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어딘가의 어떤 정자 안. 강산은 그 안에 앉아 있었다. 그냥 노는 것은 아니고, 행주를 들고 무언가를 깨끗이 닦고 있었다. 바둑돌 한 세트였다. 앉아있는 강산을 기준으로 한 쪽에는 먼지나 진흙 같은 것이 붙은 듯한 바둑돌들이 다른 행주 위에 깔려 차례차례 닦이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는 먼저 깨끗하게 닦여있는 바둑돌 통 한 쌍이 깨끗이 닦인 바둑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둑알 중에서도 오염이 특히 심해보이는 것들은, 스테인리스 볼에 받아놓은 물 속에서 때를 불리고 있었다.
대련대회가 끝난 직후, 누군가는 이미 자신의 몫을 끝내고 뒹굴거리거나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린은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러 절차와 확인 끝에 마련된 대회인 만큼 실제로 상처가 남지는 않았지만 피로함은 지워지지 않았고 이후의 의뢰를 빙자한 명령이라던지 욕심만큼 잘 되지는 않았던 대련이라든지 여러모로 기분이 멜랑꼴리했다. 언제 자신의 기분이 순수하게 좋았던 적이 있냐마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작게 조소하다 몸을 일으켰다.
이어지는 자조를 조금의 우울함과 함께 습관처럼 곱씹다가 이래서는 되는 일이 없겠다는 이성의 경고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느니 주변을 돌아보기라도 하라 말한다. '주변, 어디를?' 온지 한달도 안된 그녀는 크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던져진 의문에 제대로된 답을 마련하기도 전에 이미 발은 익숙한 행로를 밟아 특별반 문 앞에 그 걸음을 멈추었다.
"...실례하겠사와요."
이전에 같은 장소에서 한 판했던 사람이 똑같은 자세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늘어진 분위기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때려치면 더 귀찮은 일을 저희에게 떠맡기겠죠. 유감스럽게도 UHN은 비영리기관이 아니니까요."
"마도는... 확실히 만능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아 물론 마도로 전능에 가까우려면 서유하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감상이 있는 지한주입니다. 개인적 감상이니 넘어가고는 그래도 독을 함부로 쓰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뭅니까.
"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한과 유하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과들은 딱 사진 찍어서 인별그램에 올리기 딱 좋은 이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정작 지한은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라(가지는 게 괜찮을 텐데도) 찍기 전에 먹을까. 하고는 포크로 콕 찍을까말까 고민하고 있군요.
별로 쉬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입 안에 고여 맴돌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결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괜히 부딪쳐 갈등을 일으키기도 귀찮은 마음과 한 마디 빈정대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고 그녀는 얌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강 답을 무마했다.
"대련 영상이 송출되었네요. 빠르기도 하여라."
별 감상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한 마디와 함께 대놓고 멀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밀하게는 보이지 않을 애매하게 떨어진 좌석에 앉았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지만 지금 아무도 없는데 시시콜콜하게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퀴즈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셨다고 들었는데,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보이나 정 우려되신다면 점령전을 기다리는 수 밖에요."
대충 앉아 다리를 꼬고 한 손으로 턱을 괴어 고개를 기울였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린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니 괜히 하나하나 계산하며 정신력을 낭비하는 대신 적당히 대꾸만 하는 편을 택했다. 어떻게 굴든 그녀 자신의 겉 모습은 잘 만들어진 가식덩어리의 허상이 아니겠는가.
"걱정으로 세월을 지세는 것도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이니, 남는 건 내기로 얻은 돈 밖에 없지 않겠어요? 신라 길드의 이주일군이 우승했더군요. 우승자가 아닌 비슷한 전투법을 보고싶으신 거라면 진 류군의 대련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이어요."
적당한 농과 적당한 정보. 늘어진 분위기에 끼어든 건조한 긴장감, 앞선 농담에 별스럽지 않게 웃으면서 내기에서 결승결과를 맞추었노라 대충 남들이 본다면 긴장감을 풀만한 말을 한다. 다음 영상이 자신의 기록을 촬영한 것임을 알아 부러 시선을 맞추지 않고 시청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듯 가만히 앉아 있는다.
"확실히 만능에 가깝지요." 하지만 그런 말은 마도 B는 되어야 제대로 영향력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라면서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다는 듯 턱을 괴고 바라봅니다. 물론 지한이는 마도 A를 달성하는 이에게 적당한 대가를 받고 넘길 수 있을까. 도 생각하는 걸까요?
"확실히.. 예쁘네요?" 공유받은 사진이 괜찮습니다. 라는 평을 한 뒤. 지한도 유과를 한 입 베어물자 제대로 만든 듯한 유과의 맛이 느껴지자 눈이 살짝 크게 떠집니다.
"맛있네요." 일단 당분이라는 점에서 먹고 들어가지만. 그걸 빼더라도 차랑 잘 어울리는 한과는 좋습니다. 그 외에도 약과나 떡 종류도 기대가 되는지 보는 눈이 약간은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참말로... 대화하기 껄끄러워 진다. 그냥 좀 편하게 말 하면 안되는 것인가? 자신도 물론 기는 사람 앞에선 기어간다지만 기고 싶은 상대도 아닌데 이렇게 대하기는 지친다. 그런데 이 아는 지치지도 않고 저렇게 대하니 참.. 쯧. 보면 볼수록 혀를 차게 된다. 그나마 이번 대련 대회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토고는 그녀의 가치를 인정하여 예전의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이 시작하자 하는 마인드로 대하는 것이지만
"누가 우승하든 상관 없고, 어차피 돈 건것도 아니고. 그리고 거너 전투법을 본다 한들 따라 할수있겠나? 사용하는 총도 스타일도 달라가 뱁새 가랑이만 찢어진다."
