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에델바이스에 들어온 것은 대략 2개월 남짓 전. 꽤나 최근에 들어온 멤버였기에 수행한 임무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녀는 임무가 끝나고 나서는 다시 돌아가 자신이 할 일만을 했다. 그 말은 즉슨 그녀는 임무가 끝난 후 에델바이스의 공기를 느껴보지 못 했다는 것. 처음 느껴보는 임무 직후의 공기에 어딘가 어색해하며 복도를 거닐던 중, 끼리끼리 얘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남들과 다르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당신을 발견했다.
하긴 엔씨의 능력엔 자신의 육체 그 자체가 소모되니까 임무 후엔 보충이 필요하겠지-하는 생각을 하고서, 그녀의 허기를 채우는데 보태줄까하며 자신 역시 자판기로 다가가려던 도중, 엔에게서 먼저 말이 걸려왔다.
"앗, 감사해요 엔씨! 이번 임무는 뭔가 상당히 힘들었는데..엔씨도 수고하셨어요!"
그녀가 생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엔이 건넨 인사의 답례를 한 직후, 자판기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에 반응해 그쪽을 바라본다. 대체 얼마나 많이 뽑은 건지 한 눈에 봐서는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물량에 그녀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걸 다 마시시는 거에요? 이번 임무가 꽤 힘들긴 했지만, 많이 지치셨나 보네요~"
악의라곤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질문을 건네곤, 엔이 지금 자신에게 그러는 것처럼 자신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서 엔을 말 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엔에게서 돌아온 말은 그녀를 조금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게 따지고보면 그녀가 지금 이 자판기에 접근한 목적은 임무에서 체력을 많이 소비해서 그런지 배고파보이는 엔에게 음료를 사주기 위해서니까.
"네? 그거 엔씨가 마시려고 사신거 아닌가요?? 많이 배고프실텐데 전 괜찮으니까 엔씨가 드시는게 어떠세요? 아 참, 잠시만요..."
놀란 얼굴로 엔이 자신에게 건넨 음료를 거부하고, 본래 그녀의 의도대로 잠시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더니 지갑을 꺼내들었다.
오늘의 레레시아는 제법 기분이 좋았다. 자고일어나니 몸이 정말 가뿐하고 상쾌했고, 바깥의 날씨가 매우 좋았으며, 산책하러 나간 거리에서 평소 쉽게 못 구하는 한정판 쿠키를 무려 두 통이나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곧장 기지로 돌아와 쿠키 한 통은 라라시아의 방에 두고, 남은 한 통과 최근 읽는 중인 소설책을 꺼내 휴게실로 갔다. 개인실을 두고 굳이 휴게실로 간 건 가끔은 휴게실의 소파가 더 편할 때가 있어서였다.
"게엑."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휴게실 문을 열자마자 쇠냄새가 제일 먼저 느껴졌다. 누가 신성한 휴게실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켰는가? 그럴 사람은 기지 내에 몇 없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 누가 있는지 확인한 그녀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레-몬- 또- 의무실 안 가고 혼자 그러는 거야아? 라라가 알면 화 낼 거라구-"
라라, 그녀의 쌍둥이인 라라시아는 의무실 소속인지라 그곳과 관련된 얘기도 조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주사가 무서워서 싫다던가? 그렇다기엔 자잘한 부상도 치료하러 오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얘기도 서로 했었지. 참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말도.
"아무트은 피 냄새 싫으니까- 빨리 하고 치워 줘-"
지금은 그녀의 용건이 좀 더 중요했으므로 빨리 하고 치워달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리고 남는 소파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누워, 배 위에 쿠키통을 올려놓고 소설책을 펼쳤다. 그대로 느긋한 휴식 시간을 즐길 것처럼.
