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가 의아 했더니만 요란한 띵동 소리를 보건데, 내가 아는 사람중에 초인종 방을 저렇게 당당하고 요란하게 울려대며 재촉할만한 사람은 한 명 정도 밖에 없다. 한숨을 내쉬곤 일어나서 문을 열어준다.
거기에는, 개량 한복을 입은 윤시윤이 있었다. 가볍고 편하게 디자인된 그 회색 옷은 어느 의미론 그가 선호하는 정중한 차림과 비슷해서. 어린 나이의 소년이 입기엔 위화감이 있었을지도 몰랐으나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다만 평소엔 와이셔츠와 검은 면바지의 조합을 선호하는 만큼, 꽤나 새로운 패션이었을 것이다.
노란 저고리에 다홍색 치마인가. 확실히 유하를 닮아 화려하고 예쁜 색 배합이다. 본인은 신한국 출신이라고 얘기하지만 어쨌건 골드 드래곤의 하프인 만큼 굉장히 이국적인 외모를 하고 있는 그녀지만, 굉장히 잘 어울리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손을 뻗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고서는 방문을 좀 더 크게 열어줬다.
"어머나, 그런가요? 있는 그대로 말하라 하셔서 기탄없이 느낀 바를 말했을 뿐인데 그렇게 느껴지나요?"
배시시 웃으면서 손으로 턱을 괴고 의자를 기울여 책상에 삐딱하게 기댄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말이에요.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저를 꾸민 적이 없는데, 왜 자꾸 의뭉스럽다고 보는지 조금은 서러워서...애초에 우리가 그런식의 불온한 의도를 가질 만큼의 감정적 교류가 있던 사이었나요?" "왜 없는 감정을 있다고 우기는 건지,나 원 참." "귀찮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액면 그대로 제 행동을 받아들이는 편이 어차피 비즈니스일 관계에서 깔끔하고 좋지 않을까요?"
하하, 공허하게 웃음소리를 내뱉다가 다시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여 의자를 바르게 원위치 시킨다. 누가 누굴 걱정해 주는건지. 대놓고 자신이 이용가치가 있어서 잘 대해 준다는 소리를 듣는 이 상황이 기가막히고도 한 편으로는 안심되었다.
"저는 지금 화나있어요. 이유는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죠." "뭐 하나 사주면 말 없이 풀릴 것 같네요."
"전처럼 비즈니스 관계가 좋다 이거가? 크크.. 내는 내 귀찮은기랑 내 싫은거 진짜 싫어하는 성격인기라. 고래가 니랑 그렇게 지낼바엔 톡 까놓고 지내는게 낫지 않나 하고 이런 제안하는긴데." "느는 이전이 좋다 이거제?"
토고는 한숨을 팍 내쉰다. 이미 몇 번째인지. 특별반 녀석들은 단합이 안된다는 소리가 공감 간다. 성격도 하나같이 제각각이라 단합은 커녕 의견 소통도 안될 것 같고... 이런 녀석들을 (본인 포함) 끌고 가야 할 길드장에게 동정이 간다. 끌끌.. 토고는 자신의 처지든 상대방이든 몽땅 싸잡아 비웃는 소리를 낸다.
"어휴... 진짜 참 말 많다. 느랑 내랑 그리 많이 교류한 사이도 아니고, 내는 니 가치를 보고 어케 써먹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고 느도 내 그다지 좋은 감정 없제? 그럼 걍 여서 느랑 내 사이 끝내는게 훨배 나아 보이기도 한다."
빈센트는 의례적인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시장을 걸으며, 이곳은 베로니카와 함께 오기는 그리 좋지 않은 장소라고 여겼다. 베로니카와 함께 갈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이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참 어렵다. 전쟁은 아무 데서나 일어나고, 어디서 일어나도 각자의 상황이 있고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상황과 시간에 따라서 아예 성립조차 안 될 수도 있었으니.
자신만큼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빈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드레스 코드라는 개념은 이 세상, 특히 굳이 드레스코드를 지정하지도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에서는 더 이상 익숙한 개념이 아니었다. 시장에 갈 때는 정장을 입건, 그냥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나오건 그건 다른 이들이 알 바가 아니었고, 빈센트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빈센트처럼 휘적거리며 다니기만 하고, 무언가를 사거나 팔면서 거래량을 올려주는 '생산적'인 행위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 빈센트는 그저 방해꾼에 불과했으리라. 하지만 그건 빈센트가 알 바가 아니었고, 빈센트는 아는 사람을 만난 김에 이야기했다.
"베로니카와 함께 다닐 곳을 좀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도 혹시 몰라서 왔는데, 아무래도 베로니카와 이곳에 오는 건 피해야겠군요."
빈센트는 솔직하게 말한다. 이제 베로니카와 빈센트의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었다는 건 모두가 알 테고, 지한이라면 특히 그러할테니 말이다.
방실방실 얄미우리만큼 뻔뻔하게 웃던 얼굴이 얌전한 무표정으로 변한다. 골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남에게 실례를 하면 안된다는 규칙과 양가의 딸이라면 무릇 속내를 함부러 보이지 말고 돌려 말하라는 가르침, 그리고 이어진 암살자로서의, 그리고 한 종교의 교주로서의 두터운 가면이 '격식없는 솔직함'이라는 그녀에게 주어진 적이 없는 소양에 온 몸으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츠시타 린에게 허락된 솔직함은 신에대한 사랑과 적에게 날리는 칼날이 전부였다.
"당신에게는 정말 직설적으로 말해야만 소통이 될 것 같네요.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기분이 상했으니 가벼운 사례는 해달라는 거에요. 대신 이 일 가지고 지지부진 끌지는 않을것이고 묵인하도록 하죠. 약속할게요.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억지로 함께할 필요는 없고 당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오해해서 실례했다 표현해주세요."
업드려서 절받기도 아니고. 자신도 자신이지만 상대도 못지 않게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믿을 사람을 바라고 이곳에 들어오지는 않았건만, 단순한 협조부터 이리 복잡하게 흘러가면 어쩌자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