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발판을 한번 툭툭 눌러보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꽤 해봤던 게임이었는데. 솔직히 요즘 들어서 구경만 했던 기억이 있네요. 뭔가 남들 앞에서 하기에 부끄럽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도 없으니 괜찮겠다 싶어 다소 텐션이 업 된 상태로 미소지었습니다.
"흐음~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후회하면 안 돼~?"
그녀는 당신과 엇비슷하게 동전을 투입하며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긴 뭐가 걸려있으면 더 재밌는게 게임이니까요. 그러나 게임 내용 자체는 썩 좋지 못했는데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는것이었습니다. 꼬이기 시작한 스텝은 간신히 간신히 클리어 한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습니다. 고작 한 게임해놓고 숨까지 차고. 그녀는 나이가 들었음을 ㅡ 담배가 더 문제일거 같지만 ㅡ 실감했죠.
"으윽.."
점수를 확인해보니 이기긴 했지만요, 그녀는 세월의 야속함에 진지하게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게임을 하긴 해야하니까..
"이번엔 어떤걸로 승부?"
아, 처음 게임은 당신이. 이번엔 자기가 골랐으니 다음은 다시 당신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긴 모양입니다.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있는 것까진 아니지만 여러가지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다. 그러니 저가 몸치는 아니라고 자신했는데, 아무래도 그 방면으로 쓰는 운동신경과 리듬게임의 박자감은 달랐던 모양이다. 가볍게 시작된 화살표 노트가 속도감을 올리며 점점 화려한 배치를 이뤄간다. 점점 발이 꼬인다……. 하지만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끝까지는 가야지. 그는 이를 악물고 망해버린 판 위에서 열심히 발을 놀렸다. 그 발놀림이 심히 처참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적은 시간대라는 것을 위안 삼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이, *. 개 어렵네, 씨*."
천천히 숨을 고르며 화면에 떠오른 점수를 확인하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제 게임 하기에도 바빠 멜피가 하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그는 곧 혀를 차며 머리를 쓸었다. 멜피와의 점수차는 딱 몇백 점 차이였다. 감질나기에 딱이다. 다음에는 어떤 걸로 승부할 거냐 묻는 말에 곧장 발판에서 휙 뛰어내려서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걸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오, 저거 괜찮네."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것은 에어하키였다. 채 하나를 잡아쥐고 동전을 투입하자 철판 위로 은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퍽을 툭 밀쳐서 멜피에게로 넘겨주고선, 그는 특유의 뚱한 얼굴로 씩 웃었다.
"선공은 네가 해라."
여유를 부리는 것까진 아니고, 그냥 기분이다. 골 앞에 손을 두고 멜피의 행동을 주시한다.
이겼으나 전혀 승자의 얼굴을 하고있지 않은 그녀가 있었습니다. 리듬게임을 못하는 당신을 본다한들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생각보다 분해하고 있는 당신이 보였기에 뭐라 더 말하진 않았지만 적잖은 충격이었던듯. 아무튼 그녀는 당신이 에어하키를 고르자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선공을 주다니 상당히 자신만만하네~ 하지만 말이지."
그건 엄청난 실수야. 그녀는 이번엔 상당히 자신만만 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는데요. 정말 자신있어 보입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싶었지만.
"병력수는 2배. 패배의 요소가 없는 싸움만큼 즐거운건 없지!"
무슨 소리냐면... 그녀는 그림자로 또 하나의 손을 만들어서 예비용 채를 잡고 시작해버린겁니다. 이게 반칙인지 아닌지는 애매하지만 그녀는 당신이 자존심 때문에라도 승부를 무르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은 공격으로. 그림자 손은 방어로 돌리고 자신만만하게 웃었습니다. 승부는 간단하게 게임 디폴트 설정이었으므로. 어디 그녀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확실히, 느낌이 다르군요."
네게도 자격이 있다. 그 말을 하는 존재가 자격을 거론할 만한 힘이나, 그럴만한 초월적인 인식을 지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잖은가, 자격에 대해서 말할 '자격'을 지닌 존재라고는 있을리 없다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찾아갔을 텐데. 어쨌든 너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그가 네게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나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그저 스스로 위안삼는 데 타인의 이야기가 더욱 도움이 될 뿐.
"...그게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나요?"
다시는 없을 순간, 혹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을 하면서 너는 점차 느려지는 그의 발걸음을 알아채곤 마찬가지로 속도를 늦췄다. 어느새 시야에 잡힌 의무실.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눈에 띄게 또 쳐다봤다가는 뭔가 의심을 사겠지 싶어 시선을 무시한 채 걷는다. 똑똑, 하고 의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볍게 노크하는 그의 손으로부터 그제서야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노이즈 너머에 있을 얼굴은 어떤 느낌일까. 너는 그의 노이즈 낀 얼굴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의무실 내에서 노크에 대한 응답이 돌아오자 손잡이를 붙잡아 천천히 열었다.
"이스마엘 씨와의 대화는 꽤 즐겁네요."
