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블러디 레드를 파괴함과 동시에 세븐스도 구출했다. 그만큼 위험한 일도 많았다. 이스마엘은 현장에 없었지만 가스로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블러디 레드 자체가 사람을 동력원으로 쓰는 것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난장판에서 대원과 구출할 목표, 그 어느 것도 죽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천운이다. 죽은 것은 가디언즈 병사뿐이었다. 이스마엘은 그 상황에서 익숙해지려 무진 노력했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컸다. 하물며 가디언즈 병사 중 하나는 살 수 있었음에도 죽었다. 이스마엘 때문이다. 손 발목이 뒤틀렸으니 어디 걷지도, 기지도 못하고 블러디 레드의 동력원이 되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스마엘을 저주했겠지! 꿈이 있던 창창한 사람이, 제각기의 소망과 기회를 품었던 소중한 생명이 이스마엘의 손에 스러지고 말았다. 이상향을 위해서 해낸 일이라고 해도, 이스마엘이 꿈꾸는 세계에 이런 전개는 없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지만,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상쾌한 바람이 부는 데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 당장 도망치면 상황이 나아질까? 그러면 언제까지 도망쳐야 할까? 계속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머릿속에 온통 들어찬 고민이 분주하게 생각의 끈을 이어간다.
"……아."
생각의 끈이 쉽게 끊어지지 않은 덕분에 누군가를 알아채는 것이 한 박자 늦었던 것 같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었다. 분명 같이 블러디 레드를 상대했던 일원이다. 그렇지만 이름도,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스마엘이 아는 일원이라곤 레레시아와 츄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지금 당장 답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입이 무겁지만 겨우 떨어진다.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스마엘의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처리가 되어 누군가와 진솔하게 대화하기엔 적절치 않았지만, 이런 대화는 썩 괜찮은 편이었다. 이스마엘은 마음을 다잡았다. 대화에 집중하자. 이대로 피해버리면 이 사람도 무안해질 테니까.
분위기가 무겁긴 했지만 인사 자체는 가벼웠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간단한 대화의 시작에, 그는 조금 느리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수고했다며 화답한다. 그나저나 선생님이라니,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처음이긴 하지만 생소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어떤 표정일까, 표정을 당최 읽을 수가 없는데다가, 목소리까지도 높낮이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기계음이었기에 더 그랬다. 이럴수록 오감은 쓸모가 없다고 해야 하나. 물론 행동의 세세한 부분을 보고 파악할 수 있을 테니 정말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은 직감에 의존하게 되겠지만.
"아, 저는 괜찮습니다. 부상이 심하지는 않아서요."
분명 어딘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타박상 정도에 그쳤다. 부상을 입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간단한 처치와 휴식이면 멀정하게 낫는다. 그렇기에 괜찮다.
"갑작스럽지만... 제 이름은 쥬데카입니다, 성은 뷔시카리오, 부르실 땐 편하게 리오라고 불러주세요."
만나자 마자 통성명, 어쩌면 정석적인 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네 이름을 조금 서둘러 이야기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한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려야 할 것 같았으니까. 또 다른 이유라면 그의 이름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얼굴이며 목소리며 제대로 알 수 없는 상대였기에 이름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들어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상황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활기차게 인사했을 텐데, 아직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는 못한 것이 흠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대화의 시작이다. 이스마엘은 깍듯하게 경칭을 올리곤 다시금 마음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상태를 내심 재고해본다. 아직 페이시 서비스가 눈 주변에 아른거리는 걸 보니 재머는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 같고, 옷은 찢어진 곳이 없으니 다행스럽게 수선을 맡길 일은 없는 것 같다. 파편에 스쳐 다쳤는지 뺨이 홧홧하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지만 얼굴이라 보이지 않으니 겉보기로는 멀쩡하겠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자신의 상태를 재고하며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셌더니 조금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심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겠지. 아마 죽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죽음에 대해 떠올리자니 또 다시 불안함이 덜컥 치솟으려 했지만 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다행스럽게 선을 긋는다.
"아,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리오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쥬데카 선생이나 Mr. 뷔시카리오라 부를 수도 있지만 본인을 명확하게 지칭해달라는 표현이 있었으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예의겠다.
"제 이름은 이스마엘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오 씨."
제법 쾌활한 모양새로 한 손은 악수를 건네듯 내밀고, 다른 손은 노이즈 사이로 사라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스마엘이 머리를 쓸어넘기거나, 잠시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등 제법 인간적인 행동을 했음을 시사할 수 있었다. 이내 손을 내리는 모양새 또한 자연스럽다. ……검은 장갑이라 다행이다. 피가 묻어나온 걸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임무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그가 네 이름을 듣고, 네가 주문한 대로 리오라고 지칭하자 고갤 끄덕인다. 그리곤 이어서 손을 내밀며 잘 자신을 이스마엘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너는 망설임 없이 손을 붙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악수는 좋은 거지. 이걸로 어느 정도 안면은 튼 거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어진 그의 말에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번이 첫 임무였어요. 네, 잘 풀려서 다행이죠."
적어도 아군 중에는 사망자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으니 충분히 성공적인 임무 수행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애초 목적이었던 세븐스의 구출도 완벽하게 달성했고, 블러디 레드의 무력화에도 성공했으니까. 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충 이 정도 즈음에 눈이 있겠지, 라는 감각으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너는 입을 열었다.
"이스마엘 씨,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부상이 있다면 의무실로 같이 가죠."
저도 자잘한 부상 정도는 있으니까요, 라고 덧붙인다. 그리곤 그가 긍정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을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는지 화제 하나를 꺼내본다.
"그나저나, 무지막지한 병기였습니다. 거기 올라탄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고지받았을까요. 아마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