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제이슨 씨,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리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가 두어 번 정도 네 이름을 전부 말하자, 조금 더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의미로 이야기한다. 이름은 모르는게 당연했다, 이제야 일주일 정도 된 사람이었으니 관계를 쌓을 틈도 없었으니까. 문득 손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에 고갤 돌려보니 어느새 아이는 네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제이슨의 덩치와, 조금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한 쪽에 의지하는 걸까. 너는 아이가 겁먹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 그런 모양입니다. 부모님은 아마 집에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심부름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집을 찾아줄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왔고, 심부름을 보낼 정도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눈에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너는 고갤 돌려서 아이를 보며 물었다, 집 주변에 가면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묻자, 아이는 고갤 끄덕인다.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뱉는다, 애들 시야에 안 보인다고 온데간데 없어진 아까의 부드러운 표정이 꽤 가식적일지도. 표정은 그러해도 말투는 아까와 같이 평온한게, 기분은 아직 그대로인듯. 그렇게 퉁명스런 답을 하고 나서 무언가 다시 말하려 든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아니, 저럴 때는 없었어. 철이 일찍 든 편이거든."
눈을 마주치진 않지만, 그가 무뚝뚝히 하는 말은 진정성 있게 들렸을까. 자신이 사람을 저렇게 쉽게 믿고 경계를 늦추던 때가 있던가. 생각해보니 뒤늦게 그런 어린 정신머리로 돌아간 때는 있었다. 굳이 늦게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그저 침묵한다. 답지않게 나름 직관적인 답을 뱉고선 하는 행동은 별 거 없다. 사람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지만, 그게 맞는 말이었다면 그는 오래 전에 죽었겠지. 어느샌가 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리에게 되려 질문을 던져본다.
"네 어린 시절은?"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냐고 묻는 걸까, 어땠냐고 묻는 걸까. 여전히 불친절한 물음 끝에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묻는 것도 멍청한 짓이네, 잊어줘."
자신들과 같은 세븐스는 어린 시절도 제대로 못 보낸 경우가 더 많겠지. 그도 그렇고, 대다수가 그랬으니까. 굳이 트라우마를 긁고 싶지 않았는지 말을 회수하고선 다른 질문을 해 본다.
"너는 저 나이때 뭘 하고 싶었어?"
당신 쪽을 힐끗 보고선, 시선으로 아이들 쪽을 가르킨다. 요전에 있던 일을 겪었던 아이들 치곤 해맑아 보이는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 일을 잊을 정도로 즐거운 걸까, 아니면 늘상 겪던 일의 연장선이라 치부하는 것일까. 판단해봤자 그에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시선을 당신에게 옮긴다.
>>234 집착도...라 단순 수치로 따지면 꽤 높지 않을까 싶지만 정작 상대는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면 심하게 시무룩해지고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될지도 몰라요! 물론 상대 앞에서는 그런거 없으므로 절대 모를듯(?) 뭐어 지금 상태라면 그럴거라는 얘기에용!
[아니 뭐. 괜찮다. 버릇이라면 버릇이고. 뭐 좋아. 리오 형씨. 할 일은 다 했으니까.]
도와달란 말을 듣고, 문득 애 쪽을 보자 애가 옆의 상대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나 참. 역시 무서워한다 이거구만. 아무래도 좋나. 나는 쇼핑백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마 아가씨, 인형은 좋아하니.]
솔직히 거대한 근육질의 개조인간이 무기질적인 마스크로 쇼핑백에 손을 넣고 뒤적이는건... 뭔가 대단한 광경이었지만, 곧 꺼낸 것이 더욱 어울리지 않아서 놀랍다. 내 손가락 마디만한 분홍 솜인형은 열쇠고리가 달려있고, 소녀의 손에는 꼬옥 들어갈 만 했다. 열쇠 고리 부분을 잡은 채 아이에게 그것을 건넨다. 좋아하면 좋겠는데.
날 때부터 이 모양이었을 것 같냐는 말에 마리는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은 채 눈만 깜빡였다. 이어지는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은 왠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저 아이들도 철이 일찍 들게 될 것이었다. 저렇게 웃고 있어도 언젠가 이 현실을 알아채게 될 것이었다. 제 부모 형제는 죽었고 이 세상은 세븐스를 싫어하고 배척한다는 것을 말이다.
“철이 일찍 들었으면 첫사랑도 일찍 했겠네요?”
이 말은 조금 장난스럽게 묻는다. 괜히 불행한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루가 제 어린시절에 대해 물은 뒤 다시금 말을 바꾸는 것도 아마 유루의 어린 시절은 꽤나 암울하기 때문이 아닐까?
“으응, 나는 저 나이 때 가장 행복했었으니까.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사랑도 더 많이 받았고요. 만약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좀 더 부모님을 좀 더 많이 보고 싶고. 음,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친구를 더 많이 사귀고 싶었을 것 같고…. 그 때 친구가 한 명 밖에 없었어서.”
마리는 쥬드를 떠올렸다. 만약 세상이 비능력자와 능력자와 화합해나가는 이상적인 세계였다면 저도 쥬드도 친구를 더 많이 사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쥬드와 친해지지도 않았을까? 그건 싫을 것 같지만서도.
“유루는요? 저 나이 때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잠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호기심으로 불안감을 이겨낸 아이들은 다시금 잘 곳이 정해지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만나게 되면 울음을 터트릴까.
할 일은 다 했다며 아이 쪽을 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너 역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꼭 잡은 손이 눈에 들어와 조금 기쁜 듯 하면서도 네 앞에 선 그를 생각하면 또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가 쇼핑백을 뒤적이면서 소녀에게 인형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오자, 인형을 줄 생각인 건가 하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꺼내진 건 인형, 그의 모습과는 조금...이질적인 느낌의 귀여운 인형, 그는 그걸 소녀에게 건네고 있었다.
"응, 좋아해요."
인형을 좋아한다고 대답한 아이는, 그가 건넨 인형에 눈을 반짝이며 손으로 받아들었다. 좋아하는 인형인가? 아니면 그냥 귀여워서 그런 걸까, 기분이 좋아진 듯한 아이는 어느새 네 손을 놓고 그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덥썩 잡았다. 상당히 높이, 그러니까 자신의 머리보다 높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손을 덥썩 잡고는 올려다보면서 눈을 반짝인다.
"인형 귀여워!"
너는 어느새 비어버린 손을 보다가, 소녀가 그의 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걸 보며 미소를 띄웠다.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구나.
"으음, 뭔가 사러 온 것 같으니, 그 물건을 파는 곳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익숙한 길도 찾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