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술한 답변. 기분이 좋은지 이 말을 뱉는 어조도 평온하게 들려온다. 애가 애를(?) 안은 꼴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듯, 고개를 그저 돌려버린다. 곧바로 남자아이가 그걸 보고 웃어버려 그도 조금 웃었지만. 등을 도닥임받던 여자아이는 자신의 쌍쌍바를 반으로 갈라본다. 기분이 좋아질 완벽한 비율로 나뉘어진 아이스크림. 마리가 아이스크림을 그리 빨리 먹은것을 보고 배고팟던가 싶었던 모양이다. 반 쪽을 마리의 입 쪽으로 살포시 갖다댄다, 먹으라는 듯이.
"네, 네 선장님-"
애들한테 말한걸 그가 답하는건 둘째치고, 별 감정 섞이지 않은 무뚝뚝한 어조로 그런 답을 뱉는게 조금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보고 먼저 나가라는듯 등을 톡톡 쳐 주고선 자신도 문 밖으로 향한다. 하늘의 색은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옅은 회색의 그라데이션. 오늘도 그가 보는 풍경은 미적지근한 무채색이다. 햇볕을 받으면 더워진듯, 코트를 벗어 대충 들고 서 있다.
"구경할 만한게 어디 있더라."
당신에게 물어보는 꼴을 보아하니 그는 이제 애들 통솔하는게 귀찮아진 모양이다.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당신이 아이들과 있을때 비추는 그 오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서일까. 그는 눈을 곱게 접어 웃고만 있다.
의자에 걸터앉은 여자아이를 보면서 미소짓고 있던 차였는데, 한 겹 어두워지는 시야와, 놀란 듯 자신의 뒤를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너 역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시야가 닿은 곳에는 그러니까 몸이 있었는데, 몸이라고 하는 이유는 네 눈높이에서 보이는 게 딱 몸통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전부 보이는 게 아니었기에, 너는 어쩔 수 없이 고갤 위로 들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니까... 네, 우연이네요."
얼굴을 보자 생각이 났다, 이 정도의 거구라면 딱 한 명 뿐... 에델바이스에 온 뒤에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 없이 그저 지나가는 모습을 몇번 보았을 뿐이었지만 그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는 않았다. 문제라면 네가 그의 이름을 정확히는 모른다는 점이었을까. 동료들 정보라도 좀 달라고 해서 열람을 할걸 그랬나. 남의 정보를 그렇게 사적인 이유(?)로 봐도 되는가 싶어서 하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누구에요?" "그게, 음... 내 친구에요, 키가 굉장히 크죠?"
아이가 혹시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애써 그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미소를 띈 채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그 역시도 에델바이스 소속이니, 마을 사람들과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네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맞춰, 자신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을 연 꽃무늬 셔츠에, 우락부락하게 돋아난 인공 근육. 뭐, 딱히 친근하거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만한 외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히 안 무서워 하는걸 보면, 의외로 대담한 꼬맹인가? 아니지, 무서워 하고 있을지도.
[그래. 쥬데카 뷔시카리오. 제이슨이다. 이름 모르고 있었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한다. 보아 하니 모르고 있던 거겠지. 3년이나 있었으면서 사람들이랑 교류가 적다니까 참, 이 조직도. [미아냐?] 아이를 보며 툭 한마디 내뱉는다. 뭐 그 외에 데리고 있을만한 이유가 딱히 없으니. 만약 그쪽 이유라면 엄청 때려주면 되는거고. 뭐, 그럴 일은 없지만... 팔짱을 낀 채로 나는 애와 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네. 제이슨 씨,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리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가 두어 번 정도 네 이름을 전부 말하자, 조금 더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의미로 이야기한다. 이름은 모르는게 당연했다, 이제야 일주일 정도 된 사람이었으니 관계를 쌓을 틈도 없었으니까. 문득 손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에 고갤 돌려보니 어느새 아이는 네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제이슨의 덩치와, 조금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한 쪽에 의지하는 걸까. 너는 아이가 겁먹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 그런 모양입니다. 부모님은 아마 집에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심부름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집을 찾아줄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왔고, 심부름을 보낼 정도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눈에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너는 고갤 돌려서 아이를 보며 물었다, 집 주변에 가면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묻자, 아이는 고갤 끄덕인다.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뱉는다, 애들 시야에 안 보인다고 온데간데 없어진 아까의 부드러운 표정이 꽤 가식적일지도. 표정은 그러해도 말투는 아까와 같이 평온한게, 기분은 아직 그대로인듯. 그렇게 퉁명스런 답을 하고 나서 무언가 다시 말하려 든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아니, 저럴 때는 없었어. 철이 일찍 든 편이거든."
눈을 마주치진 않지만, 그가 무뚝뚝히 하는 말은 진정성 있게 들렸을까. 자신이 사람을 저렇게 쉽게 믿고 경계를 늦추던 때가 있던가. 생각해보니 뒤늦게 그런 어린 정신머리로 돌아간 때는 있었다. 굳이 늦게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그저 침묵한다. 답지않게 나름 직관적인 답을 뱉고선 하는 행동은 별 거 없다. 사람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지만, 그게 맞는 말이었다면 그는 오래 전에 죽었겠지. 어느샌가 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리에게 되려 질문을 던져본다.
"네 어린 시절은?"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냐고 묻는 걸까, 어땠냐고 묻는 걸까. 여전히 불친절한 물음 끝에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묻는 것도 멍청한 짓이네, 잊어줘."
자신들과 같은 세븐스는 어린 시절도 제대로 못 보낸 경우가 더 많겠지. 그도 그렇고, 대다수가 그랬으니까. 굳이 트라우마를 긁고 싶지 않았는지 말을 회수하고선 다른 질문을 해 본다.
"너는 저 나이때 뭘 하고 싶었어?"
당신 쪽을 힐끗 보고선, 시선으로 아이들 쪽을 가르킨다. 요전에 있던 일을 겪었던 아이들 치곤 해맑아 보이는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 일을 잊을 정도로 즐거운 걸까, 아니면 늘상 겪던 일의 연장선이라 치부하는 것일까. 판단해봤자 그에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시선을 당신에게 옮긴다.
>>234 집착도...라 단순 수치로 따지면 꽤 높지 않을까 싶지만 정작 상대는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면 심하게 시무룩해지고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될지도 몰라요! 물론 상대 앞에서는 그런거 없으므로 절대 모를듯(?) 뭐어 지금 상태라면 그럴거라는 얘기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