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녀석들'이라는 표현은 썩 알맞은 말이다. 그나 멜피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들 뿐이니까. 그가 특별해서 이리 된 것은 아닐 테다. 지금의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을 선사하게끔 만들어져 있으니. 다만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기준이 명확할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단지 그 불운의 순번이 불행히도 빠르게 찾아왔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겪어 결코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리란 사실은 뻔할 정도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못내 처절하리라는 법은 없다. 실실거리며 동의하고는, 한가하게 옷소매의 깨끗한 부분으로 얼굴에 묻은 검댕을 대충 벅벅 닦아대는 여승우를 보자면 확실히 와닿는다.
"인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존* 협박거리가 안 된다고."
멜피가 사람을 꼬셨다! 그런 말을 들어도 뭐… 그게 대수인가 싶고,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누가 숨 좀 쉰다고 그게 걱정할 만한 일인가. 그는 멜피의 플러팅이나 유혹 전반을 숨 쉬는 것 정도의 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영화는 보다가 처 잘 것 같은데. 나 씨* 지금 개 피곤해서 어두운 데 앉아 있으면 곯아떨어진다, 진짜로."
영화가 재미없고 말고를 떠난 사실이니 목적지는 오락실로 정해진 셈이다. 거기가 어디더라. 지나가다 한 번쯤 본 적은 있는데. 비슷한 걸음으로 걷는 멜피를 흘끗 쳐다보다 적당히 감을 따라 앞서 걸었다. 방향 틀리면 알려주겠지,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서.
"뭐… 그래서 인상 깊은 놈이라도 있냐?"
멜피의 눈에 귀엽게 보이는 사람이야 잔뜩이니 그 지점에서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랬었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누가 지나다니든 신경쓰지 않았다 보니 잘 모르겠다. 처음 보는 면면들이 있다는 느낌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마을은 넓으니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도 상관 없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이제는 팀으로 묶이게 되었으니 적어도 제0특수부대의 인원들은 확실히 알아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뒤늦게 든다. 이미 같은 부대원을 못 알아봐서 너 뭐 되냐는 헛소리까지 했던 전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갑자기 실감나는 연기를 했는데요. 그러고는 반대로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욕할거라면서 작게 웃었습니다. 실제로 상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아마 역겨워서 토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녀는 소매로 얼굴을 닦는 당신을 보다가 물티슈를 꺼내서 약간 묻어있는걸 닦아주었습니다.
"섭섭하네~ 조금은 여자로서 관심을 가질법한데."
우리 사이가 몇년째인데 실망이야 자기. 그녀는 명백히 농담조로 말하며 웃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헌팅을 시도한다면 그녀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 그 사람에게 헌팅을 할겁니다.
응?
"그럼 오락실이네~ 이번에 새로 기계들 들어왔다더라~"
오락실이라면 중간에 잠들진 않을겁니다. 그녀는 양궁이라던가 이런저런 새롭게 추가된 기계들을 말하며 기대된다는듯 미소지었습니다. 근래에 누군가랑 같이 가본적도 없었으니 더욱요. 그리고는 당신의 손을 잡으려하며 조금 재촉하듯 오락실을 향해 방향을 수정해주었습니다.
"응, 있어 있어. 엄청 귀여운애♡"
그녀는 조잘조잘 그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 설명하며 정말 기억에 깊게 남았는지 밝은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러다간 갑작스레 술이라도 마셨는지 입꼬리가 쭉 올라갔는데. 당신은 여기서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을겁니다. 이번이 처음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직후 당신에게 뽀뽀하려고 했습니다.
굳이 궁금해하지 않을 거 같다는 그 말처럼, 레이먼드에게 무슨 사정이 있든 알 바 없다. 각자 자기 사정 안고 살기도 빠듯한 세상이다. 이 와중에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굳-이 굳이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 지는 않겠지만. 글쎄?
"너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팔자 좋게 내뱉는 말에 맹하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영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다.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전에,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천천히 차를 입에 머금었다. 단맛에 길들여진 혀 위로 쓴 맛이 확 퍼지며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든다. 적당히 쓰고 적당히 정신 차리기 좋은 맛이다. 차를 좀 더 식히기 위해 내려놓곤 다리를 꼬았다. 뭉툭히 닳은 캔버스화를 까딱까딱 흔들며 레이먼드에게 쨍한 시선을 보낸다.
"시체를 챙기니 어쩌니이 그 이전에- 폭발이든 뭐든 임무 도중에 죽어버리면 팀이 멀쩡하겠어-? 우리가 무슨, 전문적 훈련을 받은 병사도 아닌데에. 팀원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다고 생각해서, 멘탈 무너지는 팀원 나올거라구우. 그럼 임무고 뭐고 나가리- 되겠지이. 너 하나 사라진다고 끝이 아니라구- 멍청아."
같잖은 에고이즘은 부디 팀 밖에서 해주길 바란다며 레레시아는 혀를 찼다. 그녀의 말들은 팀을 아껴서 라기보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팀이 무너지지 않게 존속시키기 위한 쪽이었다. 그러기 위한 걸림돌의 제거일까. 등을 완전히 소파에 기대고 머리도 등받이에 기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먼드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선을 넘나드는게 좋으며언. 내가 해줄게. 그 대련 상대. 정말 죽일 각오로 상대해줄 테니까아."
가늘어질수록 짙게 물드는 금빛 눈이 슬쩍 눈매를 휘고 입술 끝이 희미하게 올라간다. 웃는 것 같아도 전혀 웃지 않는 하얀 얼굴이 가면 을 쓴 듯 했다.
그는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양 시원하게도 웃었다. 눈썹이 아래로 늘어지며 특유의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가 흐른다.
"그래, 나중에 내가 돌아서 개소리 하면 뒤통수 한 대만 존* 세게 갈겨 줘라. 그때는 화 안 낼 테니까."
사람 생각이 언제나 같지는 않은 법이니 혹시나의 당부 정도는 해도 나쁘지 않다. 비록 여승우는 그가 가장 순진했던 그 시절에도 남의 사정을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지만서도. 당연한 일이다. 아주 옛날, 그의 세상은 자기 자신과 가끔 찾아오는 사람 하나만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낯선 판에 그런 섬세한 배려심이 있을 리가. 아무리 비벼봤자 마른 옷감으로는 깨끗해질 수가 없었다. 거울도 없고. 멜피가 제 얼굴을 닦아주자 그는 얌전히 복복 닦였다. 대충이나마 물로 훑어 내니 한결 개운해졌다. 머리나 몸에 묻은 건 아직 수습이 덜 됐지만 이것까지 정리하기는 귀찮다. 누가 본다면 담배로 불장난을 하다 들어온 사람 정도로 생각하겠지, 뭐. 그러고 보면 머리도 헝클어져서 엉망일 것이다. 그는 머리를 풀고 손으로 흩어대다, 멜피 쪽을 슬쩍 일별하고는 다시 제 할 일에 열중했다.
"난 그런 거 잘 몰라서."
농담에도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태도가 성의 없는 듯하면서도 성실한 구석이 있다. 머리 정리를 마치고 다시 묶으려 했는데, 손이 잡히는 바람에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빠르게 걸으니 어느새 주변의 풍경은 점점 번화로워지며 저편에 번쩍번쩍한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막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앞만 보고 걷던 그는 멜피의 표정을 한 발 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귀여운 애' 이야기가 암시하는 대화의 흐름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방심의 대가로 기습적인 입맞춤을 당해버린 그는―
"냄새 안 나냐?"
……별 생각 없이 팔을 들고 제 몸에서 나는 탄내나 몇 번 맡고 말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회적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짓궂은 장난에 질색을 하거나 쑥스러워 하기에는, 어떤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지도 체감하지 못하는 데다 해 가는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뭐가 문제냐는 주의다. 장난을 치기에는 영 재미가 없는 상대다. 그러기도 잠시였다. 그는 어깨를 대충 으쓱하더니 저 먼저 입구로 걸어가 버렸다.
"전부 네가 망쳤잖아! 어떻게 할 거야!" 쥬데카: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를 마지막으로 연락 두절, 이후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든가 하는 식의 뒷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네 말투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쥬데카: 글...쎄요, 조금 말 사이에 호흡을 섞는 버릇이 조금 있습니다. 방금처럼, 생각이 조금 많아서요.
"네 일기 한 장을 찢었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쥬데카: 죄송합니다만, 이건... 무례라고 생각합니다, 찢은 부분을 돌려주십시오, 이건 경고입니다.
요약된 걸 봤을때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분위기가 엄청나게 험악했네요... 저 상황을 보고 구해주다니 쥬데카 이 녀석 겁이 없는 거냐...! (사실 미사일을 막은 시점에서 정상적인 위기회피성향은 아님을 알 수 있음) 진짜 험한 꼴 당할 뻔했군요 아리아... 왜 영웅이라고 부르는지 확 실감이 되는 글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자신에게 쓸 수 없는 능력이라니. 마리 스스로는 제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능력이었기에 타인을 위해 능력을 쓴다고 해도 자신이 무언가 행동해야만 했다.
“이번 임무에 로봇도 나왔으니까. 뭔가 아리아 히로인 같아요.”
마리도 꽤 만화책이나 소설책 같은 것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뭔가 아리아는 능력도 능력이고 지켜주고 싶다, 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타인을 위해서 능력을 쓰는 사람이니까 타인의 입장에서도 지켜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마리는 쥬데카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영 잘못 짚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대장님 멋있어. 응. 나? 나는 원래 다른 레지스탕스에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지향점이 달라서 독립해서 나왔어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름 둥지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구.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구. 게다가 에델바이스는 비세븐스와의 화합을 추구한다고 해서.”
'히로인이라니. 그 말대로라면 쥬데카 씨는 주인공이 되버린다고요?(웃는 이모티콘)'(필담)
피식하는 웃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기력을 되찾은 것인지 필담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현실은 만화나 소설이 아니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히로인이라..딱 질색이야 지켜져야하는 꽃보다는 자유롭게 떠도는 구름 쪽이 내 성향에 맞으니까.
'다른 레지스탕스라. 뭔가 마리 씨도 고생 많으셨네요'(필담)
가볍게 손을 내밀어 당신을 쓰다듬으려 한다. 본래라면 닿지않았을 손이니 서로 앉아있다는 특수한 상황이 겹쳐서 가능한 행동이겠지.
적힌 것과 달리 웃고있는 표정을 보면, 웃기다고 생각한 것일까. 쥬데카씨가 우유부단한 주인공이라.. 어찌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쓰다듬을 받는 마리를 본다. 부드러운 감촉과 머리카락 특유의 살짝 쓸리는 느낌을 느끼며 마리의 체온을 느낀다. 쓰다듬이 끝나고 자신의 옆에 앉자, 싱긋하고 미소를 지어줄뿐이다. 그 외에는 이야기가 더 필요할까. 쑥쓰러워하는 마리를 신경쓰지 않고 다시 우유를 한모금, 응응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야-
'글쎄요..저는 별 생각이 없네요.'(필담)
내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평등? 박애? 그런 것은 상관없다. 내가 여기에 합류한 것도, 내 자유를 세븐스 차별이라는 사상이 침해하니 들어온 것이니. 만약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곳에 그들과 맞서싸우고 있지않았겠지.
마리의 과거사를 듣고 다시 그녀를 쓰다듬으려 한다. 우울한 과거사라, 레지스탕스에 든 이들 중 우울한 과거가 없는 이가 있을까. 스스로 정의라 생각해서 행한 일이 사실 불행의 원천임을 깨닫는 이도 있을테고, 체제에 대한 반발도 있을테지만. 자기와 같은 이유로 레지스탕스에 드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리 씨에게만 알려드리는거에요?'(필담)
대장님과 쥬데카 씨를 제외하고는 마리에게만 공개하는 아리아가 추구하는 이상, 호불호를 넘어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
>>149 남자부 최장신과 최단신이 만나는 건 그 자체로도 세상이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으음 상황은 역시, 정석대로 가볼까요! 마을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쥬데카가 데리고있는걸 제이슨이 발견! 함께 부모님 찾기를 하고 돌려보낸 다음 쥬데카 부모님도 찾아주려고 한다든가(???) 이 상황이라면 선레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자신과 달리, 라고 적는 아리아를 보면서 마리는 그녀를 동글동글한 눈동자로 바라본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는다. 어느정도 예상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세븐스로 태어나 버려지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세븐스로 태어나 숨겨져 자라는 경우도 많다고 했고. 부모의 미움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굉장히 아픈 것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마리는 더 묻지 않았다. 나중에 아리아와 더 친해지고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그 때는 아리아의 아픈 과거도 들을 수 있을까?
“자유?”
아리아가 자유라고 글을 적자 마리가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읽었다. 자유, 자유, 자유…. 마리는 몇 번을 그 단어를 작게 곱씹으며 생각했다. 아리아에게 중요한 자유. 아리아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었구나, 하고 생각해버린다. 누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누군가의 결핍과 맞닿아있다고 레지스탕스에서 만난 스승님이 말해줬었다.
“온전한 자유를 위해서 레지스탕스에 들어온 거구나. 되게… 멋있는 목표라고 생각해요. 나도 이 목표를 이루고 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어떠한 하나의 신념과 집념, 망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세븐스와 비세븐스와 화합하는 세상이 오면, 목표를 잃게 되면 그 때에서는 자유로워질까?
지금 너는 자그마한 광장(모순인지 아닌지는 둘재치고)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다가선 상황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울기 전에 먼저 말을 걸어본 셈이다.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게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살짝 무릎을 굽혀본다, 자신의 새카만 눈이 무섭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는지 눈웃음도 지어본다. 아이는 울음이 금방 나올 것 같이 울렁이는 목소리로 길을 잃었다고 이야기한다, 심부름을 나왔는데 중간에 예쁜 걸 보고 따라왔더니 길을 잃었단다.
"으음, 그러면 어떡할까... 이 주변은 처음이에요?"
아이는 고갤 끄덕인다, 어쩌지... 무작정 데리고 돌아다니기도 좀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는 점,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오늘 안에는 분명히 집을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너는 주변을 둘러봤다. 얼마나 여기에 있었던 걸까, 네가 발견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여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어요?"
그런 질문을 하면서 혹시 아이가 오래 서있어서 다리가 아프진 않을까 싶어, 잠깐 저기에 앉아있을까요? 라며 근처의 벤치를 가리켰다, 조금 망설이는 듯했던 아이는 고갤 끄덕였고 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아이는 손까지는 잡을 생각이 없는지 고갤 젓고 벤치로 달려가 앉았다. 너는 조금 의심받는 중이려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띄운 채 아이를 뒤따랐다.
마리가 고맙다고 아이스크림을 받자, 남자아이는 멀뚱히 그녀를 쳐다보다 다시 유루의 옆에 있던 여자아이에게로 향한다. 친한 듯 서로의 하드바를 한 입씩 바꿔먹는 그들을 보며 유루는 웃음섞인 한숨을 내쉰다.
“다음부턴 손부터 닦고 먹어라?”
아이 둘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다. 자신을 쳐다보는 마리의 시선을 받아 치지 않은채, 고개는 아이들 쪽으로 향한 그대로 마리에게 말을 건다.
“왜? 애들 다루는데 뭔가 부족한 점이라도 보여서?”
곧이어 눈동자만 굴려 마리를 응시한다. 당신의 시선은 관찰에 가까워서, 사실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다. 만에하나 당신이 그에게서 뭔갈 배우려 구경했던 것이였다면 그는 그걸 타일렀을 것이다. 헛똑똑이가 사람 망친다고들 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그가 아는 것은 별로 없고, 인지하는 것만 많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 팔로 아이를 안아올리는 마리를 가만 바라본다. 아이는 마리가 안아주자 마치 당연한것 마냥 마리의 목덜미 부근에 자신의 얼굴을 뉘였을 것이다. 아이는 마리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또박또박 읆는다.
“언니한테 고마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것 봐, 혼자 말 잘하면서.”
여자아이는 아마 속으로 저런 어른이 있냐며, 어째서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았던 것에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 작은 얼굴에도 드러나있는 생각이니 거의 100%로.
“그보다 아저씨라니, 맞는 말이라서 더 슬퍼.”
당신이 원하던 반응이 이것이였냐고 묻는듯한 조소. 그 비웃는듯한 표정을 하곤 손가락을 뺨에 대곤 주욱 내려본다. 마치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오는 제스쳐 마냥.