당신은 그녀의 행동에 놀란 반응을 했지만, 그녀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멀뚱히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엔은 괜찮다. 이번에는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녀를 오래 보지 않은 당신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그녀는 남의 먹을 것을 탐냈으면 탐냈지, 아무래도 자신의 음식을 선뜻 내어주는 사람은 못됐다. 그런 그녀가 당신에게 자신의 음료를 이렇게 건네주는 걸 보면, 그 행동이 어떤 예절상의 이유에서 나온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임무 마지막 쯤에 그녀의 근처에 있던 블러디 레드의 파츠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도 같다. 만약 당신이 임무 도중 그것을 눈치챘다면 말이다. 그게 지금의 그녀가 괜찮다고 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당신이 지갑을 꺼내들며, 그녀에게 음료를 사주려고 하자-
"엔은 정말 괜찮다."
그녀는 당신에게로 불쑥 다가가 지갑을 붙잡고서, 당신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리감이라는게 없는 것처럼 확 가까워진 거리다. 드리워진 그림자 안에서 검붉은 눈동자가 빛을 띄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이 환자가 넘쳐나는 비상시도 아닌데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저 말이 핑계인 걸 알고 있듯, 재차 말해봐야 계속 안 가고 혼자 저럴 것도 안다. 그러니 더 많은 말은 하지 않고 가져온 소설책에나 신경쓰기로 했다.
"엇. 뭐야. 으엑."
처치를 마친 레이먼드가 방향제 타령을 하며 진짜로 뿌리길래 급하게 책으로 얼굴을 가린다. 쿠키통은 아직 안 열어서 다행이었다. 치익대는 소리가 지나가고 책을 슬쩍 내리자 강렬한 방향제 향이 위에서부터 솔솔 내려온다. 으와- 책으로 부채질 몇 번을 해서 주변의 향을 좀 옅게 만든 후, 이제 괜찮겠지 싶어서 쿠키통을 열었다. 뽈칵. 둥그런 양철캔을 배 위에 두고서 하나씩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음. 버터쿠키 맛있어.
"임무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뭐 했길래 그 모양이래애. 혹시 싸움-? 밖에서-?"
된통 깨졌다고 하니 밖에서 민간인과 싸우고 로벨리아에게 잔소리라도 들었나 싶었다. 기억하기론 블러디 레드 임무에서 그렇게 큰 부상자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으니까. 뭐든 아무래도 좋지만.
"임무에서 발목 잡으면- 안 도와줄 거야아. 몸 간수 좀 해애. 레몬-"
앞으로 더 험한 임무에 나가야 할 텐데. 시작도 전에 팀원이 너덜너덜한 꼴이면 발목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의미로 말하곤 쿠키를 와작와작 먹는다.
사실 거짓말이다. 의무실 담당이 지금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다. 안다고 해봤자 딱 한명, 레레시아의 쌍둥이 정도. 하지만 그쪽이 내 타입이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 심지어 똑 닮았는데.
"그럴리가. 대신 좀 돌아다니느라. 로프 하나 없이 절벽 위에서 번지점프해서 양 다리로 착지하는건 솔직히 좀 힘들었어."
심지어 양 다리로 착지하는것조차 실패하고 나뒹굴었다. 세븐스를 사용해서 순간적으로 몸을 강화하지 않았으면 즉사했겠지. 덕분에 잔소리도 좀 듣고 했다. 비전투 손실을 좀 줄이라고 말이다.
"아, 당연하지. 뭣하면 쓰러져 있는걸 파묻어버리고 먼저 가도 난 괜찮아. 정말로."
레몬. 이쪽은 날, 아니 대부분의 인원들을 특이한 별명으로 불렀지. 나쁘진 않다. 뭐 그렇게 끔찍하게 부르는것도 아니고. 어... 생각해보니, 지금 이 방향제도 레몬향이군. 우연의 일치인가? 그래도 이 화학적인 레몬향을 조금 덮어둘만한게 필요한 참이다. 심신을 리프레쉬 했으니 안정도 좀 시켜볼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찬장에서 티백을 하나 꺼내 물을 올렸다. 천천히 찻물을 우리자, 휴게실 안은 쇠비린내, 방향제, 그리고 이제 다시 은은한 차 향으로 변해갔다.