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할까 했지만 처음부터 회수하게 두진 않을 마음이었나. 역시 가디언즈는 벅찬 녀석들이란 말이지."
로벨리아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블러디 레드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보고 있었다. 이송 열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세븐스를 붙잡아서 에너지 착취를 하고 움직이는 변신 로봇형 신무기.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은 둘째치고 세븐스를 붙잡아서 에너지 착취를 한다는 발상이 그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착취가 된 것은 전원 다 가디언즈 병사인 것으로 보아 이 신무기를 만든 이는 아무래도 피도 눈물도 자비도 없는 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표정을 찌푸렸다.
'일단 제 0 특수부대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신무기마저 어느 순간 만들어서 투입하고 있는 것이 저들이라면 이쪽도 더욱 경계를 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로벨리아는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허나 조금 머리가 아픈지 오늘의 일은 이 정도로 하기로 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 2층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가고 모퉁이를 걸어가는 와중, 순간적으로 누군가와 부딪칠뻔 했으나 그녀는 겨우 피하면서 바로 보이는 이에게 사과했다.
사람의 손이 딱딱한 이유는 굳은살 때문이라고 배운 건지, 제이슨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그렇게 물었다. 그저 궁금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의문을 묻는 눈은 티 없이 맑다. 너는 그 말을 듣곤 어째서 그의 손이 딱딱할지를 생각해 본다, 굳은 살 같은 건 아니겠지. 그의 무기질적인 표정과 피부색,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건...
"하하... 일을 열심히 하시나 봐요."
웃음과 함께 그럴듯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려고 하면서, 너는 곧 움직이려는 듯한 제이슨과 소녀의 곁에 섰다. 이제 어딘지 찾으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작긴 하지만..." "응! 탈래요!"
인형 하나로 벌써 거부감이 싹 사라진 건지, 아니면 그에게서 어떤 걸 느낀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어깨에 탈 거냐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아마 호기심이 동한 부분도 있으리라. 반면 너는 어쩐지 작다는 걸 확실히 인정해 버리는 데다가, 어린이도 아닌데 어깨에 올라탄다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들어 대답을 망설였다. 확실히 그는 키가 크니까, 어깨에 올라가면 훨씬 멀리까지 보이겠지만...!
에델바이스. 노래 이름이기도 하고, 어떤 꽃을 뜻하기도 하며, 소년은 꽤 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어느 집단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별로 단 맛은 나지 않았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태풍에 맞서는 한 떨기 꽃과 같은 이곳에 자리한지도 어언 반 년 하고도 2년. 소년은 이 작은 마을에서 고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익숙해진지 오래였고 이 주변의 풍경을 몽땅 캔버스 위로 옮긴 지도 오래였다. 그리고-
-달칵.
"..."
붉은 에델바이스를 그려내어 아지트에 장식하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좀 흘렀다. 처음에는 상징이 붉은색 에델바이스이길래 그려뒀던 것이다. 다만 완성된 그림이 소년의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자신을 구해준 곳의 상징을 그린다는 일은 꽤 끌리는 일이라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다. 지금도 완성된 그림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 복도 한 구석에 세워둔 참이었다. 심지어 이번 그림은 꽤 세로로 긴 그림이라 눈에 띄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양화라는 점에서 더더욱.
넘어지지 않게 공을 들여 세워둔 그림을 좀 거리를 두고 보고자 했던 소년은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힐 뻔 하였다. 훌륭한 반사신경을 보여 안전을 확보한 그 사람은, 그가 속한 특수부대의 대장이었다. 소년은 그녀를 검게 가라앉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딪치진 않았으니 괜찮을까. 그제야 그녀는 제대로 자신과 부딪칠뻔한 이를 바라봤다. 그가 누구인진 금방 알 수 있었다. 제 0 특수부대원 중 하나이자 에델바이스가 구조한 이가 아니던가. 세븐스의 비애를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자연히 근처 벽에 걸어둔 붉은 에델바이스를 확인했다. 이전부터 이런 그림들이 장식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그림도 네가 그린거겠지? 잘 그렸어. 화풍이 꽤 특이한데. 동양의 것이었던가. 이건."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보기 힘든 그 화풍을 바라보며 로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많이 본 느낌은 아니었기에 괜히 더 눈에 담던 그녀는 이내 조금 삭막한 목소리를 냈었던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고 나서 2년 반. 조금은 마음을 놓을 곳이 되었나? 널 보면 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떠올라서 말이지. 그래서 괜히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귀찮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야."
아스텔과 에스티아. 두 사람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눈동자에 동정은 없었고 특별히 더 걱정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다른 이와 똑같이 바라볼 뿐. 단지 그 뿐이었다.
시원하게 웃는 당신에게 은근슬쩍 정당하지 않은 딜교를 한 그녀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런거에 걸릴 사람이 아니니 맘놓고 하는거겠지만요.
"싸우면 더러워지는건 누구나지만, 역시 능력때문에 더 하네."
