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런 세상이니까 차라리 꽃밭인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절망에 젖어서 쓰러져있는 이에게 필 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어때? 나름 시적이었나?"
작게 웃긴 했으나 영 자신이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괜히 무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물론 시나 그림 이런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 자신은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대장 중 하나였다. 너무 시적인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긴 붉은색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그건 그렇고 천성이라. 난 너와 처음 마주한 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꺾인 건 아닌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어. 구출한 세븐스는 대다수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이니까. 살았지만 산 존재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지."
그와의 만남은 어땠던가. 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잠시였다. 뒤이어 그녀는 말을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봤다. 그의 세븐스는 아마 저런 그림과도 관련된 것이었지. 물론 발동만 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그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음에 나도 한 장 그려줄 수 있을까? 혼자로 아쉽다면 우리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에스티아도 부르도록 하지."
당신이 음료를 마시는 방법이라 하기에는 조금 특이한 행동을 보이려 하던것을 도중에 그만두자, 당신을 향해 옅게 미소를 띄며 자신은 신경쓰지 않을테니 편하게 하라는 듯한 손짓을 보낸다. 정말 순수하게 저렇게 먹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눈빛을 띄며. 게다가 그녀와 비슷한 방법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도 그런적이 있는 것 마냥 익숙한 식사방식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있었다.
당신이 음료를 순식간에 전부 다 들이키자 뭔가 자신이 마시는 걸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빨리 마셔야 된다는 생각이 든 걸까, 자신도 캔을 치켜들고 입 안에 내용물을 깡그리 다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딘가 부잣집 아가씨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외양을 하고 있는것과 상반되게 중간에 멈추고 삼키는 행동도 없이 정말 한순간에 캔 안에 들어있던 음료를 전부 마셔버렸다(본인에게서 거북한 기색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캔을 다 비우고 나니, 그제서야 쭉 서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쯤 물러나 당신과의 거리가 벌려졌다. 비록 눈은 여전히 당신과 마주치고 있는 채였지만.
"네? 그렇죠. 이번 임무 수고하셨다는 의미도 있고, 아무래도 배가 고파보이셔서..."
그 직후 날아온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잠시 말끝을 흐리고서,
"전 사실 음식이든 물건이든 받은 기억은 있는데, 어째 제쪽에서 남에게 줘본 기억은 없거든요.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달까?"
라는 답을 주었다. 그녀는 꽤 기억력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논외로 돌리면, 뭐든지 정말 타인에게 받은 적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녀가 미덕이라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베푸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녀도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 했던 적은 많았지만, 전부 어떤 방식으로든 거절당함으로서 항상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혹시 엔씨가 괜찮으시다면, 같이 매점이라도 가실래요? 원하는 건 다 사드릴게요!"
당신이 평소에 먹는 양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당신의 만류로 집어들었던 지갑을 마치 보여주듯 다시 꺼내들었다.
소년은 그다지 농담이 통하는 상대는 아니다. 갸웃거리며 아예 "시를 좋아하십니까." 하고 묻는 걸 보면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흉터가 눈에 띄는 장신의 여성이 한가롭게 시를 읊거나 시집을 읽는 풍경을 떠올린 그는, 그건 꽤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모델로 삼는 그림을 그리다면 그게 좋겠다.
그녀가 말한 처음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 소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이가 미워하는 이를 단 한 명이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마지막에 그는 소년에게서 등을 돌렸다. 소년이 붉은 꽃과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아마 크게 다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마지막에 보였던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슬퍼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지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내가 남겨두었던 그림은 발견했을까. 멀쩡하면 좋겠지만 찢어졌을 지도 몰랐다. 아무튼 보기만 했으면 좋을 텐데. 자신작이었다.
"세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온갖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려내는 그림입니다. 지독하고, 날카로운 작품입니다. 여즉 수많은 사람들이 어둡고 거칠게 붓과 칼을 휘두르고있습니다만."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고르듯, 느리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색채가 없었으나, 누군가는 기묘한 반짝임을 느낄 지도 몰랐다. 검게 가라앉은 소년에게서 천천히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질 지도 몰랐다.
아이의 질문에 애고, 어깨야. 하며 어깰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뭐 반 이상이 기계니까 어깨가 결리거나 하진 않지만... 가끔 힘들 때도 있으니까 뭐, 열심히 일했단 말도 사실이고. 그리고, 탈래요! 하는 아이의 말에. 싱긋 눈웃음을 짓는다. [잘 잡아라. 머리카락은 말고.] 라 말한 나는 아이를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왼쪽 어깨에 태웠다. 너무 높은가? 도 싶었지만, 태워달랬으니 뭐.
[음?]
그런데, 이 녀석은 안 온다 이거지. 어깨에 올려둔 아이는 좋아하면서 내 팔을 탁탁 치고 있었다. ...조금 장난기가 생겼다. 키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나? 그러면- 나는 그의 허리를 손으로 척 잡아서, 거의 반 억지로 남은 오른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싱긋 웃었다.
"옛날에는 좋아했었지. 꽤 즐기기도 했고. 뮤지컬도 즐기고 그림도 나름 즐겼지만 옛날 이야기야."