토고는 그녀의 반응에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그러다가 이젠 지쳤는지 에휴. 한마디의 한숨을 흘리고 대련 영상을 껐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헬멧 너머로 똑바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니 그럭저럭 하데? 그래서 내 제안하는기다. 손해 볼 것도 없고, 니 편하대로 하믄 되는 제안." "귀찮은 가식 집어던지고 니 말하고 싶은대로 말해라. 내도 니 신경쓰는거 귀찮아가 토악질 나온다. 서로서로 신경쓰고 귀찮고 지칠바엔 걍 파탄나든 말든 편히 지내는게 낫지 않나?" "니가 입만 산 아가 아니라는 거 대련 대회로 봐서 이런 말 하는기다. 입만 산 아였음 이런 제안 하지도 않는다."
"이런..." 손가락으로 유하의 볼을 콕 찌르려 합니다. 신속만 강화했군. 들키지 않고 콕 찌르기 위해 신속을 강화하다니. 너무 손해 아닌가? 싶어도 지한주가 원하니 어쩔 수 없다.
"글쎄요... 아주아주 멀다는 감만 듭니다." 그 멀다가 그냥 멀다가 아니긴 하지만. 지한은 어디 그. 아메리카 쪽에라도 있는 걸지도. 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니 맛있게 먹고 잘 활동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이거 반품하는 거가 더 일이 커질 느낌이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식품이고... 택배물류 대란 일어나면 의념 각성자도 빠지는 허브게이트로 인해 무려 복숭아가 7년이나 지나서 썩다 못해 곰팡이마저도 썩어 없어진 박스가 올 수도 있는데 이것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는 농담입니다.
언니! 하는 유하의 말과 노려봄에도 태연하게 유과를 바삭바삭 베어무는 지한입니다. 뻔뻔하군.. 하지만 정말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돈...이랑 기술이요?" 눈을 깜박입니다. 아 물론 주면 좋긴 하겠지만 직접적으로 돈이랑 기술을 주는 건 좀... 뭔가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는 지한...
"글쎄요.... 그래도 돈이랑 기술을 주는 건 어쩐지.. 묘한 기분입니다." 법적인 문제가 걸릴지 모를 일이니만큼. 지한으로써도 어쩔 수 없다. 지한은 약과를 베어뭅니다. 잘 만든 약과라서 그런지 결마다 조청이 아주 잘 배어들어있습니다. 차랑 마시니까 딱 알맞은 달달함.
"빠른 느낌입니다." 비조리면 더 빨랐을까.하는 의문은 들지만. 사실 조리가 조금 더 빠르지 않을까? 라는 지한주의 추측입니다. 그리고 준비를 하는 시윤을 뒤로한 채 스릴러물을 예정합니다. 그런 뒤에 안 쓰는 말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타인은 잘 알지도 모르지요. 라고 말을 하면서 드디어 시작이라는 듯 시작하라는 것에 틀면. 마치 진짜 영화관처럼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시작합니다. 시윤이 아마 비닐장갑을 들고 왔다면. 그걸 끼고서는 감자탕의 고기를 발라내려 하는 지한입니다.
"오..." 분위기는 상당합니다. 첫 장면부터 깜박이는 불빛 아래에서 어둑함을 살린 연출입니다.
문장의 내용에서 형식적인 예의는 지켰지만 정작 그것을 말하는 발화자는 심드렁하니 린 본인도 지금 여기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 반사적으로 반에 들어왔고, 대놓고 나가기도 뭣하여 영양가 없는 문답을 메마르게 교환하니 슬슬 물릴것 같았다. 물론 2년이라는 시간동안 쌓아온 그럴싸한 연기가 어디 가지는 않겠지만 그 전에 둘 중 하나는 자리를 뜰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다른 분들은 어떻겠나요. 지나친 겸손도 때로는 독이어요."
이왕 이렇게 된거 끝까지 자리에 남아 뻔뻔하게 방실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 자리를 지키며 벌써 지리멸렬한 상황극에 짜증이 났는지 의외로 거침없이 자기평가를 쏟아내는 그를 조금 놀랐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갑자기 왜 저러나? 예상되는 대화의 시작부터 싫증이 난건지, 대충 언제쯤 이 극이 내려갈지 배배꼬인 심사로, 그리 건전치 못한 즐거움 삼아 계산하다 그 뒤에 이어진 말에는 진심으로 자신의 귀가 제대로 들은 것인지 의심하며 헬멧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
작은 감탄사 뒤에 입을 꾹 다물다가 킥킥거리는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이 새어나오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머리칼로 얼굴을 가렸다. 웃음소리가 사그라들고 잠시, 그 상태로 바닥을 보다가 금방 고개를 들어 입만 웃는 얼굴로 똑바로 헬멧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웠으며 동시에 화가 났다.
"좋아요. 가식이라. 무엇을 가식이라 칭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 아무런 소득도 없고 얻는 것이라고는 지리멸렬한 대화밖에 없는 상황을 그만 두라는 것이면 그러도록 하죠. 그렇잖아도 격식을 차려도 무언가를 노리는 것 같다면서 있지도 않은 제 의도를 지레 추측하고 싫다는데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의미없는 기싸움을 이어가는 것도 재미없고 말이에요." "자, 이제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