모두 칭찬 감사합니다 저 지금 고래춤 추는중~~ 선 얘기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유루주도 선 많이 그어요ㅋㅋ최대한 촘촘히 그어서 덜 보일 뿐...
>>134 보고...너무 기뻐서...링크를 눌렀는데요...얼굴과 피부색, 눈색, 머리색까진 승승장구...하다가 헤어스타일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찾아주셔서 감사하지만 원하던 헤어가 없어서 못 쓸거 같아요...승우주 사랑해...그리고 미안해... 내 작은 천사... 마음은 잔뜩 받을게요 감솸다...
그래도 승우 새 픽크루 볼수 있었으니 햄보캐요~~~~~귀염둥이 승우 인형 내줘라 내가 살게...
아리아의 말이 정론이었기에 마리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 멀게 느껴진 목표였으니까. 그 자유에 도달하기 전에 누구 한 명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되고 위험한 길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아리아에게 마리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마리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친밀한 사람에게 쓰다듬 받아서 좋았는데. 그러다 아리아의 육성이 들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들려오는 노래에 잠시 입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작은 미소를 만들어 지었을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마리는 아리아를 꼭, 끌어안으려고 했을 것이었다. 아리아가 몸을 뒤로 뺀다고 해도 서운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응, 고마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아 목소리 너무 예쁜 것 같아.”
배시시 웃으며 이내 빈 컵들을 가볍게 정리하고는 눈을 부빌 것이었다. 따뜻한 우유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미 수마가 밀려오고 있었을 테니까.
“아리아, 좋은 꿈 꿔요.”
그런 인사와 함께 마리는 휴게실을 나갈 것이었다.
/막레~~~!~!~!!!!! 아리아.... 너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상냥하고 착해....
품에 안겨오는 온기는 꽤나 묵직하고 따뜻해서 좋았다. 자그마한 키에 아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느낌이겠지만 말이다. 마리는 어느새 금방 다 먹어버린 아이스크림 막대를 버리고는 여자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도닥였다. 어릴 적 자신이 좋아했던 그 리듬으로. 아이스크림을 금방 먹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바깥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이 불안했고, 하지만 그것을 거절하기에는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고마워. 씩씩하게 여기까지 와줘서.”
마리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마치 자신이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뭔가 마음에 묘하게 울렁거렸다. 마리는 유루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익살스러운 제스쳐를 취하자 ‘쟤 왜 저래’하는 표정으로 그를 본다. 이내 그를 무시하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슈퍼 밖에 구경할까?”
마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슈퍼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따뜻했다. 비스듬하게 노을이 지고 있는 따뜻한 풍경이었을지도.
상황을 설명하지. 제이슨은 잠시 길로 산책을 나온 상황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묘한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뭐 어떤가. 시비 거는 듯한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됐고, 동경의 시선을 보내던 꼬마에게는 엄지를 한번 세워 주면 되는 일이었다.무엇보다, 오늘은 중요한 일을 하러 나온 거였으니까.
[한정판 드라마 CD의 줄을 섰다가,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쇼핑백을 든 제이슨의 눈 앞에 보이는 건 소녀와, 또 하나의 소녀. 아니지, 하나는 소년인가. 분명 이름이... 쥬데카 뷔시카리오. 그랬지. 옆에 같이 앉아있는 소녀와 나이 같은게 엇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20대인걸로 아는데. 설마 그쪽 취미는 아니겠지. 아니다- 그래 그. 그거지. 동안이란거니까. 아니, 지금 생각하던게 이게 아닌데? 잠깐, 머릿속이 이상해졌기에 조금 진정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두루뭉술한 답변. 기분이 좋은지 이 말을 뱉는 어조도 평온하게 들려온다. 애가 애를(?) 안은 꼴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듯, 고개를 그저 돌려버린다. 곧바로 남자아이가 그걸 보고 웃어버려 그도 조금 웃었지만. 등을 도닥임받던 여자아이는 자신의 쌍쌍바를 반으로 갈라본다. 기분이 좋아질 완벽한 비율로 나뉘어진 아이스크림. 마리가 아이스크림을 그리 빨리 먹은것을 보고 배고팟던가 싶었던 모양이다. 반 쪽을 마리의 입 쪽으로 살포시 갖다댄다, 먹으라는 듯이.
"네, 네 선장님-"
애들한테 말한걸 그가 답하는건 둘째치고, 별 감정 섞이지 않은 무뚝뚝한 어조로 그런 답을 뱉는게 조금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보고 먼저 나가라는듯 등을 톡톡 쳐 주고선 자신도 문 밖으로 향한다. 하늘의 색은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옅은 회색의 그라데이션. 오늘도 그가 보는 풍경은 미적지근한 무채색이다. 햇볕을 받으면 더워진듯, 코트를 벗어 대충 들고 서 있다.
"구경할 만한게 어디 있더라."
당신에게 물어보는 꼴을 보아하니 그는 이제 애들 통솔하는게 귀찮아진 모양이다.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당신이 아이들과 있을때 비추는 그 오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서일까. 그는 눈을 곱게 접어 웃고만 있다.
의자에 걸터앉은 여자아이를 보면서 미소짓고 있던 차였는데, 한 겹 어두워지는 시야와, 놀란 듯 자신의 뒤를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너 역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시야가 닿은 곳에는 그러니까 몸이 있었는데, 몸이라고 하는 이유는 네 눈높이에서 보이는 게 딱 몸통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전부 보이는 게 아니었기에, 너는 어쩔 수 없이 고갤 위로 들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니까... 네, 우연이네요."
얼굴을 보자 생각이 났다, 이 정도의 거구라면 딱 한 명 뿐... 에델바이스에 온 뒤에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 없이 그저 지나가는 모습을 몇번 보았을 뿐이었지만 그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는 않았다. 문제라면 네가 그의 이름을 정확히는 모른다는 점이었을까. 동료들 정보라도 좀 달라고 해서 열람을 할걸 그랬나. 남의 정보를 그렇게 사적인 이유(?)로 봐도 되는가 싶어서 하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누구에요?" "그게, 음... 내 친구에요, 키가 굉장히 크죠?"
아이가 혹시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애써 그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미소를 띈 채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그 역시도 에델바이스 소속이니, 마을 사람들과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네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맞춰, 자신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을 연 꽃무늬 셔츠에, 우락부락하게 돋아난 인공 근육. 뭐, 딱히 친근하거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만한 외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히 안 무서워 하는걸 보면, 의외로 대담한 꼬맹인가? 아니지, 무서워 하고 있을지도.
[그래. 쥬데카 뷔시카리오. 제이슨이다. 이름 모르고 있었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한다. 보아 하니 모르고 있던 거겠지. 3년이나 있었으면서 사람들이랑 교류가 적다니까 참, 이 조직도. [미아냐?] 아이를 보며 툭 한마디 내뱉는다. 뭐 그 외에 데리고 있을만한 이유가 딱히 없으니. 만약 그쪽 이유라면 엄청 때려주면 되는거고. 뭐, 그럴 일은 없지만... 팔짱을 낀 채로 나는 애와 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네. 제이슨 씨,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리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가 두어 번 정도 네 이름을 전부 말하자, 조금 더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의미로 이야기한다. 이름은 모르는게 당연했다, 이제야 일주일 정도 된 사람이었으니 관계를 쌓을 틈도 없었으니까. 문득 손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에 고갤 돌려보니 어느새 아이는 네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제이슨의 덩치와, 조금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한 쪽에 의지하는 걸까. 너는 아이가 겁먹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 그런 모양입니다. 부모님은 아마 집에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심부름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집을 찾아줄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왔고, 심부름을 보낼 정도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눈에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너는 고갤 돌려서 아이를 보며 물었다, 집 주변에 가면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묻자, 아이는 고갤 끄덕인다.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뱉는다, 애들 시야에 안 보인다고 온데간데 없어진 아까의 부드러운 표정이 꽤 가식적일지도. 표정은 그러해도 말투는 아까와 같이 평온한게, 기분은 아직 그대로인듯. 그렇게 퉁명스런 답을 하고 나서 무언가 다시 말하려 든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아니, 저럴 때는 없었어. 철이 일찍 든 편이거든."
눈을 마주치진 않지만, 그가 무뚝뚝히 하는 말은 진정성 있게 들렸을까. 자신이 사람을 저렇게 쉽게 믿고 경계를 늦추던 때가 있던가. 생각해보니 뒤늦게 그런 어린 정신머리로 돌아간 때는 있었다. 굳이 늦게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그저 침묵한다. 답지않게 나름 직관적인 답을 뱉고선 하는 행동은 별 거 없다. 사람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지만, 그게 맞는 말이었다면 그는 오래 전에 죽었겠지. 어느샌가 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리에게 되려 질문을 던져본다.
"네 어린 시절은?"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냐고 묻는 걸까, 어땠냐고 묻는 걸까. 여전히 불친절한 물음 끝에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묻는 것도 멍청한 짓이네, 잊어줘."
자신들과 같은 세븐스는 어린 시절도 제대로 못 보낸 경우가 더 많겠지. 그도 그렇고, 대다수가 그랬으니까. 굳이 트라우마를 긁고 싶지 않았는지 말을 회수하고선 다른 질문을 해 본다.
"너는 저 나이때 뭘 하고 싶었어?"
당신 쪽을 힐끗 보고선, 시선으로 아이들 쪽을 가르킨다. 요전에 있던 일을 겪었던 아이들 치곤 해맑아 보이는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 일을 잊을 정도로 즐거운 걸까, 아니면 늘상 겪던 일의 연장선이라 치부하는 것일까. 판단해봤자 그에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시선을 당신에게 옮긴다.
>>234 집착도...라 단순 수치로 따지면 꽤 높지 않을까 싶지만 정작 상대는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면 심하게 시무룩해지고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될지도 몰라요! 물론 상대 앞에서는 그런거 없으므로 절대 모를듯(?) 뭐어 지금 상태라면 그럴거라는 얘기에용!
[아니 뭐. 괜찮다. 버릇이라면 버릇이고. 뭐 좋아. 리오 형씨. 할 일은 다 했으니까.]
도와달란 말을 듣고, 문득 애 쪽을 보자 애가 옆의 상대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나 참. 역시 무서워한다 이거구만. 아무래도 좋나. 나는 쇼핑백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마 아가씨, 인형은 좋아하니.]
솔직히 거대한 근육질의 개조인간이 무기질적인 마스크로 쇼핑백에 손을 넣고 뒤적이는건... 뭔가 대단한 광경이었지만, 곧 꺼낸 것이 더욱 어울리지 않아서 놀랍다. 내 손가락 마디만한 분홍 솜인형은 열쇠고리가 달려있고, 소녀의 손에는 꼬옥 들어갈 만 했다. 열쇠 고리 부분을 잡은 채 아이에게 그것을 건넨다. 좋아하면 좋겠는데.
날 때부터 이 모양이었을 것 같냐는 말에 마리는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은 채 눈만 깜빡였다. 이어지는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은 왠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저 아이들도 철이 일찍 들게 될 것이었다. 저렇게 웃고 있어도 언젠가 이 현실을 알아채게 될 것이었다. 제 부모 형제는 죽었고 이 세상은 세븐스를 싫어하고 배척한다는 것을 말이다.
“철이 일찍 들었으면 첫사랑도 일찍 했겠네요?”
이 말은 조금 장난스럽게 묻는다. 괜히 불행한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루가 제 어린시절에 대해 물은 뒤 다시금 말을 바꾸는 것도 아마 유루의 어린 시절은 꽤나 암울하기 때문이 아닐까?
“으응, 나는 저 나이 때 가장 행복했었으니까.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사랑도 더 많이 받았고요. 만약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좀 더 부모님을 좀 더 많이 보고 싶고. 음,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친구를 더 많이 사귀고 싶었을 것 같고…. 그 때 친구가 한 명 밖에 없었어서.”
마리는 쥬드를 떠올렸다. 만약 세상이 비능력자와 능력자와 화합해나가는 이상적인 세계였다면 저도 쥬드도 친구를 더 많이 사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쥬드와 친해지지도 않았을까? 그건 싫을 것 같지만서도.
“유루는요? 저 나이 때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잠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호기심으로 불안감을 이겨낸 아이들은 다시금 잘 곳이 정해지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만나게 되면 울음을 터트릴까.
할 일은 다 했다며 아이 쪽을 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너 역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꼭 잡은 손이 눈에 들어와 조금 기쁜 듯 하면서도 네 앞에 선 그를 생각하면 또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가 쇼핑백을 뒤적이면서 소녀에게 인형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오자, 인형을 줄 생각인 건가 하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꺼내진 건 인형, 그의 모습과는 조금...이질적인 느낌의 귀여운 인형, 그는 그걸 소녀에게 건네고 있었다.
"응, 좋아해요."
인형을 좋아한다고 대답한 아이는, 그가 건넨 인형에 눈을 반짝이며 손으로 받아들었다. 좋아하는 인형인가? 아니면 그냥 귀여워서 그런 걸까, 기분이 좋아진 듯한 아이는 어느새 네 손을 놓고 그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덥썩 잡았다. 상당히 높이, 그러니까 자신의 머리보다 높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손을 덥썩 잡고는 올려다보면서 눈을 반짝인다.
"인형 귀여워!"
너는 어느새 비어버린 손을 보다가, 소녀가 그의 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걸 보며 미소를 띄웠다.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구나.
"으음, 뭔가 사러 온 것 같으니, 그 물건을 파는 곳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익숙한 길도 찾을 수 있겠죠."
답지않게 말하던 도중 말을 끊는다. 마치 아까 들었던 질문을 되새기듯이. 첫사랑?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곳으로 잡담이 튀어 짧은 웃음을 터트린다. 한쪽 눈을 감고 당신을 쳐다보며 답하는게 마찬가지로 조금 장난스러워 보인다.
"첫사랑은 남들 하는 시기에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가 한 15살 즈음이였었나. 풍경을 그릴 때마다 그 친구도 그려넣고 있더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랑이였는지, 집착이였는지 구분도 애매하지만."
더 듣고 싶다면 호응 열심히 해보라고 덧붙이고선, 당신의 답변을 조용히 들어준다. 뭔가를 생각하던 것도 잠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침묵은 말마디로 변한다.
"그렇구나."
짧은 호응을 하는 말은 조금 내리앉은 톤이다. 그걸 이어나가듯 들려오는 말은 가볍고 부드러운 어조.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의 높낮음일까.
"그때도 사랑받았으면 지금도 사랑하실거야.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못해도 이런 건 변질되지 않는다잖아?"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하는 말은 예상치 못한 연민이 담겨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다시 입을 연다. 시선을 천천히 당신 쪽으로 돌리며 하는 말은 가관이였을까.
"친구는 이곳의 친구가 더 나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비능력자와 친구관계를 맺고 싶었었니?"
친구가 한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이라 한 것을 토대로 당신이 비능력자들과 더붙어 지냈었다고 짐작해 본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일거다. 당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지자, 그는 다시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아이들은 피곤해졌는지 가만히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밑에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엄청난 떡밥같은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로벨리아가 될 수도 있고 유루나 이스마엘 같은 대원이 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사탕준다고 따라가지 말라는 거랑 비슷한 거니까요~! 왜냐하면 엔이 함부로 따라갔다간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 (ㅋㅋ)
저 인형은, 자주 보던 어떤 만화에 나오는 토끼 모양 로봇의 인형이었다. 토끼 모양 로봇이라 해도, 털도 복슬거리고 귀여운 원피스도 입고 분홍색이지만 말이다. 뭐, 흔히 분류하는 슈퍼 로봇이란 거겠지... 만, 애가 그걸 알 필욘 없고. 좋아 하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좋은가? 싶었다.
물건 파는 곳을 찾아보자는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면, 감각이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애가 손을 쭉 뻗어서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따뜻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차가운 손에, 잠깐 회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애는 좋아하지 않나. [상관 없겠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회수할까 했지만 처음부터 회수하게 두진 않을 마음이었나. 역시 가디언즈는 벅찬 녀석들이란 말이지."
로벨리아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블러디 레드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보고 있었다. 이송 열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세븐스를 붙잡아서 에너지 착취를 하고 움직이는 변신 로봇형 신무기.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은 둘째치고 세븐스를 붙잡아서 에너지 착취를 한다는 발상이 그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착취가 된 것은 전원 다 가디언즈 병사인 것으로 보아 이 신무기를 만든 이는 아무래도 피도 눈물도 자비도 없는 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표정을 찌푸렸다.
