇게 둘이 협력해서 꽤 많이 찾아냈다 싶었을 때.... 강산이 잠깐 호수 쪽과 찾아온 바둑돌들을 번갈아 보더니 두루마기를 벗어두고는 순식간에 호수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난간을 넘어 냅다 뛰어드는 것이었다. 풍덩!
주변의 다른 방문객들이 놀라 그 쪽을 돌아보지만, 강산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듯 태연히 그 안에서 자맥질을 몇 번 하며 호수 밑바닥을 뒤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이 호수 밑에 가라앉아 있던 바둑돌 한 줌을 찾아와서 걸어나온다.
"이 정도면 되겠다."
의기양양하게 찾은 바둑돌들을 내려놓고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강산은 만족한 듯 웃는다.
고맙다는 말에 솔직히 미소를 지었다. 색조합에 고뇌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렵게 빌린 한복에 칭찬을 듣는 일은 항상 좋은 것이다. 유하는 차분하게 자신의 머리 위를 향하는 손길을 받아들이다가 웃으며 양 손으로 상대의 손을, 그 행동이 끝나고 나서야 잡았다. 따듯한 상대방의 손을 오래도록 주물렀다.
"간식?! 진짜로? 뭔데?"
유하는 자기의 신발을 훌렁 벗어던지고 시윤의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신발은 스르르 가지런하게 정리되었다. 마도였다.
"우선 절 받으시지요 나으리."
제일 먼저 한 행위는 윤시윤을 향한 큰절. 나름 예절을 갖추기 위해 손동작도 신경쓴게 보이는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