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럼 비즈니스 관계가 좋다 이거가? 크크.. 내는 내 귀찮은기랑 내 싫은거 진짜 싫어하는 성격인기라. 고래가 니랑 그렇게 지낼바엔 톡 까놓고 지내는게 낫지 않나 하고 이런 제안하는긴데." "느는 이전이 좋다 이거제?"
토고는 한숨을 팍 내쉰다. 이미 몇 번째인지. 특별반 녀석들은 단합이 안된다는 소리가 공감 간다. 성격도 하나같이 제각각이라 단합은 커녕 의견 소통도 안될 것 같고... 이런 녀석들을 (본인 포함) 끌고 가야 할 길드장에게 동정이 간다. 끌끌.. 토고는 자신의 처지든 상대방이든 몽땅 싸잡아 비웃는 소리를 낸다.
"어휴... 진짜 참 말 많다. 느랑 내랑 그리 많이 교류한 사이도 아니고, 내는 니 가치를 보고 어케 써먹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고 느도 내 그다지 좋은 감정 없제? 그럼 걍 여서 느랑 내 사이 끝내는게 훨배 나아 보이기도 한다."
빈센트는 의례적인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시장을 걸으며, 이곳은 베로니카와 함께 오기는 그리 좋지 않은 장소라고 여겼다. 베로니카와 함께 갈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이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참 어렵다. 전쟁은 아무 데서나 일어나고, 어디서 일어나도 각자의 상황이 있고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상황과 시간에 따라서 아예 성립조차 안 될 수도 있었으니.
자신만큼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빈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드레스 코드라는 개념은 이 세상, 특히 굳이 드레스코드를 지정하지도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에서는 더 이상 익숙한 개념이 아니었다. 시장에 갈 때는 정장을 입건, 그냥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나오건 그건 다른 이들이 알 바가 아니었고, 빈센트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빈센트처럼 휘적거리며 다니기만 하고, 무언가를 사거나 팔면서 거래량을 올려주는 '생산적'인 행위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 빈센트는 그저 방해꾼에 불과했으리라. 하지만 그건 빈센트가 알 바가 아니었고, 빈센트는 아는 사람을 만난 김에 이야기했다.
"베로니카와 함께 다닐 곳을 좀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도 혹시 몰라서 왔는데, 아무래도 베로니카와 이곳에 오는 건 피해야겠군요."
빈센트는 솔직하게 말한다. 이제 베로니카와 빈센트의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었다는 건 모두가 알 테고, 지한이라면 특히 그러할테니 말이다.
방실방실 얄미우리만큼 뻔뻔하게 웃던 얼굴이 얌전한 무표정으로 변한다. 골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남에게 실례를 하면 안된다는 규칙과 양가의 딸이라면 무릇 속내를 함부러 보이지 말고 돌려 말하라는 가르침, 그리고 이어진 암살자로서의, 그리고 한 종교의 교주로서의 두터운 가면이 '격식없는 솔직함'이라는 그녀에게 주어진 적이 없는 소양에 온 몸으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츠시타 린에게 허락된 솔직함은 신에대한 사랑과 적에게 날리는 칼날이 전부였다.
"당신에게는 정말 직설적으로 말해야만 소통이 될 것 같네요.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기분이 상했으니 가벼운 사례는 해달라는 거에요. 대신 이 일 가지고 지지부진 끌지는 않을것이고 묵인하도록 하죠. 약속할게요.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억지로 함께할 필요는 없고 당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오해해서 실례했다 표현해주세요."
업드려서 절받기도 아니고. 자신도 자신이지만 상대도 못지 않게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믿을 사람을 바라고 이곳에 들어오지는 않았건만, 단순한 협조부터 이리 복잡하게 흘러가면 어쩌자는 건지.
"아. 베로니카 씨랑요?" 확실히 그렇다면 시장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그런 곳은 아니지만. 가끔 동물을 판매하거나 생선을 잡는 곳이라면... 음. 피가 아예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생선을 잡는 곳일 때... 의외로 피같아보이는 것이 좀 있다고 생각하네요.
"저는... 이미 사서 구경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간식거리를 살까 했는데 정작 산 것은 머리끈이라니.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돌아다니실 거면. 구경할 만한 걸 알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외국 식품들을 파는 곳도 있고.. 고기나 수산시장도 붙어있으니. 초장집도 좀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제야 직설적으로 억울하다고, 직설적으로 기분 상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참나, 하고 어이 없다는 듯 말한다. 그래도 이런 모습이 아까 그리고 그 전보다 덜 귀찮았다. 신경도 덜 쓰이고 말이다. 화났으면 화났다, 기분 상했으면 상했다 확실하게 표현하는게 좋지 괜히 괜찮다, 아니다 같은 식으로 꿍 쳐놓고 나중에 와서 이랬다저랬다 하면 그게 더 귀찮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니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 좀 배워야긋다.'
토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짧은 대화였지만 온 몸에 진이 다 빠진다. 토고는 터벅터벅 교실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그녀에게 말한다.
"안 오나? 니 묵고 싶은 거 빨랑 정해라. 고거 사주고 내는 내 무을꺼 묵으러 가야긋다."