'일단 제 0 특수부대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신무기마저 어느 순간 만들어서 투입하고 있는 것이 저들이라면 이쪽도 더욱 경계를 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로벨리아는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허나 조금 머리가 아픈지 오늘의 일은 이 정도로 하기로 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 2층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가고 모퉁이를 걸어가는 와중, 순간적으로 누군가와 부딪칠뻔 했으나 그녀는 겨우 피하면서 바로 보이는 이에게 사과했다.
사람의 손이 딱딱한 이유는 굳은살 때문이라고 배운 건지, 제이슨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그렇게 물었다. 그저 궁금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의문을 묻는 눈은 티 없이 맑다. 너는 그 말을 듣곤 어째서 그의 손이 딱딱할지를 생각해 본다, 굳은 살 같은 건 아니겠지. 그의 무기질적인 표정과 피부색,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건...
"하하... 일을 열심히 하시나 봐요."
웃음과 함께 그럴듯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려고 하면서, 너는 곧 움직이려는 듯한 제이슨과 소녀의 곁에 섰다. 이제 어딘지 찾으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작긴 하지만..." "응! 탈래요!"
인형 하나로 벌써 거부감이 싹 사라진 건지, 아니면 그에게서 어떤 걸 느낀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어깨에 탈 거냐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아마 호기심이 동한 부분도 있으리라. 반면 너는 어쩐지 작다는 걸 확실히 인정해 버리는 데다가, 어린이도 아닌데 어깨에 올라탄다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들어 대답을 망설였다. 확실히 그는 키가 크니까, 어깨에 올라가면 훨씬 멀리까지 보이겠지만...!
에델바이스. 노래 이름이기도 하고, 어떤 꽃을 뜻하기도 하며, 소년은 꽤 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어느 집단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별로 단 맛은 나지 않았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태풍에 맞서는 한 떨기 꽃과 같은 이곳에 자리한지도 어언 반 년 하고도 2년. 소년은 이 작은 마을에서 고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익숙해진지 오래였고 이 주변의 풍경을 몽땅 캔버스 위로 옮긴 지도 오래였다. 그리고-
-달칵.
"..."
붉은 에델바이스를 그려내어 아지트에 장식하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좀 흘렀다. 처음에는 상징이 붉은색 에델바이스이길래 그려뒀던 것이다. 다만 완성된 그림이 소년의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자신을 구해준 곳의 상징을 그린다는 일은 꽤 끌리는 일이라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다. 지금도 완성된 그림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 복도 한 구석에 세워둔 참이었다. 심지어 이번 그림은 꽤 세로로 긴 그림이라 눈에 띄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양화라는 점에서 더더욱.
넘어지지 않게 공을 들여 세워둔 그림을 좀 거리를 두고 보고자 했던 소년은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힐 뻔 하였다. 훌륭한 반사신경을 보여 안전을 확보한 그 사람은, 그가 속한 특수부대의 대장이었다. 소년은 그녀를 검게 가라앉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딪치진 않았으니 괜찮을까. 그제야 그녀는 제대로 자신과 부딪칠뻔한 이를 바라봤다. 그가 누구인진 금방 알 수 있었다. 제 0 특수부대원 중 하나이자 에델바이스가 구조한 이가 아니던가. 세븐스의 비애를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자연히 근처 벽에 걸어둔 붉은 에델바이스를 확인했다. 이전부터 이런 그림들이 장식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그림도 네가 그린거겠지? 잘 그렸어. 화풍이 꽤 특이한데. 동양의 것이었던가. 이건."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보기 힘든 그 화풍을 바라보며 로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많이 본 느낌은 아니었기에 괜히 더 눈에 담던 그녀는 이내 조금 삭막한 목소리를 냈었던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고 나서 2년 반. 조금은 마음을 놓을 곳이 되었나? 널 보면 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떠올라서 말이지. 그래서 괜히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귀찮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야."
아스텔과 에스티아. 두 사람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눈동자에 동정은 없었고 특별히 더 걱정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다른 이와 똑같이 바라볼 뿐. 단지 그 뿐이었다.
시원하게 웃는 당신에게 은근슬쩍 정당하지 않은 딜교를 한 그녀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런거에 걸릴 사람이 아니니 맘놓고 하는거겠지만요.
"싸우면 더러워지는건 누구나지만, 역시 능력때문에 더 하네."
그러던 그녀가 꺼낸 말은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역시 목욕하고 다시 만나자고 할걸 그랬나..도 싶지만. 장담하는데 둘 다 씻고 그대로 자버릴겁니다. 적어도 그녀는 확실했죠. 그것을 알기에 허튼 생각은 접어두고 그녀는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흔히들 냄새 제거제라고 쓰는 그것입니다. 다만 허가없이 뿌리지는 않고 당신에게 쓰겠냐는듯 앞에 내밀어 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이 다니는건 문제가 없지만 이런건 본인이 느끼는게 문제니까요. 머리를 매만지는 당신의 모습에 그녀가 확신한것이었습니다.
"냄새~? 나는 너라면 부둥켜안고 굴러도 괜찮은데?"
이런말하기 미안하지만 동료들중엔 피냄새, 철냄새, 화약냄새 같은건 그냥 패시브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녀에게 그러한건 문제가 되지도 않기에 당신의 질문에 그저 미소짓는 그녀였죠. 다만 냄새제거제를 꺼내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어코 뽀뽀를 성공한 그녀도 그녀였지만. 별 반응이 없는 당신도 당신이었기에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 ㅡ 연기입니다 ㅡ을 지었습니다.
"우~"
뭐 그것도 잠시. 당신을 따라 오락실로 들어가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사람이 많지는 않아보였지만요.
"하고 싶은거 있어?"
어쨌건 자신이 끌고온거나 다름없는 제안이었기에. 그녀는 당신의 취향부터 먼저 물어봤습니다. 당신이 딱히 아무것도 없다거나 하는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녀의 오락실투어에 참가하게 되겠죠.
본디 그녀는, 레레시아는 남의 개인사에 깊게 참견하거나 말을 얹거나 하지 않는 타입이다. 이 사람이 그렇다면 아 그래. 저 사람이 그렇대도 아 그래. 좋게 말하면 포용력이 넓은 수긍을, 까고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마인드를 가진 인간이다. 그렇기에 누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그 앞에서 하품 할 정도의 반응만 내보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화가 난다. 한모금 밖에 마시지 않은 차가 속에서 끓는 것 같았다.
"...왜일까..."
눈을 감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자문자답이었다. 왜 이렇게 속이 끓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기에,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고 곁눈으로 레이먼드를 주시한다. 스으- 작게 숨을 들이쉬고 평소의 말투를 버리고 따박따박 쏘아붙인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왜 여기에 들어왔지? 여기 사람들이 너처럼 죄다 죽으려고 모인 사람들처럼 보여? 그렇게나 죽음이 좋으면 어디 과격파 레지스탕스나 가버려. 그래. 지금 같은 때에 한 명 쓰러졌대서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지. 결국 무뎌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건 그렇게 보이겠지. 당장은 그렇게 버티겠지만 그게 계속되면? 설령 모든게 계획대로 끝나고 세븐스의 권리와 평화를 되찾았다 해도 이미 몸도 정신도 전부 망가져 있으면? 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남은 생을 PTSD로 보낼지도 모른다면? 머리 없어? 그 정도 생각도 못 해?"
그녀의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신경 긁을 말들을 대놓고 쏟아낸다. 그럼에도 찻잔을 드는 행동은 우아하고 차분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네가 혼자 어디서 나자빠져 죽던 어쩌건 관심 없어. 그런데 네가 지금 혼자야? 여기가 과격파 레지스탕스야? 아니잖아? 그럼 최소한 혓바닥과 주둥이 관리 정도는 해. 세치 혀로 팀원 인생까지 조지지 말고."
달카닥. 말을 마친 레레시아는 식은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들고 왔던 것들을 챙겨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짜증을 냈나 싶을 만큼 맹-한 얼굴로 돌아와, 어깨를 작게 으쓱인다.
"피냄새가 여엉 거슬려서어. 방으로 돌아갈래-"
안녀엉.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서 문으로 간다.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휭 나가 개인실로 돌아가겠지.
//레이주 혹시나 기분 나쁘면 말해주구... 이걸로 막레 해도 되고 따로 막레 달아줘도 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소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주시했다. 사람이 지닌 색은 그 사람의 인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푸른색은 청명한 느낌을 주고, 금색은 예전부터 화려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이 떠오르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주인을 꽤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무작정 강렬하게 타오르기보다는 적절한 화력 내에서 앞을 밝히는 느낌이 든다면, 소년은 너무나 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예."
칭찬이 담긴 말에 대한 답은 간결한 한 글자였다. 그 뒤, 무언가 고민하듯 슬쩍 시선을 내렸다가 "소년이 감사를 전합니다." 라는 기묘한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를 끝내고 나서, 그녀의 걱정 섞인 말이 소년을 향했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 그는 지나가며 보았던 그 두 사람을 떠올리고, 곧 소년 자신을 되새겼다. 무슨 의미일지 대충 알것 같았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이런 세상이니까 차라리 꽃밭인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절망에 젖어서 쓰러져있는 이에게 필 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어때? 나름 시적이었나?"
작게 웃긴 했으나 영 자신이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괜히 무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물론 시나 그림 이런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 자신은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대장 중 하나였다. 너무 시적인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긴 붉은색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그건 그렇고 천성이라. 난 너와 처음 마주한 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꺾인 건 아닌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어. 구출한 세븐스는 대다수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이니까. 살았지만 산 존재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지."
그와의 만남은 어땠던가. 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잠시였다. 뒤이어 그녀는 말을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봤다. 그의 세븐스는 아마 저런 그림과도 관련된 것이었지. 물론 발동만 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그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음에 나도 한 장 그려줄 수 있을까? 혼자로 아쉽다면 우리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에스티아도 부르도록 하지."
당신이 음료를 마시는 방법이라 하기에는 조금 특이한 행동을 보이려 하던것을 도중에 그만두자, 당신을 향해 옅게 미소를 띄며 자신은 신경쓰지 않을테니 편하게 하라는 듯한 손짓을 보낸다. 정말 순수하게 저렇게 먹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눈빛을 띄며. 게다가 그녀와 비슷한 방법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도 그런적이 있는 것 마냥 익숙한 식사방식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있었다.
당신이 음료를 순식간에 전부 다 들이키자 뭔가 자신이 마시는 걸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빨리 마셔야 된다는 생각이 든 걸까, 자신도 캔을 치켜들고 입 안에 내용물을 깡그리 다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딘가 부잣집 아가씨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외양을 하고 있는것과 상반되게 중간에 멈추고 삼키는 행동도 없이 정말 한순간에 캔 안에 들어있던 음료를 전부 마셔버렸다(본인에게서 거북한 기색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캔을 다 비우고 나니, 그제서야 쭉 서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쯤 물러나 당신과의 거리가 벌려졌다. 비록 눈은 여전히 당신과 마주치고 있는 채였지만.
"네? 그렇죠. 이번 임무 수고하셨다는 의미도 있고, 아무래도 배가 고파보이셔서..."
그 직후 날아온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잠시 말끝을 흐리고서,
"전 사실 음식이든 물건이든 받은 기억은 있는데, 어째 제쪽에서 남에게 줘본 기억은 없거든요.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달까?"
라는 답을 주었다. 그녀는 꽤 기억력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논외로 돌리면, 뭐든지 정말 타인에게 받은 적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녀가 미덕이라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베푸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녀도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 했던 적은 많았지만, 전부 어떤 방식으로든 거절당함으로서 항상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혹시 엔씨가 괜찮으시다면, 같이 매점이라도 가실래요? 원하는 건 다 사드릴게요!"
당신이 평소에 먹는 양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당신의 만류로 집어들었던 지갑을 마치 보여주듯 다시 꺼내들었다.
소년은 그다지 농담이 통하는 상대는 아니다. 갸웃거리며 아예 "시를 좋아하십니까." 하고 묻는 걸 보면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흉터가 눈에 띄는 장신의 여성이 한가롭게 시를 읊거나 시집을 읽는 풍경을 떠올린 그는, 그건 꽤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모델로 삼는 그림을 그리다면 그게 좋겠다.
그녀가 말한 처음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 소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이가 미워하는 이를 단 한 명이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마지막에 그는 소년에게서 등을 돌렸다. 소년이 붉은 꽃과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아마 크게 다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마지막에 보였던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슬퍼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지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내가 남겨두었던 그림은 발견했을까. 멀쩡하면 좋겠지만 찢어졌을 지도 몰랐다. 아무튼 보기만 했으면 좋을 텐데. 자신작이었다.
"세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온갖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려내는 그림입니다. 지독하고, 날카로운 작품입니다. 여즉 수많은 사람들이 어둡고 거칠게 붓과 칼을 휘두르고있습니다만."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고르듯, 느리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색채가 없었으나, 누군가는 기묘한 반짝임을 느낄 지도 몰랐다. 검게 가라앉은 소년에게서 천천히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질 지도 몰랐다.
아이의 질문에 애고, 어깨야. 하며 어깰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뭐 반 이상이 기계니까 어깨가 결리거나 하진 않지만... 가끔 힘들 때도 있으니까 뭐, 열심히 일했단 말도 사실이고. 그리고, 탈래요! 하는 아이의 말에. 싱긋 눈웃음을 짓는다. [잘 잡아라. 머리카락은 말고.] 라 말한 나는 아이를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왼쪽 어깨에 태웠다. 너무 높은가? 도 싶었지만, 태워달랬으니 뭐.
[음?]
그런데, 이 녀석은 안 온다 이거지. 어깨에 올려둔 아이는 좋아하면서 내 팔을 탁탁 치고 있었다. ...조금 장난기가 생겼다. 키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나? 그러면- 나는 그의 허리를 손으로 척 잡아서, 거의 반 억지로 남은 오른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싱긋 웃었다.
"옛날에는 좋아했었지. 꽤 즐기기도 했고. 뮤지컬도 즐기고 그림도 나름 즐겼지만 옛날 이야기야."
대체 그 옛날은 언제인 것인지. 이제는 아련한 어느 날을 떠올리듯이 로벨리아는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아마 그 관련으로 뭔가를 물어도 로벨리아는 답변하지 않을듯 했다. 설사 그래도 묻는다면 이제는 옛날 일일 뿐이라고 더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테고. 아무튼 이어지는 그의 생각을 가만히 들으면서 로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리면 된다라. 모두가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정말로 멋진 표현이었다. 세상이 이러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에 아주 멋진 예술가가 될 씨앗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절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네가 그리고 싶은 새로운 그림은 어떤 풍이지? 정말로 순수하게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 말이야."
그가 비유적으로 표현한만큼 로벨리아 역시 비유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딱히 탓하거나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냥 이 사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어떤 세상일주 궁금한 탓이었다. 한편 그의 제안. 시집을 한 권 가져와줬으면 한다는 그 말에 로벨리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시집 말이야?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 하지만 전술책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있긴 한데 그런 것은 곤란한가?"
설마 시집을 열어서 그 내용까지 다 그리진 않을테고. 어쨌건 책이면 되지 않겠냐는 물음을 꺼내면서 로벨리아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만약 안된다면... 서점에라도 갔다오도록 하지. 시집을 사는 것은 꽤 오랜만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시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46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가 마리주를 웃겼다 나는 마리주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어 마리 귀여워! 그리고 에델바이스의 마리도 귀여워 내가 저 짤 보고 이거다! 했던게 사실 마리랑 일상 할 때 고양이 모습 같기도 해서 ㅋㅋㅋㅋㅋ 아무튼 마리는 다 귀여움~~
자세히 묻지 않고 납득한 채 넘겼다. 이런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레지스탕스들의 과거는 어둑하기 마련이었다. 세븐스인 이상 행복한 인생이란 수평선 너머에서 언뜻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가디언즈의 생각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소년은 그들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길 사냥개로 태어나는 인간은 없었다.
"소년은 파스텔톤에, 평화로운 동화풍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소년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대충 보고 흘리듯 들어도 이상을 꿈꾸는 말이었다. "다만.." 그렇게 고민하듯 말끝을 늘인 소년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려 하며 말했다.
"저 혼자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큼 상의가 필요하겠군요."
세상을 향할 그림 도구를 쥔 사람은 소년 하나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금도 함께 붓을 휘두르고 있었다. 더 나은 그림을 위해, 자신을 향하는 팔레트나이프에도 굴하지 않고.
