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소개, 악수까지의 과정을 마치는 건 순탄했다. 이제 통성명을 나눈 레지스탕스 단원의 수를 세면 손가락 세 개를 접을 수 있게 됐다. 조금만 더 인사하고 대화하다 보면, 이제 한 손으로 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 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인터넷 루미큐브에서 AI가 아닌 사람과 매칭 됐을 때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긍정적인 의미로 만나본 적이 없다. 장족의 발전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 이상향은 가까워질 것이다.
"아군 중에서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아, 리오 씨도 최근에 입단하신 겁니까?"
가디언즈의 얼굴이 아른아른 떠오르는 것 같아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질 것만 같았다. 아니야, 이상향을 위한 일이었어. 지금은 대화에 집중하자. 가장 잘 하는 일이잖아. 눈을 감은 뒤 숨을 잠시 깊게 들이마시고 거꾸로 숫자를 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이스마엘은 당신이 살짝 미소를 짓고 자신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노이즈에 가려져서 얼굴이 보이진 않겠지만,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여기에 눈이 있다는 걸 안 걸까?
"저는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의무실로 같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신은 혼자 돌아가서 치료 받으면 되겠지만, 당신이 덧붙인 자잘한 부상이 마음에 걸린 듯싶다. 이스마엘은 의무실로 향하기 위해 당신의 옆으로 서듯 몸을 돌리더니,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찰나였지만 무언가 고민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장 충성스럽던 사람도 변절자로 모는 곳이 가디언즈일 테니까요. 아마 버림패로 썼겠지요."
말 그대로 얼마 되지 않았다. 도망쳐 다닌 것도, 이 곳에 도착한 것도, 에델바이스에 입단한 것도. 가디언즈에서 떠난 것도. 한때 동료라고도 볼 수 있을만한 이들의 죽음 앞이었지만 너는 흔들리지는 않았다. 각오하고 있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힌 건 아니라는 걸 위안 삼아야만 했지만.
"아, 그런가요. 네... 같이 가시죠."
작은 부상이라도 덧나지 않으려면 관리를 해줘야 한다. 치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간단한 처치로 끝날 만한 상처는 상처라고도 보기 애매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가 네 곁에 서곤 잠시 망설이자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그의 얼굴을 옆에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습이다.
"...그랬겠죠, 영웅이라고 떠받들어지지만 결국 그들도 세븐스니까요."
너는 과거에 과격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과 마주쳤던 걸 떠올렸다. 세븐스라는 이유로 학대를 일삼고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걸 즐기는 이들, 그들에게는 가디언즈라는 이름도 큰 의미가 되지는 못했겠지, 그저 주변의 시선을 조금 더 신경쓰게 됐을 뿐. 그 못마땅했던 표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너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 땐, 조금은 쓸모가 있구나. 라며 생각했었는데.
"아마 인명 피해는 우리가 낸 거라고 하겠죠, 아니... 어쩌면 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를 일부러 뿌렸지만 그 정보가 정말 모든 곳에 퍼졌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국지적으로, 우리같은 레지스탕스에게만 전달하려고 했을수도 있지. 그렇다면 이번 일이 실패한 이상 이 일 자체는 없었던 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더 나을까? 결국 죽어버린 이들은 죽어버렸다는 이유로 존재했다는 것조차 아니게 되는 걸까.
1.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억지로 가게 됐을 때의 생각은?」 좀 스트레스 받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참고 일이 끝나거나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게 될 때까지 묵묵하게 할일 한다... 평소보다 약간 짜증스러운 상태지만 크게 문제는 없을듯!
2.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을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시각-촉각-청각-후각-미각
3.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추악한 면을 직시하게 된다면?」 음 그렇구만... 정도? 평소에도 딱히 자기가 고결하지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도덕관념에 관해 대강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체감하지는 않아서 추악하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음... 어떤 의미에서는 멘탈이 참 건강하지...😇
겹치는 점이 있었구나! 이스마엘은 얼마 없는 공통점에 활기차게 답했다. 레지스탕스에 입단하게 된 사람은 대다수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성향은 다른 법이었다. 말투만 듣자면 이스마엘 제법 긍정적인 부류에 속할 것이다. 누군가 죽더라도, 공격 받아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과연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스마엘은 발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씩 내디딘 보폭이 결코 크지 않다. 당신의 걸음에 맞추듯 잠시 반폭 머뭇대더니 다시금 평균적인 걸음 속도로 변하는 것이다.
옆에서 쳐다봐도 보이는 것은 없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노이즈 너머로 잠깐 희미하게 보인 흰색 머리카락이다. 페이스 재밍 서비스가 연결 되었으니 사용자의 뇌파에 맞춰 여러 이모티콘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도. 아마 지금은 그렇게 보여줄 기분이 아닐수도 있고.
"세븐스라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도 있지만, 머리가 그만큼 인간적이란 뜻도 되겠지요."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마엘은 고통스러워 하던 표정을 다시금 상기했다. 분명 그 사람들도 가디언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괴로운 순간이 있었고, 꿈을 꾸었을 것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을 했을 것이며, 일어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 다행이라 생각되는 점은, 이들을 통솔하던 머리가 이스마엘이 생각한 만큼 비인간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역사에 적히는 건 위대한 사람 뿐입니다."
이스마엘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목에 걸린 무언가가 반짝였다. 목걸이 같기도 하던 그것은 옷깃 사이에 넣어뒀지만 격렬하던 전투 도중에 빠져나온 모양이다. 은색의 납작한 판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당신이라면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도 있다. 당신도 한때 가졌던 것이고, 이젠 버렸을지도 모르는 것.
"그리고 머리는 오로지 자신만이 위대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역사 속의 인간 또한 얼굴은 알고 있으나 신발 속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숨길 테지요. 썩어 곯았을지도 모를 것을 어떻게 남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겠습니까."
군번줄이다. 재머 너머로 담담하지만 희망찬 어조가 흘렀다.
"저는 그런 치부마저 보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에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