대체 그 옛날은 언제인 것인지. 이제는 아련한 어느 날을 떠올리듯이 로벨리아는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아마 그 관련으로 뭔가를 물어도 로벨리아는 답변하지 않을듯 했다. 설사 그래도 묻는다면 이제는 옛날 일일 뿐이라고 더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테고. 아무튼 이어지는 그의 생각을 가만히 들으면서 로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리면 된다라. 모두가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정말로 멋진 표현이었다. 세상이 이러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에 아주 멋진 예술가가 될 씨앗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절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네가 그리고 싶은 새로운 그림은 어떤 풍이지? 정말로 순수하게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 말이야."
그가 비유적으로 표현한만큼 로벨리아 역시 비유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딱히 탓하거나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냥 이 사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어떤 세상일주 궁금한 탓이었다. 한편 그의 제안. 시집을 한 권 가져와줬으면 한다는 그 말에 로벨리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시집 말이야?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 하지만 전술책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있긴 한데 그런 것은 곤란한가?"
설마 시집을 열어서 그 내용까지 다 그리진 않을테고. 어쨌건 책이면 되지 않겠냐는 물음을 꺼내면서 로벨리아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만약 안된다면... 서점에라도 갔다오도록 하지. 시집을 사는 것은 꽤 오랜만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시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46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가 마리주를 웃겼다 나는 마리주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어 마리 귀여워! 그리고 에델바이스의 마리도 귀여워 내가 저 짤 보고 이거다! 했던게 사실 마리랑 일상 할 때 고양이 모습 같기도 해서 ㅋㅋㅋㅋㅋ 아무튼 마리는 다 귀여움~~
자세히 묻지 않고 납득한 채 넘겼다. 이런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레지스탕스들의 과거는 어둑하기 마련이었다. 세븐스인 이상 행복한 인생이란 수평선 너머에서 언뜻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가디언즈의 생각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소년은 그들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길 사냥개로 태어나는 인간은 없었다.
"소년은 파스텔톤에, 평화로운 동화풍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소년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대충 보고 흘리듯 들어도 이상을 꿈꾸는 말이었다. "다만.." 그렇게 고민하듯 말끝을 늘인 소년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려 하며 말했다.
"저 혼자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큼 상의가 필요하겠군요."
세상을 향할 그림 도구를 쥔 사람은 소년 하나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금도 함께 붓을 휘두르고 있었다. 더 나은 그림을 위해, 자신을 향하는 팔레트나이프에도 굴하지 않고.
"좋아하시는 책이면 사실 뭐든 좋습니다만."
그리고 그녀에게 전술책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소년은 느릿느릿,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며 말했다.
"제가 이번에 그리고 싶은 건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어차피 모델이 되어 주시는 동안에 일은 못하실 테니, 오랜만에 취미를 즐기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모습에 아이는 신기한 듯 웃었다. 그리곤 어느새 어깨 위, 평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라서도 아이는 무서워하기보다는 신기하고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웃는 낯으로 팔을 탁탁 치는 걸 보면. 너는 한참 위로 올라선 아이를 올려다보면서 기분이 좋은 듯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순간 몸이 붕 떠오를 때까지는.
"으아아?! 잠시만요!"
갑자기 발이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붕 떠오르자 너는 당황한 듯 소리를 냈다. 어느새 시선은 평소보다 한참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보통은 앉지 않는 남의 어깨에 앉은 채로 너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 잠시만요! 저는 안 탄다고...!"
그러나 너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달려가는 그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붙잡은 그의 팔을 생명줄인 양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거 생각보다 무서워!
어지간하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 그것을 바란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었다. 다시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가 없어지는 미래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었다. 응원해줄 마음도 있었고. 물론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엔 핏빛 장미. 블러디 로즈라는 조직을 만들어볼까.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며 로벨리아는 소리없이 웃었다.
"상의는 필요없어. 네가 원하는 그림이 있으면 그리면 돼. 그 모든 그림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이루게 되겠지. 붉은 에델바이스는 그런 미래를 위해서 만든 조직이니까.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위한 힘이지."
그러니까 죽지 마라. 메르헨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로벨리아는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떠올리면서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묻고 싶다만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오랜만에 취미를 즐기는 것이 좋다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일까.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에스티아가 가만히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로벨리아는 조심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그... 그림 모델로 있는데 기계를 만지거나 하는 것도 허용되는건가? 에스티아의 취미는 그런 쪽인데."
잠시만요! 라던가, 저는 안 탄다고... 하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남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 아첨하지 않는다, 모르는가!] 나 자신도 뭐라 하는건지 모를 말을 하면서, 나는 양 어깨에 사람 둘을 태우고 이런저런 곳으로 돌아 다녔다... 그리고 한 30분인가 1시간 됐나. 난, 한쪽 어깨에 있던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주고,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어이, 괜찮나?]
그리고, 아직 한쪽 어깨에 그대로 태우고 있는 너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면 엄청 힘들어 하거나, 흔들리거나, 눈이 돌아가려 하던데. 아직 살아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