"좋아하시는 책이면 사실 뭐든 좋습니다만."
그리고 그녀에게 전술책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소년은 느릿느릿,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며 말했다.
"제가 이번에 그리고 싶은 건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어차피 모델이 되어 주시는 동안에 일은 못하실 테니, 오랜만에 취미를 즐기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모습에 아이는 신기한 듯 웃었다. 그리곤 어느새 어깨 위, 평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라서도 아이는 무서워하기보다는 신기하고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웃는 낯으로 팔을 탁탁 치는 걸 보면. 너는 한참 위로 올라선 아이를 올려다보면서 기분이 좋은 듯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순간 몸이 붕 떠오를 때까지는.
"으아아?! 잠시만요!"
갑자기 발이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붕 떠오르자 너는 당황한 듯 소리를 냈다. 어느새 시선은 평소보다 한참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보통은 앉지 않는 남의 어깨에 앉은 채로 너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 잠시만요! 저는 안 탄다고...!"
그러나 너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달려가는 그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붙잡은 그의 팔을 생명줄인 양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거 생각보다 무서워!
어지간하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 그것을 바란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었다. 다시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가 없어지는 미래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었다. 응원해줄 마음도 있었고. 물론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엔 핏빛 장미. 블러디 로즈라는 조직을 만들어볼까.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며 로벨리아는 소리없이 웃었다.
"상의는 필요없어. 네가 원하는 그림이 있으면 그리면 돼. 그 모든 그림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이루게 되겠지. 붉은 에델바이스는 그런 미래를 위해서 만든 조직이니까.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위한 힘이지."
그러니까 죽지 마라. 메르헨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로벨리아는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떠올리면서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묻고 싶다만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오랜만에 취미를 즐기는 것이 좋다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일까.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에스티아가 가만히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로벨리아는 조심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그... 그림 모델로 있는데 기계를 만지거나 하는 것도 허용되는건가? 에스티아의 취미는 그런 쪽인데."
잠시만요! 라던가, 저는 안 탄다고... 하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남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 아첨하지 않는다, 모르는가!] 나 자신도 뭐라 하는건지 모를 말을 하면서, 나는 양 어깨에 사람 둘을 태우고 이런저런 곳으로 돌아 다녔다... 그리고 한 30분인가 1시간 됐나. 난, 한쪽 어깨에 있던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주고,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어이, 괜찮나?]
그리고, 아직 한쪽 어깨에 그대로 태우고 있는 너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면 엄청 힘들어 하거나, 흔들리거나, 눈이 돌아가려 하던데. 아직 살아 있으려나.
뽀뽀해주기, 라는 말에는 그도 당당하게 못 들은 척을 한다. 당하는 것까지는 아무렇지 않아도 직접 하기엔 아니라는 걸까. 어디 가서 사기 당하진 않을 듯하다.
사실 처음부터 무장을 완벽하게 유지한 채 싸웠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풀릴 리가 있나. 중간중간 손을 드러내서 터뜨려야 할 물건이 생기고, 덜 날린 연기 속에 맨 얼굴을 들이미는 때도 있게 된다. 제 세븐스에 유감은 없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동의한다. 한바탕 일 치고 나서 꼬질꼬질해진 기분은 둔감한 그가 느끼기에도 불쾌했으니. 이왕 세븐스로 날 거였다면 멜피처럼 깔끔한 능력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가정은 오래지 않았다. 그는 멜피가 내미는 제거제를 받아서 대강 뿌렸다. 아니, 기왕이면 많이 뿌릴수록 나을 테니 팍팍 써댄다. 그 모습이 어째 아직 파릇파릇한 청년보다는 털털한 동네 아저씨 같다면 기분 탓일까. "고맙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착실하게 인사까지 하며 물건을 돌려주었다.
"개 신기하네. 이런 건 어디에 갖고 다니냐?"
설마 저긴가? 그렇게 물으며 바라보던 시선이 슬쩍 멜피의 그림자를 향했다. 보기에는 짐 들어갈 물건이나 공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은 와중에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추론이다.
한편 기어코 뽀뽀하기에도 성공하고, 냄새 정도야 문제 없다고 답하는 멜피를 보려니 불현듯 의문이 든다. 그는 공연히 제 머리를 긁적이다 이렇게 물었다.
"근데, *. 왜 그 정도로 끌어안기를 좋아해? 난 존* 이유를 모르겠다. 욕은 아니야."
멜피의 이런 행동은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런 장난으로라도 남에게 이렇게까지나 거리낌없이 대해지는 경험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렵다. 손을 잡고 걷는다거나, 얼굴을 닦아준다거나. 어린애일 적에도 겪어보지 못한 호의와 돌봄을 외려 성인이 된 후에야 받는다니 이상한 일이지 않나. 그것이 싫으냐 묻는다면 단연 아니라 하겠지만 새삼스레 궁금증이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물었으면서도 그는 곧, "에휴, 씨*. 됐다. 말 안 해줘도 되고." 고개를 대강 저으며 가던 길을 마저 걷기나 했다.
오락실의 내부는 생각 외로 한적했다. 편하고 좋네. 가벼운 감상을 떠올리고선 그는 게임장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라 뭐가 재밌는지 모르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눈에 띄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척 가리킨다. 잘 모르겠으면 가장 고전적이고 무난한 것으로 가자. 쭉 뻗은 손가락 끝에 걸린 물건은 사격에 쓰이는 게임용 총이었다.
물론 그만큼 이상적이진 못할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세계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즐거운 내일이 기다리는 세상이, 더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세계가 좋았다. 참, 깊게 침잠하여 떠오르지도 못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가진 소년이 하기에는 지나치게 낙천적인 생각이 아닌가.
"그렇습니까?"
문득 소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녀가 그리고 싶어하는 세상의 그림. 하지만 소년은 묻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세븐스를 위하는 방향이 아닐지 어림짐작을 할 뿐이었다.
"시간.. 아,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계셔도 좋습니다. 당장은 두세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제대로 그릴 생각인 만큼 하루안에 끝날 작업은 아니었다. 당일에는 대충 베이스를 잡고, 구도를 확정지은 뒤 인상과 느낌을 기억해둘 요량이었다. 며칠간 하루에 어느 정도씩 모델로 두는 게 소년에게 있어서는 편한 일이었지만 그들도 바쁜 만큼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았다.
에스티아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자신이 그 시간동안 가만히 있을지를 알 수 없었기에 로벨리아는 조금 당황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림의 모델이 되기 위해선 가능한 제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지 않던가. 미션 지휘 때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떨어졌기에 로벨리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각오를 다지기로 하면서 로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해보도록 하지. 빠른 시일 내에 시간을 낼테니 너도 준비 제대로 하고 있도록. 우리 귀엽고 예쁜 에스티아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음. 책임을 묻진 않겠지만 좀 섭섭할 거야. 아마도."
이런 것으로 뭐라고 하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로벨리아는 괜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애초에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잘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로벨리아는 가만히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러면 그렇게 약속을 잡도록 하고... 나는 바람을 쐬러 갈까 하는데 너는 어쩔거지?"
딱히 뭘 할 예정인지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별 의미없이 던진 물음이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말을 덧붙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딱 그 정도의 물음을 던지며 로벨리아는 세혁의 답을 기다렸다.
물론 그녀가 필요할때 같이 있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지만...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작게 웃으며 당신의 감사인사에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누가 뭐라고한들 감사인사는 언제 받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적한테 받는것만 아니라면요. 그리고나서 당신이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아쉽다는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그러한 부가효과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멋진 여자란 말이지. 항상 비밀의 공간 있는거란다~"
그런게 있던가. 그녀는 돌려받은 물건을 또 어딘가에 슥 넣고는 미소지었습니다. 물론 특별한건 아니고 그냥 안 주머니 같은 느낌이므로 전혀 비밀의 공간이 아니지만. 본인이 밝히질 않으니까요..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 누군가랑 닿는거, 사랑 받는거."
어쩌면 애정결핍에 가까운걸지도 모르죠. 그녀는 당신이 됐다고 말했음에도 평소에는 잘 말하지 않던걸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당신이라서일지. 아니면 지금 좀 텐션이 낮아져서일지. 아니면 둘 다 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븐스란게 필연적으로 애정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누가 자상하게 대해준적도 손에 꼽고 스킨십도 많을수가 없는게 보통입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거나, 가족이 먼저 죽거나 할때도 많고. 그럼에도 그녀는 그러한 '애정표현'이란걸 동경했습니다.
하지만.
"근데 누가 날 사랑해주진 않잖아?"
그녀는 조금, 아주 조금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가리킨 사격 게임쪽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타인에게서 받는걸 기대하지 못하면 자기가 움직이는게 정석이랬던가요. 뭐 그녀가 멋대로 생각한겁니다만. 당연하지만 그녀의 문제는 복합적이지만.. 굳이 여기서 고민상담을 할 생각도 없으므로 그녀는 표정을 바꿔 총처럼 생긴 컨트롤러를 쥐었습니다.
평소 한 번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반나절 정도는 거뜬한 소년이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 정도에 말을 더듬는 그녀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게 몸 쓰는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이었기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곤욕일 것이라는 예상이 들긴 했다.
"소년은 인물화를 좋아합니다."
현재 우울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그림 안에서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다친 사람을 그림으로 그려 회복시켜주는 일도 소년은 좋아했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그렸으며, 자신있는 분야였다.
"힘내겠습니다."
딱딱하다 싶을 정도의 경어였고 기계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하는 말이 그림을 잘 그리겠다고 하는 것이고, 이 사람의 머릿속은 희망이 포기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게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도구 정리를 끝내지 않았으니, 방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사실 소년이 쓰는 도구들 중 몇몇은 직접 그려낸 걸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보충도 어렵지 않았지만.. 현재 쓰는 도구의 관리를 허술하게 할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은 밖으로. 그리고 그는 방 안으로. 그렇게 되면 자연히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수순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의 방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로벨리아는 먼저 가보겠다는 듯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당장은 임무가 없으니 그때까진 푹 쉴 수 있도록. 아마 다음 미션도 무엇이 되었건 상당히 위험한 것이 될테니까."
당연하지 않겠는가. 당장 블러디 레드와 관련된 임무만 해도 상당히 위험했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제 0 특수부대를 만든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로벨리아는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조심해서 들어가보도록."
그렇게 말을 마치며 로벨리아는 천천히 발걸음을 먼저 옮겼다. 오늘 바람은 또 무슨 느낌일지. 괜히 궁금하다고 느끼며.
뭐라고 말할 만한 수준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곳 저곳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돌아다니길 약 1시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의 집 주변을 찾아내서 부모님까지 만났다. 다행히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이건만, 너는 간신히 손만 흔들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윽... 그, 괜찮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 어릴 때보다 성장했을 때 더 무섭다고 느끼는 걸까, 이정도 높이도 높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이 높이에서 떨어지더라도 다칠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너는 조금 어지러운 듯한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게, 이제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어쨌든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은 이제 막 개장한 롤러코스터의 안전바 같이 튼튼했기에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얼른 뛰어내려 버린다거나 하면 마음에 안 들었나 싶어서 상처받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 때문인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너는 그에게 내려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아까 들어올렸던 것 처럼, 나는 그를 한 손으로 잡고 내려줬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까, 더 심하구만. 내 명치에서 배 쯔음 까지밖에 키가 안 닿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문득 웃겨져서 웃었다.
[후후후후, 막 매달려 있는게 재밌었다고. 놀려서 기분 상했나?]
내려서 땅에 선 그를, 허리에 손을 척 얹은 채 스윽 숙여서 바라보았다. 아까 전 처럼 그림자가 지고, 그 안에서 보랏빛의 눈동자가 커지고, 작아지며 빛난다. 그 속에 사람의 생명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의 차가움 뿐. 그러던 나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은 뒤,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 쳐줬다. 내 손이 그의 등과 거의 비슷한 크기라서 조금 놀랐다.
[뭐, 잘 돌아갔으니 된거 아닌가? 응? 아-오늘도, 착한 일 했구만.]
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개조된 마스크가 씌워진 얼굴은 이 와중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스마엘: 008 지금까지 꾼 꿈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꿈은? (독백 봄)(안 봄) 응.. PTSD..
239 꽃다발 선물에 대한 생각은? 저번에도 말했지만 '꽃이다! 홀로그램 꽃다발이 아니라 생화를 받다니, 정말 귀하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같은 걸 주로 생각하지 절대 저 사람이 내게 연애적인 감정을 가졌구나를 알진 못해...
162 본인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어 아야(뼈맞고 쓰러짐)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고, 때로는 엄하게 혼나거나 감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줘서 고마운 존재.. 라고 생각하고 있어.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꿇어." 이스마엘: "……알겠습니다." (상관, 레지스탕스 단원일 때) "지금 꿇기엔, 물러날 수 없습니다." (적일 때) "지금 내 무릎이 땅을 쓸어내는 용도로 쓰이는 걸로 보입니까?" (이스마엘의 비틀리듯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얄밉다. 이스마엘은 땅에 침을 뱉으며 중지 하나를 치켜올렸다.) "꿇을 건 없고, 이건 어떠십니까." (적대적일 때, 마지노선을 넘었을 경우)
"나 안 보고 싶었어?" 이스마엘: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계실 분이 아닌데,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혹시 여기 이 부분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이스마엘: 아! 지금 그건……. 이스마엘: 아마 좌표값이 문제일 겁니다. 지금 설정하신 좌표는 A-LP673,21이지만 실제 좌표는 A-LP689.55입니다. 재밍 때문에 타 좌표를 빌려쓰는 것일 테니까요. (이스마엘은 뿌듯한지 어깨를 으쓱였다.)
짐작이 거하게 틀려버렸다. 그렇지만 별달리 부끄러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런 능력이었다면 편했을 텐데 아쉽네. 또다시 멜피의 품으로 들어가는 물건을 슬쩍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여승우는 제 이야기 방식이 자칫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파릇파릇하니 어렸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는, 말을 꺼내면서도 이야기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민감한 지점을 완전히 넘기지는 않도록. 결과적으로는 반쯤은 성공한 걸까. 그는 별다른 호응 없이 멜피를 빤히 집중하여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 받길 좋아하기 때문이라니, 가장 확실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유였다.
"뭐… 그렇더라도 존* 상관 없지 않나. 사랑 못 받아도 살아는 있잖아."
음, 이건 제 입장이니 멜피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곰곰이 되짚어 보니 그가 생각하기에도 개소리다. 사랑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건 꽤 열받는 일이었다. "아니, 취소. 개소리네." 곧바로 말을 바꾸고는 그는 가짜 총을 쥐고 가볍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뭐. 그거지. 날 안 사랑하는 새*들 때문에 열받는 만큼, 열정과 울화를 담아 개** 존*게 갈겨 버리기."
그러면서 하는 말은 아까보다 더한 개소리다. 조준도 양호하고, 작동에도 문제가 없다. 컨트롤러를 앞으로 겨누고 화면에 눈길을 빼앗긴 그가 쾌활하게 웃어보인다. 여승우는 거짓말에 서투르다. 그러니 그는, 언제나 어디까지나 진심만 보일 뿐이라는 뜻이다.
"사랑없이 못 살면 우린 다 죽어버리니까~ 그래도 있지. 역시 한번쯤 진심으로 사랑받고 싶어지잖아?"
그녀는 이래뵈도 꽤 많은 연애를 해봤고.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사랑받고 싶은걸까요, 아니면 그냥 그렇게 말만 하고있는거 뿐일까요. 그 답을 말할 생각없이. 그녀는 띠링 하고 기계에 동전을 넣고서 컨트롤러를 쥔 손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또 모르지, 운명적인 만남이 생길수도 아니면 동료중에 운명이 있을지도."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게임에 완전히 집중해서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적들을 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게임실력은.. 그냥 보통 정도일까요. 그래도 둘이 같이 하고있기도하고 곧바로 죽는다거나 하는 어이없는 장면은 나오지 않은채 스테이지를 차례차례 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경우엔 x같은 세계를 후려쳐야할거 같은데~"
세상이 잘못됐다. 그야말로 딱 어울리지 않나요. 그녀도 당신도 세상을 때릴 순 없으니 이렇게 게임으로 풀고 있는거지만요. 그래도 나름 아까의 스트레스가 풀리는거 같기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전부 클리어했든, 중간에 둘 다 게임오버 당했든. 결국 게임은 끝났고 점수합산 화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웃었습니다.