빈센트의 눈동자가 스윽 옆을 바라본다. 수산물 가게에서 한 손님이 고등어를 주문했고, 사장은 갓 잡아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수조에서 굳어있던 고등어를 꺼냈다. 정신을 차린 고등어는 펄떡펄떡 뛰며 자신을 죽이려는 명백한 운명을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장의 생명윤리는 사장의 생계를, 손님의 허기를 이길 수 없었고...
"네.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쾅! 도마와 칼 사이에 놓인 고등어는 대가리와 꼬리를 잃었다. 남은 것은 흘러나오는 피였다.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개불이 맛있다며 칼로 개불의 끝을 잘라 피와 내장을 발라내고 먹기 좋게 썰었다.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그것을 보았을 때 무슨 끔찍한 일을 할 지 알았고, 그렇기에 고개를 저었다.
"베로니카가 인간 외 동물 피에도 반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쎄요. 굳이 실험할 필요는 못 느끼겠습니다. 다만, 게임이나 노점상은 좀 볼만하겠군요.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5
"천만에 말씀. 나도 얻어먹게 될 건데 의리상 이 정도는 알려줘야지. 매운 걸 못 먹는 건 아니라니 또 다행이군. 덕분에 나도 간만에 돌돔 먹어보네."
알렌의 감사인사에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강산은 식사 준비를 마무리한다. 한국식 맑은탕이 되었으니 역시 밥이랑 먹는 게 어울리려나.
"잘 먹을게."
그러고는 한 술 뜨고서 한다는 말이, "천운의 티끌 맛이로군."이었다. 직접 사먹기에는 값비싼 생선일 터인 돌돔이 알렌의 손에 들어온 것이 오늘 서로의 첫 번째 행운이요, 알렌이 돌돔을 망치기 전에 강산이 온 것이 두 번째요, 마침 이 상황을 수습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식재료가 있었다는 것이 세 번째였으니...
"외곽이면 좋겠군요. 복잡한 중심가는 싫습니다통제 못할 변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고, 너무 피곤해지고, 그건 베로니카도 마찬가지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한을 따라간다. 그래도 한국인이 한국 지리를 아는 걸까? 아니면 빈센트가 이런 인간 활동의 단면에 너무 무관심했던 걸까? 배달과 백화점에만 익숙해졌던 빈센트는, 사진과 그림 속의 인상비평으로 접한 시장이 아닌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꼬치, 로띠, 타코야끼, 아무래도 옛날 대한민국의 전통시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 세계가 그렇듯 모든 것이 섞여들어간 인상이었다.
"장신구들도 있군요. 흠..."
빈센트는 몇 개를 바라보면서 눈을 돌린다. 이건 괜찮을지도, 아니면 안 괜찮을지도.
"확실하 간단하군요."
그리고 게임도 몇 번 즐겼다. 금붕어 건지기는 두 번 실패했지만, 그 원리를 안 이후에는 5번 넘게 성공했다. 다트 역시, 마도를 구현하는 빈센트에게 바람도 없는 환경에서 날개가 달린 소형 발사체를 명중시키는 건 너무나도 연산이 간단해서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포커판은...
"저는 돈 걸어서 잘 된 적은 없더군요. 그리고 그건 연산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변수는 통제가 힘드니까요." 줄일 수 있으면 좋을 때가 있고. 풀어둘 때 좋은 게 있는데. 지금은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지한입니다.
"전통적인 시장은... 좀 중심가에 있지 않을까요? 죽이나 전 종류를 파는 곳도 있고..전통 과자를 파는 곳도 있긴 할 겁니다." 외곽이기 때문에 새로이 지어질 때 다른 문물들도 자연스레 섞일 수 있던 걸까?
"저는... 글쎄요." 일단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잘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포커페이스-라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고. 간단한 속임수 정도는 알 수 있어도 작정하고 심리전이나 다 짜고 치는 거라면... 안 속는 게 힘들지 않을까요?
막... 타고난 감각으로 이새끼들? 이라던가. 천운으로 분명 속였는데 왜 이겨? 나 카산드라로 음 이러이러하군! 같은 게 아니라면...
"옛날에 포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의념 각성자는 안 받는다길래 이유가 뭔가 물었더니, 의념 각성자들은 사기를 쳐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의념 각성자인지는 묻지 않기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빈센트는 자신의 손목을 다른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때는 빈센트가 본격적으로 막나가기 시작한 시점이라, 적당히를 모르고 너무 저질러버린 탓에 모두가 불행해졌지.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의념 각성자를 못 믿겠다던 친구가 사기를 치더군요. 일반인 선에서는 정말로 놀라운 수준의 손논ㄹ림이었습니다. 제가 의념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성공했겠지만, 저는 그 친구가 그러는 것을 보자마자 그 친구 손을 잡았고..."
빈센트가 손을 꺾는 시늉을 한다. 손목이 뒤로 접힐 정도로.
"너무 빨리 잡느라고 힘조절을 못해서 손목이 뒤로 접혔고, 그 친구는 겁에 질려서 모든 것을 인정하더군요. 뭐, 그 다음은 경찰을 부를 것도 없이 그 포커판에 끼었던 이들이 모두 했습니다. 그 때 얻은 교훈이라면... 세상에 정정당당한 승부는 없고, 포커는 더욱 그러하다는 거였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금붕어 떠내기는 베로니카도 좋아할 거고, 다트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군요. 좀 더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 앞에 음... 재밌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