신입이라는 동질감 때문일까요. 라고 덧붙이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이지만, 물어도 될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호기심을 가로막았다.
아직은 팔팔하고 멋모르는 나이─다른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라 그런지, 그는 멜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시간 많이 갔다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게 묻기만 하니.
그는 자신만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가 이제는 플래그로 굳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병력수가 2배라는 말에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 그림자 손이 불쑥 튀어나오자 경악해서 빽 소리를 질렀다.
"와, 미친 개 치사해!"
과연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승리를 위해 어른이 얼마나 치사해질 수 있는지 그는 미처 몰랐다. 저 역시 비슷한 수를 쓰지 않고 꿋꿋하게 맨몸으로 맞받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사실 멜피처럼 똑같이 능력을 쓰기엔 무엇하기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폭발 뿐인데, 에어하키에서 밀린다고 게임장을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가는 기물파손이나 오염 행위다. 보검을 쓴다는 선택지도 있기야 하지만 고작 이거 하나 이기자고 전신 무장을 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한 점도 내어주지 않고 무승부로 끝나도록 방어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고받을수록 점점 점수가 벌어졌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완전히 밀리게 되자 한켠에 밀어두었던 욕망이 귓가에 속닥거리며 유혹을 해댄다. 이렇게 된 거 하키판 통째로 날려버려? ……그렇지만 그랬다간 대장한테 깨질 것 같으니까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니 게임 결과는 두고볼 필요도 없이 뻔했다.
"……*, 일주일동안 너랑 거리 둘 거야."
참패다. 그는 못마땅한 투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삐졌다는 건가. 복수하겠답시고 떠올린 방법이 '너랑 안 놀아'도 아닌 기껏해야 끌어안기 거부라니 유치했다. 아무튼간에 이렇게 진 이상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다. 그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언갈 발견하고 그곳으로 척척 걸었다. 커다란 화면과 이런저런 버튼이 잔뜩 달린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가 설치된 방이 거기에 있었다. 다음 종목은 코인노래방. 치사한 방법을 썼으니, 이번에는 아예 세븐스나 다른 수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종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종목 선택도 양보하지 않은 건 봐선 꽤나 진심으로 토라진 듯싶다.
"존* 나부터 간다. 개같이 이겨주지."
그는 상당히 목소리가 고운 사람이었지만, 목소리와 노래 실력은 별개인 법이다. 아는 노래를 하나 골라 그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달려듬에 그녀 역시도 모조 보검을 불러낸다. 보검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형상 변환을 시킬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녀의 레플리카는 여전히 제 0 특수부대 개설 당시 처음 받았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에는- 고기가 붙어 살아있는 듯이 꿀렁거리면서 그녀의 세븐스에 침식 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기계를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이기에, 그런 식으로 보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동기화를 하여 힘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당신의 움직임을 쭉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 공격은 일단 뒤로 뛰어 물러나는 것으로 회피한다. 그러면서 한 편 등 뒤에서는 가느다란 고기 촉수들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늘어진 고기 촉수들은 그녀의 말에 따라 휘적거리며 당신을 포착하고 그대로 찔러들어온다. 무장을 통째로 꿰뚫을듯 날카로운 기세였다.
엔이 뒤로 거리를 두며 피했기 때문에 레레시아가 휘두른 클로는 바닥에 독액을 흩뿌릴 뿐이었다. 몽글몽글한 독액의 궤적이 바닥에 길게 그어지고, 그녀 역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한다. 그러나 틈도 없이 뻗쳐오는 고기촉수를 피해 빠르게 달려서 피하기 시작한다.
"이런- 무서워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무장의 힘으로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으므로 전혀 겁먹어 보이지 않는다. 무기를 클로의 형상에 유지한 채 달리다가 일순간에 독액을 다량 생성해 촉수가 뻗어오는 방향으로 막을 치며 뿌린다. 촉수가 아무리 빠르고 움직임이 날카로워도 뿌려지는 독액을 막기는 어려울 터. 촉수에 일격을 가한 후 레레시아는 달리던 방향을 틀어 다시 엔에게 근접한다.
"자, 엔- 생각하는거야- 너에겐 지금 힘이 있어. 기계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힘 그 자체야- 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쓸 수 있는 힘-"
처음 달려들기 직전. 엔의 모조 보검에 살점이 붙어 꿈틀거리는 걸 보고 엔에게는 모조 보검을 기계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좀 더 본능적인, 날 것의 느낌으로 접근하게 하면 어떨까. 사실 말이 보검이지 사용자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바뀌는 힘의 덩어리기도 하니까.
"넌 그 힘으로- 뭘 하고 싶어?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 거야-?"
짧은 사이 사이 마다 그런 말들을 던지며 방심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다. 독액을 듬뿍 머금은 클로를 빠르게 휘두르며 엔에게 파고든다. 그녀가 지나온 길,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 독액이 뿌려지며 언제 어디에 닿을지 모르게 정신을 분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