마리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일상 보다보면 제이슨이 마을 밖으로 종종 나갔다 오는 것 같은데 마리도 그런 식으로 만났던 적이 있었다, 라는 간단한 것도 괜찮고. 제이슨이 능력자와 비능력자의 화합에 대해 이야기해서 에델바이스에 대해 알게되었다, 라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에델바이스에 들어와서 알게된 터라 이름하고 능력하고 얼굴정도만 알고 있다는 것도 오케이야~!!!
나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은 로봇 만화책, 꼬질꼬질하게 낡고 손상된 물건이었지만, 왠지 이것이 가장 좋았다. 영혼에 파악 하고 와닿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치만, 뭐, 오늘도 달이 예쁘구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우리 야옹이구만.]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책을 옆에 놓고 벽에 몸을 기댔다. [이몸은 개조 받았으니까, 밤에 자지 않는다구.] 가볍게 농담조로 내뱉었지만, 그 말은 곧 진실이렸다. 나는 천천히 마주친 마리의 차림을 훑어보았다. 슬리퍼에 잠옷이라... 자다 깨서 온 건가? 흐음. 문득 제이슨은 목 말라... 라고 하는 소리를 조금 들었던 것을 생각해냈다.
자판기의 버튼을 툭툭 눌러서, 주스를 뽑아다 그녀에게 건넨다. [자.] 보랏빛 동공은 어둠 속에서 스산하게 빛났다.
그가 너를 들어올렸을 때처럼, 한 손으로 너를 내려놓는다. 두 발이 땅에 닿으니 확실히 안정되는 느낌에 너는 너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두 발이 땅에 맞닿은 채 서 있는 것보다는 안정감을 주지 못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구겨진 옷을 툭툭 두드려 편다.
"아닙니다, 좀처럼 경험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윽!"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놀랐다, 사실 곱씹어보면 기분이 상할만도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곱씹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에 부딪히는 묵직한 그의 손바닥에 짧은 호흡을 내뱉게 되기도 했고... 등뿐만 아니라 전신이 찌릿찌릿한 감각에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았다, 진짜 고이진 않았지만.
"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집을 찾았으니까요. 유능하시군요."
아파라, 손이 닿는 데까지 뻗어 등을 문지르면서 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상냥하시군요, 제이슨 씨."
그러니까... 꽤 재밌었습니다, 라고 덧붙이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그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에 감정을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해줬던 행동이나, 지금 자신에게 장난...이랄까 짖궂게 구는 걸 생각해보면. 저 얼굴이 잘 움직였다면 좀 더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문제없으려나.
"저기, 갑작스러웠을 텐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딘가 다녀오는 중이셨죠... 혹시 다른 용건이 있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십니까?"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그런가, 상냥인가... 뭐어 그런가. 이런 딱딱한 몸에도 따뜻한 마음씨가 녹아 있단 뜻일테니까,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후후, 하고 웃었다. 이어서 그가 어디 용건이 있던게 아니냐... 하던 말에, 나는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줬다.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와 싸워라! 가디언즈 V!의 한정판 DVD들을.
[오늘은 말이다, 이걸 사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이건 딱 500장밖에 안 파는 거였고, 이건 일주일동안밖에 안 팔아서 빨리 안 사면 동나는거였고. 이거 때문에 난 새벽동안 기다리기도 했고, 사람이랑 말싸움하기도 했지. 그치만 얻었다구... 이것이야말로 정의! 내가 얻어낸 에덴의 과실!]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모습의 나는, 그야말로 기쁨에 젖어 있었다... 오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너는 그렇게 덧붙이고는 그가 멋쩍은 듯 웃는 소리에 따라서 미소지었다. 결국은 그도 따뜻한... 적어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존재인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가 쇼핑백에서 한정판 DVD를 꺼냈다, 가디언즈 V...
"굉장히 부지런하시네요,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늘 사온 DVD를 사기까지의 이야기를 해주는 그가 기뻐하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새벅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저 상품들을 사기 위해서 노력을 쏟았다는 건,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거겠지. 한정판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면서 DVD, 만화책 등을 빌려줄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들어보기만 했지 찾아서 본 적은 없기에."
모처럼 친목을 다질 기회다. 평소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매체도 아니고, 새로운 것에 입문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지.
첫사랑을 하는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듯한 당신을 살짝 내려다본다. 본인도 꽤나 사회와 동떨어지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무지한건 아니였던 걸까. 아이마냥 자신을 바라보던 마리의 시선을 깔끔히 무시하곤 살짝 미소짓는다.
“호응이 없으면 예술가는 일을 못해. 아쉽네, 어떤 사람인지도 못 듣고.”
당신이 말이 흐릿해져가는걸 묵묵히 듣고만 있다.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라니, 아마 그는 당신의 사상을 존중한다는 암묵적인 뜻을 하고 가만 있는 것일거다. 비능력자 중 세븐스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멍청이들 뿐 아닐까. 남들 하는 대로 가축 보듯 대하면 피해가 없을 것을 굳이 문제 만들고. 하지만 그런 이들 덕에 반항 세력도 생긴다는것은 그도 잘 안다. 자신이 비능력자로 태어날수 있었다면, 누릴것 다 누리고 피해는 최대한 피해갔을 것이다. 그것이 비겁할지언정.
“난 비능력자를 혐오해.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도 이해는 할지언정 용납은 못해.”
작게 말하고선 당신이 눈을 접어 웃는것을 그저 바라본다. 이것은 요전에 당신이 공격하던 대원들을 막아섰던 것에 대한 무언의 답일까. 앞머리를 고정하던 핀은 임무 중 빠졌던 것인지, 얼굴을 살짝 덮어 음영을 준다. 때문에 생기 없이 고요한 노란색 눈.
“회고해 본다면 지금 행복한 걸수도. 하지만 그런 거라면 차라리 지금도 불행한게 좋겠네.”
미래는 지금보다도 더 밝았으면 한다고 말에 섞어 당신에게 줘본다. 반쯤은 자신이 나중에 불행해도 괜찮다는 말로 들릴지도. 양 쪽 다 진심으로 한 말이다. 저녁은 대충 본부에서 먹여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이끄는 마리의 뒤를 살포시 따라간다.
“둘 다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해. 마음에 쏙 드는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어서야.”
당신의 질문에 차분히 답하는게 마치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듯 하다. 이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려는 듯, 뭔갈 덧붙인다.
“어릴적부터 파랑을 뜻하는 단어들로만 불려왔어. 그것 아님 실험체 번호나 실험의 이름. 당연히 전자가 더 좋잖아?”
이런 말을 하는 투는 정말 당연한 사실을 전하는 듯 하다. 조금은 가벼운 어조로 흥얼거리듯, 자신의 답안을 갈무리한다.
“다른 사람들 창의력 보는 꼴도 꽤 재밌고 말야.”
여기 애들은 다 못 배웠는지, 창의력 있게 불러주지도 않지만. 배운 놈 타령을 하는게 겉맞지 않겠지만서도. 그런 무례한 생각이 뇌리를 짧게 스치지만 티는 내지 않는다.
게임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그는 잠시간의 회고로 빠져든다. 멜피의 말은 통감할 수 있는 유의 것이다. 성애적인 열애 전반에서부터 가장 근본적인 친애, 그런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 그 엇비슷한 감정이라면 그도 바란 적 있었다. 최소한의 믿음을. 부디 나를 혐오하지만은 않아줬으면 하는, 소소하고 하찮은 바람 따위를 말이다. 결말은 말해 무엇할까. 그는 결과를 직감하면서도 믿지 않던 자를 믿고자 나아갔고, 그 우행의 대가로 얼굴을 가른 상흔을 얻었다.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바란다는 행위는 그런 것이다.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멈출 수 없는, 망념과도 같은 불길에 몸 던지게끔 하는 충동.
"그래, 씨*. 존* 개같이 해 보라고. ……이거 응원이야."
상념은 자연스레 끝이 난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가상의 적을 향해 총구가 돌아간다. 아직까지는 초반부라 그런지 이야기할 짬이 많이 남는다. 스테이지가 전환되는 동안, 그가 잠시 눈 돌려 멜피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슬쩍 짓는다.
"난 멀리 보는 거 못해. 일단 가까이에 있는 *새*들부터 조진다."
아, 말하자마자 다시 게임 시작이다. 사각에서부터 불쑥 튀어나온 적 하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 치워버린다. 결국은 장난감이다 이건가, 컨트롤러로부터 나는 딸깍 소리는 얼핏 경박하니 거슬린다. 하지만 진지한 몰입을 막아 가벼운 놀이라는 기분이 살아서 오히려 좋다. "그래서 오늘은 로봇 존* 깨부수고 왔잖아." 그와 동시에 게임은 어느새 중반부의 끝자락에 접어들어들었다. 난이도가 올라간 게임에 열중하느라 그는 한동안은 말이 없었다.
실력이 제법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수들의 구간으로 넘어가기엔 아직 무리였나 보다. 에이, *. 게임오버 화면을 바라보던 그가 작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것도 잠깐이다. 그는 곧장 멜피를 돌아보며 싱글거렸다. 935점이면 압승이지. 기분이 좋다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나는 투로 말하는데, 우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꼴이 참 단순하다고나 할까. 팔짱 끼고 으스대는 어깨가 아주 하늘에 닿겠다.
제이슨이 뭔가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마리는 이내 종이컵에 제이슨의 몫을 따라서 주었다. 무언가 혼자 먹는 것보다는 같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새것을 뽑아주고 싶었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다. 잠옷만 달랑 입고 나왔는걸.
"키가 작다고 다 애인 건 아니거든요."
키 커서 좋겠네,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리는 어쩔 수 없이 자라지 않는 몸에 유감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마리는 쓰다듬을 받으며 가만히 있다가 제이슨이 건네는 만화책을 받았다. 마리의 머리카락은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하게 풀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제이슨이 제멋대로 쓰다듬은 탓인지 이리저리 더 헝크러진 채였다.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마리는 만화책의 제목을 읽어본다. 이내 제이슨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만화책을 휘리릭 훑어본다.
"스승님은 나보고 내 사춘기는 소거당한 것 같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더더욱 또래나 같은 나이대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구.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기도 해요."
전에 있던 레지스탕스에서는 나이차이가 적어도 15에서 20살 넘게 났었는데다가 제 또래는 아무도 없었었다. 애정도 많이 받고 애취급도 많이 받고 그런 곳이었으나 이제 자신도 독립할 때가 된 것이었다. 사춘기를 누리기에는 사실 이 세상이 녹록치는 않다.
호응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말이 얄밉게 들린다. 마리는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유루를 보다가 이내 캐내는 것은 포기한다.
"응, 나도 이해해요. 내 주변에도 유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많았었고."
마리가 있었던 이전 레지스탕스는 폐쇄적이고 조금은 과격한 이들이 많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마리도 비세븐스를 혐오하는 이들을 많이 알았다. 그저 서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 뿐이다.
"아직 이뤄야 할 것들이 남았으니까."
그것들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의 사회는 더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바랐다. 본부로 다시금 되돌아가는 아이들을 따라 걸으면서 마리는 유루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유루는 실험실에 있었구나. 자신도 실험실에서 탈출했다는 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고. 막연히 끔찍하고 힘들었겠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름이라는 건 어떻게 불리느냐보다 누구에게 불리느냐가 중요하니까. 그 사람이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던지간에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이가 되는 순간 그 호칭이 바로 이름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본래 이름이라는 건 다른 이들이 짓고 다른 이들이 불러주는 것이니까. 마리의 말은 유루가 들은 호칭이 유루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 호칭을 이름으로 삼고 싶을 만큼 그 사람들이 유루에게 의미있지 않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뜻이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본래 그 사람에게 의미있는 이들이 고심해서 지어주는 것이었다. 혹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그 자체로 특별해지거나. 제 이름이 저에게 그렇듯이.
"그럼 나는 당신을 리버(river)라고 부를래요. 내가 살던 곳엔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 강은 크고 푸르렀고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웠고 반짝이면서도 어두웠었는데 딱 당신 같아."
뭐어, 변덕스러웠다는 뜻이었다. 나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고심했던 이름이었다. 그 호칭이 자신만 부르는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건 꽤 고민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내 그들의 발걸음은 다시금 본부에 와 닿을 것이었다. 아마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을 것이고 생존자를 담당하는 이들이 그 아이들을 데려갔겠지.
"난데없이 벼락부자가 되었다면 무엇부터 할 거야?" 쥬데카: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긴다면... 평소에 눈여겨봤던 물건부터 사지 않을까 싶습니다. 딱히 없지만요. 그게 아니라면 음, 하고싶은 일이 생각날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르겠네요. 불우이웃 돕기는... 돈으로 직접 지불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좀 써보고 싶습니다. 벼락부자라면 반대로 갑자기 빈털터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제가 없을 때 망가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테니까요. 뭐어... 결국은 가정일 뿐입니다만. 하하...
"키가 그 정도밖에 안 돼?" 쥬데카: ......물론 그, 평균에는 못 미치지만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식의 말씀은 삼가해주세요, 조금... 신경이 쓰이니가요. 저라고 해서 제 신장을 신경쓰지 않는 게 아니니 이 이야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어땠어?" 쥬데카: 모르는 건 어떻게 해도 풀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야 할 수 있는만큼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겠죠, 결과는 어찌되든 상관없습니다. 좋든 나쁘든, 전부 제 행동의 결과니까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쉽지는 않지만.
>>650 물론 괜찮습니다 하하 이야 내가 이스마엘이랑 일상한다!(동네방네 자랑 그러면 상황은 어떻게 할까요? 이셔는 에델바이스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쥬데카는 따끈따끈한 찐방같은 신입이에요(?) 이제 일주일 가량 됐나! 선관...은 비밀이 많으니 조금 어려우려나, 어느쪽이든 좋습니다!
>>657 내가 말랑이 쥬랑 일상한다~ (동네방네) 이셔도 따끈따끈한 신입이야. 이제 막 도착해서, 급작스레 팀에 들어가고 임무에 투입된 신입! 같은 신입 동지라구.😉😉 선관이 어렵더라도 쥬랑 일상 돌리면 설정 때문에 이셔 떡밥이 의외로 빨리 풀릴 가능성이 높단 말이지 흠..🤔
에구구 늦었다, 점심 사려고 했는데 줄이 넘 밀려서 커피만 사들고 왔어.. 그래도 닭가슴살 있으니 이거라도 먹어야지..🥲
>>666 쥬데카 특징: 말랑함(?) 오오 따끈따끈 신입듀오가 되겠네요, 헉 쥬가 이셔의 떡밥을 어떻게 풀어버린다는 거죠 저도 알려주세요(? 그러면 상황은 음, 임무에서 돌아온 직후로 할까요? 그쯤이면 이셔가 조금 헤롱헤롱(?)할 때려나,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고싶구(??) 대충 이셔가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봤다고 하면 어느정도 부드럽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상황도 물론 괜찮습니다!
>>669 쥬가 말랑한 건 여기 레지스탕스 전원이 안다구(?) 떡밥이 풀리는 과정은... 일상에서 공개됩니다!😎 후후후~ 앗 쥬주도 이셔 멘탈 흔들리는걸 좋아하는 거였어..? 사실은 나도...👀 부드럽게 해볼 수 있다면 나야 좋지. 레인이 나타났을 무렵에 이셔는 발치에 떨어진 시체 보고 두어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뭐라고 혼자 중얼거렸으니까.. 그 상황도 좋다구 생각해.😊
진단 다들 매력적이야.. 쥬는 벼락부자가 되면 고민하는 것도 현실적인데, 키에 대해 예민한 모습도 귀엽구나~~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말랑해.. 우리 어장의 햇살.. 쥬가 하자..... 이뭐시기는 지금부터 해 대신 개가 될게..(대체)
아리아는 천사도 무시해버리는 성격이구나.🤔 침해한다면 작별하는 것도 그렇구, 어제 진단도 그렇구. 아리아라는 사람이 자유를 가장 중요시 하지만 방종 같단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본인의 선이 완고하구나... 으악(Bang 맞고 쓰러짐)
유루 본인 성격 잘 알고 있어.. 역시 알면서도 안 고치는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그렇지..만.. (빠안) 승우를 ㅋㅋㅋㅋㅋ 내가 파는거냐구 아 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승우 복수귀 된대잖아~!!! 다 사랑 못 받고 자랐으니까.. 유루는 부모같은 사람이 취향이다...(메모)
>>673 젠장 들킨건가(?) 좋습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캐치해보겠어요! 쥬데카와 달리 저는 매우 둔하지만 말입니다... 젠장! 들킨 건가?!(??) 부드럽게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이셔는 차칸아이니까... 그러면 막 귀환한 직후에 이야기를 나눠보는 걸로 할까요!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언덕에서 있었던 일련의 상황은 마무리가 됐다. 그래. 상황 자체는 마무리가 됐다. 블러디 레드도 파괴했고(탈취하면 좋았겠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세븐스 아이들도 구출했다. 변수... 라고 한다면 마지막에 나타났던 붉은 머리의 여성과, 한 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은 가디언즈 정도였을까.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해 봐도, 생명의 불길이 꺼지는 걸 보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결국은 거기까지일 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속으로 되뇌이든지, 아니면 원래 그래도 싼 놈들이라고 생각하든지. 이 기분을 떨쳐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엔 못 있겠지..."