그러던 그녀가 꺼낸 말은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역시 목욕하고 다시 만나자고 할걸 그랬나..도 싶지만. 장담하는데 둘 다 씻고 그대로 자버릴겁니다. 적어도 그녀는 확실했죠. 그것을 알기에 허튼 생각은 접어두고 그녀는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흔히들 냄새 제거제라고 쓰는 그것입니다. 다만 허가없이 뿌리지는 않고 당신에게 쓰겠냐는듯 앞에 내밀어 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이 다니는건 문제가 없지만 이런건 본인이 느끼는게 문제니까요. 머리를 매만지는 당신의 모습에 그녀가 확신한것이었습니다.
"냄새~? 나는 너라면 부둥켜안고 굴러도 괜찮은데?"
이런말하기 미안하지만 동료들중엔 피냄새, 철냄새, 화약냄새 같은건 그냥 패시브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녀에게 그러한건 문제가 되지도 않기에 당신의 질문에 그저 미소짓는 그녀였죠. 다만 냄새제거제를 꺼내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어코 뽀뽀를 성공한 그녀도 그녀였지만. 별 반응이 없는 당신도 당신이었기에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 ㅡ 연기입니다 ㅡ을 지었습니다.
"우~"
뭐 그것도 잠시. 당신을 따라 오락실로 들어가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사람이 많지는 않아보였지만요.
"하고 싶은거 있어?"
어쨌건 자신이 끌고온거나 다름없는 제안이었기에. 그녀는 당신의 취향부터 먼저 물어봤습니다. 당신이 딱히 아무것도 없다거나 하는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녀의 오락실투어에 참가하게 되겠죠.
본디 그녀는, 레레시아는 남의 개인사에 깊게 참견하거나 말을 얹거나 하지 않는 타입이다. 이 사람이 그렇다면 아 그래. 저 사람이 그렇대도 아 그래. 좋게 말하면 포용력이 넓은 수긍을, 까고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마인드를 가진 인간이다. 그렇기에 누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그 앞에서 하품 할 정도의 반응만 내보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화가 난다. 한모금 밖에 마시지 않은 차가 속에서 끓는 것 같았다.
"...왜일까..."
눈을 감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자문자답이었다. 왜 이렇게 속이 끓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기에,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고 곁눈으로 레이먼드를 주시한다. 스으- 작게 숨을 들이쉬고 평소의 말투를 버리고 따박따박 쏘아붙인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왜 여기에 들어왔지? 여기 사람들이 너처럼 죄다 죽으려고 모인 사람들처럼 보여? 그렇게나 죽음이 좋으면 어디 과격파 레지스탕스나 가버려. 그래. 지금 같은 때에 한 명 쓰러졌대서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지. 결국 무뎌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건 그렇게 보이겠지. 당장은 그렇게 버티겠지만 그게 계속되면? 설령 모든게 계획대로 끝나고 세븐스의 권리와 평화를 되찾았다 해도 이미 몸도 정신도 전부 망가져 있으면? 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남은 생을 PTSD로 보낼지도 모른다면? 머리 없어? 그 정도 생각도 못 해?"
그녀의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신경 긁을 말들을 대놓고 쏟아낸다. 그럼에도 찻잔을 드는 행동은 우아하고 차분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네가 혼자 어디서 나자빠져 죽던 어쩌건 관심 없어. 그런데 네가 지금 혼자야? 여기가 과격파 레지스탕스야? 아니잖아? 그럼 최소한 혓바닥과 주둥이 관리 정도는 해. 세치 혀로 팀원 인생까지 조지지 말고."
달카닥. 말을 마친 레레시아는 식은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들고 왔던 것들을 챙겨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짜증을 냈나 싶을 만큼 맹-한 얼굴로 돌아와, 어깨를 작게 으쓱인다.
"피냄새가 여엉 거슬려서어. 방으로 돌아갈래-"
안녀엉.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서 문으로 간다.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휭 나가 개인실로 돌아가겠지.
//레이주 혹시나 기분 나쁘면 말해주구... 이걸로 막레 해도 되고 따로 막레 달아줘도 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소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주시했다. 사람이 지닌 색은 그 사람의 인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푸른색은 청명한 느낌을 주고, 금색은 예전부터 화려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이 떠오르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주인을 꽤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무작정 강렬하게 타오르기보다는 적절한 화력 내에서 앞을 밝히는 느낌이 든다면, 소년은 너무나 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예."
칭찬이 담긴 말에 대한 답은 간결한 한 글자였다. 그 뒤, 무언가 고민하듯 슬쩍 시선을 내렸다가 "소년이 감사를 전합니다." 라는 기묘한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를 끝내고 나서, 그녀의 걱정 섞인 말이 소년을 향했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 그는 지나가며 보았던 그 두 사람을 떠올리고, 곧 소년 자신을 되새겼다. 무슨 의미일지 대충 알것 같았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