이미 잘못한 것 투성이인데, 또 다시 잘못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라는 위험한 생각도 들지만. 곧 손을 휘젓듯 흩뜨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잠시 힘든 일에서 눈을 돌리듯, 정통으로 미사일을 막아냈던 걸 생각하니 팔이 저릿저릿하다. 보검 무장의 힘도 힘이거니와, 아리아의 능력 덕분이었는지 큰 부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누가 보면 기적이라고 하겠는걸. 어쨌든, 상황 자체는 끝났다. 이제는 또 다른 상황에 대비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에 여유가 들어섰고, 그제야 너는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심상찮은 분위기였던 동료들이 몇 있었는데... 네가 막아서서 그런 동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쓰렸다.
"...아."
그 대신이랄까, 네가 발견한 사람은 언제나 얼굴을 뿌연 안개처럼(실제로 안개는 아니다) 재밍하고 있는 사람. 이름은 듣지 못했는데. 너는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이 사람, 어떻게 생겼으려나. 키는 너보다는 조금 큰 것 같지만.
"어떻게 하면 믿어 줄 거야?" 이스마엘: 그걸 걱정하신 겁니까? 괜찮습니다. 예전부터 줄곧 믿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어느날 칼로 찌른다 해도, 밀고한다고 해도 내가 칼에 찔릴 사람이었으니까, 밀고 당할 사람이니까 하고 믿어줄 겁니다. 당신이니까요.
"놀아 줘." 이스마엘: 좋습니다! 무얼 하고 놀까요? 오델로는 어떠십니까? 아니면 넷-하트? 들판으로 뛰어가볼까요?
"낮, 밤? 둘 중에 어디?" 이스마엘: 저는 낮이 좋습니다! 밤도 좋습니다! 각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이 아니고 인생엔 여러 은어와 관용어라는 것이 있음을 귀띔했다.) 이스마엘: 못 들은걸로 하겠습니다. (이스마엘은 손을 들어 당신을 제지하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첫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블러디 레드를 파괴함과 동시에 세븐스도 구출했다. 그만큼 위험한 일도 많았다. 이스마엘은 현장에 없었지만 가스로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블러디 레드 자체가 사람을 동력원으로 쓰는 것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난장판에서 대원과 구출할 목표, 그 어느 것도 죽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천운이다. 죽은 것은 가디언즈 병사뿐이었다. 이스마엘은 그 상황에서 익숙해지려 무진 노력했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컸다. 하물며 가디언즈 병사 중 하나는 살 수 있었음에도 죽었다. 이스마엘 때문이다. 손 발목이 뒤틀렸으니 어디 걷지도, 기지도 못하고 블러디 레드의 동력원이 되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스마엘을 저주했겠지! 꿈이 있던 창창한 사람이, 제각기의 소망과 기회를 품었던 소중한 생명이 이스마엘의 손에 스러지고 말았다. 이상향을 위해서 해낸 일이라고 해도, 이스마엘이 꿈꾸는 세계에 이런 전개는 없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지만,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상쾌한 바람이 부는 데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 당장 도망치면 상황이 나아질까? 그러면 언제까지 도망쳐야 할까? 계속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머릿속에 온통 들어찬 고민이 분주하게 생각의 끈을 이어간다.
"……아."
생각의 끈이 쉽게 끊어지지 않은 덕분에 누군가를 알아채는 것이 한 박자 늦었던 것 같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었다. 분명 같이 블러디 레드를 상대했던 일원이다. 그렇지만 이름도,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스마엘이 아는 일원이라곤 레레시아와 츄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지금 당장 답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입이 무겁지만 겨우 떨어진다.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스마엘의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처리가 되어 누군가와 진솔하게 대화하기엔 적절치 않았지만, 이런 대화는 썩 괜찮은 편이었다. 이스마엘은 마음을 다잡았다. 대화에 집중하자. 이대로 피해버리면 이 사람도 무안해질 테니까.
분위기가 무겁긴 했지만 인사 자체는 가벼웠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간단한 대화의 시작에, 그는 조금 느리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수고했다며 화답한다. 그나저나 선생님이라니,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처음이긴 하지만 생소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어떤 표정일까, 표정을 당최 읽을 수가 없는데다가, 목소리까지도 높낮이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기계음이었기에 더 그랬다. 이럴수록 오감은 쓸모가 없다고 해야 하나. 물론 행동의 세세한 부분을 보고 파악할 수 있을 테니 정말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은 직감에 의존하게 되겠지만.
"아, 저는 괜찮습니다. 부상이 심하지는 않아서요."
분명 어딘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타박상 정도에 그쳤다. 부상을 입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간단한 처치와 휴식이면 멀정하게 낫는다. 그렇기에 괜찮다.
"갑작스럽지만... 제 이름은 쥬데카입니다, 성은 뷔시카리오, 부르실 땐 편하게 리오라고 불러주세요."
만나자 마자 통성명, 어쩌면 정석적인 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네 이름을 조금 서둘러 이야기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한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려야 할 것 같았으니까. 또 다른 이유라면 그의 이름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얼굴이며 목소리며 제대로 알 수 없는 상대였기에 이름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들어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상황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활기차게 인사했을 텐데, 아직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는 못한 것이 흠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대화의 시작이다. 이스마엘은 깍듯하게 경칭을 올리곤 다시금 마음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상태를 내심 재고해본다. 아직 페이시 서비스가 눈 주변에 아른거리는 걸 보니 재머는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 같고, 옷은 찢어진 곳이 없으니 다행스럽게 수선을 맡길 일은 없는 것 같다. 파편에 스쳐 다쳤는지 뺨이 홧홧하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지만 얼굴이라 보이지 않으니 겉보기로는 멀쩡하겠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자신의 상태를 재고하며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셌더니 조금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심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겠지. 아마 죽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죽음에 대해 떠올리자니 또 다시 불안함이 덜컥 치솟으려 했지만 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다행스럽게 선을 긋는다.
"아,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리오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쥬데카 선생이나 Mr. 뷔시카리오라 부를 수도 있지만 본인을 명확하게 지칭해달라는 표현이 있었으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예의겠다.
"제 이름은 이스마엘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오 씨."
제법 쾌활한 모양새로 한 손은 악수를 건네듯 내밀고, 다른 손은 노이즈 사이로 사라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스마엘이 머리를 쓸어넘기거나, 잠시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등 제법 인간적인 행동을 했음을 시사할 수 있었다. 이내 손을 내리는 모양새 또한 자연스럽다. ……검은 장갑이라 다행이다. 피가 묻어나온 걸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임무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그가 네 이름을 듣고, 네가 주문한 대로 리오라고 지칭하자 고갤 끄덕인다. 그리곤 이어서 손을 내밀며 잘 자신을 이스마엘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너는 망설임 없이 손을 붙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악수는 좋은 거지. 이걸로 어느 정도 안면은 튼 거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어진 그의 말에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번이 첫 임무였어요. 네, 잘 풀려서 다행이죠."
적어도 아군 중에는 사망자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으니 충분히 성공적인 임무 수행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애초 목적이었던 세븐스의 구출도 완벽하게 달성했고, 블러디 레드의 무력화에도 성공했으니까. 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충 이 정도 즈음에 눈이 있겠지, 라는 감각으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너는 입을 열었다.
"이스마엘 씨,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부상이 있다면 의무실로 같이 가죠."
저도 자잘한 부상 정도는 있으니까요, 라고 덧붙인다. 그리곤 그가 긍정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을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는지 화제 하나를 꺼내본다.
"그나저나, 무지막지한 병기였습니다. 거기 올라탄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고지받았을까요. 아마 아니겠죠."
서로의 소개, 악수까지의 과정을 마치는 건 순탄했다. 이제 통성명을 나눈 레지스탕스 단원의 수를 세면 손가락 세 개를 접을 수 있게 됐다. 조금만 더 인사하고 대화하다 보면, 이제 한 손으로 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 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인터넷 루미큐브에서 AI가 아닌 사람과 매칭 됐을 때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긍정적인 의미로 만나본 적이 없다. 장족의 발전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 이상향은 가까워질 것이다.
"아군 중에서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아, 리오 씨도 최근에 입단하신 겁니까?"
가디언즈의 얼굴이 아른아른 떠오르는 것 같아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질 것만 같았다. 아니야, 이상향을 위한 일이었어. 지금은 대화에 집중하자. 가장 잘 하는 일이잖아. 눈을 감은 뒤 숨을 잠시 깊게 들이마시고 거꾸로 숫자를 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이스마엘은 당신이 살짝 미소를 짓고 자신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노이즈에 가려져서 얼굴이 보이진 않겠지만,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여기에 눈이 있다는 걸 안 걸까?
"저는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의무실로 같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신은 혼자 돌아가서 치료 받으면 되겠지만, 당신이 덧붙인 자잘한 부상이 마음에 걸린 듯싶다. 이스마엘은 의무실로 향하기 위해 당신의 옆으로 서듯 몸을 돌리더니,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찰나였지만 무언가 고민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장 충성스럽던 사람도 변절자로 모는 곳이 가디언즈일 테니까요. 아마 버림패로 썼겠지요."
말 그대로 얼마 되지 않았다. 도망쳐 다닌 것도, 이 곳에 도착한 것도, 에델바이스에 입단한 것도. 가디언즈에서 떠난 것도. 한때 동료라고도 볼 수 있을만한 이들의 죽음 앞이었지만 너는 흔들리지는 않았다. 각오하고 있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힌 건 아니라는 걸 위안 삼아야만 했지만.
"아, 그런가요. 네... 같이 가시죠."
작은 부상이라도 덧나지 않으려면 관리를 해줘야 한다. 치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간단한 처치로 끝날 만한 상처는 상처라고도 보기 애매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가 네 곁에 서곤 잠시 망설이자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그의 얼굴을 옆에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습이다.
"...그랬겠죠, 영웅이라고 떠받들어지지만 결국 그들도 세븐스니까요."
너는 과거에 과격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과 마주쳤던 걸 떠올렸다. 세븐스라는 이유로 학대를 일삼고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걸 즐기는 이들, 그들에게는 가디언즈라는 이름도 큰 의미가 되지는 못했겠지, 그저 주변의 시선을 조금 더 신경쓰게 됐을 뿐. 그 못마땅했던 표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너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 땐, 조금은 쓸모가 있구나. 라며 생각했었는데.
"아마 인명 피해는 우리가 낸 거라고 하겠죠, 아니... 어쩌면 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를 일부러 뿌렸지만 그 정보가 정말 모든 곳에 퍼졌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국지적으로, 우리같은 레지스탕스에게만 전달하려고 했을수도 있지. 그렇다면 이번 일이 실패한 이상 이 일 자체는 없었던 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더 나을까? 결국 죽어버린 이들은 죽어버렸다는 이유로 존재했다는 것조차 아니게 되는 걸까.
1.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억지로 가게 됐을 때의 생각은?」 좀 스트레스 받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참고 일이 끝나거나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게 될 때까지 묵묵하게 할일 한다... 평소보다 약간 짜증스러운 상태지만 크게 문제는 없을듯!
2.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을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시각-촉각-청각-후각-미각
3.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추악한 면을 직시하게 된다면?」 음 그렇구만... 정도? 평소에도 딱히 자기가 고결하지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도덕관념에 관해 대강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체감하지는 않아서 추악하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음... 어떤 의미에서는 멘탈이 참 건강하지...😇
겹치는 점이 있었구나! 이스마엘은 얼마 없는 공통점에 활기차게 답했다. 레지스탕스에 입단하게 된 사람은 대다수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성향은 다른 법이었다. 말투만 듣자면 이스마엘 제법 긍정적인 부류에 속할 것이다. 누군가 죽더라도, 공격 받아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과연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스마엘은 발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씩 내디딘 보폭이 결코 크지 않다. 당신의 걸음에 맞추듯 잠시 반폭 머뭇대더니 다시금 평균적인 걸음 속도로 변하는 것이다.
옆에서 쳐다봐도 보이는 것은 없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노이즈 너머로 잠깐 희미하게 보인 흰색 머리카락이다. 페이스 재밍 서비스가 연결 되었으니 사용자의 뇌파에 맞춰 여러 이모티콘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도. 아마 지금은 그렇게 보여줄 기분이 아닐수도 있고.
"세븐스라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도 있지만, 머리가 그만큼 인간적이란 뜻도 되겠지요."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마엘은 고통스러워 하던 표정을 다시금 상기했다. 분명 그 사람들도 가디언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괴로운 순간이 있었고, 꿈을 꾸었을 것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을 했을 것이며, 일어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 다행이라 생각되는 점은, 이들을 통솔하던 머리가 이스마엘이 생각한 만큼 비인간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역사에 적히는 건 위대한 사람 뿐입니다."
이스마엘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목에 걸린 무언가가 반짝였다. 목걸이 같기도 하던 그것은 옷깃 사이에 넣어뒀지만 격렬하던 전투 도중에 빠져나온 모양이다. 은색의 납작한 판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당신이라면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도 있다. 당신도 한때 가졌던 것이고, 이젠 버렸을지도 모르는 것.
"그리고 머리는 오로지 자신만이 위대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역사 속의 인간 또한 얼굴은 알고 있으나 신발 속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숨길 테지요. 썩어 곯았을지도 모를 것을 어떻게 남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겠습니까."
군번줄이다. 재머 너머로 담담하지만 희망찬 어조가 흘렀다.
"저는 그런 치부마저 보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에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다른 분들 중에 베테랑이 많아서 그랬겠죠, 처음이니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가 네 보폭에 맞추듯 조금 멈칫하는 걸 보곤, 이 사람도 상냥하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에델바이스의 뜻이 이런 사람을 모으는 걸까, 아니면 이런 사람들이 모인 게 에델바이스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너는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적이라... 조금 어렵네요, 어떤 게 인간적인 걸까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그게 자신의 부하라고 해도 장기말로 쓰다가 잃으면 잃는 대로 두는 모습이? 온전히 남을 위해 헌신한다는 게 비인간적인, 그러니까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에게서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이기적인 모습은 반대로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너는 그에게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너 스스로도 거듭 생각해본다.
"위대한 사람, 그 위대함이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럼 승리한 자는 자기 자신을 위대하다고 보는 건가? 그럴지도. 더 위대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패배한 쪽은 위대하지 못했다.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없을 텐데도, 너는 이분법에 가까운 사고를 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넓혀간다. 그 와중에 그가 고개를 돌리며 보여진 군번줄, 너는 군번줄을 보았지만 표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아마 스스로는 모르고 있으려나. 군번줄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기에 너는 그리 짐작했다. 말해줘야 할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거겠죠, 당신의 말처럼 당당히 치부를 보일 수 있는 세상이라면, 치부라는 건 없을 테니."
말 그대로 이상향,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 경험해보지 않은 걸 어떻게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네가 지금 몸담고 있는 혁명의 불씨도 그러했으니, 차별이라곤 없는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자신은 어떤 세상이 올바른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단순히 뒤집는 건 올바른 게 아니겠지. 그래서 어쩌면 그 중간에 서 있는 이 곳에 네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이스마엘 씨는 단단한 심지를 지니고 계시는군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 번 꺾은 뜻이기에 새롭게 세워지는 뜻이라고 해도 부실하기 짝이 없을 자신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됐다. 그 역시 한번 생각을 바꿨을까. 아니면 그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뜻을 쥐고서,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만을 다르게 찾아 걷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글쎄요, 저는 꿈을 꿀만한 자격은 없어서요."
그저 그의 꿈을 듣고 감탄할 뿐, 언젠가 끝이 난다면- 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죄인에게는 그에 걸맞은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앞으로도 별일 없을 일만 있었으면. 현실을 알기 때문에 너무 과한 바람인가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상을 바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이 이상이 사기와 직결된다면 더욱. 이스마엘은 스스로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들 그만큼의 관록이 있다는 것이겠죠. 존경스럽습니다."
적어도 레지스탕스가 세븐스를 위함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각자 생사를 넘나들고 살았음을 몰랐다. 이스마엘이 아는 레지스탕스는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한 반란분자라는 지극히 편협한 정보뿐이었기 때문이다. 맞춘 보폭에서 더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평탄한 걸음이 이어졌다.
"리오 씨가 떠올리는 인간적인 범위가 있다면 그것 또한 정답일 겁니다. 다만 저는, 더 최악의 수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이라 보고 있습니다. 저였으면 기차에 태웠을 적 바로 죽여놓았을 텐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수단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패를 잃어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너질 여지가 있다는 뜻도 된다. 이스마엘은 그 모습마저 사랑했다. 아직 머리는 갱생할 여지가 있다. 이상향에 조건 미달이란 없다. 이스마엘은 기계음 치고는 제법 나긋한 어조로 덧붙였다.
"우리는 역경을 넘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것이 아이들이었고,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희망과 목표를 가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역경을 넘었는데, 막상 아이들이 전부 죽어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 아이들도 가디언즈처럼 블러디 레드의 동력원이 됐다면? 희망과 목표가 동시에 무너지는 겁니다. 분노가 끓기도 하겠지만 살아있는 건 아무도 없고 무기질적인 AI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구동하는 곳에서 무엇에 화를 풀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인간적이라는 겁니다. 이스마엘이 덧붙이고 한 문장은 목 너머로 삼킨다. 더없이 사랑스럽지요. 역시 이스마엘은 살아가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글쎄요, 인간의 눈으로 정하되 인간이 아닌 눈으로 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지만……."
역사를 정하는 것은 승리자라고들 하지만 패배자도 기록된다. 결국 기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승패와 더불어 인간임을 배제하는 시선이겠지. 이스마엘은 아직 자신의 가슴팍에서 자그마한 역사가 보폭에 따라 움직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지당히 옳은 말씀입니다."
드러내지 않기에 고쳐지지 않는다. 이스마엘도 잘 아는 일이다. 이스마엘 또한 드러내지 않은 점이 많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이스마엘 자체가 존재하는 사람인지 조차. 그렇기에 이상향을 꿈꿨다. 심지가 굳다는 말을 들으니 쑥스럽기라도 했는지 이스마엘은 얌전히 뒷짐을 졌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자격 없는 사람은 없노라 생각합니다."
자신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해지지 못한다 한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사람도 같이 나아갈 것이고, 완전한 사람도 그 사이에 섞일 수 있다. 이미 나아간 이상 물러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지극히 이상적이고 허무맹랑한 생각이었으나, 이것이 이스마엘의 신념이었다.
"누구에게나 나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을 뿐입니다. 리오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해야만 했던 선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감히 올려봅니다."
늦은 밤이었다. 하늘의 달이 서서히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로벨리아는 레지스탕스의 본부 건물을 위장하고 있는 슈퍼마켓의 벽에 기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같이 달을 즐기는 이는 없었다. 말을 하면 같이 달을 볼 이야 얼마든지 있을지도 모르나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에게는 그 자격이 없었다. 자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용서받을 수 없을 죄인이었으니까. 물론 아스텔과 에스티아는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죄인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스텔과 에스티아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가."
아스텔과 에스티아. 자신이 어떻게든 지옥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두 세븐스. 원래대로라면 더 구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 둘을 그 지옥에서 빼온 것 조차도 솔직히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의 그 행동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을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녀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평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깊고 어두운 곳.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 그 모든 것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된건지. 이 세상은."
한탄을 쉬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자신이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만 했다. 그런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어깨에 가득 올라 그녀를 무겁게 했다. 원죄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이것저것 활동을 했으나 다 소용이 없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주어진 많은 것을 포기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게 되었기에 그녀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것마저도 실패하고 안된다면... 어쩌겠는가. 그 책임을 질 수밖에. 허나 그런 일은 최대한 일어나지 않는 것이 그녀로서도 베스트였다. 자신은 세븐스가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그 날도 꼭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입김이 아직 나오진 않았으나 조금 쌀쌀했다. 허나 그럼에도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달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달처럼 언젠가, 언젠가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길,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좋게 돌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삶의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그 날까진 죽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깨를 으쓱이며 반쯤 농담삼아 말한 내게, 그녀가 종이컵에 따른 음료를 나눠준다. [오, 고마운데.] 라고 말한 뒤, 나는-종이컵을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씹고, 갈기갈기 찢고, 녹인다. 삼킨다. 흐음, 오렌지 맛이었는데. 역시 딱히 뭔가 맛있거나 하진 않구만. 설탕을 한 국자 그대로 입에 넣어도 달까 말까 한데.
아 그리고 종이컵은, 그대로 영양이랑 체액으로 변하니 괜찮다.
[무슨 내용이냐고?]
빛바랜 표지를 바라보고, 손가락을 툭툭 맞부딫혔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연다.
[...주인공 제이슨은, 보통의 사람이야. 딱히 이능력같은건 가지지 않은 보통 인간이지. 그런데, 제이슨의 남매인 과학자가 그 녀석을 기절시켜서 납치한거야. 사실 남매는 악의 조직의 과학자였고, 사람들을 개조해서 사이보그 병사로 만들고 있었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엔, 수술대에 묶인 채 개조당하는 남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의외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게, 잔인한 수위가 애법 높은 편이었다.
[이번엔 위에서 그 남매의 동생을 개조하라고 말이 떨어진거지. 일단 하긴 했지만, 그 애는 마음에 걸려서... 주인공 제이슨을 개조만 하고 풀어줘버려. 같이 탈출하던 남매는 총에 맞고 죽어버리고. 그렇게 악의 조직에 복수하기로 한 제이슨은 실버 봄버란 이름을 대며 홀로 그놈들과 싸워나간다. 이거야.]
그녀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자기 혼자 씩 웃으며 넘긴뒤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못하는편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라 어라. 그녀는 뭔가 점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안.. 맞는데?'
어라라라라라라? 그러나 어쨌건 스테이지는 진행되고 있었고 그냥 기분탓이겠지.. 하며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옆에서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는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 대꾸조차 하지 못했죠. 뭔가.. 자기는 하는거 없고 옆에 사람이 엄청 열심히 하드캐리중인듯한 느낌이..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내기 이야기를 굳혀버린 그녀를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멍청하다고 해야할지요. 그리고 나온 점수는 아니나 다를까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아니 진짜로 하늘과 땅 차이에요.
"꺄~ 우리 승우씨 멋져~"
지나칠 정도의 연기톤을 낸 그녀는 이내 너무 심하게 못한 자신의 점수에 웃음을 터트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을 향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며 말했죠.
"소원은 편할때 말해. 어 떤 거 든. 들어줄테니까~?"
다소 느끼한 어조로 말한 그녀는 이내 생긋 웃으며 다른 게임쪽을 봤습니다. 아 흔히들 DDR이라고 하는 게임기가 보입니다.
열차에 올라탄 즉시 모두 사살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세븐스 아이들도, 병사들도, 블러디 레드도 온전히 가져오리라는 그 오만함이 우리의 승리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당장 2호차와 4호차에 갇혔던 이들이 독성 가스로 죽을 뻔했던 것과, 탈출 직후에도 상당히 몰아붙여졌던 걸 생각해보면 더욱 그랬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는 결국 인간과 싸우고 있었던 거군요. 하기사 상대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레지스탕스는 존재할 수 없었겠죠."
일말의 양심인가, 아니면 이 역시 오만함인가. U.P.G와 가디언즈, 그리고 레지스탕스들 사이에는 비정상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었다. 아스텔의 보검과,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의 손에 쥐어진 모조 보검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차이였다. 말 그대로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희박한, 시작부터 기울어져 있는 싸움이지만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을까. 그건...
"저들이 방심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스마엘 씨 말처럼, 그들은 인간이니 말입니다."
얼핏 보면 가장 합리적인 존재인 것 같은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이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감정에 의해 사정없이 흔들리는 존재. 합리적 판단을 하면서도 실상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레지스탕스가 거슬리지만 굳이 전부 찾아내 없애버릴 생각은 미뤄 두고 그저 눈 앞에 나타나면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는... 마치 어린아이의 화풀이 같은 대응.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그렇지만 이스마엘 씨, 자격이란 건 누가 정하는 건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약 자격을 정해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당신의 말처럼 저는 자격이 있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그 말은... 대상이 저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상대가 누구라도, 너는 자격이 있다. 라고 이야기할 생각이십니까? 너는 살짝 미소를 짓다가 그의 장갑으로 살짝 눈을 돌렸다. 비릿한 냄새. 손인가? 아니면 다른 곳? 그의 행동을 곱씹으며 비릿한 향의 근원을 그려본다.
"...좋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은 순간 이미 선택은 더 나은 것일 수도, 더 나쁜 것일 수도 없었다. 판단할 기준이 사라졌다. 항상 찾아 돌아다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간직한 그 심지는 이미 거의 다 불탔다. 한 톨, 남아있는 불씨만으로 버틴다는 건 너무나 과한 게 아닐까.
"이스마엘 씨 역시, 그런 선택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군요. 당신의 삶을 바꾼 선택 말입니다."
본디 훈련장은 바쁜 소리가 오고가야 하는 것이 정상인 장소이지만, 그런 장소 한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있는 그녀가 있다. 눈치를 보니 웬일인지 고뇌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이유는 저번의 제 0 특수부대로서의 임무. 다름이 아니라 아직 무장의 형태에 대해선 정하지 않은 채였기 때문이다. 당시 동료들은 저마다 보검을 사용해 약점을 보완하는 모습을 하고 있던 것 같지만, 그녀만큼은 무식하게 보검의 출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던 거다. 그녀는 그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저번에. 보검에 대해서는 가급적 빠르게 이해하는게 좋다고 하는, 로벨리아 대장의 말도 있었으니. 슬슬 정하지 않으면 혼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있던 때, 입구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상반신을 벌떡 일으킨다.
"레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는 얼굴이다. 물론 그녀가 에델바이스에서 이제 모르는 얼굴이 있겠냐만은, 당신은 특히나 훈련장을 자주 드나드는 단골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당신에게게 다가가 "사용할 건가?" 하고 묻는다.
"레시가 훈련장을 사용할 거라면 엔은 자리를 비워줄 수 있다."
고민에 빠져 쓰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보다는, 열심히 사용해주는 쪽이 더 보람 찰테니. 그렇게 생각했는지 당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가." 그녀는 당신에게 그렇게 말한다. 확실히 넓은 공간이다. 그치만 자신이 서있으면 방해가 되지 않을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당신은 그녀를 지나치며 걸어가지만, 그녀의 시선은 당신에게 줄곧 고정되어 당신의 움직임을 따랐다.
"엔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조 보검에 대해서다."
그러고는 당신의 물음에 답하는데, 표정으로 도드라지게 나타나진 않지만 제 나름대로 고민중인 눈치다.
"보검은 엔의 힘을 늘려주는 것 외에도 엔에게 장착 시키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만, 엔은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 한 것 같다."
한 때는 자판기 사용법도 익히지 못해서 안을 찢어 열어젖히려 했던 그녀다. 레플리카 보검은 따지자면 일종의 기계장치이고, 그녀의 세븐스는 그런 기계조차 먹어 살아있게 만드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 게다가 옛적부터, 능력 활용이 용이하다- 라는 이유로 지금의 최대한 가벼운 복장을 갖추고 있던 그녀였기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당신이라면 그런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 것은 아닐까.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척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리며, 인간이기 때문에 이 순간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앞으로 보여줄 행보도, 앞으로 행해야 할 일도 인간으로 기인되며 오만으로 비롯된다면. 이스마엘은 그 끝에 반드시 희망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완전하되 완벽한 존재이기에.
"그렇지요. 방심하기 때문에 인간인 존재와 싸우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문득 그때 보았던 사진이 떠올랐다. 보검을 가진 세븐스가 사람을 얼음조각으로 만들었다며 보여주었던 그 사진. 레지스탕스를 압살할 힘을 가졌으나 오만, 혹은 마지막 자비를 보이듯 보아는 자만 압살하는 그 모습. 그런 존재를 상대하기 때문에 이스마엘은 스스로를 가장 경계해야만 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되는 건 한 순간입니다."
이스마엘은 노이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누구를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두 당신이 판단할 일이다. 어느 쪽이 인간의 선을 넘게 될지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라지만 끝내 양쪽 다 인간이 아니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으니. 이스마엘은 더 이상 이 이야기에 답하지 않겠다는 듯 화제를 돌린다. 아마 분위기가 인간에 대한 토론으로 흐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적절치 못함을 깨달은 것 같다.
"글쎄요."
이스마엘은 작은 웃음을 흘렸다. 기계음 때문에 자조적인 웃음인지, 진짜 웃음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가 정한다거나, 신이라고 대답하기엔 진부하군요. 예. 그렇습니다.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보검을 가진 세븐스라도 자격은 있노라 얘기할 겁니다. 이스마엘은 덧붙이며 다시금 보폭을 맞추듯 고개를 잠깐 아래로 내렸다. 잠시 뭔가 떨어진 것 같으나 이스마엘은 가볍게 훑고 털어내듯 했다. 그제야 군번줄을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쥔다. 작은 역사를 손에 거머쥐었으나 감히 다시금 옷깃 너머에 숨겨 넣지는 않는다. 당신의 질문에 생각할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이스마엘은 이상이라는 별을 좇게 만든 열정의 불씨의 자취를 하나하나 밟아간다. 그때의 자그마한 순간을 삶을 바꾼 선택이라 할 수 있다면, 그럴 것이다. 다른 과거를 떠올리자 군번줄을 거머쥔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래,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이스마엘은 조용히 달라붙는 재질의 옷을, 목까지 덮는 그 옷의 너머로 군번줄을 숨겼다.
"있었습니다. 아마 다시는 없을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점차 발걸음이 느려진다. 의무실이 보였기 때문이고, 이스마엘은 노이즈 너머에서 한쪽 눈을 감은 채 당신을 흘끔 바라보았다. 의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이스마엘은 문을 열기 전 가볍게 노크했다.
안 그래도 죽죽 늘어지는 말투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더 길게 늘어난다. 그러던가 말던가. 레레시아는 천천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땋은 머리가 먼저 바닥에 닿고 점점 낮게 내려가 정수리가 바닥에 닿는다. 완벽한 아치형으로 몸을 제낀 채로 팔짱을 끼고 허공을 응시한다. 금빛의 눈이 두어번 깜빡거리고, 다시 천천히 상체가 올라와 몸을 일으켰다. 흠. 고개가 옆으로 비뚝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엔을 돌아보았다.
"엔은- 상상력이라던가 모티브라던가- 떠올리기 힘든 타입 같으니까아."
생각의 폭이 너무 좁지- 몸풀기를 마치고 돌아선 레레시아는 배려라곤 전혀 없이 툭 말했다. 하기사 언제는 같잖은 배려 따위를 해줬던가. 레레시아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엔 역시 느낌으로나마 알고 있을 지도.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어렵다며언 자꾸 써봐야- 감이라도 잡히지 않겠어-?"
전투에서도 이미지메이킹이 우선인 사람이 있고 경험이 곧 실력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어렵다면 자꾸 써보면 된다. 다행히도 여긴 좋은 훈련장이 있고 상대하기 좋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레레시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네가 원하면- 대련, 가볍게 해줄게에."
하다보면 가볍지 않게 될 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여긴 회복 세븐스가 돌고 있으니까. 여차하면 위에서 라라시아를 부르면 된다. 어떠냐며 말하고 허리에 찬 모조 보검을 만지작거린다. 레레시아의 모조 보검은 저번에 비해 좀 더 정교한 장식이 달린 벨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Q.NMPC 중 현재 유일하게 보검을 해방한 아스텔의 무장은 그냥 장갑 뿐인가요? A.네. 아스텔의 검은 원래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그 검이고 아스텔은 자신의 무장을 철저하게 비행이 가능하고 특유의 고속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맞춘 녹색 장갑이 기본 베이스랍니다. 물론 어깨 쪽에 레이저를 쏘는 발사 장치가 있지만 딱 그 정도?.
나는 책에 있는 주인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주인공은 기억도 잃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조직을 향한 끝없는 복수심만을 타올리게 했다. 뭐, 나도 복수심...이 있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작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 앞에 나타나게 되면 어떻게 할 지도 감이 잘 안 온다.
이 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싸우고, 예전 내 몸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뭐 그러면 좋긴 하겠지만, 제대로 될리가 있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말이야- 내 머릿속에 그냥 내 이름은 제이슨. 이란게 있었어. 고향이나 그런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났는데.]
턱을 괴며 담담히 말했다. 주스를 다 마신 게 신경쓰여서, 자판기에서 과자를 하나 뽑았다. [자.] 그녀에게 하나를 건네주고, 내 몫을 하나 더 뽑는다. 그리고 그대로 봉지와 함께 배어문다. 음- 바작바작.
당신이 자신에게 무언가 기대를 품고있는 듯한 낌새를 느끼고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평소보다도 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그녀가 당신의 질문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알았다면 그런 자신만만한 답변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겠지. 그리고 잠시 후 당신이 되묻는 내용에,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게 되었다.
"네? 진심...이세요?"
그녀도 괴짜의 범주에 들어가는 편이긴 하지만, 설마 당신이 매점을 사달라고 할거라곤 예상하지 못 했던 것이다. 끽해야 매점에 있는 음식을 전부 터는 정도였겠지. 그녀의 웃는 얼굴은 깨지지 않았지만, 절대 당황의 정도가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니였다. 말 그대로 선 채로 굳어버린 느낌이랄까.
"...잠시만요, 지금 통장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 좀 해보고.."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는 버퍼링이 걸린 듯한 움직임으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개인통장에 매점을 인수하고, 인력을 고용하기까지 할 돈은 없을게 분명한데도.
당신은 여전히 배려 없는 말투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익숙하게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당신의 그런 태도에 점진적으로 익숙해져 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으로- 당신이 얼마나 독기 어린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응하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당신이 퍽 현명하다고 느끼기라도 하는지, 그 붉다란 눈동자를 허공에다 깜뻑거리며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번 임무에는 당신도 보검을 활용한 장비를 갖추고 싸웠던 것도 같다. 당신의 말에 그녀는 문득 그런 기억이 스쳤다. '직접 겪는 것으로 이미지를 삼킨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
"엔은 원한다."
2년동안 서로 마주쳤기에. 당신이 싸움에 있어서 다소 과격한 편이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당신도 그녀가 온순하기만 한 그릇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 바로 엔을 레시에게 대련시켜도 되나."
그렇기에 둘 사이에 가볍게라는 말의 본 의미는 자연히 잊혀진다. 어느새인가 그녀는 손 끝으로 땅을 짚어 자세를 낮추고서 동그랗게 뜬 눈동자로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그에 응하기만 한다면 바로 달려들 것만 같다. 마치 야생의 짐승이다.
2년. 짧지만 마냥 짧은 것도 아닌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에델바이스에 머무르며 만나고 봤던 엔이라는 사람은, 어찌 보면 레레시아가 생각하는 타인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필요 이상의 말과 행동은 하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감정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임무 시에는 딱 임무만. 그 외에 지금처럼 마주쳐도 각자의 선을 지키며 대응한다. 아니. 그렇게 대해도 귀찮지 않은 사람이다. 엔이라는 사람은.
"진정해- 진정-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울려 주겠지만- 일단 시작 전에- 몇 개 정하고 시작하자아?"
그저 겨루기나 가늠하기 위한 대련이라면 바로 시작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레레시아는 일단 이라며 달려들 듯한 엔을 잠시 저지한다. 아무리 그래도 말하는 건 잘 알아들으리라 생각하며.
"음- 그러니까아. 이건 모조 보검의 이미지를 위한 대련이니까- 시작부터 모조 보검을 사용할 것. 물론 나도 쓸 거야- 그리고 가능한- 전력을 다하는 걸로오. 극한까지 몰려보면 팟- 하고 떠오를 수도 있구우."
극한까지 몰려보면. 그건 어쩌면 경험담일지도 모른다. 피를 토할 정도로 절규한 끝에 얻어낸 단 하나의 가치 혹은 의미일지도.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 끝나는 거야- 자 그럼."
레레시아는 장갑을 벗어 던지고 맨손에 독액을 둘러 바닥에 뚝뚝 떨어뜨렸다. 푸른색이 선명한 독액이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 돌연 엔을 향해 달려든다. 그대로 몸으로 충돌이라도 하려는가 싶더니 엔과 거리가 매우 근접해지자 모조 모검을 해방해 무장을 갖춘다. 하얀 머리와 하얀 피부가 도드라지는 검은 독액의 갑옷을 두른 그녀는 세 개의 날이 달린 클로를 양 손에 생성하고서 엔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휘두른다.
"즐겨보자구우."
클로는 번뜩이는 날도 위협적이었으나 날을 따라 흐르는 푸른 독액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약한 마비성 독액은 그리 치명적이진 않으나 인체에 직접적으로 닿거나 스칠 때마다 찌릿찌릿한 통증으로 하여금 반격과 대응에 딜레이가 걸리게 만들 것이다.
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목소리가 우스우면서도, 대놓고 하는 아첨 듣는 기분은 꽤 괜찮다. 오, 이래서 사람들이 아부에 쉽게 넘어간다는 건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뒤로 하고 총을 제자리에 내려둔다. 그는 멜피의 제안에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가리킨 게임기 쪽으로 가 그 앞에 섰다.
"당연하지. 야, 씨*. 방금 개쩌는 생각 하나 났는데."
사람이 없으니 차례 기다리지 않고 자리 차지해도 좋으니 편하다. 그는 발판 위로 올라가 이리저리 팔방으로 뻗은 화살표들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이런 건 안 해봐서 자신은 없는데…… 뭐 언제는 그런 거 가려 가며 살았었나. 일단 하면 뭐라도 되는 법이다. 발로 바닥을 툭툭 치고 이것저것 살펴보다, 그는 플레이 보조를 위해 놓인 봉에 몸을 기대고 인상을 설핏 찌푸리며 진지한 표정을 한다.
"게임 하나당 1승으로 치고, 승패 총합해서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가야 존* 재밌지. 난 방금 저기서 1승 한 거고."
기껏 거창하게 한 제안이란 이거다. 하지만 그는 진지해 보였다. 피곤하다고 했을 때는 언제고 대가가 걸리니 승부욕이 번쩍 고개를 들어서는 눈까지 반짝거리는 것이다. 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투입구에 돈을 집어넣었다. 화살표들이 쫙 깔리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우선은 박자에 맞추어, 가볍게 한 발 떼어 밟는다.
그녀는 발판을 한번 툭툭 눌러보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꽤 해봤던 게임이었는데. 솔직히 요즘 들어서 구경만 했던 기억이 있네요. 뭔가 남들 앞에서 하기에 부끄럽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도 없으니 괜찮겠다 싶어 다소 텐션이 업 된 상태로 미소지었습니다.
"흐음~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후회하면 안 돼~?"
그녀는 당신과 엇비슷하게 동전을 투입하며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긴 뭐가 걸려있으면 더 재밌는게 게임이니까요. 그러나 게임 내용 자체는 썩 좋지 못했는데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는것이었습니다. 꼬이기 시작한 스텝은 간신히 간신히 클리어 한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습니다. 고작 한 게임해놓고 숨까지 차고. 그녀는 나이가 들었음을 ㅡ 담배가 더 문제일거 같지만 ㅡ 실감했죠.
"으윽.."
점수를 확인해보니 이기긴 했지만요, 그녀는 세월의 야속함에 진지하게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게임을 하긴 해야하니까..
"이번엔 어떤걸로 승부?"
아, 처음 게임은 당신이. 이번엔 자기가 골랐으니 다음은 다시 당신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긴 모양입니다.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있는 것까진 아니지만 여러가지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다. 그러니 저가 몸치는 아니라고 자신했는데, 아무래도 그 방면으로 쓰는 운동신경과 리듬게임의 박자감은 달랐던 모양이다. 가볍게 시작된 화살표 노트가 속도감을 올리며 점점 화려한 배치를 이뤄간다. 점점 발이 꼬인다……. 하지만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끝까지는 가야지. 그는 이를 악물고 망해버린 판 위에서 열심히 발을 놀렸다. 그 발놀림이 심히 처참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적은 시간대라는 것을 위안 삼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이, *. 개 어렵네, 씨*."
천천히 숨을 고르며 화면에 떠오른 점수를 확인하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제 게임 하기에도 바빠 멜피가 하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그는 곧 혀를 차며 머리를 쓸었다. 멜피와의 점수차는 딱 몇백 점 차이였다. 감질나기에 딱이다. 다음에는 어떤 걸로 승부할 거냐 묻는 말에 곧장 발판에서 휙 뛰어내려서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걸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오, 저거 괜찮네."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것은 에어하키였다. 채 하나를 잡아쥐고 동전을 투입하자 철판 위로 은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퍽을 툭 밀쳐서 멜피에게로 넘겨주고선, 그는 특유의 뚱한 얼굴로 씩 웃었다.
"선공은 네가 해라."
여유를 부리는 것까진 아니고, 그냥 기분이다. 골 앞에 손을 두고 멜피의 행동을 주시한다.
이겼으나 전혀 승자의 얼굴을 하고있지 않은 그녀가 있었습니다. 리듬게임을 못하는 당신을 본다한들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생각보다 분해하고 있는 당신이 보였기에 뭐라 더 말하진 않았지만 적잖은 충격이었던듯. 아무튼 그녀는 당신이 에어하키를 고르자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선공을 주다니 상당히 자신만만하네~ 하지만 말이지."
그건 엄청난 실수야. 그녀는 이번엔 상당히 자신만만 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는데요. 정말 자신있어 보입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싶었지만.
"병력수는 2배. 패배의 요소가 없는 싸움만큼 즐거운건 없지!"
무슨 소리냐면... 그녀는 그림자로 또 하나의 손을 만들어서 예비용 채를 잡고 시작해버린겁니다. 이게 반칙인지 아닌지는 애매하지만 그녀는 당신이 자존심 때문에라도 승부를 무르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은 공격으로. 그림자 손은 방어로 돌리고 자신만만하게 웃었습니다. 승부는 간단하게 게임 디폴트 설정이었으므로. 어디 그녀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확실히, 느낌이 다르군요."
네게도 자격이 있다. 그 말을 하는 존재가 자격을 거론할 만한 힘이나, 그럴만한 초월적인 인식을 지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잖은가, 자격에 대해서 말할 '자격'을 지닌 존재라고는 있을리 없다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찾아갔을 텐데. 어쨌든 너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그가 네게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나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그저 스스로 위안삼는 데 타인의 이야기가 더욱 도움이 될 뿐.
"...그게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나요?"
다시는 없을 순간, 혹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을 하면서 너는 점차 느려지는 그의 발걸음을 알아채곤 마찬가지로 속도를 늦췄다. 어느새 시야에 잡힌 의무실.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눈에 띄게 또 쳐다봤다가는 뭔가 의심을 사겠지 싶어 시선을 무시한 채 걷는다. 똑똑, 하고 의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볍게 노크하는 그의 손으로부터 그제서야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노이즈 너머에 있을 얼굴은 어떤 느낌일까. 너는 그의 노이즈 낀 얼굴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의무실 내에서 노크에 대한 응답이 돌아오자 손잡이를 붙잡아 천천히 열었다.
"이스마엘 씨와의 대화는 꽤 즐겁네요."
신입이라는 동질감 때문일까요. 라고 덧붙이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이지만, 물어도 될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호기심을 가로막았다.
아직은 팔팔하고 멋모르는 나이─다른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라 그런지, 그는 멜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시간 많이 갔다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게 묻기만 하니.
그는 자신만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가 이제는 플래그로 굳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병력수가 2배라는 말에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 그림자 손이 불쑥 튀어나오자 경악해서 빽 소리를 질렀다.
"와, 미친 개 치사해!"
과연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승리를 위해 어른이 얼마나 치사해질 수 있는지 그는 미처 몰랐다. 저 역시 비슷한 수를 쓰지 않고 꿋꿋하게 맨몸으로 맞받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사실 멜피처럼 똑같이 능력을 쓰기엔 무엇하기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폭발 뿐인데, 에어하키에서 밀린다고 게임장을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가는 기물파손이나 오염 행위다. 보검을 쓴다는 선택지도 있기야 하지만 고작 이거 하나 이기자고 전신 무장을 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한 점도 내어주지 않고 무승부로 끝나도록 방어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고받을수록 점점 점수가 벌어졌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완전히 밀리게 되자 한켠에 밀어두었던 욕망이 귓가에 속닥거리며 유혹을 해댄다. 이렇게 된 거 하키판 통째로 날려버려? ……그렇지만 그랬다간 대장한테 깨질 것 같으니까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니 게임 결과는 두고볼 필요도 없이 뻔했다.
"……*, 일주일동안 너랑 거리 둘 거야."
참패다. 그는 못마땅한 투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삐졌다는 건가. 복수하겠답시고 떠올린 방법이 '너랑 안 놀아'도 아닌 기껏해야 끌어안기 거부라니 유치했다. 아무튼간에 이렇게 진 이상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다. 그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언갈 발견하고 그곳으로 척척 걸었다. 커다란 화면과 이런저런 버튼이 잔뜩 달린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가 설치된 방이 거기에 있었다. 다음 종목은 코인노래방. 치사한 방법을 썼으니, 이번에는 아예 세븐스나 다른 수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종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종목 선택도 양보하지 않은 건 봐선 꽤나 진심으로 토라진 듯싶다.
"존* 나부터 간다. 개같이 이겨주지."
그는 상당히 목소리가 고운 사람이었지만, 목소리와 노래 실력은 별개인 법이다. 아는 노래를 하나 골라 그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달려듬에 그녀 역시도 모조 보검을 불러낸다. 보검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형상 변환을 시킬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녀의 레플리카는 여전히 제 0 특수부대 개설 당시 처음 받았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에는- 고기가 붙어 살아있는 듯이 꿀렁거리면서 그녀의 세븐스에 침식 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기계를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이기에, 그런 식으로 보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동기화를 하여 힘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당신의 움직임을 쭉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 공격은 일단 뒤로 뛰어 물러나는 것으로 회피한다. 그러면서 한 편 등 뒤에서는 가느다란 고기 촉수들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늘어진 고기 촉수들은 그녀의 말에 따라 휘적거리며 당신을 포착하고 그대로 찔러들어온다. 무장을 통째로 꿰뚫을듯 날카로운 기세였다.
엔이 뒤로 거리를 두며 피했기 때문에 레레시아가 휘두른 클로는 바닥에 독액을 흩뿌릴 뿐이었다. 몽글몽글한 독액의 궤적이 바닥에 길게 그어지고, 그녀 역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한다. 그러나 틈도 없이 뻗쳐오는 고기촉수를 피해 빠르게 달려서 피하기 시작한다.
"이런- 무서워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무장의 힘으로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으므로 전혀 겁먹어 보이지 않는다. 무기를 클로의 형상에 유지한 채 달리다가 일순간에 독액을 다량 생성해 촉수가 뻗어오는 방향으로 막을 치며 뿌린다. 촉수가 아무리 빠르고 움직임이 날카로워도 뿌려지는 독액을 막기는 어려울 터. 촉수에 일격을 가한 후 레레시아는 달리던 방향을 틀어 다시 엔에게 근접한다.
"자, 엔- 생각하는거야- 너에겐 지금 힘이 있어. 기계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힘 그 자체야- 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쓸 수 있는 힘-"
처음 달려들기 직전. 엔의 모조 보검에 살점이 붙어 꿈틀거리는 걸 보고 엔에게는 모조 보검을 기계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좀 더 본능적인, 날 것의 느낌으로 접근하게 하면 어떨까. 사실 말이 보검이지 사용자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바뀌는 힘의 덩어리기도 하니까.
"넌 그 힘으로- 뭘 하고 싶어?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 거야-?"
짧은 사이 사이 마다 그런 말들을 던지며 방심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다. 독액을 듬뿍 머금은 클로를 빠르게 휘두르며 엔에게 파고든다. 그녀가 지나온 길,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 독액이 뿌려지며 언제 어디에 닿을지 모르게 정신을 분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